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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4일 찍은 개봉동 우리집에서

길고 긴 장정이 마무리 단계에 다가왔다. 그동안 하군(마눌님 애칭)과 뜨기(태아 애칭)에게 서운하게 할만한 일이 많았다. 하지만, 하군은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나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홀로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언제나 많은 것을 이해해 주었고, 뜨기는 새벽에 들어오는 아빠의 음성을 잊지 않고 힘찬 발길질로 맞아 주었다. 

직장인의 밥벌이 노동은 어디가나 비슷하겠지만, 교과서 편집 업무는 마치 수많은 야수와 독충들로 우글거리는 정글 속을 탐험하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거다. 오늘도 아는 후배 하나는 나에게 말했다.
"정말로 나 죽을뻔 했어요."
그 말이 결코 평범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이처럼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노고 속에서 탄생한다.

단행본 출판사에서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 어쩌면 교과서일 수도 있겠다. 고작 150여쪽의 음악 교과서를 만드는 데 왜 1년이나 걸리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아이들은 150여 쪽의 책을 1년간 들여다 보게 된다. 그 1년의 시간동안 한치의 빈틈도 없이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아야 하는 것이 교과서이다. 단 한 쪽도, 단 한 줄도, 단 한 글자도 허투로 만들 수 없고, 쉽게 지나칠 수 없어서 심사본 제출일이 시작된 오늘도 어디선가는 다시 인쇄소를 찾아가 재인쇄를 들어가는 게 교과서다.

책은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쌀 한톨을 위해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번 가듯, 책 한권에는 교과서 한권에는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모아야 한다. 그것을 모으는 사람이 편집자이다. 편집자 스스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 있어도 책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하나의 책이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과정에 함께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이러한 과정처럼 많은 사람들의 온기와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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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10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녹색평론사




언젠가 우리는 모두 생활(수준)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기준으로, 부(가진 것)의 척도가 아니라 나눔의 척도로, 표면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내면적인 선함으로 평가될 것이다. -윌리엄 아서 워드

누군가가 그랬다, 성장은 본능이라고. 그렇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성장한다. 그러나 그 성장의 끝에는 반드시 소멸이 있다. 생성, 성장, 소멸 이 세 가지는 불변의 진리다. 이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그 중 성장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신문의 한편에서는 오르내리는 환율과 주가와 함께 경제성장률이 어떻게 바뀔지 시시각각 전달한다. 도대체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지면에 오르고 있는 경제성장률 수치는 마치 성장하지 않으면 곧 죽음이라는 마법의 주문 같이 사람을 현혹하고 있다.

그러나 정반대다. 빠른 성장은 오히려 소멸의 시간을 더 빨리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학자들이 지구 환경의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지금 당장 자원의 소비를 줄이고, 환경과 생태를 고려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그런 경고를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구환경은 이미 재앙의 혼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두 번 다시는 안 일어날 거라는 확신을 아무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경제성장에 대한 환상은 이제 접어도 되지 않을까. 문제는 성장의 수치가 아니라 성장의 질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세상에 나온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국가와 폭력에 관해 알기 쉽게 정리해 주었다. 20세기 국가에게 절대 권력을 주고 교전권을 준 결과가 1, 2차 세계대전이며, 최근의 대부분의 분쟁은 국가와 자국민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과연 국가에게 전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합당한지 묻고 있다. 그리고 결코 모두를 부자로 만들 수 없는 지금의 시스템을 지적하고, 빈부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의’는 경제적인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나아가 경제 제도를 민주화하기 위해 정치적인 민주화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우리는 집단적 욕망과 개인적 두려움, 그리고 무기력 속에서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는 우리에게 만원 한 장의 행복이 사라진 팍팍한 일상을 선물했고, 허약한 민주주의를 뒷골목으로 쫓아내고야 말았다.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권리,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되는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게다가 한반도 남쪽의 산하를 온통 공사판 먼지구덩이로 만들고야 말 태세다.

이런 불합리와 부정과 반인권, 반생태가 판치는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지금, 밤 11시로 향하는 사무실에 앉아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있다. 넘어오지 않는 교정지를 기다리고, 책에 들어가야 할 사진을 찾아야 하는 시간인데 오래 묵혀둔 책을 뒤적거리며 정리하는 지금이 그래도 행복하다.

문득 책을 덮었더니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씌어졌다.

