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제주도 여행은 네 번째다. 방문의 횟수만큼 제주도의 즐거움도 배가 되고 있다. 첫 번째 제주도 여행은 대학 3학년 때의 수학여행이다. 일종의 패키지 관광이였는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두 번째 여행은 금성출판사 차원에서 직원 모두와 함께 떠난 여행인데, 한라산 방문이 유일하게 남는 기억이다. 세 번째 여행은 2006년 자전거 전국일주였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서 제주도 일주도로를 달렸다. 날씨가 정말 훌륭했던 것, 그리고 바람이 징하게 불었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이번에 다녀온 제주도 여행은 잘 짜인 자유여행이었다. 트래킹과 우도 일주가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 완도여객터미널. 색다른 여행을 생각한다면, 완도로 가서 제주로 가는 배를 타자.


게다가 참 저렴하게 다녀온 여행이다. 한사람당 26만원이 채 안 되는 비용으로 3박5일의 제주도와 우도를 돌아다녔으니 나름 성공한 여행이다. 여행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교통과 숙박을 아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포-제주 간 왕복항공권의 가격이 유류할증료 포함 20만원에 육박하는 성수기, 4명이니까 약 80만원이다. 우리는 항공편 대신 완도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고 완도에서 제주까지 배편을 이용했다. 4명이서 차량과 배편으로 제주도를 찾아갈 경우(차량은 가스 차량이었다), 비용은 대략 350,000원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비행기 값의 절반으로 제주도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김포에서 제주도까지 비행기로 30분이면 가능한 거리를 차량과 배편을 이동할 경우 최대 11시간(서울-완도 6시간, 완도-제주 5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밤 11시에 안국역 근처에서 만났다. 서울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보니 그나마 모이기 쉬운 장소로 택했던 것이다. 차량은 내가 준비했다. 가스차량으로 좀 오래된 SM520이다(아직 10만km도 뛰지 않았다). 면허증이 있는 세 명이서 번갈아 운전하기로 했다. 먼저 목포까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2번국도를 이용해 완도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첫배는 7시30분에 있다. 이 배를 놓친다면 오후 3시 이후에 배가 뜨므로 반드시 이 배를 잡아야 한다.

번갈아 운전한 끝에 우리는 6시를 조금 넘겨 완도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 도로가에 차를 주차하고 터미널에 들어갔다. 완도에서 제주도를 가는 배는 하루 세편있으며 각각 오전 7:30분(한일카훼리 3호, 3등실 요금 23,350원) / 오전 10시 40분(한알카훼리2호, 2등객실 23,350원) / 오후 3시 30분(한일카훼리 1호, 2등객실 23,350원), 이렇게 마련되어 있다. 시간은 한일카훼리 3호가 5시간 정도 걸리고 나머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한일카훼리 3호에 탑승했다. 위 정보는 성수기 기준이며 2008년 7월 말 요금이므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꼭 전화로 확인하고 가는 게 좋겠다.




▲ 승선개찰권. 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편의 3등식 객실 요금은 23,350원. 성수기라 할증이 붙었다.



▲ 해상의 짙은 안개 때문에 배는 30분 이상 늦게 출발했다. 배편으로 제주를 찾는다면 날씨에 주의하자.

 

▲ 제주-완도를 오가는 한일카훼리 3호선의 2등객실과 휴게실 모습.
휴게실에서는 맥주와 음료, 컵라면과 스낵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 3등객실에서 피곤하고 지루한 일행들. 대부분 잠을 청해보지만 깊은 잠을 자기는 어려웠다.


▲ 3등실 풍경. 잠이 장땡이다. 악조건에서 잠을 청하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제주항에 도착할 즈음. 그래도 한컷 찍어야... ^^

한일카훼리 3호는 추자도를 경유해 제주도를 간다. 시간 역시 5시간 정도로 많이 소요되는 편이다. 내부 시설 역시 1호에 비하면 꽤 열악하다. 게다가 3등객실 다운 소란함도 여행의 피곤을 부채질해 준다. 배가 작은 편이라 요동도 심하며 엔진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꽤 심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해상에 낀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시간도 늦어졌다. 이 짙은 안개를 뚫고 무사히 제주도를 갈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일찍 배에 탄 덕분에 구석자리를 잡아 우리만의 공간을 확보했지만 추자도에서 다시 많은 손님들이 배에 올라타 객실은 만원이 됐다. 대부분은 잠을 청하지만, 한쪽에서는 화투판도 벌어지는가 하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는데, 워낙에 엔진 소리가 커서 제각각 고함을 지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지나자 안개는 옅어졌다. 제주항에 도착해 렌트카를 섭외하기 위해 미리 알아본 렌트카 회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계획은 3일 중 하루는 트래킹을 하는 만큼 48시간만 이용, 15만 원 정도를 예상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참석하겠다는 수진선배의 일정이 바뀌어서 렌트카를 72시간 동안 대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참고로 완도에서 제주로 들어올 때 중형차를 배에 싣는다면 왕복 22만 원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제주도에서 렌트카를 72시간 대여할 경우 중형차의 경우 약 25만원이 넘을 테니, 이런 경우에는 배편에 차를 싣고 오는 게 좋았다.

좌충우돌 끝에 차를 렌트했다. 미리 렌트 예약을 하지 않아서 좋은 차를 빌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내려올 때 몰고 왔던 차량과 똑같은 SM520을 렌트해 몰고 다녀야 했다. 차를 렌트 한 다음에 찾아간 곳은 제주에 있는 대형마트, 장보기다. 서영선배가 잘 준비해서 메모한 대로 장을 보았다. 장도 간소하게 보았다. 술과 김치, 생수와 국거리와 카레 등등 돌아보니 장도 참 소박하게 보았다.

장보기까지 마치고 늦은 점심식사를 해결하니 2시가 넘었다. 서귀포에 있는 한국콘도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서 해수욕장 한군데 정도 들렸다가 가기로 했다. 먼저 들린 곳은 협재 해수욕장.

▲ 자, 나도 한컷 찍어보자. 표정 좋고~




▲ 나름대로 하이-로우 컷.


▲ 이번에는 반대로 로우-하이 컷.




▲ 작품 제목은 하늘을 나는 거북이. 우리의 제주도 바닷가 의식 중 하나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 현상이는 당최 바닷가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산속에 사는 놈이라 그런지 바다와는 친하지 않나 보다.




▲ 협재 해수욕장의 모래가 좋아서인지 여기저기 아이들의 모래성 놀이가 자주 눈에 띄었다.

 


협재 해수욕장은 모레가 가늘고 은빛이 난다. 게다가 수심이 낮고 완만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이 많았다. 제주도의 해안에 첫발을 담근다는 의식을 치렀다. 의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저 우리끼리 정말 제주도에 왔다는 기쁨을 누렸다. 한쪽 넓은 바위 여기저기서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줍고 있다. 아마도 조개를 줍고 있을까. 꼬맹이들은 모래사장에서 마음껏 모래놀이를 한다. 집 근처였다면 한소리 들었겠지만 여기는 제주도의 바닷가다. 아이들은 신났다.

