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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지만 왜 월요일만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오늘은 학생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도 버스는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뒷문으로 탑승해서 간신히 문을 닫았고, 조금씩 주춤거리며 몇센티미터씩 들어가는데, 발이 무언가에 걸린다. 곧이어 어떤 사람이 외친다.
"여기 휠체어 있어요. 죄송합니다. 발 조심해 주세요."
버스 뒷문 안쪽 공간은 휠체어 공간이다. 내가 탄 버스는 저상버스였고, 마침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한 분이 탑승한 상태였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에 장애인의 발이 걸린다. 만원 버스에서 저마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사정에도 자신의 출근길 전쟁을 치르는 북새통은 어쩔 수 없다. 거기에 낀 장애인의 고통은 더하면 더했지 편할리가 없다.
평상시 개봉동을 출발한 버스는 보통 신도림에서 많은 사람을 내리고 좀 한산해지다가 여의도에서 더 많이 내려 그나마 숨통이 트이고는 했다. 그런데 이날은 어찌된 일인지 신도림에서 더 많이, 영등포와 여의도에서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의 발은 점점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고, 뒷문의 출입구 앞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무간지옥이 펼쳐졌다.

출처: 투데이신문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서울 북동부까지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이 버스의 탑승객들은 여의도와 마포 일대에서는 주로 젊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구로와 강북, 노원에서는 나이든 분들이 많이 이용한다. 그만큼 다양한 이용객들이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출퇴근 시간의 배차 간격은 들쑥날쑥... 시종점에서 일정한 시간에 출발한다 해도 워낙에 긴 구간을 운행하다 보니 중간에 버스와 버스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지거나 벌어지는 불규칙해지면서 간혹 특정버스에서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의 그림이 펼쳐지게 된다.

"아휴 죽겠네. 저 쇼크 오면 버스 멈춰요. 그럼 여러분도 출근 더 늦어져요."
그의 외침은 공허하다. 막 버스로 탑승하는 승객들이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뒷문으로 승차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버스 기사마저도 앞문에서 타려는 승객들에게 다음 버스를 탈 것을 설득하거나 억지로 타려는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판에 뒷문 승객들을 살펴볼 여력은 없다. 그렇게 되니 뒷문 출입구쪽은 아수라장이다. 장애인의 그만 타 달라는 외침도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버스를 타고서야 장애인의 존재를 인지할 뿐,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도 신경 쓸 수도 없는 지경이다.

"지금 어디죠? 저 여의도역 가려고 하는데, 어디서 내리는 게 가까운가요? 여의도 환승센터라고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내리냐고요? 노래를 해야죠. 안 그러면 못내려요."

나도 밀리다 밀려서 그의 옆자리에 서게 되었고 목적지가 가까워진 그와 짧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여의도 환승센터에 버스가 도착했다. . 그 분이 외치기 시작한다.

"잠시 내렸다가 타 주세요. 저 내릴게요. (버스 기사에게) 기사님, 저 내릴게요."
뒷문에 서 있던 사람들이 길을 열어 주었다. 잠시 기다려 보지만 버스 휠체어 승하차용 발판이 내려오지 않자, 다시 그 분은 다시 바깥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기 선생님, 힘좀 쓰실 수 있으면 제 휠체어 좀 잡아 주시겠어요? 아니 그렇게 잡으시면 허리 나가요. 여기 잡아 주세요."
이때, 승하차용 발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는 무사히 하차할 수 있었다. 그는 9호선을 타는게 목적이었던거 같은데, 9호선 전철은 무사히 탔을까? 9호선도 출퇴근 시간에 지옥도가 펼쳐진다는데...

