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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서 났어요?”
“요 앞 길 건너 가게에서 샀어요.”
“참 예쁘네요.”
“화분이 마음에 들더군요.”


사올 때 이 녀석의 안내 팻말에 ‘더피’라고 적혀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줄고사리과 식물이라고 한다. 학명은 Nephrolepis cordifolia. 원산지는 일본이지만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구슬같이 작고 약간 동그란 듯한 잎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탐스럽다. 물을 좋아하며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사무실 반응은 좋았다. 예전 직장의 어느 부서는 전략적으로 화초를 분양했다. 직원들은 대부분 책상에 작은 화분 하나쯤은 기본이었고, 어떤 이는 3~4개를 올려놓아 마치 화단처럼 꾸민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사무실의 조그마한 공간에는 어김없이 큰 나무나 화분이 놓여 사무실 공기를 맑게 순환시켜 주었다. 사무실이 식물원 같을 때 일하는 사람도 식물처럼 온화하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지금 일하는 곳은 좀 삭막한 느낌이다. 온갖 서류와 일감으로 가득 찬 책상에 그 정도 여유가 생기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럴 때 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이 식물들의 진가를 드러낼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앞으로도 책상에 화분을 하나씩 늘려볼 생각이다. 공간은 만들면 가능하다. 회사 제안 코너에도 시간을 내서 회사 차원에서 화분의 분양을 건의해 보는 것도 생각 중이다. 물론 잘 키우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무턱대고 들여놓고 신경 쓰지 않아 시들어 버린다면 볼썽사나운 일이다.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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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거다. 그런데 한때 국민 대다수가 만두를 끊은 일이 있다. 이른바 ‘불량만두’ 사태. 지금도 업체 관계자들은 그때 생각만 하면 몸서리를 친다고 한다. 당시 피해액만 5천여억원, 게다가 젊은 만두업체 사장의 자살까지 불러왔다. 후속 취재에 따르면 보도되지 않은 또 다른 이가 자살을 했다고 하니 사람만 두명이나 죽어나간 사태다. 물론 만두 먹고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전국언론노조 민두언론실천위는 당시의 보도에 대해 ‘탐사보도의 부재’와 ‘선정주의적 접근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렸을 적 만두는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집안의 모든 식구들이 여기에 매달려 누구는 밀가루를 빚고 누구는 속을 만들고, 누구는 속을 꼼꼼하게 채워야 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저며 만두피를 만드는 것도 기술이지만 더 고도의 손재주를 요하는 것은 그 얇은 만두피에 속을 채워 넣어 봉합하는 일이다. 번번이 속이 터지는 일이 일어나니, 그야말로 ‘속 터질 만두 하지’라는 말은 아마 이렇게 탄생한 말이 아닐까, 하는 객쩍은 농담도 주고받았다. 이렇게 손이 많이 필요하고 품이 많이 드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일까. 불량만두도 그렇고 중국에서 들려온 골판지 만두(이것도 방송사의 뻥으로 드러났다)도 그렇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만두가 처음 만들어진 유래도 심상치 않다. 남만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심한 풍랑을 만난 제갈량이 밀가루로 사람 머리를 만들어 제물로 바친 것에서 만두가 유래한 것이니, 세상의 풍파가 거셀수록 만두를 제물로 바쳐야 할 일도 많아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손이 많이 드는 만두를 이제는 쉽게 먹을 수 있다. 어디든 만두 전문점이라면 기웃거리는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만두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퇴근하는 길이라도 만두파는 가게 앞에서는 항상 머뭇거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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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이촌동의 <갯마을> 손만두 전문점을 찾아간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점심식사를 어디서 할까 고민하다가 1년전 찾았던 그 만두집이 생각나서 인터넷을 뒤진 끝에 찾아갈 수 있었다.


손만두 전문점이라 만두국을 시켰다. 육수를 우려낸 국물은 적당히 뽀얗다. 진하게 우려낸 맛이다. 고명으로 얹힌 계란도 먹기 좋게 썰었는데, 노른자와 흰자를 따로 했나보다.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이 돋보였다. 만두 자체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이렇게 내놓은 음식에서도 그런 정성을 엿볼 수 있으니 입맛이 더욱 살아난다. 8,000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다. 동동 떠있는 만두를 하나씩 먹으면서 국물도 같이 먹으니 속이 단단해 진다. 속이 꽉찬 만두처럼 말이다. 양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밥도 작은 사발로 나오는데, 추가 주문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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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탑을 만든 아사달 같이 전문가들이 만든 작품이 아니다. 거친 손으로 투닥투닥 두드려 만들어낸 흙인형이다. 당연히 누가 왜 만들었는지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그저 누군가의 무덤 한켠에 자리잡아 이생의 삶을 다시 저승에서도 잘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토우는 보통의 신라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표현한 UCC, 즉 자체개발 콘텐츠인 셈이다.