- 과로에 지쳐 있는, 혹은 노동 현장의 부자유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샐러리맨이나 사무직 여성을 포함하여) 노동자.

이 외에도 권하는 유형의 사람은 많지만 꽤 나를 자극하는 저 말은 맨 위에 첫 번째로 나온 문장이다. 아, 마지막 문장도 나에게 딱 맞다.

“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 할 것인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더글러스 러미스 (녹색평론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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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인 구례를 찾아갔을 때 장장 24시간에 걸쳐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그 기록은 여간해서 깨지지 않는 저의 귀향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귀성 전쟁은 비단 저만 치르는 것은 아니죠. 추석 이후에는 너나없이 모여 서로 어떤 귀성전쟁을 치렀는지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한국인이면서 고향이 먼 시골이라면 대부분은 겪어봤을 고통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향길이 아니라 고행길이라지만, 어쩌면 이 분들을 앞에 놓고 생각하면 ‘사치에 가까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산가족 문제입니다.

오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남북 각각 100가족이 극적인 상봉을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이후로 끊어졌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산가족 문제를 인권적 문제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인권선언문 중 제16조의 3항에서는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로서 가정을 지켜야 할 의무를 사회와 국가에 있다고 규정한 것이죠.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비슷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죠.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11월에 ‘북한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에서, ‘정부는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과 같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들의 문제는 분단과 전쟁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다른 인권문제 보다 정부의 노력이 한층 더 요청되는 사안들이다. 정부는 이 사안들에 대하여 북한과 조건 없이 협의하여 이 사안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의 이산가족 문제는 헤어진 가족들이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급선무일 듯합니다.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1세대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가족상봉 참가를 신청한 사람만 127,343명인데, 지금까지 대면상봉 16,212명, 화상상봉 3,748명만이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가족을 못 만나고 사망한 이산가족이 39,000여명에 달합니다. 지금까지 10년에 걸쳐 상봉 행사를 가져왔지만, 신청자 중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먼저 사망한 사람이 많을 정도인 만큼 남은 신청자들이라도 하루 빨리 상봉할 수 있게 하는 조치가 시급한 현실입니다.

이번 상봉에서 최고령자인 96세의 박양실 할머니는 딸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금강산까지 머나먼 여행길을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저야 아무리 걸려도 24시간이었지만, 이 할머니는 50년을 넘어서야 딸을 만나게 된 것이죠. 우리 사회, 나아가 남과 북이 분단과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시급히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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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동네나 학교 운동장에 친구들과 놀 때면 늘 깍두기 한두 명씩은 껴있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아주 어렸을 적에 형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깍두기를 자처하던 때가 있었죠. 이때 깍두기는 기량이 많이 떨어지거나 신체적으로 핸디캡이 있는 이들을 놀이에 껴줄 때, 특별한 지위나 능력을 부여해 놀이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깍두기라서 행복해요

며칠 전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 현호(가명)와 신영(가명)은 어렸을 적에 늘 깍두기를 단골로 맡았던 사람들이었죠.

현호는 어렸을 적에 운동신경이 몹시 둔했다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낀 팀은 패배를 밥 먹듯이 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눈치를 보는 게 무척 싫었다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기는 깍두기가 되어 놀이에 참여하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그럴 때, 실수를 하거나 도전의 한계치에 다다르면 오히려 친구들이 도와주거나 요령을 더욱 자세히 알려주었고, 격려나 응원의 목소리도 다른 친구들에게 보다 더 많이 받았다지요. 게다가 다른 친구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기술이나 도전을 해결하면 다들 함께 좋아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특권적인 배려를 받은 셈이지요. 현호는 깍두기 생활을 하다가 어느새 기량과 실력이 늘어서 어느 날은 깍두기를 하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깍두기는 죽기보다 싫었다구

반면, 신영은 정반대로 깍두기 되는 게 무척이나 싫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작아 또래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깍두기를 도맡아 했죠. 친구들은 깍두기가 아니면 놀이에 끼워주지 않겠다고 그러고, 그러면 자신은 깍두기 되는 게 싫다며 억지를 부리지만 번번이 어쩔 수 없이 깍두기를 하여 같이 어울렸다고 합니다. 신영은 그래서 악착같이 혼자 또는 짝궁과 따로 연습을 했죠. 그리고 그렇게 연습한 끝에, 여전히 자기보다 키가 큰 아이들이 머리 위로 올리는 고무줄은 잡을 수 없었지만, 낮은 위치의 고무줄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현란한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하는군요. 신영은 그런 데서 자신감을 느끼고,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을 키워왔다고 하는군요. 다른 친구들과 당당히 겨루고 싶고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싶었던 바람이 때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죠.

