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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용중인 휴대폰

그동안 휴대전화라면 당연히 공짜폰만 써왔다. 나에게 MP3니 카메라니 DMB 등은 최첨단 휴대전화에 딸려 오는 부가기능들은 그다지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폰은 달랐다. 내가 아이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트위터를 하면서 아이폰에 대해 오가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이다.

오가던 이야기들에서는 아이폰의 기능적이인 장점들에 대한 말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통신시장에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가의 장비를 들이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것만은 아니다. 그거야 나에게는 그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좀더 원초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00원짜리 휴대폰, 게다가 전화통화도 별로 하지 않는 휴대전화를 보다 다양한 기능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전환을 해 보고 있다. 그동안 휴대전화에 딸리는 부가기능에 대해 코웃음을 치면서 전화기는 전화만 잘 터지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아이폰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폰은 나에게 이미 휴대전화의 기능 이상의 새로운 영역의 기계처럼 느껴지고 있다.

아이폰 발매가 시작된 지금, 실제 가격을 보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요금제를 선택하지 않고 살 경우 60만원을 내야 하고, 가장 적은 요금제인 I-slim의 경우에도 396,000원의 기기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한번 계산해 보았다.


워낙에 휴대전화 통화가 없는 나는 한달 통화요금 평균 25000원 안팎이 나온다(물론 기본요금 포함이다). 이 요금을 기준으로 만일 지금 바꾼다고 할 때 2년 동안 지불해야 할 아이폰 관련 요금을 정리해 보면,

(25,000원 X 24개월) + 600,000원 = 1,200,000원

반면 I-슬림 요금제(35,000원)를 선택한다면,

(35,000원X24개월) + 396,000원 = 1,296,000원

그리고 I-라이트 요금제(45,000원)를 선택한다면,

(45,000X24개월) + 264,000원 = 1,344,000원

물론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표면적인 계산으로 보면 150분 이하의 통화량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I-슬림 요금제가 맞을 것 같다. 아무래도 Wi-Fi가 내장되어 있다고 해도 인터넷을 쓸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고, 또 3GS를 이용한 인터넷 이용도 기대되는 바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년 정도 구매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 이 결정을 흔들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안드로이드폰 정도가 아닐까? 아, 물론 아내의 출산이 1월말 예정이라서 이것 역시 변수라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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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세상 속의 내가 위태로운 비탈길에 터전을 잡은 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땅은 자꾸 내려가라 내려가라 밀어내려는 데, 나무는 기어코 그 비탈에 씨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올곧게 섰다.

세상이 곧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거다. 비탈진 언덕에 서는 나무들이 땅을 기준으로 뻗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기준으로 뻗는 이치를 보라. 내가 지금 발딛고 있는 곳이 내 삶의 기준이 아니라 더 큰 하늘을 보며 그 하늘에 내 삶의 기준을 잡고 서야 한다.



























호명산. 호랑이 호(虎), 울음 명(鳴)을 썼다. 예전 사람의 오감이 적었을 때는 호랑이 울음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 이제 그 산의 주인들은 없다. 계곡을 넘칠 듯 흐르던 풍부한 물은 사람들이 앞뒤로 막아 한쪽에는 청평댐이, 다른 한쪽으로는 호명호수가 들어섰다. 흐를 눈물도 막힌 호랑이들은 이제 여기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가을의 뒤안길에 찾은 산이라서 그럴까. 나무들은 앙상했다. 더불어 걷는 행보도 텁텁하다. 갈증이 목구멍을 치밀어 오른다. 명색이 등반이라지만, 역시 밥벌이의 일환이다(회사에서 가는 야유회다). 김훈은 '모든 밥벌이에는 낚시 바늘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야속하고도 비겁한 변명을 가지고 찾아가는 산이라서 그랬을까. 눈꼽만큼의 기대도 없었건만, 그 산은 사람이 고팠는지 이런 나를 잘도 넙죽넙죽 받아 안았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천지가 낙엽이었다. 얼마전 찾아간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는 이런 낙엽이 없었다. 월정사 숲길이 좋은 헤어로션으로 깔끔하게 빗질이 된 길이라면 호명산의 등산길은 모진 바람을 맞은 광녀의 머릿결 같다. 그런데 오히려 정겹다.

