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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확실하던 것들도 점점 희미해져 가지.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살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라며 제딴엔 포용력 있게(?) 돌려 생각해 보는 제주도 생겼어.  좋게 말하면 겸손해지는 거지만, 더럽게 말하면 좀 비겁해지는 거였지.  적응? 좋지, 아주 좋은 말이야. 반항하고 개기는 후배들에겐 그런 말을 하곤 했었어. "적.응.하.라.고!!!' 그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길들여졌던 우리 스스로가 말야. 

서른도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치기 어린 의혹으로 삶을 채우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줄 알면서도 그저 세상 돌아가는 것에 쉽게 눈돌릴 수가 없는 내 안의 어린 마음이 살포시 고개를 들더라. 그 마음 지긋이 눌러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말/ 곤혹스럽다.

오늘도 사람들과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촛불 이야기, 독도 이야기, 역사 이야기, 지금의 현실과 우리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주제를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만 내지르고만 내 그 허접한 말들에 내 스스로 치여 꾸물거리고 있는 이 밤. 비는 참 잘도 오지. 요놈의 입-방-정... 명박아~ 나 좀 조용히 살고 싶다...

한때 자칭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아이디를 참 좋아했더랬고, 그것을 싸이 미니홈피 제목으로, 네이버 블로그 제목으로 썼던 적이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디에서 흘러들어온 물이라도 바다로 흘러가는 걸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강물처럼 꾸준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었을 거다.

하지만 강물은 그저 잔잔하게만 흐르지는 않잖아.  세상의 모든 도시는 흐르던 강물이 범람해서 만들어진 옥토 위에 세워졌어. 강물은 그렇게 도시를 만들었고, 도시는 강의 범람 위에 세워졌던 거지.

오래전 시골에서는 동네 개천이 물난리가 나서 넘친다 싶으면 나와서 막걸리를 먹으며 팔자좋은 구경을 했다지. 한해 농사야 망친다 싶어도 다음해 농사부터는 풍작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잖아. 흐르는 강물은 가끔 땅을 욕심내고, 그 욕심이 땅을 더 비옥하게 한다는 거는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촛불의 민심이 강둑을 넘어 범람하고 있는 거야. 가둬두고 막아두고 통제하려 했지만 이미 어찌할 수 없을만큼 넘쳐 흐르고 있어. 지금 좀 불편하고 어렵고 힘들지만, 그 촛불 덕분에 우리는 다음 세상을 더 살만한 세상이 될 거라 기대하는 거잖아. 이거 아니었으면 이민 갔을 사람 많을걸? 하하하

난 그래서 지금의 촛불이 참 고맙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안해. 도덕을 팔아 양식을 챙기는 세상에 한몫했던 사람으로서, 스스로 참회의 촛불을 들 용기 조차 없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어두운 거리를 밝힌 촛불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거야. 촛불은 더러운 세상에 깨끗한 한줄기 빛으로 고귀한 희생의 넋으로 우리에게 왔어.

오늘따라 이재무 시인의 <한강>이라는 시가 참 나에게 와 닿는다.





한강 

- 이재무-


강물은 이제 범람을 모른다
좌절한 좌파처럼 추억의 한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크게 울지 않는다
내면 다스리는 자제력 갖게 된 이후
그의 표정은 늘 한결같다
그의 성난 울음 여러 번 세상 크게 들었다
놓은 적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약발 떨어진 신화
그의 분노 이제 더 이상 저 두껍고 높은
시멘트 둑 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오늘 권태의 얼굴을 하고 높낮이 없이
저렇듯 고요한 평상심, 일정한 보폭 옮기고 있다
누구도 그에게서 지혜를 읽지 않는다
손, 발톱 빠지고 부숭부숭 부은 얼굴
신음만 깊어가는, 우리에 갖힌 짐승 마주 대하며
늦은 밤 강변에 나온 불면의 사내
연민, 회환도 없이 가래 뱉고 침을 뱉는다
생활은 거듭 정직한 자를 울린다
어제의 광명 몇 줄 장식적 수사로 남아 있을 뿐
누구의 가슴 뛰게 하지 못한다 그 어떤 징후,
예감도 없이 강물은 흐르고 꿈도 없이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찬란한 야경 품에 안은 강물은
저를 감추지 못하고
다만, 제도의 모범생이 되어 순응의 시간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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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17일)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을 다녀왔다.
창덕궁은 목요일만 자유관람이 가능하며 다른 날은 제한관람이다.
창덕궁의 진정한 멋을 느끼면서 천천히 즐기고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목요일 자유관람을 추천한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대인 15000원) 4시간 동안
즐거운 고궁산책에 상응하는 행복을 줄 것이다.



낙선재. 평일에는 특별관람 시간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는 곳.
1989년까지 영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가 이곳에서 생활했던 곳이다.
집이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어야 생기가 있는 것이라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다른 궁과 달리 낙선재가 가지는 멋은 그런 사람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낙선재에 오면 항상 마루에 한참동안 앉아서
나무의 결도 만져보고 한지문을 통해 전해져 오는 바람도 느껴본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처마밑에 있다보면 느껴지는 여름 향기가
이곳에 잔향처럼 퍼져있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인접해 있다. 저 문은 창경궁과 연결되어 있는 문으로 보인다.




원추리. 어디가나 이꽃이 한창이다.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본 야생의 원추리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래도 참 어여쁜 꽃이다.
우리 동네 공원(고척근린공원)에도 이 원추리가 기다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더랬다.  


창덕궁의 아름다운 연못, 부용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의 원리를 연못에 구현하고 있다.
부용정 맞은 편 언덕에 자리잡은 주합루는 정조 즉위년에 지어졌으며 1층은 규장각이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
어수문이라고 하는 데 물과 물고기는 곧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허리마저 휘어진 채 문을 지키고 있다.




