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어제 퇴원했다. 화요일 밤에 광명시 파티마 산부인과에서 이대 목동 병원으로 급하게 이송해야 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지난 주 토요일 밤부터 시작된 이상 상황은 월요일 오후부터 호전되는 듯했다. 화요일에는 나도 안심하고 출근을 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다시 이전보다 많은 출혈이 나타났다. 의사는 만일을 대비해 이대 목동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임신 중 출혈은 태반이 떨어져 나오는 상황일 수도 있고, 여성의 질 안에 상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인데, 아내의 경우 어느 경우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가진통(자궁수축)도 문제였다. 모든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특히 태반에 이상이 있을 경우 제왕절개를 해서라도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데, 이 경우 33주의 미숙아를 키울 수 있는 신생아용 산소호흡기가 있는 곳은 큰 대학 병원밖에 없다.


곧바로 이동 준비를 하면서 택시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은 지금도 그 병원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무리 밤늦은 시간이라지만 자신의 환자 상황이 어려워져 대학병원으로 옮긴다면서 병원 앰뷸런스는 장식용이란 말인가. 광명시 파티마 병원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그런 하나하나의 세심한 배려는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이대 목동 병원에서 다시 시작된 검진, 검진, 검진… 다시 반복되는 고통, 참아야 할 아픔들 때문에 또 마음이 아팠다. 아내는 잘 견뎌냈고, 그런 와중에도 계속 뱃속 아기의 건강을 염려하고 보살폈다. 아내가 입원하면서 주위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미처 하지 못한 신생아용 준비물들을 미라의 둘째 올케 언니께서 빨고 삶아주시기로 했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아내의 조카와 처형이 와서 돌봐 주었다. 어머니는 며느리를 걱정해 퇴근하자마자 병동으로 찾아와 주셨고, 아버지는 당신이 찾아가면 며느리가 부담되어 할 것 같아 찾아가지 않는다며 나에게 잘 돌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밖에 이전 블로그를 보고 걱정해주며 연락한 몇몇 사람들의 알뜰한 관심 잊지 못할 것 같다. 회사 사람들의 배려와 진심어린 걱정도 많은 도움이 됐다.


고통은 때로 우리 주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타인과 관계 맺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을 어루만져 준 많은 분들과 무사히 큰 탈 없이 퇴원한 나의 아내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이슬”, 의사는 그것을 이슬이라고 부른다. 아내의 자궁문이 열리면서 소변에서 혈흔과 혈흔 덩어리가 나타난 것이다. 32주. 너무 이른 때이다. 아이도 아내도 나도 준비가 덜 되었다. 무엇보다 태아가 큰일이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태아의 신체 중 폐가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다는데, 이른 출산은 아이가 스스로 호흡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만일 계속 자궁문이 더 열리고 출산이 임박해지면 신생아용 산소호흡기가 있는 대학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아내는 입원했다.

아내는 울었다. 지난 주 무리해서 움직였던 자기 자신을 탓했다. 그런 아내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내 손이 부끄럽다. 아내는 모든 면에서 강하지만, 유독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유난히 약해서 지난번 충수염 수술 때도 아파서 울기 보다는 아기 때문에 걱정되어 눈물을 흘린 일이 있다. 그저 옆에서 손 잡아주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마음이 아팠다.

작은 약 한알 먹고 기다리는 일이 전부였다. 아내는 아랫배가 사르르 아파오는, 마치 생리통 같은 통증이 자궁문이 열리는 진통일 줄은 몰랐단다. 나 역시 이제 막 8개월을 넘은 시점에서 그것이 산통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 열린 자궁문을 다시 닫는 건 불가능하단다. 관건은 자궁문이 더 열리는 것을 막는 데에 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에 입원한 후 약을 먹으면서 절대 안정을 취하면서 기다려 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검진 기계의 산통 그래프는 더 높은 그래프를 보이면서 불안한 신호를 보냈다. 담담히 대학병원에 가는 문제를 가늠하며 한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월요일 오전까지 나타났던 진통 현상이 오후 되면서 잠잠해졌다. 오후 3시에 있었던 검진에서 드디어 진통 그래프는 잠잠해졌다. 의사는 간신히 잡은 것 같다고 한다.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며 며칠 더 입원한 상태에서 진행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서 살아갈 이름도 생각 못하고 있는데, 아기가 입을 기저귀와 옷들도 채 정리하지 못했는데... 아내를 병원에 두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머릿속에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산적한 일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 바람처럼 입 속에서 주문을 외워 본다.

“우리 아기, 잘 자라 우리 아기, 엄마 뱃속에서 잘도 잔다 우리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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