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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두 번째 둘레길 여행이다. 10월 16일 토요일 출발하면서 이번에는 현지에서 하룻밤 묵고 올라오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외박 여행은 그야말로 오랜만이다. 셋 중 둘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상태이고, 나는 다음주 2차 접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는 건 코로나가 아니었다. 일주일전부터 예보되어 있던 가을비. 비가 얼마나 올까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는데, 현지 예보에 따르면 약한 비가 오전 중에 그칠 거라는 것. 한 달 전부터 잡았던 일정을 강행키로 하고 다시 새벽길을 나섰다.

운리마을에 있는 지리산둘레길 8-9구간 시종점 표지판
출발할 때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며 둘레길을 시작해야 했다.
밤새 내린 비와 바람으로 낙엽들이 길에 가득했다.
지리산의 마을마다 쉼터 같은 나무들이 있다. 때로 그 나무 아래에서 다리쉼을 하고 가도 좋다.
포장도로는 끊기고 자연 흙길이 시작됐다. 멀리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비는 오락가락, 바삐 걷는 친구들, 무엇이 그리 바쁜가. 천천히 가세.
겨울이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가에 핀 꽃들에게도 눈을 돌려 보자고.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지 않은가.
운리마을을 벗어나 완만한 오르막길 임도가 나왔고, 그 정상에 작은 정자와 함께 지리산둘레길 안내판이 있다. 
7구간 웅석봉에 대한 트라우마일까? 급한 오르막길을 앞두고 긴장감이 돌아 사진 한방 찍는다. 

비를 맞으며 걷는 일이 어려울까? 한여름 소나기라면 여행자에게 땀을 식혀 주는 바람보다 때로는 더 반갑다. 가을비는 어떨까? 숲속에서 만나는 가을비는 낙엽과 함께 떨어지면서 보다 우울한 정취를 깊게 해 준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 울리는 숲 한가운데서 우리는 떨어지는 빗방울과 낙엽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슬픈 광경을 목도한다. 때로 우리 인생은 불운이 겹겹이 들이닥쳐 청구서처럼 펄럭일 때도 있겠지. 살다보니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진 그 순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견뎌지더라. 그 인연을 위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견뎌내고 나아가는 것 아닐까.

비는 서서히 그쳐갔다. 지리산 둘레길의 정자가 있는 곳에 이 길의 유례가 실린 표지판이 있다.

솔숲과 참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숲길과 게곡길, 임도를 번갈아 가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고령토를 운반하던 운재로가 남아 있으며 남명 조식 선생의 무덤에 이르는 길도 만난다. 마근담 계곡 따라 덕산 초입이 옛날 장터였다.


길을 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참나무 군락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행히 8구간에서 급한 오르막길은 없었다. 반대로 가장 멋진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드라운 흙길이 내내 이어진다. 아침 산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이런 곳에 모셔진 무덤의 주인은 심심하지는 않겠다. 둘레길 여행객들의 심심치 않을 방문을 받을테니.
빽빽이 둘러싼 참나무 사이를 걸었다. 지리산둘레길의 참다운 아름다움을 여기 참나무숲에서 만난다. 
참나무숲 군락지를 걷는 일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햇볕이 내리 쬐나, 바람이 부나...


이곳은 지리산둘레길 중에서 참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참나무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 '진실'의 의미를 지닌 접두어 '참~'이 붙었는데, 그만큼 우리 조상들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있게 쓰인 나무였다. 집을 짓는 목재로서뿐만 아니라 다 타고 남은 숯도 참나무 숲을 '참숯'이라고 부르면서 높게 쳐 준 것이다. 반대 의미의 접두어인 '개~'를 생각해 보면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참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장관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땅에서 올라온 황토흙 내음, 떨어지는 빗방울이 낙엽에 닿는 소리, 비에 젖은 숲의 나무와 땅이 주는 오묘한 빛이  함께 어우러져 자연의 오감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다. 지난달까지 울어 제끼던 매미 소리도 사라지고 새 소리마저 드물었던 이날의 숲은 인상적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도시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쌓여 왔던 답답함과 긴장감이 이곳 참나무 숲에서 순식간에 씻겼다.  

참나무숲 군락지는 걷기 좋게 잘 다듬어져 있다. 
참나무 군락지를 안내하는 안내판

 

비도 많이 그치고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들만 간간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10월 중순. 가을이 여기 지리산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참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백운 계곡이 나온다.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을 매우 아겼으며 자주 찾았던 곳이다. 그와 관련된 일화들이 표지판에도 나와 있다.

조식 선생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다. 다만, 그가 평소에 "지식을 알면 행해야 한다"는 것(실천궁행實踐躬行)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알면서도 행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부조리와 비합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거나 체념하는 일이 많아진다. 수없이 조정으로 천거되고 높은 벼슬을 추천받았으면서도 결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이곳 산청에서 후학 양성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이 분의 모습이 어쩌면 고고한 학자로서의 표상일 수는 있겠다.

게다가 조식 선생이 이러한 생각(실천궁행) 때문에 퇴계 이황과도 크게 다투었다고 하니 그가 큰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생각해 보면 이황이나 이이의 유학이 세상의 일이나 인민의 안락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조식 선생의 학문이 훗날 북학파, 실학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누가 더 세상 사람에게 이로웠는가는 물을 필요가 없겠다.

백운계곡의 모습
백운동 계곡
둘레길 안내 이정표와 돌무덤. 
쓰러진 나무가 위태롭게 보인다. 
작은 대나무들이 길 옆에서 여행객들의 손을 잡아준다. 떨어진 댓잎들이 바스락거리며 밟힌다.
울창한 숲이 산을 이룬다. 산이 숲을 가꾼다. 사람은 그저 머물다 갈 뿐이다.


백운계곡을 지나 다시 산길을 걷다보면 마근담을 만난다. 마근담의 어원은 '막은담'에서 왔다고 한다. 온 사방이 산으로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했다. 공기가 맑고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마근담에서부터는 흙길이 아닌 시멘트-콘크리트 길이다. 여전히 주위는 높은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이날 따라 바람마저 거세어 온 산의 나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약한 잎들이 바람에 떨어져서 하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가을이 실감난다.

내려가는 길에는 감농장이 지천이다. 산청은 감이 유명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감을 이용해 곶감을 만들어 도시로 내보내는 모양이다. 감나무에서는 감들이 한창 익어갔고, 감 농장의 한켠에서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매달아 말리기 위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1월에는 산청 곶감 축제가 열릴 만큼 이곳 산청에서 곶감은 무척이나 중요한 생산물이다.

