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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제주도 뒷풀이를 했습니다. 그렇게 재밌게 놀다왔으면 됐지, 무슨 또 뒷풀이냐 싶겠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입니다. 술자리 갖자는 핑계치고는 좋지요. 그날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되새기면 술맛도 좋을테니 말입니다.

모임 장소를 고민하던 환국이 추천한 곳, 대학로 <낭's>.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던 토요일 오후 우리는 거기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첫손님인지 안은 좀 후텁지근하더군요. 지금 막 에어컨을 틀었다니, 시원한 공간을 바랬던 우리는 좀 서운했지요. 가운데 나무가 있어서 분위기는 좋은데, 공간을 나무가 많이 차지해서 테이블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집은 해물떡찜과 모듬튀김이 유명하다고 하네요. 특히 ‘튀김 요리 전문 주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모듬튀김을 자신있게 추천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다녀온 이들은 해물떡찜을 많이 추천하네요. 자신 있는 것은 자신 있는 것대로, 또 대중의 입맛은 입맛대로 둘다 괜찮을 거라는 기대를 할 만합니다.

우리가 먼저 주문한 것은 해물떡찜. 떡볶이류가 그러하듯이 맵습니다. 맥주가 저절로 들어가더군요. 네, 해물떡찜은 맥주귀신입니다. 소주 안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옆에 물 한컵씩은 꼭 준비하고 먹어야겠어요. 그래도 저녁 시장기를 없애주는 데는 그만이었습니다. 환국은 맵다면서 국물도 넙죽 잘 떠 먹더군요. 저도 먹어봤는데, 꽤 먹을 만합니다.

다음 안주는 해물누룽지탕. 이건 맥주안주로는 부적합하네요. 소주 안주로 괜찮습니다. 건더기가 많아서 역시 시장할 때 배채우기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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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떡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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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안주는 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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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아이스크림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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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샐러드



마지막으로 연어샐러드. 배가 불러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시켰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듬튀김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어렵게 뺀 살을 다시 불릴 수는 없지요. 아쉽지만 서비스로 나온 황도를 마지막으로 여행 뒷풀이 모임 1차는 마쳤습니다.

대학로 주점 ‘낭's’는 대학생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안주 가격은 중급이었습니다. 싸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결코 비싸지도 않습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술한잔 마시고 싶은 이들에게 괜찮은 곳이네요. 메뉴판닷컴에서 쿠폰을 출력해 가면 다양한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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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 닷컴에 소개된 낭's 소개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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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속의 섬, 우도. 처음 제주도를 가는 이에게 이구동성으로 “우도를 가보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우도는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제주도 셋째 날에는 이 우도를 들어가보기로 했다. 1997년 대학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방문했을 때 우도를 한번 들어가 봤으니 11년만에 들어가보는 셈이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참 좋았다’는 인상을 주었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아침 9시에 숙소를 나왔다. 전날 저녁에 제주 흑돼지로 늦게까지 거나하게 술을 걸쳤더니 아침이 버겁다. 그래도 우도의 해변가에서는 본격적으로 해수욕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숙취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아, 해수욕이라니, 난생 처음이다. 바닷가를 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발목이나 종아리 정도 적시는게 전부였던 내가 이제 해수욕을 하겠다고 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수영복도 챙겼다.











우도로 들어가는 차량이 꽤 많았다. 저 조그마한 섬에 이렇게 많은 차량들이 오전부터 들어간다면 길이 남아나겠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제주도는 7월1일부터 차량총량제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섬으로 들어가는 차량의 최대한도를 605대로 제한하고 있다. 교통체증과 생태계 훼손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11시 30분. 어수선한 성산항을 출발해 우도로 향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배타고 다니는 일이 참 많다. 배 꽁무니에서 일어나는 하얀 포말은 떠남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갈매기들이 포말 위에서 날아다니며 우리 뒤를 쫓아왔다. 잠시 여행의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배는 우도항에 들어가고 있었다.

차를 몰고 나와보니 우도항에는 스쿠터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 한여름이라면 차라리 스쿠터로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수진선배가 운전대를 잡았다. 우도에서는 자기가 운전을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우도 모두 드라이브를 하기가 참 좋다. 막상 운전대를 잡고서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다가 결국 해안선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첫 번째 찾은 곳이 검멀레였다.


▲ 검멀레




▲ 멀리 보이는 짧은 해변이 검멀레 해수욕장. 실상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 바람이 무지 거셌다.


 

검멀레는 우도의 유일한 봉우리 우도봉 아래의 기암절벽이다. 이곳에는 해수욕장도 있다. 독특한 이 해수욕장은 폭이 불과 100m에 불과하지만, 검은 모레 때문에 유명하다. 해변끝에는 고래콧구멍동굴 동굴이 있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바다로 향한 바위에 앉아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의 포말을 구경했다. 수만년동안 이렇게 바다는 육지를 사모했고, 파도는 바위를 향해 구애를 펼쳤다. 바위 뒤편에서 수진 선배는 바닷속 바위에 붙어있는 소라새끼들을 구경했다. 소라껍질 속에 들어간 게도 잡아 보여주었다. 자연은 이렇게 신기하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검멀레를 나와 다시 시작된 드라이브, 구불구불 해안가라 속도를 내는 것도 어렵지만 궂이 속도를 낼 이유도 없다. 덥지만 창문도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람을 차안에 가득 싣고 다녔다.



▲ 비양동 등대. 환국은 여기서 춤을 추더라.





▲ 바람이 보이나? 사람과 바람이 담긴 풍경.



▲ 현상이와 파란 셔츠와 바다가 잘 어울렸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우도 안의 비양동 등대. 섬 아닌 섬이다. 시멘트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물이 찰랑찰랑 파도가 넘실거린다. 바지 걷어 올리고 맨발로 한번 건너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역시 어제 하루 쉰 수진선배의 기분이 최고다 서슴지 않고 발을 적셨다. 환국도 여전히 제일 신났다. 사진 찍고 작은 언덕에 올라서니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에 앉아 쉬었는데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었다. 하지만 그늘 아래라 그런지 시원하기만 하다. 제주도에서는 바람도 즐겁다.

비양동을 나오니 한시가 넘었다. 배가 한참 고플 때다. 하지만 바나나로 해결했다. 왜 그렇게 가난하게 다녔는지, 아마도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나절만 있다가 가려니 시간이 아깝다. 다시 차를 몰아 찾아간 곳은 우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서빈백사에 들렸다. 여기서 본격적인 해수욕을 했다. 처음에는 옷을 벗는 것도 주저했는데, 물에 들어가니 아주 신났다. 해수욕을 해 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매번 바닷가를 가도 발이나 잠깐 적셨을 뿐 물에 들어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반드시 해수욕을 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던 터였다.



▲ 서빈백사 해수욕장. 가운데 모래찜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와 환국이.
옆에 아가씨는 굉장히 불만있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럴만하다. 해수욕장 물 우리가 다 흐려놨다.




