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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짧아서 꽃이 지는 것일까, 아니면 꽃이 지니 봄이 짧은 것일까? 엊그제 피었던 목련은 지난밤 내린 비에 거진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속절없이 떨어져버리면 나는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편 아담한 빌라촌 앞에는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맘 때면 이 근방에서 가장 먼저 목련이 피어 오르면서 봄 소식을 알려준다. 하얀 목력이 나무을 가득채우면서 피어난 모습은 개봉역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아래에 있는 작은 노점도,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그래! 여기 목련 아래!'라는 간판(대신 현수막)을 달았다. 호떡이나 오뎅을 파는 노점이 목련의 이름을 빌려 달 정도로 이 나무는 거리의 명물이다. 



저 사진을 찍은게 지난주 목요일(3.29.)인데, 일주일도 안되어 목련 잎들이 거진 다 떨어졌다. 봄이 오고 가는 모습은 참 심란하다. 꽃잎이 떨어진 거리의 모습도 그 쓸쓸함을 더한다. 지금 아름다운 꽃을 보며 즐기기보다 지는 꽃잎을 보며 한숨 쉬는 일이 많아졌다. 일상에 지친데다가 꽃이 피고지는 일을 수십년간 보다 보니 감성도 매마르는 것일까? 몸도 마음도 나이를 들어 피는 꽃보다 지는 꽃에 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겠지. 이렇듯 꽃이 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서글펐던 건 매한가지였나 보다. 중국의 옛 시인 두보도 지는 꽃을 보면서 시를 한수 지었다.  


꽃잎은 무엇이 급해 저리 빨리 날리는가, 늙어가니 봄이 더디기를 바라는데
안타깝구나 기쁘게 즐기는 곳, 어디 가도 젊은 때는 이미 아니네

花飛有底急, 老去願春遲
可惜歡娛地, 都非少壯時


아이처럼 "꽃이 피었어요!"라며 즐기면 그만인 걸 왜 굳이 지는 꽃에 마음을 두었을까? 세월을 살아가다 보니 꽃이 피든 지든, 반복되는 자연의 흐름에 익숙해진다. 피는 걸 즐기는 어린아이의 기쁨과는 멀어지고, 지는 걸 느끼는 늙은이의 슬픔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의 제목이 '봄이 온다'였다. 사실 너무나 긴 겨울이었다. 2017~2018 겨울이 그러했지만, 2008~2016년의 겨울도 무척이나 길었다. 홍준표 자한당 대표 말대로 평양에서 노래한다고 봄이 오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노래라도 하지 않고 어떻게 이 땅에 봄이 올까. 짧은 봄이 침묵의 봄이 되길 바라는 건 아마도 그들 뿐일 것이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걱정많은 노인들은 벌써부터 꽃이 지는 걸 걱정하지만, 어린 아이들이야 지금 핀 꽃을 보며 즐길 뿐이다. 4월 위기설까지 나돌면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게 엊그제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봄날의 따스함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아이처럼 즐기자.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말이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 '봄날은 간다'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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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둠즈데이북 1~2 세트 - 전2권 - 10점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아작


유럽 인구의 3분의 1, 아니 절반까지 죽었다. 그것은 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천벌이었다. 최후의 날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어디는 마을 전체가 몰살해 죽은 사람을 묻어줄 사람도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퍼지는 흑사병의 공포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도망치려했지만 그것은 더 병을 퍼뜨리는 일이 됐다. 그렇게 퍼진 흑사병은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박살냈다. 그 병이 진행되는 모습도 끔찍했다. 고열을 동반하면서 환자는 망각을 보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등에 큰 멍울이 생긴다. 그 멍울은 끔찍하게 커지고 어떤 감염자는 눈이 썩어들어가 손으로 긁어내야 했다. 1300년대 의사들은 멍울을 째보기도 했지만 터진 고름에 노출되어 병을 옮기거나 동맥을 건들여 죽이기 일쑤였을 것이다. 항생제라는 것은 커녕 아스피린도 없던 시절이다. 약초라는 걸 달여서 붙이거나 먹이는 게 전부였던 시기였다. 피부 밑의 핏줄이 터지면서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는다고 해서 흑사병으로 불렸다. 사람들은 이 공포스러고 괴기스러운 죽음에 좌절했다. 이런 떼죽음이 하늘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고, 여자, 유대인들이 하늘의 분노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산 채로 태워죽이거나 목을 매달았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을 암흑기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흑사병은 그저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만 알았다.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Doomsday book)"은 흑사병이 발병하던 초기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처참했다. 글이 줄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살려내는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바이러스처럼 뇌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꽃이 핀다. 세상의 끝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진실이 나타난다. 키브린은 성녀였고, 로슈 신부는 성자였다. 흑사병은 신의 천벌도 분노도 아닌 그냥 질병이었다. 무시무시한 병 앞에서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서로를 의심과 비난으로 쳐다보며 신의 분노를 잠재울 희생양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키브린은 이 병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퍼지는지 알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을 죽음의 사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현대 지식을 총동원하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역사를 바꿀 수 없었다. 시간 모순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미래에서 왔다고 할지라도 바꿀 수 없다는 것. 키브린은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것은 중세시대를 뒤흔들었던 흑사병의 사망률은 2분의 1 혹은 3분의 1이었다는 것에 기댔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 그들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이미 과거는 정해져 있지만, 키브린은 그 결론과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사람들은 쉽게 진행되는 사건의 결론을 내고, 그에 따라 해야할 행동을 계산적으로 따지면서 이익을 쫓아 행동한다. 우리들에게 키브린은 묻고 있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결말에 기대지 말고 나아가라고. 세상에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으며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변화시키며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대며, 더 큰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 앞머리에 있는 존 클린 수사의 기록이 그것을 말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 모든 일이 시간에 파묻히지 않도록, 그래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이 모든 일이 우리 후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이 땅 사악한 존재의 손아귀에 놓인 이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앙을 보아온 나는, 이제 죽은 자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기다리며 그동안 내가 목도한 모든 일을 여기 적는다. 

기록은 글쓴이와 함께 소멸되지 않아야 하고 노동은 그것을 행한 사람과 함께 무위로 돌아가지 않아야 하므로, 내 오늘 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양피지를 남기니,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아담의 후예 중 그 누구라도 페스트로부터 도망쳐 내가 시작한 일을 계속 이어갈 수만 있다면... 

