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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입구 줜막걸리아노 내부 조명
홍대입구 줜막걸리아노 창가

 

어제 친한 선배를 만났다. 함께 마신 술은 막걸리였다. 막걸리는 시큼하다. 달지도 쓰지도 않다. 보통의 서민들이 일상에서 마시던 그 술.
거기에 육전이 안주로 나왔다. 얇게 저민 쇠고기에 계란옷을 입혀 지진 음식이다. 먹으면 계란의 맛이 먼저 혀를 부드럽게 감싸고 다음에는 질겅질겅 씹는 고기의 느낌이 입안을 가득 채워준다. 오래 씹을수록 쇠고기의 육즙이 짙게 배어들면서 먹걸리의 시큼함을 잊게 해준다.


육전은 씹을수록 고소하다
막걸리는 역시 배다리 막걸리가 최고
줜막걸리아노의 부대찌게.
네 종류의 막걸리를 마셨다.


술자리는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태원 클라스". 드라마에서는 술, 특히 소주잔을 입안에 털어넣는 장면이 무척 많이 나온다. 유독 술이 달다고 느껴지면 그날 하루는 매우 인상깊은 날이었다는 것이라는 명대사가 생각나서 술을 소주로 바꿀까도 고민했다. 오늘 하루는 인상적이었을까?

소신과 믿음, 신뢰에 대한 내용이 강조되었던 드라마 속 대사들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소신을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한번만..."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에서 박새로이는 그렇게 사람들이 변하는 거라 말했다.

총선이 내일이다. 역시 "이번에는..." "한번만..."을 말하며 표를 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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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5코스를 걷기로 하고 토요일 새벽에 배낭을 차에 싣고 떠났습니다.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아이도 새벽 4시에 씩씩하게 일어나 짜증도 부리지 않고 냉큼 올라탔지요. 새벽 고속도로는 칠흑같이 어둡고 오가는 차량도 드물었습니다. 아내는, 보통 때라면 매화 축제 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광양 매화마을을 찾아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함양군 휴전면 원기마을에 도착한 건 오전 8시 정도 였습니다. 전날까지만해도 비는 저녁 늦게부터 올 거라는 예보를 확인했었는데요, 그에 따라 이날의 트레킹은 오후 3시에 끝낼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원기마을에 도착하자마나 살짝 싸리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그칠 거라 생각하고 아이에게는 우비를 입혔고 전 그냥 맞으며 걸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이 눈이 금방 그칠 거라면 차에서 조금 기다려 보자고 하더군요. 자고로 아내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차에서 1시간만 기다려 보기로 했는데 싸리눈이 함박눈이 되어 쏟아지기 시작하고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둘레갈 걷기는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함양에서 광양으로 차를 몰기 시작하면서 눈은 비로 바뀌었고 양도 줄었지만 이미 질척해졌을 산길을 걷는 건 다음으로 미루었네요.

그렇게 광양 매화마을과 구례 산수유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걷기 여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여행이라는 게 뜻밖의 사건들이 주는 재미와 풍경들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지겠죠.

둘레길 이야기는 다음에 실어 보낼테니 이번에는 남녘에서 올라오는 꽃소식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산수유 나무에 핀 꽃들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
산수유공원에 있는 지리산 마스코트
숙소 앞에 있던 한글공원
매화마을 초입의 두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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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구간 마지막 마을인 금계 마을의 배추밭 풍경. 

 

지리산 들녘의 가을 추수는 거의 끝났다. 하지만 밭에서 자라는 배추들은 찬이슬을 맞으며 속을 채우고 딴딴해지는 시기이다. 배추의 수확은 보통 11월 초순경이다. 이때부터 집집마다 김장 준비에 바빠진다. 대개는 11월말에 김장을 담근다. 둘레길에서 만난 배추들은 무척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배추의 속이 단단해야 좋은 배추다. 속이 텅빈 배추는 무르기 쉽다. 속이 단단한 배추가 되기 위해서는 배추가 다 자란 뒤가 아니라 배추잎이 땅위에 나오기 시작할 때 정해진다. 처음부터 배추잎이 풍성하게 나와야 커서도 속이 꽉찬다. 배추만 그런 게 아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반이라지만, 그 시작을 풍성하고 단단하게 해야 마무리가 꽉 찰 수 있다. 

배추들이 김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배추를 볼 때마다 맛있게 갓담근 김치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치를 담그는 시기는 기온에 영향을 받는다. 너무 따뜻하면 김치가 빨리 익어서 안되고, 너무 늦으면 김치가 얼어서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기술은 김치의 익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의 수확 시기마저 조절할 수는 없다. 배추의 파종과 수확은 자연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배추의 수확은 11월 초순경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자연의 시간은 늘 한결같다. 나와 아내와 아이는 11월 2일 그 시간 속으로 달려갔다. 속을 꽉 채운 배추처럼 우리의 여정도 꽉 차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 다시 차를 몰아 4구간의 마지막 지점 동강마을에 도착한 건 8시 40분 정도. 하지만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난 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시골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떨어지는 낙엽과 흘러가는 구름으로 바람과 계절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도시 속에서 언제 이런 고요와 평화를 느껴볼까. 그렇지만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주변 풍경을 보는 일이 어색해서인지 자꾸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계속 걷기 여행을 하겠다면 이런 시간에 빨리 익숙해져야겠다.  