사실 곶감은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건조 과일은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긴 하지만 곶감이 주는 매력은 여타 마른 과일들에 비교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이곳 산청 곶감은 지리산의 깊은 산속에서 겨울을 난다. 이 곶감을 먹는다면 지리산의 맑은 공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근담으로 내려 서는 길. 
마근담길은 대부분 포장도로로 덕산까지 이어진다.
산청은 곶감으로 유명하다. 매년 1월 산청곶감축제가 열린다. 
감나무에는 곶감이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곶감에서 빨리 거둔 감들로 곶감을 말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함께 빨래를 하던 공동 빨래터. 이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내린 비
지리산둘레길 9-10구간 시종점 표지판. 

 

이날 9시에 운리마을에서 시작해 1시에 덕산(시천면 산천재)의 시종점에 도착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우리는 조미원이라는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다음날 서울로 상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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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6구간, 주천에서 성심원까지는 아내와 딸이 함께 걸었다. 그러나 아내의 건강 문제로 오래 걷는 게 힘들어졌다. 아내가 빠지니 아이도 안 걷겠다고 버틴다. 걷기, 오르기, 그리고 견디기... 아이에게는 좀 지루하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아빠와 딸의 여행은... 앞으로 10년 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서운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위해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고 내 건강을 살필 시간이다.
가족과 함께 서울둘레길을 완주했을 때의 그 기쁨과 희열을 잊을 수 없다. 항상 엄마가 앞에 서고, 어린 딸이 중간에, 내가 맨 뒤에서 걸었다. 어린 딸이 10여km를 아무 투정없이 걸었을까. 한번은 내가 아이를 업고 걸었던 일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길을 아이는 잘 걸었다. 힘겨웠던 시간은 지나면 영광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지리산둘레길은 자연스럽게 세워진 목표였다. 서울둘레길에 비해 멀리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지만 이는 내가 좀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과 이루려 했던 지리산둘레길 완주의 마음은 결국 그렇게 접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을 수는 없어서 친구들에게 제안해 보았다. 그렇게 세 친구들이 모여 지리산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7구간부터 걷는 것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아내와 함께 지리산둘레길을 걸어 왔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가족끼리 가지 못한 사연도 이해해 주었다. 못다한 완주의 꿈을 다시 시작했다.

성심원 나루터의 흔적
성심원 길. 경호강을 끼고 걷는다.


9월 4일. 여느 때처럼 새벽에 나섰다. 친구들도 약속된 시간에 늦지 않게 모였다. L은 전날 늦게까지 영업한다고 술을 엄청 마셨단다. 운전하는 내내 옆자리에서 수다를 떠드니, 차 안이 술냄새로 가득해진다. 어차피 초반 운전은 내가 해기로 했고, C가 내 뒤를 이어 운전했다. 새벽 4시에 나섰지만, 도로는 분주했다. 사람들의 토요일 새벽길도 바쁘게 돌아갔다. 함양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성심원 앞에 차를 주차했다. 친구들이 급하게 서둘렀다. 기념 사진도 찍자마자 저만치 가버린다. 황급히 쫓아가면서도 발걸음은 가볍다. 세 친구의 둘레길 여행은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성심원 앞에는 경호강을 건널 수 있는 나루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1988년 제대로 된 다리가 세워지기 전까지 이 나루터를 통해 사람들은 성심원을 오갔다고 한다. 이제는 흔적만 남아 있는 나루터에는 이날 텐트가 쳐져 있었다. 누군가 거기서 하루를 묵었나 보다. 둘레길 여행객일까, 낚시꾼일까? 경호강은 은어 낚시로 유명하다. 우리가 찾아간 9월은 은어철이 아니지만, 강을 따라 가는 길에 낚시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경호강을 따라 걷다 보면 다시 산으로 향한 길이 나기 시작한다. 아침재를 향해 오르는 길이다.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로 이어지고, 차량 통행이 가능한 포장도로 길이 한참 이어진다. 그러다가 만나는 첫번째 고갯길이 아침재다.

경호강을 벗어나 걷는다.
아침재. 여기서 어천마을로 가는길과 웅석봉 가는 길로 나뉜다. 
119농원 앞. 119 대원으로 일하시던 분이 만든 농원일까? 이름이 신기하다. 

아침재는 어천마을과 성심원 사이의 고갯길이다. 여기서 오른쪽길이 웅석봉으로 가는 길이다. 계곡을 만나기 전까지 편안한 산길은 계속 이어진다. 점점 더 숲으로 들어가면서 길은 좁아지고 길을 덮는 풀들도 키가 높다. 이런 산속으로 수천년 동안 사람이 마을과 마을을 잇기 위해 등짐을 지고 날랐을 것이고, 배고픈 산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였을 거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니 사람들은 유람을 위해 산속을 거닌다. 걸으며 듣고 보고 느끼는 것들은 도시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옛추억들을 되살린다. 단지 옛 생각에 젖어들기만 해서 이 산길을 찾는 걸까? 복잡한 일상과 피곤한 인간 관계를 떠나 한나절 아무 생각 없이 오감만을 되살리며 걷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119농원을 지나서 조금만 걸어가면 작은 계곡을 하나 건넌다. 다리가 따로 없다. 물이 적을 때는 그냥 건널 수 있겠는데,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훌쩍 뛰어 건너기는 약간 불안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며 건넜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숲속이었지만 깊은 산에서 내려온 물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이 물은 웅석 계곡을 지나 어천 마을 앞을 흐르다가 경호강에 다다른다. 여기까지는 여느 지리산 둘레길과 다르지 않았다. 7코스 중의 가장 큰 난코스는 이 계곡을 넘어 시작된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전의 계곡
물이 상상 이상으로 차가웠다.
계곡을 건너자마자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좁고 가파른 길이다.
크게 자란 버섯들을 많이 보았다. 당연히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도 자태는 아름답다.


