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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days7covers #BookCoverChallenge #7booksIn7days 1일차.

Sunwoo Nam의 권유로 시작했습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7일 동안 하루에 한 권씩 좋아하는 책의 표지를 올립니다. 설명도, 독후감도 없이 이미지만 올리고, 하루 한 명의 페친에게 이 챌린지에 동참할 것을 권유합니다.

1일차 챌린지에 응하며, 〇〇〇에게 동참을 권합니다.

도서 관련 릴레이 이벤트가 또 시작됐다. 

도서 관련 이벤트가 그러하듯, 독서 문화를 장려한다는 것이 이벤트의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벤트가 이벤트의 취지를 먼저 설명하는데, 여기에는 그런 언급이 없다. 그저 추측했을 뿐이다. 

이벤트의 방법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표지, 혹은 읽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책의 표지를 올리는 것이다. 이때 책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나 사연 등은 따로 적지 않아도 되게끔 하였다. 아마도 서평이라 리뷰나 설명을 적는 번거로움으로 사람들이 하지 않을 것을 우려한 조치였을텐데, 결론적으로 내가 권유한 사람들도 아무도 따라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미 했거나...)

하지만 이런 이벤트가 지적 허영과 연결된다는 지적도 있나 보다. 

〇〇〇 박사님 권유로 캠페인에 동참하기 전 일찍이 다른 곳에서도 챌린지에 응하는 모습들을 보았으나, 위와 같은 까닭에 의미보다는 행위에 집중된 듯 보였고, 지적 허영을 겨냥한 유행이란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 남선우 페이스북에서 발췌

결과적으로 7일간의 나의 권유는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이 사장됐다. 너무 지적 허영이 지나쳤는지도??? 사실 자기가 의미있고, 중요하고, 읽을만하며 주위에 권하는 책을 올리는 게 맞다. 적어도 나는 그 기준에 따라 책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퍼질대로 퍼진 이벤트의 식상함인지는 모르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이 이벤트의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만족한다. 서가를 다시 한번 둘러볼 기회가 되었고,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들쳐볼 수 있었다. 나에게 소중한 영감을 주었던 책이 여기 일곱권만 있진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 소개하고 싶지만 이번 이벤트에 올린 책들과 그에 대한 댓글 소개를 여기에 정리한다. 

 

1일차                               

댓글 설명: 독후감이나 리뷰를 쓰지 않는게 이 릴레이 이벤트의 취지인듯. 그래서 추천 이유를 댓글에 간략히 정리합니다. 청년 과학자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중남미를 돌아다니며 기록한 이야기에는 다양한 지역의 환경 생태 지질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원주민과 이주민의 생활상도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멸종된 동물들의 모양과 습성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재미있습니다. 과학자의 시선과 성실한 기록이 만든 뛰어난 기록물이죠. 재미도 있는데 800쪽에 가까운 분량 때문에 여전히 읽고 있는 중 ^^;;

 

 

 

2일차                               

 

댓글 설명: 비교적 최근에 읽은 SF소설. 이 이야기는 타임머신으로 중세시대의 흑사병이 번지기 시작한 어느 시골마을에 떨어진 대학생 키브린에 대한 이야기다. 병의 원인과 양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주인공이 변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 앞에서 그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가는 모습을 긴장감있고 속도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코로나19를 맞이한 우리 현실과 빗대어 보면서 읽어볼만하다.

 

 

 

3일차                               

 

댓글 설명: 이번에는 여행기. 60을 넘어 은퇴한 전직 기자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2천킬로미터를 도보여행하면서 남긴 이야기.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

 

 

4일차                               

 

댓글 설명: 제목 그대로. 하지만 이제 맹인이라고 하기보다는 시각 장애인이라고 해야죠. 책 표지에 설명이 있으니 추가 설명은 생략.

 

 

5일차                               

 

댓글 설명: 집에 무려 양장본에 케이스까지 있는 책. 책에 대한 작가의 애착이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랐다.

 

 

6일차                               

 

댓글 설명: 고통은 무엇일까. 차분한 르포식의 현장성이 짙게 뭍어 있는 글들.