낙엽 밟는 소리를 정밀하게 조사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도 그 소리가 모든 사람의 감정을 살포시 즈려 밟아주는 그 마사지 효과가 궁금했을 터이다.

우리가 갔을 때의 호명산 낙엽은 그렇게 바삭하게 마르진 않았다. 좀더 바짝 말랐다면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내 들을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쉬움은 남지만 이리 많은 낙엽을 밟아 본게 언제였던가 생각하면 이마저도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디가나 길을 안내하는 표지는 선명하다. 작은 리본이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다르겠는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사방으로 열리는 법이다. 정해진 길은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인사 정도에 그치면 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은 좀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도전도 필요하다. 하나의 길은 하나의 과정과 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세상은 더 다양한 길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열릴 수 있는 길.





























오르막길을 올랐던 사람들의 흔적이 보였다. 누군가는 급하게 치고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흔적은 흔들리면서 오르는 길만 남았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천천히 오르는 길. 많은 이들이 그렇게 흔들리면서 인생을 산다. 직진의 인생은 얼마나 고달픈가. 나이든 이의 지혜처럼 어쩌면 삶은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천천히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에 행복이 있지 않을까.





























낙엽, 하늘에 떠 있던 시간을 기억할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온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가을에 숲속을 걷는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 겸허해 지는 시간이다. 자연의 순환, 그 오묘함 앞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순환시켜야 하는 절실함을 느낀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숲은 이제 모든 걸 벗고 서로를 보다 분명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가을, 여기 호명산에서 울고 있다.































세상에 지친 이들이여, 천천히 숲을 거닐어 보자. 누군가가 미워지거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다면 나무를 찾아 어루마지며 마치 나에게 하듯 위안하고 안아주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나무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나로부터 시작해 인류를 넘어 지구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지구와의 만남은 저 멀리 다른 행성과의 만남으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온 우주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나와의 만남이다. 그 경험으로 결단을 내려 길을 가라. 앙상한 가지와 텁텁한 갈증이 존재하는 숲에도 길은 나있지 않은가.

























그렇게 휘청거리며 걷다 보면 마구잡이처럼 삐쭉삐쭉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줄 수 있었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정상에서 마신 막걸리 한잔의 취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이란 것이 그런 거다. 보잘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산이라는데도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이 잠시 머물다가 헛헛한 마음을 채우고 갈 수 있는 것. 산이 나에게 준 정이고, 내가 산에게 주는 정이다.

다음 달에는 밤새 산을 껴안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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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처구니 없는 잡일
"악보 한글 데이터는 어떻게 하죠?"
"하시라('면주'의 일본식 발음, 편집 용어)도 적어야 하나요? 쪽수 표시는?"
"들여쓰기는 해줘요? 말아요?"
"박자 표시는 그냥 약자로 한다고요?"

'표기 오류 검색용 파일' 제출을 위한 작업을 하던 중 나온 수많은 논란 거리 중의 하나다. 그랬다. 김학원은 편집자가 하는 일이 3000가지나 된다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 없는 잡일'도 편집자의 '일'이라고 명명된다. 위대하신 교육과정평가원의 명령을 출판사에서는 어찌 거역할 수 있겠나. 모든 일은 말단 편집자들에게 다시 우박처럼 쏟아진다. 한주동안 그 일에 시달렸고, 새로운 한주가 시작된 오늘도 여전히 그 일에 낑겨 지내고 있다. 이 일로 인해 정작 해야할 작업이 미루어진다. 각 개인 편집자, 과목 담당자들, 팀별 지난 작업의 평가와 상호 토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어영부영 11월 건너 뛰고 12월 '어어' 하다가 마무리 하면 다시 1월이 되고 마땅한 평가와 전망 없이 다시 교과서 업무로 끌려들어가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 회사의 의사 소통 방식
금요일 교과서 편집부서 전체 야유회를 다녀왔다. 말은 그랬지만 절반 가까운 인원이 위의 '어처구니 없는 잡일'을 비롯해 지난해 제출한 교과서의 지도서 업무 등등으로 함께 하지 못한 절반의 야유회였다. 적어도 이런 야유회만이라도 하향식 업무 방식이 아닌 상향식 업무 형태로 할 수 없는 것일까? 21세기 교과서를 만드는 회사의 19세기적 업무 방식은 정말 난감하기 그지 없다. 야유회를 추진하면서 나온 잡음들은 몇몇 예민한 편집자의 자세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여전히 방식 만큼은 전근대적이다. 

