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출퇴근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만 골라서 말하라면, 그것은 매일매일 자전거로 여행하는 기분이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편하게 여행하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예외다. 하지만, 여행의 난관과 도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전거 출퇴근만큼 일상을 여행으로 만들 수 있는 요소는 그리 흔치 않음을 강조하고 싶다.
내 출퇴근 길은 항상 똑같다. 개봉동집-개봉사거리-구일역-구로역-신도림역-영등포역-여의도-마포대교-마포역-공덕역-회사. 매번 같은 길을 달리지만, 어제처럼 자전거가 말썽을 부리는 일이 있다해도 한번쯤 거치는 사소한 불운으로 여길만큼 여유도 생겼다.
마포대교는 그 여행의 후반부가 시작되는 곳이다.
저녁에는 저 63빌딩에 비치는 노을이 무척 아름답다. 지금은 여름이라서 출근시간에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지만, 겨울철 좀 일찍 나올 수 있다면 해가 도시 빌딩숲에서 떠오르는 걸 볼 수도 있다. 도시 일출이 뭐 볼게 있겠냐만, 일상의 작은 이벤트 정도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그도 즐겁다. 자전거 출퇴근 여정 중에 아침에 마포대교를 건널 때가 가장 여유로울 때이다. 저녁에는 다른 편에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달리는 데 그 때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정한 불운이 겹치는 날이 있다. 어제의 불운은 자전거다. 혹시나 지레 사고를 걱정하는 분들이 있을까 미리 말하지만, 걱정마시라. 아주 사소한 불운들이 찾아왔을 뿐이니 말이다. 예를 들면 그런거다. 평상시에는 전화도 오지 않는 휴대전화가 꼭 필요한 전화를 기다릴 때면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던가, 오랜만의 나들이에 가져간 카메라가 그날따라 말썽을 부린다던가 하는 기계의 고장과 사람의 운이 겹치는 사소하지만 불편한 사건들이다.
사고의 발단은 콤팩트3.0의 펑크에서 비롯됐다. 지난주에 펑크가 났고, 주말 내내 잡일로 정신이 없어 그냥 보냈다. 월요일날은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하는데, 복잡한 버스와 전동차가 그날따라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어제는 아버지의 자전거(옛날 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 자전거도 워낙 오랫동안 험하게 타서 그런지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 문제다. 무사히 출근을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등포를 지나 막 신도림역 앞에 도달할 즈음 뒷바퀴에서 둔탁한 느낌이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싶어 돌아 보니 바퀴가 펑크났다.
천상 신도림역앞에서부터 자전거포가 나올 때까지 걸어야 할 상황이었다. 매번 지나던 길이라 평소에 자전거 점포를 눈여겨 봐둔 것이 다행이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집에까지 가는 길에 2곳의 자전거 점포가 기억났다. 하나는 구로역 가기 전에 있고, 또 하나는 동양공전 앞에 있다. 그러나 이내 다가온 기가막힌 불운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게 했다.
신도림역에서부터 자전거를 질질 끌고 가며 구로역 쪽에 있는 자전거 점포에 도착했다. 점포의 문 앞에는 23일부터 25일까지 휴가를 간다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고, 가게 가니 쉬는 날이다. 해는 점점 뉘엇뉘엇 지는 데 갈길은 멀다. 다음 자전거 점포인 동양공전 역 앞으로 향했다.
이놈의 자전거가 심술이 났는지 구로역 횡단보도를 지나자 마자 또 말썽이다. 푹 꺼진 뒷바퀴 휠에 끼우는 고무바킹이 빠져 덜렁거리면서 자전거 바퀴에 감기는 게 아닌가. 또 한참을 자전거와 씨름하다가 결국에는 고무바킹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삐꺽삐꺽,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의 처절한 울음 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치 학교가기 싫어 꾀병부리는 아이의 투정같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동양공전 역 앞의 자전거 점포에 도착했다. 다행히 점포 문은 열었고, 주인 아저씨는 어떤 아가씨의 자전거에 예쁜 전조등과 후미등을 달아주고 있었다. 일을 마칠 즈음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어떻게 오셨어요?"
"네, 바퀴가 펑크나서요. 아휴 이걸 신도림에서부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는 가게 안으로 휙 들어간다. 그리고 점포 구석에서 펑크 떼우는 공구를 주점주섬 챙겨 들고 나타났다. 사실 바퀴에 펑크난 사실만 알면 됐지 그 사정이야 궁금할 리가 없는 거다. 어차피 그건 내 사정이고~~ 아저씨는 바퀴 떼우는 공구를 들고 나와 살폈다.
