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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4시간 반을 달려 인월읍 둘레길 안내센터에 차를 주차시켰다. 미리 준비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했다. 다시 먹을만한 끼니를 어디서 먹을지는 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골길이라도 라면 하나라도 파는 식당 없을까. 이제 길을 걷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끼니에 대한 걱정을 좀 덜었다. 필요할 때마다 준비한 간식거리로 약간의 허기는 채워진다. 그렇게 점심때를 건너 뛰고 걷다가 뒤늦게 밥을 먹는 일이 이제 익숙하다. 그래도 그렇게 먹는 밥이 맛있다. 그래서 굳이 식당을 미리 알아보거나 하지 않는다. 피곤한 다리를 쉬고 싶을 즈음, 아이가 배고프다고 보챌 즈음이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을 시기이다. 힘들었을 다리를 주무르고 있으면 상이 차려지고 따뜻한 밥과 국이 상 위에 오르면 그 맛과 향으로 그곳은 벗어날 수 없는 미식의 감옥이 된다. 잠깐의 식사 시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과 향의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이렇게 둘레길을 다니면서 가벼워 지는 짐과 함께 입맛도 가벼워진다.

둘레길을 걸으며 입맛도 소박해지더니 짊어져야 할 짐도 가벼워진다. 몇 번의 걷기 여행에서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이 더 분명해졌다. 필요 없겠다는 판단이 서면 짐은 가벼워진다. 입맛도 마찬가지다. 산해진미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허기가 최고의 반찬이 되는 이치다.

가끔씩 짐을 꾸리고 떠나는 일은 더 간소한 삶을 생각해 보게 한다. 가족을 이끌고 현관문을 나서면서 집을 다시 훑어 본다. 우리 식구가 다 함께 집을 비우지만 여전히 집안의 온갖 물건들은 이 집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 물건들은 살아가면서 짊어진 짐이다. 필요에 의해 들여놓았던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떠나는 내 등에 짊어진 짐을 생각하면 참 별 것 아니다. 결혼 후 네 번째 보금자리다. 이사를 많이 다녔다. 이사를 다니면서 집은 좀 더 커졌다. 아이가 하나 생겼다. 살림은 그만큼 많아졌다. 삶이 풍부해졌을까? 모르겠다. 여전히 난 빈곤하다. 머물면 쌓이고 떠나면 버리는 것이 사람의 삶과 죽음과 같다. 둘레길 좀 걷는다고 참 많은 생각에 빠진다. Why so serious?

 

인월면에서 2구간 시작점인 운봉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인월버스터미널을 이용한다. 주말 이른 아침부터 버스를 기다리는 분들이 제법 있다. 시골의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팔고 있는 인심좋은 아주머니(라고 하기에는 할머니)가 귀찮을법한 물음들에도 친절하고 상세히 답해 주신다. 시골 버스는 번호가 없다. 행선지를 잘 보고 타야 한다. 잘못 타면 한참 돌아 목적지로 갈 수도 있다. 당연히 기사님에게 내가 가는 행선지를 물어보고 타는 것이 좋다. 

 

운봉읍에서 이날의 둘레길이 시작됐다. 이번 일정은 1박 2일 일정으로 잡았다. 비교적 쉬운 2구간 운봉-인월 구간(약 9.9km)과 좀 긴 구간인 3구간 인월-금계 구간(약 20.5km)을 묶어서 한 번에 넘어갈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날 운봉-인월 구간을 지나 3구간의 일부 구간을 마저 걸어야 한다. 1박을 할 집은 장항마을이나 매동마을 정도로 잡고 갔다.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을지 미리 예측하기 어려워 민박을 예약하지도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민박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짜임새 있는 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여행은 변수가 좌우한다. 물론 그 변수는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해야겠지만, 숙박 집을 잡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한 변수 중의 하나일 거다. 민박집 예약은 점심시간을 넘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무사히 알맞은 시간에 민박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나름 천운이다. 아이가 너무 지쳐 있었고, 길이 좀 더 길어졌으면 예약을 취소하고 눈에 보이는 민박집으로 들어가거나 택시를 불러야 했을 거다. 그럴 때 민박집에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이가 있으니 같이 어려진다. 

 

지리산 자락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모여 람천을 이루고 흐른다. 둑방길에는 풀들이 가득했지만 나그네와 농부들이 지나가면서 길을 만들었다.

