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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행0 - 프롤로그

혼자 갈 뻔했는데, 가기 이틀전 한명이 합류했습니다.
뒷모습만 봐도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알겠죠.
오동도 가는 길, 
해양수산청 지방사무소 건물인 듯한데,
그 담장 안쪽으로 벚꽃들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잎이 떨어지려면 아직 멀었을 것 같더군요.
그리고 길 옆으로는 빨간 꽃이 보이실 겁니다.
동백꽃입니다. 역시 한창이었습니다.
가끔 거센 바람이 불면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지는데,
그 모습은 어찌나 서글퍼 보이는지...
비와 바람과 구름이 가득한 여수 여행길 사진
하루에 조금씩 업데이트 합니다.


여수 여행 1 - 여수로 가자

여행 하루 전.

신명이의 전화가 왔다. 9일날 결혼식에 꼭 와달라는 전화였다. 일전에 했던 약속이 있어서 차마 못가겠다는 말은 못하고 또다시 가겠다는 허언을 늘어놓았다.

밤늦게 또 한통의 전화가 왔다. 친구였다. 4월 말에 결혼하는데, 9일날 저녁에 친구들한테 얼굴 한번 보자는 전화였다. 여수 간다고, 그래서 못가겠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끊고 나서 거짓말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먼길을 떠난다는 것은 설렘이다. 내면의 어떤 에너지가 점차 그 떠남을 준비하다 보면 밤잠을 이루기도 어려운가 보다. 일찍 잠들었지만 첫잠을 깬 것은 새벽 3시반이었다. 그렇게 시간마다 잠을 깨다가 5시 반에 일어나 전날 만들어 놓은 김치볶음밥을 데워 아침을 해결했다.

기차 시간은 7시 50분 용산발 여수행 새마을호. 평생 무궁화호만 이용하다가 새마을호를 타려니 기분이 묘하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다. 이게 다 KTX덕분이다. 분에 넘치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무궁화호는 보기 드물게 되었고, 교통비는 억지로 뛰어올랐으니 말이다.
 
열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돕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심란한 이 마음을 하늘이 알아 준 것인지 모를 일이다. 기차는 빗속을 달려 12시 50분경 여수에 도착했다.

봄날 여행지로 여수를 선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어느 블로그에서 본 여수 여행일지에 혹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선택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다음으로 봄을 준비하는 바다를 보고 싶었다. 겨울이 막 물러가고 봄의 물컹거리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바다를 본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무엇보다 여수는 봉오리를 툭툭 떨어뜨리는 동백꽃이 잘 어울리는 항구가 아니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여수 여행 2 - 자산공원과 오동도 

오동도는 여수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오동도까지 가는 길도 벚꽃과 동백꽃이 화사하게 어우러져서 매우 아름답다. 벚꽃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지만 동백은 10월에서 4월까지만 피며 겨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꽃이다. 그런 두 개의 꽃이 여수를 온통 정신없이 물들이고 있었다.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가 배턴을 터치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하지만 오묘한 조화가 멋들어지게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동도 바로 옆에 자산공원이 있다. 여기에서 보면 여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아름다운 미항이라고 불리는 여수는 작지만 알찬 도시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자산공원에 오르면 멀리 경남 남해가 보이고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영 앞바다가 훤하게 펼쳐져 있다. 오동도로 나있는 방파제 길로 사람들이 오간다. 방파제 입구에서는 오동도로 들어가는 관광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오동도 입장료는 1600원. 관광열차 승차료는 500원. 우리는 걸어서 오동도로 들어갔다.

여수와 오동도를 잇고 있는 방파제.


 


 

여수 여행 4 

다음 일정은 방죽포 해수욕장. 녹동식당에서 나와 여수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탔다. 진남관까지 기본요금(1600원)이 나왔다. 그곳에서 돌산 향일암으로 들어가는 버스 111번을 탔다. 버스는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갓김치로 유명한 돌산으로 들어가고 약 30여분을 달린 버스는 마침내 방죽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방죽포에 도착한 시간은 5시. 예상보다 많이 늦었다.


