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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

 

으슬으슬한
저녁답, 가랑잎 부서지는 소리가
자꾸 발밑에서 들렸네

가을의 초입이라 하늘이 아슬아슬하다. 야근은 점입가경으로 빠져들었다. 살떨리는 주말 근무는 힘겹기만 하다. 휘어져 가는 볼펜꼭지가 불안하게 종이 위에 멈추어 서면 난 옥상에 나간다. 거기서 낮이든 밤이든 가을 하늘은 보면 좋다. 그곳에는 피곤을 달래주는 청명함이 있다. 이 가을의 서늘한 바람소리도 사무실 문앞에서 머뭇거린다.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병 때문일까. 사람들은 후끈 달아올라있다. 여기에 가을은 없다. 그래서 자연이 필요하다. 인위적인 흔적들을 지우는 곳이다. 인간의 몸이 자연과 동화하여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곳. 기계적인 시간의 흐름보다는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시간이 우선인 곳. 배고픔처럼 강렬한 욕구가 나를 자극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강물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아까보다는 훨씬 더 깊어져
불빛도 안 켜진 사람의 마을 쪽으로
그렁그렁 흘러갔네

함허동천 야영장에도 밤이 찾아온다. 가을은 더 깊숙이 옷깃을 파고든다. 오래만의 한기다. 겨울이 되면 시인의 말처럼 바람은 ‘푸른 회초리처럼 휘어졌다가 / 흉터 많은 내 이마를 후려치고’ 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차갑지만 반갑다. 야영장 곳곳에 세워진 텐트에서도 밤의 적막이 찾아온다. 우리 옆에서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다. 아직은 이야기꽃을 끌 때가 아니다.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 때로는 한밤의 정적을 가르기도 하고, 때로는 별들처럼 소곤대며 끝이 없이 이어진다. 불빛도 시나브로 졸고 있는 이 텐트의 마을에서 밤은 점점 깊어졌다.

- 내 눈에는 왜 모래알이
서걱이는지 몰라, 눈을 뜰 때마다
눈 못 뜨게 매운 연기가
어디서 차오르는지 몰라,

1397년 세종대왕으로부터 촉망받던 성균관생이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최고의 학부에서 연구를 하던 이가 모든 걸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이름은 유수이, 휘는 기화(己和)이며 어릴 적부터 지혜가 남달라 일찌감치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고, 그곳에서도 두각을 보여 세종의 눈에 자주 띄었다. 그런 그에게 둘도 없는 지음이 있었다. 그렇게 함께 학문을 닦고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젊은 날에 갑자기 생을 놓고 말았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삶에 대한 좌절 속에서 하루하루를 괴로워하던 유수이는 성균관을 떠난다. 매일 같이 친구를 위해 연서를 쓰고, 그리워하지만 끊임없이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치 눈에 모래알이 들어온 것처럼, 아니면 눈을 뜰때마다 연기가 찌르는 것처럼 눈이 아팠다. 아니 마음이 아팠다. 자꾸자꾸 눈에 차오르는 눈물의 이유를 물어서 어디에 쓸까.

잘못 살아왔다고, 너무
아프게 자책하지 말라고
갈 곳 없는 새들은
물에 잠긴 옛집 나무 그림자를 흔들며
석유곤로에 냄비밥을 안치는
독거獨居의 마음속으로 떼지어 날아들고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을 이겨내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를 알아주고 내가 알아준 그 이가 세상에 없는 슬픔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이 필요할까. 유수이는 그 길로 속세를 떠난다. 다시는 그런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시는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그러나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옛우정의 흔적 앞에서 흔들렸다. 정처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 마침내 닿은 곳은 마니산의 한 계곡. 신라 선덕왕 때 지어진 정수사를 끼고 있는 곳으로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으면서도, 태고의 질서에 순응하듯 물을 담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들어왔나 보다. 그는 곧바로 좌선에 들어갔다. 너무나 아픈 자책도, 갈 곳 없는 외로움도, 물에 잠긴 쓸쓸함도 모두모두 저 황해바다에 풀어버리리라.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녁답, 나는
집에 안 가려 떼를 쓰는
새끼염소나 달래면서

마침내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없다. 무녀무상. 곧바로 일어나 바위에 네 글자를 새긴다. ‘함허동천’ -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 친구여 이제 잘 가라. 내 마음 속에서도 너는 편안히 잠들라. 한 점의 번뇌도 없이 맑은 마음으로 내 이곳에서 머물겠노라.

늦은밤에 도착한 함허동천. 모두가 고요히 잠든 숲길에서 고즈넉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기 친구를 잃은 슬픔을 승화시킨 한 스님의 일갈이 들리는 듯하다. 슬픔이 슬픔을 키운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기른다. 쓸쓸함이 쓸쓸함을 돌본다. 다시 좋은 삶이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 제목과 시는 전동균 시인의 시 ‘함허동천에서 오래 서성이다’를 그대로 옮겨 온 것이며, 안의 험허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적인 사실을 나름대로 상상해 엮어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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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사고는 한순간이다. ‘어어’하는 두 음절이라도 나올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 순간만큼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위기를 안전하게 모면하는 게 최선이다. 밤 11시20분 경, 마포역을 지나 마포대교로 향하는 지점에서였다. 밤늦은 시간이라 차량 통행도 뜸하고 나 역시 너무 늦어져서 급하게 달리고 있던 참이었다.

마포역 근처는 신호가 많고 대기하는 택시도 많아서 차들이 가다서기를 반복하는 정체구간이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정체구간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던 참이다. 이 구간에서 주의할 점은 갑자기 우회전하는 차량이나 택시에서 문 열고 내리는 손님들이다. 그런 점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차에 우회전 길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고 나는 그곳을 직진으로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직진을 하던 차량이 갑자기 우회전했다. 우측깜빡이를 켜지도 않고 들이밀고 들어오니 이미 차량 옆으로 지나가고 있던 나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길옆에 자전거를 세웠다. 상대방은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옆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러고 하는 말이

“아니 왜 자전거가 차도로 다녀요.”