한여름이다 보니 여기저기 풀이 무성하다.


아래 사진은 연경당에서 있었던 공연 사진이다.
연경당은 원래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이 집 역시 궁궐 안에 있지만 낙선재처럼 단청이 없는 게 특징이다.

매주 목요일 이곳에서 공연이 열린다.
유감스럽지만 이날이 목요일 정기공연으로는 마지막 날이었다.
더위가 가시면 새로 한다고 하니 가을에나 다시 열릴까.



궁중음악을 연주했다.



박적무(?)라고 했던가. 역시 궁중무용이다.




이생강 선생님의 대금산조. 좀처럼 듣기 어려운 대금 산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옥류천. 물이 많이 흘렀으면 했는데, 물이 적어서 아쉬웠다.
옥류천 역시 특별관람 지역이라서 평일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 중의 하나다.
옥류천을 나와 나가는 길 역시 울창한 창덕궁의 숲을 지나는 길이라 좋다.
서울 한가운데 이런 고즈넉한 숲이 있고 그곳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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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왔다. 비 오는 소리가 좋아 창을 열었다. 차가운 창살이 창 앞에 가지런히 서있다. 지금 당신의 집 창문은 어떤가. 아마도 당신이 도시 생활을 하고 있다면, 특히 서울에 살고 있다면, 아마도 절반 이상은 쇠창살 창문을 보고 있을 것이다. 열린 창으로 보여야 할 푸르른 하늘이 창살로 쪼개져 있을 거다.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가늠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우리를 스스로 속박하고 있다. 스스로 눈을 가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근대 역사에서 결코 함께 설 수 없는 이웃이 되어 버린 두 나라. 영화 <레몬트리>는 그 두 나라의 경계에 있는 레몬 농장의 팔레스타인 여인 살마와 그 옆으로 새로 이사온 이스라엘 국방장관 나본과 그의 부인 미라의 이야기다.

 

셀마의 레몬농장 옆으로 이사온 국방장관 때문에 셀마의 농장과 미라의 집 경계에는 철책선이 세워지고, 높다란 초소가 만들어졌으며, 검은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들이 24시간 경호를 서고 있다. 게다가 최첨단 감시시스템이 집을 빙 둘러싸고 있어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지는 곳이다. 한편 셀마는 그녀의 옆에서 평생 그를 도와온 아버지의 친구와 함께 레몬 농장을 일구고 있다. 셀마에게 레몬농장은 아버지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이고 일찍 남편을 여읜 외로운 삶에 깊은 위안이 되는 곳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장벽을 추진하고 있는 국방장관 나본의 눈에는 레몬농장은 테러리스트가 잠입하기 쉬운 곳에 불과하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고 수류탄이 던져질지 불안한 장소일 뿐이다. 국방장관 부부가 이사온 며칠 뒤 셀마는 지역사령부 사령관 명의로 레몬농장을 없애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영화는 이제 법정으로 간다. 이 과정에서 셀마와 변호사 지아드는 서로에게 깊은 감정을 가진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랍 사회인 팔레스타인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영화는 이스라엘과 싸우는 셀마의 모습 외에도 보수적인 팔레스타인 전통에 고통받는 셀마의 모습도 그려주고 있다.

 

한편 국방장관의 부인 미라는 레몬 농장을 없애야 한다는 결정에 고민한다. 농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어 고통받고 있는 셀마의 모습을 보며 미라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영화는 셀마와 미라가 마주치는 시선에 오랫동안 머무른다. 셀마가 던지는 원망의 시선과 미라의 연민의 시선은 그렇게 교차하지만 접점을 찾지는 못한다. 고작 기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정도였지만, 그것이 기사화되자 곧 취소하는 결정을 내린다.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숨기고 있다. 과연 국방장관이 그렇게 지키고자 한 안전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의 삶과 영혼을 지키는 것은 무엇일까. 이스라엘 출신의 감독이 그려낸 영화 <레몬트리>는 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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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 : 레몬 트리 (2008) 
감독 : 에란 리클리스


출연 :
히암 압바스, 알리 슐리만, 로나 리파즈-미셸, 도론 타보리  더보기


개봉정보 :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 드라마 | 2008.07.10 | 전체관람가 | 106분


예고편 보기 <<<<


뱀발 ----------

영화는 재미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탈만하다.
현재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상영중.
마지막 장면에서 새삼 명박산성이 얼마나 웃긴 짓인지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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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처럼 살아라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9

- 삿갓재대피소 >> 동엽령 >> 송계삼거리 >> 향적봉 >> 무주리조트(약 10.7km)

-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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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뒤에 남는 아쉬움들, 연민, 후회, 집착... 털어버리고 싶었던 감정들이 심장 가장 안쪽에서 비를 맞고 있다. 소나기처럼 그냥 지나가다오. 그저 한바탕 비를 맞고 푹 젖어버리면 더이상 비를 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했다. 이날 예정된 목적지는 향적봉 대피소. 거기서 하룻밤 더 묵고 다음날 빼재로 내려가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날 갈 거리는 짧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다. 배낭에만 우의를 둘러주었다. 다시 신발끈 꾹 메고 길을 나섰다. 이날만큼은 동행이 있다. 함께 삿갓재 대피소에 묵었던 아저씨다. 아저씨는 향적봉까지 가고 거기서 하산하겠다고 했다. 짧은 동행길이지만, 헤어지게 되면 몹시 흔들린다.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타협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어차피 덕유산 향적봉을 찍으면 다 온 거니까. 그리고 괜히 하룻밤을 더 묵는 것보다 그냥 하산하자. 다음에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와 나머지 구간을 계속 가면 되겠지.’

