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5코스를 걷기로 하고 토요일 새벽에 배낭을 차에 싣고 떠났습니다.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이 아이도 새벽 4시에 씩씩하게 일어나 짜증도 부리지 않고 냉큼 올라탔지요. 새벽 고속도로는 칠흑같이 어둡고 오가는 차량도 드물었습니다. 아내는, 보통 때라면 매화 축제 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광양 매화마을을 찾아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함양군 휴전면 원기마을에 도착한 건 오전 8시 정도 였습니다. 전날까지만해도 비는 저녁 늦게부터 올 거라는 예보를 확인했었는데요, 그에 따라 이날의 트레킹은 오후 3시에 끝낼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원기마을에 도착하자마나 살짝 싸리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그칠 거라 생각하고 아이에게는 우비를 입혔고 전 그냥 맞으며 걸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이 눈이 금방 그칠 거라면 차에서 조금 기다려 보자고 하더군요. 자고로 아내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차에서 1시간만 기다려 보기로 했는데 싸리눈이 함박눈이 되어 쏟아지기 시작하고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둘레갈 걷기는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았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함양에서 광양으로 차를 몰기 시작하면서 눈은 비로 바뀌었고 양도 줄었지만 이미 질척해졌을 산길을 걷는 건 다음으로 미루었네요.
그렇게 광양 매화마을과 구례 산수유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걷기 여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여행이라는 게 뜻밖의 사건들이 주는 재미와 풍경들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지겠죠.
둘레길 이야기는 다음에 실어 보낼테니 이번에는 남녘에서 올라오는 꽃소식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산수유 나무에 핀 꽃들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산수유공원에 있는 지리산 마스코트숙소 앞에 있던 한글공원매화마을 초입의 두꺼비
오늘까지 연속 5일 자전거 출근에 성공했습니다. 자출기도 계속 쓰고 있네요. 자출기라면서 자전거와 관련한 이야기가 있는게 아니라 온갖 잡스러운 이야기만 하는데도 지인들은 좋아요👍를 눌러주시니 더 부지런히 올려 봅니다.
오늘도 한강에는 많은 새들이 모여들었네요. 마포대교 주변은 밤섬이 있죠. 이곳은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지금은 세계적인 도심 철새 도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강물에 떠내려온 잡목과 자연스럽게 생긴 갯벌과 늪,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가 만든 숲이 철새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서식지가 된 거죠. 그래서 마포대교나 여의도 한강둔치 등에서는 민물가마우지,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보통은 11~12월이 탐조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라는데 3월초인 지금도 새들이 저리 많이 모여들었네요. 그만큼 밤섬이 새들에겐 정말 중요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 🏁 2020.3.6. 금. 맑음 아침 기온 영하3도 🎉 아침 자전거 출근 10km 🚲 2020년 자전거 총 주행거리 190.5km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니 영하 5도? 순간 눈을 의심했죠. 잠이 덜 깼나? 꽃샘추위네요. 남녘에서는 꽃소식도 들려오건만 바람까지 초속 3m의 북서풍이 불어옵니다. 사실 자전거타기에는 좀 사나운 날씨죠. 그래도 명색이 경칩이라는데, 개구리도 깨어나는 시간인데...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따릉이 타고 출근했습니다.
아침 라디오에서 겨울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데요. 동물들이 겨울잠에 들면 대개 체온이 낮아지고 심장 박동이 느려지며 호흡도 가느다래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겨울잠에 드는 동안 상처가 난 부위 등은 오히려 빠른 회복 속도를 보인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몸이 다른 건 다 느려져도 상처난 곳에는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일 거라는 설명을 하더군요.
어쩌면 우리 사회도 지금 뜻하지 않게 겨울잠에 들어가는 거 아닐까요. 그렇게 잠시 잠자는 동안 아픈 부위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과정일 겁니다. 겨울잠이 끝나면 마르고 약해져 있겠지만 더 건강한 봄을 맞이할 수 있겠지요.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까지 서야할까? 마스크를 사려고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야 평소에도 유명한 맛집이라고 해도 한시간씩 줄 서서 먹는 건 죽어도 싫은 사람이라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줄을 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히려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분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정부에 대한 불신과 위기감으로 인해 그와 같은 무모한 모험(?)을 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마스크 대란을 정부가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예측이 어려운 다양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일 겁니다. 이럴 때는 공권력의 강제력을 집행하는 것도 좋을법한데 하는 아쉬움이....