 

운봉읍을 빠져나와 운봉고원을 적시며 흐르는 람천을 따라 걷는다. 둑방길은 흙길이다. 나무가 적어서 한 여름에는 힘들 수도 있다. 또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일주일 내내 아스팔트길만 돌아다니다가 하루쯤은 이런 흙길을 밟아주는 것도 좋다. 사실 트레킹은 참 단순한 일이다. 그냥 걷는 일이다. 걸으면서 보고 듣는 일은 그냥 작은 선물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선물이지만 받으려 해야 가질 수 있는 선물이다. 둘레길 걷기는 그것을 받는 일이다. 단순하게, 간소하게, 담백하게...

 

송흥록 생가에 있는 동상. 생전 송흥록 선생의 모습을 표현한 듯. 

 

황산대첩비지를 지나면 비전마을이다. 비전마을 초입에는 가왕 송흥록, 박초월의 생가가 있다. 여기에 들어가면 옛집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송흥록 박초월의 판소리가 흘러나온다. 천천히 둘러보면서 판소리 한 대목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박초월 선생의 별주부전 중 별주부가 토끼를 만나는 대목이 흘러나왔다. 

 

마을마다 마을을 지키는 나무들이 있다. 당산나무라고도 불린다. 마을들은 때마다 이곳에서 제를 지냈다. 
운봉은 흥부의 고장으로 불린다. 이곳에서는 곳곳에서 흥부를 상징하는 여러 표현물과 지명과 상표를 볼 수 있다. 둘레길에 만난 흥부와 박과 제비.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비빔밥이다. 나온 나물들이 푸짐하다. 부족하면 더 준단다. 넘칠만큼 넣고 싹싹 비벼서 배불리 먹었다. 

 

이튿날 3구간 등구재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계단식 논. 일부는 이미 추수가 끝났지만 아직 추수 전인 논들도 많았다. 

 

등구재, 또는 등구령이라고 불리는 곳. 인월에서 등구재를 넘어가기 전에 있는 쉼터. 여기서 막걸리 한잔을 할 법도 하건만 재를 넘어야 하는 여정을 앞에 두고 발목이 잡힐 거 두렵다. 등구재를 넘어 온 이들이라면 기꺼이 막걸리 한사발과 김치 한입으로 목을 축여도 좋을 곳이다. 
등구재 고갯길 위에서 올라오는 모녀를 찍었다. 길은 넓직해 우마차는 지나다녔을 것 같았다. 소형차 한대는 쉽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다.
등구재에서 한 컷
등구재에서 내려가는 길
금계마을 초입에서 만난 배추밭. 배추가 잘 익고 있다. 김장철이 돌아오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2~3구간을 마치고 난 후 금계마을에서.

 

 

미국의 호피족 명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 가장 긴 여행, 그것은 머리에서부터 마음에 이르는 여행이다.'

