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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4. 26.

      아이의 중간고사 기간. 아이는 혼자 집에 있고 싶다고 했다. 조용히 아내와 단둘이 집을 나섰다. 쫓겨난 거 아니다. 부부 데이트의 날이다. 아무튼 그렇다. 때로는 그렇게 사는 거다. 무엇보다 아내가 좋아한다.  

      조계사에 들렸다. 관광객과 불자들로 북적였다. '부처님 오신 날'을 한 달여 앞두고 있다. 마당 한쪽에서는 법회 준비로 임시 의자들이 늘어서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힙한 찬불가에 맞춰 춤 공연 연습이 한창이다. 입구에 있는 북은 오가는 이들이 시시때때로 두들겨 대니 3초에 한 번씩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북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 힙합 음악 소리까지 21세기 서울 한복판의 절에서 경험하는 꽤 신비하고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그러나 저러나 아내는 또 아이의 복을 기원하겠다고 연등을 달자고 한다. 얼마나 하겠냐 싶어 그러라고 했는데, 연등 하나가 3만원이다. 연등 접수를 받던 아주머니는 가족 모두 하라고 영업(?)하신다. 물론 복을 기원하는데 어디 한 명만 하는 건 이상하긴 하지. 늙으신 어머니, 장모님의 건강도 기원해야 하고, 아직 장가 안 간 동생에게 좋은 배우자가 생기는 것도 바라야 하고, 우리 부부의 건강, 나의 안정적인 직장 생활도 기원하고... 복을 바라는 일들은 쎄고 쎘는데 딸아이 하나의 복만 바라는 것은 어딘가 뒤통수가 가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그 복을 기원하는 것도 다 돈이다. 그러니 오늘은 아이 건강과 성공만 빌기로 한다.

      그렇게 연등이 달리는 모습도 보고, 사진도 찍고 차도 한잔 마시고 오늘의 두 번째 나들이 장소인 불교중앙박물관을 향하던 중이었다. 어, 그런데 조계사 문 바깥에서 외국 승려가 알수 없는 말로 뭐라고 하면서 웃으면서 우리 팔목에 염주를 들고 안아주고 법석을 떨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예예~ 하다가 시주하라며 안내장을 보여 주었고, 어어 하다가 2만 원을 주고 돌아섰다.
      "응? 뭐지?" 
      그제야 나와 아내는 정신을 차리고 당했음을 직감했다. 역시 서울은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다. 아니 서울토박이들이 외국 승려에게 당했다. 두고두고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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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웃으며 불교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 도솔산 선운사의 삼지장보살. 
      1936년 선운사의 금동지장보살좌상이 도둑을 맞는다. 도둑맞은 불상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불상이 소유한 사람이 꿈을 꾼다. 불상이 꿈속에 나와 "나는 원래 전북 고창 선운사에 있었으니 속히 돌려보내 달라."라고 말하는 꿈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소장자들에게는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긴다. 병이 생기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하는데 다른 곳에 팔아넘기면 그 사람에게도 똑같은 꿈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결국 마지막 소장자가 고창 경찰서에 자진 신고해 아무 조건 없이 불상을 넘기겠다고 밝히게 된 것.

      자고로 지장보살은 지옥에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남아 있는 한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면서 지옥을 떠돌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신 분이다. 인간들을 구제하겠다고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같은 분이다. 자발적인 희생, 숭고한 사랑을 상징하는 분이다. 험악한 지옥을 떠돌며 단 한명의 중생이라도 구하겠다고 떠도는 지장보살을 만들어 낸 우리의 조상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삼지장보살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이와 함께 익살스러운 승려들의 조각상도 그간 불교 사찰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익살스러운 동작-곰방대로 자기 코를 위로 찌그려뜨리는 모습이라든지, 곰방대로 등을 긁는 모습, 앞니가 빠진 웃음으로 다른 중을 손가락질하는 모습, 품 안에 고양이와 노는 모습 등을 보니 사람 사는 모습이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나 싶었다. 삶의 잔잔한 기쁨과 슬픔, 해학과 풍자로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내고 수도의 길을 걷는 것. 중이나 나나 다를 바 없다. 그저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와 믿음을 다시 돌아볼 뿐.

      조계사 앞마당에 울려퍼지던 21세기 힙합 음악이, 500년 전 조상들이 만든 재미있는 승려 조각상과 통한다. 오래간만에 먼 조상들과 멋지게 인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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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을 나와 이제 경복궁을 갈 차례. 가기 전 점심을 먹어야겠다. 북촌손만둣국을 찾아들어갔다. 나는 북촌손만둣국, 아내는 북촌피냉면. 둘 다 얼큰하고 매운맛이다. 북촌손만둣국은 얼큰한 국물이 일품이다. 밥 말아 먹어도 맛있겠다 싶었지만 아내가 추가로 주문한 만두까지 먹으니 배가 불러서 밥은 못 먹겠더라. 피냉면은 알싸하다. 매우 맵다. 입이 좀 얼얼해진다. 