동강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3구간 종착지였던 금계마을에서 이날의 지리산둘레길 4구간을 시작한다. 이번 둘레길은 엄천강을 따라 6개의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다. 산길도 있지만 용유담을 지나서는 시멘트나 아스팔트길도 걸었다. 의중마을을 지나 이어진 산길과 송전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맞이한 낙엽떨어지는 길, 운서마을과 구시락재로 이어진 산길 등이 호젓하게 걷기 좋았다.  

 

아침은 쌀쌀했다. 동강마을 옆 원기마을에서 금계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가 춥다고 해서 담요를 둘러주었다. 12월에도 겨울의 시골 들녘을 걸어보고 싶은데, 아이가 떠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강하게 키우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난 준비되어 있는가?
원기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 버스로는 30분이면 이동한다. 다만 버스를 한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먼저 온 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쳤고, 다음에 왔던 버스는 금계마을로 가지 않는다고 하여 보냈고, 세번째 온 버스를 탔다. 두번째 버스가 금계마을로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전히 의문이다. 그 기사님은 금계마을로 가지 않는다고 말했을까?
의탄교를 건너면서 임천을 사진으로 담았다. 임천은 용유담에서부터 엄천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수량은 적었지만 맑았다. 용유담을 지나면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내려온 물이 이곳에서 합류한다. 
지리산둘레길 4구간은 의탄교를 건너 의중마을에서 벽송사-서암정사 방향으로 가는 산길과 임천을 끼고 가는 길로 갈라진다. 우리는 좀더 편한 임천길을 택했다.  
의중마을 쪽 큰 나무. 나무들이 가을에 물들어 간다. 
대숲에서 바람 소리를 들었다. 소나무는 홀로 대숲과 함께 자랐다. 치고 올라오는 대나무의 성장 속도와 바닥에서 우후죽순으로 뻗어가는 생명력을 소나무가 어찌 혼자 감당했을까. 그저 신기하고 기특할 뿐이다. 
물들인 나뭇잎은 보기가 쉽지 않았으나 떨어진 나뭇잎들이 지천에 깔렸다. 지난밤 이슬로 젖어 있어서 그런지 낙엽밟는 소리가 축축하다. 

 

대숲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서 맞는 아침햇살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멋진 풍경이다. 
보호수들은 200년 이상을 살았다. 이제 막 10년을 살고 있는 아이와 50년도 채 못 산 우리 부부가 우러러 볼만하다. 

 

다른 나무들이 서둘러 겨울을 준비하며 가을에 물들어가는데, 대나무는 홀로 초록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이다. 색의 향연이다. 
햇살이 잘 드는 곳의 낙엽은 잘 말랐다. 두텁게 쌓인 낙엽들을 밟으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이파리가 비처럼 떨어졌다. 고요한 시골 숲길을 거닐면 자연히 말은 줄어든다. 
지리산 둘레길 주변의 나무들은 이제사 물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가 11월 초순이다. 멀리 산꼭대기 주변은 진작에 울긋불긋했다. 단풍을 보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었나 보다. 

 

멀리 보이는 다리는 용유교. 그곳이 용유담이다. 기암괴석들이 모여 잔치를 하는 것 같다. 

용유담을 중심으로 하는 엄천강은 뛰어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이 한때 지리산 댐의 예정지였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절경이 모두 수장될 뻔했다. 엄천강을 따라 이어지는 절경에 옛사람들도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넋을 놓게 되는 풍경들이 있다. 하나는 장작불이 타는 모습이고 하나는 개울이 여울진 곳을 소리내며 흘러가는 모습이다. 엄천강에도 여러 여울목들이 있다. 큰 기암괴석들이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자잘한 돌들 틈으로 물이 흘러들었다가 빠져나가는 곳도 있다. 용우담을 기점으로 엄천이라 불리는 이곳은 운봉고원에서 흘렀던 임천과는 그 폭과 넓이가 사뭇 다르다. 평원을 가로지르며 흘렀던 임천은 들판을 촉촉히 적셔주기 위해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로 다듬어진 강이다. 그것에 비해 엄천은 지리산 깊은 계곡으로부터 수만년에 걸쳐 내려온 물들이 거칠게 형성해 온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용유담부터 이어진 임천의 절경을 두고 옛사람들도 멋진 시를 지어 읊었다. 그것이 강용하의 '화산십이곡(華山十二曲)'이다. 엄천의 12곳의 풍경을 담은 5언 율시이다. 지금 사람들은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남기며 아름다운 풍경을 기리지만 옛사람들은 풍경을 시로 남겨서 후세에 전하니 더 기품이 있다. 그림이나 사진만으로는 100년 전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없다. 옛사람과 우리의 감회가 다르지 않음은 남겨진 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한자 한자 새겨넣은 글자들이 풍경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전해 준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고, 우리말을 넘어 외국어까지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이지만 정작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자신의 마음을 담는 글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또한 그러하다. 

