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권도 일종의 유가증권이라고 할 수 있다. 돈으로 바꿔주는 곳은 없지만 특정한 곳에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직원 중에는 밥값으로 현금을 거둬, 식권으로 냄으로써 현금을 확보하는 영리한 분들도 있다) 오늘 그동안의 야근 정도에 따라 식권이 지급되었다. 내가 받은 아홉장의 식권. 나는 그동안 아홉번의 야근을 했다는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증권이라는 말만 나오면 자지러질 분들 많겠다. 1000포인트 밑으로 떨어진 증권을 보면서 누구는 휴지조각이 됐다느니, 쓰레기가 됐다느니 하는 말이 있는데, 그나마 이 식권은 공덕동의 몇몇 식당에서는 밥이라도 되어주니 주식보다 훨씬 좋다.
다행히, 난 가난하지 않다. 그렇다고 부유하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건 아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삼십대 중반의 미혼 남성의 삶이란 게 거기서 거기다. 아침마다 부대끼는 대중교통에서 졸면서 출근하고, 점심시간마다 오늘은 얼마짜리 밥을 먹나 고민하고, 휴일도 반납하며 철야도 마다하지 않고 회사에 매달려 살아간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열심히 산다면서 항상 불안하다. 노숙자나 거지를 보면 애써 피하는 이유는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 삶과 노동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참고 사는 것은 그런 가난이 가져올 ‘충격과 공포’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가난하지 않은 것에 안심하고 있다. 우리 의식은 노숙자나 거지를 피하듯이, 그렇게 가난을 외면하고 있다. 거기에 존엄한 가난, 가난한 휴머니즘은 없다. 그 이면에는 가난에 대한 지독한 냉소와 두려움과 멸시가 담겨 있다. 공선옥 소설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가난은 무능력하고 낡은 것, 더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 그리하여 일종의 페스트 같고 에이즈 같은 것이다. 암과는 달리 그것들은 점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질병이다. 오늘날 가난은 바로 그처럼 전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몹쓸 질병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존엄한 가난’을 이야기한다. 그는 아이티의 가난한 빈민가 사람들을 위해 싸워온 신부다. 끊임없는 내란과 독재에 시달리며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아이티에서 네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네 번 모두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물러나야 했다. 그의 총 집권 기간은 불과 5년 8개월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는 군대를 해산하고, 국영기업의 조건 없는 민영화를 거부했는가 하면, 공공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교육과 보건의 사회적 질을 높였고, 최저임금의 인상을 이끌어 냈다. 이 책은 아리스티드가 세계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여기에는 그의 아이티 민중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고, 특히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배려가 나타나 있다. 또 부의 추구보다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길에 대한 사유와 성찰 속에서 아이티가 나아갈 제3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가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이 충격과 공포를 어찌해야 하나. 왜 우리는 아이티 같은 나라보다 잘 산다고 자부하면서도 이런 불안과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겪어야 하나. 이 책에 그 해답은 없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 자신의 마음의 가난을 돌아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조수미 - 미싱 유 -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작곡, 데이비드 퍼먼 (David Firma/유니버설(Universal)
정문 수위실에 내 앞으로 등기가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반응은 “웬 등기?”였다. 나에게 등기로 올 물건이 있나? 인터넷을 주문한 상품은 없고, 내가 직장을 옮긴 건 얼마 안 되어 지인들도 내가 다니는 곳의 주소를 잘 모른다. 그런데 등기라니?
물건을 받아보니 한국방송의 ‘송영훈의 가정음악’ 프로그램에서 보내온 물건이었다. 아, 이벤트에 응모한 게 당첨되었나보다. 사실 이벤트 응모한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어떤 물건일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모양으로 보면 CD가 아닐까 싶었는데, 열어보니 맞았다.
조수미의 <미싱 유(missing you)> 앨범이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가 11개국의 언어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들을 불러서 담은 앨범이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음악들이 실려 있다. 특히 마지막 피날레곡은 우리에게 익숙한 ‘엄마야 누나야 강병 살자’를 새롭게 편곡해 우리 노래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했다.
나도 유가환급금을 받는다. 자전거 열심히 타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다녔는데, 뜻하지 않는 공돈이 생기는 기분이다. 물론 이렇게 빠져나가는 돈을 세금 더 걷어서 채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유사를 압박해서 기름값 내릴 생각은 안 하고, 국민 세금을 풀어서 정유사 면책해 주는 정책인 셈이다. 여하튼 이놈의 정부는 친기업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면서 서민 대책으로 생색은 무지 내고 있다.