||| 호명산 야유회
야유회는 호명산 등산과 남이섬 관광 두 개중 선택하는 것이었으며, 나는 호명산 등산을 선택했다. 발목이 좋지 않아 침을 맞고 있지만, 그래도 12월 백두대간 덕유산 코스 등반을 앞두고 테스트 겸해서 가벼운 산행으로 다녀오자 마음 먹었던 터다. 별 기대를 품지 않았는 데 의외의 수확이다. 꽤 괜찮은 산행이었다. (이후 다시 업데이트 할 예정)

||| 다시 퍼머를 하다
다시 퍼머를 해 보았다. 미장원에서 보여 준 디자인 스타일북에서 아내와 나는 윤상현 스타일을 골랐다. 물론 윤상현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안다. 그냥 그런 스타일을 골랐을 뿐이다. 오해 마시길. 결과는, 그저 그렇다. 물론 아내는 이전보다 좋다고 하는데, 난 역시 구식이라서 예전 머리가 마음에 든다.

||| 외사촌의 결혼식
외사촌 동생이 결혼했다. 아직 그 형이 미혼인데, 형보다 먼저 결혼한 셈이다. 결혼하는 모습을 보니 나의 결혼식도 생각난다. 나도 저랬을까. 아무튼 그의 형 몫까지 행복하게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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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의 나무가 잎을 다 떨구고 나서인지 을씨년스럽다. 월정사 처마끝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하군.










월정사는 일주문부터 연결되는 전나무숲길이 유명하다. 원래는 시멘트 길이었다는데, 다시 황토길로 바꾸었다.
낡은 것은 낡을수록 그 가치가 빛난다. 1000년의 숲길에 시멘트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들의 경이로움. 늙어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일이란...









뜨기와 함께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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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군도 사진을 참 잘 찍어요. 뒤의 소화전만 아니었으면 배경도 인물도 꽤 괜찮은... 풉...




하군의 아궁이에 대한 추억도 꽤 재밌더군. 나도 시골생활을 좀 해봤지만,
시골에서 어린날을 보낸 하군의 얘기는 배꼽을 들었다 넣었다 할 정도로 재미있다.



낡음은 고유함일 것이다. 먼지만 툴툴 털어내면, 모든 사라진 것들을 다시 추억하게 하는 힘이 있다.
사라지지 않고 낡는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군이 굴뚝에서 찍은 내 모습. 하군의 예술적 감각과 상상력은 상상초월.




모델로서도 손색이 없는 저 초월적 자태를 보라.



암튼 여기는 오죽헌이다.




툇마루만 보면 앉아야 직성이 풀리는 하군. 손은 항상 뜨기에게...






날씨만 좀 덜 추웠어도.... 으으



장승은 꼭 찍워줘야... 게다가 장독대도... 이건 사진 찍으라고 해 놓은 설정이다.



강릉단오제의 주인공, 대관령 산신과 강릉 여서낭신님이다.
강릉단오제가 세계 무형 문화 유산으로 채택된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저 두 분 자세히 보니 어찌나 정감이 가는지... 그래서...



하군의 도발적인 따라하기... 그저 감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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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당신과 뜨기를 위해 준비한 여행이었어. 많이 부족했는데도 항상 웃어주고 즐거워해서 고마워.