우리는 머릿속에 지식과 정보를 채우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졸업 이후에도 정보를 찾아 신문과 뉴스와 인터넷을 뒤지고 다닌다. 그렇지만 정작 마음 속에 오랫동안 쌓아온 나의 모습, 관습과 습관, 전통, 예의, 우정, 사랑 등은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머릿속 지식들은 산업화 이후 발견된 지식이 대부분이다. 씨앗을 언제 심고, 바람에 따라 내일의 날씨를 생각하고, 별을 보면서 길을 찾아가는 일은 지금의 우리에게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일에 불과하겠지만, 이는 인류가 수많은 시간을 쌓아오면서 내면에 체화한 지혜일 것이다. 가끔은 그런 일이 내 속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해 왔던 일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것이 어쩌면 머리에서 마음에 이르는 여행일 수도 있다. 둘레길 여행은 그런 일들의 하나가 되어 줄까. 여전히 길은 내게 어렵고 번번이 헤매게 하지만, 난 이 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이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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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의 친구 헤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클레이에게는 보통 친구가 아니다. 약간의 밀당도 있었다. 어색하지만 키스도 했다. 풋풋한 사랑이라고 여길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런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7년에 나온 미국의 웹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는 클레이가 헤나의 자살 이유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드라마이다. 테이프에서 헤나가 자신의 죽음의 이유로 언급한 인물들은 헤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슬픔과 외로움으로 몰아 넣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 중에는 주인공 클레이도 포함되었다. 클레이는 헤나의 자살 이유를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주변 인물들에 대해 증오와 미움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이 왜 이 테이프에 언급되는지를 내내 두려워하며 진실을 향해 한발씩 다가간다. 클레이의 신경을 팽팽하게 당기는 그 긴장감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드라마 속 미국의 고등학교는 우리 고등학교와는 너무나 다르다. 수업 때마다 교실을 옮기고, 과목마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 달라진다. 교실 복도에 가득한 사물함과 거기서 벌어지는 남녀 학생들의 과도한 스킨십 등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부모가 없는 빈집에서 파티를 열어 술을 마시는 모습도 이질적이다. 미국의 고등학교라는 공간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공감하기 어려운 곳이다. 자극적인 화면도 많이 등장한다. 자살을 소재로 했지만 마약, 섹스, 폭력(강간 포함)은 이것이 정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이렇게 이질적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공간이나 환경, 소재가 주는 이질감보다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우정과 고독, 사랑과 미움, 믿음과 배신의 이야기가 통속성을 뛰어넘는 인과관계로 짜임새 있게 엮여 있다. 주요 갈등은 헤나를 둘러싼 인물들 사이의 사건과 그로 인해 퍼지는 오해와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헤나의 깊고 깊은 상처로 이어지고 마침내 헤나는 쓰러진다. 헤나가 이겨내려고 애쓰면서 발버둥치는 모습과, 그런 헤나를 생각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절망하는 클레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함께 감정이입이 된다. 

헤나 베이커. 그는 절망끝에 죽음을 선택하고 그 이유를 녹음으로 남겼다. 

헤나는 전학을 온 이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클레이를 알게 되었고 둘은 친해진다. 그런데 헤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헤나 주변의 인물들은 헤나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극심한 외로움과 존재에 대한 환멸을 느낀 끝에 자신이 자살하는 이유를 테이프로 남기고 자살한다. 드라마는 그 테이프를 클레이가 받고 그가 들으면서 시작한다.

청소년 시기는 민감하다. 성에 대한 관심도 사람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 둘의 경계가 때로는 모호해지고, 욕망에서 타오르는 충동이 쉽게 자아가 잠식된다. 아이들의 관심과 애정은 소문을 낳고 소문은 다시 재미가 되어 퍼진다. 악의적이지 않은 장난은,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이다. 말들이 무성한 세상이다. SNS는 손쉽게 글과 이미지를 생성하고 그것이 퍼져가면서 헛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돌고돌아 마침내 이야기의 주인공의 가슴을 정면으로 조준해 명중시킨다.

헤나가 느낀 가장 큰 절망감,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어떤 사람과도 닿아 있지 않은 떨어진 끈 같은 존재감에서 오는 절망이었다. 드라마에서 헤나의 죽음은 학교의 방관 혹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논란으로 소송까지 이어진다. 시즌2의 주요 내용은 헤나의 죽음을 놓고 학교와 부모가 벌이는 재판이 주요한 배경이 된다. 

 

클레이는 헤나가 나긴 테이프에서 헤나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찾아간다.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달고 있다. 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에서 가장 낮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첫 번째 자살 이유는 원인은 가정불화-가정문제가 제일 많다. 의외로 성적 문제는 세번째 이유. 우울증과 염세비관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오른쪽 자료가 2000년대 후반부터 2012년까지의 자살 청소년에 대한 분석이다. 벌써 10년전의 통계인만큼 지금과는 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 자살 소식은 이제는 흔한 뉴스가 되어 버렸다. 삶의 문제에 있어 죽음을 염두할만큼 우리 아이들은 진지하다. 그러나 돌파구가 없는 캄캄한 암흑의 결투장을 만들어 놓은 건 우리 사회이며 나와 같은 어른들이다. 

