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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8표다. 마음에 드는 후보들 이름 외우는 데도 한참 걸릴 것 같다. 얼마 전에 집으로 온 선거 공보물을 전부 펼치니 작은 방에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래서 투표 당일에는 후보들 이름을 메모해 갈 생각이다. 내 소중한 한 표가 허투로 찍혀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부터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은 정책 선거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후보자들이 거짓 공약을 내세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공약을 유권자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민주 국가의 기본 의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와 함께 투표 장소에 대한 차별성을 배제하려는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비장애인과 달리 장애인들의 선거 편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종교시설에 설치된 투표소도 인근 공공기관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여기에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한몫했다.


2004년 11월 10일 국가인권위는 선거방송에서 수화 통역이 임의조항으로 되어 있는 것에 대해 “장애인은 국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기타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므로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청각장애선거인의 선거권 행사의 편의를 위해 각종 시설 및 선거권 행사에 관한 홍보 등에 대해 자막 또는 수화 통역을 제공하는 것이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현장에서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안은 헌법재판소까지 갔지만 아쉽게도 8:1로 기각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김종대 재판관은 청구인들이 문제 삼은 법률조항들이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방지의무 및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헌법에도 맞지 않는다며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준바 있다.


“점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자 선거공보 규격 제한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   - 2005/04/15


집으로 오는 선거 공보는 본격적으로 후보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때문에 시각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이 보는 선거 공보 책자보다 더 적은 내용을 수록할 수밖에 없다. 2005년 4월 15일, 국가인권위는 “점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자 선거 공보 규격 제한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라는 권고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점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 묵자(黙字: 일반적으로 쓰이는 문자)에 비해 글씨 크기를 조절할 수 없는 게 점자이다. 게다가 점자 하나가 각각 하나의 자음과 모음을 표시하는 등 그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묵자의 약 3배 분량이 필요하다. 또 점자는 종이가 얇을 경우 글씨가 지워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120g/㎡ 이상의 종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선거 규정은 120g/㎡ 이내의 종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서 점자책을 배려하지 못한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2008년 7월 30일에는 “투표소 선정시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시각장애인에게 투표보조용구 제공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발표했다.


중앙선관위가 18대 총선이 끝나고 발표한 선거백서에 따르면, 투표소의 1층 설치율은 1990년대 80%에서 훨씬 높아진 95.7%에 이르고 활동보조인(2541명), 투표보조용구 등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활동보조인은 1000명당 1명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게 장애인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지난 초대 교육감 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경우 문턱이 높거나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장애인이 비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투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거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장애인을 위해 다른 투표자나 선거관계인의 호의적 도움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쉽게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부득이한 사유로 장애인의 접근이 곤란한 장소에 투표소를 설치하였다면 임시 경사로 등의 필요한 설비를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투표도우미가 직접 들어서 이동시키는 방법에 의한 인적 서비스는 앞서의 다른 모든 실현가능한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시설 및 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시각장애인의 편의 제공 역시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기표행위를 한다는 것은 민주 선거의 기본원칙인 비밀선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된다. 따라서 시각장애인도 독자적으로 기표를 할 수 있도록 특수 투표용지 또는 투표 보조용구를 제공해야 하는 게 민주국가의 의무다.


투표소 관련해 특색 있는 권고도 있다. 지난 2008년 3월 19일에 발표한 ‘종교시설내 투표소 설치 금지’ 권고이다.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총 투표소 13,178개소 중 1,172(8.9%)개소가 각각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유권자가 가장 많은 서울의 경우 2,210개 투표소 중 종교시설 투표소가 511개소(23.1%)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는 특정 종교 시설에 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일부 유권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어 종교의 자유를 침해 받는 일이 일어난다. 또한 이로 인해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거부한다면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결과가 되어 더욱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국가인권위의 선거 관련 권고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소수자들일지라도 똑같이 가지고 있는 1표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차별적인 제도와 규정, 조항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여전히 자신이 주권자로서 가지고 있는 참정권을 법제도와 규정, 조항들로 인해 제대로 실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국가인권위는 앞으로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참정권을 아무 제한이나 장애 없이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유엔인권위원회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권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문자 의식 능력 결여, 언어상의 장애 등을 가진 유권자가 투표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투표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원조가 각각 독립적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민주 국가라면 당연히 한번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2010.05.30. 국가인권위 블로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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