‘아냐, 그래도 처음 계획한대로 가야겠어. 그냥 하루 푹 쉬면 내일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아저씨가 먼저 출발한 다음,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많이 지쳤던 것일까.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니 그 생각은 더욱 강했다. 가만히 있으니 드는 잡생각이다. 일단 걷자. 부지런히 아저씨 뒤를 쫓았다.  

 









 


 

삿갓재 산장을 나오자마자 또 급한 오르막길이다. 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장대비로 바뀔지 알 수 없다. 무룡산에 오르기 전, 먼저 출발했던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우의를 꺼내 배낭을 감싸고 있었다. 무룡산에서 내려서면 순탄한 마루금길이다.  


간간히 비가 쏟아졌다. 기상이 불안정한가 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천둥번개는 멀리서 친다. 9시 20분 동엽령에 도착했다. 넓은 동엽령 지대는 짙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다.



△ 동엽령에서


△ 송계삼거리 이정표




△ 함께 동행한 아저씨


 

△ 왼쪽으로 가는 길이 신풍령 가는 길, 오른쪽은 삿갓재에서 내가 올로온 길.



동엽령에서 백암봉(송계삼거리)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마침내 향적봉이 눈앞이다. 여기서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백두대간길이 아니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쪽으로 가는 길이 백두대간 길이다. 그러나 덕유산 주능선을 타면서 향적봉을 오르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닐까. 대간길을 잠시 미루고 향적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이다. 오전 중에 개인다는 일기예보는 역시 여기 덕유산에서는 통용될 수 없나 보다. 길가에는 간간히 원추리 꽃망울이 길쭉하게 나있다. 햇빛이 나지 않아서인지 보통 때면 활짝 개화를 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을 텐데 날씨가 안 좋아 개화시간이 좀 늦다. 덕유산도 지금 이맘때면 원추리가 한창이다. 귀품 있는 모양새며 도도한 줄기가 꽤나 운치가 있다. 카메라에 담지 못한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 중봉에서

 

백암봉을 지나 제2덕유산이라는 중봉을 넘었다. 잘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는 데 바람이 거세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중봉을 넘어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에 오르기 전 향적봉 대피소에 들렸다. 이곳에서 일단 점심을 해결했다. 덕유산 산장 안의 매점에서는 지리산과 달리 사발면을 판매한다. 햇반과 사발면을 주문하면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나오고 사발면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최소한의 먹을 거리는 충분히 사서 해결할 수 있다. 젖은 신발을 벗도 양말도 대충 씻어서 꾹 짰다. 다시 신으려니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마침 함께 동행했던 아저씨가 새 양말을 꺼내주며 신으라고 하신다. 함께 비바람을 뚫고 왔던 우정의 표시였을까. 너무 감사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발은 젖었어도 양말이라도 갈아 신으니 한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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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다시 향적봉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이곳에서 자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배낭도 산장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향적봉으로 올랐다. 백암봉을 지나 향적봉까지 종종 주목을 만날 수 있었다. 주목은 고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덕유산에도 300~500년된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특히 소백산 정상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관상용으로도 제배되고 있지만 정말 멋진 주목을 보기 위해서는 산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덕유산의 설경이 멋진 이유 중의 하나로 이 주목의 설경도 꼽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말이 따라 붙는 주목의 고아하고 옛스러운 모습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다음에 겨울 덕유산을 오면 반드시 이 주목의 모습을 내 눈안에 담아 볼 것이다.


마침내 향적봉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름이 모든 것을 가려버렸다. 분명 까마득한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구름이 주는 신비함도 이쯤 되면 서운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마침내 덕유산 향적봉까지 왔는데,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 향적봉에서 사진을 찍던 노인 한분과 만났는데, 그분도 오전 중에 날이 개일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올라오셨다고 한다. 이러다가 허탕만 치겠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향적봉은 바로 밑에까지 곤돌라로 편하게 올라올 수가 있어 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을 찾아 온다. 일출이나 일몰 등의 풍경사진이 인기다. 이맘 때쯤에는 원추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노인이 알려주었다.









△ 주목






 

삿갓재에서 이곳까지 동행한 아저씨는 여기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시겠단다. 바람이 많이 불어 뜨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운행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아저씨와 작별하고 다시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왔다. 다시 갈등이 시작됐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신풍령쪽을 탈까. 아니면 좀 무리가 되어도 신풍령으로 지금 출발할까. 그냥 향적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 서울로 올라갈까. 무리를 해서 신풍령(13.1km)까지 간다고 해도 밤늦게나 떨어질 테니 서울 올라가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대피소에서 하루를 쉬려고 하니 시간이 아깝다. 결국 난 다시 배낭을 메고 향적봉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하산을 해 오늘 안으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남은 구간이 아쉽긴 하지만 향적봉에 왔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백두대간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했다.

 

향적봉에서 약 30분 정도 내려오면 곤돌라 승강장이 나온다. 10m 앞도 안보이는 구름 때문에 승강장을 찾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승강장을 만나니 반갑다. 편도 7000원의 표를 끊고 입구에 서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곤돌라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나의 곤돌라를 골라 올라타는데 승객은 나 하나다. 서서히 산을 내려가는 곤돌라 안에서 온 몸의 힘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으로 굳어진 힘이었을 거다. 지상에 가까워올수록 구름은 걷히고 맑은 대지가 나타났다. 산 아랫동네는 빗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 오른쪽이 내가 타고온 곤돌라. 왼쪽의 리프트는 운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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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무주리조트 웰컴센터에서 서울 잠실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에 있으며 요금은 15000원이라고 한다. 가격도 싸고 바로 이곳에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남아서 웰컴센터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충 머리와 얼굴 팔 다리도 씻었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보니 가관이다. 염소수염은 길게 자라 있고, 머리는 더벅머리를 하고 있는데다,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으니 산도적이 따로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중간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악천후 속에서도 이렇게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나의 행운이다.