화산십이곡에 관한 이야기 (관련 블로그로 연결됩니다.)

 

국화꽃의 종류로 보인다. 꽃검색을 해 보니 개국이라는데... 이런 꽃이 여러 곳에 무리지어 지천으로 피었다. 겨울이 되면 이런 꽃들도 다 지고 황량한 풍경을 맞이할 것이다. 
계곡에서 내려와 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물

 

엄천강을 따라 걷는 길은 지리산에서 가장 깊고 신비한 계곡이라는 칠선계곡 주변을 걷는 길이기도 하다. 깊은 계곡에는 당연히 신화와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비한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지어냈다. 보통의 인간이 살기 어려운 세계를 신화나 전설로 풀어내는 방법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했을 것이다. 

칠선계곡은 설악산 천불동계곡, 제주도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탐방예약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예약제 구간은 계곡 깊숙한 곳에 한정되어 있으며, 입구부터 비선담까지 4.3km구간은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예약 탐방을 통해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이것도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하다. 산을 즐겨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르막산길로 9.7km를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좀더 가볍게 칠선계곡의 비선담까지만 갔다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근처에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지리산둘레길 4구간에는 이 곳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까지 걸어서 찾아가는 일은 아이 때문에 어려웠다. 그래서 빠른 길을 택하고 대신 둘레길이 빨리 끝나면 그곳을 차량으로 이동해 가보려 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아이가 힘들어해서 결국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는 매우 이색적인 경험이 되리라 기대했지만, 아이가 힘들어하니 어쩔 수가 없다. 

 

운서마을 초입 고갯길에 있는 운서쉼터 

 

둘레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여러 고갯길을 넘었다. 고갯길을 넘으면서 점점 차오르는 숨을 오롯이 느껴 보는 일은 참으로 소중하다. 평상시에는 숨쉬는 것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던 내가 천천히 차오르는 숨을 느끼기 위함이 이 둘레길을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쉼터는 숨을 쉬기 위한 터이면서 다리를 쉬기 위한 터이기도 하다. 쉼터가 있는 고갯길이 좋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번 3구간의 등구령 고갯길 쉼터이다. 여기는 3구간 순방향에서는 등구령을 넘기 전이지만 역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라면 등구령을 넘은 다음이라서 막걸리 한사발 하고 남은 길을 가늠해 보면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이름있는 고갯길은 그곳을 넘나들었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웃음과 한숨이 깊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4구간에서는 구시락재가 있다. 구시락재를 지나면 동강마을이 멀리서 나타난다. 우리가 버스를 기다리던 자리까지 훤하게 드러났다. 아이가 아주 좋아했다. 

 

구시락재를 넘으면 재미있는 장승이 하나 있다. 장승은 입을 삐쭉 내밀고 나그네를 맞이해 주었다. 

 

지리산둘레길 4구간 근처에는 용유담과 오도재, 서암정사-벽송사가 볼만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서암정사를 들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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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4시간 반을 달려 인월읍 둘레길 안내센터에 차를 주차시켰다. 미리 준비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했다. 다시 먹을만한 끼니를 어디서 먹을지는 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골길이라도 라면 하나라도 파는 식당 없을까. 이제 길을 걷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끼니에 대한 걱정을 좀 덜었다. 필요할 때마다 준비한 간식거리로 약간의 허기는 채워진다. 그렇게 점심때를 건너 뛰고 걷다가 뒤늦게 밥을 먹는 일이 이제 익숙하다. 그래도 그렇게 먹는 밥이 맛있다. 그래서 굳이 식당을 미리 알아보거나 하지 않는다. 피곤한 다리를 쉬고 싶을 즈음, 아이가 배고프다고 보챌 즈음이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을 시기이다. 힘들었을 다리를 주무르고 있으면 상이 차려지고 따뜻한 밥과 국이 상 위에 오르면 그 맛과 향으로 그곳은 벗어날 수 없는 미식의 감옥이 된다. 잠깐의 식사 시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과 향의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이렇게 둘레길을 다니면서 가벼워 지는 짐과 함께 입맛도 가벼워진다.

둘레길을 걸으며 입맛도 소박해지더니 짊어져야 할 짐도 가벼워진다. 몇 번의 걷기 여행에서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이 더 분명해졌다. 필요 없겠다는 판단이 서면 짐은 가벼워진다. 입맛도 마찬가지다. 산해진미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허기가 최고의 반찬이 되는 이치다.