아이들만 신이 났을까.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바닷물을 밟으며 한참을 들어가도 어른 허리까지 들어가려면 한참이다. 물이 빠지면 저 멀리 비양도까지 헤엄쳐 가는 담대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좀 과장된 말이다.

날이 흐리고 안개가 끼어서 비양도의 모습도 흐릿하다. 해가 서녘하늘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게 보일 때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발가락 틈에 끼인 모래가 서먹서먹하지만, 제주데 있는 동안은 익숙해져야 할 것들이겠지.

▲ 제주의 어느 항구였다. 환국이의 꿈이 무산됐던 곳이다.

 

▲ 문제의 지저분한 말.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정말 말을 많이 보았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만지지 말자. 손이 더러워지는 것이 상관없다면 괜찮지만...

 



▲ 차를 타고 가면서 서쪽 바다로 일몰의 기운이 퍼질 즈음, 현무암 해안가 바위틈에서 일몰을 구경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를 타고 환국이가 말한 곳을 찾아 헤매는데 결국 못 찾았다. 밀물 때 물이 들어차게 해놓고 썰물 때 물을 가두었다가 조금씩 빼서 갇힌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곳이라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 얘기로는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환국이의 인터넷 정보가 어긋나고 말았다. 다시 콘도로 가는 길에서 방목하고 있는 말들이 보이고 경치가 수려한 곳이 나와서 차를 세웠다. 말의 고삐에는 줄이 메어져 있었는데, 묶여 있지 않아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꽤 목가적이다. 서영선배가 조심스럽게 말에 다가서는데, 오히려 말이 먼저 사람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기겁을 한 서영선배가 도망가는데, 성큼성큼 쫓아오는 말이 신기하다. 내가 앞에 서서 말쪽으로 손을 뻗으니 이 녀석이 이제 나에게 다가온다. 아주 천천히 말의 콧잔등을 쓸어주니 가만히 서 있다. 조금씩 옆으로 다가서 말의 볼도 쓰다듬어 보고 말머리와 갈기도 만져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손이 무척이나 지저분해졌다는 것, 바닷바람과 먼지를 옴팡 뒤집어 쓴 채 목욕도 시키지 않아서인지 말을 좀 쓰다듬었다고 손에 시꺼먼 먼지가 묻었다.

콘도에 들어오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밤새 운전해서 오고 배를 다섯 시간이나 타서 그랬는지, 다들 피곤해 보였다. 항공편으로 제주에 온 수진선배를 맞이하러 현상이가 차를 가지고 나간 사이에, 서영선배가 맛있는 된장찌개를 준비했고, 나는 환국이를 도와 카레를 마련했다. 첫날 상차림은 간소하게 준비했다. 나와 서영, 수진 선배, 환국이와 현상이 이렇게 다섯 명이 제주의 밤하늘 아래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피곤하다지만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술상은 이어졌다. 설레는 제주의 첫날밤은 그렇게 이어졌다.
 



반응형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6년 제주도 여행 사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6년 제주도 섭지코지

철이 덜 든거죠. 네, 그만 또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제주도네요. 후배의 꼬심에 넘어간 거라 변명해 보지만, 사실 좋습니다. 제가 좋아 가는 거죠. 돈좀 깨지겠네요. 놀면서 돈만 까먹고 앉아 있군요. 이런...

가장 최근에 제주를 다녀온게 2006년 자전거 전국일주 중에 방문한 거네요. 당시는 일주도로를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구경했는데, 좀 아쉽지만 제주의 멋진 가을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지요. 아무튼 설레네요.

이번에는 멋진 트래킹 코스도 넣어봤어요. 관심있는 분은 ‘제주올레’라는 단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세요.(아니면 여기 클릭) 이미 많은 이들이 다녀오고 여행기를 올렸더군요. 7코스까지 개발되었다고는 하는데, 아직은 1, 2코스만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번에는 1코스만 천천히 걸어보려고요.

또 다른 하루는 온전히 우도에서 보낼 작정입니다. 물론 날씨가 허락하는 조건에서죠. 제주도를 가서 우도를 가지 않으면 제주도를 다녀온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죠. 그만큼 우도는 뛰어난 절경과 풍경을 선사한다고 해서 꼭 넣자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이번에는 우도만 하루 잡아보았습니다. 어떤 곳일까요. 기대됩니다.

남은 하루는 아직 미정이네요. 마지막날은 사람들과 상의해 봐서 결정하려고요. 아, 이번에 같이 가는 사람은 현상군과 환국씨, 그리고 서영선배, 나 이렇게 넷입니다. 이 오묘한 조합의 4인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 바랍니다. ^^










반응형

'생활 여행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 월출산 산행 계획  (2) 2009.06.04
대한민국 트래블로거 지원  (4) 2008.09.18
마일리지로 유럽여행을 갈 수 있을까?  (0) 2008.01.09
반응형




지난 목요일(17일)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을 다녀왔다.
창덕궁은 목요일만 자유관람이 가능하며 다른 날은 제한관람이다.
창덕궁의 진정한 멋을 느끼면서 천천히 즐기고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목요일 자유관람을 추천한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대인 15000원) 4시간 동안
즐거운 고궁산책에 상응하는 행복을 줄 것이다.



낙선재. 평일에는 특별관람 시간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는 곳.
1989년까지 영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가 이곳에서 생활했던 곳이다.
집이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어야 생기가 있는 것이라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다른 궁과 달리 낙선재가 가지는 멋은 그런 사람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낙선재에 오면 항상 마루에 한참동안 앉아서
나무의 결도 만져보고 한지문을 통해 전해져 오는 바람도 느껴본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처마밑에 있다보면 느껴지는 여름 향기가
이곳에 잔향처럼 퍼져있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인접해 있다. 저 문은 창경궁과 연결되어 있는 문으로 보인다.




원추리. 어디가나 이꽃이 한창이다.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본 야생의 원추리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래도 참 어여쁜 꽃이다.
우리 동네 공원(고척근린공원)에도 이 원추리가 기다랗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더랬다.  


창덕궁의 아름다운 연못, 부용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의 원리를 연못에 구현하고 있다.
부용정 맞은 편 언덕에 자리잡은 주합루는 정조 즉위년에 지어졌으며 1층은 규장각이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
어수문이라고 하는 데 물과 물고기는 곧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허리마저 휘어진 채 문을 지키고 있다.




한여름이다 보니 여기저기 풀이 무성하다.


아래 사진은 연경당에서 있었던 공연 사진이다.
연경당은 원래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이 집 역시 궁궐 안에 있지만 낙선재처럼 단청이 없는 게 특징이다.

매주 목요일 이곳에서 공연이 열린다.
유감스럽지만 이날이 목요일 정기공연으로는 마지막 날이었다.
더위가 가시면 새로 한다고 하니 가을에나 다시 열릴까.



궁중음악을 연주했다.



박적무(?)라고 했던가. 역시 궁중무용이다.