- 존 클린 수사, 1349년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인간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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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서 청춘의 문제도 바뀐다. 난 지금의 청춘을 모른다.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다고 나서는 게 더 볼품없는 일이다. 문제를 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을 해야 할 텐데, 그 실천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덧 중년을 넘어가다 보니 조직 내에서의 위치 역시 청춘을 이용해 삶을 연명하는 건 아닌지 하는 자괴감도 없지 않다. 거대한 시스템의 챗바퀴에 어느 누구는 깔리거나 힘겹게 돌리고 있다면, 난 그 챗바퀴에 올라타거나 손쉽게 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편안한 삶일까? 그럴리가 있나. 나 또한 거대한 시스템의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한낱 나사일 뿐인데 말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선택적 가난이라고 위안하면서 지금에 만족하고 있는 삶이다. 나이가 있으니 상처들은 딱딱하게 굳어 갑옷이 되었고, 얼굴에 핀 주름들은 속마음을 감추는 가면이 되어 준다. 아이의 재롱과 가족의 편안함이 작은 위로가 된다. 그렇다.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 청춘은 그렇게 게으른 중년이 되었다. 살면서 쥐꼬리만큼 쌓아온 것들에 의지하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힘은 점점 사라져가는 나이가 되고 있다. 난 다른 삶을 꿈꾸지 못한지 오래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초식 동물들은 상한 과일이나 버섯으로 중독되었을 때 그것을 치유할 풀을 찾아 씹어 먹는다. 맹수들도 영역 다툼의 과정에서 다친 상처들을 자신의 혀로 핥아가며 다음 싸움을 기다린다. 모름지기 살아 있는 생물들은 유전자 속에 깊이 간직된, 자신의 어미와 아비로부터 이어받았을 그 고갱이의 흔적으로 스스로를 치유하고 상처를 이겨낸다. 


사람도 다친다. 눈에 보이는 상처나 분명하게 나타나는 통증은 병원에 가서 치료한다. 그러면 대개는 낫는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얽히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잘 드러나지 않는 통증들이 나타났다. 이 상처와 통증들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공허와 분노, 상실감과 허무함만이 남아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허기와, 마셔도 가셔지지 않는 갈증, 자도 자도 끝이 없는 불면의 고통을 헤매이게 된다. 


아직 익숙지 않은 이 시대의 상처와 치유들은 어떻게 극복될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이 마음에 난 상처와 통증들의 치유 과정을 담아 내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도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통증을 가시게 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라고 속삭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담아낸 치유의 기술들을 살펴보자. 


음식.

영화 속에서 주인공 혜원은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낸다.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굶주려 있던 배를 채우기 위해 밥을 짓고 국을 끓여낸다. 국에 밥을 말아 훌훌 들이키는 단촐한 식사였다. 하지만 그가 도시에서 먹었던 컵밥과 편의점 간편 음식들과 비교할 수 없다. 도망치듯 내려온 고향집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음식을 지어 주린 배를 채운 것이다. 도시에서 채울 수 없었던 몸과 마음의 허기를 시골 고향집에서 갓지은 밥과 국에서 해소한 것이다.  


농사. 

여름날 밭에서 일하던 혜원의 목덜미를 흐르던 땀방울들은 영롱하게 빛났다. 혜원은 도시에서 편의점 알바를 비롯해 끊임없이 일하며 공부도 하고 생계도 유지해야 했다. 노동의 가치를 따지는 건 한가로운 몽상가들에게나 어울릴 말이었다. 그런데 혜원에게 농촌에서의 노동은 달랐다. 돈을 벌기 위해 했던 도시의 노동과 먹거리를 얻기 위해 지은 농사는 자본주의적 가치로 따지자면 비교가 안되겠지만, 노동의 가치에서 농사는 달랐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텃밭의 농작물들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잡초를 뽑았고, 밤새 휘몰아친 폭풍으로 쓰러진 벼들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플 때까지 묶어 세웠다. 이 농사일은 온전히 그에게 돌아와 먹을거리가 되어 주고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잊기 위해 시작한 농사일이 잊을 수 없는 충만함으로 돌아왔을 때 혜원은 결심을 굳히게 된다. 


엄마.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대학에 합격하자 먼저 고향집을 떠났다.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혜원이 집에 돌아오자 감자 요리 레시피를 혜원에게 보낸다. 여기에 자신의 신상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맛있게 요리하는 법, 오직 그것만을 알려주고 있다. 도시에 있을 때는 소식 한 번 주고받지 않았던 엄마가, 혜원이 시골집에 내려온 것을 어떻게 알고 혜원에게 편지를 보냈을까. 그리고 요리법이라니... 엄마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넘어지기 마련이다. 넘어진 아이는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며 집을 나간 엄마는 도시 생활에 지친 딸이 집으로 돌아오자 감자 레시피로 맞아주었다. 엄마는 넘어진 딸이 고향집에서 일어서기를 기다린 것이다. 딸 혜원이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증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찾기를 기다렸다. 그 방법은 이미 엄마가 오랜 세월 동안 전수한 것, 요리. 어린 혜원에게 엄마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기댈 존재였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엄마는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되었다. 엄마가 먼저 떠났고, 혜원도 고향집을 떠났다. 하지만 다시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 혜원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영화는 스스로를 치유하며 진정한 홀로서기로 나아가는 젊은이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전히 쫄아들어 있는 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누구에게나 부모에게서 알게 모르게 배운 치유의 기술이 있다. 나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찾아보고 싶다. 이 영화가 그렇게 나를 자극했다. 유난히 추웠던 이 겨울의 끝, 기다리던 봄의 초입에서 만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내 안의 상처와 통증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정말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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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에 퍼지는 음울한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했다. 요즘에는 미세먼지가 환경의 주범이었지만, 내 어릴적에는 안양천과 그 지류들에서 나는 악취를 삶의 당연한 일부로 안고 살았다. 알 수 없는 거품과 기름띠가 범벅이던 그 하천. 한여름 폭우로 안양천과 그 지류인 목감천이 범람하면 물난리를 피해 가재도구를 높은 지대로 옮겨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많은 이들이 한강과 안양천, 그 지류들을 찾는다. 안양천 상류 지역에서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도 나온단다. 속절없는 개발의 흐름 속에서 버려졌던 강물이 조금씩 제모습을 찾아간다. 이번에 걸었던 서울둘레길 6코스는 안양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2017년 6월 25일.

서울 둘레길 6-2코스의 여정: 구일역-오금교-도림천 합수부(신정교)-오목교-목동교-양화교 폭포-안양천 합수부(한강)-황금내근린공원(가양동)-가양역




 안양천 둑방길은 대부분 흙길로 이루어져 있다.


 싱그러운 초록빛 사이로 잘 가꾸어 놓은 화단도 잘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길이 나무그늘 아래로 곧게 뻗어 있다.