      배불리 먹었으니 걷자. 몇년만에 들린 경복궁. 역시 외국인이 절반이다. 그 절반 중 여자가 절반인데 절반 가까이가 한복을 입고 다닌다. 머리장식까지 예쁘게 하니 정말 어여쁜 외국처자들이 조선의 궁궐을 쏘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닌다. 아내와 나는 결혼 전 데이트할 때 고즈넉한 창경궁에서 비 오는 궁궐 안을 조용히 돌아다니며 소곤소곤 이야기하거나 조용히 자신의 발소리만 들으면서 걷거나 처마 밑에 앉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둘 다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 기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시시때때로 그때의 이야기를 하곤 했고, 이번 경복궁도 그래서 오게 된 건데... 물론 15년도 훌쩍 넘기 옛이야기이고,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 1천만 시대이고, 그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경복궁이니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건 어느 정도 각오하고 갔더랬다. 

      그런데, 여기저기 이벤트로 펼쳐진 내용들을 살짝씩 구경했는데, 공연의 질이 좋지 않은 건 아니지만 궁궐 안에서 오일장 공연하듯, 마당놀이 하듯 공연하는 게 맞나 싶다. 관광객의 참여를 독려하고 끌어들이는 모습 등은 민속촌이면 족하다. 궁궐에서까지 그래야 할까? 생각해 볼 문제다. 

      그나마 소득이라면 최근 복원되었다는 건천궁이다. 명성황후가 일제의 자객들에게 시해된 역사적 장소이다. 다른 장소와 달리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러 아이들이 강사 선생님과 함께 이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을미사변의 역사적 장소가 복원되었으니 보다 생생하게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는 한 나라의 주권이 그렇듯 처참하고 잔인하게 밟히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어떤 나라이건 말이다. 그렇게 경복궁 구경까지 마치고 나니 아내와 나는 녹초가 된다. 경복궁을 나와 정부종합청사 옆길로 돌아서 세종문화회관을 건너 광화문 광장을 거쳐 시청 앞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었다. 서울시의회를 지날 즈음 성공회성당도 구경했다. 그리고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나는 다시 앞으로 몇 년간은 경복궁은 쳐다도 보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되고 여력이 되면 덕수궁이나 창경궁, 종묘로 발길이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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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길, 같이 걷는 길 

지리산둘레길을 시작할 때는 가족과 함께 걸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 걸었다. 홀로 여행을 다녀온 게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20대의 젊은 날 혼자 지리산 종주를 했던 게 기억난다. 아, 물론 1박 없는 홀로 여행은 종종 다니곤 했다. 직업도 어딜 돌아다니는 일이 없이 붙박이 사무 업무만 하는 거라 출장도 드물다. 사정이 이러니 1박 이상의 여행을 혼자 떠난다는 것이 무척 낯설다. 설레거나 두려움도 무뎌질 나이가 되고 있다. 허나 나이가 얼마든 여행은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건 사실이다. 

혼자 길을 걷는다는 것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늘상 관계 안에서 긴장하고 주위 사람을 살피면서 때로는 눈치를 받거나 반대로 눈치를 주는 일은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하루 이상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는 숲 속에서, 남의 눈치 없이 오로지 내 몸만 살피면서 걸었다. 내 숨소리에 한참동안 귀기울이고 무섭게 뜀박질하는 심장 소리도 무심히 흘려듣지 않았다. 단단해지다 못해 굳어지는 무릎과 종아리 근육의 느낌, 돌과 돌 사이를 건너면서 살짝 비틀리는 발목도, 내리막길에서 온몸의 하중을 견뎌내는 발가락들이 아프다고 지르는 비명도 들었다. 산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느끼던 감각이지만, 이번에는 더욱 가깝게 느껴 보았다. 온전히 내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위태 마을 벗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숲길로 이어진다. 봄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면서 남도의 숲이 깨어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걷고 싶은 데서 걷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문다. 여럿이 가다 보면 멈추거나 쉬거나 걷는 것을 함께 결정해야 하지만, 혼자 가는 길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또한 자유로운 일이니, 이것 때문에 혼자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쉬고 싶은 곳에서 한참을 쉬기도 하고, 머문 곳에서 만나 낯선 여행객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도 나누고, 마을에서 마주치는 노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대부분의 인사말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 어데셔 오셨소?"다. 그렇게 말문을 트는 어르신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홀로 걷는 건 무심히 던지는 안부로도 푸근해지는 넉넉함이 생기는 걸까?   

혼자 걷는 게 함께 걷는 것보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혼자든 함께든, 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함께 둘레길을 걸었던 친구나 가족들은 나에게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좋은 추억을 쌓고, 함께한 기억을 남기며, 오랫동안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그럼에도 홀로 걷는 길도 소중하다. 걸으면서 몸을 덜어내 듯이 걸으면서 생각도 덜어내는 데는 혼자 가는 여행보다 좋은 게 있을까? 결론적으로 함께 가는 여행은 쌓는 여행이지만, 혼자 가는 여행은 덜어내는 여행이 된다.

산죽들이 길 옆에서 여행객을 맞아준다. 이른 아침의 맑고 투명한 공기가 허파를 채워 준다.