황당한 우문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자전거는 차량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당연히 차도를 이용해 달리는 게 맞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누구의 과실이 더 크게 인정될까.

유감스럽지만 자전거에도 과실이 있다. 자전거도 ‘차’로 구별되기 때문에 빚어지는 억울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자전거를 일반 차량과 동일시해서 발생하는 ‘모순’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고 건널목을 건너다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차량과 부딪혔다면, 그 경우 자전거 운전자는 법적으로 보호받기가 어렵다. 차선위반(역주행)에 신호위반 등등 다양한 과실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는 자전거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이 없고 단지 ‘차’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이처럼 분명히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로 처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앙부서나 지방자치기구나 할 것없이 자전거 타기를 추천하고 진보보수할 것없이 모든 신문매체들이 자전거 타기를 예찬하고 있지만, 도로교통법에 자전거 관련 법률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것들이 단지 쇼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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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에서 도전 트래블러거를 모집한다고 한다. 트래블로거에 선정이 되면 여행 경비의 일부 지원해 준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 내용을 들춰보니 반갑게도 지정 여행지에 태안도 포함되어 있다. 다음은 지원양식에 따른 이벤트 응모 내용이다.


- 지원 사유 :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태안은 지난 기름유출 사건 때 자원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던 곳입니다. 당시 함께 했던 후배들과 괜찮아지면 꼭 한번 일부러라도 놀러 가자고 약속했지요. 그렇지 않아도 10월에 갈 생각인데, 지원해 주시면 멋진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 여행 지역 : 충청남도 태안

- 여행 날짜 : 10월 3일 ~ 10월 4일

- 여행 컨셉 : 다시 찾는 태안, 살아나는 태안

- 여행 일정 : 10월 3일 출발하는 1박2일 일정


 ----------------- 자세한 1박 2일 일정 ---------------------

10월3일 : 태안으로 출발 ->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 안면도 자연휴양림 -> 일몰 감상 -> 천리포 해수욕장 산책 -> 숙박

10월4일 :  천리포 수목원 -> 오키드타운 식물원 -> 태안 볏가리 마을 ->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길 -> 드라이브 -> 집으로...

----------------------------------------------------------


일정은 이 정도로 잡아 봤다. 실질적인 여행 계획은 바뀔 수도 있지만, 태안군 일대와 안면도라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쓸고 닦았던 바위와 백사장을 둘러보고 싶다. 인간의 노력과 자연의 노력이 빚어낸 치유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기대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당신도 도전해 볼 수 있다. 이벤트에 당첨되면 최고 35만 원의 여행경비를 지원해 주고 최고의 블로그를 작성한 이에게는 더 푸짐한 상품을 준다니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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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거다. 그런데 한때 국민 대다수가 만두를 끊은 일이 있다. 이른바 ‘불량만두’ 사태. 지금도 업체 관계자들은 그때 생각만 하면 몸서리를 친다고 한다. 당시 피해액만 5천여억원, 게다가 젊은 만두업체 사장의 자살까지 불러왔다. 후속 취재에 따르면 보도되지 않은 또 다른 이가 자살을 했다고 하니 사람만 두명이나 죽어나간 사태다. 물론 만두 먹고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전국언론노조 민두언론실천위는 당시의 보도에 대해 ‘탐사보도의 부재’와 ‘선정주의적 접근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렸을 적 만두는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집안의 모든 식구들이 여기에 매달려 누구는 밀가루를 빚고 누구는 속을 만들고, 누구는 속을 꼼꼼하게 채워야 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저며 만두피를 만드는 것도 기술이지만 더 고도의 손재주를 요하는 것은 그 얇은 만두피에 속을 채워 넣어 봉합하는 일이다. 번번이 속이 터지는 일이 일어나니, 그야말로 ‘속 터질 만두 하지’라는 말은 아마 이렇게 탄생한 말이 아닐까, 하는 객쩍은 농담도 주고받았다. 이렇게 손이 많이 필요하고 품이 많이 드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일까. 불량만두도 그렇고 중국에서 들려온 골판지 만두(이것도 방송사의 뻥으로 드러났다)도 그렇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만두가 처음 만들어진 유래도 심상치 않다. 남만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심한 풍랑을 만난 제갈량이 밀가루로 사람 머리를 만들어 제물로 바친 것에서 만두가 유래한 것이니, 세상의 풍파가 거셀수록 만두를 제물로 바쳐야 할 일도 많아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손이 많이 드는 만두를 이제는 쉽게 먹을 수 있다. 어디든 만두 전문점이라면 기웃거리는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만두이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퇴근하는 길이라도 만두파는 가게 앞에서는 항상 머뭇거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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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이촌동의 <갯마을> 손만두 전문점을 찾아간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점심식사를 어디서 할까 고민하다가 1년전 찾았던 그 만두집이 생각나서 인터넷을 뒤진 끝에 찾아갈 수 있었다.


손만두 전문점이라 만두국을 시켰다. 육수를 우려낸 국물은 적당히 뽀얗다. 진하게 우려낸 맛이다. 고명으로 얹힌 계란도 먹기 좋게 썰었는데, 노른자와 흰자를 따로 했나보다.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이 돋보였다. 만두 자체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이렇게 내놓은 음식에서도 그런 정성을 엿볼 수 있으니 입맛이 더욱 살아난다. 8,000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다. 동동 떠있는 만두를 하나씩 먹으면서 국물도 같이 먹으니 속이 단단해 진다. 속이 꽉찬 만두처럼 말이다. 양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밥도 작은 사발로 나오는데, 추가 주문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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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맛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자부하는 내가 이런 맛집 개념의 블로깅을 하는 것은 '그냥 재미'다. 사실 이런 블로깅을 위해 먹을 것 앞에 두고 요리조리 사진 찍는 행위가 나로서도 남세스러운 일이고, 쪽팔린 모양새라는 점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무슨 맛 칼럼니스트도 아니고, DSLR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모양새가 나에겐 아직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일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선배가 하도 재미있고, 즐겁게 블로깅을 하는 걸 보면서 어쩌면 사소한 즐거움도 쌓이면 재미고 행복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서 밥 먹는 것 하나에도 10년 정성을 쌓는다면 무언가 나름대로 철학이 쌓이지 않겠느냐가 그런 것이다.