사실 전 굳이 KF80 KF94 같은 마스크를 쓰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곧 면마스크(방한대)를 사용해 오고 있네요. 나름 이번 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 조처라면 마스크 2~3개를 번갈아 사용하는 것입니다. 먼저 1번 마스크를 쓰고 출근합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곧바로 화장실로 가서 마스크를 벗고 1번 마스크를 비누로 깨끗이 씻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는 2번 마스크를 씁니다. 일과 중에는 계속 2번 마스크를 사용합니다. 마지막으로 퇴근할 때쯤에는 다시 1번 마스크를 사용합니다. 사무실 환경이 워낙 건조해서 속까지 잘 마릅니다. 만일 잘 안마른다면 3번 마스크를 미리 준비해 두는게 좋겠죠. 이때 2번 마스크는 다시 손으로 빨아서 사무실에 말립니다. 이후 1번 또는 3번 마스크를 사용해 퇴근길에 오릅니다. 이렇게 2~3개의 면마스크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마스크 사용을 권고하지 않고 있고 방역 전문가들 역시 일상생활에서는 면마스크로도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며 마스크보다 손씻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디 마스크 산다고 길게 줄 서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 2020. 3. 4. 날씨 구름 약간. 온도 2도 바람 3m/초 🎉아침 자전거 출근 9.9km 🚲 2020년 자전거 총 주행 거리 170.4km
날이 어째 더 춥네요. 아침 7시 기온은 심지어 영하 1도로 나왔는데, 코로나19보다 감기가 먼저 걸리것 같네요.
어제는 학교 선배 덕분에 간만에 고깃집을 갔네요.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점심시간 빼고는 외식을 한 적이 다섯손가락으로 꼽을만큼 드뭅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어들고요. 경기 상황이 최악이라고 하는데 거리와 상가에서는 더욱 체감할 수 있는 상황이겠지요. 다행인지 화요일 저녁시간이지만 당산동 고깃집은 제법 시끌시끌하더군요. 빈자리가 많긴했지만 8시 넘어 단체 손님들(주로 2030)도 들어오고 활력이 좀 보였습니다.
3월부터는 다시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다시 도전해 보려고요. 이번달에 찾아갈 코스는 5구간(동강-수철)입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산청-함양-거창 지역의 양민들(주로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이 학살된 아픔을 안고 있는 곳이죠. 군인들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집들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끌어내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던 사건입니다. 우리때는 거창 양민 학살 사건으로 교과서에 실렸지만 그마저도 축소된 것이었죠. 거창에서 700여명을 살해하기 전, 산청과 함양에서 먼저 700여명을 학살했던 것이 뒤늦게 밝혀졌던 겁니다.
참혹한 역사의 이야기가 담긴 5구간에서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막막합니다. 그래도 다시는 이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 교육이 필요하겠지요.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는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길...
🚴🚴🚴🚴🚴🚴🚴🚴🚴🚴🚴🚴🚴 🏁 2020.3.3. 맑음. 아침 기온 0도. 미세먼지 보통. 🎉 아침 자전거 출근 10.1km 🚲 2020년 자전거 총 주행 거리 160.5km
그냥 감기가 아닐까? 감기도 매 계절마다 다른 인플루엔자가 영향을 미치는 건데. 특정인에게는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도 기존의 감기와 다를 바 없는데... 그냥 그런 생각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사망에 이르게 했으니 그냥 감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죠. 모임과 집회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번 코로나는 잠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시간이 관계를 더욱 무르익게 해 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겠죠. 일상에 침입한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잠시 헤어지지만 따스한 봄날이 오면 더 튼튼한 관계의 다리를 이어갈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해 왔으니까요.