자연의 회복과 내면의 평화

혼자만의 여행에서는 멍한 시간이 많이 생긴다. 차를 가져가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비용을 아끼는 게 가장 컸지만 그냥 버스 안에서 멍때리며 창밖을 보고 싶다는 이유도 컸다. 사실 운전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니 운전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장거리 이동 중에는 그냥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구경하거나 책을 보거나 편하게 낮잠을 자는 걸 즐기고 싶었다. 바람대로 됐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 진주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려는 외지 등산객이라면 이곳을 거쳐 간다.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면서 고속버스 - 시외버스 - 농촌버스의 연계 시간을 철저히 조사했다. 가장 어려운 건 농촌버스의 행선지 표시와 시간대 맞추기다. 일단 농촌버스는 보통 하루에 4회 정도 운행한다. 이마저도 특정 구간은 운행 수가 더 적다. 진주시에서 하동군 옥종면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옥종면에서 위태마을까지 농촌버스로 이동한다는 계획이었다. 굳이 금요일 오후에 진주로 내려간 이유도 토요일 새벽 옥종면행 첫차(보통 오전 6시~7시 사이)를 타기 위해서다. 내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6시20분에 첫 차가 있었는데, 실제 진주터미널에서 도착해 알아보니 7시 20분이 첫차다. 이렇게 되면 옥종면에서 8시에 출발하는 위태마을 가는 농촌버스를 놓칠 것 같다고 생각했고,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8시 버스 다음은 오후 1시에 있다. 아무리 기다림의 여행이라지만 5시간을 시골읍에서 보내긴 좀 그렇다. 결국 버스정류장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이곳의 택시들에게 둘레길 손님은 흔하다. 타자마자 내 행색을 본 기사 아저씨는 “둘레길 가시오?”라고 묻는다. 위태마을로 데려다 달라고 하니 잘 알고 있다는 듯 더이상의 말없이 바로 출발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꼬불꼬불 난 길을 택시는 거침없이 달린다. 옥종면에서 출발한 택시는 지리산 산골짜기 마을을 향해 달린다. 위태마을에서 이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막상 혼자 걸으려니 뭔가 심심하다. 그래도 해 왔던 게 있으니 카메라도 준비하고 신발끈도 다시 맨다. GPS 지도도 다운받아 앱에 연결했다. 둘레길은 안내하는 표지판도 잘 되어 있고, 길 안내 매듭들이 나무에 걸려 있어 길을 놓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종종 길을 벗어날 때가 있고, 한참이나 안내하는 표지를 찾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앱으로 깔아놓은 지도는 유용하다. 

지리산둘레길 10구간 위태-하동호 코스 지도

 

지리산둘레길 11구간 하동호-삼화실 코스 지도

 

90년대 초반에 지리산을 다닐 때에도, 2000년대에 백두대간 일부를 혼자 걸을 때에도 종이 지도는 필수였다. 시중에서 파는 등산지도를 비닐로 싸아서 눈비에 젖지 않게 하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자주 꺼내보고는 했다. 지금은 종이 지도가 필요 없다. 조그마한 액정 화면에서도 얼마든지 확대 축소가 가능한 지도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자주 꺼내 보다 보면 배터리가 금방 소진된다. 결국 배터리를 하나 더 챙겨야 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지도만 보는 용도가 아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이걸 또 SNS에 올린다. 문자나 카톡이 오기도 하고 급한 전화가 올 때도 있다. 지도 앱을 계속 실행시키니 1회용 보조 배터리로도 어림없다. 결국 괴물 배터리를 하나 구했는데, 이 무게가 가방 하나 만큼이나 무겁다. 생각해 보면 그냥 종이 한장 들고 다니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싶다. 결국 내 어깨와 무릎은 더 많은 무게를 견뎌내야 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다. 

세상은 참 이상하게 변한 거다. 전기와 전자 장비가 내 생활 반경을 확대해 주었지만 최첨단과는 동떨어진 깊은 숲속을 걷겠다고 나서면서도 주렁주렁 매달린 전기 전자 장비가 내 몸을 상하게 한다. 다시 돌아와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도 이런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내 여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걸까?

인류의 욕망은 이상 기후를 가져오면서 지구 곳곳에서 홍수와 가뭄을 일으키고 있다. 재난은 최부국 미국에도, 최빈국 스리랑카에도 찾아왔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두 나라의 빈부격차만큼이나 다르다. 빈부 격차만큼이나 지금의 기후 이변은 인류가 처한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다. 교황청도 인류 중심주의에 빠져 있던 교회의 과거를 반성하고 지구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변화해야 하며 당장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 등을 멈춰야 한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자연에 대한 관심, 빈자들을 위한 정의, 사회에 대한 헌신과 내적 평화 간의 결합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 - <찬미받으소서> (프란체스코 교황)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자연에 대한 관심 보다는 도시 문화의 욕망에 사로 잡혀 있고, 빈자들을 위한 정의가 아닌 부자들을 위한 공정을 외치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헌신보다는 개인의 이기적 처신을 우선한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의 내적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 인류의 그러한 모습에 대한 교회의 통렬한 반성이 저 문장으로 탄생했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느림을 생각했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고, 천천히 걷는 여행이었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잊혀진 ‘일상을 회복’하는 길도 너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란다. 일상을 회복하자고 하는데, 그 ‘일상’이 어떠했던가? 너무 불필요한 만남이 많지는 않았는지, 너무 열심히 소비했던 건 아닌지, 허상에 사로잡혀 물건을 사들인 건 아니었나 생각했다. ‘보복 소비’라는 말이 왜 떠돌고 있을까? 이 단어가 무섭다. 어떻게든 돈을 쓰게 만들어 자원을 낭비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게 미덕일까? 이게 선행일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저 말이 가진 무자비함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일상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자연과 내면의 평화는 언제쯤 회복을 맞이하고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하동의 대나무숲. 빛이 새어들 틈도 작아 땅에서는 다른 풀들이 자라기 힘들다. 바람이 불면 이파리들이 부딪는 소리가 스산하다.