숟갈 함부로 놀리고 젓가락질 아무데나 하면 먹는 일 자체가 그저 생존의 수단일 뿐이다. 이제 먹는 것도 하나의 문화라고 한다. 생존을 위해 먹던 것에서 이제 즐거움을 위해, 행복하기 위해 먹는 것이다. 식탁의 문화는 물론 생존이 가장 그 기반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 생존을 넘어서는 활동이 또한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잡설을 풀어놓는 데는 "왜 이런 음식 사진, 식당 사진을 올려놓느냐"는 내 자문에 대해 한번 대답해 보고 싶음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집은 예술의전당 앞에 있는
<숙자네 부대전골>이다.

식당은 참으로 여러종류가 있다. 뭐, 대충 한식, 중식, 양식, 일식 이렇게도 나누지만, 맛이 좋은 집, 사연이 있는 집, 분위기가 좋은 집, 역사가 오래된 집 등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숙자네>는 사연이 있는 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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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가 심상치 않다. 분명히 간판은 <숙자네 부대전골>이라고 되어 있는데, 유리창에는 덕지덕지 오래된 포스터와 공연안내문이 붙어 있다. 척 보기에는 무슨 DVD 대여점 같아서 처음엔 그냥 지나치고 말았더랬다. 게다가 문을 찾기도 쉽지는 않다. 초행길 손님에게는 불친절한 셈이다.

하지만, 여기는 예술의 전당 공연팀이 자주 찾는 뒤풀이 장소로 소개되었던 곳이다. 보통 무대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공연 전에는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거나 아예 굶는단다.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을 위한 배려차원이다. 그러다 보니 공연이 끝나면 뱃가죽이 등가죽과 뽀뽀하기 마련. 그래서 이곳을 찾아 부대전골을 즐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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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라고 하지 않고 부대전골이라고 한 것은 왜일까. 여타 부대찌개와 다른 점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2인분을 시켰는데 사리는 반개다. 추가로 주문해도 되겠지만 당연히 추가 비용을 받는다. 안에 들어간 햄은 흔하게 보는 그런 햄이다. 두부는 보이는 게 전부, 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미나리가 들어가 국물의 맛이 남다르다. 여러 가지 재료들을 미나리와 같이 먹으면 맛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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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그렇다 치고 가게 주변에 붙어 있는 여러 공연 안내문과 포스터가 참 독특하다. 여기에 공연 관계자들의 사인이나 연예인 사인도 곱게 잘 받아서 도배를 해 놓은 모양이 많은 정성을 들였을 것 같다. 이 집 주인장에게는 하나같이 사연이 있을 법하다는 상상을 가능케 해 준다. 예술의 전당 바깥에서 예술인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식당에 있어 한번쯤 가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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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제주도 뒷풀이를 했습니다. 그렇게 재밌게 놀다왔으면 됐지, 무슨 또 뒷풀이냐 싶겠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입니다. 술자리 갖자는 핑계치고는 좋지요. 그날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되새기면 술맛도 좋을테니 말입니다.

모임 장소를 고민하던 환국이 추천한 곳, 대학로 <낭's>.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던 토요일 오후 우리는 거기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첫손님인지 안은 좀 후텁지근하더군요. 지금 막 에어컨을 틀었다니, 시원한 공간을 바랬던 우리는 좀 서운했지요. 가운데 나무가 있어서 분위기는 좋은데, 공간을 나무가 많이 차지해서 테이블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집은 해물떡찜과 모듬튀김이 유명하다고 하네요. 특히 ‘튀김 요리 전문 주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모듬튀김을 자신있게 추천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다녀온 이들은 해물떡찜을 많이 추천하네요. 자신 있는 것은 자신 있는 것대로, 또 대중의 입맛은 입맛대로 둘다 괜찮을 거라는 기대를 할 만합니다.

우리가 먼저 주문한 것은 해물떡찜. 떡볶이류가 그러하듯이 맵습니다. 맥주가 저절로 들어가더군요. 네, 해물떡찜은 맥주귀신입니다. 소주 안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옆에 물 한컵씩은 꼭 준비하고 먹어야겠어요. 그래도 저녁 시장기를 없애주는 데는 그만이었습니다. 환국은 맵다면서 국물도 넙죽 잘 떠 먹더군요. 저도 먹어봤는데, 꽤 먹을 만합니다.

다음 안주는 해물누룽지탕. 이건 맥주안주로는 부적합하네요. 소주 안주로 괜찮습니다. 건더기가 많아서 역시 시장할 때 배채우기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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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떡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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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안주는 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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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아이스크림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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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샐러드



마지막으로 연어샐러드. 배가 불러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시켰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듬튀김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어렵게 뺀 살을 다시 불릴 수는 없지요. 아쉽지만 서비스로 나온 황도를 마지막으로 여행 뒷풀이 모임 1차는 마쳤습니다.

대학로 주점 ‘낭's’는 대학생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안주 가격은 중급이었습니다. 싸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결코 비싸지도 않습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술한잔 마시고 싶은 이들에게 괜찮은 곳이네요. 메뉴판닷컴에서 쿠폰을 출력해 가면 다양한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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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 닷컴에 소개된 낭's 소개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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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속의 섬, 우도. 처음 제주도를 가는 이에게 이구동성으로 “우도를 가보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우도는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제주도 셋째 날에는 이 우도를 들어가보기로 했다. 1997년 대학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방문했을 때 우도를 한번 들어가 봤으니 11년만에 들어가보는 셈이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참 좋았다’는 인상을 주었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아침 9시에 숙소를 나왔다. 전날 저녁에 제주 흑돼지로 늦게까지 거나하게 술을 걸쳤더니 아침이 버겁다. 그래도 우도의 해변가에서는 본격적으로 해수욕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숙취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아, 해수욕이라니, 난생 처음이다. 바닷가를 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발목이나 종아리 정도 적시는게 전부였던 내가 이제 해수욕을 하겠다고 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수영복도 챙겼다.