가끔씩 짐을 꾸리고 떠나는 일은 더 간소한 삶을 생각해 보게 한다. 가족을 이끌고 현관문을 나서면서 집을 다시 훑어 본다. 우리 식구가 다 함께 집을 비우지만 여전히 집안의 온갖 물건들은 이 집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 물건들은 살아가면서 짊어진 짐이다. 필요에 의해 들여놓았던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떠나는 내 등에 짊어진 짐을 생각하면 참 별 것 아니다. 결혼 후 네 번째 보금자리다. 이사를 많이 다녔다. 이사를 다니면서 집은 좀 더 커졌다. 아이가 하나 생겼다. 살림은 그만큼 많아졌다. 삶이 풍부해졌을까? 모르겠다. 여전히 난 빈곤하다. 머물면 쌓이고 떠나면 버리는 것이 사람의 삶과 죽음과 같다. 둘레길 좀 걷는다고 참 많은 생각에 빠진다. Why so serious?

 

인월면에서 2구간 시작점인 운봉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인월버스터미널을 이용한다. 주말 이른 아침부터 버스를 기다리는 분들이 제법 있다. 시골의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팔고 있는 인심좋은 아주머니(라고 하기에는 할머니)가 귀찮을법한 물음들에도 친절하고 상세히 답해 주신다. 시골 버스는 번호가 없다. 행선지를 잘 보고 타야 한다. 잘못 타면 한참 돌아 목적지로 갈 수도 있다. 당연히 기사님에게 내가 가는 행선지를 물어보고 타는 것이 좋다. 

 

운봉읍에서 이날의 둘레길이 시작됐다. 이번 일정은 1박 2일 일정으로 잡았다. 비교적 쉬운 2구간 운봉-인월 구간(약 9.9km)과 좀 긴 구간인 3구간 인월-금계 구간(약 20.5km)을 묶어서 한 번에 넘어갈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날 운봉-인월 구간을 지나 3구간의 일부 구간을 마저 걸어야 한다. 1박을 할 집은 장항마을이나 매동마을 정도로 잡고 갔다.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을지 미리 예측하기 어려워 민박을 예약하지도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민박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짜임새 있는 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여행은 변수가 좌우한다. 물론 그 변수는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해야겠지만, 숙박 집을 잡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한 변수 중의 하나일 거다. 민박집 예약은 점심시간을 넘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무사히 알맞은 시간에 민박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나름 천운이다. 아이가 너무 지쳐 있었고, 길이 좀 더 길어졌으면 예약을 취소하고 눈에 보이는 민박집으로 들어가거나 택시를 불러야 했을 거다. 그럴 때 민박집에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이가 있으니 같이 어려진다.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모여 람천을 이루고 흐른다. 둑방길에는 풀들이 가득했지만 나그네와 농부들이 지나가면서 길을 만들었다.

 

운봉읍을 빠져나와 운봉고원을 적시며 흐르는 람천을 따라 걷는다. 둑방길은 흙길이다. 나무가 적어서 한 여름에는 힘들 수도 있다. 또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일주일 내내 아스팔트길만 돌아다니다가 하루쯤은 이런 흙길을 밟아주는 것도 좋다. 사실 트레킹은 참 단순한 일이다. 그냥 걷는 일이다. 걸으면서 보고 듣는 일은 그냥 작은 선물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선물이지만 받으려 해야 가질 수 있는 선물이다. 둘레길 걷기는 그것을 받는 일이다. 단순하게, 간소하게, 담백하게...

 

송흥록 생가에 있는 동상. 생전 송흥록 선생의 모습을 표현한 듯. 

 

황산대첩비지를 지나면 비전마을이다. 비전마을 초입에는 가왕 송흥록, 박초월의 생가가 있다. 여기에 들어가면 옛집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송흥록 박초월의 판소리가 흘러나온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판소리 한 대목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박초월 선생의 별주부전 중 별주부가 토끼를 만나는 대목이 흘러나왔다. 

 

마을마다 마을을 지키는 나무들이 있다. 당산나무라고도 불린다. 마을들은 때마다 이곳에서 제를 지냈다. 
운봉은 흥부의 고장으로 불린다. 이곳에서는 곳곳에서 흥부를 상징하는 여러 표현물과 지명과 상표를 볼 수 있다. 둘레길에 만난 흥부와 박과 제비.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비빔밥이다. 나온 나물들이 푸짐하다. 부족하면 더 준단다. 넘칠만큼 넣고 싹싹 비벼서 배불리 먹었다. 

 

이튿날 3구간 등구재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계단식 논. 일부는 이미 추수가 끝났지만 아직 추수 전인 논들도 많았다. 

