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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번 구조조정의 피날레가 연출됐다. 상무님의 퇴출. 혹시나 했던 망상이 이렇게 실현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세계를 살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문득 지난번 회사 비전이 생각난다. "상상을 현실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오너의 의지가 옅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탕아. 회사가 가진 한계를 비판하며 나가셨던 분이 돌아온다. 과연 그분은 회사의 한계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견고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떤 돌파구를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적당히 힘 쓰고 퇴장할 생각이실까? 

어찌됐든 이제 나와 2000년대 초반을 함께 했던 사람은 이제 없다. 물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분들은 많이 있지만 그분들과 함께 일을 하지 않았기에 어떤 기억도 없고, 오직 함께 지지고 볶으며 일상을 함께 했던 마지막 사람이 이번에 떠나시는 것이다. 일전에 강 팀장이 그만두면서 상무님과 옛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떠나고 나와 자기만 남았다며 허탈해 하는 모습. 하지만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했던가.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내가 다시 여기서 그분들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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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기업에서의 개혁 작업을 이르는 말입니다. 보통 '사업 구조조정' 또는 '기업 구조조정'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성장성이 희박하거나 성과가 좋지 않은 사업을 축소 또는 정리하고, 중복성이 있는 사업은 통폐합하며, 유휴 자산 등을 정리하여 재투자를 위한 자본금을 마련하는 등의 과정을 말합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군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면서 더 어려운 도전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조정은 일반 직원들에게는 정리해고와 동의어입니다. 성과가 좋지 않은 부서에 속한 직원들은 권고 사직을 당하고, 중복성이 있는 사업부의 직원들은 강제로 보직이 변경받거나 퇴사를 종용당하죠. 계약직이나 임시직은 계약 종료나 해고를 통보받습니다.

이번에도 회사는 성과가 좋지않은 일부 부서에 한해 일괄 사직서를 받았습니다. 이 경우 근로자가 사직서를 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로서는 다음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정리해고'의 단계를 정식으로 거쳐야 하겠지요. 물론 회사로서는 그러기 전에 직원들을 내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근로자는 순순히 나가는 게 이익일까요? 온갖 더러운 꼴 보기 싫어서 나가겠다면 막을 수 없겠지만, 자신에게 딸린 가족, 남은 대출금, 한달에 들어가는 생활 자금 등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요즘처럼 새로운 직장 구하기 힘든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요. 

여러 조건을 따져봐서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서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일이지요. 회사로서는 성과가 나지 않고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는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성과가 좋지 않은 책임을 따져볼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성과가 안 좋았는지, 영업과 마케팅 전략은 유효했는지, 최초 사업 기획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등 사업을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평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해당 사업의 결과물이 갖는 다른 사업과의 관계, 시너지 효과 등을 계산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실패라고 했을 때 그에 대한 적절한 평가 없이 해당 개발 팀에게만 무한 책임을 씌우는 것은 좀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개발 부서로서 책임져야할 부분이 지나치게 무겁게 매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큽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저역시도 마찬가지지요. 언젠가는 저도 저렇게 내쳐지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항상 스스로 평가해 봅니다. 무엇이 잘 됐고, 무엇이 문제였으며, 그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는지 등을 복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일 자신에게 권고 사직을 회사가 종용한다면, 사직서를 내기 전에 충분히 복기하고, 자신의 개인 사정을 철저히 살펴서 내도 되는 상황인지를 가늠해 봅시다. 세상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스스로도 만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신이 납득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향해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바로 저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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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잔뜩 움츠린 목덜미로 서늘한 겨울 바람이 스쳤다. 붉은 벽돌 건물에 주눅들어 어깨와 허리가 접혔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먹방에서 아이는 떨었다. 똥오줌까지 스스로 처리해야 하고, 며칠이 지나가는 줄도 모른채 깜깜한 어둠 속에 사람을 가둔다는 상상만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질 것처럼 무섭다. 벽관에 들어갔을 때는 아이가 장난으로 문을 잠궜다. 꼼짝없이 갇혔는데, 잔뜩 쪼라든 몸뚱아리 한가운데 있는 심장은 더욱 커다랗게 요동쳤다. 아이가 풀어주기까지 1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일어난 그 끔찍한 현상에 나도 놀랐다. 사형장 앞 미루나무는 온갖 통곡들을 끌어안느라 잔뜩 말라버렸다. 컴컴한 사형장 안쪽에서는 지난 100년간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시구문 밖으로 난 통로 끝은 깜깜했다. 

