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형광조끼가 도착했다. 밝은 노란 망사 조끼이며, 선명한 형광띠가 부착되어 있는 중국산이다. 가격은 7,000원. 그리고 전조등도 새로 바꿨다. 야간 산악 자전거도 가능할 정도로 굉장히 밝고 오래가는 등이다.

자전거 출퇴근을 한지도 꽤 됐지만 여전히 도로는 무섭다. 개념없이 클락션을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강아지 자제분은 그렇게 많지 않고, 오히려 서로 존중하고 조심하는 운전자들이 많지만, 예나 지금이나 도로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로 주행에서 음푹 패인 지형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애물들, 망가진 도로 상황이나 깨진 아스팔트 등도 안전 라이딩을 위협하는 복병들이다.

형광조끼와 전조등은 앞으로 야근도 많아지면저 자연히 늦은 퇴근이 잦아질 것을 대비했다. 형광조끼는 뒤에서 오는 자동차들에게 나의 존재를 선명하게 알리는 수단이 될 것이며, 전조등의 전방의 장애물을 파악하고 앞에서 달리는 차량들에 나의 존재를 알리는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둘다 안전을 위한 선택이다. 안전은 지금 당장 실천할 문제다. '나중'은 없다.


반응형
반응형


아내가 충수염 수술을 받는 전후로 몸무게가 1~2kg이 줄었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 마른 사람인데, 수술 이후 더 말라 보인다. 게다가 임신 중이라서 아랫배만 볼록 나오고 있으니, 집안 어른들이 보기에도 안되어 보였나 보다. 작은어머니께서 인삼을 한 상자 보내주셨다.

이끼풀로 잘 쌓여 있었고, 상태가 양호한 5년근 인삼이다. 보관 방법은 물론 요리법도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게다가 임산부에 인삼이 괜찮은 걸까도 궁금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임산부에게 인삼은 가급적 피하면 좋은 약재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홍삼 사이트에서는 홍삼으로 복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가급적 한의사와 상의 후 복용하는 것이 좋단다. 선물로 받았음에도 쉽게 복용할 수 없는 약재인 셈이다.

홍삼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홍삼으로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또 집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며, 가능하다 할지라도 역시 한의사의 진단과 처방 아래 먹는 게 맞다. 결국 이 인삼의 처분은 부모님께 부탁드려야 할 듯싶다.

모처럼 들어온 보약 선물인데, 아내와 뜨기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 한다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아내와 뜨기를 생각하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의 그 마음만큼은 어떤 보약 못지않다.





반응형
반응형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2003년 10월 22일 정은임의 영화음악, 오프닝 멘트.



▲ 고 정은임 아나운서. ⓒMBC

▲ 고 정은임 아나운서. ⓒMBC



사실 정은임이라는 이에 대해 잘 모른다. 새벽에 하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이 내 일상에 들어오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그때만해도 가능했던 지난 라디오 듣기를 통해 듣다보면, 인간과 영화에 대한 정은임이라는 이의 생각에 감전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곤 했다. 위의 멘트 역시 직접 들은 건 아니었지만, 그이가 불의의 사고로 떠난 후에 접한 멘트였다. 숱한 아나운서들이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예쁜 얼굴과 고운 목소리로 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군가는 물도 전기도 끊긴 저 어두운 공장의 뜨거운 열기들을 걱정하며 시원한 바람 같은, 차가운 냉수 같은 말을 보내줄 이는 이제는 없는 것일까.

내일(8월 4일)은 정은임 아나운서가 이 세상을 떠난지 5주기가 된는 날이라고 한다. 5주기를 맞이하여 이번에도 추모 바자회는 열린다(관련기사). 만일 정은임 아나운서가 살아있다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을 향해 어떤 오프닝 멘트를 날렸을까.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반응형
반응형



우리 사무실에는 정수기가 하나 있습니다. 커다란 물통을 거꾸로 뒤집어 꽂아 놓는 형태죠. 매번 이 물을 마실 때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5층까지 이 무거운 생수통을 들고 오셨던 생수 회사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한번 나를 때면 보통 5~8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옮기시는데,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사무실까지 올라온 생수를 생수기에 꼽는 건 남자 직원들 몫입니다. 물론 여직원들이라고 못하겠습니까만, 보통 남자가 있는 사무실에서는 남자가 하기 마련이죠. 아무튼... 이 신성한 업무(?)는 또한 사무실에서 제일 젊고(?) 가장 가까이에 있고, 또한 만만하게(좋게 말하면 편하게) 생긴 저에게 많이들 부탁하십니다.