우도로 들어가는 차량이 꽤 많았다. 저 조그마한 섬에 이렇게 많은 차량들이 오전부터 들어간다면 길이 남아나겠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제주도는 7월1일부터 차량총량제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섬으로 들어가는 차량의 최대한도를 605대로 제한하고 있다. 교통체증과 생태계 훼손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11시 30분. 어수선한 성산항을 출발해 우도로 향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배타고 다니는 일이 참 많다. 배 꽁무니에서 일어나는 하얀 포말은 떠남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갈매기들이 포말 위에서 날아다니며 우리 뒤를 쫓아왔다. 잠시 여행의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배는 우도항에 들어가고 있었다.

차를 몰고 나와보니 우도항에는 스쿠터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 한여름이라면 차라리 스쿠터로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수진선배가 운전대를 잡았다. 우도에서는 자기가 운전을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우도 모두 드라이브를 하기가 참 좋다. 막상 운전대를 잡고서 어디로 가야할지 헤매다가 결국 해안선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첫 번째 찾은 곳이 검멀레였다.


▲ 검멀레




▲ 멀리 보이는 짧은 해변이 검멀레 해수욕장. 실상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 바람이 무지 거셌다.


 

검멀레는 우도의 유일한 봉우리 우도봉 아래의 기암절벽이다. 이곳에는 해수욕장도 있다. 독특한 이 해수욕장은 폭이 불과 100m에 불과하지만, 검은 모레 때문에 유명하다. 해변끝에는 고래콧구멍동굴 동굴이 있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바다로 향한 바위에 앉아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의 포말을 구경했다. 수만년동안 이렇게 바다는 육지를 사모했고, 파도는 바위를 향해 구애를 펼쳤다. 바위 뒤편에서 수진 선배는 바닷속 바위에 붙어있는 소라새끼들을 구경했다. 소라껍질 속에 들어간 게도 잡아 보여주었다. 자연은 이렇게 신기하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검멀레를 나와 다시 시작된 드라이브, 구불구불 해안가라 속도를 내는 것도 어렵지만 궂이 속도를 낼 이유도 없다. 덥지만 창문도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람을 차안에 가득 싣고 다녔다.



▲ 비양동 등대. 환국은 여기서 춤을 추더라.





▲ 바람이 보이나? 사람과 바람이 담긴 풍경.



▲ 현상이와 파란 셔츠와 바다가 잘 어울렸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우도 안의 비양동 등대. 섬 아닌 섬이다. 시멘트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물이 찰랑찰랑 파도가 넘실거린다. 바지 걷어 올리고 맨발로 한번 건너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역시 어제 하루 쉰 수진선배의 기분이 최고다 서슴지 않고 발을 적셨다. 환국도 여전히 제일 신났다. 사진 찍고 작은 언덕에 올라서니 정자가 하나 있다. 정자에 앉아 쉬었는데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었다. 하지만 그늘 아래라 그런지 시원하기만 하다. 제주도에서는 바람도 즐겁다.

비양동을 나오니 한시가 넘었다. 배가 한참 고플 때다. 하지만 바나나로 해결했다. 왜 그렇게 가난하게 다녔는지, 아마도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나절만 있다가 가려니 시간이 아깝다. 다시 차를 몰아 찾아간 곳은 우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서빈백사에 들렸다. 여기서 본격적인 해수욕을 했다. 처음에는 옷을 벗는 것도 주저했는데, 물에 들어가니 아주 신났다. 해수욕을 해 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매번 바닷가를 가도 발이나 잠깐 적셨을 뿐 물에 들어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반드시 해수욕을 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던 터였다.



▲ 서빈백사 해수욕장. 가운데 모래찜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와 환국이.
옆에 아가씨는 굉장히 불만있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럴만하다. 해수욕장 물 우리가 다 흐려놨다.




▲ 그래도 좋단다. 박현상 촬영.


▲ 서영선배는 물에 빠지고 나서는 아주 바위에 눌러 앉았다.



▲ 평영으로 수영 중. 입만 벌리면 짠 바닷물이... 생각만해도 짜다 으으~



▲ 물에 빠진 서영 선배.


서빈백사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산호초 해변이다.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동남아의 어느 바닷가가 연상된다. 해변가는 자잘한 산호초들이 은빛색깔로 반짝였고, 바닷물은 그 투명한 색깔을 맑게 드러내고 있었다. 서빈백사는 그 아름다움으로 우도 8경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나와 환국이는 수영복을 준비해 왔기에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동안 배운 수영을 열심히 해 보았는데, 역시 잔잔한 파도 속에서는 쉽지 않다. 게다가 입안으로 들어온 짜디짠 바닷물 때문에 도저히 제대로 된 수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바닷물을 아랑곳 하지 않고 현해탄을 수영으로 건넜다는 조오련 씨가 정말 대단하다.

이런 즐거움을 나와 환국이만 즐긴다는 게 참 미안한 일이다. 수진선배는 몸이 안좋아 안된다고 하지만 현상이는 발만 적시는 것도 싫어하는 눈치다. 전생이 고양이었을까. 하지만 서영선배는 그래도 바닷가라고 모래사장에서 파도와 장난치고 있었다. 이런 즐거움은 나눠야 하는 법, 환국이와 함께 서영선배를 물에 빠뜨렸다.

서빈백사 해수욕장에서는 한시간 정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래찜질을 하면서 산호해변의 느낌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물속에서 오랫동안 잠수를 하면서 바다속 풍경도 감상했다. 그 한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아낌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즐거움을 서빈백사에 묻어두고 나오려니 아쉬웠다.