 

하동호 주변 산책로.
하동호
10~11구간 시종점




우연으로 엮인 길 

첫 번째 우연. 60대 노부부와 같이 걸었다. 11구간을 걷고 있을 때였다. 여성분이 먼저 길을 물어왔다. 이 분들도 지리산 둘레길은 초행길이었다. 나 역시 초행길이라 자신하긴 어려웠지만 지도 어플로 확인해 길을 안내해 드렸다. 두 분이 내 앞에서 길을 나섰다. 이내 쫓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앞서 10구간을 다 걷고 11구간을 걷던 터라 힘이 부쳤다. 두 노인은 지친 내가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잘 걸으셨다. 그래도 부지런히 가다 보면 정자 아래에서 쉬거나 쉼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두 분과 다시 만난다. 자꾸 만나니 말도 섞게 되고, 인생과 여행 이야기를 나눈다. 펼쳐 놓은 간식거리를 서로 권하고 사양하고를 하다 보니 녹초가 된 몸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진다.  

  • 코로나라서 음식 나누는 것도 함부로 못하네요.
  • 괜찮습니다, 어르신. 저도 이것저것 챙겨왔어요.
  • 아내와 함께 해파랑길을 다 걷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이 길도 참 좋네요.
  • 대단하십니다. 저도 아내와 함께 걸었는데, 아내가 관절이 좋지 않아 더이상 걷지 못해요. 그래서 이렇게 혼자 다닙니다. 
  • 아휴, 젊은 나이일텐데, 이렇게 좋은 구경을 못하는 것도 그렇고···· 아쉽겠네요.
  • 네, 많이 속상하네요. 저도 아내 두고 혼자 이렇게 오는 게 좀 미안하기도 하고요. 

 

해파랑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도보 여행이 주는 즐거움,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 하는 부부의 이야기는 한없이 부러웠다. 건강과 부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가치있을까? 둘다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지만, 그런 행운은 극소수만이 누릴 것이다. 이미 내 삶은 부와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저 건강한 몸으로 계속 이런 소소한 도보 여행을 계속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노부부는 나보다 저만치 앞서서 계속 나아갔다. 어린(?) 나는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만 쫓아 갔다. 11구간의 끝 삼화실에서 다시 또 만나고 헤어졌다.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두 분을 만날 날이 있을까? 11구간을 마치고 한숨 돌렸다. 한꺼번에 두 구간을 걸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여정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도상으로 22km를 걸었더니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중간에 하루를 묵을 계획이었지만, 목적지까지 완주했으니 바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삼화실에서 택시를 부를까 했는데, 마침 들어오는 택시가 있어 잡아타고 하동시외버스터미널로 부탁했다. 

 그런데 기사분의 택시 내부가 익숙했다. 인연의 씨줄과 날줄이 다시 엮였다. 아침에 옥종면에서 위태마을까지 태워 준 그 기사분이었다. 

"원래 삼화실에서 하동시외버스터미널은 제 택시가 다녀서는 안되요. 여기 시골 택시들도 다 자기 구간이 있어서 가급적 지켜야 하는 거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손님을 태웠는데, 이게 또 참 신기한 일이네요."
"그러게요. 저도 콜택시를 부르려던 참에 마을로 들어오는 택시 보고 잡은 건데···· 이런 우연도 있네요."

하동이 작은 고장이라고 해도 면적으로 보면 그렇게 작은 곳이 아니다. 이곳에도 12개 면이 걸쳐 있는 곳이라 작은 곳도 아니고 강과 산이 뒤엉켜 있어 길도 얽히고 섥힌 곳이다. 우연의 실은 그 얽히고 섥힌 곳에서도 엮어 주는 힘이 있는 것일까? 

11구간.

 

 세상에는 많은 우연이 있다. 대부분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우리는 우연을 무척 사랑한다. “아니 이런 우연이····”라는 말은 우리가 우연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려 주는 관용어다. 뜻밖의 일이 일어났을 때 즐겨 쓰는 말이며, 기쁜 일이 있을 때 다르게 표현하는 말로 이 말이 쓴다. 우연은 그렇게 모든 일의 시작이다. 유럽의 신대륙 발견이 그러했고, 페니실린의 발견도 그랬다. 인류의 위대한 탐험이나 엄청난 과학적 성과는 이 우연에서 시작된 일이다. 우연은 사실 우연이 아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의 확률로 일어나게 된 일이다. 그러니 우연은 곧 발견하지 못한 필연인 셈이다. 여러 우연은 사건과 만나 역사가 된다. 그렇게 우연이 역사에 남게 된 셈이다. 