한낮에 들어갔지만 해가 건물너머로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나왔다. 시간이 부족해 차마 다 보지 못한 사연들은 이제 언제 다시 찾아와 인사할까. 이번 겨울 들어 찾아온 오랜만의 강추위를 뚫고 오길 잘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감옥에 갇힌 북풍한설보다 차가운 원한과 슬픔과 고통을 내 좁은 속이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빼앗긴 나라와 주권을 되찾겠다고 싸웠다. 항쟁의 역사를 보면, 그리고 해방 후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보면, 이 땅의 백성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끈기와 인내를 갖고 온갖 폭력과 고문을 이겨내며 지금의 나라를 일구었다. 그 처절한 역사를 보면서 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을까?"

일제 점령 이후 투쟁의 역사만 보더라도 이 땅의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굴복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이 땅의 사람들이 그토록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올해는 삼일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나의 질문을 올해의 화두로 끌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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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새벽
첫날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새벽에 잠이 깨서 어지러웠다. 일찍 잠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전날 술을 한잔 한 게 원인이었을까. 혹시 감기 기운? 새벽에 잠이 깨는 날이 간혹 있긴 했으니 그리 대수로울 일은 아니었는데, 여느 날과는 다른 한기가 뒷덜미를 감싼다. 

목요일 저녁
밥을 먹고 있었다. 김치와 라면을 넣고 남은 밥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 최에게서 전화가 왔다. 
"KH 동생 JH가 전화를 했는데,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KH가 어떻게 된거 같은데, 네가 한번 전화해서 들어봐라."
JH 동생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해 보았다. 
"아버지 모시고 울진 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시 전화드릴텐데, 형님이 돌아가셨어요. 사인을 밝히기 위해 대구 국과수로 시신은 옮겨졌고, 아마도 내일 쯤 결과가 나올 거고 장례 일정이 잡힐 것 같습니다."
친구가 세상을 떴다. 망할 놈... 

금요일
부고 문자가 도착했다. 시흥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장례절차를 다루고, 이후 천안 추모 공원에서 화장을 한다고 밝혔다. 다시 몇몇 친구들에게 문자를 전달하고 친구 최와 통화해 저녁에 함께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었다. 밤을 셀 거냐는 아내의 질문에, 외롭게 살던 친구놈인데,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해야겠다고 답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몇 안되는 친구들이 모두 와 있다. 다시 한번 죽은 친구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KH는 자신이 타고 다니던 차를 몰고 울진까지 내려갔나보다. 주로 천안에서 일을 해왔던 친구인데, 직장이 불안해서 일이 없을 때는 그냥 쉬는 바람에 일정한 수입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 친구가 울진에는 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울진 바닷가에 그가 신었던 신발과 안경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국과수 부검에서도 폐에 물이 찼을뿐 별다른 외상은 없다고 한다. 스스로 바다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날 날씨는 최저 기온이 10도가 되지 않는 쌀쌀한 날씨였다. 공기부터 차가웠는데, 그를 컴컴하고 찬 바다속으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생 JH가 형이 타고 다니던 차에서 즉석 복권 2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차에서 먹고 잤는지, 차 안은 무척 지저분했다고 한다. 마땅한 잠자리도 없었던 거다. 
장례식 친구들 대부분 한 달 전쯤에 KH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그냥 안부나 묻는 줄 알았던 그 전화는 실상 그와의 마지막 통화였고, 그가 마지막 가는 길로 가기 위한 정리 작업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그는 희망을 잃고 생을 정리해 갔던 것일까. 영정 사진을 쓸만한 사진도 없어서 색이 바래고 흐려진 운전면허증 사진을 가져다가 영정 사진으로 썼단다. 동생 JH가 친구들에게 함께 찍은 사진이 없는지 미리 물었지만 아무도 그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KH는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 내가 한창 DSLR에 빠져서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하고 피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프다. 