‘깍두기’, 현호에게는 승패를 떠나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어울릴 수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죠. 반면 신영에게는 놀이에서 자신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렸던 친구였습니다.

깍두기를 생각하는 인권의 마음

인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마땅한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이나 노인, 여성, 청소년, 성적소수자들은 어쩌면 놀이의 ‘깍두기’같이 보다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깍두기라고 해서 언제까지 깍두기만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언젠가 그 사람은 깍두기에서 벗어나 하나의 온전한 객체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깍두기’라는 사회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그 기회이며 삶의 자극인 셈이죠. 깍두기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마음, 어릴 적 놀이의 추억에서 인권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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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조카인 은아(대학생), 은미(중학생)는 아내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다. 함께 한집에서 살면서 때로는 자매처럼, 때로는 모녀처럼 가까웠다. 어렵고 힘들었던 서울 생활에서 여자 넷이 사는 집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은 모멸차기 그지없었고,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마음 속 깊이 아끼고 사랑해야만 견딜 수 있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모가 뒤늦게 시집을 간 배경에 대해 처형은 “저것(아내)이 아이들 돌보느라 연애도 못하는 거 아니다 싶었어.”라고 말했다. 지금도 은아와 은미는 이모를 무척이나 따르고, 내가 이모의 남편이라는 사실만으로 낯선 나를 이모부(심지어 어린 은미는 나를 오빠라고 부를 때도 있다-_-;;)를 잘 따라준다.

지난 7월 조카들과 함께 집의 차를 빌려서 남이섬에 다녀왔다. 짧은 한나절의 여행이었지만, 결혼하고 처음으로 가진 아내와 조카들의 시간에 함께 하면서 봉사한다는 기분은 전혀 없었으며 내내 입에서 웃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도 조카들과 있으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자식을 보는 어머니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는 표정을 보는 듯했다.

언젠가 은아도 결혼을 할 것이고, 은미도 쑥쑥 자라서 언니의 키를 넘어 이모 키보다 더 커질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들에게 나는 즐겁고 행복한 가족의 일원으로 슬며시 스며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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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4일(월)부터 16일까지 서울광장에서는 인쇄문화축제가 있었다. 축제 기간 동안 행사 주최측에서는 교과서 전시관을 열었는데, 그 배치와 운영을 금성출판사가 맡았다. 그리고 그 일은 다시 나에게도 떨어졌다. 이 일을 위해 오래된 교과서 목록을 뒤져야 했고, 금성출판사의 옛 교과서를 찾기 위해 각 교과서팀을 순회해야 했으며(물론 번번이 허탕을 쳤다), 옛날 교과서를 대여하기 위해 파주의 한국검정교과서협회와 논현역 앞의 교과서 연구재단을 오가야 했다(지도를 보면 그 거리가 어마어마하다).







예전에 비해 경찰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인쇄출판축제 구조물(사진)을 설치하면서도 시청 측과 실랑이가 있었단다. CCTV가 시야를 가리니 설치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사정사정해서 설치를 했다는 말을 관계자로부터 들었다. 평범한 인쇄출판 행사에서도 감시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경찰청 직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금성출판사가 교과서 전시회를 하니, 역시 노인네들 중에는 “왜 금성출판사는 교과서를 잘못 만들었느냐?”며 조심스럽게 따지는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일부러 7차 교육과정 교과서를 전시한 곳에서 근현대사 교과서를 찾는 분도 있었다. 3일 중 첫날 오전에만 자리에 있었던 만큼 그런 사람이 또 없었을까? 물론 근현대사 교과서는 일부러 전시장에서 빼놓았다. 시청 광장에서 보수들이 데모하는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실장님의 배려(?)였다. 고달픈 근현대사 교과서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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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통

아내 덕분에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다. 이른 아침 정갈하게 반찬을 담는 아내의 손길을 보면 하루의 시작부터 행복이 가득하다. 도시락에 담기는 정성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도시락을 다시 싸게 된 게 얼마만일까.

