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이 누렇게 변했다. 추수를 앞둔 벼들이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다. 한가위를 지나 풍요의 시간이다. 넉넉한 곳간처럼 마음도 넉넉해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왜 이리 공허할까. 사람 사는 세상의 흐름은 이제 더 이상 자연의 흐름과 같아질 수 없는 거다. 땅과 하늘은 풍족한 곡식과 과일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갇혀 있다. 오랫동안 발이 묶이면서 시간의 흐름도 묶이길 바랐지만, 시간은 바이러스 따위 쳐다보지도 않고 제 갈길을 달려 갔다. 매달 걷기로 한 지리산 둘레길이었다. 5월 이후로 5개월만에 다시 길을 나섰다. 모가 심어졌던 논들은 이제 그 모가 자라 벼가 되었고, 수확만 기다리고 있다. 또다시 시간은 훌쩍 넘어갔고, 아이는 금세 엄마의 키를 넘볼 만큼 자랐다. ..
생활 여행자/지리산둘레길
2020. 10. 14.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