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초입이라 하늘이 아슬아슬하다. 야근은 점입가경으로 빠져들었다. 살떨리는 주말 근무는 힘겹기만 하다. 휘어져 가는 볼펜꼭지가 불안하게 종이 위에 멈추어 서면 난 옥상에 나간다. 거기서 낮이든 밤이든 가을 하늘은 보면 좋다. 그곳에는 피곤을 달래주는 청명함이 있다. 이 가을의 서늘한 바람소리도 사무실 문앞에서 머뭇거린다.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병 때문일까. 사람들은 후끈 달아올라있다. 여기에 가을은 없다. 그래서 자연이 필요하다. 인위적인 흔적들을 지우는 곳이다. 인간의 몸이 자연과 동화하여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곳. 기계적인 시간의 흐름보다는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시간이 우선인 곳. 배고픔처럼 강렬한 욕구가 나를 자극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강물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아까보다는 훨씬 더 깊어져 불빛도 안 켜진 사람의 마을 쪽으로 그렁그렁 흘러갔네
함허동천 야영장에도 밤이 찾아온다. 가을은 더 깊숙이 옷깃을 파고든다. 오래만의 한기다. 겨울이 되면 시인의 말처럼 바람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차갑지만 반갑다. 야영장 곳곳에 세워진 텐트에서도 밤의 적막이 찾아온다. 우리 옆에서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다. 아직은 이야기꽃을 끌 때가 아니다.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 때로는 한밤의 정적을 가르기도 하고, 때로는 별들처럼 소곤대며 끝이 없이 이어진다. 불빛도 시나브로 졸고 있는 이 텐트의 마을에서 밤은 점점 깊어졌다.
- 내 눈에는 왜 모래알이 서걱이는지 몰라, 눈을 뜰 때마다 눈 못 뜨게 매운 연기가 어디서 차오르는지 몰라,
1397년 세종대왕으로부터 촉망받던 성균관생이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최고의 학부에서 연구를 하던 이가 모든 걸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이름은 유수이, 휘는 기화(己和)이며 어릴 적부터 지혜가 남달라 일찌감치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고, 그곳에서도 두각을 보여 세종의 눈에 자주 띄었다. 그런 그에게 둘도 없는 지음이 있었다. 그렇게 함께 학문을 닦고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젊은 날에 갑자기 생을 놓고 말았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삶에 대한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를 괴로워하던 유수이는 성균관을 떠난다. 매일 같이 친구를 위해 연서를 쓰고, 그리워하지만 끊임없이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치 눈에 모래알이 들어온 것처럼, 아니면 눈을 뜰때마다 연기가 찌르는 것처럼 눈이 아팠다. 아니 마음이 아팠다. 자꾸자꾸 눈에 차오르는 눈물의 이유를 물어서 어디에 쓸까.
잘못 살아왔다고, 너무 아프게 자책하지 말라고 갈 곳 없는 새들은 물에 잠긴 옛집 나무 그림자를 흔들며 석유곤로에 냄비밥을 안치는 독거獨居의 마음속으로 떼지어 날아들고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을 이겨내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를 알아주고 내가 알아준 그 이가 세상에 없는 슬픔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이 필요할까. 유수이는 그 길로 속세를 떠난다. 다시는 그런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시는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그러나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옛우정의 흔적 앞에서 흔들렸다. 정처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 마침내 닿은 곳은 마니산의 한 계곡. 신라 선덕왕 때 지어진 정수사를 끼고 있는 곳으로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으면서도, 태고의 질서에 순응하듯 물을 담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들어왔나 보다. 그는 곧바로 좌선에 들어갔다. 너무나 아픈 자책도, 갈 곳 없는 외로움도, 물에 잠긴 쓸쓸함도 모두모두 저 황해바다에 풀어버리리라.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녁답, 나는 집에 안 가려 떼를 쓰는 새끼염소나 달래면서
마침내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없다. 무녀무상. 곧바로 일어나 바위에 네 글자를 새긴다. ‘함허동천’ -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 친구여 이제 잘 가라. 내 마음 속에서도 너는 편안히 잠들라. 한 점의 번뇌도 없이 맑은 마음으로 내 이곳에서 머물겠노라.
늦은밤에 도착한 함허동천. 모두가 고요히 잠든 숲길에서 고즈넉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기 친구를 잃은 슬픔을 승화시킨 한 스님의 일갈이 들리는 듯하다. 슬픔이 슬픔을 키운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기른다. 쓸쓸함이 쓸쓸함을 돌본다. 다시 좋은 삶이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 제목과 시는 전동균 시인의 시 ‘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를 그대로 옮겨 온 것이며, 안의 험허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적인 사실을 나름대로 상상해 엮어본 것입니다.