토요일. 
운구가 나가는 날이다. 같이 밤을 센 사람 중 친구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함께 운구를 들어줄 이가 없어 나와 상주인 동생 JH와 장례버스 기사, 그리고 기사가 섭외한 동료 이렇게 넷이서 운구를 날라야 했다. 끝까지 외롭고 외롭다. 이런 녀석에게는 진눈깨비가 딱이다.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하늘에 가득하더니 그나마 장례식장을 나갈 때는 많이 옅어졌다. 45인승 버스에는 아버님, 동생, 동생의 여자친구만 동승했다. 그이의 삶만큼 단촐하다. 그를 화장하기로 한 곳은 천안 추모 공원 화장장. 천안 추모 공원에서 일련의 마지막 절차를 치르다 보니 여기서 장례를 치렀으면 돈을 많이 절감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며 JH가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지. 가난한 살림에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JH에게 형님은 종종 돈을 보내달라는 대책없는 형이었다. 그가 살아가야 할 세상 또한 힘겹다. 아버님이 새벽부터 속이 아프다고 하신다. 활명수와 청심환을 드시게 했지만 그 타는 속을 약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니. 큰 아들을 먼저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화장을 마치고 다시 시흥 장례식장에 오자마자 병원으로 스스로 걸어가셨다. 

난 그렇게 인사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진눈깨비가 서울의 첫눈이었단다. 첫눈 오면 녀석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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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10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황금가지





남을 죽이면 사형이 된다는 것 정도는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잖나.  ···· 중요한 건 그 부분이야. 죄의 내용과 그에 대한 벌은 사전에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상태야. 그런데 사형당하는 놈들이란, 잡히면 사형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저지른 일행들이야. 이해가 되나. 이 뜻이? 그러니까 놈들은 누군가를 죽인 단계에서 스스로를 사형대로 몰아넣는 거야. 잡히고 울고 불고 해 봤자, 이미 늦어.

  • 난고가 준이치에게 하는 말



세상에는 여전히 나쁜 놈들이 많다. 그들은 사람들 틈에서, 혹은 깊숙한 골방에 숨어서 누군가의 빈틈을 찾기 위해 냄새를 맡고 다닌다. 게 중에는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즐거움을 충족하려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연쇄 살인마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단 10개월만에 2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가 주로 살해한 사람은 노인이거나 출장 마사지 여성이었다.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서 출장을 오는 여성 마사지사를 상대로 성폭행을 한 후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고 그 대답에 따라 살해하거나 살려주는 등 괴기스럽기까지 한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 대법원은 2009년 6월 9일 그에게 사형을 확정 판결하였다.


연쇄 살인마와 함께 용서받을 수 없는 극악한 범죄는 어린이에 대한 범죄이다. 2007년 성탄절, 예수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 사건이 일어났다.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이혜진 양과 초등학교 2학년 우예슬 양이 동시에 납치되어 살해된 것이다. 범인은 당시 38세 정성현이었다. 그는 두 어린이를 납치, 성폭행 후 살해하였고, 시신을 훼손하여 땅에 묻거나 강에 버렸다. 대법원은 2009년 2월 26일 사형 판결을 확정했다.



죽어 마땅한 일이다.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버젓이 살아서 맨정신으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그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우리 가족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산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들은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감옥에서 생을 이어가고 있다.



만약 자기 자식이 살해당하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범인이 눈앞에 있었다면 난고는 상대에게 똑같이 갚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적인 보복을 인정하면 사회는 완전한 무질서 상태가 된다. 국가라는 제삼자가 형벌권을 발동시켜 대신 해 줘야 한다. 인간의 마음에 복수심이 있고, 그 복수심이 이 세상을 떠난 타인에 대한 애정이며, 그리고 법이라는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한 사형을 포함한 응보형 사상은 용인되지 않을까.



