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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몹시 피곤한 날이었다. 사무실 자리 이동과 가구 재배치가 있었고, 남자 5명이서 온몸이 부서질 정도로 일을 했다. 녹초가 된 몸을 그냥 집으로 끌고 가기에 어려워 술을 한잔 하자는 제안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해장국에 소주 한잔을 마시고 집에 오니 9시가 다 되어갔다. 부랴부랴 가방을 싸고 지하철을 이용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11시 반이 되어 도착한 고속버스터미널. 토요일 심야에 광주로 향하는 사람은 많았다. 애초에 새벽 1시 차를 예약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1시 45분 차를 예매했다. 함께 가기로 한 김차장님은 1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둘이 함께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 차를 기다렸다. 모두 피곤했다. 무사히 산을 마칠 수 있을까를 걱정했고, 농담이었지만, 그냥 집에 가자는 말도 나왔다. 의자에 잠시 누웠는데도 금세 잠이 들었다. 시간이 되어 나가보니 새벽에도 버스들이 줄을 서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서려 있었지만, 터미널은 분주하기만 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임시 운행되는 버스도 꽤 있었던 모양이고, 대부분의 버스가 만차로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세상은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나 보다.

새벽 1시 45분 버스를 탔다. 타자마자 창의 커튼을 치고, 모자를 꺼내어 얼굴을 덮고 수면모드로 들어갔다. 버스 안의 선잠, 그것은 달콤하면서도, 만성 신경통 같이 끊임없이 나를 깨운다.

5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광주에 도착했다. 곧바로 영암 가는 시외버스표를 끊고 지체 없이 버스에 올랐다. 내가 서두른 이유는 산행을 빨리 마치고 내려와 4시 반에 있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영암까지 가면서 몇몇 터미널에 서는데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고, 기사님이 직접 "○○이요"라고 알려주는데, 발음 때문인지, 사투리 때문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는 내가 이방인인 것이다. 기어이 '신북'을 '영암'으로 착각해 내리려 했으니 말이다.

영암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6시가 넘어서다. 벌써 몇 번째 찾아온 것이지만, 여전히 낯설다. 터미널 안의 매점 노인은 그 이른 시간에 이미 가게를 열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예전에 구수한 사투리로 월출산 자랑을 하셨는데, 피곤하신지 조용히 손님을 맞으신다. 매점에서 물과 음료를 비롯해, 산에서 마실 캔 맥주와 육포, 출출할 때 먹을 찹쌀떡을 샀다.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사면 싸겠지만, 지역의 경제를 위해 이 정도의 사려는 필요하다고 본다. 월출산 지도를 찾았으나 없다.

터미널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월출산 천황사 매표소까지는 택시로 5,000원. 택시 기사에게서 농촌의 흙냄새가 났다. 구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좋았다.

아침식사는 월출산 입구 식당에서 해결했다. 백반정식인데 6,000원을 받는다. 아침을 먹고 짐을 다시 재정비하고, 등산화 끈을 다시 묶었다. 출발하는 일만 남은 시간은 오전 7시. 매표소를 지나면 곧 야영장이 나온다. 집에 묵혀두고 있는 텐트가 생각났다. 여기서 야영을 하면 되겠구나 싶으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야영을 하게 될까 싶다.


 







천황사지 갈림길에서 매번 다니던 천황사 방향을 버리고 바람계곡 쪽으로 길을 잡았다. 낯선 길은 또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두려움이 없다면 설렘도 없을 것이다(07:45).


 







바람계곡. 구름다리. 월출산의 이름을 풀면 달이 나오는 산. 월출산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은 인간의 세계를 묘사한 이름이 아니다. 마치 어느 무협지에 나오는 신선계를 대표하는 이름들 같다. 바람계곡은 양옆의 바위산들이 육중하게 자리 잡고 있어 세찬 바람이 오가다 보니 붙여진 이름이겠지. 바람계곡 삼거리에 도착했다.(08:10) 여기서부터 꽤나 가파른 산행이 시작된다.