이생강 선생님의 대금산조. 좀처럼 듣기 어려운 대금 산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옥류천. 물이 많이 흘렀으면 했는데, 물이 적어서 아쉬웠다.
옥류천 역시 특별관람 지역이라서 평일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 중의 하나다.
옥류천을 나와 나가는 길 역시 울창한 창덕궁의 숲을 지나는 길이라 좋다.
서울 한가운데 이런 고즈넉한 숲이 있고 그곳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반응형
반응형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처럼 살아라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9

- 삿갓재대피소 >> 동엽령 >> 송계삼거리 >> 향적봉 >> 무주리조트(약 10.7km)

- 2008.07.0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을 뒤에 남는 아쉬움들, 연민, 후회, 집착... 털어버리고 싶었던 감정들이 심장 가장 안쪽에서 비를 맞고 있다. 소나기처럼 그냥 지나가다오. 그저 한바탕 비를 맞고 푹 젖어버리면 더이상 비를 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했다. 이날 예정된 목적지는 향적봉 대피소. 거기서 하룻밤 더 묵고 다음날 빼재로 내려가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날 갈 거리는 짧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다. 배낭에만 우의를 둘러주었다. 다시 신발끈 꾹 메고 길을 나섰다. 이날만큼은 동행이 있다. 함께 삿갓재 대피소에 묵었던 아저씨다. 아저씨는 향적봉까지 가고 거기서 하산하겠다고 했다. 짧은 동행길이지만, 헤어지게 되면 몹시 흔들린다.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타협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어차피 덕유산 향적봉을 찍으면 다 온 거니까. 그리고 괜히 하룻밤을 더 묵는 것보다 그냥 하산하자. 다음에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와 나머지 구간을 계속 가면 되겠지.’

‘아냐, 그래도 처음 계획한대로 가야겠어. 그냥 하루 푹 쉬면 내일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아저씨가 먼저 출발한 다음,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많이 지쳤던 것일까.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니 그 생각은 더욱 강했다. 가만히 있으니 드는 잡생각이다. 일단 걷자. 부지런히 아저씨 뒤를 쫓았다.  

 









 


 

삿갓재 산장을 나오자마자 또 급한 오르막길이다. 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장대비로 바뀔지 알 수 없다. 무룡산에 오르기 전, 먼저 출발했던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우의를 꺼내 배낭을 감싸고 있었다. 무룡산에서 내려서면 순탄한 마루금길이다.  


간간히 비가 쏟아졌다. 기상이 불안정한가 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천둥번개는 멀리서 친다. 9시 20분 동엽령에 도착했다. 넓은 동엽령 지대는 짙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다.



 동엽령에서


 송계삼거리 이정표




 함께 동행한 아저씨


 

 왼쪽으로 가는 길이 신풍령 가는 길, 오른쪽은 삿갓재에서 내가 올로온 길.



동엽령에서 백암봉(송계삼거리)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마침내 향적봉이 눈앞이다. 여기서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백두대간길이 아니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쪽으로 가는 길이 백두대간 길이다. 그러나 덕유산 주능선을 타면서 향적봉을 오르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닐까. 대간길을 잠시 미루고 향적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이다. 오전 중에 개인다는 일기예보는 역시 여기 덕유산에서는 통용될 수 없나 보다. 길가에는 간간히 원추리 꽃망울이 길쭉하게 나있다. 햇빛이 나지 않아서인지 보통 때면 활짝 개화를 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을 텐데 날씨가 안 좋아 개화시간이 좀 늦다. 덕유산도 지금 이맘때면 원추리가 한창이다. 귀품 있는 모양새며 도도한 줄기가 꽤나 운치가 있다. 카메라에 담지 못한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중봉에서

 

백암봉을 지나 제2덕유산이라는 중봉을 넘었다. 잘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는 데 바람이 거세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중봉을 넘어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에 오르기 전 향적봉 대피소에 들렸다. 이곳에서 일단 점심을 해결했다. 덕유산 산장 안의 매점에서는 지리산과 달리 사발면을 판매한다. 햇반과 사발면을 주문하면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나오고 사발면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최소한의 먹을 거리는 충분히 사서 해결할 수 있다. 젖은 신발을 벗도 양말도 대충 씻어서 꾹 짰다. 다시 신으려니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마침 함께 동행했던 아저씨가 새 양말을 꺼내주며 신으라고 하신다. 함께 비바람을 뚫고 왔던 우정의 표시였을까. 너무 감사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발은 젖었어도 양말이라도 갈아 신으니 한결 좋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식사를 마치고 다시 향적봉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이곳에서 자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배낭도 산장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향적봉으로 올랐다. 백암봉을 지나 향적봉까지 종종 주목을 만날 수 있었다. 주목은 고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덕유산에도 300~500년된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특히 소백산 정상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관상용으로도 제배되고 있지만 정말 멋진 주목을 보기 위해서는 산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덕유산의 설경이 멋진 이유 중의 하나로 이 주목의 설경도 꼽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말이 따라 붙는 주목의 고아하고 옛스러운 모습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다음에 겨울 덕유산을 오면 반드시 이 주목의 모습을 내 눈안에 담아 볼 것이다.


마침내 향적봉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름이 모든 것을 가려버렸다. 분명 까마득한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구름이 주는 신비함도 이쯤 되면 서운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마침내 덕유산 향적봉까지 왔는데,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 향적봉에서 사진을 찍던 노인 한분과 만났는데, 그분도 오전 중에 날이 개일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올라오셨다고 한다. 이러다가 허탕만 치겠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향적봉은 바로 밑에까지 곤돌라로 편하게 올라올 수가 있어 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을 찾아 온다. 일출이나 일몰 등의 풍경사진이 인기다. 이맘 때쯤에는 원추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노인이 알려주었다.









 주목






 

삿갓재에서 이곳까지 동행한 아저씨는 여기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시겠단다. 바람이 많이 불어 뜨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운행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아저씨와 작별하고 다시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왔다. 다시 갈등이 시작됐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신풍령쪽을 탈까. 아니면 좀 무리가 되어도 신풍령으로 지금 출발할까. 그냥 향적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 서울로 올라갈까. 무리를 해서 신풍령(13.1km)까지 간다고 해도 밤늦게나 떨어질 테니 서울 올라가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대피소에서 하루를 쉬려고 하니 시간이 아깝다. 결국 난 다시 배낭을 메고 향적봉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하산을 해 오늘 안으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남은 구간이 아쉽긴 하지만 향적봉에 왔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백두대간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했다.

 

향적봉에서 약 30분 정도 내려오면 곤돌라 승강장이 나온다. 10m 앞도 안보이는 구름 때문에 승강장을 찾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승강장을 만나니 반갑다. 편도 7000원의 표를 끊고 입구에 서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곤돌라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나의 곤돌라를 골라 올라타는데 승객은 나 하나다. 서서히 산을 내려가는 곤돌라 안에서 온 몸의 힘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으로 굳어진 힘이었을 거다. 지상에 가까워올수록 구름은 걷히고 맑은 대지가 나타났다. 산 아랫동네는 빗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 내가 타고온 곤돌라. 왼쪽의 리프트는 운행하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무주리조트 웰컴센터에서 서울 잠실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에 있으며 요금은 15000원이라고 한다. 가격도 싸고 바로 이곳에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남아서 웰컴센터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충 머리와 얼굴 팔 다리도 씻었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보니 가관이다. 염소수염은 길게 자라 있고, 머리는 더벅머리를 하고 있는데다,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으니 산도적이 따로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중간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악천후 속에서도 이렇게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나의 행운이다.