계곡을 건넌 후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지그재그 오르막길이 웅석봉하부헬기장(지금은 정자가 지어져 있다)까지 내내 계속된다. 둘레길이 처음인 두 친구는 이런 길이 어떻게 지리산 둘레길이냐며 혀를 내둘렀다. L은 전날 과음한 탓에 더 힘들어 했다. 땀을 비오듯 흐르는 그를 받쳐주면서 걷는 데 땀에서 술냄새가 났다. 작작 쳐먹지... 게다가 물을 그렇게 마시니 저러다 탈수증이 걸리지 않나 걱정될 정도였다. 여러 여행 후기에서도 7코스에 대해서 힘들다는 평이 많다.
지리산둘레길 5코스 중에 있던 산불감시초소도 꽤나 힘든 오르막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여기 웅석봉 오르막길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좁은 산비탈길을 그야말로 한뼘씩 타고 오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루하고 힘들다. 해발 고도로 보아도 산불감시초소는 약 600m지만 웅석봉 헬기장은 800m에 약간 못미친다. 예전에는 지리산 종주를 거의 매년 했었지만 이제 산에 올라간다면 덜컥 겁부터 먹는 나이가 됐다. 온전한 산행을 안 한지 꽤 오래됐다. 가족과 함께 둘레길 여행을 시작하면서 더 안가게 된 것이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젊은 시절의 그 낭만과 열정을 마음에 품고 산에 오르고 싶다. 몸이 따라주지 않겠지만 세월의 노련함와 여유로 산을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이번 웅석봉 오르막길도 그런 마음이었다. 좀더 크게 심호흡하면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신중하게, 힘들다고 땅만 보고 걷지 않고 잠시 허리 펴고 나무와 하늘도 쳐다 보고, 그렇다고 발 아래에 핀 버섯과 야생화와 풀들에도 눈길 주는 것도 잊지 않기. 2~30대의 나 역시 그랬을 테지만, 4~50대의 나도 그렇게 산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걷는다.
웅석봉 하부헬기장의 정자에서 중년 부부를 만났다. 50대로 보이던 두 부부가 함께 산행을 나왔다. 웅석봉 꼭대기로 올라간다면서 지리산둘레길은 다 돌아봤는데, 정말 좋았다고 이야기해 준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온 우리 일행을 위해 지리산둘레길의 아름다움을 줄줄이 이야기해 주니 친구들이 좋은 기운을 받았다.
힘들게 올라온만큼 여기서 준비해 간 맥주와 약간의 간식거리로 배를 채웠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나니 기운이 돌아왔다. 다시 나머지 길도 내쳐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라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말한마디 나누기 어려웠던 오르막길과 달리 내려가는 도중에는 셋이 나란히 뭉쳐서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었다.

웅석봉 하부 헬기장부터는 평탄한 내리막길이다.
달뜨기 능선으로 불리는 곳이다. 산 중턱에 도로가 보인다. 
큰달맞이꽃. 달뜨기 능선이 보이는 언덕에 홀로 피어 있었다. 
운리 마을 초입. 어느 가정집의 담은 작은 대숲이 펼쳐져 있다. 
단속사지 석탑. 절은 사라졌지만 석탑은 남아 있다. 다시 지어진 거겠지만...

2시 즈음 운리마을에 도착했다. L이 준비한 간편 식량은 물만 있으면 저절로 열을 내어 음식을 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L은 물을 준비하지 못했고, 우리가 준비한 물도 그가 웅석봉 오르는 길에 거진 다 마셨다. 물 부족을 겪으며 내려온 찰나에 밥을 먹으려니 물이 없네. 결국 L이 운리마을 경로당을 찾아가 물을 얻어 와 간편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9시 즈음 출발해 2시 즈음 마쳤으니 그리 오래걸린 여정은 아니다. 다만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고, 지리산둘레길 중 손꼽을만한 힘든 길을 거쳤으니 이후 둘레길은 여유롭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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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정보

성심원 → 아침재(2.3km) → 웅석봉하부헬기장(2.5km) → 점촌마을(6.4km) → 탑동마을(1.5km) → 운리마을(0.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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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전나무숲길을 걸었다. 
이곳에는 두 번 정도 왔다. 그때마다 내 옆에는 항상 아내와 아이가 같이 걸었다. 
이번에는 지인들과 함께 걸었다. 높이 솟은 나무들이 드리운 그늘과 향기가 좋다. 
자박자박 흙길 밟는 소리도 평화롭다.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월정사 앞에 다다른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에 구름이 걸렸다. 
파란 하늘이 산사를 둘러싼 초록을 더 짙게 물들인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면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이내 엎어져 잠이 들 것 같구나. 
가만히 앉아서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대웅전의 지붕 너머 소나무 숲과 하늘의 경계를 살핀다. 
이 시간이 아깝지 않다.

 

 

안목 커피 거리에는 차와 사람이 가득했다. 
은은하고 깊이 있는 커피향을 상상하면서 방문했지만
마땅히 차댈 곳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이다가 
안목해변과 송정해변을 지나 더 북쪽으로 향했다.

그래, 꼭 커피가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인산인해를 이룬 그 거리에서 복작거리는 것보다
한산하고 조용한 곳이 더 좋다. 
소나무 방풍림을 지나니 바로 푸른 바다가 덥썩 안긴다. 
"어서와, 옥빛 바다는 오랜만이지?"
잘 지내고 있구나, 너도... 나도... 이렇게 뜻밖의 바다를 만나는 행운이 감사하다. 

 

휘닉스 평창에는 처음이다. 
스키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어디 잘 쏘다니는 것도 아니니 이런 곳을 방문할 일도 드물다.
분명 콘도이지만 야외에서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곳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4명이서 3인을 주문했는데 많다. 라면과 맥주는 무제한이다. 
해가 저물 때까지 텐트 안에서는 이야기가 굽이굽이 펼쳐졌다. 
 

평창에 왔으니 이효석 생가도 방문해 본다. 
낡은 집 반석 위에는 오래된 텔레비전과 시계가 나와 있다. 
부서진 시계 바늘은 8시 35분 즈음에 멈춰있고, 
텔레비전 박스는 위태롭게 찌그러져 있어 언제 주저앉을지 알 수 없다. 
석유 곤로는 대청마루에 홀로 올라가 있는데, 
여기 물건들이 그렇듯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버려진 것들처럼 보인다. 
낡고 작동하지 않으며 필요가 사라진 물건들
이효석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찾아오는 이들이 금줄이 쳐진 마당에서 멀거니 집만 쳐다보고 
오래된 농기구와 예전 집안 가구들을 슬쩍 보고 떠난다. 
낡고 버려진 저 물건들처럼 집도 시나브로 낡고 버려지는 것 같다. 

생가 앞 식당 주인의 팻말에는
""메밀꽃 필 무렵"은 시가 아니고 소설입니다."
라는 안내 문구가 써 있다. 
싯구 같은 소설 제목이 말해 주는 것처럼 소설도 그렇게 시처럼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길 영릉에 들렸다. 세종대왕의 묘이다. 
묘역은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듯했다.
얼마전 올린것 같은 집들의 보와 기둥은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언덕 위에 다시 커다란 봉분을 올려서 마련한 세종대왕 묘역은
주변의 푸른 소나무들이 빙 둘러져 있고, 초록의 잔디들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비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의 묘를 수백년간 지켜온 석상들도 여전하다. 
방문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도 익숙해졌는지 지그시 감은 눈을 뜨지 않는다. 

걷는 걸음걸음마다 마음이 편하다. 여유로운 마음 덕분에 초여름의 열기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시 2021년 6월의 좋은 추억이 온전히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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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릉이가 신문 1면에 나왔다(누군가는 국민의 힘의 젊은 당 대표가 나왔다고 하지만...). 따릉이를 무척 자주 이용하고 있는 이용자로서 따릉이가 세간의 긍정적 주목을 받는 게 무척이나 반갑다.