 






가파른 철계단 끝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곳에 응급처치를 위한 구급상자도 준비되어 있다. 바람계곡으로 오른 이들은 여기서 한번 다리쉼을 한다. 천황사길은 바람계곡보다 약간 완만하지만 거리가 더 길다.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함께 다리쉼을 하면서 간식을 챙겨먹었다. (08:40)





 

까마득한 다리 밑을 보았다. 지상 120m 정도 높이에서 바라본 계곡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찔함보다는 아득함이 더 어울리겠다. 구름다리에서 보는 월출산 전경도 한폭의 진경산수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 보면 왜 월출산을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구름다리를 넘어 다시 천황봉으로 가는 길은 끝도 없는 거친 오르막길이다. 지루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천황봉은 그 얼굴을 드러낸다.







 

영암에도 경포대가 있다. 영암 경포대는 가보지 않았지만 이곳도 멋진 계곡이라고 한다. 경포대 삼거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월출산은 오르내림이 심한 산이라 관절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산이다. 다만, 월출산의 절경을 보고자 한다면 구름다리까지만 올라가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는 있다.





경포대 삼거리를 지나면 곧 통천문이 나온다.(10:15) 통천문은 철계단 끝에 바위틈에 나 있는 작은 통로를 말한다. 통천문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천황봉이 있는 게 아니다. 다시 한참을 가서야 천황봉을 만날 수 있다(10:45).




 

월출산 종주코스(천황사-도갑사)에서 천황봉은 불과 1/3정도 왔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의 뒤로 저 멀리 우리가 가야할 구정봉이 보인다. 여러 번 월출산에 왔지만 구정봉에 올라보지 못했다. 매번 체력이 부족해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였다. 한참을 쉬고 다시 출발했다(10:55)




바람재 삼거리 도착 11:30분. 멀리 큰바위 얼굴이 보인다. 물론 내가 붙인 이름이다. 아마 저 바위도 여기서 부르는 정식이름이 있을 거다.


 

구정봉을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고 위험하기도 하다. 정작 정상에 있는 웅덩이에는 좋지않은 냄새까지 나서 오래 머물기에 마땅치가 않다. 그러나 사람 한명이 통과하기도 힘든 바위틈으로 들어가는 묘미는 독특하다. 힘들더라도 꼭 들려볼 만한 이유다.


 






 

구정봉을 내려와 억새밭에 도착했다.(12:55) 점심도 거른 채 계속되는 강행군에 김차장님은 약간 치진 듯했다. 그래도 산행안내서에 나온 시간을 충실히 지켜낸 것을 보면 아직 팔팔한 것이다. 억새밭은 내가 처음 왔을 때의 그 억새밭이 아니었다. 이제는 관목들도 많이 자랐고, 작은 나무들이 어느새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숲은 자신을 스스로 가꿔간다는 것을 나는 몇 년에 걸쳐 학습하고 있는 셈이다.

억새밭을 내려온 이후 사진이 없다. 내려오는 데 너무 정신이 팔린 게다. 땀을 많이 흘렸는데도 소변이 마려웠다. 뒤쳐진 김차장님과의 간격을 염두해 두기는 어려웠다. 도갑사 경계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일을 보고 나와 20분 정도 기다리니 김차장님이 도착했다. 하산 완료 14:20분. 예상했던 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한 셈이다. 식사도 걸러서 배가 몹시 고팠음에도 굳이 영암터미널 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혹여 서울 가는 차편이 매진될까봐 미리 끊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끊고, 터미널 근처 곱창집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김차장님은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면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지치고 피곤하고 힘드셨을 게다. 토요일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은 한산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9시가 좀 넘었다. 무박2일의 월출산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 교통비 : 133,800원
  • 서울→광주(심야우등) : 26,100원×2인=52,200원
  • 광주→영암(시외버스) : 6,000원×2인=12,000원
  • 영암→천황사 매표소(택시) : 5,000원
  • 도갑사 매표소→영암(택시) : 11,000원
  • 영암→서울 고속버스터미널(우등) : 26,800원×2인=53,600원

○ 음식 : 56,200원
  • 초코바 2개 + 영양갱 2개 + 스카치캔디 1봉지 = 3,600원
  • 터미널 라면 2개 : 6,000원
  • 육포, 캔맥주(2), 찹쌀떡(2), 물, 음료 : 14,100원
  • 아침식사(백반) : 12,000원
  • 늦은 점심(영암 국밥)과 소주 : 13,000원
  • 국수와 햄버거(고속도로 휴게소) : 7,500원