 

멋진 날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혼자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입가에서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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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재 노을에 기대어 서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8

- 육십령 >> 할미봉 >> 장수덕유산 >> 남덕유산 >> 삿갓재대피소(11.9km)

- 2008.07.02.




아침부터 안개가 심상치 않다. 강수확률은 30%. 비가 올까? 완전히 마른 신발을 신어봤던 게 언제였더라. 수염을 자른 게 언제였더라. 입고 있는 옷도 매일 똑같다. 다행히 매일 세탁을 해서 입지만 물세탁만 한 거라서 냄새도 좀 난다. 머리카락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자라고 있다. 손톱의 때는 양호하다지만 끼고 있는 장갑에서는 퀴퀴한 땀내가 진동을 한다. 행색만 보면 산사람 그대로다. 도시에 나간다면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을 거다. 이렇게 이틀은 더 가야 한다. 여행이 끝난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5시, 식당에서 차려준 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하는데 촛불집회 관련 뉴스가 나왔다. 주인할머니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 왜 저럴까라며 혀를 찼다. 단순히 안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드렸다.


“할머니, 옛날 어르신들도 사람이 먹는 소고기의 국물하나라도 소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미국소는 육식을 한단 말이에요. 게다가 안 먹는다고 안 먹을 수가 없는 게 소잖아요. 어떻게든 우리 식탁에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설명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 정서탓일까. 세상과 떨어져 여행하겠다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세상 소식을 접하고 있다. 몇 가지 간편요리를 사려고 보았는데, 대부분 유통기한을 훨씬 넘었다. 씁쓸했다. 결국 라면만 2개 사 넣었다.


육십령고개로 다시 올라선 시간은 6시. 고갯마루는 안개로 10m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량 소통이 거의 없어 한적하고 널찍한 도로를 건너니 기분이 묘하다. 여기는 선계와 세속의 경계선일까.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다시 산등성이로 오르는 급경사가 보인다. 다시 백두대간이 시작됐다.


▲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본 육십령 식당. 저 트럭 뒤에 육십령 식당이 있다.


▲ 육십령 고갯마루. 전라북도 표지판 뒤에서 백두대간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할미봉까지는 단단한 암봉이다. 암봉이 단단하지 않은 게 어디있겠냐만, 그만큼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밧줄이 매달려 있는데 만일 밧줄이 없다면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엄두를 내기가 어려울 난코스다. 스틱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만일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타는 사람이라면 스틱은 배낭에 접어두는 게 좋다. 그리고 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동안 자칫 딴생각을 하거나 허투루 발을 딛는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암봉을 간신히 지나고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기어이 한바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행히 스틱을 잘 잡아서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지만 스틱의 끄트머리 부분이 살짝 휘어졌다. 그러나 이는 다음에 올 더 큰 문제의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아찔한 암봉을 오르고 내린 다음에서야 내 배낭에 물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 한통은 암봉에서 떨어져버렸나 싶었는데 예비 물통마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식당에서 물을 다시 채우고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몇마디 나누다가 물통을 깜빡 잊은 것이다. 아마도 식당 테이블에는 꽉 채워진 물통 두개가 머쓱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육십령에서 2시간 가까이 걸어온 길이다. 게다가 할미봉이라는 두 번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암봉을 넘어왔다. 그리고 앞으로 3시간 가까이 가야 샘이 있다. 둘 중의 하나다. 다시 1시간 반을 걸쳐 할미봉을 넘어 육십령에 가서 물통을 찾아오던가, 3시간을 더 참고 장수덕유산까지 가던가.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다시 할미봉을 넘고 싶지도 않고, 물통 때문에 왕복 3시간의 체력과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결국 장수덕유산으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갈증은 정말 지독했다. 그럴 때면 나무들에 맺힌 물방울들로 갈증을 채웠다. 나뭇잎 중에는 그래도 침엽수 종류이면서 잎이 넓은 게 좋았다. 활엽수 쪽은 굉장히 까칠하고 맛이 이상한데, 참나무류의 나뭇잎들은 물방울도 잘 머금고 있고 나뭇잎도 부드러워 핥기 좋았다. 소나무 잎들도 제법 물방울이 알알이 맺혀 있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지기 때문에 마시기 힘들다. 그렇다해도 가뭄에 물 한 바가지에 불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증이 너무 심해 바위틈에 고인 물이라도 있을까 싶어 살펴보았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물은 마실 물이 못된다. 뜨거운 한여름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죽었을 것이다.

공기는 더 축축해졌다. 금방이라도 비를 한바탕 쏟아 부을 기세다. 차라리 한바탕 쏟아진다면 컵이라도 대놓고 있다가 마실 참인데, 오진 않았다. 할미봉을 넘어 교육원삼거리까지 1시간 20여분의 길은 평탄한 편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장수덕유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입술이 바짝 말라가면서 장수덕유산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이정표가 샘터(참샘)을 가리키는 게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바로 내리막길을 타고 갔다. 150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그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내리막길이지만 바위들에는 이끼가 많이 껴있고 너덜지대를 지나는 곳에는 길이 뚜렷하지 않아 한동안 해매기도 했다.
마침내 작은 참샘을 찾았고 거기에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가 반갑다.

하지만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라 고여 있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물을 떠서 자세히 보니 1mm도 안되는 유충도 보였다.
급하지 않다면 절대 추천하고 싶은 물은 아니다. 샘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수질표시도 없다. 그런 물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은 건 내 위장의 위대함이다. 이곳에서 육십령 매점에서 구한 찹쌀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물통이 없어서 김을 넣었던 반찬통에 물을 담았다. 김가루가 둥둥 떠다니고 약간의 소금도 남아있던데다 기름기도 있지만 물 없이 가는 것보다 얼마나 훌륭한가.