'학교 폭력'이라는 말의 법률적 정의는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라고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루머의 루머"시리즈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끊임없이 헤나를 괴롭히고 결국 그를 되돌아올 수 없는 절벽에서 밀어버렸다. 헤나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아이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누군가는 죄책감에 빠져들고 누구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행동에 대한 책임을 아이들은 저마다의 삶의 무게로 짊어지고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행동에는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심코 올리는 포스팅 하나도, 누군가의 글에 다는 댓글 하나도 결과는 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역시 마땅한 결과를 발생시킨다. 타인을 향한 폭력적인 관심도, 상처받고 있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도 언젠가는 우리가 짊어질 책임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때가서 나는 몰랐다고 해도,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소용없다. 세상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삶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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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장사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책이라고는 편집일만 해본 내가 책을 사고파는 일을 잘 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골에 북카페를 열어 놓고 가게를 찾는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조용한 카페에서 홀로 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일상의 작은 행복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 북카페나 서점들은 매우 바쁘다. 가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이 필요하다. 게다가 서점 운영은 잠시도 틈을 주어서는 안되는 입출고 관리가 필수이다. 그리고 카페까지 운영하려면 이에 대한 기본 지식과 노하우도 쌓여 있어야 한다. 이렇게 신경써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내 머릿속의 여유로운 상상은 그야말로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튼 가끔 빠지는 망상을 더해줄만한 책으로 고른 게 "오수도 서점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알라딘에 소개된 책에 대한 내용 중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 벚꽃으로 뒤덮인 산골짜기 마을 사쿠라노마치의 작은 서점 오후도. 도시의 오래된 서점을 그만두고 오후도 서점을 찾아온 청년 잇세이. 책과 서점을 둘러싼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따뜻한 봄바람처럼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결코 감동적이지 않으며 너무나도 통속적이라서 허허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재미도 없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은 요 몇년 사이 내가 본 책 중에 제일 재미없는 책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남겨야 하나 싶을 정도로 회의가 들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들여 읽었으므로 그나마 좋았던 걸 남긴다. 

글이 원고가 되고, 원고가 책이 된 후의 일들, 여기까지는 내가 하는 일에 속한다. 하지만 책이 출판되어 독자에게까지 전해지기까지의 과정도 책을 만드는 일 못지 않게 디테일하면서도 정교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책은 그래서 저마다의 운명을 타고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이 독자에게 읽히기까지의 과정도 그 책이 가진 중요한 운명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후자의 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책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일본 드라마적인 전개를 답습하고 있었다. 책을 보는 내내 교훈적인(?) 일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데다가 재미도 없었다. 작중의 사람들의 관계가 너무나 작위적인 느낌에다가 전형적인 인물들의 모습은, 결코 동화되기 어려운, 읽으면 읽을수록 인물과 나 사이의 거리가 느껴지면서 객관화가 되어버리는 것이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북카페를 열어보고 싶다는 내 바람도 어쩌면 공허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말았다. 이 책이 나에게 준 최대한의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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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시작이 어렵다. 혼자 실행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진행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자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서울둘레길을 마친 지난 봄에 그런 생각은 더 간절해졌다. 새로운 트래킹 코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마침내 지난 8월 18일 지리산 둘레길의 첫발을 내딛는 결실을 맺게 하였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멀리 지방으로 내려가는 거라 신경써야 할 게 많았다. 1박을 할지, 아니면 새벽에 출발할지에 대한 선택부터 자가용을 이용할지 대중교통을 이용할지, 트래킹 구간에 식수와 음식은 충분한지, 코스 내에 위험한 구간이나 길을 잃기 쉬운 구간은 없는지, 이정표 등은 잘 되어 있는지 등등 첫 트래킹에 앞서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게다가 서울 근교가 아니라 차를 이용해 3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만큼 이런 고민들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역에서 1박을 묵는 것은 여러모로 경제적 부담이 컸다. 물론 1박을 한다면, 그만큼 체력적 안배를 할 수 있고, 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트래킹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3명이 묵을 수 있는 적당한 숙소는 최소 5~10만원은 예상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1박을 하지 않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음에도 비용이 20만원 가까이 들어갔다. 하루에 쓰는 비용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고, 우리 가족의 경제 수준에서는 부담되는 지출이 될 수 밖에 없다. 토요일 일찍 잠을 청한 후 새벽 3시 경에 일어나 4시 경에는 집을 나서게 되었다. 

남원 주천면사무소에 도착한 후 주천면파출소 건너편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공용주차장은 버스 정류장과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주천-운봉 둘레길 구간의 시작점이다.

주천면 버스정류장의 무인 우체통
지리산 둘레길 안내 표지판 앞에서. 주천-운봉 구간의 시작점.

 

주천-운봉 구간은 총 14.7km 구간으로 지리산 서북능선(만복대부터 바래봉 등)을 바라보면서 걷는 구간이다. 운봉읍 지역은 해발고도가 높은 고원지대로 8월 중순의 여름에도 비교적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었다. 