※ 월출산 무박2일 여행팁
  - 금요일 밤에 집을 나서 토요일 새벽 차를 타고 광주로 간다. 광주로 가는 심야고속은 새벽 2시까지 있다.
  - 광주터미널에서 영암 가는 버스는 강진이나 해남 마량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고 가격은 6,000원(2009년 6월 기준)이다.
  - 영암가는 첫차는 4시 40분부터 있다.
  - 상경할 때에는 영암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게 좋다. 3시 5분, 4시 30분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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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
오늘도 엄마는 신도림에서 내려서 쉬어야 했다. 개봉에서 영등포까지 불과 네 정거장인데, 그것을 한 번에 가기 힘들구나. 어제는 조퇴까지 하고 같이 잘 놀아줬잖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사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야 한다. 하긴, 처음에는 다들 그렇다고 하던데, 자꾸 엄마 힘들게 하지 마라. 너도 힘들겠지만, 엄마도 꽤 노력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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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상지 : 월출산 종주

2. 기간 : 2009년 6월 5일(금)부터 6월 6일(토)까지(무박 2일)

3. 참석자 : 강○○, 김○○

4. 장비 계획

□ 잠자리 및 휴식용품 : 배낭, 수통, 스틱, 지도, 랜턴, 볼펜, 수첩, 휴지, 라이터, 카메라, 수건, 휴대전화기, 칫솔-치약, 비닐봉투.
□ 입을 것 : 등산화, 선글라스, 긴바지 1벌, 여벌 반바지 1벌, 등산복 상의 2벌, 방풍쟈켓 1벌, 양말 2켤레, 모자, 안전장갑, 선블럭,
□ 먹을 것 : 육포, 초코바 2개, 영양갱 2개,
□ 구급약 : 진통제, 뿌리는 파스, 붙이는 파스, 압박붕대, 해열제, 대일밴드 등


5. 예상되는 비용

- 서울→광주_심야 우등 : 26,100원×2인 = 52,200원
- 광주→영암_시외버스 : 6000원×2인 = 12,000원
- 영암→천황사_택시 이동 : 5,000원
- 아침식사 : 5000원×2인 : 10,000원
- 점심식사_김밥이나 떡 = 10,000원
- 산행 중 영양식 : 10,000원
- 도갑사에서 산행 뒷풀이 : 20,000
- 도갑사→영암_택시 이용 : 10,000원
- 영암→서울_고속버스 : 18,100×2인 = 36,200원
- 기타 예비비 : 10,000원

>>>> 총 165,400원 예상
각자 82,700원씩 소요되므로 85,000원 회비 책정.


6. 일정

□ 6월 5일(금)

23: 00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모임 간식 및 영양식 구입

□ 6월 6일(토)

○ 서울에서 영암까지

01:30 서울 출발(심야우등)           준비물 점검 및 확인
04:30 광주 도착                          광주까지 가면서 자기
04:40 영암행 시외버스 탑승          영암까지 가면서 자기
06:00 영암 도착

○ 월출산 산행 시간

06:30 천황사 입구 도착                 아침 식사
07:30 산행 시작
08:20 천황사 도착
10:20 통천문 도착(구름다리 지나옴)
11:20 바람재 통과(구정봉)
13:10 미왕재(억새밭)                     점심 식사
14:30 도갑사 도착
15:30 뒷풀이

○ 영암에서 서울로

16:30 영암발 서울행 고속버스 승차
21:30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도착       또 뒷풀이

6. 기타

○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토요일 월출산 일대의 강수 확률은 매우 낮으며,
    구름만 약간 낄 것으로 보임.