이준석 대표가 여의도역에서 따릉이를 타고 국회까지 출근하는 모습은 나로서도 매우 인상적이다. 따릉이가 활용되는 전형적인 사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준석 대표의 따릉이 사용을 두고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전혀 그럴 문제는 아닌듯하다. 지하철, 버스, 택시라는 대중교통의 빈틈에 따릉이가 매우 효과적으로 스며들고 있다. 근거리 교통 수단이자 환승 수단의 하나로 적절한 사례이기도 하다.

다만 이준석 대표의 따릉이 운행 사진을 보면서 몇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안전모. 자전거를 탈 때는 안전모를 쓰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는 필수 조항이 아니다. 법령에서도 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한때 서울시에서 시범적으로 따릉이에 안전모까지 함께 설치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따릉이 이용자 통계에 따르면 이용자의 절반 이174cmmm 이내 이용이다. 따라서 안전모 착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손가락 2개로 브레이크 레버에 올려놓은 모습도 인상적이다. 평소 자전거를 자주 이용해 왔거나 자전거에 능숙한 사용자다. 다만 따릉이 특성상 오른손에 기어를 조정할 수 있는 다이얼이 있어서 나같은 경우에는 둘째 손가락은 둥글게 기어다이얼을 감싸고 셋째, 넷째 손가락이 브레이크 레버를 잡는다. 따릉이 이용에 능숙하다면 따릉이 기어조정이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지 인식할 것이다. 단순 3단 조정이라서 많이 고민하고 복잡하게 조정할 것도 없다. 딱딱딱. 세번이면 서울의 모든 길이 통한다.

안장 조절. 따릉이의 안장은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다. 내 키가 173cm인데 대개 따릉이의 안장을 최대높이로 조정한다. 최근 나온 따릉이는 안장을 높여도 내 키에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하물며 180cm정도가 된다면 따릉이로 장시간 주행이 매우 불편할 수 있다. 네이버에서 이준석 대표의 키가 174cm로 나온다. 나와 비슷하다면 안장을 더 높여서 타는 것을 권장한다. 무릎 나간다(지금은 젊고 거리가 짧으니 저렇게 타도 괜찮겠지만).

이제는 공유자전거의 시대다. 대세가 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교통 수단임에 틀림없다. 1년 이용권 가격이 3만원. 1회 1시간 이용에 1천원이니 30번만 탄다면 본전은 뽑는 셈이다. 나도 벌써 출근에만 48회 이용했고 퇴근 짧은 거리 이용도 수십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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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 마을 지나 논 한가운데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걷는 길에서 강아지풀을 들고 장난치는 아이

 

 

들녘이 누렇게 변했다. 추수를 앞둔 벼들이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다. 한가위를 지나 풍요의 시간이다. 넉넉한 곳간처럼 마음도 넉넉해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왜 이리 공허할까. 사람 사는 세상의 흐름은 이제 더 이상 자연의 흐름과 같아질 수 없는 거다. 땅과 하늘은 풍족한 곡식과 과일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갇혀 있다. 오랫동안 발이 묶이면서 시간의 흐름도 묶이길 바랐지만, 시간은 바이러스 따위 쳐다보지도 않고 제 갈길을 달려 갔다. 

매달 걷기로 한 지리산 둘레길이었다. 5월 이후로 5개월만에 다시 길을 나섰다. 모가 심어졌던 논들은 이제 그 모가 자라 벼가 되었고, 수확만 기다리고 있다. 또다시 시간은 훌쩍 넘어갔고, 아이는 금세 엄마의 키를 넘볼 만큼 자랐다. 좀 천천히 자라주면 안되겠니, 속으로 말해 본다.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을 채우려는 마음, 채워질수록 공허한 마음은 가을이 죽는 숙명이다. 이 난국은 끝이 보이지 않고, 혼란은 더욱 깊어간다. 불안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힘을 가진 이들도 해결책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정답이 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는 낯선 상황에서 우리는 최선의 해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사실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이어가는 것. 비정상적인 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갔던, 그런 생활이 벌써 1년을 채워가고 있다. 이렇게 2020년이 다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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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6구간(수철-성심원)(출처: 네이버 지도)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눈앞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걸으면서 만나는 강과 들과 산의 모습은 내가 놓치고 지나온 자연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 5월, 찰랑찰랑한 논에 심어져 있던 모들이 이제는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 무거운 벼이삭을 늘어뜨리고 있고, 막 연초록 새잎들을 틔우던 나무들도 어느새 빛바랜 나뭇잎을 하나둘씩 떨어뜨리고 있다. 감나무의 감들은 잘 익어 어서 따달라고 가지를 늘어뜨리고, 대추는 매달린 채 쪼그라들었으며, 지천에는 밤송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풍경을 만난다. 저 벼들과 감과 대추와 밤이 그동안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낮과 밤, 비와 바람을 그 안에 품고 있을까. 잘 커 줘서 고맙다. 

 

 

벼들을 말리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직 추수가 다 끝나지는 않았다. 멀리 웅석봉 자락이 보인다. 저 너머 지리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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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마을에서 금서 농공단지 옆을 지나는 길. 논밭 사이로 난 길을 지나 마을과 마을을 지난다. 

 

수철리 마을 회관 앞 공터에서는 이삭을 말리고 있다. 고속도로를 나와 지방도로를 달릴 때에도 한적한 곳에는 여지없이 벼를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벼를 잘 말려야 썩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요새는 다들 건조기에서 말리지만 일부러 건조기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들판에 벼를 말리는 일은 여간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매번 요리조리 잘 뒤집어 골고루 말리는 일도 번거롭지만 안 본 틈에 짐승들이 접근해 먹어치우는 것도 감시해야 할 것이다. 자칫 지나가는 차량들이 실수로 밟고 지나가는 일도 벌어진다. 정말 재수 없으면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는 일이다. 대부분이 노인들인 시골에서는 벼를 말리는 일도 거두는 일도 뒤적거리는 일도 모두 수작업이라 보통 힘이 드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리한 건조기를 마다하고 굳이 여기 아스팔트 바닥 위에 말리는 건, 가을 햇살이 주는 오묘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고추도 건조기에 말리는 것보다 햇볕 아래 말리는 것을 더 높게 쳐주듯이 밥맛도 건조기로 말린 쌀보다 이렇게 햇볕에 말린 쌀이 더 좋다고 한다. 널어놓은 벼가 바싹 말라가는 시간은 밥이 맛있어지는 시간이다. 

수철마을을 지나면 곧 지막마을로 들어선다. '지막'은 '종이로 만든 막'을 뜻한다. 지리산 산골마을 중에는 종이를 만들던 곳이 많았다. 지막마을 역시 산에서 닥나무를 베어다 닥종이를 만드는 일을 마을의 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삶은 닥나무 섬유를 발에다 건져 종이 모양을 만들고 나무판에 붙여 햇볕에 말렸는데, 여러집에서 그렇게 말리고 있으면 커다란 하얀 막이 마을을 덮은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지막' 마을이 된 것이라는 유래다. 