 

등구재, 또는 등구령이라고 불리는 곳. 인월에서 등구재를 넘어가기 전에 있는 쉼터. 여기서 막걸리 한잔을 할 법도 하건만 재를 넘어야 하는 여정을 앞에 두고 발목이 잡힐 거 두렵다. 등구재를 넘어 온 이들이라면 기꺼이 막걸리 한사발과 김치 한입으로 목을 축여도 좋을 곳이다. 
등구재 고갯길 위에서 올라오는 모녀를 찍었다. 길은 넓직해 우마차는 지나다녔을 것 같았다. 소형차 한대는 쉽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다.
등구재에서 한 컷
등구재에서 내려가는 길
금계마을 초입에서 만난 배추밭. 배추가 잘 익고 있다. 김장철이 돌아오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2~3구간을 마치고 난 후 금계마을에서.

 

 

미국의 호피족 명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 가장 긴 여행, 그것은 머리에서부터 마음에 이르는 여행이다.'

우리는 머릿속에 지식과 정보를 채우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졸업 이후에도 정보를 찾아 신문과 뉴스와 인터넷을 뒤지고 다닌다. 그렇지만 정작 마음 속에 오랫동안 쌓아온 나의 모습, 관습과 습관, 전통, 예의, 우정, 사랑 등은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머릿속 지식들은 산업화 이후 발견된 지식이 대부분이다. 씨앗을 언제 심고, 바람에 따라 내일의 날씨를 생각하고, 별을 보면서 길을 찾아가는 일은 지금의 우리에게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일에 불과하겠지만, 이는 인류가 수많은 시간을 쌓아오면서 내면에 체화한 지혜일 것이다. 가끔은 그런 일이 내 속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해 왔던 일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것이 어쩌면 머리에서 마음에 이르는 여행일 수도 있다. 둘레길 여행은 그런 일들의 하나가 되어 줄까. 여전히 길은 내게 어렵고 번번이 헤매게 하지만, 난 이 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이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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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시작이 어렵다. 혼자 실행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진행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자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서울둘레길을 마친 지난 봄에 그런 생각은 더 간절해졌다. 새로운 트래킹 코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마침내 지난 8월 18일 지리산 둘레길의 첫발을 내딛는 결실을 맺게 하였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멀리 지방으로 내려가는 거라 신경써야 할 게 많았다. 1박을 할지, 아니면 새벽에 출발할지에 대한 선택부터 자가용을 이용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트래킹 구간에 식수와 음식은 충분한지, 코스 내에 위험한 구간이나 길을 잃기 쉬운 구간은 없는지, 이정표 등은 잘 되어 있는지 등등 첫 트래킹에 앞서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게다가 서울 근교가 아니라 차를 이용해 3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만큼 이런 고민들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역에서 1박을 묵는 것은 여러모로 경제적 부담이 컸다. 물론 1박을 한다면, 그만큼 체력적 안배를 할 수 있고, 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트래킹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3명이 묵을 수 있는 적당한 숙소는 최소 5~10만원은 예상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1박을 하지 않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음에도 비용이 20만원 가까이 들어갔다. 하루에 쓰는 비용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고, 우리 가족의 경제 수준에서는 부담되는 지출이 될 수 밖에 없다. 토요일 일찍 잠을 청한 후 새벽 3시 경에 일어나 4시 경에는 집을 나서게 되었다. 

남원 주천면사무소에 도착한 후 주천면파출소 건너편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공용주차장은 버스 정류장과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주천-운봉 둘레길 구간의 시작점이다.

주천면 버스정류장의 무인 우체통
지리산 둘레길 안내 표지판 앞에서. 주천-운봉 구간의 시작점.

 

주천-운봉 구간은 총 14.7km 구간으로 지리산 서북능선(만복대부터 바래봉 등)을 바라보면서 걷는 구간이다. 운봉읍 지역은 해발고도가 높은 고원지대로 8월 중순의 여름에도 비교적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었다. 

 


시작점 표지판을 지나면 곧바로 개울을 하나 건넌다. 커다른 반석들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약간 미끄러웠고, 방심하여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물이 깊지는 않다. 발등까지만 살짝 젖을 정도였지만, 비가 많이 올 때는 이 개천도 금방 불기 때문에 이곳이 아닌 다리를 이용해 돌아가야 한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벼에 이삭이 나왔다. 초록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주천면 장안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주천-운봉 구간 지리산둘레길의 갈림길에서 만날 수 있는 장승 안내목. 
내송마을 앞에 돌탑들이 있다. 둘레길 나그네들의 건강과 무사안일을 빈다. 

 


내송마을을 지나면 곧바로 산자락으로 접어든다. 비교적 아침 일찍 시작한다고 나섰지만 여름해는 아침부터 강렬하다. 산자락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구룡치까지는 계속 올라가는 길인데, 초반부터 오르막을 걷다 보니 아이가 금방 지치기 시작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회덕마을 (2.4km)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개미정지에서. '정지'는 '쉼터'를 뜻한다. 너른 공간이 갑자기 나타난다. 운봉에서 구룡치를 넘어 온 사람들이 여기서 발을 쉬게 해 주었다. 내송마을 사람들도 여기에서 나뭇짐을 잠시 내려놓고 다리쉼을 했다. 