여행은 이런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우연을 의도적으로, 역동적으로 생산해 내는 일이다.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은 여행에서 만들어지는 우연의 역동적 사건들을 통해 극복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뜻있는 여행이 중요하다. 물론 모든 우연이 역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억 속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 갈 사건들도 얼마나 많은가? 다만, 수많은 우연의 희생 속에서 필연이 만들어지고, 그 필연이 인연을 만들며, 인연들이 엮이면서 역사가 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사랑도 그렇고, 인류사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역동적으로 만들어진 이 ‘우연’들을 어떻게 다시 엮어내 ‘역사’로 만들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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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자전거 펑크를 때워야 했다. 자전거 뒷바퀴가 펑크난 건 벌써 3주 정도된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전거 펑크를 방치해 놓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자전거를 잘 타지 않기 때문. 아무튼 펑크난 자전거를 끌고 반나절을 보냈다. 이곳저곳에 들려보아도 자전거 펑크만 때우는 일은 이제 하지 않는다. 노고 대비 비용이 너무 적기 때문일 거다. 오래전 5000원 정도면 펑크를 때울 수 있었다. 내심 15000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13000원을 주고 튜브를 교체해 주었다.

그럴만하다. 펑크를 때우는 일은 튜브를 교체하는 일에 비해 더 많은 노동력이 들어간다. 아무래도 펑크의 원인 파악을 해야 하며, 펑크난 위치를 정확히 찾아야 하는 것 때문이다. 그러니 튜브 자체를 교체하는 일이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자전거 타이어의 튜브는 가격이 매우 저렴하니 가능한 일이다. 튜브 자체의 가격이 비싸다면 이뤄지기 어려웠을 거다. 자전거 수리나 정비와 관련한 공식 공임비는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온다. 그러나 거기에도 이제는 타이어 펑크 수리 관련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튜브 교체 비용만 나온다.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bss_b&logNo=221832779765



펑크 패치를 이용해 기존 튜브의 펑크를 때우던 방식이 이젠 튜브 자체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전에 비해 자원의 소모는 더 커진 셈이다. 사람의 노고에 대한 가치를 더 높게 쳐주면서 벌어진 일이지만 적당한 공임비를 주는 방식이 아닌 생산품의 구매를 통해 이뤄지는 서비스 방식이 된 것이다.

높아진 자본주의적 생산이 가진 모순의 하나 아닌가. 튜브의 생산 비용이 턱없이 낮아지고, 임금의 가치는 계속 높아지면서 작은 조각으로 타이어 튜브의 펑크를 때우는 비용보다 아예 튜브 전체를 교체하는 비용이 더 효율적(비용)이 된 세상이다.

이런 현상은 가전제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보통 냉장고의 수명이 10년 이상인데, 그 냉장고가 이상이 생겼을 때 수리하려면 수리비와 부품교체비(냉장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해당 부품이 없거나 구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수리에 필요한 기간 등등의 문제로 아예 냉장고를 교체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말이 있다. (가전제품별 교체주기는···고장난 냉장고 '고쳐 써? 새로 사?')

고쳐쓰고 아껴쓰는 건 이제 옛말이 되는 걸까? 내가 세상이 바뀌는 것에 조금씩 뒤쳐지는 걸까? 아껴쓰는 건 어찌어찌 해 보아도 고쳐쓰는 일은 이제 쉽지 않다. 아니 아껴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지도. 세상은 지금, 이 시간을 잘 즐기라고 한다. 아끼지 말고, 마음껏! 물건도 아끼지 말고 지금 당장 사고 사용하고 즐겨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물건의 가치보다 경험의 가치가 더 중하다. 세상은 더 좋아진 것일까? 그 많은 물건들은 금방 쓰레기가 되고 지구 환경에 더 악영향을 줄텐데 그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결국 소비를 줄이는 것이 지구 환경에 더 유익하다. 그러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덜 산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을 좁히고, 더 작은 공간과 더 단순한 생활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 될 것이다.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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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산 출렁다리 앞
소금산 출렁다리 앞 포토존
울렁다리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협곡의 모습. 멀리 보이는 다리가 울렁다리이다.
소금산 울렁다리. 출렁다리를 지나 한 20여분 가면 도착한다. 여기로 가는 길도 아찔함을 맛볼 수 있다.
울렁다리는 바닥이 유리인 구간이 있다. 바닥을 바라보며 그 위로 걷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원주의 간현광광지 안에 있다. 날이 풀리면 줄서서 건너야 한다고 하는데, 새벽에 출발한 덕분인지 그나마 좀 한산했다. 다만 내려올 때에는 주차장도 거의 가득 찼고사람들이 오르는 인파도 제법 많았다. 만일 출렁다리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이른 아침에 오르는 게 좋을 듯하다.