▲ 장수덕유산에서 찍은 사진. 10m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이 가득했다. 


 

물을 마시니 다시 장수덕유산으로 올라오는 길은 가뿐하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계속 가니 넓은 안부가 나온다. 장수덕유산 쪽의 조망이 남덕유산보다 좋다고 하는데, 구름 때문에 10m 앞도 가물가물하다. 바람도 솔찬히 불기 시작했다. 장수덕유산을 막 벗어나니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잠깐 머물다가 가는 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이어 천둥번개까지 동반했다. 머리 위에서 울어대는 천둥소리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이날은 정말 산전수전 다 겪는 날이다. 물이 없어 고생하더니 물(비)이 넘쳐 또 고생이다. 남덕유산 정상부분은 암봉에 훤하게 열려 있어서 번개에 노출될 수 있었다. 결국 남덕유산은 옆으로 질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덕유산을 옆으로 비껴가면 이후부터는 또 한참을 내려간다. 큰 산이라서 그런지 오르고 내리는 부침이 심하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재까지는 40여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계단에 쭈그려 앉아 젖은 담배를 물고 있으려니 내가 생각해도 몰골이 가관이 아니다. 온몸은 흠뻑 젖어버렸고 고지대이다 보니 금세 체온이 떨어졌다.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저체온으로 지치겠다 싶어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쉬는 시간도 편하게 못 쉬는 상황이다. 비가 오니 개구리와 두꺼비가 길바닥에서 놀고 있다.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자 두꺼비 한 마리가 언덕으로 오르려고 바둥대는 모습이 재밌다. 빗속에서 지쳐 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참 신비롭다.


월성재에서 다시 삿갓봉으로 치고 올라갔다. 역시 고개를 들지 못 하고 땅바닥만 보면서 오기로 걸었다. 금방 나올 것 같은 삿갓봉은 굽이굽이 고갯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오고 천둥과 번개는 머리 위에서 위협사격을 가했다. 삿갓봉을 오르는 일도 위함하기 짝이 없다. 우회길이 있을까 싶어 지도를 보니 아주 작게 빗금이 나있다. 있다면 다행인데, 없다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삿갓봉에 오르기 직전에 옆으로 난 샛길이 나타났다. 비교적 뚜렷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삿갓재 대피소에 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계속되는 내리막길. 언제나 그렇지만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만큼 어렵다. 숨쉬기는 편하지만 무릎과 발목에 느껴지는 중압감은 오르막보다 최소한 1.5배만큼 느껴졌다.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대피소가 나타났다.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서 삿갓재 산장의 매점문을 두드렸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아저씨 한분이 먼저 와 있었다. 산장에는 직원 외에 그 아저씨와 나 단 둘이 있었다.


▲ 삿갓재에서 바라본 조망. 나무들 때문에 그다지 좋지는 않다.


▲ 삿갓재 대피소 앞에서.


▲ 구름으로 살짝 가려진 곳 너머로 삿갓봉이 있다.

▲ 구름들이 낮게 깔려 있고, 그 위로 하늘 한 구석은 비교적 맑았다.


 

▲ 삿갓재산장에서 본 또다른 풍경.



 

오후 3시가 좀 넘어서 도착한 나는 먼저 젖은 등산화를 따뜻한 스팀 옆에 기대어 놓았다. 젖은 옷을 말리는 것보다 등산화를 말리는 게 먼저였다. 내일까지 마를까? 그럼 다행이지만 젖은 모양새로 봐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널어야 할 것들과 말려야 할 것들을 산장에 펼쳐놓았다. 그렇게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한결 낫다. 찹쌀떡으로 때운 점심 때문인지 그때부터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삿갓재 산장은 제한급수를 하고 있었다.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160m를 내려갔다 오라는데, 그게 힘들어서 그냥 급수시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덕유산은 처음이지. 예전 어느 겨울에 차를 타고 가는데 멀리 보이는 덕유산의 설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겨울에 오르기 전에 한번 여름에 혼자 와 본거야.”


덕유산은 겨울이 멋진 산으로 유명하다. 무주리조트 쪽의 스키장 때문만은 아니다. 바위로 된 주능선의 봉우리들이 주는 운치와 오래된 주목에 쌓인 설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고 들었다. 시간이 남는 우리의 얘기는 이런저런 얘기로 나아갔다. 내가 지리산에서부터 왔다는 얘기가 아저씨의 호감을 자극했는지, 아저씨의 인생얘기가 술술 나왔다.


“한때 사업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IMF가 터지고 나서 쫄딱 망했어. 빚더미에 앉아 있었는데도 몇 년간 살 수 있었던 건 내가 여기저기서 야생난을 많이 구해다 놨기 때문이야. 집에 있던 야생난을 팔아서 몇 년을 먹고 살았으니까, 꽤 많이 모았었지. 비싼 건 천오백만원까지 받았어.”

“거의 산삼 한뿌리 값이네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많이 구하셨어요.”

“10억짜리 난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뭐. 오래전부터 야생난 구하러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외딴 섬도 가보고 첩첩산중에도 들어가 보고. 온갖 곳을 가지만 사유지나 국립공원, 도립공원도 마찬가지지. 그런데는 안가. 지금도 기아사람들과 야생난 모임을 하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일제 GPS가 달린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다니면서 난을 찾고 있지. 좋은 난이 발견된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두고 몇 년 뒤에 다시 와보려는 거야. 이게 돈이 되거든. 옛날부터 길도 없는 산골짜기를 심마니처럼 다니다 보니 지금도 이 나이에 산을 제법 타는 편이지.”