국가가 형벌권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또 임의적으로 행해지던 형벌에서 명문화된 법률에 의한 형벌을 내리게 된 것 역시 인류 전체 역사를 본다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른바 ‘문명 국가’에서 범죄 피의자에 대해 사적으로 고문하거나 처벌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적 보복이 초래할 상황,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범죄의 유무를 가리고, 범죄자를 격리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범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지만, 사후에 피해를 복구하고, 피의자를 처벌하는 일에서도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하나의 범죄가 발생했을 때, 국가는 세 가지 역할을 이행해야 한다. 첫째 범죄 피의자를 찾아내서 범죄 유무 및 처벌의 수준을 가리는 일이다. 보통 사법의 영역이다. 둘째, 피해자에 대한 피해 복구 및 지원이다. 이는 주로 행정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처벌을 하는 것이다. 역시 행정의 영역이며, 특별히 이를 교도 행정이라고 한다. 이 세가지 국가의 역할이 사적 보복을 막고, 또다른 범죄 가능성을 예방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그것은 언론이다.


보도의 자유랍시고 폼잡고 다니는 사람들이 범인과 마찬가지로 저희를 습격했어요. 물론 의료비는 본인 부담이었죠. 머리를 다친 범인은 국가가 치료비를 대 주고 수술도 받았는데. 흉악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순간, 사회 전체가 가해자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피해자를 괴롭힌들 사죄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요. 결국 유족 입장에서는 모든 잘못을 범인에게 돌릴 수밖에 없어요.
- 범죄자에게 부모가 무참히 살해된 요시에의 말


유영철을 비롯해 최근까지 흉악하고 무자비한 범죄는 여전히 언론의 주요 관심사다. 언론을 통해 전달된 사건은 인터넷을 통해 더 확대 재생산되며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던 자세한 내용까지 낱낱이 드러낼 때도 있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피해자의 공포, 분노, 슬픔을 공감하는 바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오히려 언론들의 무차별적인 언론 보도와 취재활동이 오히려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보니 범죄 보도들이 피해자를 보호한다기 보다 많은 사람들의 복수심만 자극하게 된다.


범죄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여기에 국가의 형벌권과 관련한 두 가지 논쟁이 오랫동안 있었다. 더 무거운 형벌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자는 주장과 반대로 무거운 형벌이 오히려 범죄를 더욱 극악하게 만들고 예방 효과도 나타나지 않으므로 교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입법의 과정에서는 여러 특별법들이 만들어지면서 중형을 요구하고 있지만 재판의 과정에서는 선처의 기회를 주기 위해 가벼운 형벌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응보와 교화가 교묘하게 뒤섞이는 과정이다.


주인공 ‘난고’의 말대로 사형을 저지를만한 놈들이 따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형벌제도 자체는 인간이 만든 불안전한 제도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빈틈이 있고 허술한 구석이 나타나기 마련이며 그 틈으로 벌레들은 빠져나간다. 아무리 사회가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어도 인간이 만든 제도의 불안정함과 인간의 영악함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일련의 관찰에서 난고가 얻은 결론은 사형수가 죄를 참회했다 해도, 이는 사형 판결을 받았기에 일어나는 결과라는 것이었다. 즉 응보형 사상이 지지하는 사형 판결에 의해 목적형 사상의 목표인 회오의 정(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침)을 유인해 냈다는 공교로운 현상 말이다.

그리고 지금 160번의 종교적 지도에 관한 내용을 접하며 난고는 또 하나의 얄궂은 감개를 느꼈다. 종교 지도에서 보이는 태도는 사형 확정수의 심적 안정을 측정하는 기준이며, 이는 형 집행시기의 결정 요인이 된다. 종교 지도자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의 안식을 얻은 자일수록 빨리 처형당하고 마는 것이다.

