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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시작이 어렵다. 혼자 실행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진행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자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서울둘레길을 마친 지난 봄에 그런 생각은 더 간절해졌다. 새로운 트래킹 코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마침내 지난 8월 18일 지리산 둘레길의 첫발을 내딛는 결실을 맺게 하였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멀리 지방으로 내려가는 거라 신경써야 할 게 많았다. 1박을 할지, 아니면 새벽에 출발할지에 대한 선택부터 자가용을 이용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트래킹 구간에 식수와 음식은 충분한지, 코스 내에 위험한 구간이나 길을 잃기 쉬운 구간은 없는지, 이정표 등은 잘 되어 있는지 등등 첫 트래킹에 앞서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게다가 서울 근교가 아니라 차를 이용해 3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만큼 이런 고민들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역에서 1박을 묵는 것은 여러모로 경제적 부담이 컸다. 물론 1박을 한다면, 그만큼 체력적 안배를 할 수 있고, 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트래킹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3명이 묵을 수 있는 적당한 숙소는 최소 5~10만원은 예상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1박을 하지 않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음에도 비용이 20만원 가까이 들어갔다. 하루에 쓰는 비용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고, 우리 가족의 경제 수준에서는 부담되는 지출이 될 수 밖에 없다. 토요일 일찍 잠을 청한 후 새벽 3시 경에 일어나 4시 경에는 집을 나서게 되었다. 

남원 주천면사무소에 도착한 후 주천면파출소 건너편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공용주차장은 버스 정류장과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주천-운봉 둘레길 구간의 시작점이다.

주천면 버스정류장의 무인 우체통
지리산 둘레길 안내 표지판 앞에서. 주천-운봉 구간의 시작점.

 

주천-운봉 구간은 총 14.7km 구간으로 지리산 서북능선(만복대부터 바래봉 등)을 바라보면서 걷는 구간이다. 운봉읍 지역은 해발고도가 높은 고원지대로 8월 중순의 여름에도 비교적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었다. 

 


시작점 표지판을 지나면 곧바로 개울을 하나 건넌다. 커다른 반석들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약간 미끄러웠고, 방심하여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물이 깊지는 않다. 발등까지만 살짝 젖을 정도였지만, 비가 많이 올 때는 이 개천도 금방 불기 때문에 이곳이 아닌 다리를 이용해 돌아가야 한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벼에 이삭이 나왔다. 초록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주천면 장안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주천-운봉 구간 지리산둘레길의 갈림길에서 만날 수 있는 장승 안내목. 
내송마을 앞에 돌탑들이 있다. 둘레길 나그네들의 건강과 무사안일을 빈다. 

 


내송마을을 지나면 곧바로 산자락으로 접어든다. 비교적 아침 일찍 시작한다고 나섰지만 여름해는 아침부터 강렬하다. 산자락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구룡치까지는 계속 올라가는 길인데, 초반부터 오르막을 걷다 보니 아이가 금방 지치기 시작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회덕마을 (2.4km)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개미정지에서. '정지'는 '쉼터'를 뜻한다. 너른 공간이 갑자기 나타난다. 운봉에서 구룡치를 넘어 온 사람들이 여기서 발을 쉬게 해 주었다. 내송마을 사람들도 여기에서 나뭇짐을 잠시 내려놓고 다리쉼을 했다. 

 

개미정지를 지나면 계속해서 오르막길이다. 구룡치까지는 산길을 올라야 한다. 약간 힘든 코스다. 
이날도 수고한 발들을 위하여 기념 촬영.
연리지. 여기 푯말에는 '사랑의 나무'라고 써 있다. 소나무 줄기 하나가 다른 나무의 줄기를 꼬면서 올라가 자랐다. 이것이 사랑일까? 

구룡치를 넘어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구룡치를 넘은 다음부터는 평탄한 길이 대부분이다. 특히 숲속 오솔길은 고즈넉하게 걷기에 좋다. 다만 물을 구하기 힘들다. 초반에 아이가 힘들어하면서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4통이나 준비한 물이 금방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가장마을의 민가에 들어가 부탁하여 다시 채워야 했다. 샘이나 물을 파는 가게가 드물다. 물 수급에 신경 써야 한다. 

중간에 만난 두 아주머니는 이 지역에 사는 분이었다. 운동 삼아 구룡치를 자주 함께 오가고 있다면서, 꼭 구룡치 폭포를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해 주었다. 그러나 구룡치를 넘으면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고, 정식 둘레길 구간을 걷고 싶다는 마음에 구룡폭포를 포기하고 평탄한 임도와 동네길이 주를 이루는 코스로 길을 잡아 나섰다. 아주머니 말로는 연리지가 있는 나무 근처에서 갈림길이 나오고 그 길로 가면 구룡폭포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구룡치에서 내려 와 잠시 지방도를 걷다 보면 멀리 회덕마을의 초가집들이 보인다. 관광용으로 지어놓은 거겠지 생각했는데, 빨래들이 널려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인다.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집이란 사람이 살아야 오래 가는 법이다. 다듬고 보수하고 고치고 새로 올리면서 집은 단단해진다. 수십년만에 보는 초가집이 반가웠다. 

덕산재를 끼고 도는 숲길은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짧고 쉽다. 게다가 고즈넉한 숲속 오솔길이라 걷기 좋다. 그 길의 끝에 무인가게가 있다. 캔맥주 2천원 생수 2천원. 컵라면도 먹을 수 있게 해놓았다. 우리 가족도 이곳에서 즐거운 둘레길 여행을 축복하며 간단하게 축배를 들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회덕마을의 초가집. 여행자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았을텐데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보였다. 빨래가 마당 한켠에 높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노치마을로 가는 길. 예전 백두대간을 잠깐 탈 때 노치마을로 내려온 적이 있다. 마을 뒷산의 수백년된 소나무가 있는 언덕배기는 매우 운치있었다. 
노치마을을 지난 뒤 덕산저수지를 끼고 다시 작은 언덕을 하나 오른다.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데다 솔숲길을 상쾌하게 거닐 수 있어 좋다.
덕산저수지 길을 돌아 나오는 숲길의 끝자라에 있는 무인가게. 라면포트와 라면상자가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물이 부족하다면 여기서 물을 살 수도 있다. 

 


가장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는 평지길이다. 그늘이 별로 없어 뜨거운 햇살을 그대로 받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날은 바람이 좋았다.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을 가르는 바람은 너무나 시원해 뜨거운 햇살을 금새 식혀 주었다. 가지고 있는 스틱을 이용해 잠자리 낚시를 해 보면서 아이는 즐거워했다. 구룡치를 넘으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힘들어 하더니 금새 회복한 것이다. 아이의 회복력은 정말 놀랍다. 서로의 스틱과 모자와 어깨에 앉은 잠자리를 보면서 즐거워 하며 시골길을 걸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잠자리 낚시 장면. 잠자리는 왜 뾰족한 곳을 좋아할까? 
잠자리 낚시법: 잠자리가 날고 있는 곳 근처에 스틱의 끝을 천천히 가져가면 알아서 찾아 앉는다. 
아이는 끝까지 잘 걸어 주었다. 이날 걸은 걸음수는 2만걸음을 넘었다. 역대 최고 많이 나온 걸음 수였다. 
행정마을길. 마을길이 잘 꾸며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초록이들은 어린 나무들이다. 양묘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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