소금산 계곡에서는 포크레인을 비롯한 중장비들이 관광지 개발 공사에 한창이었다. 관광지에 차를 주차하고 식당을 찾아 식사를 먼저 했다. 아침부터 막걸리를 한 사발 돌리는 것도 아저씨 여행의 꿀맛이다. 소금산 출렁다리 입장권은 1인당 3000원. 하지만 2000원을 원주 사랑 상품권으로 돌려 준다. 원주시 식당이나 시장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나중에 원주 전통 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상품권을 사용했다.

관광지 입구에서 출렁다리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물론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어 어렵지 않지만 다리가 불편한 분들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잘 걷는 사람은 20여분 정도 부지런히 올라가면 다리 초입에 닿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쉬엄쉬엄 올라가면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출렁다리의 길이는 200m. 길이도 길이지만 협곡을 잇는 높이가 남다르다. 자그마치 100m높이에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100m 상공을 흔들리면서 걸어보는 느낌은 제법 짜릿하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더 흔들릴까?

출렁다리를 지나 최근에 개통된 울렁다리로 이동했다. 울렁다리로 향하는 길에서도 놀라움이 계속된다. 절벽에 심을 받고 거기에 받침을 얹어서 길을 만들었다. 사실상 산길이 아니라 절벽 옆길을 타고 이동하는 셈이다. 인간의 기술력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울렁다리는 출렁다리보다 길고(353m) 높이도 더 높다(200m). 중간에 유리 바닥을 만들어 아찔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그래도 다리 밑을 보기 보다 다리 중간에서 건너편 소금산 협곡의 절경은 꼭 눈에 담고 가자.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곳 출렁다리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들이 앞다투며 관광지 현수교 제작에 매달리고 있다.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를 비롯해, 울산 대왕암 출렁다리(303m), 충남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600m), 충남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402m), 전북 순창 체계산 출렁다리(270m 높이90m), 충북 제천 청풍호 옥순봉 출렁다리(222m) 등등... 대충 인터넷에 '출렁다리'라고 검색하면 쏟아져 나온다. 산업 발전의 성과는 오래 걸리기 마련이지만, 이런 토목 사업을 통한 관광지 개발은 금방 눈에 띈다. 성과 위주 보여주기식 개발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문화 산업의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긴 할 거다. 그러나 미래의 먹거리 개발을 위해서는 지역의 지도자라면 보다 높고 큰 혜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출렁다리가 만일 찾아오는 관광객이 줄어 관리비만 먹는 하마가 되어 관리 인력과 재정이 줄어들었다가 큰 사고로 이어진다면 누가 책임질까? 성장만을 염두하는 개발이 갖는 한계다.

박경리 문학공원 내 전시관에 있는 시.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후 쓴 시. 온갖 고통을 글로써 극복하려는 사마천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던 것일까.
박경리 문학의 집 전시실에 마련된 전시물이다. 대하소설 &amp;amp;lt;토지&amp;amp;gt;의 주요 장면들의 내용을 펼쳐 놓고 사건에 관계된 여러 장치들로 실감있게 나타내 주었다. 텍스트와 책, 사물을 통해 전시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동상. 편안한 얼굴로 어느 한 곳을 지그시 응시하는 선생의 모습에서 &amp;amp;lt;토지&amp;amp;gt;의 마지막 부분을 집필하던 그이의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박경리 문학공원에도 들렸다. 2010년이었던가, 2011년이었던가. 아이가 2살일 때 안고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때도 이곳에 들렸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전시관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때로는 그렇게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안심한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인데도, 박경리 선생은 저 돌 위에 변함없이 한쪽 팔을 대고 기댄채 앉아 있다. '잘 지내셨어요?' 마음으로 재회의 인사를 나누니 편안해진다.

이곳은 선생께서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며 대하 장편 소설 <토지>의 마지막 4부와 5부를 집필하고 완결지었던 곳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힘들게 자식을 키워내면서도 자신의 속에 담긴 응어리와 한을 글로 풀어내었던 한 인간의 삶의 흔적을 본다.

알 것 같다. 쉽지 않고 힘든 일이다. 그런 그의 아픔과 고통이 그가 쓴 시 <사마천>에 잘 드러나 있다.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도,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들에 대한 애달픔도 글을 쓰면서 위로받았을까. 모든 사람이 그럴 거다. 내가 하는 일이 언제부턴거 경제적 문제와 삶의 철학의 경계에 서는 일이다. 그저 밥벌이로 하는 일이었는데, 그 일이 어느날부터 내 인생에 대한 깊은 연민과 통찰을 주는가하면, 반대로 인생의 깊은 철학에서 시작되었던 작업이 어느새 밥벌이로 연결되어 나와 가족을 연명하게 하는 일도 있는 거다.