지막마을을 지나고 평촌마을을 지날 때면 금서 농공단지가 옆으로 펼쳐진 모습이 보인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산청공장이다. 여기가 비행기나 헬리콥터 등을 만드는 공장인 셈이다. 수철마을로 들어오다 보면 정문 앞을 지나가게 되고 이렇게 둘레길을 가다 보면 또 옆으로 지나치게 된다. 농공단지에 제법 크게 지어진 건물이라서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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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농공단지 옆을 지나 경호강을 만난다. 

 

농공단지를 지나면 큰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경호강이라고도 불리는데, 남강의 상류부의 명칭이다. 경호강은 남강으로 바뀌고, 진양호에서 잠시 머물다가 북동쪽으로 물의 흐름을 바꾸어 함안군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경호강은 래프팅 장소로 인기가 많다. 여름철 이 길을 걷다 보면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래프팅 시기가 아닌 데다 코로나로 인해 이곳의 휴양 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래프팅을 안내하는 표지판이나 강변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강이 훔친 사람 마음이 어디 래프팅뿐일까. 걷는 내내 경호강 주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경호강 낚시는 보통의 대낙이 아닌 릴낚시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은어낚시가 유명한데, 5월에서 8월까지가 한창때이다. 10월인 지금도 강에 들어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은어 철이 지났는데, 저들은 무엇을 낚기 위해 차가운 강으로 들어가 낚싯대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래프팅과 낚시 말고도 ATV(4륜차)를 즐기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왔는지 할머니부터 초등학생까지 10여 명 되는 사람들이 둘레길 코스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며 ATV를 타고 우리 옆을 지나갔다. 한참을 엔진 냄새를 맡으며 걸어야 했던 불쾌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ATV들이 많이 낡아 보였고, 바퀴마저 똑바로 굴러가지 않아 보여 위험해 보였다. ATV를 타고 어디까지 구경을 가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걸으면서 구경하는 경호강의 풍경이 훨씬 조용하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경호강 풍경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어느새 이 구간의 가장 높은 고개, 바람재를 오른다. 높다고는 했지만, 실상 언덕 정도다. 하지만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고,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됐지만, 부모 앞에서는 아직도 아기같이 군다. 이번 둘레길 구간의 특징은 마을과 강을 따라 걷는 길이 많아 평지길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마땅히 쉴만한 공간을 찾기 어렵다. 바람재를 넘어갈 때도 쉴만한 곳을 찾을 수 없어 길 옆에 자리를 깔아 아이를 앉히고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조금만 가면 끝난다는 말로 구슬려 다시 길을 나섰다. 거짓말은 아닌 게 바람재를 넘으면 곧 성심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날의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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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은 한센인들의 노후를 위한 복지시설이다. 천주교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한센인 또는 중증장애노인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점에는 입구에서부터 코로나 방역을 위한 열체크와 문진을 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면역력이 취약한 고령의 중증 장애 노인들이 있는 시설인만큼 초긴장 상태일 것이 분명하다. 안에서 생활하는 노인들도 외부에서 찾아와 주는 사람이 아예 없다시피하는 요즘은 외롭고 쓸쓸함이 더할 것이다. 더불어 그들을 돕는 이곳 종사자들 역시 노인 시설에서 일하는 직업적 사명감으로 외부와의 만남이나 접촉을 일체 끊고 살아가야 하는 힘든 시절이다. 

오랜만에 둘레길 걷기를 나섰지만, 마음은 가볍지가 못했다. 여전히 코로나와의 싸움 최전방에서 고전분투하고 있을 여러 종사자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가벼워질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걷는 둘레길에는 대부분 노인들이 사는 시골마을이라서 말소리 숨소리 하나 쉽게 나가지 못한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 말을 건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저 조용히 주어진 길을 걸으며 마을을 소리 없이 지나치는 것이 코로나 시대 여행자의 양심일 것이다. 

성심원 앞에서 산청택시를 불러 차를 주차해 둔 수철마을로 갔다. 요금은 17000원 정도. 아이는 피곤했는지 뒷좌석에 잠들었다. 

 

성심원 앞길

 

 

그래서 이번 둘레길이 공허한 마음을 채웠을까? 아직은 어설프다. 세상이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 믿지만, 말들의 전쟁이 난무하는 온라인 공간을 보면 심란하다. 한편으로는 총칼이 부딪히는 것이 아니고 말로만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저 많은 말들에 쌓인 업보는 어떻게 풀려고 저러는 것인지 안쓰럽다. 어지러운 온라인 공간에 이렇게 글과 사진을 남기는 건, 그럼에도 우리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작은 희망이 되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물론 무엇보다 내 마음 안의 공허를 채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아내에게 다음 지리산둘레길 일정을 서둘러 잡자고 했다. 걷는 일은 명상과 사색이 함께 어우러지는 일이다. 마음의 평안을 찾는 여정이다. 어질러진 일상을, 흐트러진 마음을, 늘어진 몸가짐을 바로잡는 일이 될 것이다. 

 

 

새벽길을 달려 온 여정이라 아이가 힘들어했다. 길은 평이했지만, 걷기 여행은 약간의 고단함을 견뎌내는 것. 아이가 알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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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쏟아졌다. 바람이 몰아쳤다. 직원과 술을 마셨다. 지난 시간 함께 책을 만들면서 여러 고난이 한꺼번에 그를 덮쳤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큰일을 겪은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마감이 코앞이었다. 일의 중심을 잡아야 할 상황에서 경황없이 큰일을 치른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 절대 아니다. 밤마다 술을 마셨다고 한다. 정신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을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술을 찾았다. 아버지와 싸우면서 헤어졌던 그 마지막 날이 가슴에 얹혀 잠이 들 수 없었다. 


 



골뱅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바다 생물이다(2008년 기준으로 전 세계 소비량 4700톤 중 4187톤 소비). 골뱅이는 주로 수심 50m 사이의 고운 모래바닥에서 산다. 고운 모래에서 골뱅이같은 고둥류와 조개류를 포함해 최고의 맛을 꼽으라면 역시 단연 '백골뱅이'일 것이다. 간만에 찾아간 공덕동 배다리술도가 집에서 이 삶은 백골뱅이를 팔고 있다. 함께 간 직원과 나는 아무 망설임없이 백골뱅이를 주문했다. 

 

 

 

백골뱅이는 정말 맛있다. 그냥 뜨거운 물에 삶아서 데쳐 낸 것에 불과한 데도 식감이 기가 막히다. 백골뱅이를 이곳에서는 19000원에 팔고 있는데, 남자 둘이서는 식사 대신으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만큼의 양이 아닐까. 물론 평범한 중년의 남성을 기준으로 했다. 