 

개미정지를 지나면 계속해서 오르막길이다. 구룡치까지는 산길을 올라야 한다. 약간 힘든 코스다. 
이날도 수고한 발들을 위하여 기념 촬영.
연리지. 여기 푯말에는 '사랑의 나무'라고 써 있다. 소나무 줄기 하나가 다른 나무의 줄기를 꼬면서 올라가 자랐다. 이것이 사랑일까? 

구룡치를 넘어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구룡치를 넘은 다음부터는 평탄한 길이 대부분이다. 특히 숲속 오솔길은 고즈넉하게 걷기에 좋다. 다만 물을 구하기 힘들다. 초반에 아이가 힘들어하면서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4통이나 준비한 물이 금방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가장마을의 민가에 들어가 부탁하여 다시 채워야 했다. 샘이나 물을 파는 가게가 드물다. 물 수급에 신경 써야 한다. 

중간에 만난 두 아주머니는 이 지역에 사는 분이었다. 운동 삼아 구룡치를 자주 함께 오가고 있다면서, 꼭 구룡치 폭포를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해 주었다. 그러나 구룡치를 넘으면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고, 정식 둘레길 구간을 걷고 싶다는 마음에 구룡폭포를 포기하고 평탄한 임도와 동네길이 주를 이루는 코스로 길을 잡아 나섰다. 아주머니 말로는 연리지가 있는 나무 근처에서 갈림길이 나오고 그 길로 가면 구룡폭포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구룡치에서 내려 와 잠시 지방도를 걷다 보면 멀리 회덕마을의 초가집들이 보인다. 관광용으로 지어놓은 거겠지 생각했는데, 빨래들이 널려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인다.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집이란 사람이 살아야 오래 가는 법이다. 다듬고 보수하고 고치고 새로 올리면서 집은 단단해진다. 수십년만에 보는 초가집이 반가웠다. 

덕산재를 끼고 도는 숲길은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짧고 쉽다. 게다가 고즈넉한 숲속 오솔길이라 걷기 좋다. 그 길의 끝에 무인가게가 있다. 캔맥주 2천원 생수 2천원. 컵라면도 먹을 수 있게 해놓았다. 우리 가족도 이곳에서 즐거운 둘레길 여행을 축복하며 간단하게 축배를 들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회덕마을의 초가집. 여행자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았을텐데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보였다. 빨래가 마당 한켠에 높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노치마을로 가는 길. 예전 백두대간을 잠깐 탈 때 노치마을로 내려온 적이 있다. 마을 뒷산의 수백년된 소나무가 있는 언덕배기는 매우 운치있었다. 
노치마을을 지난 뒤 덕산저수지를 끼고 다시 작은 언덕을 하나 오른다.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데다 솔숲길을 상쾌하게 거닐 수 있어 좋다.
덕산저수지 길을 돌아 나오는 숲길의 끝자라에 있는 무인가게. 라면포트와 라면상자가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물이 부족하다면 여기서 물을 살 수도 있다. 

 


가장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는 평지길이다. 그늘이 별로 없어 뜨거운 햇살을 그대로 받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날은 바람이 좋았다.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을 가르는 바람은 너무나 시원해 뜨거운 햇살을 금새 식혀 주었다. 가지고 있는 스틱을 이용해 잠자리 낚시를 해 보면서 아이는 즐거워했다. 구룡치를 넘으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힘들어 하더니 금새 회복한 것이다. 아이의 회복력은 정말 놀랍다. 서로의 스틱과 모자와 어깨에 앉은 잠자리를 보면서 즐거워 하며 시골길을 걸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잠자리 낚시 장면. 잠자리는 왜 뾰족한 곳을 좋아할까? 
잠자리 낚시법: 잠자리가 날고 있는 곳 근처에 스틱의 끝을 천천히 가져가면 알아서 찾아 앉는다. 
아이는 끝까지 잘 걸어 주었다. 이날 걸은 걸음수는 2만걸음을 넘었다. 역대 최고 많이 나온 걸음 수였다. 
행정마을길. 마을길이 잘 꾸며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초록이들은 어린 나무들이다. 양묘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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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사비나 미술관을 방문했다. 

일요일 낮 12시 즈음에 출발했지만 1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은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교통 체증이 심해서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곳 미술관을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흥미로운 외관과 독특한 기획 전시, 그중에서도 아이가 흥미롭게 볼만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성인 6천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4천원이다. 관람권을 끊으면 1층 카페에서 음료를 1천원 할인해 준다. 

특히 주목한 전시는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 동물, 예술로 HIG"라는 전시전이었다. 아래는 이 전시와 관련한 설명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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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이하 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展은 ‘생물다양성 보존’이라는 인류의 당면과제를 예술적 시각으로 제시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로 기획되었습니다. 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 총회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약 800만 종이며 그 중 인간이 저지른 자연환경 파괴와 기후변화로 인해 최대 100만 종에 달하는 동식물이 수십 년 안에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멸종위기 동물로는 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기린, 눈 표범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환경 문제는 종의 존폐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로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하는 당면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 보존을 위한 21세기 미술관의 사회적인 역할은 무엇일까요? 사비나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생명체의 소중함을 알리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 전시 소개글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많지 않지만 인상적이었으며,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더불어 지구 환경과 생물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아이에게는 충분한 설명을 해 주기 어려웠고, 그저 환경 오염으로 인해 동물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 전달할 수 있었다. 