▲ 그래도 좋단다. 박현상 촬영.


▲ 서영선배는 물에 빠지고 나서는 아주 바위에 눌러 앉았다.



▲ 평영으로 수영 중. 입만 벌리면 짠 바닷물이... 생각만해도 짜다 으으~



▲ 물에 빠진 서영 선배.


서빈백사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산호초 해변이다.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동남아의 어느 바닷가가 연상된다. 해변가는 자잘한 산호초들이 은빛색깔로 반짝였고, 바닷물은 그 투명한 색깔을 맑게 드러내고 있었다. 서빈백사는 그 아름다움으로 우도 8경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나와 환국이는 수영복을 준비해 왔기에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동안 배운 수영을 열심히 해 보았는데, 역시 잔잔한 파도 속에서는 쉽지 않다. 게다가 입안으로 들어온 짜디짠 바닷물 때문에 도저히 제대로 된 수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바닷물을 아랑곳 하지 않고 현해탄을 수영으로 건넜다는 조오련 씨가 정말 대단하다.

이런 즐거움을 나와 환국이만 즐긴다는 게 참 미안한 일이다. 수진선배는 몸이 안좋아 안된다고 하지만 현상이는 발만 적시는 것도 싫어하는 눈치다. 전생이 고양이었을까. 하지만 서영선배는 그래도 바닷가라고 모래사장에서 파도와 장난치고 있었다. 이런 즐거움은 나눠야 하는 법, 환국이와 함께 서영선배를 물에 빠뜨렸다.

서빈백사 해수욕장에서는 한시간 정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래찜질을 하면서 산호해변의 느낌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물속에서 오랫동안 잠수를 하면서 바다속 풍경도 감상했다. 그 한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아낌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즐거움을 서빈백사에 묻어두고 나오려니 아쉬웠다.

우도봉을 들려보지 못한 점이 좀 아쉬웠다. 해보진 못했지만 우도봉 등대박물관 구경을 하면서 우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한 지역을 알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하루가 될 수도 있고 한달이 될 수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불과 한나절의 시간으로는 우도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도를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면 오후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정오쯤에 나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번 우도 여행은 나에게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해수욕장에서 시원하게 수영을 해 본 경험은 그 어떤 일보다 재미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횟집에 들려 횟감을 사들고 들어가 마지막날 만찬을 즐겼다. 제주의 밤에 수진선배와 서영선배는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밤산책을 나선 우리는 롯데호텔 주변 산책길과 중문해수욕장을 거닐었다. 마지막날인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내 카메라 배터리도 나갔다. 바다 저 편에 고기잡이 배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바닷가에서는 밤늦게까지 밀어를 나누는 젊은 청춘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제주의 밤은 깊고 푸르게 익어갔다.


▲ 롯데호텔 뒤편.


▲ 산책로를 따라가다가.






▲ 중문해수욕장에서





다시 언제 제주도를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다음 제주 여행은 이번보다 훨씬 재미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제주는 그동안 나에게 별반 매력이 없는 휴양지에 불과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가 됐기 때문이다. 올 가을에 한번 더 제주도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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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의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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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온 서명숙 씨는 각자의 공간에 ‘카미노’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하고 자신의 고향 제주도에 ‘제주올레’를 만들었다. ‘올레’란 ‘거리길에서 대문까지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아무리 길이 흔하다고 하지만 걷고 싶은 길을 만든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길이 있다고 해서 다 걷기 좋은 길도 아니다. 걷고 싶은 길에는 문화가 담긴 풍경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그 지역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순례자가 되어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길 위에서 꽃핀다. 또 길을 만들어도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면 그 길은 지워지기 마련이다. 앞사람의 발자취가 느껴지고 뒷사람을 위해 함부로 발 디딜 수 없는 그런 길이 진짜 길이다.

제주도 여행 둘째 날은 바로 그 제주올레 첫 번째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뜨거운 땡볕 아래서 6시간 이상 20km 가까이 걸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트래킹은 내가 넣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백두대간의 여운이었을까, 걷는 게 좋다. 트래킹이 없었다면 제주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첫번째 길의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는 먼저 성산까지 렌트카로 이동하고 그곳에 차를 주차한 다음 시흥초등학교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렌트카가 없을 경우 제주나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회선 일주도로를 왕복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시흥리에 내리면 된다. 1시간 좀 더 걸리며, 운임은 3000원 정도(변동 가능). 우리가 시흥초등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5분. 중산간 지역에 있는 학교라서 그런걸까. 작은 규모이지만 깔끔한 잔디운동장이 마음에 쏙 든다.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먼지 하나 묻지 않을 것 같은 깨끗함이 느껴졌다. 시간만 된다면야 폴짝폴짝 뒤어다니면서 다방구 놀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날 가야할 길이 멀다.





▲ 뒤에 보이는 작은 언덕이 말미오름(혹은 말오름)이다.
올레 첫길은 초등학교 옆으로 돌아서 그 오름을 오른다.


걷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단 육체적 건강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가. 경보 하듯이 걸어다니거나 심지어는 뛰어 다닌다. 대중교통이 1~2분만 지연되도 분노수치가 올라간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나머지 걷는 것도 잊어버렸다. 걸음을 못 걷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주위 사물과 교감하고 하늘을 보며, 땅을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한번 더 살펴보고 관조할 수 있는 여유와 철학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여행객들이나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목적지는 라싸나 산티아고가 아닌 바로 그 자신이다. 신 앞에 겸손해진 자아를 이끌어내며 걷는 것, 그것이 걷기의 철학이고 순례길이 담고 있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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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에서 맞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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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는 길바닥과 돌담, 전봇대에 진행방향을 가르쳐 주는 안내 표시가 있다. 백두대간처럼 리본으로 길 안내를 하던 것에 익숙한 나로서는 페인트로 칠해진 화살표가 낯설고 눈에 거슬린다. 조만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된다면 멋들어진 이정표가 사람들을 맞아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무튼 길 잃어버릴 일은 별로 없다. 단지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여유만 있다면 충분히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시흥초등학교 옆길로 해서 말미오름을 옆으로 돌아가는 돌담길이 나온다. 바닥에 나온 표시에 주의하면 길은 찾기 쉽다. 한적한 돌담길을 걷다보면 슬슬 땡볕이 거슬린다.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주면 좋겠지만, 산밑이라서 아직은 덜 시원했다. 여름에는 덥더라도 반드시 긴팔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제주도 햇살을 쉽게 봤다가 지금 팔뚝이 허물을 벗고 있다.

그래도 고즈넉한 제주도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밭일 마치셨는지 망태기 들고 점심 드시러 가는 할망(할머니의 제주도 방언)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도 드리자. 반갑게 웃어주는 할망의 주름진 얼굴도 제주가 주는 선물이다. 환국은 배가 고팠는지 돌담 옆에 버려진 감자에 관심을 가졌다. 얼마전까지 밭에는 감자가 심어져 있었나보다.