  • 난고의 회상



인간 사회의 불안정함과 영악한 인간들의 비열한 시도들이 우리의 사법 제도를 흔들고 있다. 사형제는 그 논란의 핵심이다. 소설 “13계단”에서는 사형의 집행 과정에서 평범한 교도관들이 실행해야 하는 사형 집행에 관한 일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행위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난고와 같은 교도관을 통해 전달해 주었다. 사형제라는 것은 살아 있는 한 사람의 목숨을 의도적으로 앗아가는 행위이다. 즉 엄밀히 말해 ‘살인’인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절대로 행할 수 없는 일을 교도관들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행해야 한다. 주인공 ‘난고’ 역시 교도관 시절 2명의 사형 집행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그 후유증으로 가정이 위기로 내몰리고 말았다. 사형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사회 이익이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어야 한다.


영화 <집행자>의 한 장면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돌을 던져서 죽이는 투석형, 사람의 목을 베는 참수형이 존재한다. 얼마전 북한에서는 총살형을 집행했다고 한다. 우리는 투석, 참수에 대한 말을 들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북한의 총살형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주위에서 그런 반응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북한 정권에 대한 반감이 더 커서 그런 것도 이유지만, 사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살아 있는 사형수 유영철과 정성현의 사형을 집행한다고 하면, 그것이 참수이든, 투석이든, 총살이든, 교수형이든간에, 거기에는 어느 누군가가 직접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의 위헌 심판 소송을 기각했다. 필요하다는 판결이다. 하지만 재판관 2명이 소수 의견으로 위헌 의견을 냈다. 재판관 김진우는 “사형제도는 나아가 양심에 반하여 법규정에 의하여 사형을 언도해야 하는 법관은 물론, 또 그 양심에 반하여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사형의 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제도”라고 밝혔다. 결국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을 처벌하기 위해 우리는 선량한 인간(교도관은 성실하게 공부하고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만이 될 수 있다)을 희생시켜야 하는 것일까.  


"너나 나나 종신형이다."

편지를 다 읽고 난 난고는 중얼거렸다.

"가석방은 없다."


다시 악의 평범성을 생각해 본다. 유영철을 인간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은 아주 쉽게 우리 사회의 치부의 한쪽을 가리려는 것에 불과하다. 살인마 역시 그렇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는 분명 죽어 마땅한 짓을 했다. 우리는 사형제를 통해 그를 이 사회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행한 일들과 우리 사회가 안아야 했던 상처들이 쉽게 지워질까.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의(사형제)의 모순을 우리는 언제까지 떠안아야 할까. 과연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얼마나 될까. 소설 “13계단”의 난고가 가져야 했던 평생의 고통을 우리는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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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상상력, 수다, 꿈...

"아빠, 그 얘기 알아? 내 친구 수연이는 저번에 바람 많이 불고 비오던 날 우산 쓰고 점프를 했더니 공중으로 3초간 떠 있었데."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는 도중 아이가 재잘거리며 말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 아이 동생도 하늘을 날았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이의 상상력을 돋우려고 난 꿈속에서 하늘을 날았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몸을 꿈틀거리면서 거미줄처럼 엉켜있던 전깃줄 사이를 지나 제비처럼 낮게 지면을 수평으로 비행했다가 다시 공중으로 붕 떠서 어느 순간 구름 위를 날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어릴 적 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제 그런 꿈은 꾸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 


"아빠 나 나가니까, 바로 전화해야 해, 알았지?"

이제 혼자서도 놀이터나 심부름 정도는 갈 수 있는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무서움이 많다. 외출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은 엘리베이터 귀신이다. 엘리베이터 문을 제외한 3면에는 거울이 붙어 있는데, 혼자 있으면 그 거울에서 귀신이 나와서 붙잡을 거라는 게 아이의 믿음이다. 터무니 없는 믿음이라고 아무리 설명해 주고 온갖 이야기를 새로 꾸며 주어도 여전히 공포심이 남아 있어서, 꼭 엘리베이터 안에서 통화를 하고 있어야 한다. 


"아빠, 사춘기는 언제부터 와?"

"글쎄,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건 왜?"

"응 난 4학년 때부터 오는 거 같아. 자꾸 요즘에 짜증이 많이 나고 그래."