아무튼 회사에서는 오늘을 유가환급금 신청 마감일로 잡고 있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교정지에 코를 박고 연필만 굴리고 있었으니,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어떤 신청서가 필요한지 옆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홈페이지에서 신청서 내려받아서 작성하고 원천징수영수증을 총무과에 내야 한단다.
원천징수증은 작년에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띠어야 한다는데, 이게 또 복잡해졌다. 알아보니 그 여행사가 정리된 것이다. 그래도 여행 4번이나 보내준 여행사이고 막판에 퇴직금 문제로 많이 생각하게 했던 곳이라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곳인데, 없어진다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옛 직장 동료에게도 물어보고 선배에게도 물어보면서 해법을 찾았지만, 결국 세무서를 가서 직접 떼어 와야 한다는 거다.
결국 가까운 마포세무서까지 택시 타고 왔다갔다해야 했는데… 삽질도 이런 삽질이 없다. 마포세무서 입구에는 유가환급금에 대한 안내대가 따로 있는데, 거기에서 문의하니 공인인증서가 있다면 인터넷에서 유가환급금 서류 출력해서 제출하면 아무 문제없다는 거다. 결국 오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시간과 돈을 들여 세무서까지 온 것이다. 총무과에 전화 한번 해봤으면 아무 문제없었건만, 그 원/천/징/수/증이라는 나름 모양 있는 단어에 위축되어 안 해도 될 짓을 했다.
점심 식사를 하는 중에 후배가 전화를 해왔다. 학교 때부터 싹싹하고 밝고 명랑했던 후배인데, 나와 함께 여러 일들을 같이 진행했던 터라 나름대로 정도 들었던 후배였다. 그러던 후배가 어느날 군인과 결혼했다. 그러다 보니 군인 따라 여기저기 지방으로 돌아다녀서 연락이 한동안 끊어졌다. 다시 연락이 된 것은 한 달 전이었을까. 우연히 마트에서 내 동기를 만나 수다를 떨다가 나에게 전화를 했던 거다.
“선배, 오랜만이죠. 저 부천 살아요. 애 둘 키우다 보니 연락하기도 쉽지 않네요. 시간 되면 OO선배와 부천에서 봐요.”
벌써 애가 둘이나 되는 주부가 됐는데도, 여전히 그 목소리는 대학 때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톡톡 튀는 고음과 안 봐도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띠고 있을 그 얼굴이 선했다. 그런 상상은 충분히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후배가 월요일부터 전화를 한 것이다. 평범한 안부를 물어왔고, 그에 대답하면서 나 역시 그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 새벽에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이 특유의 말투는 여전했지만 미세한 떨림은 전해졌다. 그 순간부터 아주 잠깐 서로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슬픔을 직접 전해들은 일이 있던가? 이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천천히 전하는 그의 말에서 눅눅한 물기가 조금씩 전해졌다. 담담한 듯 하면서도 오래 묵혀둔 것 같은 그의 말 언저리에서 나는 맴돌았다. 꼭 들려보겠다는 말을 하면서 통화는 끝났다.
여전히 야근이다. 아마도 오늘은 가보기 힘들 듯하다. 내 차림새를 보니 흰 사파리 재킷에 흰건빵 바지를 입고 있으니, 이게 어디 놀러가는 사람의 복장이지, 문상 가는 사람의 복장은 아니다 싶다. 물론 복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걸 스스로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만은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요즘같이 미세먼지가 많다는 가을 가뭄에 어쩌자고 이런 복장으로 집을 나섰는지, 아주 조금 원망스럽다.