○ 하루 숙박을 할 경우 먼저 안용당(추천 고택) 민박집 섭외
    061)472-0070 / 010-3114-1313. 하루 민박 4만원
    도갑사에서 안용당까지는 대략 3km 도보로 한 시간 정도.
○ 2007년 겨울에 찾아간 월출산 산행기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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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고 야근도 예정되어 있어서 자전거를 집에 놓고 출근했다. 오늘은 반대로 오전에 비가 온다는 뉴스가 있어서 잠시 망설였다. 게다가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니 왈칵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하늘이다. 그런데도, 어제 하루 자전거를 타지 않은 몸이 요동을 쳤다. 달려, 달려… 결국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서고 말았다. 그러나 10여 분 정도 달리니 빗방울이 하나 둘 긋기 시작했다. 하늘은 이제 곧 엉엉 울어버릴 거야, 라는 듯,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구일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구일역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전철로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구일역 자전거 주차대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보니 생각이 또 바뀌었다. 거기에는 누군가가 자전거를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또 구일역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을 일도 번거롭게만 느껴졌다. 결국 다시 자전거를 몰아 출근을 시작했다. 다행히 왈칵 쏟아질 것 같던 하늘은 끝내 그렁그렁한 눈가만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회사에 도착해 살짝 젖은 운동복을 벗고 수건을 닦았는데 젖은 물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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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이 떠났고, 국어교과서팀이 2층 국어팀으로 흡수됐고, 3명의 보직 변경이 있었다. 이는 모두 검정교과서 실패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책임자였던 J실장은 개인적으로 ‘죽고 싶을 정도였다’라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마치 거대한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바닷가처럼, 대지진이 일어났던 도시처럼 폐허가 됐다. 듬성듬성 빈자리는 섬처럼 외롭고 거대했다. 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비겁함과 자괴감을 가슴 속에 심었다.

검정교과서 당락은 운칠기삼(運七技三)? 이런 말이 나온 데는 심사의 기준과 과정, 절차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한권의 교과서 검정에 심사비료를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까지 받으면서 불합격 판정 사유서는 달랑 A4 2~4장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만으로 저자들이나 편집자들이 결과를 수긍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저자는 불복신청을 하겠다며 펄펄 뛰는가 하면 어떤 저자는 심사위원의 자격을 말하며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러나 합격과 불합격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 자기합리화도 자기 반성이 없다면 공허하다.
또 편집자 중에는 부실한 저자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난하기도 한다. 물론 검정교과서에서 저자가 차지하는 몫은 매우 크다. 그러나 숨은 편집자의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다. J실장은 편집자와 저자의 책임을 반반이라고 말했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 결과는 저자와 편집자가 고루 나누는 것이라는 지적이다(편집자와 저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언급해 보겠다).
실패 이유에 대해 자기합리화나 그럴듯한 변명으로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냉철한 자기반성과 비판이 있어야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사회는 두 번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보수적인 교과서 출판계의 흐름을 보았을 때, 두 번의 실패라는 것은 편집자의 자세와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고 그 결과는 업계에서 퇴출을 의미한다.

다시 한 번 자리 이동이 있을 예정이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세 명의 직원을 맞이하기 위한 자리 배치이다. 나 역시 지금 이 자리를 떠나 다른 자리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주 다함께 단합대회 겸 MT를 떠난다.
시간은 벌써 2009년도에 이루어야 할 작업 시간의 절반 정도를 지나고 있다. 11월 제출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지옥 같은 야근의 계절이 올 것이다. 시간은 조금씩 목줄을 죄여오고 있다. 다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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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퇴근 후 대한문 앞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줄이 좀 길 거라고 생각되어 경향신문 앞에서 버스를 내렸죠. 잠깐 역사박물관 앞 분향소를 흘낏 쳐다보고 이내 정동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정동길을 오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경향신문사를 끼고 정동길로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캐나다 대사관 앞에서 조문행렬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2시간 반을 기다려 조문을 마쳤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짐은 좀처럼 벗어지지 않는군요. 분향소 주변에 완전무장한 경찰들을 배치해 놓고서 입으로는 예우를 한다는 이명박 정부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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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무현 후보 역시 사람이라 번번이 여러 유혹 앞에서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그런 유혹에서 건져낸 것도 건강한 상식과 믿음을 가졌던 많은 시민들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대선을 열흘도 남지 않은 2002년 12월 10일, 개혁당 구로지역 게시판과 대학 동문회 카페에 썼던 글 "이번 대선은 축제다"의 일부입니다. 선거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신나게 즐겁게 선거를 즐겼던 적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전 1997년 대선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도 되었던 전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노무현 후보와 함께 했던 그 때가 제 생애의 최고 절정이었습니다. 이긴다는 확신도 있었고, 변화에 대한 기대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역사의 중심에 내가 서있다는 자랑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노무현은 나에게 위대함 그 자체였던 존재였지요.

