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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쏟아졌다. 바람이 몰아쳤다. 직원과 술을 마셨다. 지난 시간 함께 책을 만들면서 여러 고난이 한꺼번에 그를 덮쳤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큰일을 겪은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마감이 코앞이었다. 일의 중심을 잡아야 할 상황에서 경황없이 큰일을 치른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 절대 아니다. 밤마다 술을 마셨다고 한다. 정신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술을 찾았다. 아버지와 싸우면서 헤어졌던 그 마지막 날이 가슴에 얹혀 잠이 들 수 없었다. 


 



골뱅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바다 생물이다(2008년 기준으로 전 세계 소비량 4700톤 중 4187톤 소비). 골뱅이는 주로 수심 50m 사이의 고운 모래바닥에서 산다. 고운 모래에서 골뱅이같은 고둥류와 조개류를 포함해 최고의 맛을 꼽으라면 역시 단연 '백골뱅이'일 것이다. 간만에 찾아간 공덕동 배다리술도가 집에서 이 삶은 백골뱅이를 팔고 있다. 함께 간 직원과 나는 아무 망설임없이 백골뱅이를 주문했다. 

 

 

 

백골뱅이는 정말 맛있다. 그냥 뜨거운 물에 삶아서 데쳐 낸 것에 불과한 데도 식감이 기가 막히다. 백골뱅이를 이곳에서는 19000원에 팔고 있는데, 남자 둘이서는 식사 대신으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만큼의 양이 아닐까. 물론 평범한 중년의 남성을 기준으로 했다. 

맛있는 골뱅이에 술을 마시니 잘 취하지도 않는다. 둘이서 4병을 해치웠다. 술잔에 담아냈던 여러 생각들, 교과서 출판의 미래, 회사의 조직 운영, 사람 관리 등등 쏟아냈던 이야기들이 갯벌에서 잡혀온 골뱅이의 쫄깃쫄깃한 살집과 적당히 쓴 소주잔에 술술 들어와 넘실댔다. 흐릿한 조명에 밖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날, 이야기는 깊었고 솔직했으며 담담했다. 

10시에 가까워진 시간 술집을 나와 걸었다. 비바람이 쉴새없이 몰아쳤지만, 세파에 시달렸던 마음들을 녹인터라 힘들진 않았다. 다만 좀 떨었다. 술이 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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