 

말미오름을 본격적으로 오르는 초입에는 시흥리 청년들이 내건 현수막도 눈에 띈다. 제주올레를 방문하신 분들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오름에 오르는 길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 있어 편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아져서기도 하겠지만, 제주올레를 만드는 이곳 사람들의 정성과 관심이 꽤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20분 정도 오르니 목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제주올레 팸플릿에는 걸쇠를 열고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걸쇠가 아닌 끈으로 묶여 있었다. 넘어가면서부터는 목장이다. 말이나 소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문을 잠가 놓는데, 이후에 나오는 다른 문들은 걸쇠로 되어 있어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오름에서 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연무 때문에 아주 멀리까지는 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오름 아랫동네와 성산 앞바다까지는 아주 잘 보였다. 예전 한라산에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도가 보다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선 듯한 느낌이다. 바람은 또 어찌나 시원하게 불어주던지, 여기 오면서 흘렸던 땀을 순식간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 제주의 검은 흙이 녹색과 대비되어 두드러지게 보였다. 밭을 갈아 놓은 뒤 아직 작물을 심지 않았다.

▲ 멀리 희미하게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까마득하다.
그러니까 이날 걸어야 하는 거리는 저기를 넘어 그 다음 섭지코지다.




▲ 여행객들을 위해 벤치도 마련해 놓았다. 목책을 따라 가면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 가능하면 카메라를 가져가자. 휴대전화 카메라까지 동원됐다. 각자가 담은 풍경들은...


설마 클릭하는 건 아니지?

말똥. 목장은 지뢰밭.

우리가 걸었던 길은 목장길이다. 목장길이니 말이 뛰어다니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는 소보다 말이 많았다. 말들이 뛰어다니고 힝힝거리며 발을 구르는 모습을 텔레비전이 아닌 목장에서 보는 재미도 좋다.

단, 발밑을 조심하자. 말똥이 천지다. 유감스럽게 아무도 똥을 밟지 않았는데, 나만 두 번이나 밟았다. 풀들을 먹고 사는 놈이라 똥이 냄새도 없고 또 오래된 똥은 흙색과 비슷한데다가 풀속에 숨어있어서 잘 보고 다녀야 피할 수 있다. 경치 좋다고 둘레둘레 다니다가 똥을 두 번 밟았지만, 소똥 밟으면 재수가 좋다는 말에 빗대어 히히덕거리며 좋아라했다. 똥 밟는게 좋을리 없지만 경치나 바람, 그리고 걷는다는 것에 취했던 것이다.

천연거름 덕분인지 야생화가 참 많고, 그에 어울리는 갖가지 나비들이 춤을 춘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이름모를 야생화들 틈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목가적 풍경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멀리 펼쳐진 제주의 들판과 바다를 보는 재미가 합쳐졌다. 원경과 근경 모두가 즐겁다.

 





▲ 말미오름을 잠깐 내려와서 오름과 밭 사이로 난 오솔길.




▲ 초지에 길표시가 없다고 걱정할 것 없다. 땅에 있는 돌맹이 위에도 표시가 있고, 나무에도 표시가 있다.




▲ 배가 고프다며 쳐지기 시작한 환국.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배고파 산딸기도 따먹었다고 한다.











▲ 말들을 풀어 키우고 있고, 목장 한곳에는 제주도식 무덤도 있다.



▲ 좋댄다.



▲ 내 앞에 간 죄로 뒷모습만 찍혔다. 물론 의도적으로 현상이는 사진찍히는 걸 피했다.



▲ 사람들이 오니 경계를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먼저 달려드는 일은 없다.



▲ 이렇게 해서 오름 걷기는 끝났다. 이제 종다리 마을로 가는 길이다.


오름에서 준비한 간식을 먹었다. 미리 감자와 샌드위치를 좀 만들어 왔는데, 아주 요긴하게 먹었다. 간식거리는 시흥리 마을에 있는 구멍가게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많이 걸을 때는 수시로 먹는 일이 중요하다. 모두가 배가 고파 혼났고, 무엇보다 환국이는 지쳐버렸다. 그래도 감자 하나를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오름 여행을 끝낸 시간은 12시 반 정도. 약 1시간 반의 여행이었다. 짧지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목장을 나와 다시 시작되는 길은 시멘트 길과 중산간도로인 아스팔트길이다. 뜨거운 지면을 따라 걷는 일이 목장길을 걸었을 때보다 좀 힘들다. 시멘트길에서는 간간히 빗물이 고인 곳이 많아서 까다로웠고, 아스팔트 국도길은 가끔씩 지나다니는 차량에 신경을 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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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에서 성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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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감동과 재미 때문인지, 종달리 마을까지 가는 길은 좀 지루했다. 다들 점점 더 뜨거워지는 태양에 조금씩 지쳐갔다. 마침내 종달리 마을 앞 표지석에 도착했고, 더위도 식힐 겸, 입구의 매점에 잠시 들렸다.

처음 시흥초등학교 앞에서 보았던 밝은 미소는 발갛게 달구어진 뺨 때문에 지워졌다. 서영 선배는 다시 선크림을 발랐고, 나는 매점 앞 수도꼭지를 틀어 등목을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밖에서 등목을 해본 게 까마득하다.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종다리 마을로 들어가서 옛소금밭을 지나서 종다리 해안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시흥해녀의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할 것이다.

 

▶ 종달리 폭낭.
종달리 마을길에서 만나는 나무.
우리가 지날 때도 동네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표지석에는
종달리 소금밭의 유래가 적혀있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 종달리 소금밭 사잇길. 물론 지금은 소금밭의 흔적만 남았다.


▲ 지금 소금밭은 이처럼 무성한 잡풀들이 점령했다.



종달리 마을을 지나면 곧 해안도로가 나온다. 2006년 나는 이 도로를 달려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갔다. 그때는 엄청난 바람 때문에 힘겹게 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날만큼 바람이 제일 고맙다. 걷는 걸 방해할 만큼의 바람이 거세지 않았고, 시원하게 쌩쌩 불어주어 땡볕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전거조차 가기 어려운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길도 나있지 않은 오름은 물론 해안가 바위들 사이나 모래사장은 자전거라도 가기 어려운 길이다. 이런 길을 걷는 재미는 자전거와 다른 맛이 있다.
제주도 여행하는 내내 자전거 여행자들을 많이 봤다. 대부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젊은이들이었는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힘겹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면 예전 내 생각이 나 코끝이 찡해진다. 자전거 여행도 좋지만, 제주올레도 추천하고 싶다.

제주도는 크게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누는데, 종달리와 시흥리는 바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다. 종달리와 시흥리는 인접해 있지만 전자는 제주시에 속해있고, 후자는 서귀포시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해녀들이 많고, 일제시대에는 이 지역 일대 해녀들이 일제의 폭압적인 수탈정책에 거세게 저항했던 역사가 서려있다고 한다.