천년의 세월을 넘어 토우가 여전히 우리에게 재미있고 유쾌한 상상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천년전 이 토우를 만들었던 이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그 유쾌한 만남이 즐겁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신라관 한편에는 이 토우들만 모아 독특한 전시를 펼쳐놓고 있다. 손가락 두마디 만한 크기의 토우들이 보여주는 세상은 신라인의 유쾌함이다. 온갖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인형들, 무술을 하는 토우,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거기다가 므흣한 성행위 장면까지… 앙증맞고 깜찍한 인형들이 보여주는 재미있는 모습들에 빠져 전시관에는 웃음과 탄성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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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중앙에 특별히 자리잡은 한쌍의 도제기마인물상은 가장 멋들어지고 정교한 작품이다. 오히려 작고 앙증맞고 투박했던 토우와 비교해 보면 이것도 그 범주에 넣는 게 이상하기까지 하다. 아무튼 이게 국보 91호다.


신라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그려낸 연작소설집 <서라벌 사람들>을 펴낸 심윤경 작가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토우장식장경호와 같은 유물은 남자의 커다란 성기와 여자의 섹시한 엉덩이를 유별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유물들을 보면 신라가 성을 숭배하는 토착종교를 지닌 사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꾸밈없고 솔직한 신라인들의 UCC를 내 블로그에 담으니, 10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유쾌한 UCC활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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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했다. 늦은 저녁 지하철 풍경은 모두 각자의 일상을 마치고 하나둘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질질 끌며 집으로 가고 있다. 저 짐들은 다시 내일 아침이면 질질 끌리며 직장으로 학교로 다시 경쟁의 세상으로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이다.

세상의 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을까. 짐의 형식이나 방법은 달랐을 테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반드시 짊어질 억겁의 운명은 하나였을 거다. 생-로-병-사, 21세기 과학이 풀지 못하는 의문은 몇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 경계에 다가서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안의 괴로움까지 풀 수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만났다. 마른듯하지만 강건하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날카로운 조각선들, 저 보일 듯 말 듯한 입꼬리의 미소는 깨달음으로 한걸음 나아간 신성의 모습일까. 아무리 엎드려도 그 눈에 눈맞춤 할 수 없는, 낮고 낮아지는 그 마음은 더더욱 깊어진다.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출가 직전 태자 시절에 중생의 고통을 보면서 고뇌에 잠겨 있는 모습을 그린 모습이다. 즉 부처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중생의 고뇌를 헤아리는 태자의 모습은 미륵보살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며 출가를 결심했다. 큰 마음을 가지고자 했던 사유의 깊이를 우리는 얼마나 짐작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면서, 버리지 못한 것에 질질 끌려다니는 우리네 인생은 그에게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사유 되었을까. 두루 헤아리며 생각한다는 ‘사유(思惟)’가 여기 불상에 깃들어 나는 자꾸 그 생각 안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가 보지만, 헤아릴 길이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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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높이는 1~2미터이며, 잎은 마주나고 깃 모양으로 갈라진다.
6~10월에 흰색·분홍색·자주색 따위의 꽃이 가지 끝에 한 개씩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로 10~11월에 익는다. 관상용이고 멕시코가 원산지이다.




오랜만에 안양천을 내달리니
반갑다며 나를 맞아주는구나.
반갑다,
가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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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맛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이런 맛집 개념의 블로깅을 하는 것은 '그냥 재미'다. 사실 이런 블로깅을 위해 먹을 것 앞에 두고 요리조리 사진 찍는 행위가 나로서도 남세스러운 일이고, 쪽팔린 모양새라는 점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무슨 맛 칼럼니스트도 아니고, DSLR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모양새가 나에겐 아직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일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선배가 하도 재미있고, 즐겁게 블로깅을 하는 걸 보면서 어쩌면 사소한 즐거움도 쌓이면 재미고 행복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서 밥 먹는 것 하나에도 10년 정성을 쌓는다면 무언가 나름대로 철학이 쌓이지 않겠느냐가 그런 것이다.