우도봉을 들려보지 못한 점이 좀 아쉬웠다. 해보진 못했지만 우도봉 등대박물관 구경을 하면서 우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한 지역을 알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하루가 될 수도 있고 한달이 될 수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불과 한나절의 시간으로는 우도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도를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면 오후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정오쯤에 나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번 우도 여행은 나에게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해수욕장에서 시원하게 수영을 해 본 경험은 그 어떤 일보다 재미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횟집에 들려 횟감을 사들고 들어가 마지막날 만찬을 즐겼다. 제주의 밤에 수진선배와 서영선배는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밤산책을 나선 우리는 롯데호텔 주변 산책길과 중문해수욕장을 거닐었다. 마지막날인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내 카메라 배터리도 나갔다. 바다 저 편에 고기잡이 배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바닷가에서는 밤늦게까지 밀어를 나누는 젊은 청춘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제주의 밤은 깊고 푸르게 익어갔다.


▲ 롯데호텔 뒤편.


▲ 산책로를 따라가다가.






▲ 중문해수욕장에서





다시 언제 제주도를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다음 제주 여행은 이번보다 훨씬 재미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제주는 그동안 나에게 별반 매력이 없는 휴양지에 불과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가 됐기 때문이다. 올 가을에 한번 더 제주도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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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의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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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온 서명숙 씨는 각자의 공간에 ‘카미노’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하고 자신의 고향 제주도에 ‘제주올레’를 만들었다. ‘올레’란 ‘거리길에서 대문까지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아무리 길이 흔하다고 하지만 걷고 싶은 길을 만든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길이 있다고 해서 다 걷기 좋은 길도 아니다. 걷고 싶은 길에는 문화가 담긴 풍경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그 지역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순례자가 되어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길 위에서 꽃핀다. 또 길을 만들어도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면 그 길은 지워지기 마련이다. 앞사람의 발자취가 느껴지고 뒷사람을 위해 함부로 발 디딜 수 없는 그런 길이 진짜 길이다.

제주도 여행 둘째 날은 바로 그 제주올레 첫 번째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뜨거운 땡볕 아래서 6시간 이상 20km 가까이 걸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트래킹은 내가 넣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백두대간의 여운이었을까, 걷는 게 좋다. 트래킹이 없었다면 제주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첫번째 길의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는 먼저 성산까지 렌트카로 이동하고 그곳에 차를 주차한 다음 시흥초등학교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렌트카가 없을 경우 제주나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회선 일주도로를 왕복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시흥리에 내리면 된다. 1시간 좀 더 걸리며, 운임은 3000원 정도(변동 가능). 우리가 시흥초등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5분. 중산간 지역에 있는 학교라서 그런걸까. 작은 규모이지만 깔끔한 잔디운동장이 마음에 쏙 든다.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먼지 하나 묻지 않을 것 같은 깨끗함이 느껴졌다. 시간만 된다면야 폴짝폴짝 뒤어다니면서 다방구 놀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날 가야할 길이 멀다.





▲ 뒤에 보이는 작은 언덕이 말미오름(혹은 말오름)이다.
올레 첫길은 초등학교 옆으로 돌아서 그 오름을 오른다.


걷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단 육체적 건강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가. 경보 하듯이 걸어다니거나 심지어는 뛰어 다닌다. 대중교통이 1~2분만 지연되도 분노수치가 올라간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나머지 걷는 것도 잊어버렸다. 걸음을 못 걷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주위 사물과 교감하고 하늘을 보며, 땅을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한번 더 살펴보고 관조할 수 있는 여유와 철학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여행객들이나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목적지는 라싸나 산티아고가 아닌 바로 그 자신이다. 신 앞에 겸손해진 자아를 이끌어내며 걷는 것, 그것이 걷기의 철학이고 순례길이 담고 있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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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에서 맞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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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는 길바닥과 돌담, 전봇대에 진행방향을 가르쳐 주는 안내 표시가 있다. 백두대간처럼 리본으로 길 안내를 하던 것에 익숙한 나로서는 페인트로 칠해진 화살표가 낯설고 눈에 거슬린다. 조만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된다면 멋들어진 이정표가 사람들을 맞아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무튼 길 잃어버릴 일은 별로 없다. 단지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여유만 있다면 충분히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시흥초등학교 옆길로 해서 말미오름을 옆으로 돌아가는 돌담길이 나온다. 바닥에 나온 표시에 주의하면 길은 찾기 쉽다. 한적한 돌담길을 걷다보면 슬슬 땡볕이 거슬린다.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주면 좋겠지만, 산밑이라서 아직은 덜 시원했다. 여름에는 덥더라도 반드시 긴팔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제주도 햇살을 쉽게 봤다가 지금 팔뚝이 허물을 벗고 있다.

그래도 고즈넉한 제주도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밭일 마치셨는지 망태기 들고 점심 드시러 가는 할망(할머니의 제주도 방언)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도 드리자. 반갑게 웃어주는 할망의 주름진 얼굴도 제주가 주는 선물이다. 환국은 배가 고팠는지 돌담 옆에 버려진 감자에 관심을 가졌다. 얼마전까지 밭에는 감자가 심어져 있었나보다.



 

말미오름을 본격적으로 오르는 초입에는 시흥리 청년들이 내건 현수막도 눈에 띈다. 제주올레를 방문하신 분들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오름에 오르는 길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 있어 편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아져서기도 하겠지만, 제주올레를 만드는 이곳 사람들의 정성과 관심이 꽤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20분 정도 오르니 목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제주올레 팸플릿에는 걸쇠를 열고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걸쇠가 아닌 끈으로 묶여 있었다. 넘어가면서부터는 목장이다. 말이나 소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문을 잠가 놓는데, 이후에 나오는 다른 문들은 걸쇠로 되어 있어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오름에서 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연무 때문에 아주 멀리까지는 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오름 아랫동네와 성산 앞바다까지는 아주 잘 보였다. 예전 한라산에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도가 보다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선 듯한 느낌이다. 바람은 또 어찌나 시원하게 불어주던지, 여기 오면서 흘렸던 땀을 순식간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 제주의 검은 흙이 녹색과 대비되어 두드러지게 보였다. 밭을 갈아 놓은 뒤 아직 작물을 심지 않았다.

▲ 멀리 희미하게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까마득하다.
그러니까 이날 걸어야 하는 거리는 저기를 넘어 그 다음 섭지코지다.