▲ 종달리와 시흥리의 경계지역. 오징어를 말리고 있던 곳이다. 이때가 막 2시를 넘어 갈 때였다.



▲ 오징어를 말리고 있던 곳에서는 직접 오징어를 파는데, 맛이 괜찮다.



▲ 완전히 마른 오징어가 아니라 반건조 오징어를 살짝 구워주는데, 짜지 않고 쫄깃쫄깃해서 먹을 만하다.
한마리에 1000원~1500원 한다.


▲ 종달리 해안도로에서 찍은 바다사진. 맑고 투명했으며 해초가 많았다.


점심 때가 훨씬 지나도록 먹은 게 없으니 다들 힘들었다. 2시가 넘어서야 시흥리로 들어섰는데, 시흥 해녀의집이 눈앞에 보이자 그제서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계획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시흥 외에도 오조리나 섭지에도 해녀의집이 있다. 모두 그 마을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지역 해녀분들이 따온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내놓고 있어 맛있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싸고 질좋다고 한다면 여기 음식은 그야말로 천상의 음식이라고 할만하다. 시흥 해녀의집은 제주올레에서 추천한 맛집으로 조개죽이 일품이다. 우리 일행들도 이곳에서 조개죽과 전복죽을 시켜서 먹었다. 죽이라고 해서 얕보면 큰코 다친다. 커다란 사기 사발에 하나 가득 나오고 반찬거리로 나오는 지짐도 부족하면 더 가져다 주어 그야말로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제주도에서 나는 반찬들을 하나씩 먹어보는 것도 지역의 맛과 멋을 알아가는 재미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개죽에 조개가 참 많았다. 물큰 씹히는 조개와 살살 녹는 쌀알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입안에 맴돈다. 전복죽도 하나 시켰는데, 그렇게 덩어리째 들어간 전복죽 구경은 처음이다. 보통 서울시내에서 전복죽을 먹으면 전복이 그 실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썰어져 있는데, 이곳 해녀의집 전복은 모양 그대로 살려 듬벙듬벙 죽속에 빠져있다. 전복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전복죽도 추천할 만하다. 맥주 한 병을 시켜 똑같이 나누어서 마셨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벽에 달린 선풍기를 무색하게 했다. 조개죽은 6,000원, 전복죽은 9,000원이다.


▲ 이런 전이 나오는 식당이 나는 정말 좋다. 우리가 너무 잘 먹자 아주머니가 하나 더 갖다 주셨다.

▲ 겡이 튀김이라고 부른다. 해안가 바위틈에 돌아다니는 게를 잡아서 튀긴 것으로 바싹하니 맛이 좋다.


▲ 조개죽. 먹다 보니 사진찍은 걸 잊었더랬다. 조개의 시원한 해물맛이 일품이다. 입에 착착 붙는다.


시흥해녀의집 맞은편에는 조가비박물관도 있다. 조가비박물관을 보고 갈까 했으나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지났다. 천천히 쉬엄쉬엄 구경하자는 취지였는데도 불구하고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시흥리해녀의집을 나온 시간은 3시 반경이었다.

식사가 달콤했던 탓일까. 다시 힘차게 길을 나섰다. 성산이 이제 뚜렷하게 보였다. 바다 저 멀리 우도도 눈에 들어왔다. 해안도로를 걷다가 물이 빠진 바닷가를 거닐었다. 해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걸으면서 조개도 줍고 소라도 주웠다. 제주에서 주워온 조개와 소라는 지금 우리집 어항에 들어가 있다. 어항이 한결 더 예뻐졌다.






▲ 해안가를 거닐었다. 썰물 때라서 걷기가 좋았다. 바닷물이 빠지자 해안가는 여기저기 해초들이 어지럽다.








▲ 성산항에 정박해 있는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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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봉에 올라 꽃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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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차를 주차해 놓았던 성산봉에 도착한 시간이 4시 30분 경, 여기까지 5시간 반정도 걸린 셈이다. 중간에 식사 시간이 좀 길었고, 매점에서 쉬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다면 늦지 않게 온 것이지만, 성산봉을 올랐다가 다시 섭지코지까지 걷는다면 해가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성산봉 오르는 길도 쉽지 않으니 아마도 몇몇은 여기서 여정을 정리해야 할 듯싶었다. 제주올레도 여기서 성산봉을 오르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는만큼 힘든 이들은 그 길을 선택해도 되겠다.

생각해 보니 성산봉 꼭대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성산봉에 입장료 내고 들어와 본 게 대학 수학여행 때로 기억되는데, 그때도 꼭대기는 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전날 술먹고 힘들어서 포기했을 거다. 술이 웬수다. 하지만 오늘은 멀쩡한 정신과 건강한 체력이 뒷받침 해주고 있다. 좀 지치긴 했지만, 이 정도는 백두대간 여행에 비하면 식은죽 먹기다.

물론 성산봉은 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성산봉으로 오르는 길 좌우측으로 난 산책길을 걷는 것도 성산봉의 절경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성산봉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아마도 2~3시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입장권(2,000원)을 끊으면서 물어보니 왕복 40분 소요된다고 한다. 쉬엄쉬엄 1시간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 성산봉 곳곳을 모두 둘러본다면 2~3시간 정도는 잡는 게 맞다.


▲ 완만한 비탈길이 끝나고 성산봉에 가까워 오면 줄기찬 계단길이 이어진다.







▲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졌다는 제주도와 성산봉의 증거.

▲ 성산봉 분화구. 가운데 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이다.









▲ 서영선배는 줄곧 머리에 꽂아 두었던 꽃을 여기 분화구로 던졌다.













▲ 성산봉 한켠에 마련된 매점 겸 식당. 밑에서는 해녀들이 갓잡은 회와 조개류, 해삼 멍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시간이 되면 내려가서 소주 한잔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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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봉은 줄곧 계단길이다. 꼭대기에 오르면 분화구가 훤히 보인다. 성산봉은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생긴 화산섬이다. 오랜 세월 제주도와 성산봉 사이의 바다가 모래로 메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어렵게 올라가자 아담한 분화구 너머 넓게 펼쳐진 바다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봉우리에 가려져 오지 않던 바람도 여기에서는 시원하게 이마를 쓸어주었다. 치마를 입고 온 젊은 처자도 있고, 샌달을 신고 올라온 총각도 보인다. 아이들은 더더욱 신났다. 힘든 것도 모를 때다. 숨이 턱끝까지 올라온 아저씨 아주머니도 꼭대기에 올라서서 길게 한번 숨을 쉬어 본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살갗에 닿는 모든 것들이 시원하다.