산행 중에 만난 사람 중에 머릿속에서 또렷이 남아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지난 여름 벽소령에서 만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다. 지리산 능선길이 잘 가꾸어진 건 사실이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이가 산행을 한다는 건 보통의 평지를 걷는 것과는 달리 몇십 배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사실 이건 내 과장일 수도 있는데, 당시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4시간 만에 왔으니, 딱 두 배의 시간이 들었을 뿐이다. 시각장애인은 스스로 지리산을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의 친구가 기꺼이 동행이 되어 길을 나섰다. 보지 못하는 그에게 산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모든 이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가질 수 있는 욕구가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열정이 많은 인간일수록 그 욕구는 더욱 강렬하다. 이 욕구는 온갖 난관과 고통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며 열정은 그것을 성공으로 이끄는 기폭제가 된다. 19세기 증기기관도 발명되기 전 시대를 살던 영국인 제임스 홀먼은 신분상승을 위해 군에 들어갔다가 얻은 중병으로 그만 시력을 잃고 만다. 시각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구걸밖에 없던 그 시절에 그는 피나는 노력 끝에 해군기사단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일주의 꿈을 꾸었다.
말과 마차, 그리고 도보만으로 육지를 돌아다녔고 범선에 의지해 대륙을 오가며, 말라리아가 모기로부터 생긴 병이라는 것도 모르는 시절에 아프리카를 누비고 다녔고, 식인종들을 만나 그들의 풍습을 유럽에 전하기도 했다. 그가 다녔던 거리는 최소한 40만km에 이르고 그가 접한 문화권만 해도 역시 적게 추산해서 200여개에 이른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이 2만3천km였으니 제임스 홀먼의 여행이 얼마나 길고 오랜 여행이었는지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보지 못하는 대신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였고, 만져보고, 냄새를 맡았다. 현지에서 사람들의 도움과 호의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여행은 혼자 출발했고, 혼자 돌아오는 여행이었다.
따라서 그의 여행은 느린 여행이었다. 시각은 한꺼번에 대상을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분석하지만 촉각은 천천히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자꾸 되새기며 파악하는 일이다. 우리의 삶의 속도를 생각하면 제임스 홀먼처럼 느리게 여행하는 일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다. 거리를 정복하고 얼마나 멀리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녀왔냐가 자랑인 여행에서 이제는 감각으로 넘치는 여행,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한 여행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 차마고도의 옛길을 이용해 티벳으로 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은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다. 400쪽이 넘는 분량에서는 다루고 있는 양도 방대하다. 제임스 홀먼의 일대기를 다루면서도 한편으로 당시의 시대상이나 풍습들도 상당히 면밀하게 다루고 있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임스 홀먼의 호기심을 따라 살펴본다면 그다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장애에 대한 편견을 떨어 버릴 수 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시각장애인은 눈으로만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단지 시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 홀먼이 보여준 용기와 모험은 이를 잘 나타냈다. 실제로 제임스 홀먼의 경우 아무리 처음 가는 방이라도 불과 몇분동안만 거닐어 보면 생활하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로 공간 파악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게다가 높은 곳이나 어두운 곳에서는 오히려 비장애인들 보다 훨씬 뛰어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고소공포증이 있을 리가 없고, 어둠은 낮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책의 첫부분, 활화산이었던 베이비오 화산을 올라가는 제임스 홀먼의 모습은 그가 정말 시각장애인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할 정도다.
문득 내 자전거 여행이 생각난다. 도시와 도시, 마을과 마을을 자전거로 달리는 그 중간중간에 스쳤던 가슴 뛰는 풍경들. 그것은 내 여행의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다. 하늘을 가득 덮었던 낙엽들, 벼 베기가 끝난 들녘에서 한가로이 이삭을 쪼고 있는 시골닭들의 풍경, 동네 어귀부터 나를 따라오며 짖어대던 강아지들, 길을 달리며 만나는 풍경들이 한가롭기만 했다. 명승지를 탐방하고 뛰어난 풍경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과는 달리 바람을 벗하고 구름과 동행하는 여행의 기억은 여전히 내 삶에 강렬한 모티프가 되고 있다.
