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지금 이건 너희들이 자초한 거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이렇게 해야 사고가 나지 않으니까.”

“역시 맞아야 제대로 돌아가지.”

“너희들한테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내 군대 시절, ‘집합’이라고 불리는 얼차려 시간에 고참병들이 늘어놓는 말이었다. 공식적으로 군은 병사 간에 신체적 폭력을 동반하는 얼차려나 기합을 금지하고 있다. 내 군대 시절도 벌써 10년 전 일이고 실제 군대를 다녀온 많은 후배들이 지금은 ‘집합’ 같은 건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거죠. 우리도 그게 좋아서 하는 거겠습니까?”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죠.”

“사랑의 매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감정 없는 체벌은 필요합니다.”


군대 내에서 들었던 고참들의 말과 다를 바가 없다. 학교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체벌은 강력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신체적 체벌은 아동에게 장단기적인 잠재적 피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개인과 사회에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6년에 발간된 ‘UN아동 폭력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아동은 시종일관 모든 폭력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어른들의 용인과 승인 하에서 이루어지던 폭력은 아동에게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피해를 가져왔다.”


전 세계의 아이들은 애타게 자신이 신체적․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권리이며, 아동청소년 역시 인권의 주체라는 점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가 헌법적․법률적으로 어떤 인간에게도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대해 관대하지 않음에도 유독 아동에게만 체벌을 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많은 어른들이 아이를 때리는 것은 아이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고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매를 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여성이나 일반 성인에게 행해지는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어떠한 것도 인정하지 않고, 최소한의 폭력 수준이라는 기준점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아동 역시 그런 폭력의 허용이나 기준선 마련은 불필요한 것이다.


한편에서 법제정자들과 정부, 학교 당국자 등은 체벌과 관련한 기준선을 제시하는 규정을 통해 아동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상 그 규정이라는 것은 ‘아동을 때리는 방법, 나이에 따른 강도, 몸의 부분, 사용되는 도구’ 등을 정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규정을 세계에 내놓는다면, 선진화를 외치고 있고 G20 회의를 개최하는 나라로서 망신만 당하고 말 것이다. 이미 아동권리위원회가 지난 2003년 우리나라에 체벌 금지를 권고한바 있다.


체벌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두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을 바라보는 전근대적인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또한 세계에 내놓기 부끄러운 규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해서 보편화되어 있는 체벌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는 2002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생활규정(안)을 검토한 뒤, 직접적으로 체벌 금지를 권고했다. 당시 교육부 발표 내용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구체적인 체벌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별도의 장소에서 제3자를 동반하여 실시, 체벌 도구는 지름 1.5cm 내외, 길이 60cm 이하의 직선형 나무, 체벌 부위는 남자 둔부ㆍ여자 대퇴부, 1회 체벌봉 사용 횟수는 10회 이내’ 등으로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국가인권위는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체벌 금지를 권고했다.


체벌은 일시적으로 아동을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체벌의 공포에 직면한 아동들은 불안감, 우울증, 학교강박증, 적개심 등 부정적 감정을 버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아동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어른들이 훈육이라는 논리로 아동을 때리는 것을 보아오면서, 자신보다 약한 다른 아동이나 동생들을 똑같은 논리를 이용해 폭력적으로 가르치려는 행동을 답습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의 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일 ‘사랑의 매’가 있다면, 그 대상은 어른이 되어야지 아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해 3월 유엔아동권리협약 20주년을 기념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학생체벌 금지와 교육적 대안 모색’ 국제워크숍에서 기조연설을 한 피터 뉴웰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인격적 신체적 존엄성을 아동들은 아직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체벌을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것은 부모를 기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을 때리면 안 되는데 아동은 때려도 괜찮다는 인식과 상황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동상

지금 평화시장과 동대문 일대는 의류 패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지요. 그러나 1970년 오늘 여기서 한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어둠을 뚫고 빛나는 화염으로 세상을 밝히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점심을 굶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 수유리 집에서 평화시장까지 걸어 다니면서 아낀 버스비로 여공들에게 점심을 사 먹인 일화는 그의 헌신과 희생이 깊은 인간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연구자였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한문이 가득한 근로기준법을 날이 새가면서 읽고 해석하며 스스로 이해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이 근로기준법이 고통받는 여공들에게 따스한 햇살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장기표 신문명연구원 원장은 전태일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전태일은 고난 속에서 사랑을 얻는 사랑의 원리, 사랑을 통해 지혜를 얻는 지혜의 원리, 사랑과 지혜를 통해 높은 꿈을 이루는 꿈의 원리,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가운데 법열을 얻는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 같이 소중한 교훈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경향신문에서 재인용)