그럼 저는 흔쾌히 임무를 수락하죠. 먼저 생수통을 생수기 옆으로 가져온 후, 뚜껑의 비닐을 벗기고, 휴지를 떼어다 적셔서 생수통의 입구를 깨끗이 닦아줍니다. 그리고 생수통을 팔로 감싸 안은 다음 허리와 다리의 힘을 이용해 들어 올린 후 팔을 뒤집어 주는 데,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꺾으면서 생수통 입구와 생수기 입구를 잘못 마칠 경우 상당히 곤란한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마시는 깨끗한 물은 참 많은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에는 인간을 생각하고 생명을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가 듬뿍 담겨 있죠. 그래서 ‘물은 생명’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종종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택의 쌍용자동차 노조에게는 이 말이 더욱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해고는 죽음’이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것이 이 갑갑하고 막혀 있는 협상을 속시원하고 깨끗하게 뚫어줄 생명의 물이 되지 않을까요. 국가인권위는 쌍용차 노조에 대해 음식과 식수, 의약품이 차단된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였습니다(지난 7월 24일자 보도자료 :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긴급 성명7월 30일 보도자료 :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식수 및 의약품 반입 등 긴급구제권고 결정).

오늘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소나기가 왔습니다. 이 물이라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에게는 단비와 같을 수도 있죠. 지금 이 시간에도 협상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물을 공급함으로서 ‘해고는 죽음’이라며 절규하는 그들에게 여름날 단비 같은 삶의 실마리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은 어쩌면 물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아내가 입원한 병동은 5인실이었다. 아내는 문으로 들어가 바로 왼쪽 구석의 침대를 썼다. 그 옆에는 60대 중반 정도의 아주머니 한분이 계신데, 수술 후 회복중이셨다. 그 아주머니의 조카(40대 초반)가 그 옆에서 아주머니를 간병했다. 붙임성이 좋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셨으며 자신의 고모만이 아니라 병실 모든 사람의 간병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쪽 줄의 맨 끝에는 간암으로 입원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분은 새로온 사람이나 병문안 온 사람에게 무조건 자신의 병명과 증상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려 하였다. 아주머니는 그걸로 신세한탄을 하시는 듯했다. 주말에는 간병을 위해 20대 초반의 아들이 머물렀는데, 내가 보기에는 간병보다는 제 할일만 하면서 심심하고 따분하며 만사가 귀찮다는 행동을 곧잘 했다. 아주머니가 대소변을 보러 힘겹게 화장실로 가도 부축 한 번 하는 걸 보지 못했고, 침상에 있는 기록표에 사소한 걸 기록해 달라고 해도 자기는 글씨를 못 쓴다면서 거부하여 어머니 속을 박박 긁었다. 보다 못해 옆에 회복중이던 아주머니가 직접 써 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 청년이 옆에 다가오면 두렵다고까지 했다.
간암 아주머니의 건너편 침상에는 작년 8월부터 들어온 아주머니 한분이 누워있었다. 간병은 그 분의 남편분이 직접 24시간 돌보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수술 중 무엇이 잘못되어 합병증이 발생해 지금까지 누워있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금식조치로 인해 입으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남편분이다. 1년 가까이 간병을 하면서도 지치거나 어두운 기색없이 언제나 밝은 얼굴이다. 아주머니의 이름은 '이기자'였는데, 아저씨가 자신의 아내를 부를 때는 항상 "우리 이기자"라는 말을 붙여 넣었다. 예를 들어 "우리 이기자, 어디 아파?" "우리 이기자, 불편해?" "우리 이기자, 옷 갈아 입고 싶어?" .... 아내를 지칭하는 아저씨의 부름은 마치 "우리 함께 이 고난을 이겨내자"라는 각오와 소망이 담겨져 있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곧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어 병실을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주역이기도 했다. 60이 넘으셨는데도 매우 젊은 인상이었는데, 아마도 항상 밝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저씨는 그렇다고 아주머니들과 희희낙락하며 희롱이나 쓰잘데기없는 농담을 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매우 진지하게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세상사를 풀어놓기도 하는가 하면 자기의 미국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 문화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 말들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재미있게, 그리고 아주 유익하고 쓸모있는 정보로 아주머니들의 귀에 속속 들어왔던 것일게다.
마지막으로 그 아저씨의 옆 침대에 있던 분은... 우리가 입실한 이후 다음날 바로 퇴원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병동 생활은 주변 분들의 관심과 배려로 한결 편했다. 이기자 아저씨는 내 아내에게 같은 '하씨'라며 '올리비아 하세'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고, 회복중인 아주머니의 조카분은 아내의 어깨와 등 그리고 손과 발을 지압해주면서 임산부에게 좋은 혈을 직접 알려주었다. 간암 아주머니는 병간호 온 이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골고루 나누어주면서 정을 나누었다.