방죽포 해수욕장은 매우 작은 해수욕장이다. 모래톱이 약 200M정도 될까? 모래사장 뒤로는 키 큰 소나무들이 방풍림을 조성하고 있었다. 작지만 그래도 소담한 풍경으로 찾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도착하니 다시 비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자잘한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바람도 거세게 불어왔다. 구름 덕분에 평소보다 주위는 빨리 어두워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여행을 수행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민박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고 갈 방문에는 전라남도의 지원을 받은 시설이라는 것과 요금표가 적혀 있었다. 주중 2만원, 주말 3만원, 성수기 5만원의 표준요금을 받고 있었다. 큰 창문으로 방죽포 앞바다가 훤하게 보였다. 날씨만 좋다면 이곳에서 일출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아저씨도 날씨가 흐려 손님들이 일출을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또다시 난관에 부딪힌 것은 근처에 식당이 없다는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향일암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할 예정이었는데, 방죽포 해안은 워낙 한적한 곳이라 변변한 매점도 찾기 힘들었다. 다행히 주인아저씨의 도움으로 차를 타고 나가서 몇가지 술과 요기거리를 사올 수 있었다. 간단히 요기를 마치고 술과 이야기로 한밤을 달렸다. 밤새 유리창을 때리는 바람소리와 창문 너머로 바닷가 콘크리트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참 좋았다. 12시 즈음 잠자리에 들었고, 파도소리는 술기운과 어울려 오히려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새벽 즈음 눈을 떴으나 날이 흐려 일출맞이는 어려울 듯싶었다. 후배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때문에 걱정도 되고 겁도 나서 잠을 설쳤다고 했다. 9시가 넘어 민박집을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향일암 방향 버스가 한대 지나가고 있었다. 여수 여행에서 대중 교통, 특히 버스의 시간대를 알아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배차간격은 최소 30분이었고, 우리는 정류장에서 약 40분 정도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방죽포 해수욕장의 소나무 숲
△방죽포 해수욕장
△ 빗속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방죽포 방파제에 정박된 어선들
△민박집에서 바라본 방죽포 해수욕장
△ 밤새 파도가 민박집 밑의 방파제를 때렸다.
△ 거센 파도와 바람 속에서도 낚시를 준비하는 사람.

 


 

여수 여행 5 - 향일암

9시반 경에 나왔지만 버스는 10시가 넘어서 탔다. 시간을 잘못 맞춘 것이다. 이곳을 오가는 버스가 30~50분 간격으로 온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방죽포에서 향일암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렸다. 돌산도의 해안가를 달리는 버스는 작은 어촌마을에 멈추고 내 고향 산골마을과는 사뭇 다른 내음을 전해 주었다.

향일암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향일암 주변에는 많은 민박집과 식당들이 즐비했다. 어제 저녁에 이곳에 와서 저녁을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 양옆으로 돌산의 명물 갓김치를 파는 상인들이 늘어서 있었다. 즉석에서 김치를 담그면서 오가는 손님들을 불러 한입씩 물려주었다. 그 틈에 나도 갓김치 맛을 보았는데, 짜고 매운 맛이 전라도의 손맛이라는 말이 아마 이 갓김치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었다.

향일암에 오니 또 가랑비가 오락가락 했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그리고 관음전까지 둘러보았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먼 남해 바다를 지긋이 응시하는 모습이 속세인들의 발걸음 소리에 괘념치 않는 듯했다. 조그만 터에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절이지만 길목 하나 바위 하나가 오밀조밀한 멋을 보여주는 절이었다.

향일암에서 내려와 버스를 탄 시간은 대략 12시. 여수 시내 중앙동에서 점심을 먹었다. 좀 특별한 식당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전주식당에서 콩나물해장국을 먹고 말았다. 시장기가 원수다.

△향일암 오르는 길. 수많은 계단은 부처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씻어야 하는 업보.
△향일암은 작은 절이다. 작고 오밀조밀한 절이 바닷가 절벽쪽에 붙어 있는데, 절도 아름답지만 절에서 바라본 경치는 더욱 아름답다.
△향일암의 대웅전 앞으로 남해 앞바다가 보인다. 이곳은 일출 전망대로 유명하다.
△ 곳곳에 동백이 피고 지고...
△바위에 동전을 붙이면 복이 온다는 얘기에 방문객들이 동전을 붙이고 있다.
△ 관음보살과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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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경 | 여수 돌산갖지 정말 맛있는데.. 김장할때 같이 담아서 일년이상 묵힌뒤에 잎을 쫙펴서 밥을싸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는데..막 담근건 아무래도 짜고 맵기가 쉽습니다. 익혀서 먹어야 제맛이 나므로..