 

멋진 날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혼자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입가에서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다.

 










 

반응형
반응형
 


삿갓재 노을에 기대어 서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8

- 육십령 >> 할미봉 >> 장수덕유산 >> 남덕유산 >> 삿갓재대피소(11.9km)

- 2008.07.02.




아침부터 안개가 심상치 않다. 강수확률은 30%. 비가 올까? 완전히 마른 신발을 신어봤던 게 언제였더라. 수염을 자른 게 언제였더라. 입고 있는 옷도 매일 똑같다. 다행히 매일 세탁을 해서 입지만 물세탁만 한 거라서 냄새도 좀 난다. 머리카락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자라고 있다. 손톱의 때는 양호하다지만 끼고 있는 장갑에서는 퀴퀴한 땀내가 진동을 한다. 행색만 보면 산사람 그대로다. 도시에 나간다면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을 거다. 이렇게 이틀은 더 가야 한다. 여행이 끝난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5시, 식당에서 차려준 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하는데 촛불집회 관련 뉴스가 나왔다. 주인할머니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 왜 저럴까라며 혀를 찼다. 단순히 안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드렸다.


“할머니, 옛날 어르신들도 사람이 먹는 소고기의 국물하나라도 소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미국소는 육식을 한단 말이에요. 게다가 안 먹는다고 안 먹을 수가 없는 게 소잖아요. 어떻게든 우리 식탁에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설명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 정서탓일까. 세상과 떨어져 여행하겠다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세상 소식을 접하고 있다. 몇 가지 간편요리를 사려고 보았는데, 대부분 유통기한을 훨씬 넘었다. 씁쓸했다. 결국 라면만 2개 사 넣었다.


육십령고개로 다시 올라선 시간은 6시. 고갯마루는 안개로 10m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량 소통이 거의 없어 한적하고 널찍한 도로를 건너니 기분이 묘하다. 여기는 선계와 세속의 경계선일까.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다시 산등성이로 오르는 급경사가 보인다. 다시 백두대간이 시작됐다.


▲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본 육십령 식당. 저 트럭 뒤에 육십령 식당이 있다.


▲ 육십령 고갯마루. 전라북도 표지판 뒤에서 백두대간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할미봉까지는 단단한 암봉이다. 암봉이 단단하지 않은 게 어디있겠냐만, 그만큼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밧줄이 매달려 있는데 만일 밧줄이 없다면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엄두를 내기가 어려울 난코스다. 스틱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만일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타는 사람이라면 스틱은 배낭에 접어두는 게 좋다. 그리고 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동안 자칫 딴생각을 하거나 허투루 발을 딛는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암봉을 간신히 지나고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기어이 한바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행히 스틱을 잘 잡아서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지만 스틱의 끄트머리 부분이 살짝 휘어졌다. 그러나 이는 다음에 올 더 큰 문제의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아찔한 암봉을 오르고 내린 다음에서야 내 배낭에 물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 한통은 암봉에서 떨어져버렸나 싶었는데 예비 물통마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식당에서 물을 다시 채우고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몇마디 나누다가 물통을 깜빡 잊은 것이다. 아마도 식당 테이블에는 꽉 채워진 물통 두개가 머쓱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육십령에서 2시간 가까이 걸어온 길이다. 게다가 할미봉이라는 두 번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암봉을 넘어왔다. 그리고 앞으로 3시간 가까이 가야 샘이 있다. 둘 중의 하나다. 다시 1시간 반을 걸쳐 할미봉을 넘어 육십령에 가서 물통을 찾아오던가, 3시간을 더 참고 장수덕유산까지 가던가.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다시 할미봉을 넘고 싶지도 않고, 물통 때문에 왕복 3시간의 체력과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결국 장수덕유산으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갈증은 정말 지독했다. 그럴 때면 나무들에 맺힌 물방울들로 갈증을 채웠다. 나뭇잎 중에는 그래도 침엽수 종류이면서 잎이 넓은 게 좋았다. 활엽수 쪽은 굉장히 까칠하고 맛이 이상한데, 참나무류의 나뭇잎들은 물방울도 잘 머금고 있고 나뭇잎도 부드러워 핥기 좋았다. 소나무 잎들도 제법 물방울이 알알이 맺혀 있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지기 때문에 마시기 힘들다. 그렇다해도 가뭄에 물 한 바가지에 불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증이 너무 심해 바위틈에 고인 물이라도 있을까 싶어 살펴보았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물은 마실 물이 못된다. 뜨거운 한여름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죽었을 것이다.

공기는 더 축축해졌다. 금방이라도 비를 한바탕 쏟아 부을 기세다. 차라리 한바탕 쏟아진다면 컵이라도 대놓고 있다가 마실 참인데, 오진 않았다. 할미봉을 넘어 교육원삼거리까지 1시간 20여분의 길은 평탄한 편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장수덕유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입술이 바짝 말라가면서 장수덕유산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이정표가 샘터(참샘)을 가리키는 게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바로 내리막길을 타고 갔다. 150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그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내리막길이지만 바위들에는 이끼가 많이 껴있고 너덜지대를 지나는 곳에는 길이 뚜렷하지 않아 한동안 해매기도 했다.
마침내 작은 참샘을 찾았고 거기에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가 반갑다.

하지만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라 고여 있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물을 떠서 자세히 보니 1mm도 안되는 유충도 보였다.
급하지 않다면 절대 추천하고 싶은 물은 아니다. 샘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수질표시도 없다. 그런 물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은 건 내 위장의 위대함이다. 이곳에서 육십령 매점에서 구한 찹쌀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물통이 없어서 김을 넣었던 반찬통에 물을 담았다. 김가루가 둥둥 떠다니고 약간의 소금도 남아있던데다 기름기도 있지만 물 없이 가는 것보다 얼마나 훌륭한가.



▲ 장수덕유산에서 찍은 사진. 10m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이 가득했다. 


 

물을 마시니 다시 장수덕유산으로 올라오는 길은 가뿐하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계속 가니 넓은 안부가 나온다. 장수덕유산 쪽의 조망이 남덕유산보다 좋다고 하는데, 구름 때문에 10m 앞도 가물가물하다. 바람도 솔찬히 불기 시작했다. 장수덕유산을 막 벗어나니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잠깐 머물다가 가는 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이어 천둥번개까지 동반했다. 머리 위에서 울어대는 천둥소리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이날은 정말 산전수전 다 겪는 날이다. 물이 없어 고생하더니 물(비)이 넘쳐 또 고생이다. 남덕유산 정상부분은 암봉에 훤하게 열려 있어서 번개에 노출될 수 있었다. 결국 남덕유산은 옆으로 질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덕유산을 옆으로 비껴가면 이후부터는 또 한참을 내려간다. 큰 산이라서 그런지 오르고 내리는 부침이 심하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재까지는 40여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계단에 쭈그려 앉아 젖은 담배를 물고 있으려니 내가 생각해도 몰골이 가관이 아니다. 온몸은 흠뻑 젖어버렸고 고지대이다 보니 금세 체온이 떨어졌다.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저체온으로 지치겠다 싶어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쉬는 시간도 편하게 못 쉬는 상황이다. 비가 오니 개구리와 두꺼비가 길바닥에서 놀고 있다.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자 두꺼비 한 마리가 언덕으로 오르려고 바둥대는 모습이 재밌다. 빗속에서 지쳐 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참 신비롭다.