 성미 급한 단풍들이 벌써 얼굴을 내민다.



 오랜 가뭄으로 송충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무 하나는 절반 가까이 나뭇잎이 뜯어먹혔다.


날이 무척 가물었다. 방송에서도 가뭄으로 인해 해충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전했다.(가뭄에 또 해충 기승…대형 애벌레 득실 / YTN 사이언스) 안양천 주변에서도 몇몇 나무들은 뉴스 기사에 나온 밤나무처럼 잎사귀를 죄다 갉아먹은 애벌레들로 가득차 있었다. 위의 사진은 그나마 양호한 나뭇잎을 건진 것인데, 대개 나뭇잎 하나에 2~3마리의 애벌레들이 열심히 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날 일기예보에서는 다행히 비소식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것에 불편함보다는 기쁨이 더 컸다. 비좀 맞으며 걷자는 일념으로 걸으면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주문까지 만들었다. 


"비야 비야 내려라, 많이 많이 내려라."


우리의 걷기 여행은 이렇게 기우제가 되었다. 손수건을 나풀거리면서 하늘을 향해 흔들었고, 아이는 우리가 주문 외우기를 멈추면 다시 주문 외우기를 재촉했다. 물론 누구보다 열심히 주문을 외운 것은 아이였다. 아이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나 온다고 예보되던 비였기에 조금 뜻밖이었고, 우리는 그것이 아이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이라며 아이에게 축하해 주었다. 


준비한 우비를 갖추어 입고 길을 걸었지만 비는 생각보다 가늘었고 금새 그치고 말았다. 실망한 아이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가늘어진 비를 우비에 있던 모자로 받아서 모으기도 하면서 비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가 걷는 동안에는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는 우리가 둘레길을 벗어나고 식당에 들어섰을 때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익숙하고 친절한 서울둘레길 안내판


안양천 둘레길 코스는 둑방길로만 연결되긴 어렵다. 간간히 고수부지 길로 내려가는데 그또한 지루함을 덜어주니 반갑다.


 다양한 체육 시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테이크아웃 햄버거와 미리 준비한 과일로 점심을 채웠다.


안양천의 옛 이름은 '대천(大川)'이라고 한다. 안양천의 물이 삼성산에 위치한 안양사(安養寺)에서 발원해 붙여진 이름이다.[각주:1]  1910년 경의 안양천의 모습은 상당히 굴곡이 있는 하천이었다. 그러다가 도시 개발에 따른 하천 정비 사업으로 지금의 비교적 곧바로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굴곡이 있는 사행하천에 비해 흐름이 단순해진 하천은 그만큼 홍수에 취약하다. 1977년 7월 8일 발생한 폭우로 안양천 대홍수가 발생했고, 인명 피해만 총 677명으로 이중 사망 208명 실종 49명이 집계됐다. 이후 안양천에 대한 본격적인 정비가 시작되었으나 맑고 깨끗한 안양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범람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었다. 그러면서 하천의 둑방을 시멘트로 덮고 천변의 모래톱이나 갈대 숲을 없애버리면서 강은 점점 더 죽어가고 말았다. 

게다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도시 개발과 공장 지대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생활 하수와 공장 폐수가 무분별하게 쏟아져들어왔고 안양천은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최악의 하천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안양천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가 136mg/L이 나왔는데, 이정도에서는 어떤 생물도 살 수가 없는 수치였다. 


자연형 하천 조성 사업이 시작된 것이 2001년이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은 꽤 효과를 보고 있다. 징검다리 설치, V자 여울, 습지 조성 등 자연과 같은 흐름과 물살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다시 물고기와 철새들이 노니는 하천으로 만들고 있고,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아이와 아이 엄마


 오후 늦게나 온다던 비가 살짝 왔다.


이내 그쳐버리고 다시 후텁지근한 날씨로...




비가 와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범람하는 강 주변은 그로 인해 옥토를 형성했고, 사람들은 그 주변에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땅을 가꾸어 풍성한 곡식을 거두며 살았다. 세계 문명의 시작이 모두 강 주변에서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강이 범람하지 않았다면 이루어 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강을 관리한다. 치수라는 이름으로 더이상 강은 범람하지 않는다. 도시는 더이상 기름진 땅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강은 가정의 생활 하수를 받아야 하며 공장의 폐수를 흘려 보내는 장치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강은 더러움과 치욕을 견뎌야 하면서도 범람할 수도 없이 길들여지면서 병들었다. 


안양천의 개발 역사를 보면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물이 되어 버린 일도 있었다. 강을 가두고 흐름을 막아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쓰레기를 흘려보내던 시절이다. 강이 정화할 수 있는 양 이상의 유기물들이 강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인공적으로 변한 강 주변 시설도 강의 정화 능력을 현격히 떨어뜨렸다. 인간에 의해 범람을 허락받지 못한 자연 하천은 그렇게 썩어갔던 것이다. 












안양천은 이제 사람이 거닐 수 있고, 자연이 되살아나는 하천이 되었다. 안양천의 자전거도로는 이제 자전거도로의 경부선으로 불릴만큼 통행량도 많아졌다. 자전거도로와 분리되어 조성된 서울둘레길 안양천 코스는 초급코스 중의 초급코스로 걸을 수만 있다면, 아니 휠체어를 타야 하는 이들도 풍광을 즐기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안양천을 달리거나 걷는 것은 우리 시대의 작은 행복이 되었다. 




  1. 출처: 안양천의 역사와 문화(이종만, 한국하천협회지(200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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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일) | 총 10.3km | 매헌역-양재시민의 숲-대한항공 폭파 사건 희생자 위령탑(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위령탑)-여의천-내곡동 주민센터 근처-구룡산 주변길-대모산 주변길-수서역


일요일 아침을 이렇게 서둘렀던게 얼마만일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준비했다. 짐은 아내가 미리 전날 준비해 놓는다. 꼼꼼하게 챙겨놓은 짐들을 보면 이 도보길 여행에 대한 그이의 바람이 보인다. 길과 숲과 바람에 목말랐던 사람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보인다. 길을 걸으며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갖는 열망이다. 왜 사람은 이 스피드한 세상, 편리한 세상에서 굳이 피곤하고 힘든 일을 자처하며 쾌감을 느낄까? 이미 여러 과학자들이 밝힌 바 있다. '러너스 하이'. 또는 '운동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미국 심리학자 멘델이 논문에서 처음 밝힌 용어는 '엑서사이즈 하이'였다. 그는 이것을 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신체적 스트레스로 얻게 되는 행복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몸은 일정 시간동안 운동을 계속하면 뇌에서는 '베타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물질이 마약성 물질을 투여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운동의 행복감을 알고 기꺼이 힘든 운동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나 나나 몇 시간 동안 걷는 것에는 익숙하다. 젊은 시절 일년에 몇 번씩 지리산 같은 산을 오르고 내렸다. 걷는다는 것에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벅찬 기대감이 몰려오는 이유다. 이날 가야할 길도 10km가 넘었다. 두 개의 산길을 걸었다. 산이 작다고는 해도 산은 산이다. 오를 때에 근육에 오는 뻐근함이 있고, 내려올 때는 관절에 오는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지만 나무와 풀이 주는 숲의 향이 있고, 사박사박 밟아가는 흙길의 정겨움도 있다. 새들의 지저귐이 연한 바람을 타고 귓속을 간지럽힌다. 