아저씨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노인의 그늘은 없었다. 영각사에서 출발해 1시 넘어서 삿갓재에 도착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빨리 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한 사업도 실패했지. 그리고 노숙생활도 3년이나 했다우. 노숙이란 게 힘들긴 하지만 그게 몸에 배면 또 빠져나오기가 어렵지. 그러다가 동생이 소개시켜준 기아자동차의 출퇴근 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잘 하고 있어. 이번에 휴가를 내서 혼자 찾아온 거야.”


백수로 살고 있는 나도 언제부턴가 지금의 생활에 조금씩 안주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일상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은 삶의 철학을 흔들어 놓는다. 내 백수생활도 어디에선가 그칠 것이다. 그 그침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두려울 뿐이다.


5시 즈음 비가 그쳤다. 내리는 기세로 봐서는 하루 종일 올 것 같더니 의외로 싱겁게 그치고 말았다. 저녁식사로 라면에 햇반을 말아먹는 게 식사의 다였다. 허기가 반찬이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비가 그치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가니 제법 조망이 나타났다. 비 때문에 공기는 맑고 청아했다. 7시 반이 되자 노을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데, 정말 멋진 노을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에 빠져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빛과 구름의 향연에 빠져 들었다. 몸속에 누적되어 있던 고단함이 노을 속에서 녹아들어갔다. 이렇게 아름다울려고 그렇게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던 것일까. 삿갓재의 노을 속으로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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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위트와 풍자, 해학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전경 여러분, 이미 점호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 바로 해산하시고 숙소로 돌아가서 점호받으세요.
전경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다고 밥 더 주지 않습니다. 휴가, 더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선동당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을 선동하는 저 경찰들을 보세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불법을 행하는 동안, 여러분들을 선동하는 저 경찰관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여러분들을 선동하고는 바로 도망가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선동당하지 마시고 방패를 내려놓으시고 시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의 가족과 형제 자매들입니다. 여러분의 미래의 부인입니다.
전경여러분, 여러분에게 명을 내리는 어청수의 아들은 군대면제입니다.
여러분들이 몸바쳐 지켜주는 명박이도 군대면제입니다."



무식한 사람을 이기는 것은 아는 사람이고,
아는 사람을 이기는 것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기는 것은 즐기는 사람이다.

무식한 이명박은 절대 시민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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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죽길에서 만나는 바람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7

- 중재 >> 백운산 >> 영취산 >> 깃대봉 >> 육십령(19.1km)

- 2008.07.01.






꿈도 꾸지 않은 깊은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도 상쾌하다. 태생적으로 낯선 곳에서도 잠을 잘 잔다. 산속에서 자고 나면 기분은 늘 좋다. 며칠전까지 내 어깨에는 항상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이제는 파스가 없어도 괜찮을 정도로 어깨가 단단해졌다. 무거운 배낭과 몸무게를 지탱했던 무릎과 발목은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다. 넘어지고 까지는 일이 없었다. 몸은 이미 자연과 공명하고 있었던 것일까.


6시에 민박집을 나왔다. 짙은 안개가 중재 마을을 살포시 보듬어 안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이번에도 차량으로 고갯마루 근처까지 배웅해 주셨다. 중재에서 이날의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중고개재까지는 가뿐한 산책로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짙은 구름 때문에 저녁날씨가 어찌될지 걱정될 뿐이다. 환국이가 보내온 기상정보에 따르면 오후에는 비올 확률이 높다.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이유다. 이날은 덕유산 초입인 육십령까지 달려야 한다. 어제처럼 먼 거리는 아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 중고개재에서



중고개재부터는 백운산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내 발걸음에 놀란 나비가 팔랑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내 한걸음이 길섶의 작은 세상을 뒤흔드나 보다. 조그마한 날벌레들이 발 아래에서 요란하게 춤을 춘다. 내 귓가에서 웽웽거리며 날아다닐 때면 너무나 귀찮다. 손으로 휘휘 저어보지만 금방 다시 날아든다. 비가 오면 모두들 풀잎 밑으로 숨어들지만, 날씨가 좋으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힌다.


백운산을 치고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숨이 가슴을 조여올 때면, 갈비뼈를 열어서라도 숨을 더욱 크게 쉬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뜨겁게 데워진 발바닥도 떼어서 냉동실에 잠깐 넣어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숨을 가다듬고, 발바닥을 나무에 퉁퉁 쳐주면서 위로해 준다. 어차피 올라야 할 산이라면, 기꺼이 즐기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아무도 없으니 혼자서 노래라도 불러본다. 새소리의 엇장단이 나쁘지 않다. 땀이 흐르는 뺨과 목덜미로 바람의 애무가 간지럽다. 기분이 좋다. 힘들었던 숨쉬기의 고통은 금방 가시고 입꼬리가 가볍게 말려 올라간다.


8시 10분. 마침내 백운산에 올랐다. 정상은 작은 공터를 이루고 있어 사방으로 거칠 것이 없다. 동서남북이 훤하게 트여있는 봉우리다. 멀리 지리산도 가물가물 펼쳐져 있다. 그 까마득한 하늘너머에서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백운산 정상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이 모두 보인다.


▲ 백운산에서부터 간간히 나타나는 산죽길.


▲ 영취산 정상의 갈림길.

▲ 영취산 정상의 표지석.