그외에도 4층과 5층에서 다른 전시물도 관람할 수 있었다. 2~3층의 멸종위기동물 전시와는 성격이 좀 다른 사진전이었는데, 약간 난해하다. 

사비나 미술관의 내부 주차장은 협소하지만 한국고전번역원과 미술관 사이에 있는 넓은 공터를 사용할 수 있어서 주차가 편하다. 

사비나 미술관 관람을 마친 후 카페에서 전시 관련 이야기를 나누기 좋다. 가까운 곳에 은평 한옥마을이 있으니 그곳에서 전통차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은평 한옥마을에 방문했을 때는 차량이 너무 많았고,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과 한옥마을 방문자들이 뒤엉켜 있는데다가 가장 뜨거운 한낮의 폭염이 길거리를 달구고 있어서 오래 둘러보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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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잔뜩 움츠린 목덜미로 서늘한 겨울 바람이 스쳤다. 붉은 벽돌 건물에 주눅들어 어깨와 허리가 접혔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먹방에서 아이는 떨었다. 똥오줌까지 스스로 처리해야 하고, 며칠이 지나가는 줄도 모른채 깜깜한 어둠 속에 사람을 가둔다는 상상만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질 것처럼 무섭다. 벽관에 들어갔을 때는 아이가 장난으로 문을 잠궜다. 꼼짝없이 갇혔는데, 잔뜩 쪼라든 몸뚱아리 한가운데 있는 심장은 더욱 커다랗게 요동쳤다. 아이가 풀어주기까지 1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일어난 그 끔찍한 현상에 나도 놀랐다. 사형장 앞 미루나무는 온갖 통곡들을 끌어안느라 잔뜩 말라버렸다. 컴컴한 사형장 안쪽에서는 지난 100년간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시구문 밖으로 난 통로 끝은 깜깜했다. 

한낮에 들어갔지만 해가 건물너머로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나왔다. 시간이 부족해 차마 다 보지 못한 사연들은 이제 언제 다시 찾아와 인사할까. 이번 겨울 들어 찾아온 오랜만의 강추위를 뚫고 오길 잘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감옥에 갇힌 북풍한설보다 차가운 원한과 슬픔과 고통을 내 좁은 속이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빼앗긴 나라와 주권을 되찾겠다고 싸웠다. 항쟁의 역사를 보면, 그리고 해방 후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보면, 이 땅의 백성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끈기와 인내를 갖고 온갖 폭력과 고문을 이겨내며 지금의 나라를 일구었다. 그 처절한 역사를 보면서 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을까?"

일제 점령 이후 투쟁의 역사만 보더라도 이 땅의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굴복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이 땅의 사람들이 그토록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올해는 삼일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나의 질문을 올해의 화두로 끌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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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에 퍼지는 음울한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했다. 요즘에는 미세먼지가 환경의 주범이었지만, 내 어릴적에는 안양천과 그 지류들에서 나는 악취를 삶의 당연한 일부로 안고 살았다. 알 수 없는 거품과 기름띠가 범벅이던 그 하천. 한여름 폭우로 안양천과 그 지류인 목감천이 범람하면 물난리를 피해 가재도구를 높은 지대로 옮겨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많은 이들이 한강과 안양천, 그 지류들을 찾는다. 안양천 상류 지역에서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도 나온단다. 속절없는 개발의 흐름 속에서 버려졌던 강물이 조금씩 제모습을 찾아간다. 이번에 걸었던 서울둘레길 6코스는 안양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2017년 6월 25일.

서울 둘레길 6-2코스의 여정: 구일역-오금교-도림천 합수부(신정교)-오목교-목동교-양화교 폭포-안양천 합수부(한강)-황금내근린공원(가양동)-가양역




 안양천 둑방길은 대부분 흙길로 이루어져 있다.


 싱그러운 초록빛 사이로 잘 가꾸어 놓은 화단도 잘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길이 나무그늘 아래로 곧게 뻗어 있다.



 성미 급한 단풍들이 벌써 얼굴을 내민다.



 오랜 가뭄으로 송충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무 하나는 절반 가까이 나뭇잎이 뜯어먹혔다.


날이 무척 가물었다. 방송에서도 가뭄으로 인해 해충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전했다.(가뭄에 또 해충 기승…대형 애벌레 득실 / YTN 사이언스) 안양천 주변에서도 몇몇 나무들은 뉴스 기사에 나온 밤나무처럼 잎사귀를 죄다 갉아먹은 애벌레들로 가득차 있었다. 위의 사진은 그나마 양호한 나뭇잎을 건진 것인데, 대개 나뭇잎 하나에 2~3마리의 애벌레들이 열심히 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날 일기예보에서는 다행히 비소식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것에 불편함보다는 기쁨이 더 컸다. 비좀 맞으며 걷자는 일념으로 걸으면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주문까지 만들었다. 


