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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생명의 성장은 여러 사람들의 축복과 관심에 있다는 말이다.


지금 아기는 병원에 있다. 처음 2.02kg이던 몸무게는 계속 줄어들더니 1.83kg을 최저점으로 한 금요일 이후부터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아기의 몸무게는 처음 일주일은 줄어들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아내는 200g 가까이 줄어든 아기 몸무게에 슬퍼하였다. 아기의 몸무게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주 토요일. 어제 병원에 다녀온 아내의 말에 따르면, 다음 주 월요일, 즉 28일에는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아기와 함께 집에서 새해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아내의 몸조리를 위해 장모님이 올라오신 것은 지지난주 월요일, 그러니까 아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날이었다. 당초 예정했던 1월말보다 한 달 반이나 일찍 올라오는 바람에 메주를 쑤는 일도 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마도 농촌에서 겨울 농한기 기간 동안 해야 할 여러 일들을 못하실 것 같다. 그러나 외손녀를 만나는 장모님의 마음도 뿌듯하신 듯, 아내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후년이면 70을 바라보시는 장모님의 나이를 생각하면 산모 돌봄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오랜 경험과 삶의 지식을 바탕으로 장모님은 꼼꼼하고 세심하게 아내를 보살펴 주셨다. 장모님은 “여자는 몸을 잘 풀어야 나중에 고생 안한다”는 말을 누누이 강조하시면서 아내를 꼼짝 못하게(?) 하고는 먹을 것과 잠자리 등을 살펴 주시고 있다. 내가 출근한 이후부터는 홀로 아내 수발을 들고 있으니 그 수고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른 출산 때문에 미처 하지 못한 아기 기저귀나 옷가지들을 미리 세탁하고 삶는 일은 아내의 작은 올케 언니가 도움을 주셨다. 큰 올케 언니는 아기용 이불을 사서 보내주셨다. 아내의 어린 조카들은 종종 아내를 찾아와 아기가 옆에 없어 우울한 아내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후배 윤정과 세나, 직장 동료 민서 씨 등은 전화와 메신저 등을 통해 산모에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비롯해 육아에 도움 되는 정보 등을 꾸준히 전달해 주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최근에 아이를 낳은 산모라서 더더욱 살아있는 정보이고, 따끈한 최신 소식이라서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내는 항상 “참 좋은 사람들”이라며 꼭 인사를 전해달라고 한다.



윤정은 씨의 선물^^




어제는 직장 동료 윤정은 씨가 출산을 축하한다면서 아기 모자와 장갑, 양말, 수건 등을 선물해 주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아 기뻤고, 아내 역시 앙증맞고 귀여운 아기 장갑과 모자, 양말을 보면서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밖에 출산 소식을 접한 지인들의 수많은 축하 인사와 조언 등을 여기에 모두 적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 습관 중에는 ‘우리’라는 말을 자주 넣는 전통이 있다. 나는 여기에 ‘우리 아기’도 넣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축복으로 태어나고 성장해 갈 ‘우리 아기’이기 때문이며, 이미 그런 관심과 축복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기가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길 바라고, 그 안에서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며,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런 세상은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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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나 돌아보면 산통의 시간만큼 길고 긴 시간이 있을까. 그러나 이제 그 시간도 지나간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죽을 만큼의 고통마저 아름답게 만들어준 한 생명이 환하게 피어났다.


지난 주 금요일(11일) 밤, 아내는 다시 이대 목동 병원에 입원했다. 저녁 식사 이후에 다시 시작된 진통은 이전보다 구체적인 통증을 주었다고 한다. 3~5분 간격으로 진통을 느낀 것이다. 이대 목동 병원에 옮겨 당직 의사로부터 들은 소견으로는 이전과 비슷하며 진통의 강도가 약간 세진 정도라고 한다. 우선은 진통대기실에서 진행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내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옆에서 나도 잠들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아내는 작은 오빠와 올케 언니와 통화했다. 9시쯤 올케 언니와 오빠가 도착하고 난 잠시 사우나에 가서 좀 쉬었다 오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자리를 뜬 이후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가 다시 돌아온 12시에 본 아내의 얼굴은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힘들었지만,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난 자리를 뜨지 않고 옆에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뿐, 아내는 울었고, 나는 절망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 고통을 멈추고 수술을 시키고 싶었지만, 의사가 수술하겠냐는 물음에 아내는 참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참을성도 오래 가기 힘들었다. 오후 2시를 넘어가면서 아내는 정신을 잃기도 했고, 어떻게 좀 해달라며 울부짖었다. 정말로 무섭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을 산고에 비유할 수 있을까. 없다.