🚴🚴🚴🚴🚴🚴🚴🚴🚴🚴🚴🚴🚴🚴🚴 🏁 2020.3.2. 아침 기온 0도 날씨 맑음 🎉 아침 자전거 출근 10.2km 🚲 2020년 자전거 총 주행 거리 150.4km
보편적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교육은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고 지성을 깨우고 감성을 자극하며 예술적 창의성을 북돋아 주는 요소이다. 잔인한 시절에도 다음 세대를 향한 인간의 교육에 대한 신념은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고, 어쩌면 지금의 문명은 그로인해 지금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유아에서 10대에 이르는 지금의 보편교육은 사회의 필요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경우가 많다. 지적 호기심과 예술적 감성에 호소하는 교육이 아니라 사회에서 어떤 일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의 AI 교육과 코딩 교육 열풍은 10대의 정신 발달의 단계에 필요한 내용이 아닌 우리 사회가 경제 성장을 위해 욕심내는 분야에 대한 욕구에서 출발하고 있다. 고교 학점제 역시 10대 후반 청소년들에게 절실한 교육 내용보다는 진로 직업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우리가 교육과정을 설계할 때,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점은 학생들의 발달 단계와 해당 연령의 시기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만16세~18세에 이르는 고등학교 시기의 학생의 발달 단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인지적 측면에서는10대 중반기에 시작되는 개념적 사고와 과학적 사유가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이다.비고츠키에 의하면10대 중반부터 고등정신 기능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는데,이때 개념적 사고 능력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기초정신 기능 (수동적,반응적)
반응적 지각
반응적 주의
자연적 기억
실행적 사고
고등정신 기능 (능동적,의지적)
범주적 지각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개념적 사고
둘째로,이런 인지적 발달,동료와의 깊은 교류의 확대,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의 고양 및 다양한 경험의 축적,인격적 성장을 바탕으로 세계-타자-자신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이 성장하는 시기이다.
셋째로,이를 바탕으로 세계관,가치관 그리고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이다.따라서10대 후반은 보편적 지성 발달에 결정적인 시기이며,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자(자연 포함)와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가치관과 윤리 의식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한편, 10대 후반은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과 관심 분야가 형성되는 시기이며,미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적성이 구체화되고,자신이 어떤 직업에 맞는지,자신이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풍부해지는 시기이다.즉10대 후반은 성인으로 진입을 준비하는 보편적 성장과 더불어 개인별 특성(개성,적성,취미,진로)이 구체적으로 분화되는 시기이다.
지리산 들녘의 가을 추수는 거의 끝났다. 하지만 밭에서 자라는 배추들은 찬이슬을 맞으며 속을 채우고 딴딴해지는 시기이다. 배추의 수확은 보통 11월 초순경이다. 이때부터 집집마다 김장 준비에 바빠진다. 대개는 11월말에 김장을 담근다. 둘레길에서 만난 배추들은 무척 먹음직스럽게 익어갔다. 배추의 속이 단단해야 좋은 배추다. 속이 텅빈 배추는 무르기 쉽다. 속이 단단한 배추가 되기 위해서는 배추가 다 자란 뒤가 아니라 배추잎이 땅위에 나오기 시작할 때 정해진다. 처음부터 배추잎이 풍성하게 나와야 커서도 속이 꽉찬다. 배추만 그런 게 아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반이라지만, 그 시작을 풍성하고 단단하게 해야 마무리가 꽉 찰 수 있다.
배추들이 김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배추를 볼 때마다 맛있게 갓담근 김치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치를 담그는 시기는 기온에 영향을 받는다. 너무 따뜻하면 김치가 빨리 익어서 안되고, 너무 늦으면 김치가 얼어서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기술은 김치의 익는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의 수확 시기마저 조절할 수는 없다. 배추의 파종과 수확은 자연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배추의 수확은 11월 초순경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자연의 시간은 늘 한결같다. 나와 아내와 아이는 11월 2일 그 시간 속으로 달려갔다. 속을 꽉 채운 배추처럼 우리의 여정도 꽉 차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 다시 차를 몰아 4구간의 마지막 지점 동강마을에 도착한 건 8시 40분 정도. 하지만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난 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시골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떨어지는 낙엽과 흘러가는 구름으로 바람과 계절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도시 속에서 언제 이런 고요와 평화를 느껴볼까.그렇지만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주변 풍경을 보는 일이 어색해서인지 자꾸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계속 걷기 여행을 하겠다면 이런 시간에 빨리 익숙해져야겠다.