숟갈 함부로 놀리고 젓가락질 아무데나 하면 먹는 일 자체가 그저 생존의 수단일 뿐이다. 이제 먹는 것도 하나의 문화라고 한다. 생존을 위해 먹던 것에서 이제 즐거움을 위해, 행복하기 위해 먹는 것이다. 식탁의 문화는 물론 생존이 가장 그 기반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 생존을 넘어서는 활동이 또한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잡설을 풀어놓는 데는 "왜 이런 음식 사진, 식당 사진을 올려놓느냐"는 내 자문에 대해 한번 대답해 보고 싶음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집은 예술의전당 앞에 있는
<숙자네 부대전골>이다.

식당은 참으로 여러종류가 있다. 뭐, 대충 한식, 중식, 양식, 일식 이렇게도 나누지만, 맛이 좋은 집, 사연이 있는 집, 분위기가 좋은 집, 역사가 오래된 집 등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숙자네>는 사연이 있는 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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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가 심상치 않다. 분명히 간판은 <숙자네 부대전골>이라고 되어 있는데, 유리창에는 덕지덕지 오래된 포스터와 공연안내문이 붙어 있다. 척 보기에는 무슨 DVD 대여점 같아서 처음엔 그냥 지나치고 말았더랬다. 게다가 문을 찾기도 쉽지는 않다. 초행길 손님에게는 불친절한 셈이다.

하지만, 여기는 예술의 전당 공연팀이 자주 찾는 뒤풀이 장소로 소개되었던 곳이다. 보통 무대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공연 전에는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거나 아예 굶는단다.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을 위한 배려차원이다. 그러다 보니 공연이 끝나면 뱃가죽이 등가죽과 뽀뽀하기 마련. 그래서 이곳을 찾아 부대전골을 즐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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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라고 하지 않고 부대전골이라고 한 것은 왜일까. 여타 부대찌개와 다른 점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2인분을 시켰는데 사리는 반개다. 추가로 주문해도 되겠지만 당연히 추가 비용을 받는다. 안에 들어간 햄은 흔하게 보는 그런 햄이다. 두부는 보이는 게 전부, 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미나리가 들어가 국물의 맛이 남다르다. 여러 가지 재료들을 미나리와 같이 먹으면 맛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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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그렇다 치고 가게 주변에 붙어 있는 여러 공연 안내문과 포스터가 참 독특하다. 여기에 공연 관계자들의 사인이나 연예인 사인도 곱게 잘 받아서 도배를 해 놓은 모양이 많은 정성을 들였을 것 같다. 이 집 주인장에게는 하나같이 사연이 있을 법하다는 상상을 가능케 해 준다. 예술의 전당 바깥에서 예술인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식당에 있어 한번쯤 가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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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를 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무심히 셔터를 누를 때가 있다. 대부분의 풍경은 프레임 안에 갇혀버리기 일쑤다. 정말 좋은 사진은 프레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항상 카메라 뒤에 숨어 있다. 그것은 프레임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매그넘의 사진들은 프레임에 숨어 있는 진실들, 그리고 사진기 뒤에 있는 작가들을 보여주었다.

 매그넘의 명성은 이미 권력이다. 물론 그들은 목숨마저 내놓고 위험한 역사의 현장을 마다하지 않는 불굴의 작가라는 점에서 그런 권력은 의미 있으며 가치가 있고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명성과 권력이 어떻게 한국을 담아낼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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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프레임 안에 담아낸 풍경은 실상 아주 단순하고 가까운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그러나 평범함 안에 비범함을 담아내고 있다.