백운산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 모두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대간 길은 영취산까지 완만한 능선길이다. 그러나 여느 능선길과는 다른 멋이 있다. 바로 산죽길이다. 책에는 영취산 이후부터 나온다고 나왔는데, 백운산을 넘어가자 내 키보다 더 자란 산죽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다. 또 책에서는 산죽이 너무 빽빽해 헤치고 나아가기 힘들다고 되어 있는데, 다행히 등산길 확보를 위해 좌우의 산죽 일부는 제거해 놓은 상태였다. 산죽이 주는 시원함과 고즈넉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백두대간에서 소나무숲길과 함께 여기 산죽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다. 산죽밭은 영취산 넘어서도 간간히 나왔다.

 

10시 영취산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 300여m를 내려가 무령고개에 가야 샘이 있다. 내려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가지고 있는 물은 많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덕운봉을 지나 능선 가까이에 샘이 있다고 나왔다. 지도를 믿고 더 나아갔다. 하지만 덕운봉을 한참을 지나 민령 가까이 가서도 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통의 물도 거의 떨어져갔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물이라도 좀 얻어보겠지만 어제처럼 산속에서 사람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977고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샘을 찾으려다가 자꾸 미루던 점심이라 매우 허기져 있었다. 또 물 없는 점심이라니... 그렇게 신발도 벗고 점심을 먹고 있으려니 내가 왔던 숲에서 부스럭거리며 사람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린다. 한분이 힘들여 올라오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분도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물을 얻어볼까 했더니 나처럼 중재에서 출발해 그분도 물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갈증을 참는 일도 쉽지 않다. 점심을 먹고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분이 먼저 출발하고 나도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할 때였다. 또 한 사람이 봉우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분은 영취산에서 오신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물이 풍부했다. 그분 덕분에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고 사람들 신세도 많이 진다.


영취산에서부터 산죽길은 이전보다 더 장관이다. 백운산과 깃대봉 사이에 있는 곳곳의 산죽길은 대나무 내음을 물신 풍기면서 풋풋한 바람을 살랑살랑 내보내준다. 산죽 뒤로 크게 자란 나무들이 자연스러운 그늘을 이루어 주어, 사자처럼 사나운 햇살도 여기서는 털복숭이 강아지처럼 부드러워진다. 한참 쉬고 있으려니 참새보다 작은 새들이 산죽 사이로 오가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귀엽다.


민령서부터는 급한 오르막이 다시 열린다.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깃대봉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에서는 덕유산의 산줄기가 더욱 명확하게 들어온다. 지리산에서 출발한 여정의 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가깝게는 할미봉이 불쑥 솟아 있고, 그 뒤로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가깝다. 다음날이면 할미봉을 넘어 본격적인 덕유산 자락으로 들어가게 된다.


▲ 쉬고 있으면 초록의 나무그늘이 나를 달래준다.


▲ 깃대봉에서 바라본 덕유산 자락. 멀리 서봉(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보인다.

▲ 영취산에서 출발한 등산객이 깃대봉에서 찍어준 사진.  


▲ 육십령 마루로 내려서서  


▲ 육십령 식당. 백두대간 종주 등산인들이 많이 찾아 왔나 보다.  



깃대봉을 넘어 조금만 내려가자 샘터가 나온다. 물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팻말도 어여쁘게 만들어 놓았다. 물이 맑고 맛있다. 갈증이 깊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바위틈에서 힘차게 솟아나오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기 때문이다.


샘터를 지나 급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계곡으로 내려가는가 싶지만 곧 능선길을 만난다. 다 왔다 싶은데, 한참을 가야 육십령이다. 지루하고 고단한 길이다.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동쪽(서상쪽)으로 50m만 가면 식당 겸 매점과 민박을 겸하고 있는 육십령식당이 있다. 현금이 얼마 없어 카드로 계산해야하는데 혹시 안된다고 하면 천상 서상읍이나 장게면으로 내려가야 할 판이다. 다행히 주인 할머니는 가능하단다. 이날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육십령 마루에는 가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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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높고 쓸쓸한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6

- 매요리 - 복성이재 - 봉화산 - 중재(21.4km)

- 2008.06.30





늘 그래왔듯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햇반을 준비하면서 점심때 먹을 것까지 데웠다. 햇반은 그냥 먹으면 까칠하지만, 한번 데웠다 먹으면 어떨까. 새로운 시도다. 잘 되면 도시락을 먹는 기분일 것이다.


햇반 하나에 김치로 아침을 떼웠다. 물론 이렇게 출발하면 9시부터 배가 고파온다. 그때부터는 쵸코바나 사탕으로 견디다가 11시 즈음에 점심식사를 한다. 물이 있는 곳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맨밥을 먹으며 물을 아끼는 수밖에 없다. 지리산과 달리 백두대간에는 종종 물 구하기 어려운 구간이 있다.



 

▲ 매요마을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6시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민박집을 나왔다. 매요휴게소를 나와 마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743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계속 북진하면 유정육교가 나오는데 이 육교를 통해 88고속도로를 건넜다. 임도를 따라 사치재를 향했다. 출발은 언제나 가볍다. 문제는 산등성이 초입이다. 사치재에서 산길을 잡는데 잡목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지, 길잡이 리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또 길을 엉뚱한 데로 잡았다. 다시 사치재 팻말 앞으로 내려왔다. 30분의 시간과 체력을 날렸다. 길이 함몰되어 전혀 없는 곳에 길잡이 리본이 보였다. 설마 저 곳에 길이 있을까 싶어 올라갔는데, 거의 잡목과 풀들로 우거진 곳에 아주 작은 길이 나 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가보자 싶어 올라가니 다행히 이 길이 맞았다.