 


시작점 표지판을 지나면 곧바로 개울을 하나 건넌다. 커다른 반석들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약간 미끄러웠고, 방심하여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물이 깊지는 않다. 발등까지만 살짝 젖을 정도였지만, 비가 많이 올 때는 이 개천도 금방 불기 때문에 이곳이 아닌 다리를 이용해 돌아가야 한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벼에 이삭이 나왔다. 초록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주천면 장안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주천-운봉 구간 지리산둘레길의 갈림길에서 만날 수 있는 장승 안내목. 
내송마을 앞에 돌탑들이 있다. 둘레길 나그네들의 건강과 무사안일을 빈다. 

 


내송마을을 지나면 곧바로 산자락으로 접어든다. 비교적 아침 일찍 시작한다고 나섰지만 여름해는 아침부터 강렬하다. 산자락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구룡치까지는 계속 올라가는 길인데, 초반부터 오르막을 걷다 보니 아이가 금방 지치기 시작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개미정지에서. '정지'는 '쉼터'를 뜻한다. 너른 공간이 갑자기 나타난다. 운봉에서 구룡치를 넘어 온 사람들이 여기서 발을 쉬게 해 주었다. 내송마을 사람들도 여기에서 나뭇짐을 잠시 내려놓고 다리쉼을 했다. 

 

개미정지를 지나면 계속해서 오르막길이다. 구룡치까지는 산길을 올라야 한다. 약간 힘든 코스다. 
이날도 수고한 발들을 위하여 기념 촬영.
연리지. 여기 푯말에는 '사랑의 나무'라고 써 있다. 소나무 줄기 하나가 다른 나무의 줄기를 꼬면서 올라가 자랐다. 이것이 사랑일까? 

구룡치를 넘어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구룡치를 넘은 다음부터는 평탄한 길이 대부분이다. 특히 숲속 오솔길은 고즈넉하게 걷기에 좋다. 다만 물을 구하기 힘들다. 초반에 아이가 힘들어하면서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4통이나 준비한 물이 금방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가장마을의 민가에 들어가 부탁하여 다시 채워야 했다. 샘이나 물을 파는 가게가 드물다. 물 수급에 신경 써야 한다. 

중간에 만난 두 아주머니는 이 지역에 사는 분이었다. 운동 삼아 구룡치를 자주 함께 오가고 있다면서, 꼭 구룡치 폭포를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해 주었다. 그러나 구룡치를 넘으면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고, 정식 둘레길 구간을 걷고 싶다는 마음에 구룡폭포를 포기하고 평탄한 임도와 동네길이 주를 이루는 코스로 길을 잡아 나섰다. 아주머니 말로는 연리지가 있는 나무 근처에서 갈림길이 나오고 그 길로 가면 구룡폭포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구룡치에서 내려 와 잠시 지방도를 걷다 보면 멀리 회덕마을의 초가집들이 보인다. 관광용으로 지어놓은 거겠지 생각했는데, 빨래들이 널려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인다.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집이란 사람이 살아야 오래 가는 법이다. 다듬고 보수하고 고치고 새로 올리면서 집은 단단해진다. 수십년만에 보는 초가집이 반가웠다. 

덕산재를 끼고 도는 숲길은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짧고 쉽다. 게다가 고즈넉한 숲속 오솔길이라 걷기 좋다. 그 길의 끝에 무인가게가 있다. 캔맥주 2천원 생수 2천원. 컵라면도 먹을 수 있게 해놓았다. 우리 가족도 이곳에서 즐거운 둘레길 여행을 축복하며 간단하게 축배를 들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회덕마을의 초가집. 여행자들의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았을텐데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보였다. 빨래가 마당 한켠에 높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노치마을로 가는 길. 예전 백두대간을 잠깐 탈 때 노치마을로 내려온 적이 있다. 마을 뒷산의 수백년된 소나무가 있는 언덕배기는 매우 운치있었다. 
노치마을을 지난 뒤 덕산저수지를 끼고 다시 작은 언덕을 하나 오른다.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데다 솔숲길을 상쾌하게 거닐 수 있어 좋다.
덕산저수지 길을 돌아 나오는 숲길의 끝자라에 있는 무인가게. 라면포트와 라면상자가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물이 부족하다면 여기서 물을 살 수도 있다. 