제임스 홀먼의 세계여행기를 다룬 <세계를 더듬다>는 그런 면에서 우리 안의 여행 본능을 일깨운다. 현지의 문화와 사람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서는 느린 여행의 멋과 맛을 알려주는 진정한 여행기의 진수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흔히 알려져 있는 것과는 반대로, 맹인의 다른 감각들이 더 예민해지지는 않는다. 더욱더 중요해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눈이 먼 사람이 그의 시력이 온전했을 때보다 소리를 더 잘 듣지는 못한다. 다만 귀에 익은 소리들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 달라질 뿐이다. 촉각 역시 더 예민해지지는 않지만, 그 역할이 더 중요해질 뿐이다. 촉각이 접촉의 확인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미숙한 인지(認知)가 정확한 인식(認識)으로 격상되기 위해서는 주의 집중이 요구된다. - 92~93쪽
촉각에 기초한 인식은 시각에 기초한 인식과는 양적으로 다르다. 시각은 한꺼번에 꿀떡 삼키지만, 촉각은 홀짝홀짝 마신다. 촉각의 세계에서 물체는 빛의 속도로 갑자기 그 성질을 드러낸다. 촉각의 세계에서 물체는 빛의 속도로 갑자기 그 성질을 드러내지 않고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필요에 따라 조금씩 그 성질을 드러낸다. 그것은 섬광처럼 일순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거친 스케치가 완성된 초상화로 변하듯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95쪽
맹인들은 맹인 여행가를 기억하고 있다. 1970년 미국 맹인연맹 연례총회에서 회장 케빈 저니건은 총회장에 모인 회원들에게 맹인 여행가를 그들의 공유 유산의 일부로 자랑스럽게 주장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많은 맹인들이 안전한 제한된 구역에 무력하게 머물러야 한다는 통념에 시달려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는 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홀먼의 이야기는 맹인들이 점자도, 긴 지팡이도, 기숙학교도 직업재활도 나오기 전인 근 200년 전에 한 걸음에 100리를 갈 수 있다는 전설의 요술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제임스 홀먼처럼 “혼자서, 아무런 도움 없이, 도와주는 사람 없이” 전 세계를 누비는 데 평생을 바칠 맹인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지구 위의 삶이 속도가 빨라져서 아무리 다른 감각이 예민하다고 해도 맹인이 그 감각에 의존해서 그런 빠른 생활에 적응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 423쪽
공간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우리 모두를 여행가로 만든다. 우리가 붙잡더라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낯익은 것들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고 새로운 것들과 친해지고 더욱 낯선 정적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더듬어나간다. 우리가 만약 맹인 여행가만큼 운이 좋다면, 우리는 바람과 엄숙한 정적에 깃들인 지능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기꺼이 그 길을 더듬어나갈 수 있으리라. -428쪽
“어! 어!”
사고는 한순간이다. ‘어어’하는 두 음절이라도 나올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 순간만큼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위기를 안전하게 모면하는 게 최선이다. 밤 11시20분 경, 마포역을 지나 마포대교로 향하는 지점에서였다. 밤늦은 시간이라 차량 통행도 뜸하고 나 역시 너무 늦어져서 급하게 달리고 있던 참이었다.
마포역 근처는 신호가 많고 대기하는 택시도 많아서 차들이 가다서기를 반복하는 정체구간이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정체구간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던 참이다. 이 구간에서 주의할 점은 갑자기 우회전하는 차량이나 택시에서 문 열고 내리는 손님들이다. 그런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차에 우회전 길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고 나는 그곳을 직진으로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직진을 하던 차량이 갑자기 우회전했다. 우측깜빡이를 켜지도 않고 들이밀고 들어오니 이미 차량 옆으로 지나가고 있던 나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길옆에 자전거를 세웠다. 상대방은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옆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러고 하는 말이
“아니 왜 자전거가 차도로 다녀요.”
황당한 우문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자전거는 차량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당연히 차도를 이용해 달리는 게 맞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누구의 과실이 더 크게 인정될까.
유감스럽지만 자전거에도 과실이 있다. 자전거도 ‘차’로 구별되기 때문에 빚어지는 억울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자전거를 일반 차량과 동일시해서 발생하는 ‘모순’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고 건널목을 건너다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차량과 부딪혔다면, 그 경우 자전거 운전자는 법적으로 보호받기가 어렵다. 차선위반(역주행)에 신호위반 등등 다양한 과실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는 자전거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이 없고 단지 ‘차’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이처럼 분명히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로 처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앙부서나 지방자치기구나 할 것없이 자전거 타기를 추천하고 진보보수할 것없이 모든 신문매체들이 자전거 타기를 예찬하고 있지만, 도로교통법에 자전거 관련 법률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것들이 단지 쇼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만 하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머나먼 LA에서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멕시코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9살 .. 더보기
어떻게 우연이 잘 맞아서 영화 이벤트에 뽑혔다. 서대문 드림시네마, 영화관마저 생소하고 영화제목도 생소하다. 대충 보아하니 멕시코 영화다. 큰 기대도 안하고 영화 한번 공짜로 본다는 기분에 영화관에 찾아갔는데, 결론은 뜻밖의 수확이다.