아내의 산고는 아이가 이미 내려온 상태에서 자궁문이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서 더 극심했다고 의사는 말했다. 아침 9시에도 20% 열렸던 자궁문은 오후 2시가 넘어가도 그 상태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후 3시 즈음, 온 분만실이 아내의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 의사들도 의아해하면서 다른 처방을 내릴 게 없다며 안타까운 눈길만 던졌다. 그러다가 어떤 의사가 와서 정신없는 아내에게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자세와 호흡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때부터 아내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었고 고통을 다리 힘으로 모으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제대로 호흡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자세와 호흡을 제대로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자궁문이 열렸고, 지난 6시간 동안 열리지 않던 자궁문이 빠르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시 10분, 아내는 급박하게 분만실로 이동되었고 분만실에 들어간 지 12분 만에 아이를 순산했다.


아이는 33주 5일 만에 세상 바람을 맞았다. 울음은 우렁찼다. 그동안 병원에서 들었던 들었던 아기들의 울음소리와도 달랐다. 분명하고 또렷하게 “응애, 응애”하고 울었다. 놀랍고 신기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몸무게가 작고(2.02kg),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바람에 바로 중환아실로 옮겨졌다. 이후 중환아실의 의사와의 상담에 따르면, 중환아실에서도 급박하게 아이를 받아서 아이의 상태나 산모 상태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것, 미숙아에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병환들, 아기 엄마아빠가 준비해야 할 몇가지 등을 상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그런 내용들을 적고 메모했다.


아내는 지난 월요일 퇴원했다. 아내의 출산 소식을 듣고 장모님이 월요일 올라오셨다. 고령의 장모님이 올라오셔서 고생하실 것을 생각하니 죄송하면서도 아내가 가장 믿고 의지할 분이 장모님임을 생각하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저께(15일)부터 아내에게서 본격적으로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내가 직접 병원에서 모유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아기는 성탄절 전후로 퇴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세 가족에게 펼쳐질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만 그 한편에는 두려움보다는 아이가 보여 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흘러 넘쳐 강물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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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제 퇴원했다. 화요일 밤에 광명시 파티마 산부인과에서 이대 목동 병원으로 급하게 이송해야 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지난 주 토요일 밤부터 시작된 이상 상황은 월요일 오후부터 호전되는 듯했다. 화요일에는 나도 안심하고 출근을 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다시 이전보다 많은 출혈이 나타났다. 의사는 만일을 대비해 이대 목동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임신 중 출혈은 태반이 떨어져 나오는 상황일 수도 있고, 여성의 질 안에 상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인데, 아내의 경우 어느 경우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가진통(자궁수축)도 문제였다. 모든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특히 태반에 이상이 있을 경우 제왕절개를 해서라도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데, 이 경우 33주의 미숙아를 키울 수 있는 신생아용 산소호흡기가 있는 곳은 큰 대학 병원밖에 없다.


곧바로 이동 준비를 하면서 택시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은 지금도 그 병원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무리 밤늦은 시간이라지만 자신의 환자 상황이 어려워져 대학병원으로 옮긴다면서 병원 앰뷸런스는 장식용이란 말인가. 광명시 파티마 병원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그런 하나하나의 세심한 배려는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이대 목동 병원에서 다시 시작된 검진, 검진, 검진… 다시 반복되는 고통, 참아야 할 아픔들 때문에 또 마음이 아팠다. 아내는 잘 견뎌냈고, 그런 와중에도 계속 뱃속 아기의 건강을 염려하고 보살폈다. 아내가 입원하면서 주위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미처 하지 못한 신생아용 준비물들을 미라의 둘째 올케 언니께서 빨고 삶아주시기로 했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아내의 조카와 처형이 와서 돌봐 주었다. 어머니는 며느리를 걱정해 퇴근하자마자 병동으로 찾아와 주셨고, 아버지는 당신이 찾아가면 며느리가 부담되어 할 것 같아 찾아가지 않는다며 나에게 잘 돌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밖에 이전 블로그를 보고 걱정해주며 연락한 몇몇 사람들의 알뜰한 관심 잊지 못할 것 같다. 회사 사람들의 배려와 진심어린 걱정도 많은 도움이 됐다.