원주를 간다면 그 어느곳보다 이곳 박경리 문학공원에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용소막 성당 앞 계단
용소막 성당 출입구 앞.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들. 안에서는 예배가 행해지고 있다.
성당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느티나무
나무에 잎이 무성해진 여름이면 붉은 벽돌 성당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용소막 성당은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다. 건물이 지어진 건 1915년. 약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 자리에서 지역민들의 평안을 기도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당도 성당이지만 성당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들이 영묘하다. 성당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모인 성당을 둘러싼 아름드리나무들. 성당보다 더 오랜 역사로 이 땅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 150번의 사계를 지나오고 처음 찾아왔던 사람의 자손과 그 자손의 자손이 찾아오는 것을 지켜보는 저 생명들은 이날 이곳을 찾은 우리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원주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였던 용소막 성당을 한바퀴 돌면서 이번 여행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그 겨울 원주, 우연 2022. 대학 선후배 동기 사이인 우리 넷은 실로 십여년의 세월을 건너 오랜만에 함께 긴 밤을 같이 보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도 풀어 보았지만, 편안하고 시답지 않게 오고간 농담들이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싶었던 시간이 아닐까. 경직된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푼 뜻하지 않은 여유. 이제 좀 마음의 짐들을 내려놓고 살면 좋겠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내 주위의 사슬들을 끊어내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의 마음을 드넓은 평야에 선 초인처럼 깊은 협곡을 바라보는 의인처럼 잠시만이라도 자신만의 세상을 다시 꿈꿀 수 있었던 시간이었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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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처음으로 찾아간 북촌손만두집.
만두가 유명하다고 해서 함께 간 이들은 만둣국을 주문했고
난 얼큰 칼국수를 주문했다.

만둣국보다 먼저 칼국수가 나왔다.
국물은 육수가 아닌 채수를 내린 것인지 깔끔하다.
얼큰함과 칼칼함도 조화롭다.
버섯과 계란지단 등 고명도 나쁘지 않다.

면도 잘 끊어지지 않으면서도 질기지 않고,
밀가루 냄새도 나지 않으며
미끄덩거리면서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간다.

7500원의 가격이면 싼 건 아니지만
요 동네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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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2021년)에는 자전거를 82회 탔고
총 870.8km를 주행했다.

재작년(1530.5km)에 비해 절반을 간신히 넘은 수치로 많이 저조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는? 음, 목표치를 놓고 달리는 일은 하지 않을 거다. 스스로를 얽매이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건강한 생활과 루틴을 만드는 일은 계속해야겠지. 여전히 생활에 정답을 알 수 없다. 이 나이 먹고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 못한 가엾은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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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 지리산둘레길의 아홉 번째 덕산-위태 구간을 걸었다. 이 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경남 산청군에서 하동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 포장도로길을 많이 걷는다.
- 여러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 해발 482m의 중태재(갈티재)가 가장 높은 곳이다.
- 대나무 숲이 종종 지나가게 된다.

구간 길이는 약 10.2km이며 쉬지 않고 걷는다면 3시간 정도면 무난히 완주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길이다. 덕산, 송하, 위태 마을은 논농업 중심이지만, 중태마을이나 유점마을은 산 속에 있어 주로 감나무 농장을 하고 있거나 다양한 밭작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여러 산촌을 보아왔지만, 이번에는 산촌마을 한가운데로 통과하는 여정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지나가는만큼 여행자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산천재에 위치한 8-9구간 시종점.
산천재. 하늘은 맑았고, 12월 기온으로는 좀 포근한 편이었다.
멀리 눈쌓인 지리산이 보인다. 천왕봉과 싸리봉 등의 능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산천재를 벗어나 덕천강의 강둑길을 걷는다.

산천재에서 시작된 걸음은 먼저 덕천강변길로 이어진다. 덕천강은 남강으로 흘러들어가 낙동강을 만난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물의 여정이다. 멀리 눈쌓인 지리산을 보면서 걷는 기분이 묘하다. 겨울산은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이 주는 아름다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우 매력적이지만 위험하고, 눈 부시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쉽게 허락되지 않으며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혹독하다. 이번 겨울은 더더욱 위험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산장(대피소)들이 운영을 하지 않는다. 눈덮힌 지리산을 보면서 내년 겨울에는 꼭 저 산에 올라보겠다 다짐한다.

덕천강을 넘을 수 있는 징검다리. 원래 코스는 이 길이 아니다. 두물이 만나는 곳에 있는 원리교와 천평교를 넘어야 한다.
송하마을 이정표
9구간 초반에는 포장길을 걷는다. 차량통행은 드물지만 가끔씩 빠른 속도로 차들이 이동하니 조심해야 한다.
철조망에 다닥다닥 붙은 리본들. 초반 여정에서는 이정표나 리본을 보기가 어렵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20번 국도를 잇는 덕산1교이다.