성산봉 꼭대기에는 토끼가 한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환국이가 신났다. 거북이가 토끼를 만났으니 아니반가울까.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 토끼는 사람들이 익숙한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풀을 뜯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더니 손길이 닿으면 토라진 여인처럼 돌아서서 멀리 뛰어갔다.

서영 선배는 길가에서 꺾어 온 꽃 한송이를 이곳 분화구를 향해 던졌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일까. 아니면 힘겨운 여정을 마무리하는 통과제의였을까. 꽃을 던지는 손이 곱다. 하긴 이렇게 오래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일 것이다. 결국 서영선배와 현상이는 이곳에서 차를 타고 섭지코지로 가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멀리 섭지코지가 흐릿하게 보이지만 까마득하다. 아마도 1시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어림잡아 보았다(결국 2시간 정도 걸렸다).

이제 나와 환국이만 남은 길을 걷기로 했다.



▲ 수마포 해안. 잘 보면 동굴이 보인다.


섭지에서 지는 해를 보다

 

이렇게 되니 나와 환국이가 2004년 함께 지리산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4명이 같이 갔었는데, 서영선배만 다르고 3명이 이번 제주여행에 같이 온 셈이다. 비슷한 점은 당시에도 2명이 마지막 천왕봉을 오르지 못해 환국과 나만 올랐는데, 이번에도 2명이 빠지고 나와 환국이가 마무리 화룡정점을 찍으러 가는 것이었다. 묘한 우연이다.

위의 사진은 수마포라고 한다. 성산의 옆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동굴로 대공포 기지가 있었다. 4.3 당시에는 이곳에서 토벌대에 의해 양민 학살이 자행된 것이라고 한다. 제주의 뼈저린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나와 환국은 여기서 과감하게 바닷가로 내려섰다. 썰물 때라 바닷물이 꽤 많이 빠졌다. 샌들을 챙기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 순비기. 나무의 줄기가 모래땅 속으로 숨어서 뻗어나가므로 해녀들이 '물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제주어 '숨비기'라는 명칭이 붙었다.



▲ 모래사구.  간조 때 모래가 쓸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이용해 방책을 세웠다.



▲ 어느 노인이 그물을 손질하나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외국인이 글을 쓰고 있었다.



수마포 해안을 지나면 광치기 해변으로 접어든다. 기나긴 해변이 멀리 섭지까지 펼쳐졌다. 종달리 해안가에서는 해안도로를 따라 거닐었는데, 성산봉을 나와서는 줄곧 바닷가로만 걸었다. 2시간 가까이 걷는 길이 지루하다고 보면 오산이다. 갖가지 바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해변가는 모래사장도 있고, 너럭바위 지대도 있다. 모래사구 언덕길에는 순비기 군락도 볼 수 있다. 바위지대에는 자잘한 이끼들의 색깔이 탐스럽다. 잘 짜여진 융단처럼 넓은 바위에 깔려 있는 이끼들이 좋다고 함부로 발걸음을 떼어서는 위험하다. 꽤 미끄럽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순비기는 30~60cm정도 자라는 키작은 나무인데 바닷가에 이렇게 어여쁜 꽃나무가 자란다는 게 놀라웠다. 반짝반짝 빛나는 연두색 잎사귀는 작고 탐스러운데다가 연보랏빛의 맑고 투명한 꽃잎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천지로 피어난 꽃들과 잎들을 만져보다 보면 길에서 만난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바닷가 모래사장이라고 모든 곳이 해수욕장일 수는 없지만, 해수욕장이 아니라고 해서 해수욕을 해서는 안된다는 법도 없다. 이 길을 가다 보면 해수욕장이 아닌데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홀로 바닷가에 앉아서 글을 쓰던 외국 노인은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노년의 휴가로 제주를 찾은 듯하다. 반갑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 인사말 정도는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상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영어로 '헬로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먼바다를 보며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은 내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환국은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틀림없이 지금 쓰는 글에 우리의 모습이 담겼을 거라며 의기양양이다.

모래사구 근처에서는 버려져 돌아다니는 가느다란 대나무 막대기도 주웠다. 너럭바위 지대는 미끄러울 수도 있고, 모래사장은 푹푹 빠지니 지팡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잘 꽂혀 있는 모래사구 방책용 나무를 뽑지는 말자. 걷다 보면 버려진 대나무들이 천지다.

길을 걷다 보니 꽤 긴 거리다. 1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천천히 길을 가다보니 2시간이 다 되어갔다. 7시 반을 넘어가니 서녘 하늘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디쯤 왔냐는 일행의 전화도 계속 왔다. 섭지에서도 계속 바닷가 길로 가라고 제주올레 팜플릿은 적혀 있는데, 우리는 그냥 시멘트 포장길로 해서 섭지코지로 올랐다.



▲ 해가 지고 있다. 섭지에서.



▲ 섭지코지 등대

▲ 저 봐라. 대나무 작대기에 모자는 삐뚤하고 바지는 둘둘말아 걷어 올리고, 얼굴은 맛이 갔네.
 물고기 잡으러 가나????(섭지코지 드라마 셋트장)


 

이로서 제주에서의 둘째 날, 제주올레 첫 번째 길 걷기가 끝났다. 생각 같아서는 두 번째 길도 걷고 세 번째 길도 걷고 싶다. 하지만 내일 들어가는 우도도 기대된다. 이날 내가 걸었던 길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제주에 한걸음 더 다가선 듯하다. 제주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제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11시에 시작한 여행이 8시가 다 되어서 끝났다. 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9시간이 걸렸다. 뜨거운 햇볕을 우습게 본 덕분에 숙소에 들어와 화끈거리는 팔뚝에 화상치료제를 발라야 했다. 지금 어깨의 살갗은 허물을 벗고 있지만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그 길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즐겁기만 하다. 다음에 제주를 갈때는 첫 번째 길을 다시 걷고, 두 번째 길에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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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은 네 번째다. 방문의 횟수만큼 제주도의 즐거움도 배가 되고 있다. 첫 번째 제주도 여행은 대학 3학년 때의 수학여행이다. 일종의 패키지 관광이였는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두 번째 여행은 금성출판사 차원에서 직원 모두와 함께 떠난 여행인데, 한라산 방문이 유일하게 남는 기억이다. 세 번째 여행은 2006년 자전거 전국일주였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서 제주도 일주도로를 달렸다. 날씨가 정말 훌륭했던 것, 그리고 바람이 징하게 불었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이번에 다녀온 제주도 여행은 잘 짜인 자유여행이었다. 트래킹과 우도 일주가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 완도여객터미널. 색다른 여행을 생각한다면, 완도로 가서 제주로 가는 배를 타자.