곧 질풍노도의 시기가 오겠지. 짜증 많고 신경질적인 아이가 되면 어쩌나 고민이다. 제발 석판으로 자신을 놀리는 남자 아이를 후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학폭위에 나가 고개숙이는 일은 피하고 싶다. 빨강머리 앤이 자신을 '홍당무'라고 놀리는 길버트를 석판으로 후려쳤을 때는 아마 사춘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긴 못생겼다고 대놓고 말하는 린드 부인 앞에서 얼굴이 벌겋지도록 화를 내던 모습도 딱 사춘기의 앤일 것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빨강머리 앤"을 원작으로 읽어 볼까?



다시 만난 빨강머리 앤 

2013년에 다시 돌아온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


다시 만났다. 얼마만일까? 앤을 만났던 건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리고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아이를 위해서 빨강머리 앤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여 준 일이 있다. 추억 속에서 자라던 앤이, 그 말많고 실수투성이 앤이 성큼 내 앞에 다가왔다. 최근 서점가에서는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백영옥, arte)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어릴적 조실부모한 소녀 앤이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초록 지붕 집 커스버트 남매에게 키워지면서 겪는 과정에서 온갖 실수와 사건들이 얽히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넘어 큰 위로와 위안을 주었다. 내 또래의 중년에게도 1980년 대에 접했던 <세계 명작 극장> 중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는 큰 재미를 주었던 시리즈 중의 하나였다.[각주:1] 

그래서 다시 꺼내 보았다. 집에 있는 빨강머리 앤은 어린이용 문고판으로 있어서 '더클래식'에서 나온 이북판으로 구입했다. 읽는 내내 즐거웠다. 옆에서 아이가 재잘거리는 걸 실감하며 즐겼다. 실제 내 아이도 수다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세계였다. 1900년대 초반 아이의 상상력과 21세기를 달리는 아이의 상상력은 다를 수밖에 없겠고, 어른이 만들어 낸 이야기 속의 앤을 최첨단 도심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와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어린 아이의 감성이야 옛날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캐나다의 작가로 소설의 배경인 프린스 에드워드 섬 출신으로 풍경에 대한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면서 낭만적이었다. 소설 속에서 앤이 매튜 아저씨를 처음 만나서 초록 지붕집으로 가는 여정에서 아름다운 벚꽃길을 지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는 매우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그려졌는데, 앤의 상상력이 환상적으로 묘사되어 인상깊게 남아 있다. 그러나 소설은 영상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글이 주는 여유와 틈이 더 넉넉한 마음을 품게 한다. 애니메이션이 주는 화려함보다는 글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더 좋다. 물론 영상과 글은 매우 다르다. 글은 읽는 사람의 상상력만큼 펼쳐지겠지만, 잘 만들어진 영상은 보통 사람의 상상력 그 이상의 자극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힘은 보다 깊은 생각과 상념으로 이끈다. 이것이 아마도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110년 전의 앤, 그리고 현실의 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빨간 머리 앤’ 한 장면. 주인공 에이미베스 맥널티는 원작 속 앤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올해 2018년은 앤이 세상에 나온지 110년이 되는 해란다. 한 세기를 넘어서 사랑받는 앤의 매력은 아이다운 순수함과 끝없이 재잘거리는 활기, 엉뚱하기 그지 없는 상상력에 있을 것이다. 여전히 지금을 사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보인다. 마릴라 역시 그런 앤의 모습을 사랑하면서도 앤에게 너무 시끄러다고 핀잔을 주었고, 얌전히 굴어야 한다고 야단쳤으며, 착한 아이가 되라고 훈계하고, 아이들끼리 어울려 엉뚱한 짓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잔소리한다. 지금의 어른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110년 전의 앤과 지금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별반 다르지 않고, 110년전의 마릴라나 지금의 어른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 더 풍요로운 세상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야기는 고갈되고 상상력은 말라가며, 대화는 줄어들고 시간에 쫓기며 산다. 