그렇게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2002년 12월 19일 전 종로 바닥 한가운데서 '수립 민주정부' 노래를 목청껏 외쳤습니다. 누구 하나 손가락질 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시비걸지 않았고, 모두가 함께 노래 불렀지요.


2.

그러나 다음 해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합니다. 당시의 내 심정을 담은 글을 꺼내 보았습니다. 역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대통령이, 엄청난 거짓말을 해대며 전쟁을 벌이는 부시를 쫓아간다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넘어 절망적인 심정이다. (중략) 요즘은 그래서 우울하다. 그래서 한껏 기대했던 많은 기대들이 현실이라는 화려한 수식 앞에서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어쩌랴, 살아가는 일이 조금씩 허물어가는 일일텐데....

이처럼 나는 나의 적극적 선택을 통해 선출한 대통령이 지지세력들의 뜻과는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지요.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인간 노무현의 결정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잠시 몸담고 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표명을 했습니다. 아쉽게 직접적으로 파병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국가기관의 하나로 그런 의견표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모험이었고, 그런 의견표명이 나오기까지 내부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넘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전쟁 반대 의견표명만으로도 국가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관 뿐만 아니라 여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정부가 이미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에서 이런 의견제시는 부적절하다"고 평하고, 한나라당은 "국가기관이 사실상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본분을 망각한 국론분열 선동행위로 인권위원장은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성명을 발표했죠.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국가인권위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단 한마디로 정리했죠.

"인권위는 원래 그런 말하라고 만들어 놓은 기관이다."

국가인권위의 존재 목적과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인간 노무현의 결정과 대통령 노무현의 결정은 다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한국의 세계사적 위치가 어디쯤이며 약소국의 한계가 대통령의 짐이며, 그것은 곧 국민의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3.

그리고 그 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행사를 국가인권위에서 주관했습니다. 당시 기념식 행사 중에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그리고 인권을 위해 일생을 희생해 온 분들이 단상에 올라가 '세계인권선언문'을 차례로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선언문 낭독이 끝나고 노무현 대통령의 축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단상에 선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분들(선언문 낭독하신 분들) 앞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으면 부끄러울 것 같다"며, 즉석 연설을 시작했지요. 소박하고 담백한 모습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연설이 시작되고 얼마 후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묵 피켓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인권위 직원들은 사색이 되어 경호팀과 함께 즉각 제지에 나섰고, 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썰렁해졌지요. 이때 노무현 대통령은 "몇 분들이 제게 호소하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국가가 (경쟁사회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한 약자를) 돕고 해결해 줘야 인권국가지 인권의 사각지대를 구경만 하는 것이 인권국가냐,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말보다는 저의 실천이 모자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하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말고 가자"라고 말하며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고, 피켓 시위는 축사가 끝날 때까지 줄곧 진행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이 저 정도의 인권의식이라도 있었나 싶습니다. 스스로의 실천이 부족함을 성찰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돌아보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물론 그의 실천이 어느정도였는지 역사가 평가하리라고 보며, 지금의 감정적 평가와는 선을 긋고 싶습니다. 그래도 '비판하면서도 믿음은 버리지 말고 가자'라고 하신 그 말씀이 지금에 와서 왜 이리 후회스러운지 모르겠군요. 


4.

노무현 대통령 취임 100일. 군대에서도 100일을 잘 견디면 3년을 견딜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100일 휴가도 보내주지요. 저 나름대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100일을 돌아보는 글을 썼었군요.