게다가 참 저렴하게 다녀온 여행이다. 한사람당 26만원이 채 안 되는 비용으로 3박5일의 제주도와 우도를 돌아다녔으니 나름 성공한 여행이다. 여행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교통과 숙박을 아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포-제주 간 왕복항공권의 가격이 유류할증료 포함 20만원에 육박하는 성수기, 4명이니까 약 80만원이다. 우리는 항공편 대신 완도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고 완도에서 제주까지 배편을 이용했다. 4명이서 차량과 배편으로 제주도를 찾아갈 경우(차량은 가스 차량이었다), 비용은 대략 350,000원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비행기 값의 절반으로 제주도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김포에서 제주도까지 비행기로 30분이면 가능한 거리를 차량과 배편을 이동할 경우 최대 11시간(서울-완도 6시간, 완도-제주 5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밤 11시에 안국역 근처에서 만났다. 서울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보니 그나마 모이기 쉬운 장소로 택했던 것이다. 차량은 내가 준비했다. 가스차량으로 좀 오래된 SM520이다(아직 10만km도 뛰지 않았다). 면허증이 있는 세 명이서 번갈아 운전하기로 했다. 먼저 목포까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2번국도를 이용해 완도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첫배는 7시30분에 있다. 이 배를 놓친다면 오후 3시 이후에 배가 뜨므로 반드시 이 배를 잡아야 한다.

번갈아 운전한 끝에 우리는 6시를 조금 넘겨 완도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 도로가에 차를 주차하고 터미널에 들어갔다. 완도에서 제주도를 가는 배는 하루 세편있으며 각각 오전 7:30분(한일카훼리 3호, 3등실 요금 23,350원) / 오전 10시 40분(한알카훼리2호, 2등객실 23,350원) / 오후 3시 30분(한일카훼리 1호, 2등객실 23,350원), 이렇게 마련되어 있다. 시간은 한일카훼리 3호가 5시간 정도 걸리고 나머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한일카훼리 3호에 탑승했다. 위 정보는 성수기 기준이며 2008년 7월 말 요금이므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꼭 전화로 확인하고 가는 게 좋겠다.




▲ 승선개찰권. 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편의 3등식 객실 요금은 23,350원. 성수기라 할증이 붙었다.



▲ 해상의 짙은 안개 때문에 배는 30분 이상 늦게 출발했다. 배편으로 제주를 찾는다면 날씨에 주의하자.

 

▲ 제주-완도를 오가는 한일카훼리 3호선의 2등객실과 휴게실 모습.
휴게실에서는 맥주와 음료, 컵라면과 스낵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 3등객실에서 피곤하고 지루한 일행들. 대부분 잠을 청해보지만 깊은 잠을 자기는 어려웠다.


▲ 3등실 풍경. 잠이 장땡이다. 악조건에서 잠을 청하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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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항에 도착할 즈음. 그래도 한컷 찍어야... ^^

한일카훼리 3호는 추자도를 경유해 제주도를 간다. 시간 역시 5시간 정도로 많이 소요되는 편이다. 내부 시설 역시 1호에 비하면 꽤 열악하다. 게다가 3등객실 다운 소란함도 여행의 피곤을 부채질해 준다. 배가 작은 편이라 요동도 심하며 엔진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꽤 심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해상에 낀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시간도 늦어졌다. 이 짙은 안개를 뚫고 무사히 제주도를 갈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일찍 배에 탄 덕분에 구석자리를 잡아 우리만의 공간을 확보했지만 추자도에서 다시 많은 손님들이 배에 올라타 객실은 만원이 됐다. 대부분은 잠을 청하지만, 한쪽에서는 화투판도 벌어지는가 하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는데, 워낙에 엔진 소리가 커서 제각각 고함을 지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지나자 안개는 옅어졌다. 제주항에 도착해 렌트카를 섭외하기 위해 미리 알아본 렌트카 회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계획은 3일 중 하루는 트래킹을 하는 만큼 48시간만 이용, 15만 원 정도를 예상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참석하겠다는 수진선배의 일정이 바뀌어서 렌트카를 72시간 동안 대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참고로 완도에서 제주로 들어올 때 중형차를 배에 싣는다면 왕복 22만 원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제주도에서 렌트카를 72시간 대여할 경우 중형차의 경우 약 25만원이 넘을 테니, 이런 경우에는 배편에 차를 싣고 오는 게 좋았다.

좌충우돌 끝에 차를 렌트했다. 미리 렌트 예약을 하지 않아서 좋은 차를 빌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내려올 때 몰고 왔던 차량과 똑같은 SM520을 렌트해 몰고 다녀야 했다. 차를 렌트 한 다음에 찾아간 곳은 제주에 있는 대형마트, 장보기다. 서영선배가 잘 준비해서 메모한 대로 장을 보았다. 장도 간소하게 보았다. 술과 김치, 생수와 국거리와 카레 등등 돌아보니 장도 참 소박하게 보았다.

장보기까지 마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해결하니 2시가 넘었다. 서귀포에 있는 한국콘도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서 해수욕장 한군데 정도 들렸다가 가기로 했다. 먼저 들린 곳은 협재 해수욕장.

▲ 자, 나도 한컷 찍어보자. 표정 좋고~




▲ 나름대로 하이-로우 컷.


▲ 이번에는 반대로 로우-하이 컷.




▲ 작품 제목은 하늘을 나는 거북이. 우리의 제주도 바닷가 의식 중 하나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 현상이는 당최 바닷가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산속에 사는 놈이라 그런지 바다와는 친하지 않나 보다.




▲ 협재 해수욕장의 모래가 좋아서인지 여기저기 아이들의 모래성 놀이가 자주 눈에 띄었다.

 


협재 해수욕장은 모레가 가늘고 은빛이 난다. 게다가 수심이 낮고 완만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이 많았다. 제주도의 해안에 첫발을 담근다는 의식을 치렀다. 의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저 우리끼리 정말 제주도에 왔다는 기쁨을 누렸다. 한쪽 넓은 바위 여기저기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줍고 있다. 아마도 조개를 줍고 있을까. 꼬맹이들은 모래사장에서 마음껏 모래놀이를 한다. 집 근처였다면 한소리 들었겠지만 여기는 제주도의 바닷가다. 아이들은 신났다.

아이들만 신이 났을까.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바닷물을 밟으며 한참을 들어가도 어른 허리까지 들어가려면 한참이다. 물이 빠지면 저 멀리 비양도까지 헤엄쳐 가는 담대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좀 과장된 말이다.

날이 흐리고 안개가 끼어서 비양도의 모습도 흐릿하다. 해가 서녘하늘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게 보일 때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발가락 틈에 끼인 모래가 서먹서먹하지만, 제주데 있는 동안은 익숙해져야 할 것들이겠지.

▲ 제주의 어느 항구였다. 환국이의 꿈이 무산됐던 곳이다.

 

▲ 문제의 지저분한 말.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정말 말을 많이 보았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만지지 말자. 손이 더러워지는 것이 상관없다면 괜찮지만...