아이가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숲은 숲대로 아이를 보듬어 안고 가고, 아이도 아이대로 이겨낼 거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부모의 보호는 보잘것 없다. 그것을 아이도 알아갈 거다. 더 큰 세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 



 양재 시민의 숲에 다시 들어가서 


 양재 시민의 숲에 다시 들어가서 


 대한 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이날의 첫 시작점인 양재시민의 숲 공원에는 역사의 슬픔들을 위로하는 공간이 여럿 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대한 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을 만날 수 있다. 이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공중 폭파된 사건이다. 이 테러를 실행한 것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이며 이 둘이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러 조사 과정에 대해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선거 하루 전 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서울에 압송되어 온 것과, 하필 비행기 탑승 인원도 중동에 진출했던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안기부의 기획이 아닐까라는 의심이다. 또 김현희에 대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전격 사면도 의혹을 더욱 키웠다. 그러나 2006~20007년 진실규명위원회의 조사[각주:1]에서도 밝혀진 사실은 북한의 테러였다는 것이며, 북한측 인사가 간접적으로 자신의 행위였음을 시인하는 발언[각주:2](기사보기)도 있었다. 물론 이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정부 관계자들의 모의가 있었다는 것도 진실위가 밝힌 사실이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인도양에 잠들어 버린 115명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이 이곳에 있다. 대한항공 폭파 사건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이다. 진실만이 오직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건을 다른 의도로 이용하려 하면서 진실이 가려질 때, 아픔은 커지고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양재시민의 숲에는 또 다른 위령탑이 하나 더 있다. 둘레길에서 벗어나 있어서 둘레길 여행자라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어렵지만 여기에는 '삼풍 참사 위령탑'이 있다.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29일 붕괴하면서 502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 실종자 6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의 참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은지 10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 무너져 버리게 한 원인은 부실 시공과 설계 변경, 그리고 이것을 뇌물을 받고 눈감아준 공무원과 관리 기관의 부실 감독, 결정적으로 긴급 안전 진단을 한 설계 감리 회사가 '붕괴 우려'를 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에 눈이 멀어 영업을 강행한 사업주 등 총체적인 부실의 결과였다.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은 비용을 이유로 생략되거나 무시되었다(관련 자료: 위키백과 바로 가기). 총체적 부실과 돈을 향한 욕망으로 점철된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결국 2년 뒤 대한민국의 붕괴로 귀결됐다. IMF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급속 성장 속에서 용인되었던 자본주의의 욕심을 눈감고 인정했던 처참한 결과였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폭주하는 기관차 위에 승선해 있다. 삼풍백화점의 저주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되돌아왔다. 천박한 자본주의를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들여 놓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생명을 담보로 한 탐욕의 괴물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 어린 목숨들을 물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이런 아픈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도망치듯 양재시민의 숲을 통과했다. 그곳을 나오면 여의천으로 내려선다. 여의천은 양재천으로 흐르는 지류이다. 별다른 휴식 공간도 없으며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길도 좁고 포장 상태는 거칠다. 중간에 다리 밑 터널은 비오는 날이나 흐린 날이면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듯하다. 대개의 지류가 그러하듯이 찾아오는 이는 우리같은 둘레길 여행자 몇몇이나 마실나온 동네 주민 정도일 것이다. 간간히 두루미도 보이지만 먹을 것이나 있겠나 싶을 정도로 물은 말라 있었다. 


여의천을 잠깐 걷고 내곡동 염곡안 길로 접어든다. 전원마을 같은 공간으로 주변에 밭도 있다. 하지만 둘레길 옆의 염곡 마을은 높다란 담장에 고급스러운 집들이 즐비하다. 아파트숲에서만 살다가 잘 가꾸어진 단독주택들 사이로 걷다 보니 눈이 바쁘다. 마을 옆을 지나면 구룡산 산길로 접어 든다. 

 


 양재 시민의 숲을 나와서




 여의천을 걷는 중 




 내곡동 염곡 마을 으리으리한 저택 옆 



구룡산은 높이 283m 높이의 야트막한 산으로 관악산, 우면산, 청계산 등과 산자락이 이어진다. 구룡산이라는 지명은, 옛날 열마리의 용이 승천하는데 그 모습을 본 임신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자 그 소리에 놀라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남은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흔적이 산이 되어 구룡산이라고 이름붙여졌다고 한다(출처:향토문화전자대전). 그런데 왜 이 전설에서는 하필 임신한 여성이라는 특정한 사람이 나올까? 아마도 다산에 대한 욕망과 함께 모성은 승천하는 용도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옛사람들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구룡산의 주봉 국수봉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서울 일대 및 한강 하류와 상류 지역까지 전망하기 좋은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 야경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구룡산 산자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와 권력이 집중된 서울 강남구의 산자락을 걷는 기분 또한 묘하다. 구룡산 터널을 지나 언덕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일요일 등산객들이 분주히 오갔다. 우리 아이 또래는 볼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있어 좋다.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자락에서 먹은 점심-김밥



구룡 터널 지점을 지나면 곧 대모산이다. 산 산자락을 걷다보면 행정 지역으로는 서초구에서 강남구로 넘어간다. 대모산은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고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원경 왕후와 조선 태종을 모신 헌릉이 내곡동에 자리하면서 어명에 의해서 ‘대모산(大母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는 것과 구룡산 봉우리와 함께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고 하여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출처: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태종의 헌릉 신도비에는 대모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남겨져 있다. 

장백산[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와 남쪽으로 수 천리를 넘어 상주 속리산에 이르고, 여기서 꺾여 북서쪽으로 또 수 백리를 달려 과천 청계산에 이르며, 또 꺾여 북동으로 달려 한강을 등지고 멈추었다.

백두산의 산줄기가 여기서 멈추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산을 신성시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산 그늘을 따라 걷다 보면 산의 향기가 진하게 전해져 온다. 구룡산에 비해 가꾸어진 흔적이 많았다. 유아 숲체험장이 있는가 하면 근처 주민들을 위한 체육 공원도 많다. 청소년 자연학습장도 마련되어 있다. 