맛있는 골뱅이에 술을 마시니 잘 취하지도 않는다. 둘이서 4병을 해치웠다. 술잔에 담아냈던 여러 생각들, 교과서 출판의 미래, 회사의 조직 운영, 사람 관리 등등 쏟아냈던 이야기들이 갯벌에서 잡혀온 골뱅이의 쫄깃쫄깃한 살집과 적당히 쓴 소주잔에 술술 들어와 넘실댔다. 흐릿한 조명에 밖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날, 이야기는 깊었고 솔직했으며 담담했다. 

10시에 가까워진 시간 술집을 나와 걸었다. 비바람이 쉴새없이 몰아쳤지만, 세파에 시달렸던 마음들을 녹인터라 힘들진 않았다. 다만 좀 떨었다. 술이 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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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행0 - 프롤로그

혼자 갈 뻔했는데, 가기 이틀전 한명이 합류했습니다.
뒷모습만 봐도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알겠죠.
오동도 가는 길, 
해양수산청 지방사무소 건물인 듯한데,
그 담장 안쪽으로 벚꽃들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잎이 떨어지려면 아직 멀었을 것 같더군요.
그리고 길 옆으로는 빨간 꽃이 보이실 겁니다.
동백꽃입니다. 역시 한창이었습니다.
가끔 거센 바람이 불면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지는데,
그 모습은 어찌나 서글퍼 보이는지...
비와 바람과 구름이 가득한 여수 여행길 사진
하루에 조금씩 업데이트 합니다.


여수 여행 1 - 여수로 가자

여행 하루 전.

신명이의 전화가 왔다. 9일날 결혼식에 꼭 와달라는 전화였다. 일전에 했던 약속이 있어서 차마 못가겠다는 말은 못하고 또다시 가겠다는 허언을 늘어놓았다.

밤늦게 또 한통의 전화가 왔다. 친구였다. 4월 말에 결혼하는데, 9일날 저녁에 친구들한테 얼굴 한번 보자는 전화였다. 여수 간다고, 그래서 못가겠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끊고 나서 거짓말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먼길을 떠난다는 것은 설렘이다. 내면의 어떤 에너지가 점차 그 떠남을 준비하다 보면 밤잠을 이루기도 어려운가 보다. 일찍 잠들었지만 첫잠을 깬 것은 새벽 3시반이었다. 그렇게 시간마다 잠을 깨다가 5시 반에 일어나 전날 만들어 놓은 김치볶음밥을 데워 아침을 해결했다.

기차 시간은 7시 50분 용산발 여수행 새마을호. 평생 무궁화호만 이용하다가 새마을호를 타려니 기분이 묘하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다. 이게 다 KTX덕분이다. 분에 넘치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무궁화호는 보기 드물게 되었고, 교통비는 억지로 뛰어올랐으니 말이다.
 
열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돕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심란한 이 마음을 하늘이 알아 준 것인지 모를 일이다. 기차는 빗속을 달려 12시 50분경 여수에 도착했다.

봄날 여행지로 여수를 선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어느 블로그에서 본 여수 여행일지에 혹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선택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다음으로 봄을 준비하는 바다를 보고 싶었다. 겨울이 막 물러가고 봄의 물컹거리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바다를 본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무엇보다 여수는 봉오리를 툭툭 떨어뜨리는 동백꽃이 잘 어울리는 항구가 아니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여수 여행 2 - 자산공원과 오동도 

오동도는 여수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오동도까지 가는 길도 벚꽃과 동백꽃이 화사하게 어우러져서 매우 아름답다. 벚꽃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지만 동백은 10월에서 4월까지만 피며 겨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꽃이다. 그런 두 개의 꽃이 여수를 온통 정신없이 물들이고 있었다.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가 배턴을 터치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하지만 오묘한 조화가 멋들어지게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동도 바로 옆에 자산공원이 있다. 여기에서 보면 여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아름다운 미항이라고 불리는 여수는 작지만 알찬 도시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자산공원에 오르면 멀리 경남 남해가 보이고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영 앞바다가 훤하게 펼쳐져 있다. 오동도로 나있는 방파제 길로 사람들이 오간다. 방파제 입구에서는 오동도로 들어가는 관광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오동도 입장료는 1600원. 관광열차 승차료는 500원. 우리는 걸어서 오동도로 들어갔다.

여수와 오동도를 잇고 있는 방파제.


 


 

여수 여행 4 

다음 일정은 방죽포 해수욕장. 녹동식당에서 나와 여수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탔다. 진남관까지 기본요금(1600원)이 나왔다. 그곳에서 돌산 향일암으로 들어가는 버스 111번을 탔다. 버스는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갓김치로 유명한 돌산으로 들어가고 약 30여분을 달린 버스는 마침내 방죽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방죽포에 도착한 시간은 5시. 예상보다 많이 늦었다.


방죽포 해수욕장은 매우 작은 해수욕장이다. 모래톱이 약 200M정도 될까? 모래사장 뒤로는 키 큰 소나무들이 방풍림을 조성하고 있었다. 작지만 그래도 소담한 풍경으로 찾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도착하니 다시 비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자잘한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바람도 거세게 불어왔다. 구름 덕분에 평소보다 주위는 빨리 어두워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여행을 수행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민박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고 갈 방문에는 전라남도의 지원을 받은 시설이라는 것과 요금표가 적혀 있었다. 주중 2만원, 주말 3만원, 성수기 5만원의 표준요금을 받고 있었다. 큰 창문으로 방죽포 앞바다가 훤하게 보였다. 날씨만 좋다면 이곳에서 일출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도 날씨가 흐려 손님들이 일출을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또다시 난관에 부딪힌 것은 근처에 식당이 없다는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향일암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할 예정이었는데, 방죽포 해안은 워낙 한적한 곳이라 변변한 매점도 찾기 힘들었다. 다행히 주인아저씨의 도움으로 차를 타고 나가서 몇가지 술과 요기거리를 사올 수 있었다. 간단히 요기를 마치고 술과 이야기로 한밤을 달렸다. 밤새 유리창을 때리는 바람소리와 창문 너머로 바닷가 콘크리트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참 좋았다. 12시 즈음 잠자리에 들었고, 파도소리는 술기운과 어울려 오히려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새벽 즈음 눈을 떴으나 날이 흐려 일출맞이는 어려울 듯싶었다. 후배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때문에 걱정도 되고 겁도 나서 잠을 설쳤다고 했다. 9시가 넘어 민박집을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향일암 방향 버스가 한대 지나가고 있었다. 여수 여행에서 대중 교통, 특히 버스의 시간대를 알아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배차간격은 최소 30분이었고, 우리는 정류장에서 약 40분 정도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방죽포 해수욕장의 소나무 숲
△방죽포 해수욕장
△ 빗속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방죽포 방파제에 정박된 어선들
△민박집에서 바라본 방죽포 해수욕장
△ 밤새 파도가 민박집 밑의 방파제를 때렸다.
△ 거센 파도와 바람 속에서도 낚시를 준비하는 사람.