 

 

7일차                               

 

댓글 설명: 일요일 오전에 올리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종교도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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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들이 나오고 있고,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는 직접 운영해 볼 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선배가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학원에 보내면서 떠오르는 단상을 담담하게 쓴 페이스북의 글에 대해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경쟁적 교육의 상징이자 아이콘이 된 학원에 보내는 엄마의 고민과 그와 함께 찾아올 경제적인 부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에 보내달라는 아들의 청원에 대한 생각 등을 담은 그 글("나는 엄마다")은 그렇게 심각한 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댓글은 마치 사교육에 맞서는 전사와 같은 문체로 그이에게 준엄한 논리로 조언(혹은 충고)를 했나 보다. 댓글을 작성하는 동안 사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선배"의 고민에 대해 생각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진정성은 있었지만, 어쩌면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으로 밀어 넣는" 건 아닌가 고민하는 "부모"의 진솔한 고백에 대한 배려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페이스북은 트위터와 다르다. 트위터는 주로 정보의 생산과 확산에 적합하다면, 페이스북은 지인들과의 감성적 연결에 더 적합하다. 담벼락(페이스북의 개인 홈페이지)과 타임라인(트위터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글들도 그렇게 구별된다. 그렇다고 해서 페이스북에 적합한 글, 트위터에 적합한 글이 따로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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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술자리에서는 SNS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온다. 얼마 전의 술자리도 그랬다. 이날도 대표적인 SNS 서비스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가 술안주로 올라왔다.


“페이스북이 무서운 건 ‘알 수도 있는 사람’에 나오는 인물의 면면이야.”

“그렇지. 몇 년 전에 소개팅으로 만나서 두세 번 만났던 사람을 ‘알 수도 있는 사람’에서 보았을 때는 멍해지더라.”

“나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소개하더라. 아무것도 모르고 클릭했다가 친구 요청이라는 걸 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겁을 했는지 몰라.”

“×표시를 누르면 또 다른 사람을 보여주잖아. 이건 꼭 페이스북이 ‘이 사람 모르니?’라고 자꾸 물어보는 것 같아. × 누르면 또 다른 사람을 보여주면서 ‘그럼 이 사람은?’ ‘이 사람 몰라?’ ‘이 사람은 알텐데?’……‘잘 기억해 봐. 당신이 아는 사람이 틀림없어!’”


이처럼 페이스북 등의 SNS 서비스의 강점은 내가 찾아가지 않아도 시스템이 알아서 정보를 찾아서 배달해 준다는 점이다. 블로그나 웹카페 등은 사용자가 필요하다면 직접 찾아가서 정보를 확인해야 하지만, SNS는 사용자 간의 정보들이 수시로 왕래하면서 점차 해당 사용자의 취향과 성향에 맞춤형 서비스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SNS의 성장 동력이기도 하지만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 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트위터에 등장한 폭언남 ‘아톰’의 경우도 트위터의 대문에 적은 신상과 제시된 정보를 토대로 여성 회원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SNS 서비스를 이용한 성희롱 등의 성범죄를 비롯해 우후죽순처럼 증가하는 소셜 커머스를 이용한 사기 피해와 금융 피싱 등 신종 범죄의 등장은 이 서비스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한편으로 현신 세계와 거의 차이가 없이 활용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개인정보의 유출과 사생활 침해는 사실상 정부와 기업의 합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검찰은 사소한 사안에 대해서도 수년치 이메일을 법원의 영장 없이도 들여다 볼 수 있고, 경찰 등 수사기관이 인터넷 포털 서비스에 개인의 신상 정보를 요구하면 포털 사이트는 당사자에게 정보 제공 요청 확인도 받지 않은 채 신상 정보를 쉽게 제공한다. 정보의 자기 결정권이 정부 기관, 특히 수사 기관에 의해 무시되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개인정보에 대한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된다.


기업은 기업대로 고객 관리와 영업 마케팅 차원에서 개인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기업 사이트의 고객코너에서 글 하나 올리더라도 사이트에 가입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 등 내밀한 개인정보들을 적어야 하는 게 우리 인터넷 현실이다. 또한 회원 가입을 하는 과정에서 동의한 약관에서는 내 개인정보가 어떤 상업적 목적으로 쓰이고, 누구에게 양도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도록 애매한 내용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근 국회와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안’을 발위한 상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19일 개인정보 보호 기구와 관련한 의견을 냈다. (관련 보도자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인터넷 세상의 흐름에서 인권 보호는 이제야 눈을 뜨려고 한다. 물론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법안이 만들어지고 개인정보보호기구가 발족하더라도 산적한 사안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산넘어 산이다.


하루 빨리 관련 법안과 기구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위 글은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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