"아이구 이거 자전거가 총체적으로 문제가 많네요."
그럴 것 같더라니, 그냥 펑크 떼우는 걸로 안 끝날 줄 예상했다. 이 자전거가 좀 예전거라서 지금 이 자전거에 맞는 부품이 없단다. 그러니 새로운 튜브로 갈아야 한다는 얘기. 거금 12,000원을 주고 튜브를 갈았다.
검찰이 7년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다. 그네들은 7개월치만 보았다고 하는데, 7년치를 가져갔으면서 7개월치만 봤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교환하는 걸로 봐서는 이럴만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라고 관심법을 쓰는 검찰이니, 7개월치만 봤다는 말을 믿는다는 게 바보다. 시민의 자유로운 사상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어렵게 하는 것, 그것은 곧 통치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고, 비판에 대한 걱정없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곧 사나운 개를 목줄 없이 거리로 데리고 나가는 것과 같다. 시민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제 사람들은 유튜브 망명에 이어 이젠 이메일 망명까지 시작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오늘 나도 구글계정과 구글 이메일을 개설했다. 사적인 이메일은 앞으로 구글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난 것 같다. 아내에게 알맞은 자전거를 사줘야겠고, 나에게도 출퇴근용 자전거가 하나 필요하다는 생각에 적당한 미니벨로(접이식 자전거)를 물색하던 차였다. 예쁘다 좋다 싶은 건 고가의 외국제였고, 싸고 적당하다 싶으면 어딘지 하나 둘 부족한 게 눈에 띄웠다. 인터넷만 봐서는 역시 자전거 구입이 쉽지 않다.
그래서 잘 아는 자전거 전문 가게에 들렀다. 예전 자전거도 이곳에서 사고, 자전거 용품도 웬만하면 여기서 구매하던 터라 주인아저씨와는 이미 안면을 튼 상태. 아저씨가 추천한 것은 첼로스포츠에서 나온 블랙캣 콤팩트 3.0이었다. 가격은 38만원. 싸게 판다고 말하는 웬만한 인터넷 쇼핑몰(현재 11번가에서 내놓은 최저가는 이것저것 할인받아 40만원에서 몇 천원 빠진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이런 가격으로 살 수 있었던 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여하튼 자전거는 꼭 자전거 전문 가게에서 사는 게 맞다는 것.
그렇게 해서 자전거 출퇴근이 다시 시작되었고, 약 한 달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블랙캣 콤팩트 3.0의 시승기를 올려 본다. 자전거라는 게 한 달은 타 봐야 좋고 나쁜 점이 나오는 거 아닌가. 사자마자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시승기 올린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일단 콤팩트 3.0은 가볍다. 전체 중량 12.2kg으로 도심 자전거 주행에서 중요한 순간적인 쾌속주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브레이크도 역시 알루미늄 V 브레이크. 순간제동력이 좋다. 새거라서 좋은 게 아니라 한달 넘게 쓰고 있는 지금도 급브레이크 잡으면 내가 튀어나갈 것 같을 정도로 잘 잡힌다. 게다가 쉽게 접히고, 접혔을 때 차지하는 공간이 작아서 좋다. 집으로 돌아오면 접어서 현관문 안쪽에 놓기 딱이다. 또 이런 접이식 자전거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 있어 다른 자전거 보다 유리하다. 자전거 출근 이후 갑작스레 잡힌 술자리 제안이 있어도 자전거 때문에 망설일 일은 없어진 셈이다.
안장도 집어 넣을 수 있다. 그러면 정말 작아진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일단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가 전혀 없다. 접이식 자전거의 장점을 살리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졌나 본데, 다년간 자전거를 타 온 나도 첫 출근한 날에는 엉덩이와 손목이 아파서 고생 좀 할 정도였다. 또 작아서 그런지 촐랑거림이 심하다. 작은 바퀴는 조금만 핸들이 흔들려도 바로 주행에 영향을 미쳐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정성은 좀 떨어진다는 말이다. 도심 도로에서 타기에 가볍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핸들 조작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지금도 나를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또 자주 접고 펴다 보니 바퀴와 핸들의 각도가 틀어져서 운전에 애를 먹는가 하면, 기어가 잘못 자리 잡아서 소리가 나는 경우도 있어서 재점검 받기도 했다. 제법 잔손질을 많이 필요로 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난 지금의 콤팩트 3.0에 80점의 점수를 주고 싶다. 타고 다니면 다닐수록 실증이 나는 자전거가 있는가 하면, 점점 더 애착이 가는 자전거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개개인의 성향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만, 자전거가 주는 다이내믹한 삶의 즐거움을 안다면 아마도 애착에 더 무게가 실릴 것이다. 콤팩트 3.0은 그런 애착을 주기에 적당한 자전거다.
