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들녘의 가을 추수는 거의 끝났다. 하지만 밭에서 자라는 배추들은 찬이슬을 맞으며 속을 채우고 딴딴해지는 시기이다. 배추의 수확은 보통 11월 초순경이다. 이때부터 집집마다 김장 준비에 바빠진다. 대개는 11월말에 김장을 담근다. 둘레길에서 만난 배추들은 무척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배추의 속이 단단해야 좋은 배추다. 속이 텅빈 배추는 무르기 쉽다. 속이 단단한 배추가 되기 위해서는 배추가 다 자란 뒤가 아니라 배추잎이 땅위에 나오기 시작할 때 정해진다. 처음부터 배추잎이 풍성하게 나와야 커서도 속이 꽉찬다. 배추만 그런 게 아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반이라지만, 그 시작을 풍성하고 단단하게 해야 마무리가 꽉 찰 수 있다. 배추들이 김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 ..

서울에서 4시간 반을 달려 인월읍 둘레길 안내센터에 차를 주차시켰다. 미리 준비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했다. 다시 먹을만한 끼니를 어디서 먹을지는 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골길이라도 라면 하나라도 파는 식당 없을까. 이제 길을 걷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끼니에 대한 걱정을 좀 덜었다. 필요할 때마다 준비한 간식거리로 약간의 허기는 채워진다. 그렇게 점심때를 건너 뛰고 걷다가 뒤늦게 밥을 먹는 일이 이제 익숙하다. 그래도 그렇게 먹는 밥이 맛있다. 그래서 굳이 식당을 미리 알아보거나 하지 않는다. 피곤한 다리를 쉬고 싶을 즈음, 아이가 배고프다고 보챌 즈음이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을 시기이다. 힘들었을 다리를 주무르고 있으면 상이 차려지고 따뜻한 밥과 국이 상 위에 오르면 그 맛과 향으로 그..

어떤 일이든 시작이 어렵다. 혼자 실행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진행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자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서울둘레길을 마친 지난 봄에 그런 생각은 더 간절해졌다. 새로운 트래킹 코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마침내 지난 8월 18일 지리산 둘레길의 첫발을 내딛는 결실을 맺게 하였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멀리 지방으로 내려가는 거라 신경써야 할 게 많았다. 1박을 할지, 아니면 새벽에 출발할지에 대한 선택부터 자가용을 이용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트래킹 구간에 식수와 음식은 충분한지, 코스 내에 위험한 구간이나 길을 잃기 쉬운 구간은 없는지, 이정표 등은 잘 되어 있는지 등등 첫 트래킹에 앞서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게다가 서..

8월 11일.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사비나 미술관을 방문했다. 일요일 낮 12시 즈음에 출발했지만 1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은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교통 체증이 심해서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곳 미술관을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흥미로운 외관과 독특한 기획 전시, 그중에서도 아이가 흥미롭게 볼만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성인 6천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4천원이다. 관람권을 끊으면 1층 카페에서 음료를 1천원 할인해 준다. 특히 주목한 전시는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 동물, 예술로 HIG"라는 전시전이었다. 아래는 이 전시와 관련한 설명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더보기 (이하 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展은 ‘생물다양성 보존’이라는..
춥다. 잔뜩 움츠린 목덜미로 서늘한 겨울 바람이 스쳤다. 붉은 벽돌 건물에 주눅들어 어깨와 허리가 접혔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먹방에서 아이는 떨었다. 똥오줌까지 스스로 처리해야 하고, 며칠이 지나가는 줄도 모른채 깜깜한 어둠 속에 사람을 가둔다는 상상만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질 것처럼 무섭다. 벽관에 들어갔을 때는 아이가 장난으로 문을 잠궜다. 꼼짝없이 갇혔는데, 잔뜩 쪼라든 몸뚱아리 한가운데 있는 심장은 더욱 커다랗게 요동쳤다. 아이가 풀어주기까지 1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일어난 그 끔찍한 현상에 나도 놀랐다. 사형장 앞 미루나무는 온갖 통곡들을 끌어안느라 잔뜩 말라버렸다. 컴컴한 사형장 안쪽에서는 지난 100년간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시구문 밖으로 난 통로 끝은 깜깜했다. 한낮에 들어갔지..
온 동네에 퍼지는 음울한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했다. 요즘에는 미세먼지가 환경의 주범이었지만, 내 어릴적에는 안양천과 그 지류들에서 나는 악취를 삶의 당연한 일부로 안고 살았다. 알 수 없는 거품과 기름띠가 범벅이던 그 하천. 한여름 폭우로 안양천과 그 지류인 목감천이 범람하면 물난리를 피해 가재도구를 높은 지대로 옮겨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많은 이들이 한강과 안양천, 그 지류들을 찾는다. 안양천 상류 지역에서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도 나온단다. 속절없는 개발의 흐름 속에서 버려졌던 강물이 조금씩 제모습을 찾아간다. 이번에 걸었던 서울둘레길 6코스는 안양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2017년 6월 25일.서울 둘레길 6-2코스의 여정: 구일역-오금교-도림천 합수부(신..
6월 11일(일) | 총 10.3km | 매헌역-양재시민의 숲-대한항공 폭파 사건 희생자 위령탑(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위령탑)-여의천-내곡동 주민센터 근처-구룡산 주변길-대모산 주변길-수서역 일요일 아침을 이렇게 서둘렀던게 얼마만일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준비했다. 짐은 아내가 미리 전날 준비해 놓는다. 꼼꼼하게 챙겨놓은 짐들을 보면 이 도보길 여행에 대한 그이의 바람이 보인다. 길과 숲과 바람에 목말랐던 사람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보인다. 길을 걸으며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갖는 열망이다. 왜 사람은 이 스피드한 세상, 편리한 세상에서 굳이 피곤하고 힘든 일을 자처하며 쾌감을 느낄까? 이미 여러 과학자들이 밝힌 바 있다. '러너스 하이'. 또는 '운동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날이 흐리고 예보에서는 저녁부터 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틀전에 7km가 넘는 둘레길(4-1코스)을 다녀온 뒤라 그냥 쉬려 했지만 아내는 다시 걷고 싶어 했다. 다리가 아픈데도 걷고 싶단다. 결혼 전까지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던 처자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면서 묶여 지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요 몇주 둘레길 걷기를 시작하면서 여행에 대한 바람이 폭발한 것이다. 물론 아내의 바람만 있던 것은 아니다. 나도 새롭게 가정을 꾸리며 안팎으로 좌충우돌 살다보니 어디를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별로 없다. 1년에 한번도 여행을 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작은 보람과 기쁨, 그리고 기분좋은 노곤함이 묻어나는 이런 여행..
- Total
- Today
- Yesterday
- 영화
- 두컴
- 촛불집회
- 지리산
- 자전거 출퇴근
- 국가인권위원회
- 자전거여행
- 인권
- 자전거
- 교육
- 사진
- 제주도
- 교과서
- 별별이야기
- 생코
- 지리산둘레길
- 안양천
- 민서
- 생각코딩
- 전국일주
- 한강
- 여행
- 자전거출근
- 따릉이
- 아기
- 민주주의
- 자전거 여행
- 육아
- 자출기
- 백두대간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