노무현에 대한 비판은 개혁 세력 전반의 목소리로 나타나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 주요 목표가 노무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무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게 현실이다. 우리는 지나친 꿈을 그에게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노무현을 인정한다. 그가 하는 작업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시스템을 제대로 바꾸면 50년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시스템은 바로 미군정 5년간 쌓인 것임을 상기해 보자.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한총련 수배자 문제로 수배자의 부모를 만났는데, 경찰들은 보란듯이 그 부모의 자식을 곧바로 잡아들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통상적인 수배자 검거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학생은 평상시처럼 학교 바로 앞 길건너 식당에서 학교로 오다가 잡혔던 것이죠. 경찰이 이미 학생의 행동 습관을 알고 있으면서도 잡지 않다가 법무부장관과 한총련 수배자 부모가 모임을 잡은 그 다음 날 잡아들인 셈입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그것은 시스템입니다. 노무현은 눈에 보이는 사안이 아닌 시스템과 싸워온 대통령이었습니다. 검사와의 대화 역시 그런 면에서 접근한 문제였다고 봅니다.


5.

그냥 미안타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말은 임시방편이고 어쩌면 우리 정치현실을 더욱 퇴보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대통령의 자리라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중략)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투쟁가로서의 노무현을 보는 듯하다. 이미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순교 아니면 영광만을 향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무척 고심하고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결정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다시 개인이 아닌 구조를 생각한다.

위 글은 2004년 3월, 총선을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그는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한 사건을 보면서 작성한 글의 일부입니다. 이 당시 그를 보면서, 이제 개인 노무현을 보지 않고, 구조 안의 노무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노무현에 대한 생각은 잊어야 하는 시기였죠. 그러면서 탄핵 정국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러 촛불집회에도 나갔습니다. 노무현을 구하자는 생각보다는 후진적인 한국의 정치현실을 바로잡자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복귀하길 바라지만 그렇게 물러나게 되어도 국민들의 탄핵반대 집회에서 발현된 에너지가 정치 현실을 한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찌 몰랐을까요, 당신의 순교(적절하지 않은 표현일 수도 있지만)가 지금은 너무 가슴 아픕니다.


6.

열린우리당이 국회 다수 여당이 된 이후, 아이러니하지만 난 정치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개혁당 시절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며 민노당으로 옮기는 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보면서 그냥 중립지대로 남고 싶었습니다. 정치개혁을 향한 우리 사회의 열망은 더 뜨거워졌지만 저는 점점 더 차가워졌습니다.

2004년 6월, 김선일 씨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해 8월 늙은 노동자가 고공 크레인에서 쓸쓸히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5년에는 시위 농민이 사망했습니다. 2006년에는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졌고, 그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했죠. 2003년 "국가가 (경쟁사회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한 약자를) 돕고 해결해 줘야 인권국가" 라고 말했던 그가 시장의 폭력에 손을 들고 만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직 기간 동안 10여명이 목숨을 끊었고,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으로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라는 말로 저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저 세상에서 그 노동자들을 만난다면 적어도 그 말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 저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시장은 인권위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7.

노사모가 노무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인 바람과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투사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원했고 그런 방식으로 정치의 주체로 서게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예전에 명계남 씨가 노사모에 대해 쓴 글의 일부를 옮겨 보았습니다. 노사모는 아니지만(그런데 왜 꼭 이렇게 밝혀야 하는지 참 답답하지만), 글을 약간 각색해 보면,
"내가 노무현을 통해 내 자신의 정치적인 바람과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투사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원했고, 그런 방식으로 정치의 주체로 서게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에게 우리 정치를 보는 시각을 교정해 주었습니다. 또 열정과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재임 중 회한과 후회와 실망도 더불어 안겨 주었던 사람입니다. 돌이켜 보니, 그와 함께 했던 지난 시기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아쉬움은 없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분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 구조겠지요. 그런 것을 아시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 2002년 이전의 노무현은 제 기억에 영원히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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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다. 해야 할 일들에 조금씩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다가 문득 인터넷 의 기사가 눈에 띄고,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뉴스나 글들이 보이면 울컥한다. 쉽지 않은 날들이다. 이 충격은 아무래도 오는 금요일까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경계할 일이다. 제 감정에만 충실해 먼저 가신 이의 뜻과 바램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거다. 국민과 역사가 알고 있는 그들의 죄악은 다시 국민과 역사의 심판으로 돌리자. 당신이 심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은 추모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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