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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개를 넘고(1월 21일)

중3한문 교과서를 무사히 제출하고 쓴 글. 생소한 실험을 또다시 시작하게 된 내 인생에 위로의 술잔을 건네야 할 시간이었다. 지난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로 기나긴 유배의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지금에 충실하고자 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중이염에 걸린 민서(2월 14일)

이제 막 돌을 지난 민서가 감기가 잘 걸린다 싶었는데, 그로 인해서 중이염까지 악화되었다. 아기들 사이에서 잘 걸리는 병이라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도 엄마도 나도 함께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겨울이 찾아오니 그때의 아픔이 생생히 다가온다. 이번 겨울은 부디 무사히 지나가기를...

불과 반나절 만에 집이 나갔다(3월 3일)

4월 1일 이사를 했다. 전세대란의 와중이라 2.5배 정도의 높은 전세값을 부담해야 했지만, 삶의 모습은 그 전의 집에 비해 못해도 10배 이상 좋다. 무엇보다 민서와 함께 하루종일 살림을 하는 아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런 집에서 평생 살면 좋겠다는 말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저 소소한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질 날이 언제쯤일까.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다(4월 12일)

올해 목표는 1500km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고작 665km밖에 달리지 못했다. 지난 번 양평에서 집까지 200리를 달린 것은 내 자전거 생활에서 가장 큰 업적이긴 하지만, 그 이후로 이렇다할 진척이 없었다. 자전거 출퇴근을 4월달이라는 늦은 때에 시작한 것도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종합해 보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자출(30km) + 한 달에 한번 자전거 여행(50km)이라는 주기를 잘 진행할 수 있다면, 2000km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내년에는 연초부터 이 계획을 힘차게 추진해 보아야겠다.

빵빵이 아줌마 그동안 고마웠어요(5월 2일)

민서는 조산아였다. 태어날 때 몸무게도 2.04kg이어서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으며, 이후 수분이 빠지면서 1.84kg까지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인큐베이터에서는 다행히 별다른 이상 증세 없이 잘 자라주어 20여일만에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아기의 머릿속에 뇌실(빈공간)이 있다고 했다. 성장하면서 자연히 없어지기도 하지만 심할 경우 뇌수술을 해야 할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매번 민서의 성장 과정을 체크하고 인지 능력을 테스트하면서 조마조마했는데, 5월에 들어와서야 이상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지금은 10kg을 넘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물고기 구피 새살림 차리다(5월 3일)

이사를 하면서 고층 아파트라는 조건으로 인해 실내가 매우 건조했다. 가습기에 대해서는 나도 그렇지만 아내가 적극 반대하는 터라 다른 대안을 찾던 중 어항을 놓기로 했다. 사실 후배 덕분에 물생활을 시작했지만 어항과 물고기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나로서는 다시 인터넷을 뒤지고 새로운 지식들에 눈을 떠야 했다. 그런데 이 구피들을 들여놓고 나서 물생활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꼬물꼬물 움직이고 사람이 오면 반겨주고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커서 또 새끼를 낳았다. 환수에 신경 써야 하고 먹이를 제때에 줘야 하고 광량도 적당히 맞추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런 일은 물고기가 주는 즐거움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다. 무엇보다 민서가 좋아하고 실내의 습도도 적당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등 좋은 점이 많다.

인연이 되지 못한 것을 기리며(6월 23일)

아내가 임신을 했었다. 계획 임신이 아니라서 좀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도 원하던 둘째 아이가 될 거라 생각해서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엄마의 몸도 아기도 몸도 준비가 되지 않았었나 보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성장을 멈추었고, 세상의 빛을 끝내 보지 못했다. 아내의 몸 고생 마음고생이 컸다.

8월의 끄트머리(8월 22일)

아내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좋은 곳에 캠핑을 다닐 수 있었다. 매번 아무 장비 없이 맨몸으로 참여하지만, 그 고마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에는 3월 청평, 8월 포천, 9월 대관령, 12월 치악산 등을 다녔다. 나에게는 분에 호사였다. 캠핑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준 이들에게 감사한다.

동물농장-교활한 독재자와 무기력한 군중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10월 5일)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매번 연초에 세우는 계획이 올해는 몇권을 채우리라라는 거였는데, 이번에는 좀 색다르게 목표를 세웠다. 그것은 “1만 페이지를 읽자.”였다. 직업이 책과 관련된 일인지라 오히려 책을 멀리하거나 쉽게 손에 잡히지 않다 보니 쉽고 단편적인 책으로 권수를 채우는 경향도 있어서 새롭게 세운 방침이었다. 물론 독서가 계량적인 분량으로 그 질을 담보할 수는 없다. 양질의 독서를 위해서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책읽기를 해야 함은 당연하다. 어디까지나 “1만 페이지”에 담긴 숫자는 재미에 불과했지만 돌아보니 나름 의미도 있었다. 수치상으로 올해 읽은 책의 페이지는 지금까지 7498쪽이다. 1만 페이지를 채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내년에도 역시 이 계획을 밀고 갈 참이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깊은 책이라면, 


나비와전사근대와18세기,그리고탈근대의우발적마주침 상세보기
고미숙 씨의 역작. 꽤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우리 고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운디드니에묻어주오미국인디언멸망사 상세보기
미국 인디언 멸망사. 소수자를 어떻게 핍박하고 차별하고 몰살했는지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미국의 역사를 통해 지금의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WAR아프간참전미군병사들의리얼스토리 상세보기
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의 이야기. 시대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모습을 미군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군을 옹호하거나 미국의 군사주의를 옹호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미군들이 겪는 아픔을 잘 드러낸 노작이다. 

산자와죽은자 상세보기
2006년에 우리나라에 나온 작품으로 시간이 좀 지났지만, 한 공장의 파멸의 과정에서 대처하는 노동자와 지역 사회,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디테일하고 숨가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숨은 거대한 음모 등 소설로서 가지고 있는 재미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 그리고 살아 있는 민중의 역동적 희망까지 품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앵무새죽이기 상세보기
1960년대 미국의 흑백차별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성장소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인자로서 재판을 받는 흑인을 변호하는 백인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아이들의 순수한 눈에 비친 차별의 어둠을 탄탄한 스토리로 펼쳤다. 


나는걷는다 상세보기
여행기. 터어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 신장까지 오롯이 걸어서 가는 여행자의 고독, 고통, 고뇌 그 혹독한 여행기를 읽다보면 나도 같이 그 사막과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위에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이 오래전에 나온 책들이다. 나온지 오래된 책은 아내와 내 책을 합치면서 아내가 가져온 책들 중에서 고른 책들인데, 대부분 매우 좋았다. 아내와 나의 책 읽기 코드가 비슷하다는 증거다. 내년에는 더 많은 책을 읽고 이곳 블로그에서 짧게라도 서평을 남겨야겠다. 


양평에서 자전거 200리길(10월 16일)

올해 최대의 자전거 여행이었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만의 도전이었다. 때로는 체력적으로 극한으로 몰고 가며 스스로를 시험하는 일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결국은 성취감을 위해 달려드는 불나방같은 행동이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물론 이후의 무릎 통증은 보름 정도의 기간동안 나를 괴롭혔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거라도 없었으면 내 자전거 생활에 이렇다 할 이야기는 없었을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떤 도전에 나설까. 사뭇 설레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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