 



▲ 차를 타고 가면서 서쪽 바다로 일몰의 기운이 퍼질 즈음, 현무암 해안가 바위틈에서 일몰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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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환국이가 말한 곳을 찾아 헤매는데 결국 못 찾았다. 밀물 때 물이 들어차게 해놓고 썰물 때 물을 가두었다가 조금씩 빼서 갇힌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곳이라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 얘기로는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환국이의 인터넷 정보가 어긋나고 말았다. 다시 콘도로 가는 길에서 방목하고 있는 말들이 보이고 경치가 수려한 곳이 나와서 차를 세웠다. 말의 고삐에는 줄이 메어져 있었는데, 묶여 있지 않아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꽤 목가적이다. 서영선배가 조심스럽게 말에 다가서는데, 오히려 말이 먼저 사람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기겁을 한 서영선배가 도망가는데, 성큼성큼 쫓아오는 말이 신기하다. 내가 앞에 서서 말쪽으로 손을 뻗으니 이 녀석이 이제 나에게 다가온다. 아주 천천히 말의 콧잔등을 쓸어주니 가만히 서 있다. 조금씩 옆으로 다가서 말의 볼도 쓰다듬어 보고 말머리와 갈기도 만져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손이 무척이나 지저분해졌다는 것, 바닷바람과 먼지를 옴팡 뒤집어 쓴 채 목욕도 시키지 않아서인지 말을 좀 쓰다듬었다고 손에 시꺼먼 먼지가 묻었다.

콘도에 들어오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밤새 운전해서 오고 배를 다섯 시간이나 타서 그랬는지, 다들 피곤해 보였다. 항공편으로 제주에 온 수진선배를 맞이하러 현상이가 차를 가지고 나간 사이에, 서영선배가 맛있는 된장찌개를 준비했고, 나는 환국이를 도와 카레를 마련했다. 첫날 상차림은 간소하게 준비했다. 나와 서영, 수진 선배, 환국이와 현상이 이렇게 다섯 명이 제주의 밤하늘 아래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피곤하다지만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술상은 이어졌다. 설레는 제주의 첫날밤은 그렇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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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주도 여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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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주도 섭지코지

철이 덜 든거죠. 네, 그만 또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제주도네요. 후배의 꼬심에 넘어간 거라 변명해 보지만, 사실 좋습니다. 제가 좋아 가는 거죠. 돈좀 깨지겠네요. 놀면서 돈만 까먹고 앉아 있군요. 이런...

가장 최근에 제주를 다녀온게 2006년 자전거 전국일주 중에 방문한 거네요. 당시는 일주도로를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구경했는데, 좀 아쉽지만 제주의 멋진 가을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지요. 아무튼 설레네요.

이번에는 멋진 트래킹 코스도 넣어봤어요. 관심있는 분은 ‘제주올레’라는 단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세요.(아니면 여기 클릭) 이미 많은 이들이 다녀오고 여행기를 올렸더군요. 7코스까지 개발되었다고는 하는데, 아직은 1, 2코스만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번에는 1코스만 천천히 걸어보려고요.

또 다른 하루는 온전히 우도에서 보낼 작정입니다. 물론 날씨가 허락하는 조건에서죠. 제주도를 가서 우도를 가지 않으면 제주도를 다녀온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죠. 그만큼 우도는 뛰어난 절경과 풍경을 선사한다고 해서 꼭 넣자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이번에는 우도만 하루 잡아보았습니다. 어떤 곳일까요. 기대됩니다.

남은 하루는 아직 미정이네요. 마지막날은 사람들과 상의해 봐서 결정하려고요. 아, 이번에 같이 가는 사람은 현상군과 환국씨, 그리고 서영선배, 나 이렇게 넷입니다. 이 오묘한 조합의 4인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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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컴퓨터는 인터넷과 문서작성 등 아주 간단한 프로그램만 돌리고 있는데, 요 며칠 한글이 맛이 갔다. 궁여지책이라고 그동안 MS워드라도 써 봤지만, 워낙 손에 익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한글 프로그램을 받았는데 그 친구 말로는 회사에서도 잘 깔아서 쓰고 있는 것이라면서, 아마도 아무 문제없이 잘 될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더라.

문제는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았던 프로그램 까는게 이렇게 새벽까지 이어질 줄이야. 잘 깔리던 프로그램이 막판에 오류메시지가 뜨면서 모두 취소해 버리고 끝나버린다. CD를 빌려준 친구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단다. 그저 “그거 우리집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깔렸어.”라는 대답만 들었다. 이놈의 컴퓨터가 문제다.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현상 앞에 보잘것없는 나의 컴퓨터 지식은 석기시대로 후퇴하고 만다. 인터넷을 뒤져서 그 답을 찾아보려 하는데도 이거는 바위벽에 대고 열려라 들깨, 깻잎, 고추장, 된장 외치는 격이니, 딱히 '참깨'라고 하는 답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좌절 모드로 번번이 재부팅 되는 내 머릿속을 포맷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래도 이거 없으면 굶어 죽는다는 각오로 여기저기 모두 찔러 본다. 인터넷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심정이야 오죽했겠나.

"한글이 안 깔려요."
"한글이 깔리지 않아요."
"한글 프로그램 깔리지 않는 경우"
"한글 깔리지 않"

이런 저런 문구들을 포탈의 검색창에 껴 넣어보아도 덥석덥석 잘 잡아먹기만 하지, 뱉어 놓는 것들은 영 시원치 않다. 좀더 상큼한 검색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생각대로 하고 싶어도 생각대로 떠오르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

혹시나 해서 재부팅을 하고 다시 한글을 깔아 보아도 아까와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문득 마지막 메시지에서 힌트를 얻었다.

“키를 열 수 없습니다”

벼라별 검색들이 다 나온다. 자기네 집 문이 이상하다는 얘기부터 중학생들의 자기 키가 크지 않아 고민이라는 얘기까지... 스크롤바를 쭉 내려 보니 간간히 프로그램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몇 개 열어보니... 그럼 그렇지, 역시 레지스트리 문제다. 개념도 이론도 전혀 알지 못하는 레지스트리...

시작->redgedit 입력-> 오류가 뜬 장소 찾아감

오류가 뜬 장소란, 그 오류창에 예를들어 HKEY_LOCAL_MACHINE\SOFTWARE\

하면서 쭉 뜨는데요, 하위 폴더까지 찾아가실 필요 없이 HKEY_LOCAL만 보이시면 됩니다.

오류가 뜬 장소(HKEY_LOCAL) 클릭-> 폴더에서 오른쪽 버튼누르시고->사용권한->고급->"부모가 개체가 가진..." 체크-> 확인->사용자권한창(아래참조)

 

뭐 이런 메시지가 뜨길레, 따라 했는데, “부모가 개체가 가진...” 뭐 이런 말도 컴퓨터에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그렇게 체크박스에 체크까지 하고 완료한 다음 다시 한글을 깔아 보았다. 문제 해결. 이렇게 간단한 것을!