월성재에서 다시 삿갓봉으로 치고 올라갔다. 역시 고개를 들지 못 하고 땅바닥만 보면서 오기로 걸었다. 금방 나올 것 같은 삿갓봉은 굽이굽이 고갯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오고 천둥과 번개는 머리 위에서 위협사격을 가했다. 삿갓봉을 오르는 일도 위함하기 짝이 없다. 우회길이 있을까 싶어 지도를 보니 아주 작게 빗금이 나있다. 있다면 다행인데, 없다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삿갓봉에 오르기 직전에 옆으로 난 샛길이 나타났다. 비교적 뚜렷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삿갓재 대피소에 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계속되는 내리막길. 언제나 그렇지만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만큼 어렵다. 숨쉬기는 편하지만 무릎과 발목에 느껴지는 중압감은 오르막보다 최소한 1.5배만큼 느껴졌다.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대피소가 나타났다.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서 삿갓재 산장의 매점문을 두드렸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아저씨 한분이 먼저 와 있었다. 산장에는 직원 외에 그 아저씨와 나 단 둘이 있었다.


▲ 삿갓재에서 바라본 조망. 나무들 때문에 그다지 좋지는 않다.


▲ 삿갓재 대피소 앞에서.


▲ 구름으로 살짝 가려진 곳 너머로 삿갓봉이 있다.

▲ 구름들이 낮게 깔려 있고, 그 위로 하늘 한 구석은 비교적 맑았다.


 

▲ 삿갓재산장에서 본 또다른 풍경.



 

오후 3시가 좀 넘어서 도착한 나는 먼저 젖은 등산화를 따뜻한 스팀 옆에 기대어 놓았다. 젖은 옷을 말리는 것보다 등산화를 말리는 게 먼저였다. 내일까지 마를까? 그럼 다행이지만 젖은 모양새로 봐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널어야 할 것들과 말려야 할 것들을 산장에 펼쳐놓았다. 그렇게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한결 낫다. 찹쌀떡으로 때운 점심 때문인지 그때부터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삿갓재 산장은 제한급수를 하고 있었다.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160m를 내려갔다 오라는데, 그게 힘들어서 그냥 급수시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덕유산은 처음이지. 예전 어느 겨울에 차를 타고 가는데 멀리 보이는 덕유산의 설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겨울에 오르기 전에 한번 여름에 혼자 와 본거야.”


덕유산은 겨울이 멋진 산으로 유명하다. 무주리조트 쪽의 스키장 때문만은 아니다. 바위로 된 주능선의 봉우리들이 주는 운치와 오래된 주목에 쌓인 설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고 들었다. 시간이 남는 우리의 얘기는 이런저런 얘기로 나아갔다. 내가 지리산에서부터 왔다는 얘기가 아저씨의 호감을 자극했는지, 아저씨의 인생얘기가 술술 나왔다.


“한때 사업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IMF가 터지고 나서 쫄딱 망했어. 빚더미에 앉아 있었는데도 몇 년간 살 수 있었던 건 내가 여기저기서 야생난을 많이 구해다 놨기 때문이야. 집에 있던 야생난을 팔아서 몇 년을 먹고 살았으니까, 꽤 많이 모았었지. 비싼 건 천오백만원까지 받았어.”

“거의 산삼 한뿌리 값이네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많이 구하셨어요.”

“10억짜리 난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뭐. 오래전부터 야생난 구하러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외딴 섬도 가보고 첩첩산중에도 들어가 보고. 온갖 곳을 가지만 사유지나 국립공원, 도립공원도 마찬가지지. 그런데는 안가. 지금도 기아사람들과 야생난 모임을 하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일제 GPS가 달린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다니면서 난을 찾고 있지. 좋은 난이 발견된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두고 몇 년 뒤에 다시 와보려는 거야. 이게 돈이 되거든. 옛날부터 길도 없는 산골짜기를 심마니처럼 다니다 보니 지금도 이 나이에 산을 제법 타는 편이지.”


아저씨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노인의 그늘은 없었다. 영각사에서 출발해 1시 넘어서 삿갓재에 도착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빨리 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한 사업도 실패했지. 그리고 노숙생활도 3년이나 했다우. 노숙이란 게 힘들긴 하지만 그게 몸에 배면 또 빠져나오기가 어렵지. 그러다가 동생이 소개시켜준 기아자동차의 출퇴근 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잘 하고 있어. 이번에 휴가를 내서 혼자 찾아온 거야.”


백수로 살고 있는 나도 언제부턴가 지금의 생활에 조금씩 안주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일상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은 삶의 철학을 흔들어 놓는다. 내 백수생활도 어디에선가 그칠 것이다. 그 그침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두려울 뿐이다.


5시 즈음 비가 그쳤다. 내리는 기세로 봐서는 하루 종일 올 것 같더니 의외로 싱겁게 그치고 말았다. 저녁식사로 라면에 햇반을 말아먹는 게 식사의 다였다. 허기가 반찬이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비가 그치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가니 제법 조망이 나타났다. 비 때문에 공기는 맑고 청아했다. 7시 반이 되자 노을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데, 정말 멋진 노을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에 빠져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빛과 구름의 향연에 빠져 들었다. 몸속에 누적되어 있던 고단함이 노을 속에서 녹아들어갔다. 이렇게 아름다울려고 그렇게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던 것일까. 삿갓재의 노을 속으로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반응형
반응형
 


산죽길에서 만나는 바람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7

- 중재 >> 백운산 >> 영취산 >> 깃대봉 >> 육십령(19.1km)

- 2008.07.01.






꿈도 꾸지 않은 깊은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도 상쾌하다. 태생적으로 낯선 곳에서도 잠을 잘 잔다. 산속에서 자고 나면 기분은 늘 좋다. 며칠전까지 내 어깨에는 항상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이제는 파스가 없어도 괜찮을 정도로 어깨가 단단해졌다. 무거운 배낭과 몸무게를 지탱했던 무릎과 발목은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다. 넘어지고 까지는 일이 없었다. 몸은 이미 자연과 공명하고 있었던 것일까.