"비야 비야 내려라, 많이 많이 내려라."


우리의 걷기 여행은 이렇게 기우제가 되었다. 손수건을 나풀거리면서 하늘을 향해 흔들었고, 아이는 우리가 주문 외우기를 멈추면 다시 주문 외우기를 재촉했다. 물론 누구보다 열심히 주문을 외운 것은 아이였다. 아이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나 온다고 예보되던 비였기에 조금 뜻밖이었고, 우리는 그것이 아이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이라며 아이에게 축하해 주었다. 


준비한 우비를 갖추어 입고 길을 걸었지만 비는 생각보다 가늘었고 금새 그치고 말았다. 실망한 아이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가늘어진 비를 우비에 있던 모자로 받아서 모으기도 하면서 비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가 걷는 동안에는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는 우리가 둘레길을 벗어나고 식당에 들어섰을 때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익숙하고 친절한 서울둘레길 안내판


안양천 둘레길 코스는 둑방길로만 연결되긴 어렵다. 간간히 고수부지 길로 내려가는데 그또한 지루함을 덜어주니 반갑다.


 다양한 체육 시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테이크아웃 햄버거와 미리 준비한 과일로 점심을 채웠다.


안양천의 옛 이름은 '대천(大川)'이라고 한다. 안양천의 물이 삼성산에 위치한 안양사(安養寺)에서 발원해 붙여진 이름이다.[각주:1]  1910년 경의 안양천의 모습은 상당히 굴곡이 있는 하천이었다. 그러다가 도시 개발에 따른 하천 정비 사업으로 지금의 비교적 곧바로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굴곡이 있는 사행하천에 비해 흐름이 단순해진 하천은 그만큼 홍수에 취약하다. 1977년 7월 8일 발생한 폭우로 안양천 대홍수가 발생했고, 인명 피해만 총 677명으로 이중 사망 208명 실종 49명이 집계됐다. 이후 안양천에 대한 본격적인 정비가 시작되었으나 맑고 깨끗한 안양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범람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었다. 그러면서 하천의 둑방을 시멘트로 덮고 천변의 모래톱이나 갈대 숲을 없애버리면서 강은 점점 더 죽어가고 말았다. 

게다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도시 개발과 공장 지대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생활 하수와 공장 폐수가 무분별하게 쏟아져들어왔고 안양천은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최악의 하천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안양천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가 136mg/L이 나왔는데, 이정도에서는 어떤 생물도 살 수가 없는 수치였다. 


자연형 하천 조성 사업이 시작된 것이 2001년이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은 꽤 효과를 보고 있다. 징검다리 설치, V자 여울, 습지 조성 등 자연과 같은 흐름과 물살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다시 물고기와 철새들이 노니는 하천으로 만들고 있고,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아이와 아이 엄마


 오후 늦게나 온다던 비가 살짝 왔다.


이내 그쳐버리고 다시 후텁지근한 날씨로...




비가 와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범람하는 강 주변은 그로 인해 옥토를 형성했고, 사람들은 그 주변에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땅을 가꾸어 풍성한 곡식을 거두며 살았다. 세계 문명의 시작이 모두 강 주변에서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강이 범람하지 않았다면 이루어 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강을 관리한다. 치수라는 이름으로 더이상 강은 범람하지 않는다. 도시는 더이상 기름진 땅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강은 가정의 생활 하수를 받아야 하며 공장의 폐수를 흘려 보내는 장치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강은 더러움과 치욕을 견뎌야 하면서도 범람할 수도 없이 길들여지면서 병들었다. 


안양천의 개발 역사를 보면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물이 되어 버린 일도 있었다. 강을 가두고 흐름을 막아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쓰레기를 흘려보내던 시절이다. 강이 정화할 수 있는 양 이상의 유기물들이 강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인공적으로 변한 강 주변 시설도 강의 정화 능력을 현격히 떨어뜨렸다. 인간에 의해 범람을 허락받지 못한 자연 하천은 그렇게 썩어갔던 것이다. 












안양천은 이제 사람이 거닐 수 있고, 자연이 되살아나는 하천이 되었다. 안양천의 자전거도로는 이제 자전거도로의 경부선으로 불릴만큼 통행량도 많아졌다. 자전거도로와 분리되어 조성된 서울둘레길 안양천 코스는 초급코스 중의 초급코스로 걸을 수만 있다면, 아니 휠체어를 타야 하는 이들도 풍광을 즐기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안양천을 달리거나 걷는 것은 우리 시대의 작은 행복이 되었다. 




  1. 출처: 안양천의 역사와 문화(이종만, 한국하천협회지(200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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