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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동상

지금 평화시장과 동대문 일대는 의류 패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지요. 그러나 1970년 오늘 여기서 한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어둠을 뚫고 빛나는 화염으로 세상을 밝히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점심을 굶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 수유리 집에서 평화시장까지 걸어 다니면서 아낀 버스비로 여공들에게 점심을 사 먹인 일화는 그의 헌신과 희생이 깊은 인간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연구자였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한문이 가득한 근로기준법을 날이 새가면서 읽고 해석하며 스스로 이해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이 근로기준법이 고통받는 여공들에게 따스한 햇살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장기표 신문명연구원 원장은 전태일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전태일은 고난 속에서 사랑을 얻는 사랑의 원리, 사랑을 통해 지혜를 얻는 지혜의 원리, 사랑과 지혜를 통해 높은 꿈을 이루는 꿈의 원리,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가운데 법열을 얻는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 같이 소중한 교훈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경향신문에서 재인용)


오늘 그가 산화하며 외쳤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마라”


과연 지금 이 말은 얼마만큼 지켜지고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자들, 저의 시선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인권과 대우는 분명 나아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또 다시 한쪽에서 차별의 온상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우리의 삶을 지키고 있다면, 먼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태일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재단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여공들의 고통과 아픔을 돌보다가 해고당하기까지 하죠. 그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함께 일하던 여공이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직업병인 폐렴으로 강제 해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느낀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열악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하는 시다들을 ‘나의 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바탕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나의 나’를 볼 줄 아는 시선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태일의 의미는 바로 ‘나의 나’를 보는 시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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