 


 

여수 여행 5 - 향일암

9시반 경에 나왔지만 버스는 10시가 넘어서 탔다. 시간을 잘못 맞춘 것이다. 이곳을 오가는 버스가 30~50분 간격으로 온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방죽포에서 향일암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렸다. 돌산도의 해안가를 달리는 버스는 작은 어촌마을에 멈추고 내 고향 산골마을과는 사뭇 다른 내음을 전해 주었다.

향일암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향일암 주변에는 많은 민박집과 식당들이 즐비했다. 어제 저녁에 이곳에 와서 저녁을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 양옆으로 돌산의 명물 갓김치를 파는 상인들이 늘어서 있었다. 즉석에서 김치를 담그면서 오가는 손님들을 불러 한입씩 물려주었다. 그 틈에 나도 갓김치 맛을 보았는데, 짜고 매운 맛이 전라도의 손맛이라는 말이 아마 이 갓김치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향일암에 오니 또 가랑비가 오락가락 했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그리고 관음전까지 둘러보았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먼 남해 바다를 지긋이 응시하는 모습이 속세인들의 발걸음 소리에 괘념치 않는 듯했다. 조그만 터에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절이지만 길목 하나 바위 하나가 오밀조밀한 멋을 보여주는 절이었다.

향일암에서 내려와 버스를 탄 시간은 대략 12시. 여수 시내 중앙동에서 점심을 먹었다. 좀 특별한 식당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전주식당에서 콩나물해장국을 먹고 말았다. 시장기가 원수다.

△향일암 오르는 길. 수많은 계단은 부처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씻어야 하는 업보.
△향일암은 작은 절이다. 작고 오밀조밀한 절이 바닷가 절벽쪽에 붙어 있는데, 절도 아름답지만 절에서 바라본 경치는 더욱 아름답다.
△향일암의 대웅전 앞으로 남해 앞바다가 보인다. 이곳은 일출 전망대로 유명하다.
△ 곳곳에 동백이 피고 지고...
△바위에 동전을 붙이면 복이 온다는 얘기에 방문객들이 동전을 붙이고 있다.
△ 관음보살과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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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경 | 여수 돌산갖지 정말 맛있는데.. 김장할때 같이 담아서 일년이상 묵힌뒤에 잎을 쫙펴서 밥을싸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는데..막 담근건 아무래도 짜고 맵기가 쉽습니다. 익혀서 먹어야 제맛이 나므로..


여수 여행 6 - 진남관

점심을 먹고 여수역을 향하던 중간에 잠시 들른 곳은 진남관. 이곳은 여수 8경중의 4경이라고도 불리우는 곳이다.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에 속한 건물로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에 축조되었다가 1716년에 불에 타서 1718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건물 하나하나에 새겨졌을 목수와 인부들의 땀과 눈물이 세월의 흔적에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규모면에서 보면 종묘의 영녕전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나무와 돌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은 여태껏 보아온 고건축물 중 단연 오래되어 보였다.
1시가 조금 넘어 진남관에 도착했고, 관람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2시 20분 여수발 용산행 기차를 타기 위해 진남관을 나온 시간은 1시 50분경이었다. 진남관은 여수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1600) 거리에 있다.

에필로그.

아스팔트에 떨어진 동백꽃을 보면서 처연함과 함께 끝까지 아름다움을 놓지 않으려는 절규를 보았다. 어디까지나 나를 위로하는 여행이었는데, 든든한 동행이 되어 준 현상군에게 감사한다. 여행이란 어차피 돌아오기 위한 잠시의 일탈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과 돌아온 이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번 여행이 그런 내 안의 변화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흔들리면서 일상을 살고 있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며 내 어깨를 툭 치고 가는 동백꽃을 만나고 왔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본다.

△ 진남관의 전체 모습
△ 진남관에서
△ 현상이와 함께
△ 진남관의 보
△ 기둥과 처마

 

문현경 | 두사람의 그림도 훌륭하지만.. 두사람다 따로 따로 두사람이면 하는 마음입니다.

강대진 | 알았어^^ 담에는 그렇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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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지리산둘레길 4구간인 금계-동강 구간을 지나온 이후로 벌써 6개월, 즉 반년이 흘렀다. 이토록 오랫동안 둘레길 자락을 찾지 않은 이유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이유도 있었지만 봄부터 창궐하기 시작한 전염병(코로나19 바이러스)이 더 큰 원인이다. 

이 전염병이 언제까지 어떻게 이어질까? 두려움과 공포로 우리는 모두 칩거에 들어갔다. 어려운 말로 비대면 접촉이 늘어나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었다. 3월 초 잠깐 둘레길을 가자고 했을 때에도 출발 전날까지 나와 아내는 망설였다. 아내는 장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 당시 시골 노인분들은 외지인들에게 민감했고,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도 길에서나 만나면 잠깐 인사나 나눌 뿐 교류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둘레길을 걷겠다는 여행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사실 어느 여행인들 그러지 않았나? 집을 떠나 낯선 곳에 간다는 것에는 많은 기쁨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오랜 옛날부터 집을 떠나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쉽게 나라와 나라를 드나들고 바다와 산을 넘나들 수 있다고 하지만, 어찌됐든 21세기에도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유행어가 나올 만큼 집 밖을 나서는 일은 일단 마음가짐부터 단단해져야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어 인심도 흉흉하다. 여행객을 곱게 볼 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모든 상황을 감수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오랜 상의와 숙고 끝에 5월 마지막주 주말 지리산 둘레길 5구간, 동강-수철 코스를 걷기로 결정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지리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새벽 4시 출발. 5월 말, 사위는 5시부터 밝아오기 시작한다. 4시간 반을 달려 다시 함양군 휴천면 원기마을에 도착했다. 새벽길을 달렸던 피곤함은 임천강으로 흐르는 맑은 아침 기운 속에서 쉽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원기마을 앞의 엄천교를 건너면 동강마을이다. 여기서부터 5구간의 시작점이다. 5구간은 꾸준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여정이다. 쌍재를 지나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고동재를 거쳐 수철마을까지 다시 내려오는 비교적 단순한 구간이다. 고도 변화는 그렇게 이어지지만 길 자체는 구불구불 산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말하자면 2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구불구불이요, 다른 하나는 오르락 내리락이다. 아무래도 산을 치고 올라가는 산행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 계곡과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라서 산세에 따라 길은 구불구불 이어지거나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다. 이런 길의 특성 때문에 도심에서 걷는 10km와는 비교할 수 없는 노고가 들어간다. 도심에서 10km는 오르막이 있어도 3시간 안에 끝나지만, 지리산 둘레길은 보통 6시간 정도는 걸어야 한다. 물론 숙련도에 따라 시간은 달라진다. 