동강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3구간 종착지였던 금계마을에서 이날의 지리산둘레길 4구간을 시작한다. 이번 둘레길은 엄천강을 따라 6개의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다. 산길도 있지만 용유담을 지나서는 시멘트나 아스팔트길도 걸었다. 의중마을을 지나 이어진 산길과 송전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맞이한 낙엽떨어지는 길, 운서마을과 구시락재로 이어진 산길 등이 호젓하게 걷기 좋았다.
아침은 쌀쌀했다. 동강마을 옆 원기마을에서 금계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가 춥다고 해서 담요를 둘러주었다. 12월에도 겨울의 시골 들녘을 걸어보고 싶은데, 아이가 떠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강하게 키우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난 준비되어 있는가?원기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 버스로는 30분이면 이동한다. 다만 버스를 한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먼저 온 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쳤고, 다음에 왔던 버스는 금계마을로 가지 않는다고 하여 보냈고, 세번째 온 버스를 탔다. 두번째 버스가 금계마을로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전히 의문이다. 그 기사님은 금계마을로 가지 않는다고 말했을까?의탄교를 건너면서 임천을 사진으로 담았다. 임천은 용유담에서부터 엄천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수량은 적었지만 맑았다. 용유담을 지나면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내려온 물이 이곳에서 합류한다. 지리산둘레길 4구간은 의탄교를 건너 의중마을에서 벽송사-서암정사 방향으로 가는 산길과 임천을 끼고 가는 길로 갈라진다. 우리는 좀더 편한 임천길을 택했다. 의중마을 쪽 큰 나무. 나무들이 가을에 물들어 간다. 대숲에서 바람 소리를 들었다. 소나무는 홀로 대숲과 함께 자랐다. 치고 올라오는 대나무의 성장 속도와 바닥에서 우후죽순으로 뻗어가는 생명력을 소나무가 어찌 혼자 감당했을까. 그저 신기하고 기특할 뿐이다. 물들인 나뭇잎은 보기가 쉽지 않았으나 떨어진 나뭇잎들이 지천에 깔렸다. 지난밤 이슬로 젖어 있어서 그런지 낙엽밟는 소리가 축축하다.
대숲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서 맞는 아침햇살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멋진 풍경이다. 보호수들은 200년 이상을 살았다. 이제 막 10년을 살고 있는 아이와 50년도 채 못 산 우리 부부가 우러러 볼만하다.
다른 나무들이 서둘러 겨울을 준비하며 가을에 물들어가는데, 대나무는 홀로 초록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이다. 색의 향연이다. 햇살이 잘 드는 곳의 낙엽은 잘 말랐다. 두텁게 쌓인 낙엽들을 밟으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이파리가 비처럼 떨어졌다. 고요한 시골 숲길을 거닐면 자연히 말은 줄어든다. 지리산 둘레길 주변의 나무들은 이제사 물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가 11월 초순이다. 멀리 산꼭대기 주변은 진작에 울긋불긋했다. 단풍을 보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었나 보다.
멀리 보이는 다리는 용유교. 그곳이 용유담이다. 기암괴석들이 모여 잔치를 하는 것 같다.