여수 여행 6 - 진남관

점심을 먹고 여수역을 향하던 중간에 잠시 들른 곳은 진남관. 이곳은 여수 8경중의 4경이라고도 불리우는 곳이다.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에 속한 건물로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에 축조되었다가 1716년에 불에 타서 1718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건물 하나하나에 새겨졌을 목수와 인부들의 땀과 눈물이 세월의 흔적에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규모면에서 보면 종묘의 영녕전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나무와 돌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은 여태껏 보아온 고건축물 중 단연 오래되어 보였다.
1시가 조금 넘어 진남관에 도착했고, 관람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2시 20분 여수발 용산행 기차를 타기 위해 진남관을 나온 시간은 1시 50분경이었다. 진남관은 여수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1600) 거리에 있다.

에필로그.

아스팔트에 떨어진 동백꽃을 보면서 처연함과 함께 끝까지 아름다움을 놓지 않으려는 절규를 보았다. 어디까지나 나를 위로하는 여행이었는데, 든든한 동행이 되어 준 현상군에게 감사한다. 여행이란 어차피 돌아오기 위한 잠시의 일탈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과 돌아온 이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번 여행이 그런 내 안의 변화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흔들리면서 일상을 살고 있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며 내 어깨를 툭 치고 가는 동백꽃을 만나고 왔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본다.

△ 진남관의 전체 모습
△ 진남관에서
△ 현상이와 함께
△ 진남관의 보
△ 기둥과 처마

 

문현경 | 두사람의 그림도 훌륭하지만.. 두사람다 따로 따로 두사람이면 하는 마음입니다.

강대진 | 알았어^^ 담에는 그렇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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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났을까. 인연이라는 것은 뜻하지 않게 다가오는 우연성 때문에 종종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운명은 길 위에서 시작된다. 삶이라는 것은 누구나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길 위에서 종종 길을 묻곤 한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이 길이 옳게, 바르게 가는 것일까.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평생의 반려자로, 그리고 동행자로 만난 그이와의 사랑에 또 하나의 작은 생명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사람을 얻는 것만큼 부유해지는 것은 없다. 그것이 결혼이든 출산이든, 사람만한 재산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많아지면 그만큼 부자유스러워진다. 인생에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얻었을 때, 그것이 크고 위대할수록 버려야 할 것도 크고 무거운 것들이 되기 마련이다. 물론 처음에는 스스로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결국은 깨닫는다. 버리는 것이 얻는 것보다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문학의 길을 가기 위해 의사의 길을 버렸고, 대화가 반 고흐는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버리지 않고 다 가지려는 욕심이 사람과 세상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래된 친구와의 연락도 줄어들고, 슬픔을 달래주던 술친구도 없어지며, 내 고민을 들어주던 담배도 끊고, 식도락 여행 대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술이나 담배, 음식은 차라리 쉽다. 어려운 것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소홀해지는 것이다. 관계에서도 금단 증상은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중했던 것을 버리고 포기하면서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간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버리면서 나눔의 삶을 생각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의 가치는 소유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써 더 커진다는 진리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겉으로 나누는 사람들은 결코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버리지 않고서는 나눔의 가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은 져야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모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화려한 과거는 있다. 열매 맺지 못했다고 꽃이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삶의 의미는 살아 있는 경험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얻고 버리고 나누는 삶의 모습은 그것 하나로 완전한 삶의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꽃으로 비유하자면 우리는 살아 있는 지금이 바로 화려하게 개화하고 있는 순간이다. 길게 피는 꽃이 100일을 가듯이, 우리네 삶도 길면 100년 동안 이어진다. 살아 있는 경험을 하기에는 충분하고 넉넉한 시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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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맞다. 우리 내외와 민서,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시고 나선 가을 나들이로 선택한 장소는 소요산. 가을 단풍이 설악산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 단풍 보기가 쉽던가. 게다가 전철까지 소요산역이 생긴 마당에 단풍으로 유명한 소요산이 그리 여유로운 풍경을 보여주리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 넓은 소요산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어서 다시 바깥 도로변에 주차할 때까지만 해도 괜히 왔다 싶었다.



