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부모형제와 함께 살 때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그 때 나는 '우리' 가족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내' 가족이라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내' 가족이 생겼다. '내' 가족이 생기면서 책임과 의무가 더욱 늘었고, 나만의 자유와 평화의 영역은 매우 축소됐다. 그러나 혼자였던 '나'는 또 다른 '나' 둘을 더 얻었다. 숫자로만 볼 수 없는 부유함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8월 초 휴가 때 내 가족과 함께 한 첫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첫날부터 휴가길은 심상치 않았다. 토요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섰지만, 뉴스에서는 영동고속도로가 새벽부터 시작된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물론 영동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서울을 빠져 나가는 모든 고속도로..
처음으로 큰아버지와 단둘이 함께 한 여행은 시제를 지내러 간 남해였다. 대학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20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다. 허물어져가는 종가집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종손이라고 해, 나만 유일하게 남해의 조상 묘소에 찾아간 것이다. 큰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나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낳은 자손이 지금도 하나의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큰아버지의 이야기는 구례로 들어와 일가를 이룬 앞 세대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떠나는 유태인들의 이야기처럼 장대한 대서사시가 큰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 당시 나..
농번기에는 부엌의 부지깽이도 돕고, 부뚜막의 고양이 손도 아쉽단다. 아버지는 그래서 시골의 모내기에 맞춰 고향에 내려가셨다. 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남도 구례의 산골마을이다. 그리고 나와 어머니는 현충일이 낀 연휴에 맞춰, 그러니까 국민MT(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 기간에 구례로 내려갔다. 일손을 돕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 기간에 아버지의 생신도 끼어 있기도 했다. 5일 오후 3시 15분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집에 차가 생긴 이후 기차를 타고 시골집에 내려갈 일은 없었다. 오래만의 기차여행이다. 어머니와 함께 맥주도 사서 마시고 삶은 계란 껍질도 벗겨보았다. 그러다가 영등포역에서 구입한 잡지를 보기도 하고, 또 그러다 시큰둥해지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에 멍한 시선을 던지기도 했..
- Total
- Today
- Yesterday
- 지리산
- 육아
- 자출기
- 영화
- 사진
- 자전거 출퇴근
- 국가인권위원회
- 전국일주
- 자전거출근
- 안양천
- 백두대간
- 지리산둘레길
- 여행
- 제주도
- 따릉이
- 생각코딩
- 별별이야기
- 자전거여행
- 교과서
- 생코
- 인권
- 자전거 여행
- 한강
- 민주주의
- 민서
- 교육
- 자전거
- 아기
- 촛불집회
- 두컴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