용유담을 중심으로 하는 엄천강은 뛰어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이 한때 지리산 댐의 예정지였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절경이 모두 수장될 뻔했다. 엄천강을 따라 이어지는 절경에 옛사람들도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넋을 놓게 되는 풍경들이 있다. 하나는 장작불이 타는 모습이고 하나는 개울이 여울진 곳을 소리내며 흘러가는 모습이다. 엄천강에도 여러 여울목들이 있다. 큰 기암괴석들이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자잘한 돌들 틈으로 물이 흘러들었다가 빠져나가는 곳도 있다. 용우담을 기점으로 엄천이라 불리는 이곳은 운봉고원에서 흘렀던 임천과는 그 폭과 넓이가 사뭇 다르다. 평원을 가로지르며 흘렀던 임천은 들판을 촉촉히 적셔주기 위해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로 다듬어진 강이다. 그것에 비해 엄천은 지리산 깊은 계곡으로부터 수만년에 걸쳐 내려온 물들이 거칠게 형성해 온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용유담부터 이어진 임천의 절경을 두고 옛사람들도 멋진 시를 지어 읊었다. 그것이 강용하의 '화산십이곡(華山十二曲)'이다. 엄천의 12곳의 풍경을 담은 5언 율시이다. 지금 사람들은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남기며 아름다운 풍경을 기리지만 옛사람들은 풍경을 시로 남겨서 후세에 전하니 더 기품이 있다. 그림이나 사진만으로는 100년 전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없다. 옛사람과 우리의 감회가 다르지 않음은 남겨진 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한자 한자 새겨넣은 글자들이 풍경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전해 준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고, 우리말을 넘어 외국어까지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이지만 정작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자신의 마음을 담는 글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또한 그러하다.
국화꽃의 종류로 보인다. 꽃검색을 해 보니 개국이라는데... 이런 꽃이 여러 곳에 무리지어 지천으로 피었다. 겨울이 되면 이런 꽃들도 다 지고 황량한 풍경을 맞이할 것이다. 계곡에서 내려와 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물
엄천강을 따라 걷는 길은 지리산에서 가장 깊고 신비한 계곡이라는 칠선계곡 주변을 걷는 길이기도 하다. 깊은 계곡에는 당연히 신화와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비한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지어냈다. 보통의 인간이 살기 어려운 세계를 신화나 전설로 풀어내는 방법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했을 것이다.
칠선계곡은 설악산 천불동계곡, 제주도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탐방예약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예약제 구간은 계곡 깊숙한 곳에 한정되어 있으며, 입구부터 비선담까지 4.3km구간은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예약 탐방을 통해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이것도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하다. 산을 즐겨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르막산길로 9.7km를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좀더 가볍게 칠선계곡의 비선담까지만 갔다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근처에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지리산둘레길 4구간에는 이 곳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까지 걸어서 찾아가는 일은 아이 때문에 어려웠다. 그래서 빠른 길을 택하고 대신 둘레길이 빨리 끝나면 그곳을 차량으로 이동해 가보려 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아이가 힘들어해서 결국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는 매우 이색적인 경험이 되리라 기대했지만, 아이가 힘들어하니 어쩔 수가 없다.
운서마을 초입 고갯길에 있는 운서쉼터
둘레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여러 고갯길을 넘었다. 고갯길을 넘으면서 점점 차오르는 숨을 오롯이 느껴 보는 일은 참으로 소중하다. 평상시에는 숨쉬는 것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던 내가 천천히 차오르는 숨을 느끼기 위함이 이 둘레길을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쉼터는 숨을 쉬기 위한 터이면서 다리를 쉬기 위한 터이기도 하다. 쉼터가 있는 고갯길이 좋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번 3구간의 등구령 고갯길 쉼터이다. 여기는 3구간 순방향에서는 등구령을 넘기 전이지만 역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라면 등구령을 넘은 다음이라서 막걸리 한사발 하고 남은 길을 가늠해 보면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이름있는 고갯길은 그곳을 넘나들었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웃음과 한숨이 깊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4구간에서는 구시락재가 있다. 구시락재를 지나면 동강마을이 멀리서 나타난다. 우리가 버스를 기다리던 자리까지 훤하게 드러났다. 아이가 아주 좋아했다.
구시락재를 넘으면 재미있는 장승이 하나 있다. 장승은 입을 삐쭉 내밀고 나그네를 맞이해 주었다.
지리산둘레길 4구간 근처에는 용유담과 오도재, 서암정사-벽송사가 볼만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서암정사를 들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