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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은 빠르면 18주부터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민감한 산모의 경우가 그러하고 보통은 20주부터 느낄 수 있다는데, 이미 아내는 18주부터 약간의 미동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에는 손을 올려놓거나 가만히 뺨을 대보아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주부터 확연히 뜨기의 힘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손을 가만히 대고 있는데 지긋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뜨기가 느껴졌다.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짝 건드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그 느낌은 마치 신과의 대면처럼 놀라운 경험이다.

태동은 보통 28~32주까지 점점더 강해지고 반복횟수다 늘어난다. 이 태동을 통해서 태아의 건강함 유무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태동의 횟수 파악은 보통 식사 후에 하는 게 좋으며 아이가 활발한 시간(대게 저녁 시간)에 옆으로 누워 메모지를 준비해 놓고, 태동을 체크한다. 한 시간 동안 10회 이상 태동을 느낄 수 있다면 아이는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참고 : '다음 지식')

책을 많이 읽어주어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쉽지 않다. 어제까지는 선덕여왕 탓을 했는데, 오늘부터는 더 열심히 책을 읽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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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입맛대로 교과서 손보기 ‘제동’

한겨레 1면에 금성출판사가 나오다니, 창사 이래 고만고만한 학습지 교과서 출판사가 신문지상의 1면 머릿기사로 등장한 예는 그리 흔치 않다. 어찌됐건 전대미문의 이런 관심에 금성출판사가 덩실덩실 춤을 출만한데 내용은 그다지 유쾌한 내용이 아니다. 실상 울고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여러 언론들의 반응을 정리한 민노씨의 글-[오늘의 사건/사설] 금성 역사교과서 수정 사건-참조)

보도 내용은 이러하다. 재판부는 금성출판사에서 발행한 근현대교과서의 발행과 배포를 중지하는 한편 금성출판사 측에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어 각각의 저자에게 400만원을 배상토록 판결했다. 한겨레신문 등은 이번 판결을 교과부의 인위적이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 수정에 일침을 가하는 판결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내용은 법률로 보호되고 있는 저작권(정확히 저작인격권)과 하위 규정인 교과부 규정(대통령령 포함)과 사인간의 계약 조건의 싸움이었다. 저작권법의 강위력함은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알려져 있으니, 이 게임은 당연히 상위법인 저작권법의 승리로 끝날 것은 눈에 보듯 뻔한 결과다. 그래서 그런지 법원과의 싸움에서 수정의 내용이 저작인격권을 훼손할 만한 내용이냐 아니냐가 쟁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적 내용이 수정되는 만큼 법원은 저작자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번 판결에 금성출판사 관계자는, “교과서는 다른 출판물과 달리 집필 과정 전체가 교과부의 지침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번 판결은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한 것이라고 본다”며 “출판사 처지에서는 항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나왔다.
이 속내를 들여다 보자면, 교과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나, 이후의 교과서 수정지침 등이 모두 교과부에서 나오는 만큼 판결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나 언급이 없던 것이 아쉽고, 좀더 나아가자면 출판사는 억울하다는 점일 게다.(어디까지 나의 상상일 뿐, 직접적 사실과의 관계는 알 수 없음)

다음 교과부 관계자의 말은 "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을 보고 난 뒤 대책을 마련하는 게 맞다"라고 했다. 사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얻기 위해서는 소송당사자들이 항소를 해야 한다. 저작자들이 항소를 제기한 목적은 수정된 교과서의 발행과 배포를 중지하는 것이었던 만큼 그것이 받아들여진 판결에 항소를 할 이유는 없다. 반면, 금성출판사의 경우 항소를 하던가, 판결대로 발행을 중지(배포는 검정교과서협회의 소관)하는 수밖에 없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위 규정이나 명령이 상위법률을 이길 수는 없는 만큼 항소를 해도 이기기 힘든 싸움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하겠다는 입장에 혹시 교과부 관계자의 입김이 서려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항소를 통해 계속해서 책을 발행한다면 그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익이 앞으로 대법원까지 들어가는 소송비용이나 시간 비용, 회사 이미지 등을 고려한다면 이익을 장담하는 것도 어렵다.