오늘 그가 산화하며 외쳤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마라”


과연 지금 이 말은 얼마만큼 지켜지고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자들, 저의 시선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인권과 대우는 분명 나아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또 다시 한쪽에서 차별의 온상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우리의 삶을 지키고 있다면, 먼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태일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재단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여공들의 고통과 아픔을 돌보다가 해고당하기까지 하죠. 그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함께 일하던 여공이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직업병인 폐렴으로 강제 해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느낀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열악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하는 시다들을 ‘나의 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바탕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나의 나’를 볼 줄 아는 시선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태일의 의미는 바로 ‘나의 나’를 보는 시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최근에 개봉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 <킹콩을 들다>는 우리나라의 비인기 종목을 주제로 한 감동의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주목해 보는 이유는 기존의 스포츠와 달리 여기에는 중고등학교 운동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 스포츠 분야가 점차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지금 중고등학교 운동선수를 다룬 이 영화는 인권적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 문제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위악적인 캐릭터가 학생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영화적 설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008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6개월여에 걸쳐 실시한 학생운동선수 인권 실태 조사에서 나온 학생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지도자가) 뺨을 때려요. 별 이유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쌍둥이 있거든요. 피하다가 고막이 나가가지고 수술했거든요. 그러면 안 때려야 되잖아요. 작심삼일이에요. 삼일 지났다가 또 때려요... [중3, 농구]

(지도자가) ××년아, 니 그럴 거면 꺼지라면서, 그리고 니는 뭐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인간 대접도 못 받는다면서 막 뭐라고... 진짜 싫고...[중2, 핸드볼]

선생님한테 선배가 혼났을 때 (선배가) 정말 선생님하고 똑같이 대가리 박으라고 하고 발로 밟고 그러지요...[고3, 농구]


이 실태조사 결과 75%의 초등학생 선수들이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경함하고 있고, 주당 평균 신체적 폭력 피해 횟수도 3~4회에 이상이 40%, 주당 11회 이상이 5.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에게 나타나는 폭력은 다시 하급생이나 후배에게 전달되는데, 이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프로야구팀의 2군에서 선배가 후배를 야구배트로 폭행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라는 프로야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둘째 학습권 보장의 문제입니다. <킹콩을 들다>의 주인공 이지봉은 학생들이 운동 연습때문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우려합니다. 그래서 따로 영어 공부도 시킬 만큼 어린 학생들의 수업을 챙기지요.

국가인권위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문제는 제기됩니다. 실태조사에 응한 어느 고등학생은 “더하기 빼기부터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의 정규 수업 참여시간은 평균 4.4시간(시합이 없을 때이며 시합이 있을 때는 이마저도 2시간 까먹는 2시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수업결손에 따른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더더욱 학교 수업과는 멀어집니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학교 양궁선수로 뛰고 있는 김하늘(가명) 양의 말입니다.


“5학년 정도 되면 소년체전이라는 게 있어요. 거길 붙으면 그 전에 한 달 전부터 합동훈련하고 적응훈련 다니고… 그러면 수업을 빠지니까 점점 성적이 떨어지잖아요. 그럼 어떻게 채울 수가 없으니까 운동이라도 해서 그걸로 밀어붙이고 나가라. 이러고……”


많은 학생운동 선수들이 과도한 훈련과 시합 출전 등으로 정규 수업을 받지 못하여 제대로 된 학습권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수업 결손에 따른 제도적 뒷받침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학생 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도 다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결국 하고 싶지 않은 운동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코치선생님의 헌신과 관심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뒷받침(예를 들어 최저학업기준인정제 등)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바로 학생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문제이지요.



스포츠라는 분야가 강한 근성을 요구하고, 그런 근성을 위해 일정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이 승리의 영광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에게 근성을 빌미로 행해지는 폭력은 잠깐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상처를 남기는 일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지봉 코치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동메달을 땄다고 해서 인생이 동메달이 되진 않아. 그렇다고 금메달을 땄다고 인생이 금메달이 되진 않아. 매순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금메달이야.”

자라나는 아이들이 폭력이 무서워서, 혹은 승리에 눈이 멀어서, 상대방을 운동의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대하고 페어플레이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듯이 운동 경기를 치르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경험인지 알려 줄 수 있는 분야로 스포츠만한 것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 국가인권위 블로그 '별별이야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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