지난 주 금토(12~13)일 영종도로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아마도 가장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워크숍 추진위원이 된 듯한데, 이것 때문에 일주일 동안 골머리를 좀 앓았습니다. 혼자 놀러가는 거라면 딱딱 계획이 나오겠는데, 재정이며 일정이며, 뭐 하나 제대로 받쳐주는 게 없어서 참으로 어렵게 어렵게 숙소를 예약하고 프로그램을 짰지요. 그런 고생 때문이었는지, 첫날 진행자가 술을 먹고 다음날 반시체로 뒹구는 사태가 벌어졌더랬습니다. 역시 저는 섞어 마시면 안됩니다. ㅠㅠ
선발대끼리 먼저 고기 한 점 쓱~
새벽 1시반의 바닷가 산책. 미쳤어~ 도대체 술이 만땅 취했는데, 그래도 사진은 어떻게 찍었군.
일부는 새벽에 일찍 나가고, 남은 사람들만 단체 사진. 본인은 술이 덜깼다...
이번 워크숍은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마시안 갯벌체험이 제개는 가장 인상적이었죠. 기대 이상의 풍경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몸만 괜찮았다면 마음껏 즐겼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좀 기운내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뻗어버렸습니다.
아이들을 동반한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다.
왼쪽 두번째 꼬마는 쉬가 마려웠던 걸까?
처음에는 갯벌에 들어갈 힘도 없어서 저렇게 주저 앉아 있었다.
김차장님 신발과 멀리 우리 팀원들
바다에서 갈매기 사진은 필수
마시안 해변의 갯벌체험에서는 조개를 줏을 수 있다고 한다.
소라개. 정말 많다.
기습 컷
물이 빠지자 바다로 가는 소라개들
소라개가 그린 하트
조과장님 차 안, 영종대교를 건너며
많은 분들이 퇴사를 하고, 다시 또 새로운 식구들 여럿이 처음으로 자리를 마련했던 워크숍. 대개의 워크숍이 그러하듯, 개개인들과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먹했던 관계들을 한단계 끌어올려 좀더 한 걸음씩 서로를 향해 다가섰고, 우리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 자리가 되지 않았나 하며 자평해 봅니다. 하지만 진행자가 술에 뻗어 시체가 되어 버린 초유의 워크숍이라는 오점은 지워지지 않겠네요 흑~
회사에서 자리 이동이 있었다. 출입구 가까운 곳으로 배정됐다. 위치가 마음에 들리가 없지만, 책상 두 개를 붙여 놓아서 넒어진 점은 좋게 평가할 수 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일의 과정과 결과에서 굵은 선을 남기고 스스로 평가한 것과 조직이 평가한 것과 사람들이 평가한 것이 반드시 일치할 수만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매번 다른 평가점들을 하나로 합의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은 나에게 있다. 물러서거나 맞짱뜨거나 먼저 해야할 나의 포지션에 대한 이해, 그것이 그 합의선이다.
책상이 넓은 게 좋다. 교정지를 넒게 깔아서 시원해 보여 좋고, 여기저기 필요한 자료들을 앞으로도 충분히 쌓아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효율적이면서 활용의 폭이 넓은 공간을 가진다는 건 마치 넓은 집을 가진 것처럼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만큼 넓어진 공간에 무언가를 채우고 싶다는 소유의 욕구도 더불어 커진다. 여유있다 못해 횡해진 이 공간에 무엇을 어떻게 채울까가 고민이다.
접란. 어제 길거리에서 하나 입양해 왔다. 가격은 5,000원. 화분은 예전에 동백나무를 키웠던 화분이다. 동백이 죽은 텅빈 화분에 접란을 옮겨 심은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별 관심 없어도 꽤 잘 자라는 화초란다. 조만간 위로 뻗은 얇은 가지 끝으로 꽃이 필 것 같다.