여러가지 또 다른 변수들이 있을 수 있다. 어찌됐건 고래싸움(이념 논쟁, 저자와 교과부의 싸움 등등)에 새우등(출판사와 편집자) 터지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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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금성사, 역사교과서 임의 수정 부당”

사실은 예상했다. 점점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저작권법의 영향력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금성출판사로서는 그대로 발행해서 정부로부터 검정교과서 발행권 정지를 먹고, 국정교과서 입찰에 제한을 받는 것보다 법원으로부터 이번 판결을 받는 게 아주 조금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교과서를 만드는 전문 출판사로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방침이나 지침을 거부한다는 것은 회사 문닫겠다는 각오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이로서 정부로서는 손 안대고 코 풀었다고 할 수 있다. 법원의 판결과 정부 방침에 따라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는 내년에 시장에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정되지 않은 교과서를 출판할 경우 교과부가 제재를 가할 것이기 때문에, 출판사로서는 책의 발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편집자나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대형 출판사라고 하는 금성출판사도 이럴 때 보면 고래싸움에 끼어 있는 새우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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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가을이다.
마음도 가을로 간다.
이 가을 모두에게 평안을...

9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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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 <킹콩을 들다>는 우리나라의 비인기 종목을 주제로 한 감동의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주목해 보는 이유는 기존의 스포츠와 달리 여기에는 중고등학교 운동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 스포츠 분야가 점차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지금 중고등학교 운동선수를 다룬 이 영화는 인권적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 문제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위악적인 캐릭터가 학생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영화적 설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008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6개월여에 걸쳐 실시한 학생운동선수 인권 실태 조사에서 나온 학생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지도자가) 뺨을 때려요. 별 이유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쌍둥이 있거든요. 피하다가 고막이 나가가지고 수술했거든요. 그러면 안 때려야 되잖아요. 작심삼일이에요. 삼일 지났다가 또 때려요... [중3, 농구]

(지도자가) ××년아, 니 그럴 거면 꺼지라면서, 그리고 니는 뭐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인간 대접도 못 받는다면서 막 뭐라고... 진짜 싫고...[중2, 핸드볼]

선생님한테 선배가 혼났을 때 (선배가) 정말 선생님하고 똑같이 대가리 박으라고 하고 발로 밟고 그러지요...[고3, 농구]


이 실태조사 결과 75%의 초등학생 선수들이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경함하고 있고, 주당 평균 신체적 폭력 피해 횟수도 3~4회에 이상이 40%, 주당 11회 이상이 5.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에게 나타나는 폭력은 다시 하급생이나 후배에게 전달되는데, 이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프로야구팀의 2군에서 선배가 후배를 야구배트로 폭행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라는 프로야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둘째 학습권 보장의 문제입니다. <킹콩을 들다>의 주인공 이지봉은 학생들이 운동 연습때문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우려합니다. 그래서 따로 영어 공부도 시킬 만큼 어린 학생들의 수업을 챙기지요.

국가인권위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문제는 제기됩니다. 실태조사에 응한 어느 고등학생은 “더하기 빼기부터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의 정규 수업 참여시간은 평균 4.4시간(시합이 없을 때이며 시합이 있을 때는 이마저도 2시간 까먹는 2시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수업결손에 따른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더더욱 학교 수업과는 멀어집니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학교 양궁선수로 뛰고 있는 김하늘(가명) 양의 말입니다.