아무튼 오늘 하루는 이 컴퓨터와 씨름 하느라 날 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포스팅을 마무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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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확실하던 것들도 점점 희미해져 가지.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살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라며 제딴엔 포용력 있게(?) 돌려 생각해 보는 제주도 생겼어.  좋게 말하면 겸손해지는 거지만, 더럽게 말하면 좀 비겁해지는 거였지.  적응? 좋지, 아주 좋은 말이야. 반항하고 개기는 후배들에겐 그런 말을 하곤 했었어. "적.응.하.라.고!!!' 그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길들여졌던 우리 스스로가 말야. 

서른도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치기 어린 의혹으로 삶을 채우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줄 알면서도 그저 세상 돌아가는 것에 쉽게 눈돌릴 수가 없는 내 안의 어린 마음이 살포시 고개를 들더라. 그 마음 지긋이 눌러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말/ 곤혹스럽다.

오늘도 사람들과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촛불 이야기, 독도 이야기, 역사 이야기, 지금의 현실과 우리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주제를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만 내지르고만 내 그 허접한 말들에 내 스스로 치여 꾸물거리고 있는 이 밤. 비는 참 잘도 오지. 요놈의 입-방-정... 명박아~ 나 좀 조용히 살고 싶다...

한때 자칭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아이디를 참 좋아했더랬고, 그것을 싸이 미니홈피 제목으로, 네이버 블로그 제목으로 썼던 적이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디에서 흘러들어온 물이라도 바다로 흘러가는 걸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강물처럼 꾸준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었을 거다.

하지만 강물은 그저 잔잔하게만 흐르지는 않잖아.  세상의 모든 도시는 흐르던 강물이 범람해서 만들어진 옥토 위에 세워졌어. 강물은 그렇게 도시를 만들었고, 도시는 강의 범람 위에 세워졌던 거지.

오래전 시골에서는 동네 개천이 물난리가 나서 넘친다 싶으면 나와서 막걸리를 먹으며 팔자좋은 구경을 했다지. 한해 농사야 망친다 싶어도 다음해 농사부터는 풍작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잖아. 흐르는 강물은 가끔 땅을 욕심내고, 그 욕심이 땅을 더 비옥하게 한다는 거는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촛불의 민심이 강둑을 넘어 범람하고 있는 거야. 가둬두고 막아두고 통제하려 했지만 이미 어찌할 수 없을만큼 넘쳐 흐르고 있어. 지금 좀 불편하고 어렵고 힘들지만, 그 촛불 덕분에 우리는 다음 세상을 더 살만한 세상이 될 거라 기대하는 거잖아. 이거 아니었으면 이민 갔을 사람 많을걸? 하하하

난 그래서 지금의 촛불이 참 고맙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안해. 도덕을 팔아 양식을 챙기는 세상에 한몫했던 사람으로서, 스스로 참회의 촛불을 들 용기 조차 없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어두운 거리를 밝힌 촛불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거야. 촛불은 더러운 세상에 깨끗한 한줄기 빛으로 고귀한 희생의 넋으로 우리에게 왔어.

오늘따라 이재무 시인의 <한강>이라는 시가 참 나에게 와 닿는다.





한강 

- 이재무-


강물은 이제 범람을 모른다
좌절한 좌파처럼 추억의 한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크게 울지 않는다
내면 다스리는 자제력 갖게 된 이후
그의 표정은 늘 한결같다
그의 성난 울음 여러 번 세상 크게 들었다
놓은 적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약발 떨어진 신화
그의 분노 이제 더 이상 저 두껍고 높은
시멘트 둑 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오늘 권태의 얼굴을 하고 높낮이 없이
저렇듯 고요한 평상심, 일정한 보폭 옮기고 있다
누구도 그에게서 지혜를 읽지 않는다
손, 발톱 빠지고 부숭부숭 부은 얼굴
신음만 깊어가는, 우리에 갖힌 짐승 마주 대하며
늦은 밤 강변에 나온 불면의 사내
연민, 회환도 없이 가래 뱉고 침을 뱉는다
생활은 거듭 정직한 자를 울린다
어제의 광명 몇 줄 장식적 수사로 남아 있을 뿐
누구의 가슴 뛰게 하지 못한다 그 어떤 징후,
예감도 없이 강물은 흐르고 꿈도 없이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찬란한 야경 품에 안은 강물은
저를 감추지 못하고
다만, 제도의 모범생이 되어 순응의 시간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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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17일)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을 다녀왔다.
창덕궁은 목요일만 자유관람이 가능하며 다른 날은 제한관람이다.
창덕궁의 진정한 멋을 느끼면서 천천히 즐기고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목요일 자유관람을 추천한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대인 15000원) 4시간 동안
즐거운 고궁산책에 상응하는 행복을 줄 것이다.



낙선재. 평일에는 특별관람 시간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는 곳.
1989년까지 영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가 이곳에서 생활했던 곳이다.
집이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어야 생기가 있는 것이라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다른 궁과 달리 낙선재가 가지는 멋은 그런 사람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낙선재에 오면 항상 마루에 한참동안 앉아서
나무의 결도 만져보고 한지문을 통해 전해져 오는 바람도 느껴본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처마밑에 있다보면 느껴지는 여름 향기가
이곳에 잔향처럼 퍼져있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인접해 있다. 저 문은 창경궁과 연결되어 있는 문으로 보인다.




원추리. 어디가나 이꽃이 한창이다.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본 야생의 원추리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래도 참 어여쁜 꽃이다.
우리 동네 공원(고척근린공원)에도 이 원추리가 기다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더랬다.  


창덕궁의 아름다운 연못, 부용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의 원리를 연못에 구현하고 있다.
부용정 맞은 편 언덕에 자리잡은 주합루는 정조 즉위년에 지어졌으며 1층은 규장각이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
어수문이라고 하는 데 물과 물고기는 곧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허리마저 휘어진 채 문을 지키고 있다.




한여름이다 보니 여기저기 풀이 무성하다.


아래 사진은 연경당에서 있었던 공연 사진이다.
연경당은 원래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이 집 역시 궁궐 안에 있지만 낙선재처럼 단청이 없는 게 특징이다.

매주 목요일 이곳에서 공연이 열린다.
유감스럽지만 이날이 목요일 정기공연으로는 마지막 날이었다.
더위가 가시면 새로 한다고 하니 가을에나 다시 열릴까.



궁중음악을 연주했다.



박적무(?)라고 했던가. 역시 궁중무용이다.




이생강 선생님의 대금산조. 좀처럼 듣기 어려운 대금 산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옥류천. 물이 많이 흘렀으면 했는데, 물이 적어서 아쉬웠다.
옥류천 역시 특별관람 지역이라서 평일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 중의 하나다.
옥류천을 나와 나가는 길 역시 울창한 창덕궁의 숲을 지나는 길이라 좋다.
서울 한가운데 이런 고즈넉한 숲이 있고 그곳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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