6시에 민박집을 나왔다. 짙은 안개가 중재 마을을 살포시 보듬어 안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이번에도 차량으로 고갯마루 근처까지 배웅해 주셨다. 중재에서 이날의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중고개재까지는 가뿐한 산책로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짙은 구름 때문에 저녁날씨가 어찌될지 걱정될 뿐이다. 환국이가 보내온 기상정보에 따르면 오후에는 비올 확률이 높다.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이유다. 이날은 덕유산 초입인 육십령까지 달려야 한다. 어제처럼 먼 거리는 아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 중고개재에서



중고개재부터는 백운산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내 발걸음에 놀란 나비가 팔랑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내 한걸음이 길섶의 작은 세상을 뒤흔드나 보다. 조그마한 날벌레들이 발 아래에서 요란하게 춤을 춘다. 내 귓가에서 웽웽거리며 날아다닐 때면 너무나 귀찮다. 손으로 휘휘 저어보지만 금방 다시 날아든다. 비가 오면 모두들 풀잎 밑으로 숨어들지만, 날씨가 좋으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힌다.


백운산을 치고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숨이 가슴을 조여올 때면, 갈비뼈를 열어서라도 숨을 더욱 크게 쉬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뜨겁게 데워진 발바닥도 떼어서 냉동실에 잠깐 넣어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숨을 가다듬고, 발바닥을 나무에 퉁퉁 쳐주면서 위로해 준다. 어차피 올라야 할 산이라면, 기꺼이 즐기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아무도 없으니 혼자서 노래라도 불러본다. 새소리의 엇장단이 나쁘지 않다. 땀이 흐르는 뺨과 목덜미로 바람의 애무가 간지럽다. 기분이 좋다. 힘들었던 숨쉬기의 고통은 금방 가시고 입꼬리가 가볍게 말려 올라간다.


8시 10분. 마침내 백운산에 올랐다. 정상은 작은 공터를 이루고 있어 사방으로 거칠 것이 없다. 동서남북이 훤하게 트여있는 봉우리다. 멀리 지리산도 가물가물 펼쳐져 있다. 그 까마득한 하늘너머에서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백운산 정상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이 모두 보인다.


▲ 백운산에서부터 간간히 나타나는 산죽길.


▲ 영취산 정상의 갈림길.

▲ 영취산 정상의 표지석.

백운산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 모두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대간 길은 영취산까지 완만한 능선길이다. 그러나 여느 능선길과는 다른 멋이 있다. 바로 산죽길이다. 책에는 영취산 이후부터 나온다고 나왔는데, 백운산을 넘어가자 내 키보다 더 자란 산죽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다. 또 책에서는 산죽이 너무 빽빽해 헤치고 나아가기 힘들다고 되어 있는데, 다행히 등산길 확보를 위해 좌우의 산죽 일부는 제거해 놓은 상태였다. 산죽이 주는 시원함과 고즈넉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백두대간에서 소나무숲길과 함께 여기 산죽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다. 산죽밭은 영취산 넘어서도 간간히 나왔다.

 

10시 영취산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 300여m를 내려가 무령고개에 가야 샘이 있다. 내려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가지고 있는 물은 많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덕운봉을 지나 능선 가까이에 샘이 있다고 나왔다. 지도를 믿고 더 나아갔다. 하지만 덕운봉을 한참을 지나 민령 가까이 가서도 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통의 물도 거의 떨어져갔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물이라도 좀 얻어보겠지만 어제처럼 산속에서 사람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977고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샘을 찾으려다가 자꾸 미루던 점심이라 매우 허기져 있었다. 또 물 없는 점심이라니... 그렇게 신발도 벗고 점심을 먹고 있으려니 내가 왔던 숲에서 부스럭거리며 사람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린다. 한분이 힘들여 올라오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분도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물을 얻어볼까 했더니 나처럼 중재에서 출발해 그분도 물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갈증을 참는 일도 쉽지 않다. 점심을 먹고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분이 먼저 출발하고 나도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할 때였다. 또 한 사람이 봉우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분은 영취산에서 오신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물이 풍부했다. 그분 덕분에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고 사람들 신세도 많이 진다.


영취산에서부터 산죽길은 이전보다 더 장관이다. 백운산과 깃대봉 사이에 있는 곳곳의 산죽길은 대나무 내음을 물신 풍기면서 풋풋한 바람을 살랑살랑 내보내준다. 산죽 뒤로 크게 자란 나무들이 자연스러운 그늘을 이루어 주어, 사자처럼 사나운 햇살도 여기서는 털복숭이 강아지처럼 부드러워진다. 한참 쉬고 있으려니 참새보다 작은 새들이 산죽 사이로 오가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귀엽다.


민령서부터는 급한 오르막이 다시 열린다.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깃대봉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에서는 덕유산의 산줄기가 더욱 명확하게 들어온다. 지리산에서 출발한 여정의 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가깝게는 할미봉이 불쑥 솟아 있고, 그 뒤로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가깝다. 다음날이면 할미봉을 넘어 본격적인 덕유산 자락으로 들어가게 된다.


▲ 쉬고 있으면 초록의 나무그늘이 나를 달래준다.


▲ 깃대봉에서 바라본 덕유산 자락. 멀리 서봉(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보인다.

▲ 영취산에서 출발한 등산객이 깃대봉에서 찍어준 사진.  


▲ 육십령 마루로 내려서서  


▲ 육십령 식당. 백두대간 종주 등산인들이 많이 찾아 왔나 보다.  



깃대봉을 넘어 조금만 내려가자 샘터가 나온다. 물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팻말도 어여쁘게 만들어 놓았다. 물이 맑고 맛있다. 갈증이 깊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바위틈에서 힘차게 솟아나오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기 때문이다.


샘터를 지나 급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계곡으로 내려가는가 싶지만 곧 능선길을 만난다. 다 왔다 싶은데, 한참을 가야 육십령이다. 지루하고 고단한 길이다.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동쪽(서상쪽)으로 50m만 가면 식당 겸 매점과 민박을 겸하고 있는 육십령식당이 있다. 현금이 얼마 없어 카드로 계산해야하는데 혹시 안된다고 하면 천상 서상읍이나 장게면으로 내려가야 할 판이다. 다행히 주인 할머니는 가능하단다. 이날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육십령 마루에는 가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반응형
반응형
 



외롭고 높고 쓸쓸한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6

- 매요리 - 복성이재 - 봉화산 - 중재(21.4km)

- 2008.06.30





늘 그래왔듯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햇반을 준비하면서 점심때 먹을 것까지 데웠다. 햇반은 그냥 먹으면 까칠하지만, 한번 데웠다 먹으면 어떨까. 새로운 시도다. 잘 되면 도시락을 먹는 기분일 것이다.


햇반 하나에 김치로 아침을 떼웠다. 물론 이렇게 출발하면 9시부터 배가 고파온다. 그때부터는 쵸코바나 사탕으로 견디다가 11시 즈음에 점심식사를 한다. 물이 있는 곳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맨밥을 먹으며 물을 아끼는 수밖에 없다. 지리산과 달리 백두대간에는 종종 물 구하기 어려운 구간이 있다.