“5학년 정도 되면 소년체전이라는 게 있어요. 거길 붙으면 그 전에 한 달 전부터 합동훈련하고 적응훈련 다니고… 그러면 수업을 빠지니까 점점 성적이 떨어지잖아요. 그럼 어떻게 채울 수가 없으니까 운동이라도 해서 그걸로 밀어붙이고 나가라. 이러고……”


많은 학생운동 선수들이 과도한 훈련과 시합 출전 등으로 정규 수업을 받지 못하여 제대로 된 학습권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수업 결손에 따른 제도적 뒷받침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학생 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도 다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결국 하고 싶지 않은 운동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코치선생님의 헌신과 관심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뒷받침(예를 들어 최저학업기준인정제 등)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바로 학생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문제이지요.



스포츠라는 분야가 강한 근성을 요구하고, 그런 근성을 위해 일정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이 승리의 영광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에게 근성을 빌미로 행해지는 폭력은 잠깐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상처를 남기는 일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지봉 코치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동메달을 땄다고 해서 인생이 동메달이 되진 않아. 그렇다고 금메달을 땄다고 인생이 금메달이 되진 않아. 매순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금메달이야.”

자라나는 아이들이 폭력이 무서워서, 혹은 승리에 눈이 멀어서, 상대방을 운동의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대하고 페어플레이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듯이 운동 경기를 치르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경험인지 알려 줄 수 있는 분야로 스포츠만한 것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 국가인권위 블로그 '별별이야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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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벌써 2주를 넘어선 듯하다. 하루에 1000개씩 넘는다. 물론 1000개를 단번에 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동안 자전거 출퇴근을 해왔지만, 줄넘기 1000개는 다시 그전과는 다른 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이것대로 쉽지 않다.

그러나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1000개라는 숫자에 놀랄 일은 아니다. 1000개의 줄넘기를 하는 데 30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30분의 시간에는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스트레칭 및 숨쉬기)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30분의 짧은 시간을 우습게 볼 수 없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특징도 있겠지만, 온몸을 뒤덮어 버리는 땀을 보면 줄넘기의 운동량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줄넘기는 보통 앞발로 뛰어야 무릎이 아프지 않다. 힘들다고 해서 뒤꿈치까지 바닥에 쿵쿵 떨어뜨린다면 발목과 무릎에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뒤꿈치를 들고 앞발로 콩콩 뒤면서 시선은 정면을 향하는 것이 좋다. 또 줄넘기는 다리 힘만 강화시키는 게 아니다. 줄을 돌리는 손목과 팔의 힘도 만만치 않게 키울 수 있다. 1000개의 줄을 넘고 나서 가장 먼저 뻐근한 느낌이 오는 것은 발목 부분의 종아리 근육과 손목 근육이다. 이 밖에도 줄넘기는 온몸의 근육을 사용한 유산소 전신운동이면서 아주 작은 공간과 줄만 있으면 효과적인 운동을 할 수 있어 바쁜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운동이다.

지금까지 숫자를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1000개 이상의 줄넘기를 2주 동안 간간히 하고 있으니 대략 1만개의 줄을 넘어서지 않았을까 싶다. 요새는 집앞 벽돌에 그날그날의 줄넘기를 표시해서 언젠가 1백만 개의 줄넘기(하루에 1000개씩이면, 3년이 걸린다) 기록을 만들어 ‘백만돌이’의 꿈을 꾸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자문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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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태동은 20주 이후부터 느낀다고 한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보니 초산부는 임신 6개월부터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제밤 아내는 태동이 느껴진다고 했다. 누워 있다가 깜짝 놀라서 나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냥 상상으로 지어낸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동안 내내 얼굴에서는 놀라움과 신기함,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혹시 나도 느낄 수 있을까 해서 가만히 손을 올려보지만 손으로 전달되는 느낌은 없었다. 아무래도 엄마라서 뱃속에서 움직이는 느낌을 예민하게 느끼는 것이겠다. 그러나 이제 내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에 놀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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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교 다닐 때 새 교과서를 받으면 그 냄새부터가 기분이 좋았어요. 집안이 넉넉지 못해서 새 책을 사주는 일이 드물다 보니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이면 눈코입귀손 등 오감을 동원해 책을 느끼며 좋아했지요. 그리고 지난 달력을 가져와 교과서를 표지를 싸는 일도 즐겁기만 했는데요.