영화 <언더더쎄임문>은 21세기판 엄마 찾아 삼만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9살 꼬마 까를리토스. 엄마는 4년 전부터 머나먼 미국의 LA에서 일하며 매달 300불씩 보내주고 있다. 그 돈으로 할머니의 병원비와 약값을 데고도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사는 까를리토스는, 그러나 엄마가 한창 보고 싶은 꼬마 아이일 뿐이다. 매주 일요일 엄마로부터 오는 전화만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제 홀로남은 까를리토스의 머나먼 여정이 시작된다. 'LA, 도미노 피자집 옆 건너 버스 정류장에 있는 공중전화, 벽화가 보이고 플라스틱 선물가게가 있는 곳', 단서는 이것에 불과하다.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주소도 모른다. 연락처도 없다. 로드무비이면서 성장영화이고 무엇보다 미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존재하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영화는 매우 탄탄한 짜임새로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영화적 재미를 보여주었다. 촌철살인의 명대사들도 우리를 감동시키지만, 영상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메시지들이 가슴을 촉촉히 적셔온다.
까를로토스는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생사의 고비를 넘고, 돈을 잃어버려 빈털털이 신세가 되어 마약중독자의 손에 의해 인신매매 될 뻔도 한다. 하지만 같은 처지의 불법이민자들을 돕는 아주머니의 손에 구출되고 그들과 함께 일터에서 일하다가 이민국에 쫓겨 달아난다. 그때 만난 아저씨가 아버지를 찾아주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아들을 돕지 않고 숨고 만다. 엄마나 아빠가 모두 자기를 버린다고 좌절할 때 아저씨는 한마디 한다. "누구보다 너희 엄마는 널 사랑한다. 네가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일을 생각해 봐라.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토마토 농장에서 이민국에 쫓겨 달아나고, 접시닦기로 숙식을 구하고,... 누가 이런 삶을 살길 원하겠냐. 그러나 이런 삶을 네 엄마는 살고 있다. 바로 너를 위해서 말이다."(정확한 대사는 아님)
미국이라는 거대한 부의 그늘에 가리워진 멕시코 불법체류자들의 비참한 삶에서 따뜻한 시선을 끌어올린 영화감독에게 찬사를 보낸다. 올해 나에게 있어 가장 감동적인 영화 중의 하나로 이 영화를 추천하는 바다.
============================================= 마지막으로 촌철살인의 명대사 한마디
"그래그래 너, 킹왕짱이다." >> 엄마를 찾는 까를리토스를 도와 함께 LA까지 간 엔리케가 까를리토스의 잔소리에ㅣ 대답하는 말.
"미국의 역사? 간단해, 처음에는 원주민을 착취하고, 다음에는 흑인들을 착취하고, 지금은 멕식코인들을 착취하고 있어." >>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시험을 준비 중인 로자리오(엄마역)가 미국 역사가 어렵다고 하자 친구가 하는 말.
후배로부터 <맘마미아>의 OST를 받아 들었을 때부터 ‘아, 이 영화 꼭 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좋다는 입소문이야 같이 일하는 여직원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던 터였지만, 익숙한 아바의 음악이 이끄는 매력은 그 입소문보다 확실히 대단했다.
‘원스’가 저예산 영화에서 출발한 음악 영화의 소박한 순수함이 있다면, ‘맘마미아’는 기획된 영화의 기교와 멋이 한껏 드러나 있다. 제대로 된 음악 영화를 갈구하던 대중들은 ‘맘마미아’의 출현에 환호했다. 4주 동안 전국 317만 명을 끌어들여 2004년 <오페라의 유령>이 세운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우선 재밌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 있어 노래가 시작되더니 정말 줄기차게 노래가 나온다. 심지어 영화가 다 끝나도 앙코르 영상을 통해 따로 보여주는 노래들도 좀처럼 자리를 뜨기 어렵게 한다. 이미 만들어진 노래들로 꾸며졌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극 전개에서 하나의 흐트러짐도 보기 힘들다. 서사구조가 탄탄하니 노래가 더욱 돋보이며, 심금을 울린다. 특히 <The Winner Take It All>을 목놓아 부르는 장면은 그리스의 눈부신 바다 풍경과 함께 눈시울을 자극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The Winner Take It All>는 아바의 아그네타가 남편 비요른과 갈등을 빚던 시기에 발표된 곡이었는데, 그 깊이나 완성도가 뛰어나 아바의 대표곡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긴 사람이 모든 걸 갖는다’면서 실패한 사랑, 이별을 앞둔 사랑의 아픔을 절절하게 노래한 이 노래는 그 깊이 있는 가사와 절절한 가락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뮤지컬 제작자 주디 크레이머에게 아바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영감을 주기도 했다.