▲ 여행객들을 위해 벤치도 마련해 놓았다. 목책을 따라 가면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 가능하면 카메라를 가져가자. 휴대전화 카메라까지 동원됐다. 각자가 담은 풍경들은...


설마 클릭하는 건 아니지?

말똥. 목장은 지뢰밭.

우리가 걸었던 길은 목장길이다. 목장길이니 말이 뛰어다니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는 소보다 말이 많았다. 말들이 뛰어다니고 힝힝거리며 발을 구르는 모습을 텔레비전이 아닌 목장에서 보는 재미도 좋다.

단, 발밑을 조심하자. 말똥이 천지다. 유감스럽게 아무도 똥을 밟지 않았는데, 나만 두 번이나 밟았다. 풀들을 먹고 사는 놈이라 똥이 냄새도 없고 또 오래된 똥은 흙색과 비슷한데다가 풀속에 숨어있어서 잘 보고 다녀야 피할 수 있다. 경치 좋다고 둘레둘레 다니다가 똥을 두 번 밟았지만, 소똥 밟으면 재수가 좋다는 말에 빗대어 히히덕거리며 좋아라했다. 똥 밟는게 좋을리 없지만 경치나 바람, 그리고 걷는다는 것에 취했던 것이다.

천연거름 덕분인지 야생화가 참 많고, 그에 어울리는 갖가지 나비들이 춤을 춘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이름모를 야생화들 틈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목가적 풍경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멀리 펼쳐진 제주의 들판과 바다를 보는 재미가 합쳐졌다. 원경과 근경 모두가 즐겁다.

 





▲ 말미오름을 잠깐 내려와서 오름과 밭 사이로 난 오솔길.




▲ 초지에 길표시가 없다고 걱정할 것 없다. 땅에 있는 돌맹이 위에도 표시가 있고, 나무에도 표시가 있다.




▲ 배가 고프다며 쳐지기 시작한 환국.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배고파 산딸기도 따먹었다고 한다.











▲ 말들을 풀어 키우고 있고, 목장 한곳에는 제주도식 무덤도 있다.



▲ 좋댄다.



▲ 내 앞에 간 죄로 뒷모습만 찍혔다. 물론 의도적으로 현상이는 사진찍히는 걸 피했다.



▲ 사람들이 오니 경계를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먼저 달려드는 일은 없다.



▲ 이렇게 해서 오름 걷기는 끝났다. 이제 종다리 마을로 가는 길이다.


오름에서 준비한 간식을 먹었다. 미리 감자와 샌드위치를 좀 만들어 왔는데, 아주 요긴하게 먹었다. 간식거리는 시흥리 마을에 있는 구멍가게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많이 걸을 때는 수시로 먹는 일이 중요하다. 모두가 배가 고파 혼났고, 무엇보다 환국이는 지쳐버렸다. 그래도 감자 하나를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오름 여행을 끝낸 시간은 12시 반 정도. 약 1시간 반의 여행이었다. 짧지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목장을 나와 다시 시작되는 길은 시멘트 길과 중산간도로인 아스팔트길이다. 뜨거운 지면을 따라 걷는 일이 목장길을 걸었을 때보다 좀 힘들다. 시멘트길에서는 간간히 빗물이 고인 곳이 많아서 까다로웠고, 아스팔트 국도길은 가끔씩 지나다니는 차량에 신경을 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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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에서 성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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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감동과 재미 때문인지, 종달리 마을까지 가는 길은 좀 지루했다. 다들 점점 더 뜨거워지는 태양에 조금씩 지쳐갔다. 마침내 종달리 마을 앞 표지석에 도착했고, 더위도 식힐 겸, 입구의 매점에 잠시 들렸다.

처음 시흥초등학교 앞에서 보았던 밝은 미소는 발갛게 달구어진 뺨 때문에 지워졌다. 서영 선배는 다시 선크림을 발랐고, 나는 매점 앞 수도꼭지를 틀어 등목을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밖에서 등목을 해본 게 까마득하다.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종다리 마을로 들어가서 옛소금밭을 지나서 종다리 해안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시흥해녀의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할 것이다.

 

▶ 종달리 폭낭.
종달리 마을길에서 만나는 나무.
우리가 지날 때도 동네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표지석에는
종달리 소금밭의 유래가 적혀있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 종달리 소금밭 사잇길. 물론 지금은 소금밭의 흔적만 남았다.


▲ 지금 소금밭은 이처럼 무성한 잡풀들이 점령했다.



종달리 마을을 지나면 곧 해안도로가 나온다. 2006년 나는 이 도로를 달려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갔다. 그때는 엄청난 바람 때문에 힘겹게 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날만큼 바람이 제일 고맙다. 걷는 걸 방해할 만큼의 바람이 거세지 않았고, 시원하게 쌩쌩 불어주어 땡볕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전거조차 가기 어려운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길도 나있지 않은 오름은 물론 해안가 바위들 사이나 모래사장은 자전거라도 가기 어려운 길이다. 이런 길을 걷는 재미는 자전거와 다른 맛이 있다.
제주도 여행하는 내내 자전거 여행자들을 많이 봤다. 대부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젊은이들이었는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힘겹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면 예전 내 생각이 나 코끝이 찡해진다. 자전거 여행도 좋지만, 제주올레도 추천하고 싶다.

제주도는 크게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누는데, 종달리와 시흥리는 바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다. 종달리와 시흥리는 인접해 있지만 전자는 제주시에 속해있고, 후자는 서귀포시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해녀들이 많고, 일제시대에는 이 지역 일대 해녀들이 일제의 폭압적인 수탈정책에 거세게 저항했던 역사가 서려있다고 한다.



▲ 종달리와 시흥리의 경계지역. 오징어를 말리고 있던 곳이다. 이때가 막 2시를 넘어 갈 때였다.



▲ 오징어를 말리고 있던 곳에서는 직접 오징어를 파는데, 맛이 괜찮다.



▲ 완전히 마른 오징어가 아니라 반건조 오징어를 살짝 구워주는데, 짜지 않고 쫄깃쫄깃해서 먹을 만하다.
한마리에 1000원~1500원 한다.