그런 시절에도 누구나 한번쯤은 교과서에 낙서 한 번 안해 본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표지의 ‘국어’를 ‘북어’로 ‘수학’을 ‘잠수함’으로 고치는 장난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듯합니다. 무엇보다 교과서 삽화에 장난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아이들의 교과서 낙서를 보면 순정만화 그림부터 성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그림, 코믹한 그림 등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낙서들이 넘쳐납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본 청소년들의 낙서를 보면서, 일찍부터 경쟁 체제에 내몰린 아이들이 그 스트레스를 교과서에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혹 무시무시한 폭력 장면, 살인이나 폭행 등을 그려 넣은 엽기적인 그림도 더러 볼 수 있는데, 그 정도로 청소년들의 낙서에서는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칼이나 총, 살인, 폭력, 욕설 등이 예사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청소년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학업에 대한 부담감도 크고 학교 수업보다 학원 수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로 인해 교과서가 무시되고 있는 현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이 졸리거나 지루하면 교과서에 낙서를 합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모든 아이들을 만족시키는 수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선생님들이 좀더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수업을 고민하고 개발한다면 교과서 낙서도 줄지 않을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 교과서 역시 잘 만들어야져야 합니다. 교과서에 인권침해나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 그것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죠. 그런 폭력을 교과서가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 교과서들은 무심결에 인권침해, 혹은 차별적인 요소들을 삽화로 사용한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위 그림은 지난 교과서입니다. 두 삽화에서 여성이나 여아는 집안일, 육아를 담당하는 것으로 성역할을 고정화하는 편견을 담고 있습니다.




왼쪽 삽화에서는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 그리고 직업군인은 모두 남자로 그렸습니다. 오른쪽 삽화에서는 의사와 조종사, 경찰은 남성으로 교사와 간호사는 여성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역시 남녀를 차별하는 그림입니다.




왼쪽 삽화는 남성은 일, 생산에 종사하는 반면, 여성은 가사, 양육을 전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오른쪽 삽화에서는 국제협약을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각국 대표를 모두 남성으로만 그리고 있습니다.

교과서의 삽화는 아이들에게 해당 학습 내용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중요한 학습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해당 학습 내용에만 국한되어 인권적인 내용을 소홀히 한다면, 작은 걸 얻고 큰 것을 잃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라도 댁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교과서를 펼쳐 보세요. 자녀분들의 교과서에는 어떤 낙서가 되어 있나요?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낙서들이 있다면 무조건 야단칠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반면 아이들의 그림이 폭력적이라면 자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교과서 안의 삽화들을 살펴보세요. 살펴볼 때는 다음 2가지 관점에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고정관념에 따라 삽화를 구성한 것을 찾아보세요.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만 입고 있는 삽화, 여자만 집안일을 하고 있는 삽화, 여성이나 여아를 집안일이나 비역동적인 놀이를 하는 삽화 예를 들어 남아는 축구, 여아는 공기놀이 등을 하는 삽화, 중요하거나 고위직 등의 직업이나 직종은 남성 중심인 삽화 등을 찾아봅시다.

둘째, 삶의 다양성이 드러나도록 그려진 삽화를 찾아보는 거죠.

외국인을 그릴 때 긍정적인 모습에는 유럽계 외국인, 부정적 모습에는 아프리칸계 외국인으로 구분지어 그린 삽화는 없을까요? 또 놀이를 하거나 활동을 할 때 장애인을 넣지 않은 삽화도 생각해 볼 문제죠. 그리고 국제결혼 2세대 자녀의 모습도 삽화에 담겨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문제겠지만, 세심한 배려나 관심으로 세상은 더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작은 편견이나 차별이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고 상처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때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권위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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