 

▲ 매요마을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6시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민박집을 나왔다. 매요휴게소를 나와 마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743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계속 북진하면 유정육교가 나오는데 이 육교를 통해 88고속도로를 건넜다. 임도를 따라 사치재를 향했다. 출발은 언제나 가볍다. 문제는 산등성이 초입이다. 사치재에서 산길을 잡는데 잡목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지, 길잡이 리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또 길을 엉뚱한 데로 잡았다. 다시 사치재 팻말 앞으로 내려왔다. 30분의 시간과 체력을 날렸다. 길이 함몰되어 전혀 없는 곳에 길잡이 리본이 보였다. 설마 저 곳에 길이 있을까 싶어 올라갔는데, 거의 잡목과 풀들로 우거진 곳에 아주 작은 길이 나 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가보자 싶어 올라가니 다행히 이 길이 맞았다.


사치재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산등성이는 1994년과 1995년에 두차례에 걸쳐 산불이 났던 곳이다. 그래서 큰 나무들은 이미 고사하고 지금은 식물들의 춘추전국 시대다. 작은 잡목과 풀들이 길을 덮어버린 것이다. 종종 살아남은 소나무들은 까맣게 그을린 나무둥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현장이다. 밤새 내린 이슬이 맺힌 풀들이 서서히 내 신발을 적셔왔고, 키만큼 자란 잡목과 가시나무, 풀들이 내 팔을 할퀴었다. 재작년 초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길도 잘 보이고 잡목과 풀들도 거의 없더니 두해 지나 숲은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여름이니 그럴만도 하다.


평일이다 보니 산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만큼 새벽부터 지어진 수많은 거미집을 부시고 다닌다. 한걸음을 디디면서도 벌레라도 있으면 피해왔건만, 수많은 거미집들을 거침없이 부시고 그 무수한 잡풀 속을 탈출해야했다. 아, 얼마나 많은 집들을 부시며 걸어왔던가. 얼굴과 팔에 엉기는 거미집 때문에 기분이 묘하다. 마치 숲이라는 큰 거미집에 내가 걸려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간신히 산불난 지역을 벗어나니 온전한 산길이 나타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본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것 같다. 신발은 난리가 아니다. 많이 젖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긴바지를 입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반팔 옷은 치명적이다. 팔에는 온갖 가시와 풀에 베인 상처들 투성이다. 백두대간에는 이런 구간이 꽤 많다고 하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잡목과 가시덤불을 지나야 할까.







▲ 아막성터


 


10시도 되지 않아서 신발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신발 안까지 젖어버렸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치재에 있는 철쭉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재작년에 한번 백두대간 중 1박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11시 쯤 철쭉식당에 도착하니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무그늘에 마련한 평상에 앉아서 가방을 풀고 신발도 벗었다. 양말과 깔창을 벗어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샌들을 신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잠시후 주류 배달 차량이 들어왔다. 그에게 물어보니 아주 멀리 있는 포도밭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답해준다. 차에 실려온 맥주가 한짝씩 내려지는 걸 보니 입이 왜 이렇게 마를까. 그렇다고 주인 없이 맥주를 꺼내먹는 건 아니다. 할 수없이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니 일찍 들어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동네 할머니가 지나가기에 평소처럼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산에서 오는겨”

“네, 주인장이 없어서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올 거니께, 저기 물 떠다 마시고 기다려봐요.”

“저, 할머니, 주인하고 친하세요?”

“바로 요 옆집에 살어요. 왜?”

“그럼 제가 할머니께 일단 삼천원 드릴테니, 여기 맥주 좀 가져다 마실게요. 할머니가 주인 오면 주세요.”

“그래요? 그러지 뭐.”


얼마나 맥주가 마시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내가 그때를 돌아봐도 참 신기하다. 맥주 한병을 다 비우고 아침에 데운 햇반을 꺼냈다. 포장을 뜯어보니 역시 찰기가 잘 흐르고 밥도 잘 익었다. 그냥 식은 도시락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맥주 한병과 밥을 먹으니 기운이 살아난다. 그러고 나니 주인이 왔다. 맥주를 마신 자초지정을 얘기했다.


“아이구 시원한 맥주도 있는데, 이거 밍밍한 맥주를 마셨겠네요. 하나 더 드릴까요?”

“아니오. 또 산을 타야하는데, 그만 마실게요. 하하”


철쭉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짐을 다시 정리하고 있으려니까, 다시 일을 나가신다.


“이제 요 앞에 포도밭에서 일하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백두대간 손님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다 보니 산을 타는 손님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나와 다시 산등성이를 올랐다. 잠깐 신발과 발을 말렸는데, 한결 낫다. 힘껏 산을 다시 올랐다. 식당이 철쭉식당인 것은 치재 근처가 유명한 철쭉군락지이기 때문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철쭉들이 길을 덮고 있다. 그나마 가시나무나 날카로운 풀들이 아니라서 좋지만, 역시 길을 헤쳐 나가는 동안 철쭉가지가 자꾸 배낭을 잡아끈다.


▲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간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길.


 


▲ 봉화산에서 바라본 조망.




오후 2시 봉화산에 올랐다. 답답했던 조망이 확 트였다. 돌아보면 9박 10일 일정 중 가장 멀리까지 시원한 조망을 보였던 날이다. 그만큼 비와 구름이 일정 내내 나를 뒤덮었다. 지리산을 벗어나면서부터 신발이 마를 날이 없었고, 준비한 양말 다섯 켤레 중 하나라도 완전히 마른 날이 없어, 그냥 신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 본 조망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중재까지는 가야 하는데, 벌써 오후 2시를 넘었다. 최소한 4시간은 가야하는데, 6시라면 간당간당하다. 자칫 금방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 7시까지 밝기는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봉화산 이후로는 길이 좋다. 마루금은 억새만 좀 자라 있을 뿐이다. 구름이 아니었다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중재까지 4시간 동안 물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좋으면 또 저것이 안 좋다. 모든 걸 만족하는 여행은 드물다. 여행은 그런 부족함 때문에 채워지는 것이다.


▲ 이 정도 길은 양호한 편.

▲ 중재민텔 풍경.



 

중재에 도착한 건 6시가 다되어서다. 중재 고개에 보니 ‘중재민텔’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원래는 중재 샘터 근처에서 야영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 이렇게 또 젖었으니 그곳에 가기로 했다. 게다가 고개까지 차량으로 와준다고 하니 나쁘지 않다. 이날은 대략 10시간 이상을 달린 셈이다. 휴식이 필요했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곳 중재 민텔도 중재에 있는 유일한 민박시설로 자리잡았다. 많은 대간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쉬고 갔다. 집 바깥벽에는 대간 산꾼들이 매달아놓은 길잡이표시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거리도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오면서 조우한 산행객은 딱 한팀에 불과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산에서 혼자 걸어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행이었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위로했다.



(다음에 계속)

반응형
반응형
 



길을 잃고 길을 찾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5
- 고기삼거리 - 여원재 - 매요리(18.2km)

- 2008.06.29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전날밤 늦게 잠들었다. 방안에는 빨래와 젖은 물건들을 늘어놓아 한쪽 구석에서 초라하게 잠들었다. 밤새 방바닥은 뜨겁게 달궈졌다. 주인께 방에 불을 넣어달라고 말했기 때문인데, 더워도 젖은 물건들을 말리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늦잠을 잤다. 오랜만의 게으름이다. 기상 예보는 오전 중에 날이 갤 것이라고 알려왔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켜보았다. 그러나 응답이 없다. 젖어서 내부기판에 무리가 갔을 수도 있다. 배터리를 분리하고 당분간 휴대전화는 켜지 않기로 했다.