앤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썽도 많고 엉뚱하기도 했던 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믿어주었던 매튜 아저씨, 언제나 잔소리를 하고 혼냈지만, 앤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마릴라, 앤의 마음의 친구 다이내나, 앤의 재능에서 가능성을 보고 적극 지원한 스테이시 선생님, 앤이 슬프고 힘들 때 좋은 멘토가 되어 준 앨런 부인 등 많은 이들이 앤의 성장에 영향을 끼쳤다. 지금을 사는 아이들에게 온 마을이 주는 도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길은 아직 열려 있는 것일까 문득 생각해 본다. 


앤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넷플릭스에서는 지난해 새로운 버전의 '빨강머리 앤' 드라마 시리즈를 내놓았다. 대본을 쓴 작가(월리-베켓)은 앤이 그저 순수하고 낭만적인 수다스러운 아이라는 것에 더 깊이 현실적인 아이로 그려내려고 했다. 

당시 진단이 있었으면 앤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예요. 무엇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혼자 상상에 빠지며 가상의 친구와 얘기하잖아요. 넷플릭스 버전은 귀엽게만 생각했던 앤의 특징을 병리적으로까지 밀어붙인 거죠. 해외 리뷰를 보면 앤의 증상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보기도 합니다. 어려서 학대를 당한 아이가 새로운 가정을 찾았다고 한 번에 치유되기가 어렵다는 걸 보여준 거죠. 이게 흥미로운 지점이라 생각했어요. 앤을 꿈과 희망을 주는 예쁜 친구로만 볼 게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기쁨과 아픔을 같이 보자는 취지거든요.  

원문보기:  경향신문(2017. 6. 9.) 기사 '너무나 현실적인 넷플릭스의 앤... 그래도 너는 나의 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 있어 주위의 지원과 응원, 그리고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일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어찌보면 매튜와 마릴라의 사랑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1. <세계명작극장>과 관련한 좋은 글 추천 http://slownews.kr/604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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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짧아서 꽃이 지는 것일까, 아니면 꽃이 지니 봄이 짧은 것일까? 엊그제 피었던 목련은 지난밤 내린 비에 거진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속절없이 떨어져버리면 나는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편 아담한 빌라촌 앞에는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맘 때면 이 근방에서 가장 먼저 목련이 피어 오르면서 봄 소식을 알려준다. 하얀 목력이 나무을 가득채우면서 피어난 모습은 개봉역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아래에 있는 작은 노점도,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그래! 여기 목련 아래!'라는 간판(대신 현수막)을 달았다. 호떡이나 오뎅을 파는 노점이 목련의 이름을 빌려 달 정도로 이 나무는 거리의 명물이다. 



저 사진을 찍은게 지난주 목요일(3.29.)인데, 일주일도 안되어 목련 잎들이 거진 다 떨어졌다. 봄이 오고 가는 모습은 참 심란하다. 꽃잎이 떨어진 거리의 모습도 그 쓸쓸함을 더한다. 지금 아름다운 꽃을 보며 즐기기보다 지는 꽃잎을 보며 한숨 쉬는 일이 많아졌다. 일상에 지친데다가 꽃이 피고지는 일을 수십년간 보다 보니 감성도 매마르는 것일까? 몸도 마음도 나이를 들어 피는 꽃보다 지는 꽃에 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겠지. 이렇듯 꽃이 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서글펐던 건 매한가지였나 보다. 중국의 옛 시인 두보도 지는 꽃을 보면서 시를 한수 지었다.  