아내는 수술후 둘쨋날까지 가스가 나오지 않았다. 개복 수술 이후에는 장의 유착이 있을 수 있고, 심할 경우 장폐색이 생겨서 위험한데, 가스가 분출되느냐 안되느냐가 그 기준점이라고 했다. 그런 가스가 수술후 이틀째까지 나오지 않아서 본인을 비롯해 온 가족이 애가 타게 가스를 기다리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토요일 저녁, 어머니가 다녀간 이후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가 가스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이 사실을 간호사에게 알렸고 잠시후 침상에 붙어 있던 '금식' 팻말은 사라졌다. 이날 저녁부터 미음을 먹기 시작했고, 일요일에는 죽이 나왔으며 월요일 아침에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처음으로 담당교수와 주치의가 다녀갔다. 몇번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나 역시 수술하고 입원하는 내내 처음보는 의사들이었다. 의사는 증상과 통증 정도를 물어보고 퇴원 의사를 물어본 후 퇴원을 '결정'했다.

월요일, 퇴원하기에는 더없이 알맞게 푸르고 청명한 여름날이었다.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하늘을 여는 아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11일, 산부인과 다녀오다  (2) 2009.08.12
인삼  (0) 2009.08.03
아내의 병상 일기 1  (10) 2009.07.24
안에서 줄다리기를 한다는구나  (5) 2009.07.15
촌뜨기  (0) 2009.06.09
반응형



친구들과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돌아왔을 때까지 아주 좋았다. 아내도 오랜만의 나들이와 유쾌한 술자리를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술자리라는 게 꼭 술을 먹어야 재미만은 아닌 게다. 자리를 흥겹게 하는 요소는 술 외에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우리의 기분은 최고였다.

잠자리에 든 아내와 태아를 위해 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아내는 몽롱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이 든 아내를 두고 다른 일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복통을 호소했다. 평소 태아가 커가다 보니 아랫배의 통증을 이야기해 왔던 터라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 고통은 좀 달랐다. 증상이 달랐고 통증 부위도 예전보다 약간 위쪽이었다. 아무래도 충수염(흔히들 말하는 맹장염)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옷을 입힌 후 병원으로 향했다. 처음 도착한 구로 성심병원 응급센터의 의사는 임산부에 대한 진료와 처치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며, 고대병원이나 이대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했다.

고대 병원 응급센터는 소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밤 12시를 넘기고 온 응급환자들이라서 열 명중 3~4명은 술에 취해 있거나 술로 인해 생긴 문제로 응급센터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괜스레 간호사들에게 시비를 거는 아저씨는 막무가내로 나부터 빨리 치료해달라며 쌍욕도 서슴치 않았다. 나는 우선 간호사에게 임산부이며 배가 아파서 왔다고 하니, 구석의 조용한 병상으로 안내해 주었다. 다시 다른 간호사가 와서 맥박을 재고 체온을 젠 후, 두명의 의사들이 번갈아 와 문진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의사가 혈액체취를 하는데 그만 바늘이 튀어 침대가 온통 피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 피들은 다시 한번 나에게 '응급센터는 올 곳이 못된다'라는 절절한 절규로 비쳐졌다. 잠시 후에 술에 취해 나타난 할머니 한 분은 밤새 끊임없는 중얼거림과 신세한탄으로 우리를 불면의 나락으로 인도했다. 

이날 새벽부터 아침까지의 처치라면 금식과 수액 공급이 전부였다. 아, 물론 산부인과의 초음파 검사는 유일하게 검사다운 검사였다. 이 검사는 태아가 잘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거였지, 복통의 원인이나 상황을 확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긴긴 밤을 꼴딱 세우고 아침부터 본격적인 검사가 시작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진단을 받은 건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역시 예상대로 충수염. 수술이 결정되고 몇 시간 후, 담당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충수염 수술은 간단해서 한 시간이면 충분한데, 해당 환자는 임산부라서 꽤 많은 고민을 했다며, 전신마취를 한후 복강경 수술을 통해 충수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수술에 따른 다양한 합병증이나 후유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태아에 미치는 여러가지 좋지 않은 일의 가능성도 설명해 주었다. 의사의 설명은 친절했고, 자세했으며, 어렵지 않았다.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상황에서 아무 의학적 지식이 없는 나는 그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내 앞에 있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의사 양반은 그저 믿고 따라야할 신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설명을 요약한 종이에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일명 수술 동의서였던 것이다.

