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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세상 속의 내가 위태로운 비탈길에 터전을 잡은 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땅은 자꾸 내려가라 내려가라 밀어내려는 데, 나무는 기어코 그 비탈에 씨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올곧게 섰다.

세상이 곧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거다. 비탈진 언덕에 서는 나무들이 땅을 기준으로 뻗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기준으로 뻗는 이치를 보라. 내가 지금 발딛고 있는 곳이 내 삶의 기준이 아니라 더 큰 하늘을 보며 그 하늘에 내 삶의 기준을 잡고 서야 한다.



























호명산. 호랑이 호(虎), 울음 명(鳴)을 썼다. 예전 사람의 오감이 적었을 때는 호랑이 울음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 이제 그 산의 주인들은 없다. 계곡을 넘칠 듯 흐르던 풍부한 물은 사람들이 앞뒤로 막아 한쪽에는 청평댐이, 다른 한쪽으로는 호명호수가 들어섰다. 흐를 눈물도 막힌 호랑이들은 이제 여기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가을의 뒤안길에 찾은 산이라서 그럴까. 나무들은 앙상했다. 더불어 걷는 행보도 텁텁하다. 갈증이 목구멍을 치밀어 오른다. 명색이 등반이라지만, 역시 밥벌이의 일환이다(회사에서 가는 야유회다). 김훈은 '모든 밥벌이에는 낚시 바늘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야속하고도 비겁한 변명을 가지고 찾아가는 산이라서 그랬을까. 눈꼽만큼의 기대도 없었건만, 그 산은 사람이 고팠는지 이런 나를 잘도 넙죽넙죽 받아 안았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천지가 낙엽이었다. 얼마전 찾아간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는 이런 낙엽이 없었다. 월정사 숲길이 좋은 헤어로션으로 깔끔하게 빗질이 된 길이라면 호명산의 등산길은 모진 바람을 맞은 광녀의 머릿결 같다. 그런데 오히려 정겹다.

낙엽 밟는 소리를 정밀하게 조사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도 그 소리가 모든 사람의 감정을 살포시 즈려 밟아주는 그 마사지 효과가 궁금했을 터이다.

우리가 갔을 때의 호명산 낙엽은 그렇게 바삭하게 마르진 않았다. 좀더 바짝 말랐다면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내 들을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쉬움은 남지만 이리 많은 낙엽을 밟아 본게 언제였던가 생각하면 이마저도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디가나 길을 안내하는 표지는 선명하다. 작은 리본이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다르겠는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사방으로 열리는 법이다. 정해진 길은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인사 정도에 그치면 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은 좀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도전도 필요하다. 하나의 길은 하나의 과정과 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세상은 더 다양한 길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열릴 수 있는 길.





























오르막길을 올랐던 사람들의 흔적이 보였다. 누군가는 급하게 치고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흔적은 흔들리면서 오르는 길만 남았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천천히 오르는 길. 많은 이들이 그렇게 흔들리면서 인생을 산다. 직진의 인생은 얼마나 고달픈가. 나이든 이의 지혜처럼 어쩌면 삶은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천천히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에 행복이 있지 않을까.





























낙엽, 하늘에 떠 있던 시간을 기억할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온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가을에 숲속을 걷는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 겸허해 지는 시간이다. 자연의 순환, 그 오묘함 앞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순환시켜야 하는 절실함을 느낀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숲은 이제 모든 걸 벗고 서로를 보다 분명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가을, 여기 호명산에서 울고 있다.































세상에 지친 이들이여, 천천히 숲을 거닐어 보자. 누군가가 미워지거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다면 나무를 찾아 어루마지며 마치 나에게 하듯 위안하고 안아주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나무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나로부터 시작해 인류를 넘어 지구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지구와의 만남은 저 멀리 다른 행성과의 만남으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온 우주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나와의 만남이다. 그 경험으로 결단을 내려 길을 가라. 앙상한 가지와 텁텁한 갈증이 존재하는 숲에도 길은 나있지 않은가.

























그렇게 휘청거리며 걷다 보면 마구잡이처럼 삐쭉삐쭉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줄 수 있었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정상에서 마신 막걸리 한잔의 취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이란 것이 그런 거다. 보잘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산이라는데도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이 잠시 머물다가 헛헛한 마음을 채우고 갈 수 있는 것. 산이 나에게 준 정이고, 내가 산에게 주는 정이다.

다음 달에는 밤새 산을 껴안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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