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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권위에서 3년이나 있었지만, 인권위가 어떤 구체적인 액션을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기껏해야 잔소리 정도죠. 이거는 이렇게 해라, 저거는 저래서는 안된다 등등...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의 서비스라는게 다른 국가기관에 잔소리나 하는 거다 보니 실상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직접적인 편의는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불편한 분들이 참 많은 것 같네요. 그렇다면 없앨까요? 2MB 속마음이야 없애고 싶어 안달이겠지만(그의 형 이상득 의원은 “인권위가 이 정부 하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나”라고 발언했죠) 그래도 인권이란 말에는 뜨끔한 모양인지 인권위 규모를 대폭 축소하겠다고 합니다.

나름 3년동안 국가인권위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그만두면서 섭섭한 점이 많았고, 아무리 인권기구라라지만, 그래도 공무원들이라서 어쩔 수 없구나 싶었던 점도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죠.  

인권위가 있다고 해서 인권이 잘 지켜지는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해 얼마만큼 학습이 되어 있는지이며, 국가는 인권이 바탕이 되는 정책을 세우고 있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또한 국민들은 스스로가 가진 기본적 권리로 삶의 내용을 꾸리고 있는지도 한번 돌아봅시다. 

얼마전 TV 주말의 명화로 '홀리데이'가 방영되더군요. 이미 오래전에 본 영화이지만 새삼 이 때에 다시 이 영화를 틀어주는 영화 담당자의 그 속마음을 훔쳐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나타난 철거민 사건, 유전무죄 무전유죄, 공권력의 남용 등등은 저게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실에도 내재되어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그 정도 자유는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주인공의 동생이 말하는 저 말에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인권이 묻어 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서 국가인권위 축소 반대를 위한 서명운동(클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권은 누군가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권은 스스로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청원에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자(3월24일) 관련 기사 링크했습니다.

 

>>>인권위 "행안부, 조직 축소 방침 즉시 철회하라"(프레시안)

>>>벼랑에 내몰린 ‘인권의 보루’…MB정부 강제축소 강행(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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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 10점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이미지를 접한다. 일상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세계 곳곳의 매체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이미지들도 있다. 전 세계에서 보내서 우리 안방까지 들어오는 이미지들이 주는 느낌은 그리 유괘하지만은 않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동도 있고, 자국의 내전에 시달리다 못해 이웃 나라의 국경지대의 텐트촌에서 생활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모자의 모습도 있다. 가깝게는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 아동의 갸냘픈 팔다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사진도 볼 수 있다.

요즘에는 더욱 잔인한 영상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용산 참사 장면을 담은 여러 이미지들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만날 수도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 뉴스로 보여지는 영상들은 불과 한두시간 전의 영상들이 아침 밥상에 올라온 것이다. 그만큼 빠르게 그리고 더 적나라하게, 더 사실적으로, 더 현실감 있게 세상의 맨살을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이미지, 즉 타인의 고통을 담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연 이런 이미지는 언론들의 먹잇감으로 사냥이 되어 스펙터클의 감각을 자극하는 소비재일 뿐일까? 이제는 너무나 닳고 닳아서 감흥이 오질 않는 진부한 흥미거리일 뿐일까?

누군가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여지를 잃어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누군가는 우리의 가슴이 너무나 닳고 닳아서 이제 석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슬퍼한다. 그런걸까? 정말 나와 당신의 가슴은 그렇게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수전 손택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지들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지금의 이미지들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연민이라는 감정에 솔직하게 다가서자고 역설하고 있다.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수동성이다. 냉담한 것으로, 혹은 도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무감각한 것으로 묘사된 상황은 따지고 보면 감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감정, 좌절의 감정으로 말이다."

연민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수동성이 문제다. 감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우리가 지구 저편의 고통에 대해 눈으로 보고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를 더욱 더 절망과 좌절로 이끄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귀기울이고, 그 고통을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고통을 목도한 사람의 의무다. 

"특권(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보는 것)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쌓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타인의 고통>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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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있는 힘껏 생을 살아간다.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삶의 가느다란 끈을 결코 놓는 법이 없다. 하물며 함께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딱히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인간중심주의, 모든 생명들에게는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그 말. 다시 행복을 정의해야할 때이다. 영화 <워낭소리>가 말하는 참삶에 귀기울여 보자.

우리는 24개월령 미만의 소들만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24개월의 소들도 온갖 항생제를 맞으면서 억지로 살을 찌우고, 깨끗한 풀이 아닌 가공된 사료만을 먹여 키운 것들이다. 평생 들판을 자유롭게 누비지 못하고 제 몸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 좁은 우리에 갇혀 자기가 쌓은 똥과 오줌 범벅으로 살아간다. 고작해야 30개월의 삶을 살다가 미치거나 주저앉거나 도살된다. 그게 우리 시대의 소들의 삶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그 고기의 가치를 자본의 가치로 환원시켜 생명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에 대해서는 잊고 살고 있다. 그런 고기를 먹고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뜨거운 우리의 촛불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요구하는 촛불이 아니라 그렇게 죽어간 소들을 향한 기도의 촛불이어야 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 그래 그런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가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영화 <워낭소리>가 그 해답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노동, 생명, 교감, 진정 행복한 삶의 근간은 바로 그곳에 있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 없는 것에 큰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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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경우를 두고,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할 거다.
너무나도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물론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지만,
만년필이라는 게 이제는 워낙의 고가의 물건이다 보니
그저 없이 지내도 된다 싶어 잊고 살았는데,
불쑥 내 앞에 나타나니 당황스럽지만 반갑다.

여전히 나에게 손으로 쓸 수 있는 글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검은 밤하늘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침묵의 시간에
별처럼 빛나는 글별들이 낚아질까?