초등학교 때는 도시락을 놓고 등교한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학교까지 찾아오신 적도 있다. 집안 사정을 모르지 않아 반찬 투정은 생각도 못 했지만, 그래도 정성들여서 싸주신 밥 위에 잘 부쳐진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 있으면 행복했다. 겨울철에는 교실 한 가운데 있는 둥글고 못생긴 난로에는 항상 양철도시락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주변에 보온도시락들이 곁불을 쬐고 있곤 했고, 간혹 불이 너무 세서 밥 타는 냄새가 교실에 진동하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다시 도시락을 싸게 된 건,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아내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면 직접 김치에 밥, 그리고 계란 프라이 정도로 간편하게 싸고 다닐 작정도 했다. 그만큼 도시락은 선택이라기보다 나와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이런 약속을 한 데는 바깥에서 먹는 밥의 양과 영양적 불균형 문제가 한몫했다. 도시락을 싸면서 점심 식사의 양이 많이 줄었다. 게다가 아내가 식단을 약간 싱겁게 꾸미고 있어서 짜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식당의 음식보다 간결하고 부담이 덜하다. 도시락의 크기도 예전에 비해 많이 작아졌다. 그렇다고 영양 섭취 기준에 부족한 것도 아니다. 밥은 콩, 팥, 검은쌀, 보리 등등 다양한 잡곡들이 들어간 영양밥이다. 무엇보다 여러 직원들이 도시락을 싸오다 보니 다양한 음식들을 골라서 먹을 수 있어서 반찬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2008년 11월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 1671명 중 31.3%가 경기불황으로 점심식사 해결 방법을 바꿨다고 응답했고, 그 중 39.2%가 ‘도시락을 싸온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가 있던 작년에 비해 요즘의 경기는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서민경제는 여전히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같은 층에 있는 직원들 중에는 매일 6~8명이 항상 도시락을 가지고 온다. 우리가 근무하는 층의 전체 직원 숫자가 19명 정도이니 도시락족이 적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도시락을 통한 경제적 이익은 얼마나 될까. 이전까지 내가 3500원짜리 구내식당 밥을 먹어 왔고, 일주일 5회에 한달 4주로 계산하면, 3500원×5회×4주=70000원이니 한 달에 70000원 정도의 점심값을 절약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금액이 일 년이면 90만원에 육박한다. 작은 돈이 아니다.

물론 이 글은 당신에게 도시락을 싸라고 권유하는 게 아니다. 추억 속에 있어야 할 도시락이 다시 내 삶에 찾아온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 도시락이 다시 등장한 데는 다시 찾아온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졌다는 걸 말하고 싶다. 여기에 식재료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또 크게 한몫했다. 도시락의 등장 배경에는 가난에 대한 불안과 건강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불평이 드리워져 있다. 내가 오늘 먹은 도시락은 분명 사랑과 낭만의 도시락이지만, 이 도시락에 얽혀 있는 사회 현상의 그늘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도 어느 밥을 먹든 건강하고 즐겁게 먹자. 당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쌀 한 톨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게 도시락이든, 식당 밥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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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사용될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20만부가 이미 인쇄가 끝나고 배포만 남아 있다. 20만부의 주문은 이전의 30만부에 가까웠던 발행부수에 비해 줄어든 건 사실이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많은 채택부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교육 현장에서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가치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법원의 배포 중지 판결이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 채택과 주문이 끝나 책이 인쇄되어 배포만 남아 있는 상태인데, 법원의 판결대로 한다면 , 학교 현장에서는 다시 다른 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주문하거나 수정 이전의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를 인쇄해야 하는 상황이다.

계속해서 항소를 하여 대법원의 판단을 묻겠다고 하지만, 당장 교과서 배포를 어떤 명분과 방법으로 해야할지가 걱정일 것이다. 교과부는 법원에 가집행 소송을 내서 현재 인쇄된 수정 교과서를 배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법원을 설득할지 알 수 없지만, 여기서 저자들이 반대로 강제집행 금지 소송을 낼 수도 있다. 소송에 또 소송이 겹친다. 게다가 항소도 만만치 않을 사안이다.

속시원하게 교과부가 발행정지 명령을 내리거나 검정 취소를 하면 될 일이다. 물론 이럴 경우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청와대는 골이 아픈게다.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인 장본인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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