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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6점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김영사
  •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청년이 경찰의 강압적인 폭력에 의해 숨졌다. 그를 숨지게 한 경찰 데릭 쇼빈은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함께 있던 경찰 3명도 해고되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미국 사회에 대한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시위가 미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시위에는 흑인만이 아닌 다양한 인종들이 참가하고 있고, 일부 경찰들도 시위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 그렇다면 이것은 인종차별 사건으로 분류될까? 그럴 수도 있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를 사건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사건은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여러가지 겹겹의 복선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를 제압하던 데릭 쇼빈과 경찰들은 무엇이 두려웠기에 그토록 강압적인 행동으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을까?
  •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다양한 시그널을 받아 상대방을 파악한다. 상대방을 파악할 때의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한다. 그렇게 동원된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외모와 행동, 말투와 표정으로 첫인상을 결정한다. 일단 그렇게 접수된 첫인상으로 상대방을 파악했다고 생각되면 쉽게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첫인상을 가지는 것까지는 모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습성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과신이다. 우리가 낯선 이와 만나 대화할 때 간과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 대부분의 경우 내가 만나는 낯선 이는 그동안 내가 보아온 보통의 사람과 같을 거라 생각한다. 상대가 말하는 것에 대해 의심은 할 수 있지만 근거가 없다면 이내 믿어 버린다. 인간 관계에서 거짓보다 신뢰가 더 많은 이익을 주었다는 것은 인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는 근거였다. 이를 ‘진실기본값 이론’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를 이용한 거짓은 치명적이다. 대학 풋볼팀의 코치가 소아성애자로 밝혀지는 데는 첫 제보 이후 16년의 시간이 걸렸고, 국방부 고위 직원이 쿠바의 스파이였음이 밝혀졌을 때에도 동료 직원과 상사들은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스파이는 십수년간 정부 조직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활약했다. 
  • 보석을 신청하는 피의자를 직접 만난 판사가 내린 결정이 기록만 입력된 인공지능이 내린 결정보다 나을까? 그렇지 않다. 결과는 인공 지능의 압승이다. 히틀러를 3번이나 직접 만난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평화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동거인이 살해되었는데도 슬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 증거도 없이 아만다 녹스를 살해범으로 몬 경찰의 사례도 있다. 단지 그가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표정이나 말투가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믿음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리의 착각이다. 하지만 타인은 투명하지 않다. 

영국 총리였던 네빌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3번이나 만나 전쟁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말았다. 

  •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오븐에 머리를 집어 넣고 가스를 틀어 자살했다.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유명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인기있는 자살 장소로서도 악명을 떨쳤다. 실비아 플라스는 지독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그가 쓴 시에서는 죽음에 대한 찬양이 곳곳에 나타나 있으며, 실제로 자살이 성공하기 전까지 몇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가 오븐을 이용해 자살에 성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른 자살을 생각해 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자살했을 때 오븐을 이용한 일산화탄소 중독사는 영국 도처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도시가스가 천연가스로 바뀌면서 오븐에 머리를 넣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하는 사람의 수는 급감했다. 금문교에도 비슷한 조치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자살 방지 구조물이 생긴 것이다. 이후 이곳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줄어든 사람이 다른 곳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성공했을까? 자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살의 방법이 어려워질수록 자살률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특정한 행동은 대개 특정한 장소와 연관되어 있다. 
  • 범죄도 이와 비슷하다. 캔자스시티에서 있었던 강력 범죄 소탕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강력 범죄율을 가진 캔자스시티에서는 다양한 범죄 소탕 실험을 진행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했던 특정 구역에서 차량 불시 검문을 수시로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 불법 무기가 다량 압수되었고, 강력 범죄율이 현격히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 캔자스시티의 성공은 곧바로 미국 경찰서 전역에 전파되었다. 곳곳에서 차량 불시 검문이 이루어졌다. 후미등이 깨졌다는 이유로 차를 세웠고, 깜빡이를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허증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 와중에 고속도로를 순찰하던 백인 경찰이 깜빡이를 켜지 않은 젊은 아프리카계 여성을 차에서 강제로 끌어내려 체포했고, 해당 여성은 며칠 후 자살에 이르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 캔자스시티에서 일어났던 실험이 잘못됐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특정한 장소와 맥락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경찰의 관행이 그 여성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은 것이다. 캔자스시티의 실험 역시 ‘특정한 장소’로 지역을 한정했다. 가장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차량에 대한 불신 검문을 진행해 얻은 성과였다. 하지만 다른 경찰서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장소라는 ‘맥락’을 무시한 상태에서 불신 검문만 남발했다.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결국 한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 조지 플로이드의 비극도 잘못된 장소에서 특정한 행위에 대한 대화가 틀어지면서 벌어진 최악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데릭 쇼빈은 굳이 그를 8~9분여를 누르고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으며, 순순히 따르는 것 같았던 조지 플로이드를 갑자기 제압해야 했던 맥락은 무엇이었을까? 
  • 우리는 낯선 이들을 만나야 한다. 사회는 진실기본값이 지배한다. 다만 타인의 태도와 내면을 일치시켜서는 안된다. 쉽게 첫인상으로 판단해 상대를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표정은 얼마든지 꾸밀 수 있으며, 태도는 거짓이 쉽다. 상대를 만나는 상황과 조건을 잘 이해하고 해당 상황에 맞는 맥락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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