▲ 종달리 해안도로에서 찍은 바다사진. 맑고 투명했으며 해초가 많았다.


점심 때가 훨씬 지나도록 먹은 게 없으니 다들 힘들었다. 2시가 넘어서야 시흥리로 들어섰는데, 시흥 해녀의집이 눈앞에 보이자 그제서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계획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시흥 외에도 오조리나 섭지에도 해녀의집이 있다. 모두 그 마을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지역 해녀분들이 따온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내놓고 있어 맛있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싸고 질좋다고 한다면 여기 음식은 그야말로 천상의 음식이라고 할만하다. 시흥 해녀의집은 제주올레에서 추천한 맛집으로 조개죽이 일품이다. 우리 일행들도 이곳에서 조개죽과 전복죽을 시켜서 먹었다. 죽이라고 해서 얕보면 큰코 다친다. 커다란 사기 사발에 하나 가득 나오고 반찬거리로 나오는 지짐도 부족하면 더 가져다 주어 그야말로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제주도에서 나는 반찬들을 하나씩 먹어보는 것도 지역의 맛과 멋을 알아가는 재미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개죽에 조개가 참 많았다. 물큰 씹히는 조개와 살살 녹는 쌀알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입안에 맴돈다. 전복죽도 하나 시켰는데, 그렇게 덩어리째 들어간 전복죽 구경은 처음이다. 보통 서울시내에서 전복죽을 먹으면 전복이 그 실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썰어져 있는데, 이곳 해녀의집 전복은 모양 그대로 살려 듬벙듬벙 죽속에 빠져있다. 전복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전복죽도 추천할 만하다. 맥주 한 병을 시켜 똑같이 나누어서 마셨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벽에 달린 선풍기를 무색하게 했다. 조개죽은 6,000원, 전복죽은 9,000원이다.


▲ 이런 전이 나오는 식당이 나는 정말 좋다. 우리가 너무 잘 먹자 아주머니가 하나 더 갖다 주셨다.

▲ 겡이 튀김이라고 부른다. 해안가 바위틈에 돌아다니는 게를 잡아서 튀긴 것으로 바싹하니 맛이 좋다.


▲ 조개죽. 먹다 보니 사진찍은 걸 잊었더랬다. 조개의 시원한 해물맛이 일품이다. 입에 착착 붙는다.


시흥해녀의집 맞은편에는 조가비박물관도 있다. 조가비박물관을 보고 갈까 했으나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지났다. 천천히 쉬엄쉬엄 구경하자는 취지였는데도 불구하고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시흥리해녀의집을 나온 시간은 3시 반경이었다.

식사가 달콤했던 탓일까. 다시 힘차게 길을 나섰다. 성산이 이제 뚜렷하게 보였다. 바다 저 멀리 우도도 눈에 들어왔다. 해안도로를 걷다가 물이 빠진 바닷가를 거닐었다. 해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걸으면서 조개도 줍고 소라도 주웠다. 제주에서 주워온 조개와 소라는 지금 우리집 어항에 들어가 있다. 어항이 한결 더 예뻐졌다.






▲ 해안가를 거닐었다. 썰물 때라서 걷기가 좋았다. 바닷물이 빠지자 해안가는 여기저기 해초들이 어지럽다.








▲ 성산항에 정박해 있는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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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봉에 올라 꽃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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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차를 주차해 놓았던 성산봉에 도착한 시간이 4시 30분 경, 여기까지 5시간 반정도 걸린 셈이다. 중간에 식사 시간이 좀 길었고, 매점에서 쉬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다면 늦지 않게 온 것이지만, 성산봉을 올랐다가 다시 섭지코지까지 걷는다면 해가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성산봉 오르는 길도 쉽지 않으니 아마도 몇몇은 여기서 여정을 정리해야 할 듯싶었다. 제주올레도 여기서 성산봉을 오르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는만큼 힘든 이들은 그 길을 선택해도 되겠다.

생각해 보니 성산봉 꼭대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성산봉에 입장료 내고 들어와 본 게 대학 수학여행 때로 기억되는데, 그때도 꼭대기는 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전날 술먹고 힘들어서 포기했을 거다. 술이 웬수다. 하지만 오늘은 멀쩡한 정신과 건강한 체력이 뒷받침 해주고 있다. 좀 지치긴 했지만, 이 정도는 백두대간 여행에 비하면 식은죽 먹기다.

물론 성산봉은 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성산봉으로 오르는 길 좌우측으로 난 산책길을 걷는 것도 성산봉의 절경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성산봉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아마도 2~3시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입장권(2,000원)을 끊으면서 물어보니 왕복 40분 소요된다고 한다. 쉬엄쉬엄 1시간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 성산봉 곳곳을 모두 둘러본다면 2~3시간 정도는 잡는 게 맞다.


▲ 완만한 비탈길이 끝나고 성산봉에 가까워 오면 줄기찬 계단길이 이어진다.







▲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졌다는 제주도와 성산봉의 증거.

▲ 성산봉 분화구. 가운데 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이다.









▲ 서영선배는 줄곧 머리에 꽂아 두었던 꽃을 여기 분화구로 던졌다.













▲ 성산봉 한켠에 마련된 매점 겸 식당. 밑에서는 해녀들이 갓잡은 회와 조개류, 해삼 멍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시간이 되면 내려가서 소주 한잔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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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봉은 줄곧 계단길이다. 꼭대기에 오르면 분화구가 훤히 보인다. 성산봉은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생긴 화산섬이다. 오랜 세월 제주도와 성산봉 사이의 바다가 모래로 메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어렵게 올라가자 아담한 분화구 너머 넓게 펼쳐진 바다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봉우리에 가려져 오지 않던 바람도 여기에서는 시원하게 이마를 쓸어주었다. 치마를 입고 온 젊은 처자도 있고, 샌달을 신고 올라온 총각도 보인다. 아이들은 더더욱 신났다. 힘든 것도 모를 때다. 숨이 턱끝까지 올라온 아저씨 아주머니도 꼭대기에 올라서서 길게 한번 숨을 쉬어 본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살갗에 닿는 모든 것들이 시원하다.