그의 말대로 그는 새벽부터 나섰어야 했을까? 모르겠다. 비교적 시간을 칼 같이 사용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굳이 장애인에게만 추가적인 시간을 요구하는 건 옳지 않다. 물론 휠체어로 이동하는 일이 다른 이동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혼잡한 버스에서 그가 겪어야 할 그 고통은 여러가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

왜 이 버스는 이 시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혼잡한 버스에서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어떻게 가능할까?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이동 수단으로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휠체어 장애인도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더 편해져야 할 이유도 없고 더 고통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그의 고통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 어쩌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그도 힘들겠지만 출퇴근 시간 대라 할지라도 필요하면 기꺼이 버스에 탑승하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도 그도 더 나은 방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서로 같이 익숙해져야 할테니 말이다.


20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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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청계천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산책 삼아 거닐다 보면, 데이트 하는 연인들 모습 때문에 씁쓸했었답니다. 하지만 직장도 옮겼고, 연인을 옆에 두고 있다 보니, 이제는 그다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일전에는 일이 있어서 잠시 지나는데, 한창 공사 중이더군요. 일명 청계천 보도 확장 공사. 





속으로 ‘이제야 청계천 보도가 확장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 타임머신의 시계는 200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2005년 8월 4일, 개장을 불과 한달여를 앞둔 청계천변의 시설에 대해 국가인권위의 현장조사가 실시되었죠.(관련 보도자료) 그때 국가인권위는 청계천에서 장애인과 약자들의 접근과 이동도 청계천 흐름만큼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청계천과 차도 사이의 보도폭, 휠체어의 경사로 진입 시 턱 등 장애요소들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또, 경사로의 폭과 경사도 등의 안전성이나 점자 블록의 적절한 설치 여부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조사들은 모두 장애인과 약자들의 안전한 이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활동이었죠. 또 이런 조사를 통해 중요 국책사업 등의 설계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 보장 문제 등을 검토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 국가인권위는 청계천에서 장애인이나 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권고를 전달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이 권고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4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했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보도폭이었습니다.

“청계천 쪽에 설치된 보도를 보면, 이 보도의 폭은 1.5m이나 보도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어, 가로수가 있는 곳의 통행가능 유효폭은 60~70cm 밖에 되지 않아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지나가기가 어려워 장애인 등의 이동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사진1, 2, 3] 더구나 이와 같이 보도에 가로수를 심은 것과 가로수로 인해 유효폭이 60~70cm로 된 것은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는 보도 등의 유효폭은 1.2m 이상으로 해야한다’, ‘보행장애물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장애인 등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는 장애인․노인․임산부등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시행규칙 제2조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 관련 보도자료 중에서  




청계천의 안전시설 문제는 첫날부터 불거졌습니다. 개장 첫날 삼일교에서 중앙에 있는 조형물을 구경하던 유모씨가 5.5m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죠. 그리고 다시 개장 한달여를 지난 시점에서 또다시 시민의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안전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전혀 억지가 아님을 증명한 사건들이었죠. 비장애인도 그렇게 사고를 당하는 마당에 장애인이나 약자 등은 어떤 위험과 공포에 떨어야 할지는 뻔한 거 아닐까요?

이순원 작가는 월간 <인권>을 통해 청계천의 차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왠지 너무도 아깝게 보이고 크게 보이는, 몇 년 후 더 자라서는 청계천을 상징할 나무로 보이기도 하는 저 이팝나무가 내 눈엔 바로 ‘그 나무 때문에 청계천 나들이가 불편한 절대 소수에 대해 그 나무로 청계천 나들이가 더 행복한 절대 다수’가 가하는 차별의 상징수처럼 보이는 것이다.” - 2005년 10월호 휴먼필-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청계천의 이팝나무

작가는 나무라도 뽑아서 길을 확보하라고 충고했지만, 사실 차도를 좁혀서 보도를 넓히는 게 더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일이겠지요. 4년이나 지났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보도폭을 넓힌다는 게 반가운 소식입니다.

다시 그때의 국가인권위 권고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 봅니다. 국가기관과 지자체 담당자분들 꼭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향후 공공사업 시행에서는 계획 단계에서부터 사회적 약자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시설 개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달에 인권위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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