 

쌍재와 고동재 사이 가장 높은 곳이 아마도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곳일 듯하다.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여정이다. 

 

 

 

동강-수철 구간 지도: 8번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이다. 

 

 

오전 8시 30분 경, 여정을 시작했다. 둘레길에서 만나는 마을 중에는 농촌 마을로서 노동의 현장성보다는 전원 마을이라는 여유로움이 더 짙게 느껴지는 마을이 있다. 잘 정돈된 담장과 여기저기에 그려진 벽화, 그리고 손님을 안내하는 팻말과 민박집 이름이 적힌 간판 등이 그런 느낌을 전한다. 반면 다양한 농기계나 농기구가 도로 한쪽에 있어 아무렇게나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오래된 돌담과 낡은 구옥들이 제멋대로 그늘을 드리우는가 하면, 소나 닭을 키울 것 같은 축사나 우리가 보이면 여기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느낌을 준다. 이 둘은 둘레길에서 항상 공존한다. 농촌이라는 노동의 현장성도 있고, 둘레길 마을이라는 여행의 공간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길을 지나 한참 임도를 따라 걷다가 왕복 2차선 차도와 만난다. 거기서부터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까지는 차도 옆으로 걸어야 하는데, 인도가 없어서 위험천만하다. 게다가 바로 옆 하천변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 중이다 보니 덤프트럭 등 공사 차량도 가끔 오간다. 여기는 둘레길 여행객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미흡하다. 따라서 5구간을 걷고자 하는 분들은 아예 산청함양 사건 추모공원에서 시작점을 잡는 것을 권한다.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이제 지구상에서 전쟁이라는 행위는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잔인하고 비이성적이며 비인간적인 전쟁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기고 질문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념비적 장소나 집회, 모임을 이어나가고, 책과 영상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다음 세대에도 이해시켜야 한다. 

최근의 위안부 논란에서도 우리는 결코 전쟁 중 일어났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간과해서도 안되며 이를 축소 은폐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한다. 비록 모임의 운영과 관련해 여러 의혹이 있다고 해도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전쟁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에서 주춤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에게 잠시 전쟁과 산청함양 사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 잔인함과 비이성적 광기를 모두 알려주기는 어려웠지만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이곳에 교육관이 있어서 방문하면 더 자세한 역사 교육이 되었겠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육관이 휴관 상태였다. 나에게는 두 번째로 아쉬운 지점이었다. 



산청함양 사건 추모공원, 멀리 보이는 위령탑

 

산청함양 추모공원을 지나면 곧이어 산길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5구간의 산행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계곡길을 따라 쌍재까지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가파르지 않다. 가다 보면(추모공원에서 2km 지점) 상사폭포를 만날 수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폭포를 직접 보기는 어려웠다. 수풀이 우거져 있고, 폭포를 보기 위해 계곡으로 직접 발을 들여놓기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초행길에서 지나치게 경관을 추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주어진 길을 따라 눈앞에 나타난 길을 잘 즐기는 것도 걷기 여행의 방법이다. 특히 사람이 그다지 많이 다니지 않는 길에는 산짐승의 위험도 있다. 다람쥐나 청설모는 귀엽지만 멧돼지나 뱀은 매우 위험한 존재다. 길이 아닌 곳에서는 그런 위험이 더 커진다. 따라서 아이가 있거나 단출한 가족끼리 둘레길을 간다면 최대한 제시된 길을 따라가는 게 안전하다. 



천천히 오르다보면 어느새 쌍재에 다다른다. 상사폭포에서 어렵지 않다. 줄곧 오르막이라지만 구불구불 이어지면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오르다 보면 반가운 매점도 있다.  산청 막걸리 5000원에 몇 가지 산나물 안주는 공짜다. 아내와 둘이 한잔 마시는 시간은 아이에게도 휴식 시간이다. 아이는 여전히 산에서 만나는 곤충들에 민감하다. 도시 아이로 자라나면서 생성된 벌레에 대한 비호감이 둘레길 걷기로 극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매점에는 막걸리나 맥주도 있지만 생수나 아이스크림도 있다. 안주류로 도토리묵이나 파전도 있고 간단히 요기를 때울 수 있는 라면도 팔고 있다. 

 

“와~ 멋지다.”
매점을 지나 고동재로 가려고 오르막길을 가다가 앞서 가던 아내의 탄성이 들렸다. 곧 갑작스럽게 조망이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곳이다. 그다지 높이 올라온 것 같지 않았는데, 사방 어느 한 곳도 막힘없이 트였다. 이곳이 최고의 조망지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지리산 천왕봉을 만났다.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천왕봉을 아이에게도 설명해 주었으나 지리산 능선을 밟아본 일이 없는 아이에게 그저 먼산 바라보기 밖에 뭐가 더 있겠나. 아내와 나만의 추억일 뿐일 것이다. 

5구간 초입에서 느꼈던 아쉬움으로 막혔던 속이 여기서 시원하게 뚫렸다. 사방 어디를 내다 봐도 산과 들과 하늘이 가득하다. 바람도 여기서는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을 되새겨볼 만했을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우리는 바람과 함께 머물렀다.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바라본 풍경1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바라본 풍경2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바라본 풍경 - 저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천왕봉



 

산불 감시 초소를 지나면 얼마 안가 고동재가 나온다. 수철리와 방곡리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여기에는 장승 하나가 버티고 서 있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간략한 안내말을 전한다. 모르고 다가섰다가 장승에서 나오는 소리에 깜짝 놀랄 수도 있을 것 같다. 고갯길에서부터는 임시도로를 따라 수철마을까지 연결된다. 산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인적도 없는 길에 뱀 한 마리가 지나가는 걸 보았고, 뱀 껍질도 발견했다. 새소리만 가득한 길을 자박자박 걸어가니 발걸음도 가볍고 흥이 오른다. 오래 걸은 피곤함도 잊을 수 있었다. 

 

수철마을로 내려서니 여기저기 민박집도 보인다.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마을의 풍경이다. 여기도 마을회관 주변에 중장비가 오가면서 공사가 한창이다. 둘레길 초입 계곡쪽 공사와 함께 마을 회관 앞 개천 공사도 진행 중이라서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개인택시로 전화를 걸어 동강 마을까지 가는 택시를 문의했다. 10분만에 차가 한대 배정되었고 곧이어 택시가 마을회관까지 올라왔다. 이곳에서 동강마을까지는 2만 4천 원 정도 나온다. 코로나 때문인지 기사님은 말씀이 없으셨고, 새벽부터 이어진 여정 때문인지 아이는 잠이 들어버렸다. 

고동재를 내려와 걷는 임도
수철마을에서

 

수철 마을 회관 앞 평상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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