성산봉 꼭대기에는 토끼가 한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환국이가 신났다. 거북이가 토끼를 만났으니 아니반가울까.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 토끼는 사람들이 익숙한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풀을 뜯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더니 손길이 닿으면 토라진 여인처럼 돌아서서 멀리 뛰어갔다.

서영 선배는 길가에서 꺾어 온 꽃 한송이를 이곳 분화구를 향해 던졌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일까. 아니면 힘겨운 여정을 마무리하는 통과제의였을까. 꽃을 던지는 손이 곱다. 하긴 이렇게 오래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일 것이다. 결국 서영선배와 현상이는 이곳에서 차를 타고 섭지코지로 가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멀리 섭지코지가 흐릿하게 보이지만 까마득하다. 아마도 1시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어림잡아 보았다(결국 2시간 정도 걸렸다).

이제 나와 환국이만 남은 길을 걷기로 했다.



▲ 수마포 해안. 잘 보면 동굴이 보인다.


섭지에서 지는 해를 보다

 

이렇게 되니 나와 환국이가 2004년 함께 지리산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4명이 같이 갔었는데, 서영선배만 다르고 3명이 이번 제주여행에 같이 온 셈이다. 비슷한 점은 당시에도 2명이 마지막 천왕봉을 오르지 못해 환국과 나만 올랐는데, 이번에도 2명이 빠지고 나와 환국이가 마무리 화룡정점을 찍으러 가는 것이었다. 묘한 우연이다.

위의 사진은 수마포라고 한다. 성산의 옆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동굴로 대공포 기지가 있었다. 4.3 당시에는 이곳에서 토벌대에 의해 양민 학살이 자행된 것이라고 한다. 제주의 뼈저린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나와 환국은 여기서 과감하게 바닷가로 내려섰다. 썰물 때라 바닷물이 꽤 많이 빠졌다. 샌들을 챙기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 순비기. 나무의 줄기가 모래땅 속으로 숨어서 뻗어나가므로 해녀들이 '물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제주어 '숨비기'라는 명칭이 붙었다.



▲ 모래사구.  간조 때 모래가 쓸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이용해 방책을 세웠다.



▲ 어느 노인이 그물을 손질하나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외국인이 글을 쓰고 있었다.



수마포 해안을 지나면 광치기 해변으로 접어든다. 기나긴 해변이 멀리 섭지까지 펼쳐졌다. 종달리 해안가에서는 해안도로를 따라 거닐었는데, 성산봉을 나와서는 줄곧 바닷가로만 걸었다. 2시간 가까이 걷는 길이 지루하다고 보면 오산이다. 갖가지 바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해변가는 모래사장도 있고, 너럭바위 지대도 있다. 모래사구 언덕길에는 순비기 군락도 볼 수 있다. 바위지대에는 자잘한 이끼들의 색깔이 탐스럽다. 잘 짜여진 융단처럼 넓은 바위에 깔려 있는 이끼들이 좋다고 함부로 발걸음을 떼어서는 위험하다. 꽤 미끄럽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순비기는 30~60cm정도 자라는 키작은 나무인데 바닷가에 이렇게 어여쁜 꽃나무가 자란다는 게 놀라웠다. 반짝반짝 빛나는 연두색 잎사귀는 작고 탐스러운데다가 연보랏빛의 맑고 투명한 꽃잎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천지로 피어난 꽃들과 잎들을 만져보다 보면 길에서 만난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바닷가 모래사장이라고 모든 곳이 해수욕장일 수는 없지만, 해수욕장이 아니라고 해서 해수욕을 해서는 안된다는 법도 없다. 이 길을 가다 보면 해수욕장이 아닌데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홀로 바닷가에 앉아서 글을 쓰던 외국 노인은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노년의 휴가로 제주를 찾은 듯하다. 반갑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 인사말 정도는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상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영어로 '헬로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먼바다를 보며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은 내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환국은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틀림없이 지금 쓰는 글에 우리의 모습이 담겼을 거라며 의기양양이다.

모래사구 근처에서는 버려져 돌아다니는 가느다란 대나무 막대기도 주웠다. 너럭바위 지대는 미끄러울 수도 있고, 모래사장은 푹푹 빠지니 지팡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잘 꽂혀 있는 모래사구 방책용 나무를 뽑지는 말자. 걷다 보면 버려진 대나무들이 천지다.

길을 걷다 보니 꽤 긴 거리다. 1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천천히 길을 가다보니 2시간이 다 되어갔다. 7시 반을 넘어가니 서녘 하늘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디쯤 왔냐는 일행의 전화도 계속 왔다. 섭지에서도 계속 바닷가 길로 가라고 제주올레 팜플릿은 적혀 있는데, 우리는 그냥 시멘트 포장길로 해서 섭지코지로 올랐다.



▲ 해가 지고 있다. 섭지에서.



▲ 섭지코지 등대

▲ 저 봐라. 대나무 작대기에 모자는 삐뚤하고 바지는 둘둘말아 걷어 올리고, 얼굴은 맛이 갔네.
 물고기 잡으러 가나????(섭지코지 드라마 셋트장)


 

이로서 제주에서의 둘째 날, 제주올레 첫 번째 길 걷기가 끝났다. 생각 같아서는 두 번째 길도 걷고 세 번째 길도 걷고 싶다. 하지만 내일 들어가는 우도도 기대된다. 이날 내가 걸었던 길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제주에 한걸음 더 다가선 듯하다. 제주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제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11시에 시작한 여행이 8시가 다 되어서 끝났다. 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9시간이 걸렸다. 뜨거운 햇볕을 우습게 본 덕분에 숙소에 들어와 화끈거리는 팔뚝에 화상치료제를 발라야 했다. 지금 어깨의 살갗은 허물을 벗고 있지만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그 길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즐겁기만 하다. 다음에 제주를 갈때는 첫 번째 길을 다시 걷고, 두 번째 길에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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