그렇게 의사의 처치와 처방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시 얼마 후 의사가 나를 불렀다. 수술 방법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 역시 임산부라는 상황 때문이며, 태아와 산모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기 위한 조처라는 거였다. 전신마취에서 척추마취로 바뀌었고, 복강경수술에서 개복수술로 바뀌었다.
"아니, 아까는 그 수술이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아까는 임산부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지금의 수술이 다른 수술보다 안전하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물론 이렇게 따지진 못했다. 순간 화가 났지만, 역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위의 말들은 한참 지난 후에야 내 머릿속으로 떠오른 말들이다. 못나고 못났다.

산모와 아이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수술이 어디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수염 수술은 하지 않으면 더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 질병이고, 따라서 가장 안전한 수술 방법을 찾아내는 게 의사들의 책임이다. 수술 방법을 한번 변경했다는 것이 나로서는 탐탁지 않게 여겨지고 그들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렸지만, 어찌 보면 수술 직전에 다시 의사진들이 모여 고민을 하고 논의를 했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남은 건 아내와 뱃속 태아의 의지, 신이 있다면, 신의 가호를 빌 뿐이며,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을 다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4시 즈음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아내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눈앞이 흐려졌다. 뒤늦게 식구들에게 연락했다. 아내나 나나 미리 연락드리면 괜히 걱정만 끼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수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내는 5시 반에 수술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간호사는 8시간 동안 잠 들어서는 안 되며, 마취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 똑바로 누운 상태로 두어야 한다고 했다. 가스(방귀)가 나오면 바로 알려주고, 통증이 심하면 진통주사를 놓을 수 있지만, 가급적 참아 보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저녁에는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해 아내의 오빠와 언니들이 다녀갔다. 어머니는 아내 걱정에 눈물바람을 몰아왔고, 아내의 작은 오빠도 초췌한 동생 모습을 보고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모두들 맹장염 수술은 대단한 게 아니라고 말하며 위로했지만, 한편으로 산모가 겪었을 고통과 태아에 대한 걱정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모두들 돌아간 자리 다시 전날처럼 아내와 나만 병실에 남았다. 밤새 아내는 통증을 호소했다. 특히 방광이 꽉 차 있는데, 소변이 나오지 않아 괴로워했다. 수술 부위의 통증도 아내를 몹시 괴롭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아도 부어오른 상처와 터질 것 같은 방광에 갇혀서 그런지 엄마를 괴롭혔다. 뒤척이지도 못하고 신음 소리만 내다가 아내는 그만 울어버렸다. 산모를 위한 진통주사가 있다고 하지만, 아내는 거부했다.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였다. 지켜보는 나역시 내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간호사를 통해 꽉 차 있는 소변을 빼게 하였다. 꽉 차 있던 소변이 나오자 태아도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상처 부위 통증도 잦아 들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아내는 허리와 다리를 움직이며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고,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면 걸을 수 있을까.






반응형

'구상나무 아래에서 > 하늘을 여는 아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11일, 산부인과 다녀오다  (2) 2009.08.12
인삼  (0) 2009.08.03
아내의 병상 일기 2  (4) 2009.07.28
안에서 줄다리기를 한다는구나  (5) 2009.07.15
촌뜨기  (0) 2009.06.09
반응형



사진은 우리팀 디자이너의 남편이 제공.
카메라 렌즈 앞에 네가 필름을 대고 찍었다고 한다.
필름 때문에 색깔이 묘하지만, 일식 현상이 뚜렷하게 나와서 볼만하다.

눈부신 햇볕 때문에 막상 시작됐다고 해도 볼 방법이 없어 눈만 버렸다 싶었는데
사무실에서 책장을 뒤져 못쓰는 필름을 찾아낸 이가
우리팀 디자이너였다.

처음으로 일식을 내 눈으로 구경해 보았다.
직접 보니 지구와 달과 태양의 우주의 섭리가 느껴졌다.



반응형
반응형




드디어 블로그 포스트 수가 댓글 수를 추월했다. 오래 전에 예상한 바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황망하기가 그지 없다. 그만큼 다른 이와의 소통이 부족한 것이려니 생각하면서도 아무리 못잡아도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 방문하는 블로그에 댓글이나 트랙백이 이렇게 잡히지 않는대서야 체면이 서지 않는다. 물론 나 스스로 다른 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거나 대화하는 형식의 블로그가 아니라 혼자 일상의 자잘한 재미들을 옮겨 적는 것에 만족해 하고 있으니 그런 결과는 당연하다. 또 그런 것에 연연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나를 아는 지인들이 내 생활의 단편들을 아무때나 와서 보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블로그는 내 마음의 문과 같다.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내 소소한 일상은 아니더라도 삶의 한 조각을 두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찌됐건, 내 댓글은 실명제도 아니고, 로그인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지역감정 도발, 미풍양속 파괴 등의 언어만 아니면 삭제할 일이 없으니, 안심하고 작성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부드린다. 무플 사절, 악플 환영!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