 


가장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는 평지길이다. 그늘이 별로 없어 뜨거운 햇살을 그대로 받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날은 바람이 좋았다.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을 가르는 바람은 너무나 시원해 뜨거운 햇살을 금새 식혀 주었다. 가지고 있는 스틱을 이용해 잠자리 낚시를 해 보면서 아이는 즐거워했다. 구룡치를 넘으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힘들어 하더니 금새 회복한 것이다. 아이의 회복력은 정말 놀랍다. 서로의 스틱과 모자와 어깨에 앉은 잠자리를 보면서 즐거워 하며 시골길을 걸었다.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잠자리 낚시 장면. 잠자리는 왜 뾰족한 곳을 좋아할까? 
잠자리 낚시법: 잠자리가 날고 있는 곳 근처에 스틱의 끝을 천천히 가져가면 알아서 찾아 앉는다. 
아이는 끝까지 잘 걸어 주었다. 이날 걸은 걸음수는 2만걸음을 넘었다. 역대 최고 많이 나온 걸음 수였다. 
행정마을길. 마을길이 잘 꾸며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초록이들은 어린 나무들이다. 양묘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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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사비나 미술관을 방문했다. 

일요일 낮 12시 즈음에 출발했지만 1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은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교통 체증이 심해서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곳 미술관을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흥미로운 외관과 독특한 기획 전시, 그중에서도 아이가 흥미롭게 볼만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성인 6천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4천원이다. 관람권을 끊으면 1층 카페에서 음료를 1천원 할인해 준다. 

특히 주목한 전시는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 동물, 예술로 HIG"라는 전시전이었다. 아래는 이 전시와 관련한 설명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더보기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이하 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展은 ‘생물다양성 보존’이라는 인류의 당면과제를 예술적 시각으로 제시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로 기획되었습니다. 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 총회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약 800만 종이며 그 중 인간이 저지른 자연환경 파괴와 기후변화로 인해 최대 100만 종에 달하는 동식물이 수십 년 안에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멸종위기 동물로는 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기린, 눈 표범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환경 문제는 종의 존폐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로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하는 당면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 보존을 위한 21세기 미술관의 사회적인 역할은 무엇일까요? 사비나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생명체의 소중함을 알리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 전시 소개글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많지 않지만 인상적이었으며,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더불어 지구 환경과 생물다양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아이에게는 충분한 설명을 해 주기 어려웠고, 그저 환경 오염으로 인해 동물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 전달할 수 있었다. 

그외에도 4층과 5층에서 다른 전시물도 관람할 수 있었다. 2~3층의 멸종위기동물 전시와는 성격이 좀 다른 사진전이었는데, 약간 난해하다. 

사비나 미술관의 내부 주차장은 협소하지만 한국고전번역원과 미술관 사이에 있는 넓은 공터를 사용할 수 있어서 주차가 편하다. 

사비나 미술관 관람을 마친 후 카페에서 전시 관련 이야기를 나누기 좋다. 가까운 곳에 은평 한옥마을이 있으니 그곳에서 전통차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은평 한옥마을에 방문했을 때는 차량이 너무 많았고,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과 한옥마을 방문자들이 뒤엉켜 있는데다가 가장 뜨거운 한낮의 폭염이 길거리를 달구고 있어서 오래 둘러보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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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대학 동기들 몇몇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옛날 레코드를 틀어주는 생맥주 집에서 텅빈 맥주잔을 기울이면서도 말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옛노래를 배경으로 옛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추억에 젖어 살아온 삶의 실오라기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면서 투박하게 술상 위에 펼쳐 놓습니다. 지나간 것은 아름답죠.

나름 두루두루 동기들과 인맥이 연결되어 있어 아는 척도 잘하고 다닙니다. 동기들은, 제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로 그 수많은 연애 사건들에 휘말리지 않고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며, 누구하고도 연애를 하지 않았던(사실 못했던) 대학 생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더군요. 청춘 남녀가 모인 대학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은 자는 유죄죠. 그 죄의 대가를 지금 받는 건지도 모르지만...