 각각의 작가들이 추구하는 사진정신은 실로 다양해 빛과 어둠, 여성, 프레임 안의 프레임, 유머, 색채 등등 자신이 담고 싶은 것을 담는다. 한 장의 사진에 하나의 담론이 실리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러니까 피사체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나 관찰, 교류 없이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기계적 초점일 뿐이며 보다 진지한 작가적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기술적인 발전은 이룰 수 있을지언정, 내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방식의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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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안에 항상 캐논 400D를 가지고 다니면서 막상 가방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내 어깨에 느껴지는 중압감만 더욱 커지고, 왜 그것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를 의문만 쌓여 갔다. 아마도 세상에 대한 관찰이 부족하고, 교류도 없으며, 탐색도 하지 않았던 탓이다. 매그넘 사진전을 다녀오면 자꾸 사진기에 손이 간다. 평범하게 보이는 시선을 다시한번 마음의 프레임에 넣어본다.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오는 세상을 향해 좀더 세심한 시선을 던져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카메라가 가방 밖으로 나오는 일이 잦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세상이 나를,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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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한강에 나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한밤 중에도 자는 사람, 술마시는 사람, 싸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고스톱치는 사람, 폭죽 터뜨리는 사람, 오토바이 타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배 타는 사람... 벼라별 사람들이 참 많다. 새벽 2~5시까지 풍경이었다. 물론 그중 노래하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에 본인을 비롯한 일행이 있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뭐, 우리만 그랬나. 다들 그렇게 여름밤의 무더위를 즐기고 있었다.

제주도 뒷풀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한강에 가서 술마시자는 제안은 내가 했다. 마침 서영 선배의 차가 있었고, 거기에 돗자리도 두 장이나 있다고 했다. 한강의 야경에 술잔을 띄워보자는 아주 낭만(?)적인 제안에 금세 호응해 주었다.

그런데 역시 쉬운 일은 없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를 떠간다는 게,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길 찾아가는 데 한참을 헤매니 말이다. 예상했지만 수산시장의 횟값이 싼 것도 아니다. 광어 1kg에 2만원이라니... 저울 사기도 있다고 하는데, 이거 원 저울을 믿을 수가 있나. 좋은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딱히 즐겁지만은 않은 장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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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우여곡절을 건너뛰어 원효대교 밑에 도착해 돗자리를 깔고 앉은 시간이 대충 10시 반정도. 이미 다리 밑은 초만원이다. 이미 자리잡고 누워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 으레 그러듯이 한편에서는 점 100원 고스톱이 한창이다. 경찰봉 휘휘 돌려가며 의경 둘은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있다. 단속할 만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경찰이 옆에서 지켜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의경 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

내 왼편에 누운 아주머니 아저씨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깔고 앉아 준비한 회를 풀어놓고 가까운 매점에서 술과 음료수를 사고 컵과 젓가락을 얻어왔다. 어수선하고 소란스럽지만 그래도 한강으로 떨어지는 가로등불이 빚어낸 멋들어진 야경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한여름밤에 돗자리깔고 앉아 있는 것도 오랜만이며, 술 마시는 것도 몇 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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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왼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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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른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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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즐거운 자리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분명 다닐 수 없을 텐데 하나둘 오토바이들이 보였다. 누가 이 밤에 피자라도 주문했나 싶었는데, 수시로 왔다갔다하는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얼마 안 있어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모여들었다. 희한한 경적을 울리는가 하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오토바이도 있다. 그들만의 회합이 시작된 것이다. 근처에 있던 의경 둘이 자전거 도로를 오가는 오토바이들을 제지하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도망친다. 잠시후 방송국 카메라 등장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을 찍었다. 한 청년을 잡아 인터뷰도 시도했다.

우리가 날을 제대로 잡았나 보다. 단지 우리에게 오토바이가 없을 뿐이다. 젠장, 아무튼 무척이나 시끄럽고 짜증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돗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만큼 오토바이들의 영토도 늘어났다. 꿋꿋이 자리에 누워 고집을 피우던 사람들도 결국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다리밑에서 듣는 오토바이 소음은 참기 힘들다. 우리는 그나마 한강에 바싹 붙어있던지라 참을만 했지만, 그래도 제발 회합 끝내고 거리를 달려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2시 넘어서 회합이 질주로 변했다. 족히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원효대교를 나가 차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떠나고 오토바이도 떠난 원효대교 밑에, 조금씩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돗자리를 깐다. 젊은 연인 둘이 우리 옆으로 와서 텐트형 모기장을 치고 들어가 잤다. 그때 그만 모기에 물렸다. 저거 하나 갖고 싶다. 우리는 한강에서 꼬박 밤을 새워 보았다. 누구는 잠을 잤고, 누구는 이야기를 했고, 누구는 노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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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깔고 모기장 안에서 편하게 자는 사람들. 저런 모기장이 갖고 싶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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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1시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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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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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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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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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나오면서 63빌딩 한컷. 밑에서부터 붉은 아침기운이 서서히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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