원래 일정은 자재암까지만 가는 것이었기에 큰 무리는 없겠다 싶었는데, 사람들의 물결을 보니 숨이 턱막혀왔다. 사람 구경에 신난 민서는 자신만의 탄성을 연일 내지르지만 이 인파의 물결 속을 헤치며 자재암까지 오를 생각을 하니 좀 걱정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입구에 국화전시회장은 볼만했다. 아직 많은 국화들이 만개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활짝 핀 국화꽃들 앞에서 연신 셔터기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아침을 일찍 드신 부모님을 위해 먼저 식당부터 잡았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12월에 치를 돌잔치 이야기며, 부모님 건강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 아버지 치과 치료에 대한 잔소리. 아버지는 그동안 잘 참아오시던 담배를 다시 태우시기 시작했다. 치과에서는 절대 금연을 강조해 오던 터라 성과 없는 잔소리를 해야했다. 나이들면 늘어나는 게 잔소리라는 말이 딱 나를 두고 한 말일까. 내가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알았다"하면서도 건성으로 듣고 넘어가신다. 한번 더 다짐을 받으려 재차 말을 하니, "이번 것만 다 피면 안핀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짐작 할 수 있는 건 쉽게 못 끊으실 것이며 재차 담배를 입에 물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잔소리'라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어떤 감명도 깨달음도 변화의 다짐도 얻을 수 없는 소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나의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그것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 '진심'이 없는 게 아니라 표현의 방법이 문제일 것이다.



어머니는 매번 함께 외식을 할 경우 당신께서 계산을 하시겠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아이 키우면서 살기 어려울 테고 시부모와 함께 여행 다니는 게 어려울 테니 당신께서 내시겠다는 마음이겠지만... 아버지에게 시집 온 이후 아들 둘을 키우면서 제주도도 못 가보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날의 소소한 외출은 턱없이 부족하다. 언젠가 제주도 여행을 함께 가겠다는 마음은 몇년전부터 생각하던 것이지만 이제 내 가족이 생기고 나니 그도 역시 쉬운 게 아닌 일이 되었다. 역시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이런 것이리라.




가족은 연민의 무덤이다. 끝없는 연민 속에서도 그 끝에 닿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누군가가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라고 하지만, 가족에 대한 연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질되지도 않으면서 끈질기게 다가와 마음을 태운다. 이런 연민은 행동하지 않으면 그저 마음의 속살만 썩게 한다. 오랜 세월 속에서 시들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은 연민의 무덤이며 그 끝인 것이다.

연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떨까. 구체적인 행동이 더 나아진 미래를 보장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연민은 더 나쁘다. 그것은 연민의 주체나 객체 모두에게 나쁜 것이다.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창조적 주체가 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매일 얼굴을 대면하는 가족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옳다. 여행도 그런 발견을 촉진시켜 줄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이날 소요산 여행은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보면서, 자재암까지 다녀온 일정으로 무사히 마쳤다. 여전히 나는 많이 부족한데 부모님은 빨리 늙어가신다.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10월 마지막주는 처형댁 식구들과의 여행이 잡혔다. 이 여행이 닫혀 있는 연민의 그늘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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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왔어?




오늘은 어디가요?




물론 부모형제와 함께 살 때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그 때 나는 '우리' 가족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내' 가족이라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내' 가족이 생겼다. '내' 가족이 생기면서 책임과 의무가 더욱 늘었고, 나만의 자유와 평화의 영역은 매우 축소됐다. 그러나 혼자였던 '나'는 또 다른 '나' 둘을 더 얻었다. 숫자로만 볼 수 없는 부유함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8월 초 휴가 때 내 가족과 함께 한 첫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첫날부터 휴가길은 심상치 않았다. 토요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섰지만, 뉴스에서는 영동고속도로가 새벽부터 시작된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물론 영동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서울을 빠져 나가는 모든 고속도로는 아침부터 심한 정체를 겪고 있었다. 휴가를 8월초로 몰아주는 우리나라 현실이 고속도로에 여실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1년에 한번 있는 휴가, 이렇게 고행을 해서라도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갈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참 꽤재재한 현실을.





