고통은 때로 우리 주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타인과 관계 맺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을 어루만져 준 많은 분들과 무사히 큰 탈 없이 퇴원한 나의 아내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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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의사는 그것을 이슬이라고 부른다. 아내의 자궁문이 열리면서 소변에서 혈흔과 혈흔 덩어리가 나타난 것이다. 32주. 너무 이른 때이다. 아이도 아내도 나도 준비가 덜 되었다. 무엇보다 태아가 큰일이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태아의 신체 중 폐가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다는데, 이른 출산은 아이가 스스로 호흡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만일 계속 자궁문이 더 열리고 출산이 임박해지면 신생아용 산소호흡기가 있는 대학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아내는 입원했다.

아내는 울었다. 지난 주 무리해서 움직였던 자기 자신을 탓했다. 그런 아내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내 손이 부끄럽다. 아내는 모든 면에서 강하지만, 유독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유난히 약해서 지난번 충수염 수술 때도 아파서 울기 보다는 아기 때문에 걱정되어 눈물을 흘린 일이 있다. 그저 옆에서 손 잡아주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마음이 아팠다.

작은 약 한알 먹고 기다리는 일이 전부였다. 아내는 아랫배가 사르르 아파오는, 마치 생리통 같은 통증이 자궁문이 열리는 진통일 줄은 몰랐단다. 나 역시 이제 막 8개월을 넘은 시점에서 그것이 산통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 열린 자궁문을 다시 닫는 건 불가능하단다. 관건은 자궁문이 더 열리는 것을 막는 데에 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에 입원한 후 약을 먹으면서 절대 안정을 취하면서 기다려 보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검진 기계의 산통 그래프는 더 높은 그래프를 보이면서 불안한 신호를 보냈다. 담담히 대학병원에 가는 문제를 가늠하며 한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월요일 오전까지 나타났던 진통 현상이 오후 되면서 잠잠해졌다. 오후 3시에 있었던 검진에서 드디어 진통 그래프는 잠잠해졌다. 의사는 간신히 잡은 것 같다고 한다.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며 며칠 더 입원한 상태에서 진행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서 살아갈 이름도 생각 못하고 있는데, 아기가 입을 기저귀와 옷들도 채 정리하지 못했는데... 아내를 병원에 두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머릿속에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산적한 일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 바람처럼 입 속에서 주문을 외워 본다.

“우리 아기, 잘 자라 우리 아기, 엄마 뱃속에서 잘도 잔다 우리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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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자리를 옮긴 직원이 남기고 간 빈 화분에 그동안 선인장을 키워오다가 그만 선인장이 죽어버렸다. 남아 있던 화분이 유리로 된 거라 물이 안 빠진다. 그래서 물에 담가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이 있는지 물어보니, 꽃가게 아가씨는 아이비를 보여주었다. 이파리가 백악기 시대 공룡 발자국처럼 생겼는데, 조그마한 게 앙증맞은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비를 심어보았다. 3000원이면 참 저렴하다 싶으면서도 이 작은 생명 허투루 보살피다 죽이면 어쩌나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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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5년여의 수감 생활을 하신 분이죠. 그러나 그는 감옥 생활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던 공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나의 경우, 감옥 안에서 네 가지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그 첫째이자 가장 큰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과거 1977년 청주 교도소에서 2년간의 생활은 그야말로 독서의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동서양의 두 분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중략) 진주와 청주에서의 4년여의 감옥 생활은 나에게 다시없는 교육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얻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습니다.”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얼마전 사형수의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서는 사형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전국 교정시설에서 자사를 시도한 사람의 수는 422명에 달하며, 이중 7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중 살인(28명, 38.9%)으로 복역 중인 수용자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한 수용자(15명, 20.8%)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타인의 신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고 복역하는 수용자들의 자살이 절반을 넘습니다. 이런 이들에 대한 마땅한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한 실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창안한 인문학자 얼 쇼리스의 유명한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995년 얼 쇼리스 교수는 한 여죄수와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가난과 범죄의 악순환을 고민하는 그에게 그 여죄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에 얼 쇼리스는 범죄자를 포함해, 알콜 중독자, 노숙자, 실업자 등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전파합니다.

