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자고로 연말정산의 계절이다.

올해는 나를 세대주로 등록했다. 동거인도 두명이나 생겼고, 그 중 한명-딸, 민서-은 내 부양가족으로 등록됐다. 달라진 나의 지위에 다시 한번 움찔했다. 키가 1cm는 작아지지 않았을까.

지난해 내가 썼던 카드값에 또 손발이 오그라든다. 결혼으로 인해 들어간 비용이 만만치 않았으니 예상했던 바이지만... 그래도 급여액의 3 %에 훨씬 못미치는 저렴한 의료비를 보면서 위로해 본다(아내의 병원비와 출산비 등은 아내쪽에서 등록하기로 했다). 그래도 크게 아픈 데 없이 한해를 보냈구나 싶어 뿌듯해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몸 곳곳에서 이상 신호를 보냈던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매해 해온 연말 정산, 해가 갈수록 간소화되는 걸 느낀다.  책상 서랍을 뒤집어 가며 먼지 폴폴 날리는 영수증을 찾아, 이면지에 덕지덕지 풀칠해 붙이던 게 엊그제 같다. 요새는 주민등록등본도 인터넷을 바로 뽑을 수 있으니, 간단해졌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도 살수록 복잡해 지는 거다. 세대주가 되고 가족이 생기고 신용카드 사용 금액이 늘고 여러가지 적어야 하고 준비해야 할 증명 서류들이 늘어난 걸 보면 연말정산 보다 복잡한 건 인생임에 틀림없다. 국가나 사회는 그게 성장이라고 한다. 심지어 '성장률'이라는 복잡한 수치로 친절하게 위로하려 들 때도 있다. 성장... 인생의 무게를 대치할 만큼 매력적인 단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단순히 키만 크고, 가진 돈이 늘어나고, 집이 커지고, 자동차가 생기는 것이 성장일까.  당장 기부금 목록은 '0'이다. 그래도 2008년 소득공제 신청할 때는 얼마 안되는 유니세프 기부금 영수증이라도 붙여서 흐뭇했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 성장의 이면에 있는 빈곤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다 따뜻하고 온기 있는 성장을 생각해 본다.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이 겨울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겨우내 쏟아졌던 눈비 때문일 것이다. 봄되면 그 많은 눈비들이 그야말로 봄물처럼 쏟아지겠지. 작아지는 내 키를 재잘재잘 놀리면서 말이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일상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의 탁상 달력  (0) 2010.02.01
접란의 점령기  (4) 2010.01.28
겨울비 안개 속으로  (0) 2010.01.20
하군과 민서  (2) 2010.01.18
존엄한 가난을 위해 - 아이티를 돕자  (0) 2010.01.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