꽃잎은 무엇이 급해 저리 빨리 날리는가, 늙어가니 봄이 더디기를 바라는데
안타깝구나 기쁘게 즐기는 곳, 어디 가도 젊은 때는 이미 아니네

花飛有底急, 老去願春遲
可惜歡娛地, 都非少壯時


아이처럼 "꽃이 피었어요!"라며 즐기면 그만인 걸 왜 굳이 지는 꽃에 마음을 두었을까? 세월을 살아가다 보니 꽃이 피든 지든, 반복되는 자연의 흐름에 익숙해진다. 피는 걸 즐기는 어린아이의 기쁨과는 멀어지고, 지는 걸 느끼는 늙은이의 슬픔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의 제목이 '봄이 온다'였다. 사실 너무나 긴 겨울이었다. 2017~2018 겨울이 그러했지만, 2008~2016년의 겨울도 무척이나 길었다. 홍준표 자한당 대표 말대로 평양에서 노래한다고 봄이 오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노래라도 하지 않고 어떻게 이 땅에 봄이 올까. 짧은 봄이 침묵의 봄이 되길 바라는 건 아마도 그들 뿐일 것이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걱정많은 노인들은 벌써부터 꽃이 지는 걸 걱정하지만, 어린 아이들이야 지금 핀 꽃을 보며 즐길 뿐이다. 4월 위기설까지 나돌면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게 엊그제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봄날의 따스함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아이처럼 즐기자.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말이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 '봄날은 간다'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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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둠즈데이북 1~2 세트 - 전2권 - 10점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아작


유럽 인구의 3분의 1, 아니 절반까지 죽었다. 그것은 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천벌이었다. 최후의 날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어디는 마을 전체가 몰살해 죽은 사람을 묻어줄 사람도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퍼지는 흑사병의 공포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도망치려했지만 그것은 더 병을 퍼뜨리는 일이 됐다. 그렇게 퍼진 흑사병은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박살냈다. 그 병이 진행되는 모습도 끔찍했다. 고열을 동반하면서 환자는 망각을 보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등에 큰 멍울이 생긴다. 그 멍울은 끔찍하게 커지고 어떤 감염자는 눈이 썩어들어가 손으로 긁어내야 했다. 1300년대 의사들은 멍울을 째보기도 했지만 터진 고름에 노출되어 병을 옮기거나 동맥을 건들여 죽이기 일쑤였을 것이다. 항생제라는 것은 커녕 아스피린도 없던 시절이다. 약초라는 걸 달여서 붙이거나 먹이는 게 전부였던 시기였다. 피부 밑의 핏줄이 터지면서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는다고 해서 흑사병으로 불렸다. 사람들은 이 공포스러고 괴기스러운 죽음에 좌절했다. 이런 떼죽음이 하늘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고, 여자, 유대인들이 하늘의 분노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산 채로 태워죽이거나 목을 매달았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을 암흑기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흑사병은 그저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만 알았다.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Doomsday book)"은 흑사병이 발병하던 초기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처참했다. 글이 줄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살려내는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바이러스처럼 뇌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꽃이 핀다. 세상의 끝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진실이 나타난다. 키브린은 성녀였고, 로슈 신부는 성자였다. 흑사병은 신의 천벌도 분노도 아닌 그냥 질병이었다. 무시무시한 병 앞에서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서로를 의심과 비난으로 쳐다보며 신의 분노를 잠재울 희생양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키브린은 이 병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퍼지는지 알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을 죽음의 사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현대 지식을 총동원하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역사를 바꿀 수 없었다. 시간 모순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미래에서 왔다고 할지라도 바꿀 수 없다는 것. 키브린은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것은 중세시대를 뒤흔들었던 흑사병의 사망률은 2분의 1 혹은 3분의 1이었다는 것에 기댔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 그들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이미 과거는 정해져 있지만, 키브린은 그 결론과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사람들은 쉽게 진행되는 사건의 결론을 내고, 그에 따라 해야할 행동을 계산적으로 따지면서 이익을 쫓아 행동한다. 우리들에게 키브린은 묻고 있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결말에 기대지 말고 나아가라고. 세상에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으며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변화시키며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대며, 더 큰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 앞머리에 있는 존 클린 수사의 기록이 그것을 말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 모든 일이 시간에 파묻히지 않도록, 그래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이 모든 일이 우리 후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이 땅 사악한 존재의 손아귀에 놓인 이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앙을 보아온 나는, 이제 죽은 자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기다리며 그동안 내가 목도한 모든 일을 여기 적는다. 

기록은 글쓴이와 함께 소멸되지 않아야 하고 노동은 그것을 행한 사람과 함께 무위로 돌아가지 않아야 하므로, 내 오늘 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양피지를 남기니,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아담의 후예 중 그 누구라도 페스트로부터 도망쳐 내가 시작한 일을 계속 이어갈 수만 있다면... 

- 존 클린 수사, 1349년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인간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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