첫날 여행지는 담양.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그것도 휴가철인 일요일 집을 나선 것이 잘못이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 치일 거라고 예상은 했어도 시골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담양 소쇄원은 세번째 찾은 것이었는데, 예전처럼 고즈넉한 맛을 볼 수 없었다. 그 작은 전통 정원과 가옥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디를 담아도 멋진 풍경이 나왔던 소쇄원은 어디를 찍어도 낯선 사람들의 사진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운좋게 자리잡은 평상은 우리가 앉은 이후 채 10분도 안되서 다른 사람들로 꽉 채워지고 말았으니, 저 위의 평상 사진은 정말 운이 좋게 잘 나온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사촌누이의 소개로 어렵게 찾아간 명옥헌원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정자라서 그런지 그나마 조용히 머물 수 있었던 곳이다. 물론 이곳에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중에는 일본인과 서양인도 있었다. 하지만 연못과 그 주변의 배롱나무들에서 활짝 핀 꽃이 제법 운치있는 곳이었다. 담양 여행 중 민서가 가장 잘 웃고 행복에 겨웠던 곳이 아마 이곳이 아니었을까.

죽녹원은 입구의 주차전쟁부터 만만치 않았다. 죽녹원 내부에서는 온갖 사투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날이 날인만큼 대나무 숲의 시원함보다는 짜증이 밀려올 정도로 사람과 날씨에 치였다. 그래도 간간히 나들이가 마냥 즐거운 딸내미 덕분에 웃었다.






월요일에는 함양의 서암정사와 상림공원을 다녀왔다. 이날은 장모님도 함께 했는데, 서암정사 주변은 한창 공사중이라서 덤프트럭들이 바로 절 앞까지 오갈 정도로 부산했다. 그래도 서암정사 본래의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장모님이나 아내는 대만족이었다. 상림공원은 날씨를 생각하면 가지 않는게 좋을 뻔했다. 그래도 상림공원 앞 늘봄식당에서 오곡정식은 나쁘지 않았다.



















셋쨋날은 순천 송광사를 돌아보고 계곡에서 간단히 물놀이를 즐겼다. 이곳에서 민서와 처음으로 물놀이를 했는데, 민서는 차가운 계곡물이 신기한지 발로 물장구를 치면서 장난을 치면서 까르르 숨넘어가는 웃음을 던졌다. 태어난지 8개월 된 민서에게 모든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피곤함도 만만치 않았다. 넷쨋날은 장모님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구례의 위안리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내린 결론은, 역시 집에 물 받아놓고 하는 물놀이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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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민서




4월 19일이 결혼 1주년입니다. 비록 아내와 딸은 멀리 전라남도 구례 산골짜기에 있지만, 저로서는 남다른 날을 남다른 방법으로 기념해 보렵니다. 불과 1년 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들떠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렀던 기억들이 이제는 아주 오래전 기억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자리에 사랑하는 아내와 그만큼 또 사랑하는 딸, 민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는 금방 멀어지는 법이죠. 이렇게 저에게 1년 만에 사랑하는 여인이 둘이나 생겼습니다. 세상이 맺어준 인연 아내와 하늘이 맺어준 인연 딸. 둘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새벽 5시에 출발해 다시 4시간여의 먼 길을 달려 아내와 민서에게 갔지요. 여전히 운전은 서툴고 낯설지만(2007년에 면허를 땄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9시 반쯤 장모님 댁에 도착해 보니 아내와 민서는 곤히 자고 있었지요. 주말 아침의 늦잠은 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은 거라 가만히 옆에 앉으려 했는데, 민서가 먼저 깨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네요. 그리고 아내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서 일어났지요.

민서는 일주일동안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울에서는 4~5일마다 변을 보았는데, 시골에 와서는 거의 매일 황금변을 내놓았습니다. 스스로 손을 모으고 물건을 잡는 시늉을 하고, 가만히 물건을 쳐다보거나 손을 쳐다보는 행동을 합니다. 안아주는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고, 엄마가 움직이는 대로 자기 시선을 돌립니다. 옹알이도 많이 늘어서 민서가 가장 기분 좋은 아침에는 아주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말에 넙죽넙죽 대꾸를 잘하는 엄마가 있어 다행이지요. 상상력 부족한 저는 대답할 말을 못 만들어 내고 그냥 "어~ 어~"라고만 하지 말입니다.