“당신은 이 수업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는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됐거든요.”*

나를 설명하는 힘,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인문학 과정은 사회적 약자로 만들었던 ‘조건들’에 대해 과거와 다르게 대응하는 힘을 갖게 한 것이죠.

범죄자들이 수형 시설에서 사회를 원망하고 이웃을 저주할 때, 인문학 과정은 새로운 대안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읽었던 대부분의 서적들-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은 모두 인문학의 영역에 있는 책들입니다. 지금의 세상과 사람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시각과 관점을 심어줄 수 있는 인문학 독서가 김대중이라는 시대적 위인을 만들어냈듯이 수용시설의 수용자들에게 펼쳐지는 인문학 강의도 그들 자신과 우리 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의 독서를 통해 얻었다는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수용자들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EBS <지식채널e>의 일부를 옮겨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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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용중인 휴대폰

그동안 휴대전화라면 당연히 공짜폰만 써왔다. 나에게 MP3니 카메라니 DMB 등은 최첨단 휴대전화에 딸려 오는 부가기능들은 그다지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폰은 달랐다. 내가 아이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트위터를 하면서 아이폰에 대해 오가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이다.

오가던 이야기들에서는 아이폰의 기능적이인 장점들에 대한 말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통신시장에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가의 장비를 들이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것만은 아니다. 그거야 나에게는 그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좀더 원초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00원짜리 휴대폰, 게다가 전화통화도 별로 하지 않는 휴대전화를 보다 다양한 기능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전환을 해 보고 있다. 그동안 휴대전화에 딸리는 부가기능에 대해 코웃음을 치면서 전화기는 전화만 잘 터지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아이폰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폰은 나에게 이미 휴대전화의 기능 이상의 새로운 영역의 기계처럼 느껴지고 있다.

아이폰 발매가 시작된 지금, 실제 가격을 보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요금제를 선택하지 않고 살 경우 60만원을 내야 하고, 가장 적은 요금제인 I-slim의 경우에도 396,000원의 기기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한번 계산해 보았다.


워낙에 휴대전화 통화가 없는 나는 한달 통화요금 평균 25000원 안팎이 나온다(물론 기본요금 포함이다). 이 요금을 기준으로 만일 지금 바꾼다고 할 때 2년 동안 지불해야 할 아이폰 관련 요금을 정리해 보면,

(25,000원 X 24개월) + 600,000원 = 1,200,000원

반면 I-슬림 요금제(35,000원)를 선택한다면,

(35,000원X24개월) + 396,000원 = 1,296,000원

그리고 I-라이트 요금제(45,000원)를 선택한다면,

(45,000X24개월) + 264,000원 = 1,344,000원

물론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표면적인 계산으로 보면 150분 이하의 통화량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I-슬림 요금제가 맞을 것 같다. 아무래도 Wi-Fi가 내장되어 있다고 해도 인터넷을 쓸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고, 또 3GS를 이용한 인터넷 이용도 기대되는 바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년 정도 구매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 이 결정을 흔들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안드로이드폰 정도가 아닐까? 아, 물론 아내의 출산이 1월말 예정이라서 이것 역시 변수라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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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세상 속의 내가 위태로운 비탈길에 터전을 잡은 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땅은 자꾸 내려가라 내려가라 밀어내려는 데, 나무는 기어코 그 비탈에 씨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올곧게 섰다.