9구간에서 덕천강을 넘은 이후로 초반 여정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마을을 지나는 것도 아니며 그냥 차도를 내내 걷는다. 마을이라도 나오고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그렇게 지루하진 않겠지만 마을도 보기 어렵고 가끔 지나다니는 차들만 있을 뿐이다. 왼쪽으로 조례산을 끼고 20번 국도가 통과하는 덕산1교 다리 밑을 지날 때면 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나온다. 덕산1교 다리를 지나면 강과 이별하며 중태마을을 향하는 길로 이어진다. 도로 양옆으로 황량해진 들판이 깊어가는 겨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겨울은 겨울대로의 멋이 있다. 종잇장처럼 얇게 스며드는 햇살이 무척이나 반갑고,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옷길을 여미게 하면서도 추수를 끝낸 들판의 떨어진 지푸라기들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겨울의 정취를 실감하게 해준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남은 여정을 걱정해야 하지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면 눈발이 휘날리는 시골길을 걷는 것도 좋은 이야깃거리로 전할 수 있을 듯싶다.

중태마을에 위치한 지리산둘레길 안내소와 당산나무
지리산둘레길 안내소. 스탬프가 준비되어 있다.
곶감을 말리는 창고. 마을마다 이런 창고들을 갖추고 있었다.
가정집에서는 처마에 매달아 곶감을 말리고 있었다. 때깔이 곱다.
시냇물과 대나무 숲 오솔길이 잘 어우러진 풍경
마을은 점점 더 산으로 올라간다.
"농작물에 손대지 말아 주세요. 마을주민께서 애써 키운 자식과 같은 재산입니다."


옛부터 내려온 마을에는 언제나 마을을 지키는 나무가 있다. 보통 마을 입구에 있는 그 나무를 당산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수호나무인데, 매년 정월이 되면 마을주민들이 나무 아래에 모여 제를 올리곤 한다. 마을의 지킴이가 되어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고, 행운이 들어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중태마을 입구에도 그런 나무가 있다.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센터 앞에 있는 나무이다. 나무 아래에는 정자도 마련되어 있어 나그네들의 다리쉼을 돕기도 한다. 중태마을의 당산나무는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렸는데, 그 자리에 다른 자리에 있던 나무를 옮겨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중태 마을은 근대사에서도 등장한다. 우금치에서 크게 패한 동학농민군들이 이곳 덕산까지 후퇴했는데, 이를 쫓는 일본군과 중태 마을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기 위해 매복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울창한 대나무 숲
중태마을을 벗어나고 한참 걷다가 만난 쉼터. 잔잔한 음악과 함께 둘레객들을 응원하는 푯말이 인상적이다.
쉼터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이렇게 꾸며 놓았을까?
대나무숲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길 바로 옆은 잣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중태마을을 벗어나 유점마을로 향한다. 옛이름들을 보면 유점골, 놋점골, 불당골이라는 골짜기 이름들이 있다. 모두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유점골은 유기 그릇(점은 '그릇을 만드는 곳'을 뜻하는 옛말이다)을 만드는 마을이었고, 놋점골은 놋그릇을 만들던 곳이었다. 불당골은 불당이 있던 곳을 의미한다. 지금도 그 골짜기 어딘가에는 사람이 살고 있나 보다. 차량이 드나든 흔적이나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옛날 변변한 먹을거리도 없고 오가기 쉬운 곳도 아닌 이 첩첩산중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걷는 일은 조심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삶의 터전에 낯선 이들이 드나드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최근 아파트 단지 내 공간이 사유지라는 명목으로 타 지역 아이들이 놀이터에 들어오는 것도 막는 인심을 생각하면, 소수의 마을 주민들만이 공유하는 그 길을 낯선 나그네들에게 내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부수적인 피해도 없지는 않았을 터. 애써 키운 농작물이나 과수에 손을 대는 객들도 있을 것이고, 내어 준 길 말고 다른 길로 드나들며 길을 어지럽히는 이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나물이나 약초에 손을 대는 사람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산촌 주민들도 있다. 곳곳에 안내판을 세우고 주의를 당부해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된다.

이번 여행은 특히나 여러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다. 어르신들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인사드리고, 마을 안을 통과할 때면 대화도 조심하고, 흘러내린 마스크도 다시 고쳐 쓴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따로 표현할 수는 없고 그저 마음가짐,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중태재 오르막길 입구
중태재 벤치
중태재에서 내려오는 길
대나무숲
중택지.
지리산둘레길 9-10구간의 시종점

중태재는 해발고도 482m로 그다지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이 산청군 시천면과 하동군 옥종면을 연결해 준다. 중태재를 내려오다가 보면 대나무숲을 관통하게 된다. 이번에는 대나무숲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다. 대숲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할 거라 상상했다. 내 어릴적 대숲은 한여름 낮이어도 서늘하고 컴컴하여 귀신이 나올 것처럼 스산했다. 그런데 이미 댓잎들을 많이 떨구어서인지 그리 컴컴하지도 않았고, 대나무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오히려 초록의 대나무에 튕겨 반짝반짝 빛이 났다.

대숲은 그리 길지 않다. 그래도 이번 구간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다. 이 숲을 빠져나와 조금만 더 걸어내려가면 중택지에 도착한다. 중택지는 작은 소류지이지만 풍광이 좋다. 여기서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면 위태마을이 나온다.

위태마을에 들어서니 멀리 개짖는 소리와 닭우는 소리가 시끄럽다. 오전 8시 40분 즈음 덕산에서 시작된 둘레길이 12시 10분 즈음 위태 마을에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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