우리 뜨기도 많이 즐거워했을 거야. 그렇지 뜩아?^^ 뭐라구? 대따 춥기만 했지, 아무 것도 못봤다구?
그래도 바다내음도 맛고 숲 공기도 쐬고 그랬으니까 좋지 않니? 다음에 또 오자꾸나.



엄마 아빠 모두 뜨기의 건강을 빌었단다. 근데 넌 그 순간에도 발길질이냐.




파도가 참 거셌단다. 바람도 많이 불고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하더라.
그래도 강릉은 좀 따뜻할 줄 알았는데, 여기도 춥긴 매한가지더군.
달려드는 파도와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미래의 우리 뜨기가 상상이 된다.



날개가 있는 것들은 파도가 무섭지 않다?!?!



나름 뜨기를 안고 찍은 사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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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임신 이후 함께 여행하는 것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물론 아내의 임신보다는 그동안의 교과서 업무가 더 큰 이유일 테다. 이제 교과서 업무가 마무리 된만큼 더이상 그동안의 아내와 나의 수고를 위로하는 여행을 떠났다. 어쩌면 태아와 함께 하는 최초의 가족여행이 아니었을까.

강릉 여행을 위해 하루를 꼬박 매달렸더랬다. 코스를 짜면서 추운 겨울을 대비해 박물관 코스를 넣었으며, 바깥을 돌아다닐 때는 한낮을 주로 잡았고, 꾸준히 걸을 수 있는 장소로 선정했다. 강원도 강릉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식당을 검색해 보았고, 숙소 역시 가격과 위치보다는 휴식에 맞추어 예약을 하였다.

그러나 숙소의 경우 예약이 좀 늦은감이 있었다. 괜찮은 팬션은 이미 다 예약이 차 있었다. 좋은 팬션을 숙소로 하겠다면 최소 한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했다. 그동안 나의 여행에서 숙소는 아무데나 가격 싼 곳으로 해결해왔는데, 앞으로는 가족과의 여행은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많이 고민해야 할 것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함께 거닐었던 것이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듯하다. 아내와 나는 밤바다와 아침 바다, 옛 서원과 고가, 오래된 숲을 함께 거닐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이란 단어를 곳곳에 새겨넣을 수 있었다.

여행은 떠남을 통한 돌아옴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와 더 굳건히 서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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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동상

지금 평화시장과 동대문 일대는 의류 패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지요. 그러나 1970년 오늘 여기서 한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어둠을 뚫고 빛나는 화염으로 세상을 밝히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점심을 굶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 수유리 집에서 평화시장까지 걸어 다니면서 아낀 버스비로 여공들에게 점심을 사 먹인 일화는 그의 헌신과 희생이 깊은 인간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연구자였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한문이 가득한 근로기준법을 날이 새가면서 읽고 해석하며 스스로 이해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이 근로기준법이 고통받는 여공들에게 따스한 햇살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장기표 신문명연구원 원장은 전태일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전태일은 고난 속에서 사랑을 얻는 사랑의 원리, 사랑을 통해 지혜를 얻는 지혜의 원리, 사랑과 지혜를 통해 높은 꿈을 이루는 꿈의 원리,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가운데 법열을 얻는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 같이 소중한 교훈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경향신문에서 재인용)


오늘 그가 산화하며 외쳤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마라”


과연 지금 이 말은 얼마만큼 지켜지고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자들, 저의 시선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인권과 대우는 분명 나아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또 다시 한쪽에서 차별의 온상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우리의 삶을 지키고 있다면, 먼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태일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재단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여공들의 고통과 아픔을 돌보다가 해고당하기까지 하죠. 그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함께 일하던 여공이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직업병인 폐렴으로 강제 해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느낀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열악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하는 시다들을 ‘나의 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바탕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나의 나’를 볼 줄 아는 시선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태일의 의미는 바로 ‘나의 나’를 보는 시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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