일요일 정오 즈음의 공덕동. 참, /한/산/하/다/. 보통 아침 출근시간이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거대한 물결을 이룬다. 오늘 회사로 가는 내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일이 귀찮고 힘들어서가 아니다. 2차세계대전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한 바가지의 물이 배급되었을 때 그것을 생존을 위해 마셨던 사람보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얼굴과 몸을 씻는 데 썼던 사람들이 더 오래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어느 심리학 박사의 이야기처럼 일상적으로 오고가는 지루하고 상투적인 출퇴근 길도 아주 짧은 여행으로 생각하는 여유가 나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가을의 초입이라 하늘이 아슬아슬하다. 야근은 점입가경으로 빠져들었다. 살떨리는 주말 근무는 힘겹기만 하다. 휘어져 가는 볼펜꼭지가 불안하게 종이 위에 멈추어 서면 난 옥상에 나간다. 거기서 낮이든 밤이든 가을 하늘은 보면 좋다. 그곳에는 피곤을 달래주는 청명함이 있다. 이 가을의 서늘한 바람소리도 사무실 문앞에서 머뭇거린다.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병 때문일까. 사람들은 후끈 달아올라있다. 여기에 가을은 없다. 그래서 자연이 필요하다. 인위적인 흔적들을 지우는 곳이다. 인간의 몸이 자연과 동화하여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곳. 기계적인 시간의 흐름보다는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시간이 우선인 곳. 배고픔처럼 강렬한 욕구가 나를 자극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강물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아까보다는 훨씬 더 깊어져 불빛도 안 켜진 사람의 마을 쪽으로 그렁그렁 흘러갔네
함허동천 야영장에도 밤이 찾아온다. 가을은 더 깊숙이 옷깃을 파고든다. 오래만의 한기다. 겨울이 되면 시인의 말처럼 바람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차갑지만 반갑다. 야영장 곳곳에 세워진 텐트에서도 밤의 적막이 찾아온다. 우리 옆에서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다. 아직은 이야기꽃을 끌 때가 아니다.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 때로는 한밤의 정적을 가르기도 하고, 때로는 별들처럼 소곤대며 끝이 없이 이어진다. 불빛도 시나브로 졸고 있는 이 텐트의 마을에서 밤은 점점 깊어졌다.
- 내 눈에는 왜 모래알이 서걱이는지 몰라, 눈을 뜰 때마다 눈 못 뜨게 매운 연기가 어디서 차오르는지 몰라,
1397년 세종대왕으로부터 촉망받던 성균관생이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최고의 학부에서 연구를 하던 이가 모든 걸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이름은 유수이, 휘는 기화(己和)이며 어릴 적부터 지혜가 남달라 일찌감치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고, 그곳에서도 두각을 보여 세종의 눈에 자주 띄었다. 그런 그에게 둘도 없는 지음이 있었다. 그렇게 함께 학문을 닦고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젊은 날에 갑자기 생을 놓고 말았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삶에 대한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를 괴로워하던 유수이는 성균관을 떠난다. 매일 같이 친구를 위해 연서를 쓰고, 그리워하지만 끊임없이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치 눈에 모래알이 들어온 것처럼, 아니면 눈을 뜰때마다 연기가 찌르는 것처럼 눈이 아팠다. 아니 마음이 아팠다. 자꾸자꾸 눈에 차오르는 눈물의 이유를 물어서 어디에 쓸까.
잘못 살아왔다고, 너무 아프게 자책하지 말라고 갈 곳 없는 새들은 물에 잠긴 옛집 나무 그림자를 흔들며 석유곤로에 냄비밥을 안치는 독거獨居의 마음속으로 떼지어 날아들고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을 이겨내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를 알아주고 내가 알아준 그 이가 세상에 없는 슬픔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이 필요할까. 유수이는 그 길로 속세를 떠난다. 다시는 그런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시는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그러나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옛우정의 흔적 앞에서 흔들렸다. 정처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 마침내 닿은 곳은 마니산의 한 계곡. 신라 선덕왕 때 지어진 정수사를 끼고 있는 곳으로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으면서도, 태고의 질서에 순응하듯 물을 담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들어왔나 보다. 그는 곧바로 좌선에 들어갔다. 너무나 아픈 자책도, 갈 곳 없는 외로움도, 물에 잠긴 쓸쓸함도 모두모두 저 황해바다에 풀어버리리라.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녁답, 나는 집에 안 가려 떼를 쓰는 새끼염소나 달래면서
마침내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없다. 무녀무상. 곧바로 일어나 바위에 네 글자를 새긴다. ‘함허동천’ -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 친구여 이제 잘 가라. 내 마음 속에서도 너는 편안히 잠들라. 한 점의 번뇌도 없이 맑은 마음으로 내 이곳에서 머물겠노라.
늦은밤에 도착한 함허동천. 모두가 고요히 잠든 숲길에서 고즈넉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기 친구를 잃은 슬픔을 승화시킨 한 스님의 일갈이 들리는 듯하다. 슬픔이 슬픔을 키운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기른다. 쓸쓸함이 쓸쓸함을 돌본다. 다시 좋은 삶이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 제목과 시는 전동균 시인의 시 ‘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를 그대로 옮겨 온 것이며, 안의 험허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적인 사실을 나름대로 상상해 엮어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