한번 쌓인 오해는 시간이 갈수록 찌든 때처럼 점점 더 지우기 힘들어집니다. 그것이 생겼을 때 바로 지운다면 처음에는 좀 고통스러울 수 있어도 지워질 수 있죠(물론 다 그런건 아닙니다만). 하지만 대개는 그냥 지나칩니다. 잠시 안 보면 되지...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때의 '잠시'는 '영원'과 비슷한 뜻이 되어 버립니다.

언젠가 여러 사람들이 옛 이야기들을 스스럼 없이 말하고 오래된 앙금과 오해들을 술 한잔 털어버리듯이 씻어냈으면 합니다. 영원한 눈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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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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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PM 자전거 주행: 10.3km + 23일 AM 자전거 주행: 10.1km
🚲 2019년 자전거로 달린 거리: 499.8km

😏 드디어 500km 달성이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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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면 쉽게 상처받고 겁이 많아 무서움에 떨면서 구석으로만 슬슬 피하던 쬐끄맣고 깡마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 잡혀 있어서 바깥에서 한번이라도 안면이 있는 어른들에게는 꼬박꼬박 인사를 잘 했는데, 그러면 대부분의 어른들이 나를 알아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죠.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린 나의 순진한 처세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물론 용기 있는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만...

그런 내 성격을 닮았는지 내 아이도 겁이 많고 착하고, 부끄럼도 많이 탑니다. 3개월 전 이사하고 자기 방을 따로 마련하여(사실 이전 집에도 아이 방은 있었지만 그곳을 사용하지 않았죠) 따로 재우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진전이 없네요. 애써 내가 계속 아이를 재우기 위해 아이방 침대 밑에서 잠을 자는 수고를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아빠 잠잘 때면 온갖 무서운 생각이 나."

그러다가 한밤 중에 일어나는 몽유병 비슷한 증상까지 나타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엊그제부터는 엄마와 안방에서 자게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좀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어린아이니까.

아이의 그 수많은 상상 속의 걱정을 어떻게 지워줄 수 있을까요?

출처: http://www.10x10.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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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PM 자전거 주행: 10.4km
🚲 2019년 자전거로 달린 거리: 458.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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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8.

안양천변에 있는 구일역 밑으로는 철교를 지나는 전철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김포공항을 찾는 비행기들이 고도를 낮추면서 지르는 엔진음으로 시끄럽다. 거기에 급하게 꺾이는 도로에서는 간간히 체인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자전거들이 합세한다. 두 소음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지난 토요일 저녁에는 달랐다. 여러 소음을 뚫고 응급센터와 통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가족과 함께 토요일 저녁 집을 나서 철산상업지구까지 안양천변 길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구일역 철교 밑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이미 4~5명의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 주변에서 그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고, 일부는 응급센터와 통화를 하는 듯했다. 나도 도울 것이 있을까 해서 다가갔지만 별다른 의료 지식이 없으니 그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쓰러진 사람은 40대로 보였고, 의식은 없었지만 불규칙적인 호흡을 보였다. 외상의 흔적도 없었다. 심장이나 뇌 기능 이상으로 인한 쇼크가 아닐까 의심해 보지만 그렇다해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처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이미 사람들이 그를 반듯하게 눕혀 놓고 있었고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 역시 그가 왜 쓰러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쓰러진 사람은 혼자 산책을 나와 일을 당한 것일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자전거 도로 주변이라서 일부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에게 우회로를 안내하고 있었다. 2차 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아이가 쓰러진 사람을 보고 받았을 충격을 걱정했다. 우리 가족은 서둘로 사고 현장을 떠나야 했다. 우리가 떠나 집으로 향하는 길에 구급차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아이는 애써 환자가 있는 쪽으로 손을 뻗어 안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구급차가 처음 고척교 밑으로 갔을 때 재빨리 달려가 그쪽이 아니라고 다시 안내해야 했을까? 어쩌면 그렇게 했어야 했고 그냥 지켜본 내 행동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3~5분의 차이였지만 그 시간도 그이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알 수 없다. 나도 알 수 없는 지나가는 사람의 선의에 내 생명을 맡겨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인적이 드문 길에 쓰러진 40대의 아저씨가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최초의 발견자였던 그 아저씨(계속해서 쓰러진 사람에게 말을 걸었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가 내가 될 수 있도록 좀더 용기를 낼 수 있는 삶을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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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PM(14.4km) + 8일 AM(10.2km) 자전거 주행: 24.6km
🚲 2019년 자전거로 달린 거리: 438.0km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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