9시에 밖으로 나왔을 때는 가랑비가 좀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 비는 그냥 맞고 가자고 생각했다. 짐을 정리하는데, 다행히 옷가지와 물건들이 대부분 잘 말랐다. 신발 역시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신을만했다. 10시에 나와 보니 날이 갰다. 비가 그친 것이다. 준비했던 우의를 가방에 넣고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백두대간은 우리가 묵었던 마을처럼 낮은 자세로 마을들을 지날 때가 있다. 여기서는 지방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이런 길도 백두대간일까 싶지만, 해발 500m 이상에 위치해 있는 대간의 한 줄기다. 본격적인 산행길로 들어서는 가재마을까지는 한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제 몰아친 비바람 때문인지, 멀리까지 시야가 맑게 트였다. 고기삼거리에서는 우리처럼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산행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갑게 인사했다. 이날은 일요일이라 많은 이들이 산악회나 산모임 등으로 백두대간 산행에 나섰다.


우리는 예전 추억을 되새기면서 가재마을 가게 앞에서 막걸리를 주문해 한잔 했다. 동행과 함께 하는 막걸리 한잔은 멋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지리산 자락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수를 끌어다 마시는 편인데, 가재마을의 노치샘은 고기삼거리 민박집에서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심지어 노치샘에 비하면 자신들이 마시는 지하수는 썩은 물이라는 비교도 서슴지 않을 정도다.


노치샘을 지나 산등성이로 올라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 대간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이미 대단위의 등산팀들이 이곳을 지나친 흔적도 보였다. 가재마을에서 수정봉으로 가는 길은 예전에도 한번 지났던 길이다. 2006년에 수정봉을 찾았을 때는 팻말도 없이 ‘수정봉’이라고 쓰인 종이만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는데, 지금은 잘 다듬어진 나무팻말이 박혀 있다. 그만큼 백두대간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많아진 것이다. 사실 이런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겠다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노치샘이 있는 가재마을에 사람들이 북적이게 된 것도 순전히 백두대간 덕분이다.


아침 안개가 옅게 드리워졌지만, 등산에는 지장이 없다. 소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이 길은 산 타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즐기면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유니콘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다.”


기석이 던진 말처럼 여원재까지 가는 등산길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원재에서 점심을 먹고 기석은 서울로 향했다. 나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미안하다는 친구다. 난 고맙다며 힘있게 그의 손을 잡았다. 진심으로 함께 한 1박2일 산행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서울로 도망가고 싶었던 나의 등을 산으로 밀어준 큰 격려였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여원재를 떠나 고남산을 향해 가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난관이 시작됐다. 잡풀이 어제처럼 발목을 잡았다. 여원재까지 오면서 거의 마르기 시작한 등산화는 다시 젖기 시작했다. 독도도 어렵고, 길잡이를 해준 리본들도 어지럽게 헷갈린다. 결국은 길을 잃고 말았다.

친구와 헤어지고 길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간길이라 생각하고 올라가는데, 어느덧 벌목된 나무들로 인해 길잡이 리본들은 도통 볼 수가 없다. 대략 지도정보와 눈에 보이는 봉우리와 길들을 짐작해 찾아 올라가는데 뜬금없이 큰 무덤 하나가 딱 길을 가로막고 있다.
거기에서 길이 끊겼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내 위치를 짐작해 보니 장치로 올라가는 길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이름모를 무덤의 주인장에게 길을 물어본다고 가르쳐줄 리도 없고, 그저 주저앉아서 나침반과 지도만을 보고 내가 가야할 길을 가늠해 보았다. 무덤 뒤편 능선을 향해 치고 올라가면 대간길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토끼들이나 지났을까, 길은 보이지 않고 온갖 잡목들이 온몸을 붙잡았다. 간신히 능선길로 올라갔지만, 대간길이 아니다. 다시 양옆의 능선이 보였다. 이러다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다시 지도를 살폈다. 마을을 두고 왼쪽으로 빙둘러가는 대간길을 유심히 보았다. 분명 고남산은 오른편에 있지만, 마을길과 비교해보면 왼편에 대간의 마루금이 걸려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왼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침내 대간길과 만날 수 있었다. 지도를 보니 장치와 합민성을 그냥 지나친 듯싶다. 한시간 가까이 헤맨 결과치고는 나쁘지 않다. 최악의 경우 여원재로 다시 돌아가 길을 되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다행히 지도를 잘 살피고, 지형지물에 대해 제대로 판단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우여곡절 끝에 홀로 고남산에 올랐다. 고남산까지 오르는 길은 오랜만의 가파른 등반길이긴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다. 게다가 능선길이라서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소나무숲이 잘 만들어져 있어 숲길을 걷는 즐거움도 크다. 하지만 고남산을 넘자 다시 길이 헷갈린다. 길잡이 리본도 여기저기 어지럽다. 다시 지도를 수시로 꺼내놓고 길을 찾아야 한다. 임도와 산길을 수시로 오가면서 길은 진행된다. 다시 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이슬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했다.






길을 찾느라 고생한 때문인지 매요마을에는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마을 적당한 공터에 텐트를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백두대간 때문에 유명해진 매요휴게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매요휴게소는 사람들 싸움에 어수선했다.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싸움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바깥으로 짐을 들고 나왔다. 길을 가는 할머니에게 마을회관 앞 공터에 텐트를 쳐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괜찮지만 이왕이면 민박집에서 쉬지 그러냐고 물으신다. 매요마을에 민박집이 있을 거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좀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마을 위쪽에 노부부가 민박집을 하나 내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서는 텐트보다는 당연히 민박집이 좋다. 물론 비용이 들기 마련이지만, 잘 쉬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박집은 어렵지 않게 찾았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알아서 달라고 하셨다. 민박집에서 신문지를 얻어 등산화 안에 채우고 조금 남은 저녁볕에 말렸다. 그리고 여전히 먹통인 휴대전화 때문에 민박집 전화를 빌려 집에 전화했다. 마지막으로 김치를 좀 얻어 저녁찬과 아침찬으로 해결했다.




내가 묵게 된 민박집은 2층인데, 아래층은 주인 내외분이 사시고, 2층을 손님들에게 빌려주었다. 방에는 살림이나 세간이 그대로 있었다. 책상에는 읽던 책들이 그대로 꽂혀 있다. TV는 없었지만 라디오와 오디오기도 있었다. 민박집 치고는 좀 황당하다 싶었지만, 그런대로 인간미가 넘쳤다. 2층 베란다는 꽤 넓고 민박집이 산자락에 붙어있어 매요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날밤은 쓸쓸히 혼자 보냈다. 친구의 빈자리가 크다.


(다음에 계속)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