하지만 선물한 사람의 손이 부끄럽지 않을만큼 노력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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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 어느 뒷골목 : 저 벽에 붉은 글씨를 새긴 자는 누구일까?



 
이번 용산 참사가 나서 한참을 울분하고 분노하고 적개심을 불태웠으나...
단 한번도 거리 집회에는 나가 보지 못했다.
스스로 돌아보면 여러가지 사정을 핑계로 대지만,
어쩌면 나 스스로 연민의 덫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누구 말대로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곧 시들해지는 감정일 뿐이다.
그렇다고 딱히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그 연민이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연민은 딱 거기까지다.

그저 나는 나의 연민을 통해 나의 무고함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나도 슬프고, 분노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연민은 스스로의 무력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연민은 그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세상에 대해 연민하다가 결국은 나 스스로의 모습에 연민을 보낸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서울의 뒷골목을 후비고 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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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2월 6일) 종로의 어느 노래방 앞에서..

아주 오래된 인연들이다.
1년에 두어번 볼까 말까한 인연이지만 이처럼 사람을 유쾌하고 즐겁게 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기꺼이 함께 하고 싶다.
비록 지금의 삶이 참으로 힘겹고 더디고 슬프더라도
온갖 위세나 허풍을 당당하게 받아쳐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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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강모씨의 얼굴을 보니 어떻든?
- 음, 잘 생겼더군. 저렇게 생긴 사람이 그런 잔인한 짓을 하다니 싶었어. 아주 오래전 칼 858 여객기를 폭파시킨 김현희는 사람들이 '이쁘니까 용서해 주자'라고 하더니 지금은 얼굴 공개만으로도 이러쿵저러쿵 하는지 모르겠어. 나쁜놈이니까 당연히 얼굴 공개되어야 하는 거 아냐?
-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피의자 즉, 죄가 의심되는 사람일 뿐인데, 마치 죄인처럼 취급하는 건 좀 부당한 일이 아닐까?
- 물론 아직 재판이 시작된 것도 아니지만, 일단 스스로 범행 일체를 자백했고, 명백한 증거도 나왔다고 하잖아. 그렇다면 사실상 그가 저지른게 100% 확실한 거 아냐? 그런 범인의 얼굴을 공개한 건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데.
- 그렇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죄의 여부를 따지고 그에 따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거잖아. 법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여론에 의해 마녀사냥식 처벌이 이루어진다면 그냥 인민재판대를 열지 뭐하러 돈들여가면서 재판을 열겠어.
- 인민재판을 하자는 건 아니지. 흉악범의 얼굴 공개는 이제 공론화할 필요가 있잖아. 게다가 얼굴 공개를 통해 흉악범의 여죄에 대한 제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말야.
- 그렇지 공론화할 필요가 있지. 하지만 공론화도 없이 바로 공개를 하라는 건 아니잖아. 공론화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공개해 버리는 건 대중 의식에 편승해서 말초적인 관심을 자극해 돈을 벌겠다는 것밖에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야.
- 언론이 좀 성급한 감이 있긴 하지만,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혹시나 있을 예비 흉악범들이 뜨끔할 거 아냐. 흉악범들은 인간도 아니지. 살인마는 개돼지 보다 못한 놈이야. 얼굴을 공개해야 그만큼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보다 안전한 사회가 되지 않겠어? 
- 강모씨는 여성을 생명을 가진 존엄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성적 유희물로 보았다고 하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강모씨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와 우리의 차이는 별로 없어. 똑같은 인간이 되는 거지. 우리가 그와 다르다는 건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할 때야. 인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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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대중의 의식은 롤러코스터 같다. 아주 짧은 시간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지만 곧 잠잠해지고 놀이는 끝나버리는 것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고작해야 한달이면 잊혀질 거라며 느긋한 국회의원들의 발언도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누구는 용서와 망각을 잘하는 국민이라고 비아냥대지만, 비단 국민성만으로 탓할 수 없다. 그만큼 대중을 자극하고 흐름을 교묘히 이용하고, 거기에 편승하려는 여론 조작의 달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말초적이고 신경질적인 분노는 근본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모씨의 연쇄살인도, 용산 참사도 각각이 개별적인 문제일 뿐이지만, 그 뿌리를 찾아서 연쇄 살인을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 장치가 필요하고, 막가파식 재개발과 무분별한 공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사회적 노력이 없을 때의 분노가 정의로운 분노다.

그런데 2MB는 끝끝내 사과할 생각이 없나 보다. 어쩌다가 저런 놈을 대통령 만들어서 우리 사회가 이 개고생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또 공권력의 이름으로 쳐바를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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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광고성 짙은 글로 '프레스블로그'에서 하는 블로그 광고의 협찬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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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재작년 즈음이었을 거다. 여행사에서 막 일을 시작할 무렵, 선배의 지시에 따라 '내나라 여행 박람회'(http://www.naenara.or.kr)에 다녀온 일이 있다. 이런 박람회장에 가본 것도 처음이지만, 우리나라의 모든 지자체가 이곳에 모인 것처럼 아주 풍성한 여행 잔칫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단순한 관광안내 뿐만 아니라 특산물부터 전통문화 재현 등, 마치 현장에 가본 것처럼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원래부터 해외여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지만, 내나라여행박람회를 통해 우리나라 여행지 곳곳에 대해 더욱 관심과 애착이 갔던 건 사실이고, 이후에 있었던 구석구석 찾아가기 여행에서도 그러한 즐거움을 또다시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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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내나라여행박람회에서 찍은 사진들

특히 아이들과 함께 간다면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고, 특별한 국내 여행을 바란다면 미리 전국 곳곳을 누벼볼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으며, 좋은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광고성 글이긴 하지만, 정말 다시 가보고 싶은 박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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