사치재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산등성이는 1994년과 1995년에 두차례에 걸쳐 산불이 났던 곳이다. 그래서 큰 나무들은 이미 고사하고 지금은 식물들의 춘추전국 시대다. 작은 잡목과 풀들이 길을 덮어버린 것이다. 종종 살아남은 소나무들은 까맣게 그을린 나무둥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현장이다. 밤새 내린 이슬이 맺힌 풀들이 서서히 내 신발을 적셔왔고, 키만큼 자란 잡목과 가시나무, 풀들이 내 팔을 할퀴었다. 재작년 초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길도 잘 보이고 잡목과 풀들도 거의 없더니 두해 지나 숲은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여름이니 그럴만도 하다.


평일이다 보니 산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만큼 새벽부터 지어진 수많은 거미집을 부시고 다닌다. 한걸음을 디디면서도 벌레라도 있으면 피해왔건만, 수많은 거미집들을 거침없이 부시고 그 무수한 잡풀 속을 탈출해야했다. 아, 얼마나 많은 집들을 부시며 걸어왔던가. 얼굴과 팔에 엉기는 거미집 때문에 기분이 묘하다. 마치 숲이라는 큰 거미집에 내가 걸려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간신히 산불난 지역을 벗어나니 온전한 산길이 나타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본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것 같다. 신발은 난리가 아니다. 많이 젖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긴바지를 입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반팔 옷은 치명적이다. 팔에는 온갖 가시와 풀에 베인 상처들 투성이다. 백두대간에는 이런 구간이 꽤 많다고 하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잡목과 가시덤불을 지나야 할까.







▲ 아막성터


 


10시도 되지 않아서 신발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신발 안까지 젖어버렸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치재에 있는 철쭉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재작년에 한번 백두대간 중 1박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11시 쯤 철쭉식당에 도착하니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무그늘에 마련한 평상에 앉아서 가방을 풀고 신발도 벗었다. 양말과 깔창을 벗어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샌들을 신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잠시후 주류 배달 차량이 들어왔다. 그에게 물어보니 아주 멀리 있는 포도밭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답해준다. 차에 실려온 맥주가 한짝씩 내려지는 걸 보니 입이 왜 이렇게 마를까. 그렇다고 주인 없이 맥주를 꺼내먹는 건 아니다. 할 수없이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니 일찍 들어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동네 할머니가 지나가기에 평소처럼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산에서 오는겨”

“네, 주인장이 없어서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올 거니께, 저기 물 떠다 마시고 기다려봐요.”

“저, 할머니, 주인하고 친하세요?”

“바로 요 옆집에 살어요. 왜?”

“그럼 제가 할머니께 일단 삼천원 드릴테니, 여기 맥주 좀 가져다 마실게요. 할머니가 주인 오면 주세요.”

“그래요? 그러지 뭐.”


얼마나 맥주가 마시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내가 그때를 돌아봐도 참 신기하다. 맥주 한병을 다 비우고 아침에 데운 햇반을 꺼냈다. 포장을 뜯어보니 역시 찰기가 잘 흐르고 밥도 잘 익었다. 그냥 식은 도시락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맥주 한병과 밥을 먹으니 기운이 살아난다. 그러고 나니 주인이 왔다. 맥주를 마신 자초지정을 얘기했다.


“아이구 시원한 맥주도 있는데, 이거 밍밍한 맥주를 마셨겠네요. 하나 더 드릴까요?”

“아니오. 또 산을 타야하는데, 그만 마실게요. 하하”


철쭉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짐을 다시 정리하고 있으려니까, 다시 일을 나가신다.


“이제 요 앞에 포도밭에서 일하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백두대간 손님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다 보니 산을 타는 손님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나와 다시 산등성이를 올랐다. 잠깐 신발과 발을 말렸는데, 한결 낫다. 힘껏 산을 다시 올랐다. 식당이 철쭉식당인 것은 치재 근처가 유명한 철쭉군락지이기 때문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철쭉들이 길을 덮고 있다. 그나마 가시나무나 날카로운 풀들이 아니라서 좋지만, 역시 길을 헤쳐 나가는 동안 철쭉가지가 자꾸 배낭을 잡아끈다.


▲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간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길.


 


▲ 봉화산에서 바라본 조망.




오후 2시 봉화산에 올랐다. 답답했던 조망이 확 트였다. 돌아보면 9박 10일 일정 중 가장 멀리까지 시원한 조망을 보였던 날이다. 그만큼 비와 구름이 일정 내내 나를 뒤덮었다. 지리산을 벗어나면서부터 신발이 마를 날이 없었고, 준비한 양말 다섯 켤레 중 하나라도 완전히 마른 날이 없어, 그냥 신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 본 조망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중재까지는 가야 하는데, 벌써 오후 2시를 넘었다. 최소한 4시간은 가야하는데, 6시라면 간당간당하다. 자칫 금방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 7시까지 밝기는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봉화산 이후로는 길이 좋다. 마루금은 억새만 좀 자라 있을 뿐이다. 구름이 아니었다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중재까지 4시간 동안 물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좋으면 또 저것이 안 좋다. 모든 걸 만족하는 여행은 드물다. 여행은 그런 부족함 때문에 채워지는 것이다.


▲ 이 정도 길은 양호한 편.

▲ 중재민텔 풍경.



 

중재에 도착한 건 6시가 다되어서다. 중재 고개에 보니 ‘중재민텔’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원래는 중재 샘터 근처에서 야영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 이렇게 또 젖었으니 그곳에 가기로 했다. 게다가 고개까지 차량으로 와준다고 하니 나쁘지 않다. 이날은 대략 10시간 이상을 달린 셈이다. 휴식이 필요했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곳 중재 민텔도 중재에 있는 유일한 민박시설로 자리잡았다. 많은 대간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쉬고 갔다. 집 바깥벽에는 대간 산꾼들이 매달아놓은 길잡이표시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거리도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오면서 조우한 산행객은 딱 한팀에 불과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산에서 혼자 걸어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행이었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위로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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