영화관에서 신나는 음악들로 저절로 무릎을 흔들고 고개를 까딱거리게 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게다가 요즘 이 OST 덕분에 점심시간 이후의 식곤증을 몰아내고 있다. 이 가을은 적어도 이 OST만으로도 우울할 일은 없을 듯하다.
여의도에서 마포를 지나 공덕오거리를 지나면 공덕동이 시작된다. 진입로만 보자면 왕복 8차선과 10차선을 넘나드는 큰 대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길가로는 서울 어느 거리보다 가지런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현대도시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2002년에 있었던 공덕동의 래미안 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2,213대 1을 보여주기도 했다.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 본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일대의 거리는 서울 도시 근대화의 멋으로 불릴 만한 곳이다.
그러나 그 스카이라인 뒤로는 여전히 허름하고 무너질 것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 많다. 내가 일하는 출판사 뒤편으로도 그런 집들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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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동(孔德洞)이라는 이름을 보자면, 한자의 공덕(孔德-공자의 덕)이라는 말에서 온 것 같지만 실상 순 우리말 ‘큰 더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큰 더기’는 우리말로 조금 높은 고원의 평평한 곳의 더기 또는 덕, 언덕을 일컬은 말이다. 한강둑의 언덕을 비롯해 아현동 언덕, 만리재 고개 등 공덕동으로 들어서는 길은 어찌했든 작은 언덕들을 넘어와야 하는 곳이다. 옛날에 이 지역을 큰더기, 큰덕으로 불리된 것이 비슷한 한자음을 빌려와 쓴 게 공덕동이라는 설명이다.
이제 이 공덕동 주변 언덕들에 자리 잡은 그렇고 그런 허름한 집들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거나 기다리고 있다. 사진에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이 이미 이곳의 골목길 풍경을 렌즈에 담아내고 있다. 김기찬 사진가는 1969년부터 30여 년간 골목길 풍경을 담아왔는데, 그 풍경 안에는 이 공덕동 골목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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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의미 있다. 문명이라는 그늘이 만들어내서 지워지는 자취를 기록함으로써 미래의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껴야 할 향수를 자극하자는 것도 있겠지만, 단지 휩쓸리듯 흘러가는 세태를 잔잔히 돌아보며 성찰하는 자료로서 충분히 의미 있다고 본다. 고로 나는 기록한다, 그리고 성찰한다.
보통 내가 일하는 곳을 물어 보면 나는 마포구 공덕동이라고 한다. 공덕동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오래전에 이곳에서 근무를 한 일이 있기 때문에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이라면 깜짝 놀라곤 한다. 그렇다, 나는 다시 컴백했다.
예전처럼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내년에도 교과서도 만들고 지도서도 만들고 교재도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일이 일을 만들고 그 일이 다시 일을 까는 그런 수렁에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심정이다. 그래 알만큼 알고 겪을 만큼 겪어봤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는 심정이다.
하여튼 다시 공덕동이다. 아무래도 이제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놀아보니 그렇다. 오래 놀면 마음 약해지는 거다. 그러니 내가 뒤늦게 철드니, 이제 조직에 투항하니, 뭐 그런 이상한 말 하지 마라. 그냥 살아가는 거고, 살아가는 현장이 여기일 뿐이다.
그런데 공덕동이다. 그렇게 살아야 할 곳이기에 애정을 가지고 보기로 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 애정을 보면 하루하루가 새로울 것이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도 여행이고, 야근을 위해 저녁 먹으러 가는 길도 여행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고, 심심풀이로 공덕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한다. 웬만하면 하루에 하나 정도 포스팅을 하자는 게 내 생각인데, 일이 많은 곳이다 보니 이것도 쉽지 않다. 하루이틀 빼먹는다고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 않기로 하자.
이름하여 공덕동 프로젝트. 말은 그럴싸해도 사소한 신변잡기다. 내 일터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동네 사소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루 24시간 중 최소한 8시간 많게는 13~15시간을 보내는 곳이니 쓸 얘기는 솔찬히 있을 것이다. 없다고 해도 만들어 보는 게 내 사는 재미다. 일터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들을 내 역사의 한페이지에 차곡차곡 쌓는 것.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야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이다.
암튼 지금도 야근 중인데, 몰래 포스팅하고 있다. 차장님이 내 블로그를 알지만, 뭐 때리기야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