이날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자동차로 지리산 성삼재에 오르려 했으나 계속되는 이상저온으로 대신 쌍계사길 드라이브만 다녀왔습니다. 쌍계사 벚꽃 길은 아내가 예전부터 꼭 가보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터라 저 역시 기대감이 컸는데, 정말 쌍계사 벚꽃 길의 아름다움은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 길에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벚꽃이 많이 지고 난 뒤였지만, 남아 있는 꽃잎과 떨어지는 꽃잎 속에서 이전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쌍계사에서 아내와 민서




민서는 아직 자동차 여행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작아서 아기띠를 해도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 않았지요. 그리고 콧바람 신나게 쐬고 온 하루였습니다. 나중에 아장아장 걷게 되면, 산과 들로 더 신나게 다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간과 자연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 아내와 나는 다시 한 번 민서와 약속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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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의 나무가 잎을 다 떨구고 나서인지 을씨년스럽다. 월정사 처마끝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하군.










월정사는 일주문부터 연결되는 전나무숲길이 유명하다. 원래는 시멘트 길이었다는데, 다시 황토길로 바꾸었다.
낡은 것은 낡을수록 그 가치가 빛난다. 1000년의 숲길에 시멘트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들의 경이로움. 늙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일이란...









뜨기와 함께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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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군도 사진을 참 잘 찍어요. 뒤의 소화전만 아니었으면 배경도 인물도 꽤 괜찮은... 풉...




하군의 아궁이에 대한 추억도 꽤 재밌더군. 나도 시골생활을 좀 해봤지만,
시골에서 어린날을 보낸 하군의 얘기는 배꼽을 들었다 넣었다 할 정도로 재미있다.



낡음은 고유함일 것이다. 먼지만 툴툴 털어내면, 모든 사라진 것들을 다시 추억하게 하는 힘이 있다.
사라지지 않고 낡는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군이 굴뚝에서 찍은 내 모습. 하군의 예술적 감각과 상상력은 상상초월.




모델로서도 손색이 없는 저 초월적 자태를 보라.



암튼 여기는 오죽헌이다.




툇마루만 보면 앉아야 직성이 풀리는 하군. 손은 항상 뜨기에게...






날씨만 좀 덜 추웠어도.... 으으



장승은 꼭 찍워줘야... 게다가 장독대도... 이건 사진 찍으라고 해 놓은 설정이다.



강릉단오제의 주인공, 대관령 산신과 강릉 여서낭신님이다.
강릉단오제가 세계 무형 문화 유산으로 채택된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저 두 분 자세히 보니 어찌나 정감이 가는지... 그래서...



하군의 도발적인 따라하기... 그저 감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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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임신 이후 함께 여행하는 것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물론 아내의 임신보다는 그동안의 교과서 업무가 더 큰 이유일 테다. 이제 교과서 업무가 마무리 된만큼 더이상 그동안의 아내와 나의 수고를 위로하는 여행을 떠났다. 어쩌면 태아와 함께 하는 최초의 가족여행이 아니었을까.

강릉 여행을 위해 하루를 꼬박 매달렸더랬다. 코스를 짜면서 추운 겨울을 대비해 박물관 코스를 넣었으며, 바깥을 돌아다닐 때는 한낮을 주로 잡았고, 꾸준히 걸을 수 있는 장소로 선정했다. 강원도 강릉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식당을 검색해 보았고, 숙소 역시 가격과 위치보다는 휴식에 맞추어 예약을 하였다.

그러나 숙소의 경우 예약이 좀 늦은감이 있었다. 괜찮은 팬션은 이미 다 예약이 차 있었다. 좋은 팬션을 숙소로 하겠다면 최소 한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했다. 그동안 나의 여행에서 숙소는 아무데나 가격 싼 곳으로 해결해왔는데, 앞으로는 가족과의 여행은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많이 고민해야 할 것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함께 거닐었던 것이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듯하다. 아내와 나는 밤바다와 아침 바다, 옛 서원과 고가, 오래된 숲을 함께 거닐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이란 단어를 곳곳에 새겨넣을 수 있었다.

여행은 떠남을 통한 돌아옴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와 더 굳건히 서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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