세상이 곧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거다. 비탈진 언덕에 서는 나무들이 땅을 기준으로 뻗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기준으로 뻗는 이치를 보라. 내가 지금 발딛고 있는 곳이 내 삶의 기준이 아니라 더 큰 하늘을 보며 그 하늘에 내 삶의 기준을 잡고 서야 한다.



























호명산. 호랑이 호(虎), 울음 명(鳴)을 썼다. 예전 사람의 오감이 적었을 때는 호랑이 울음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 이제 그 산의 주인들은 없다. 계곡을 넘칠 듯 흐르던 풍부한 물은 사람들이 앞뒤로 막아 한쪽에는 청평댐이, 다른 한쪽으로는 호명호수가 들어섰다. 흐를 눈물도 막힌 호랑이들은 이제 여기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가을의 뒤안길에 찾은 산이라서 그럴까. 나무들은 앙상했다. 더불어 걷는 행보도 텁텁하다. 갈증이 목구멍을 치밀어 오른다. 명색이 등반이라지만, 역시 밥벌이의 일환이다(회사에서 가는 야유회다). 김훈은 '모든 밥벌이에는 낚시 바늘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야속하고도 비겁한 변명을 가지고 찾아가는 산이라서 그랬을까. 눈꼽만큼의 기대도 없었건만, 그 산은 사람이 고팠는지 이런 나를 잘도 넙죽넙죽 받아 안았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천지가 낙엽이었다. 얼마전 찾아간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는 이런 낙엽이 없었다. 월정사 숲길이 좋은 헤어로션으로 깔끔하게 빗질이 된 길이라면 호명산의 등산길은 모진 바람을 맞은 광녀의 머릿결 같다. 그런데 오히려 정겹다.

낙엽 밟는 소리를 정밀하게 조사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도 그 소리가 모든 사람의 감정을 살포시 즈려 밟아주는 그 마사지 효과가 궁금했을 터이다.

우리가 갔을 때의 호명산 낙엽은 그렇게 바삭하게 마르진 않았다. 좀더 바짝 말랐다면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내 들을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쉬움은 남지만 이리 많은 낙엽을 밟아 본게 언제였던가 생각하면 이마저도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디가나 길을 안내하는 표지는 선명하다. 작은 리본이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다르겠는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사방으로 열리는 법이다. 정해진 길은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인사 정도에 그치면 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은 좀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도전도 필요하다. 하나의 길은 하나의 과정과 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세상은 더 다양한 길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열릴 수 있는 길.





























오르막길을 올랐던 사람들의 흔적이 보였다. 누군가는 급하게 치고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흔적은 흔들리면서 오르는 길만 남았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천천히 오르는 길. 많은 이들이 그렇게 흔들리면서 인생을 산다. 직진의 인생은 얼마나 고달픈가. 나이든 이의 지혜처럼 어쩌면 삶은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천천히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에 행복이 있지 않을까.





























낙엽, 하늘에 떠 있던 시간을 기억할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온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가을에 숲속을 걷는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 겸허해 지는 시간이다. 자연의 순환, 그 오묘함 앞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순환시켜야 하는 절실함을 느낀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숲은 이제 모든 걸 벗고 서로를 보다 분명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가을, 여기 호명산에서 울고 있다.































세상에 지친 이들이여, 천천히 숲을 거닐어 보자. 누군가가 미워지거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다면 나무를 찾아 어루마지며 마치 나에게 하듯 위안하고 안아주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나무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나로부터 시작해 인류를 넘어 지구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지구와의 만남은 저 멀리 다른 행성과의 만남으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온 우주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나와의 만남이다. 그 경험으로 결단을 내려 길을 가라. 앙상한 가지와 텁텁한 갈증이 존재하는 숲에도 길은 나있지 않은가.

























그렇게 휘청거리며 걷다 보면 마구잡이처럼 삐쭉삐쭉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줄 수 있었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정상에서 마신 막걸리 한잔의 취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이란 것이 그런 거다. 보잘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산이라는데도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이 잠시 머물다가 헛헛한 마음을 채우고 갈 수 있는 것. 산이 나에게 준 정이고, 내가 산에게 주는 정이다.

다음 달에는 밤새 산을 껴안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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