대모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돌탑들이 있다. 돌탑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는데, 서울 강남 일대를 비롯해 최근 들어선 초고층 빌딩 롯데 타워도 가까이 보인다. 이 돌탑들은 임형우라는 사람이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15년에 걸쳐 쌓아올렸다고 한다. 그도 처음에는 그냥 이곳이 좋아 돌 몇개를 쌓아놓는 것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돌들을 하나씩 둘씩 쌓아 올리니 누구도 따라하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그런 일상에서 돌 하나가 가져온 힘이다.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일만시간의 법칙이다. 


'일만시간의 법칙'은 맬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뉴요커" 기자)이 쓴 "아웃라이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루 3시간씩 10년이면 1만 시간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각주:3]  한 사람이 15년 동안 돌을 쌓으면서 염원했던 내용은 소박했다. 하지만 소박한 염원의 결과는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걷고 있는 우리의 바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오늘도 아이는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걸었다. 그리고 많이 지쳤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걷다보면 시간은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할 것이다. 때로는 그 목적지나 여정이 우리의 바람에 못 미칠 수도 있고, 바람과 햇볕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야 한다. 인생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아니다. 산비탈과 계곡, 구릉과 능선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이 둘레길을 걸으면서 아이도, 그리고 나도 참고 인내하며 인생의 멋과 맛을 알아가길 기대한다.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유아 숲 체험장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돌탑 전망대


 대모산 돌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대모산에서 수서역으로 




  1. 안기부 조작설 등은 사실이 아니며 북한대남공작조직의 주도에 의해 김현희와 김승일이 자행한 테러로 단정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다만 대선 전에 김현희를 국내로 압송하기 위해 안기부 등 10개 기관이 합동으로 실무대책본부를 운영하는 등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오히려 각종 의혹을 유발하게 된 측면이 있다. — 국가정보원 (2007). 《(과거와 대화)미래의 성찰, 1 : 국정원 「진실위」보고서·총론》. [본문으로]
  2. 정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3∼4년 전 중국에서 6자회담 때 사석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리근 미국국장 등 북한 당국자들과 얘기를 나눴다"며 "당시 리근 국장이 `우리는 KAL기 사건 이후 한번도 테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본문으로]
  3. Brooke N. Mcnamara, David Z. Hambrick, Frederick L. Oswald가 주도해 미국 미시건대, 라이스대, 사우스일리노이대, 영국 브루넬대, 호주 에디스코완대 3개국 5개 대학에서 음악과 체스 실력에 관한 88개의 논문을 메타 분석을 해 본 결과, 에릭슨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논문 <음악, 게임, 스포츠, 교육, 경력에서의 의도적 연습과 기량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in Music, Games, Sports, Education, and Professions>에서 그들이 음악, 스포츠, 체스 등에서 1만 시간의 법칙 – 즉 연습량과 퍼포먼스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분야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지만 설명이 되는 부분이 고작 30%에도 미치지 못했고, 심지어 학업의 경우 무려 4%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출처: http://ppss.kr/archives/247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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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리고 예보에서는 저녁부터 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틀전에 7km가 넘는 둘레길(4-1코스)을 다녀온 뒤라 그냥 쉬려 했지만 아내는 다시 걷고 싶어 했다. 다리가 아픈데도 걷고 싶단다. 결혼 전까지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던 처자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면서 묶여 지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요 몇주 둘레길 걷기를 시작하면서 여행에 대한 바람이 폭발한 것이다. 물론 아내의 바람만 있던 것은 아니다. 나도 새롭게 가정을 꾸리며 안팎으로 좌충우돌 살다보니 어디를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별로 없다. 1년에 한번도 여행을 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작은 보람과 기쁨, 그리고 기분좋은 노곤함이 묻어나는 이런 여행을 세 식구가 누릴 수 있다는 건 괜찮은 일이다. 


구름 잔뜩인 6월 6일 현충일. 안양천 길은 그늘이 별로 없을 거라 예상했었다. 내가 자전거로 다녔던 길과 비슷할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양천 구간은 잔뜩 흐리거나 비올 때 걷기로 했었다. 이날이 그랬다. 잔뜩 흐린데다가 오후 늦게 비 예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안양천길은 그늘 구간이 생각보다 아주 길었다. 해가 쨍쨍한 날에도 충분히 걸을만 했다. 


이날의 여정은 석수역에서 시작했다. 석수역에서 구일역까지의 거리는 7.8km. 이틀전 걸었던 거리와 비슷하다. 또 천변가 길을 걸으니 오르락내리락하는 산의 둘레길과는 천양지차. 둘레길 안내 사이트에서도 '초급' 코스로 나와 있다. 설렁설렁, 놀며쉬며, 이짓저짓 딴짓하며 걷기 좋을 코스라고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였다. 


석수역을 나와서 주택가를 지나 천변 도로가를 걷다 보면 준공장지대를 지난다. 좀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조금만 가면 안양천변으로 들어가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움이 기다렸다. 바로 보행자 전용도로. 사실 자전거로 안양천을 오갔던 적이 많아서 자전거길 옆의 보행자도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석수역에서 구일역까지 연결된 구간에서 자전거와 보행자가 나란히 걷는 구간은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보행자 전용도로로 걷는다. 간혹 가다가 자전거가 오가긴 하지만 실수이거나 일부 생각없는 사람들일뿐 자전거를 가지고 가더라도 끌고 다니라는 안내판이 있을 정도다. 보행자 전용 도로라고 좁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폭이 족히 3m는 남짓한 길이 대부분이다. 큰 도로를 활개치며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걷는 즐거움도 배가 된다.  


 석수역에서 1번 출구는 관악산으로 향하는 5코스, 2번 출구는 안양천으로 가는 6코스 구간이다. 


 석수역을 나와 만난 둘레길 리본. 누군가가 리본에다가 화투 한 장을 꼽아 놓았다. 

목단(모란)으로 화투의 6번 그림이다. 둘레길의 6번 코스를 알리기 위한 재미있는 장치일텐데 

아마도 모르고 가는 사람이 많을 듯


 주택가를 나오면 도로가를 걷는다. 오가는 차량에 주의한다. 

준공장 지대라서 소움과 먼지가 날릴 수 있다는 것도 주의한다. 


 예전에는 자전거 도로였을텐데, 지금은 보행자 전용 도로이다. 

사람들의 습관인지 가운데 넓은 길보다 좌측 좁은 길로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길 양옆으로 나무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오래 자란 나무들이다. 

머리 위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갔다. 자연스럽게 길 위로 그늘이 지는 구조다. 


 머리 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오른쪽 기찻길 위로 기차와 전동차가 수시로 지나간다. 

서부간선도로 차량 소리는 그리 크지 않은데, 역시 KTX부터 전동차까지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 옆이라 시끄럽다. 




행정구역으로는 금천구와 구로구를 지나간다. 우리처럼 둘레길 여행자의 모습도 가끔 보이지만 대부분 동네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다. 금천구에 속한 안양천 주변은 지금 장미가 한창이다. 금천구에서 조성한 것으로 석수역에서 금천구청역까지 약 2000m 구간을 '장미원'으로 명명하여 가꾸고 있다. 다양한 수종의 장미를 구경할 수 있으며 폭염이나 비에 상관없이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붕 삼아 걸으며 장미를 감상할 수 있다.  전용 산책길답게 휴식 공간이나 의자도 잘 마련되어 있다. 단지 수시로 다니는 기차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서 시끄럽다. 


길에는 다양한 재미 요소도 있다. 자신의 나이대에 따라 통과해 보는 뱃살 점검 구간도 그 하나다. 나도 통과해 보려 했는데, 배가 아닌 엉덩이가 걸리더라. 그럼 뱃살은 안녕한건가? 발바닥 지압 구간도 있다. 예전에 남산에서 만났을 때는 그래도 끝까지 천천히 지나가는 건 되던데, 이날만큼은 결국 중도 포기했다.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끝까지 걸었다. 아무래도 가방이 주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더 힘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지만... 




 석수여-금청구청역 사이 안양천길에서는 이맘때 다양한 장미들을 볼 수 있다. 


 편안한 휴식 공간도 제공한다. 


 다음에는 꼭 통과해야 할 텐데...


 발바닥 지압 코스. 결국 포기했지만, 아내는 끝까지 갔다. 




금천구청역을 지나 지압판 길이 끝나면 안양천 옆길로 간다. 잠시 자전거와 동행하는 길이다. 이때 살짝 비가 오기도 했다. 오후 늦게 온다던 비가 이르게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양천 옆 고수부지 길은 독산역 부근까지 이어진다. 안양천은 경기도 의왕시에서 발원해 군포, 안양, 광명시를 지나 서울의 구로구, 양천구, 영등포구를 지나 한강에 이른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악취가 진동하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곳이었고, 여름이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주변 일대가 물난리를 겪곤 했는데, 이제는 비교적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떼도 보이며, 철새들이 찾는 공간이 되었다. 


안양천 천변의 들꽃을 꺾어다가 예쁜 꽃다발을 만들면 아이는 나비를 쫓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쁘다. 비가 살짝 비치기 시작했지만 그럭저럭 맞을만 했다. 그러다가 독산역 부근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안양천의 명소 벚꽃길이다. 서울에서 벚꽃길하면 여의도가 유명하지만 여의도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구일역까지 3.4km에 다달하는 벚꽃나무 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박동우님의 벚꽃길 사진 보기) 지금은 벚꽃도 없고 버찌들이 떨어지면서 길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푸르른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아이가 가리키는 곳은 어디였더라... 





 카메라를 놓고 가는 바람에 아내와 내 핸드폰으로만 찍은 사진들. 안양천 옆 고수부지의 꽃들  



 비가 비치기 시작해 아이는 준비한 비옷을 입혔는데, 이내 벗고 다녀도 될 정도로 빗발이 약했다. 


 벚꽃은 졌지만 노란꽃들이 가득했다. 유채꽃은 아니고... 



 벚꽃 터널



이날의 목적지 구일역 근처는 공사중이었다. 둘레길을 다시 가꾸는 공사로 보였는데, 제대로된 안내판이 없어서 좀 고생했다. 결국 아래 사진에서 보듯 하천길로 내려가기 위해 강둑길을 거칠게 내려가야 했다. 그 길도 사람들이 오가다 보니 생긴 임시길이다. 구일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가도 되는 거리. 마지막에 아이가 삐져서 나와 아내한테 한소리 들은 것 빼고는 무척 즐거운 날이었다. 구일역의 대형마트에 들러서 모자도 하나씩 사고 다음 둘레길을 기약했다. 


 구일역 주변 - 여기는 흙길이 조성되어 있다. 


 준비해간 김밥과 주먹밥, 구일역에 도착할 즈음 빗줄기가 제법 세서 세 식구 모두 우비를 걸쳐 입었다. 모자도 하나씩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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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4-2. 사당역에서 양재시민의숲까지 걸었다. 산으로는 우면산이 있다. 대성사를 옆으로 끼고 돈다. 마지막 양재시민의숲에 가기 전에 잠깐 양재천길을 걷기도 한다. 거리는 7.6km. 사당역에서 10시 20분 출발해 양재시민의숲역(매헌역)에 들어간 시간이 5시 20분 쯤이다. 약 7시간이 걸렸다. 물론 안내 사이트에서는 불과 3시간 20분이면 된다고 나와 있다. 중간에 아이가 우면산 놀이터에서 놀았고, 산중에서 점심과 간식을 먹고, 종종 쉬고, 양재시민의숲 공원에서 자리깔고 눕기도 했으며 마지막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방문해 관람했으니 아주 편안하게 다녀왔다고 보면 된다. 앞의 두 번의 둘레길보다 더 긴 거리였지만 걷는 게 익숙해져서 더 쉽고 편하게 다녀왔다. 


사당역에서 방배우성아파트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니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들,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들이 나온다. 보통의 등산길 초입이라면 막걸리집, 김밥집, 기념품점 등이 즐비한데, 여기는 인적이 드물고, 기껏해야 서울둘레길 걷는 사람이나 찾아와서 그런지 주변이 삭막하다. 동네개들이 이따끔 누가 오나 쳐다보고 짖어대거나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아, 고양이도 한마리 봤는데,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집고양이가 마실을 나온 듯했다. 손을 내미니 코끝을 손에 대서 냄새만 맡아보더니 자기 길을 간다. 언제쯤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사람 손길을 피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래서 언덕길을 오르는 그 잠깐 사이에도 '이 길이 맞나'하는 의문을 가지고 몇번이나 길을 살피곤 했다. 오르는 사람도 내려오는 사람도 없으니 길을 물을 수도 없어서 난감했지만, 다행히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둘레길을 안내하는 리본과 표지가 종종 보인다. 


숲속으로 난 길을 걸어들어 갈 즈음에 스탬프 찍는 곳이 나타났다. 우면산 끝자락이라는 표시다. 둘레길 수첩을 꺼내 스탬프를 찍었는데, 역시나 잘 나오지 않는다. 준비해 둔 스탬프 패드를 꺼내서 스탬프에 묻히고 다시 찍는데 이번에는 스탬프 범벅이 됐다. 아이는 속상해 하였다. 힘들어도 엄마아빠 따라 온 아이에게 즐거움 중의 하나가 스탬프 찍는 건데, 이런 부분은 좀 아쉽다. 



 사당역에서 우면산 초입 가는 길에서 만난 동네 화분


 이런 저런 소규모 공장과 창고들이 있는 골목길. 멀리 마중나온 강아지


 고양이를 보고 손짓하는 아이


숲은 완연한 여름으로 달리고 있다. 녹음은 점점 짙어지고 꽃들도 햇살을 받아 색이 진하다. 그늘진 곳과 햇살 드리운 곳의 온도차가 크다보니 나무 아래에서 맞는 바람이 무척이나 반갑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땀 흘릴만한 길이다. 


성산약수터 근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이곳을 지나 약간의 언덕길을 오르니 어른키보다 큰 돌탑이 쌓여져 있고, 그 옆에 아이스크림 장수가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 세 식구가 이 기회를 그냥 지날 수 있을까. 다들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여기서 또 쉰다. 역시 아이가 좋아한다. 출발할 때도 쭈쭈바 하나 물고 출발했는데, 벌써 두 번째 얼음과자다. 


우면산 자락은 관악산 자락에 비해 길이 훨씬 수월하다. 잘 다듬어진 면도 있지만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심하지 않다. 평범한 산길을 지나는 느낌으로 갈 수 있다. 긴 거리였지만 발걸음이 익숙해진 것인지 많이 걸어도 힘들지 않다. 우면산은 2011년 여름의 폭우 속에서 엄청난 산사태를 겪었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비가 계속해서 오면서 우면산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산사태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관련 자료) 우면산 산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산사태의 원인은 다양하다. 직접적인 원인은 환경을 돌보지 않은 난개발, 산림청의 경고를 무시한 담당관청 등도 문제지만, 궁극적으로 자연 현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즉 산은 산사태로 점점 깎이고 깎여 평지화되는 것이 오랜 지구의 일상이라는 것. 여기에 인간의 개발이 산사태를 더 촉진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인간의 삶이 개발을 피할 수는 없지만, 산사태 역시 피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면산 지역은 산사태 이후 사방 공사 등 다양한 우면산 살리기 개발에 나섰다. 산사태를 복구하고 다시 나무를 심어 삼림을 조성했다. 여기저기 인공 계곡을 만들어 비가 와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여 제2의 산사태를 예방하였다.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산림이 국토의 70%라는 한반도에서, 게다가 한여름의 집중폭우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기상 현상이 된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의 삶이 함께 하는 것은 팽팽한 줄다리기일지도 모른다. 결코 느슨해질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우면산 초입


 아이스크림 빨고 다닐 때가 좋지.


 둘레길을 안내하는 화살표


 사유지를 분리하는 철조망 담장 사이로 피어난 들꽃들


 햇볕은 뜨거워지지만 발걸음은 가볍게 


 우면산의 중심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힘들 때는 손잡고...


 아이스크림을 입 언저리에 골고루 묻히고 다녀서...


 산중턱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두 번째 아이스크림. 돌탑 주변에서..


 꽃을 보는 것도 즐거운 산책길


 다시 막대기 하나 들고 다니면서... 다음에는 꼭 스틱 들고가기로...


 우면산 살리기 활동 


우면산 산자락 따라서 계속


 우면산 사방공사 지역. 여기서 산사태가 일어났고, 수많은 흙더미들이 쓸려 내려갔다. 


 점심 먹었던 자리에서 하늘을 찍었다. 


 막대기 하나가 좋은 장난감이 되는 숲


 나무둥치도 올라가 보고 ....


 멀리 롯데타워도 보인다. 


 힘들어했지만 나름 재미를 찾아 다니던 아이



 세 식구 다시 발걸음을 모아서...


 이날은 숲이 대부분이었던 둘레길


우면산을 빠져 나오자 어린이 놀이터가 나왔다. 아이에게는 가장 신나는 공간. 우리 외에도 세 아이와 엄마가 나와 놀고 있었다. 그 엄마는 풍선에 물을 넣어 물풍선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던지면서 놀아 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한다. 뜨거운 날에 물풍선 놀이만한 게 있을까. 넓은 놀이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텐데, 참 잘 놀아준다. 놀이터 한쪽에 진짜 나무들을 세워 작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안에서 어떤 아이들이 소꼽놀이를 했는지 작은 나무토막 위에 아기자기하게 돌맹이들과 모래들이 펼쳐져 있다. 어느 아이가 펼쳐놓은 소박한 밥상을 보면서 도란도란 엄마 아빠 놀이를 하였을 꼬마들의 행복한 가정에 들어온 느낌이다. 


 우면산을 빠져 나오자 나타난 어린이 놀이터의 시설물


 쉴 때는 신발도 벗고 시원하게 ... 우면산 놀이터 정자에서.


놀이터에서 한참을 쉬었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시간이 여유롭다. 다시 양재시민의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놀이터를 나와 횡단보도를 넘어 차도 옆을 좀 걷다가 보면 양재천을 만난다. 양재천을 잠깐 걷게 되는데, 잘 꾸며져 있는 양재천도 걷기 좋았다. 야생화들을 길가에 심어 놓았는데, 푸른 하늘과 작은 개천이 조화롭다. 자꾸 발걸음을 잡는 들꽃길을 지나면 보리인지 밀인지를 심어 놓은 곳이 나온다. 손으로 만져보니 무척 거칠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구경을 한다니 둘레길 걷기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숲길만 걷다가 천변길을 걸으니 새롭다. 


양재천을 걷는건 아주 짧았다. 양재시민의숲 공원이 바로 나왔다. 나무들이 무척 컸다. 오래동안 자라온 나무들이다. 양재시민의 숲 공원이 조성된게 1988년 서울 올림픽 경기 대회를 앞두고 만들어졌으니 대략 30년 가까이된 숲이다. 그러니 숲이 풍성하다. 나무 종류만 43종에 약 98,000주가 자라고 있단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냥 쉬다가 지나왔다. 


많은 시민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펼치고 일요일 오후를 한가로이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가까운 매점을 가니 공원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매점이라 인산인해다. 한참 줄을 서서 맥주 2캔과 음료 하나 과자 하나 사들고 나왔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먼길을 걸어온 다리를 편하게 뻗고 맥주를 넘기니 신선이 따로 없다. 일요일 하루가 알차게 갔다. 



 놀이터를 나와 차길을 따라 걷는다. 


양재천으로 내려서 걷는 길 들꽃과 들풀들이 길가에 가득하다.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 밀밭은 이제 추수 때를 지나 누렇게 변하고 있다.


양재천을 가로 질러 가면 곧 양재시민의 숲이 나온다. 


 양재시민의 숲 입구. 


 나무 그늘 터널을 지난다. 


 돗자리 깔고 앉아서 엄마아빠는 맥주 한잔, 아이는 음료수 한잔. 걸어왔던 길을 이야기한다. 




양재시민의숲 공원에는 매헌 기념관이 있다. '매헌'은 윤봉길 의사의 호이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공원(현재 루쉰공원)의 의거를 기념하고, 의사의 행적을 정리하였으며 그가 남긴 글을 전시하고 있고 사후 대한민국에서 수여한 훈장이 전시되어 있다. 젊은 시절부터 농촌에 조직을 만들어 우리글과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결국 큰 뜻을 품고 집을 나서서 결국 상해에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의거를 성공시켰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사나이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공을 이루지 않고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젊은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끝에 닿아 있다. 이상을 쫓는 사람은 누구도 쫓아갈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젊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 이상을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매헌 기념관 앞에서


 매헌 기념관 안에 있는 윤봉길 의사 전신상


 야외에 있는 윤봉길 의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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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 5일(2017. 5. 29.~6. 2.)까지의 자전거 출근 기록이다. 아침에 간단히 적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던 단상을 정리해 올린다. 기록의 차원이다. 물론 퇴근도 자전거로 했으나 따로 기록해 둔 것이 없다. 페이스북 글을 옮겨오니 블로그가 풍성해진다. 



 1일차 

손목 시큰거림이 여전하다. 5월 29일 아침 기온은 18~19도. 이번주 내내 비 예보는 없다. 오랜만의 자출이라 천천히 시작했다. 내 앞으로 가벼운 차림의 여성 라이더가 내내 달렸고 난 끝내 추월하지 못했다. 이번주는 좀 꾸준히 달려보자.


 2일차

이틀째라서 그런지 어제보다 5분 이상 단축됐다. 운좋게 마포대교 이후 공덕 오거리까지 신호에 안걸린 것도 있지만, 아침에 타이어에 공기를 더 넣어주니 정지 후 출발 속도올리는거나 가속 기어올릴 때 페달 돌아가는 게 다르다.

확실히 월요일은 차들도 많았다. 어제에 비해 10여분 늦었는데 교통량은 훨씬 적은 느낌이다. 마포대교 넘어서부터 맨 우측 차로는 '자전거 우선 도로'로 지정되어 있다. 달리는 맛이 있다.


 3일차 

3일째 자전거 출퇴근. 자출이야 한 10년 전에도 했던 것 같은데 3일 연속 자전거 출근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인권위 있을 때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는 편도 18km나 되니 좀 힘들더라.

공덕동까지는 11km 정도 되고 잘 달리면 50분 안에 들어와 대중교통인 버스나 지하철과 별반 차이가 거의 없으니 날씨만 좋다면 할만하다. 다만 땀을 씻어낼 곳이 없어 화장실 한칸을 차지하고 물수건으로 닦아내는 게 좀 아쉽다.

도로를 달리다보니 위험천만한 상황이 가끔 벌어지기도 해서 항상 조심한다. 그래도 출근길 마포대교를 만나면 거진 위험구간은 다 통과한 거라 무척 반갑다. 오늘은 잠시 쉬어보는 여유도 부려보았다.





 4일차

항상 다니는 길이 같아서 이제는 위험구간이 어디이고 그 구간을 우회하거나 위험 회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고 실험했다.


가장 위험한 출퇴근길 구간은 영등포 등기소 이후부터 영등포역까지의 구간이다. 차도가 좁고 우측 끝차선의 오른쪽편 도로가 많이 망가져서 덜컹거림도 심하다. 다행히 출근길은 이길이 매번 차들로 꽉차 있어서 차와 내가 접촉할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운전 부주의나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중요하다. 퇴근길은 상황이 다르다. 거의 한뼘 차이로 내 옆을 스치는 차량들을 만나기도 한다. 여기도 서행 구간이다.


다음으로는 역시 첫출발 지점인 경인로길로 개봉사거리에서 고척돔경기장까지 코스다. 역시 교통량이 많아 번번히 정체가 일어나는 구간이고 곳곳에서 길로 진입하는 차량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굽은 구간이라서 차량과 나의 상호 소통이 계속해서 필요한 구간이다.


마지막으로 영등포에서 서울교로 올라가는 고가 아래길. 하나의 길에서 여러 방향의 차들이 뒤엉킨다. 나보다 빠른 차들과 손짓과 눈맞춤을 수시로 해야 하고 언덕길도 올라야해서 긴장해야 하는 구간이다.


여러 위험 구간들을 가장 안전하게 피하는 방법은 인도로 달리는 것이겠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 영등포역 구간 도로 상태라도 빨리 개선되었으면 하는데 여기는 뭐 10년째 이러니 앞으로도 요원하겠지.


🚲 오늘 아침 달린 거리: 11.9km

🚲 5월 이후 달린 거리: 81.68km



 5일차 

출근

이번주 월요일부터 자전거출퇴근을 시작하면서 작은 목표를 세웠는데, 딱 한주만이라도 내내 자전거 출퇴근을 하자는 거였다. 오늘로 5일째 자출에 성공했고 저녁에 무사히 집으로 간다면 작은 목표는 이뤄진 것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더라. 더군다나 40을 넘어가 일상의 소소한 것에 안주하고 변화에 대해 시큰둥해진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지니 배가 나오고 몸무게는 점점 늘어나 건강을 위협한다. 지난 4일간의 자전거 출퇴근에도 내 몸무게는 전혀 변함없다. 간식도, 야식도, 술자리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몸마저도 웬만한 자극에는 요지부동이다.

저녁에는 마지막 피날레로 한강 자전거길로 퇴근하면서 맥주나 한잔해야겠다.

🚲 오늘 아침 달린 거리: 12.12km
🚲 5월 이후 달린 거리:  93.8km



퇴근

저녁 자전거 퇴근. 간만에 한강 자전거길과 안양천길을 타고 달렸다. 바람은 맞바람. 바람을 거슬러 속도를 내는 건 정말 괴로운 일. 한강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 하려했는데 예상했던 마지막 편의점이 공사중. 결국 못 마시고 집으로...

🚲 오늘 저녁 달린 거리:16.8km
🚲 2017년 달린 거리:  110.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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