금요일은 몹시 피곤한 날이었다. 사무실 자리 이동과 가구 재배치가 있었고, 남자 5명이서 온몸이 부서질 정도로 일을 했다. 녹초가 된 몸을 그냥 집으로 끌고 가기에 어려워 술을 한잔 하자는 제안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해장국에 소주 한잔을 마시고 집에 오니 9시가 다 되어갔다. 부랴부랴 가방을 싸고 지하철을 이용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11시 반이 되어 도착한 고속버스터미널. 토요일 심야에 광주로 향하는 사람은 많았다. 애초에 새벽 1시 차를 예약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1시 45분 차를 예매했다. 함께 가기로 한 김차장님은 12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둘이 함께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 차를 기다렸다. 모두 피곤했다. 무사히 산을 마칠 수 있을까를 걱정했고, 농담이었지만, 그냥 집에 가자는 말도 나왔다. 의자에 잠시 누웠는데도 금세 잠이 들었다. 시간이 되어 나가보니 새벽에도 버스들이 줄을 서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서려 있었지만, 터미널은 분주하기만 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임시 운행되는 버스도 꽤 있었던 모양이고, 대부분의 버스가 만차로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세상은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나 보다.
새벽 1시 45분 버스를 탔다. 타자마자 창의 커튼을 치고, 모자를 꺼내어 얼굴을 덮고 수면모드로 들어갔다. 버스 안의 선잠, 그것은 달콤하면서도, 만성 신경통 같이 끊임없이 나를 깨운다.
5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광주에 도착했다. 곧바로 영암 가는 시외버스표를 끊고 지체 없이 버스에 올랐다. 내가 서두른 이유는 산행을 빨리 마치고 내려와 4시 반에 있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영암까지 가면서 몇몇 터미널에 서는데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고, 기사님이 직접 "○○이요"라고 알려주는데, 발음 때문인지, 사투리 때문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는 내가 이방인인 것이다. 기어이 '신북'을 '영암'으로 착각해 내리려 했으니 말이다.
영암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6시가 넘어서다. 벌써 몇 번째 찾아온 것이지만, 여전히 낯설다. 터미널 안의 매점 노인은 그 이른 시간에 이미 가게를 열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예전에 구수한 사투리로 월출산 자랑을 하셨는데, 피곤하신지 조용히 손님을 맞으신다. 매점에서 물과 음료를 비롯해, 산에서 마실 캔 맥주와 육포, 출출할 때 먹을 찹쌀떡을 샀다.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사면 싸겠지만, 지역의 경제를 위해 이 정도의 사려는 필요하다고 본다. 월출산 지도를 찾았으나 없다.
터미널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월출산 천황사 매표소까지는 택시로 5,000원. 택시 기사에게서 농촌의 흙냄새가 났다. 구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좋았다.
아침식사는 월출산 입구 식당에서 해결했다. 백반정식인데 6,000원을 받는다. 아침을 먹고 짐을 다시 재정비하고, 등산화 끈을 다시 묶었다. 출발하는 일만 남은 시간은 오전 7시. 매표소를 지나면 곧 야영장이 나온다. 집에 묵혀두고 있는 텐트가 생각났다. 여기서 야영을 하면 되겠구나 싶으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야영을 하게 될까 싶다.
천황사지 갈림길에서 매번 다니던 천황사 방향을 버리고 바람계곡 쪽으로 길을 잡았다. 낯선 길은 또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두려움이 없다면 설렘도 없을 것이다(07:45).
바람계곡. 구름다리. 월출산의 이름을 풀면 달이 나오는 산. 월출산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은 인간의 세계를 묘사한 이름이 아니다. 마치 어느 무협지에 나오는 신선계를 대표하는 이름들 같다. 바람계곡은 양옆의 바위산들이 육중하게 자리 잡고 있어 세찬 바람이 오가다 보니 붙여진 이름이겠지. 바람계곡 삼거리에 도착했다.(08:10) 여기서부터 꽤나 가파른 산행이 시작된다.
가파른 철계단 끝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곳에 응급처치를 위한 구급상자도 준비되어 있다. 바람계곡으로 오른 이들은 여기서 한번 다리쉼을 한다. 천황사길은 바람계곡보다 약간 완만하지만 거리가 더 길다.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함께 다리쉼을 하면서 간식을 챙겨먹었다. (08:40)
까마득한 다리 밑을 보았다. 지상 120m 정도 높이에서 바라본 계곡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찔함보다는 아득함이 더 어울리겠다. 구름다리에서 보는 월출산 전경도 한폭의 진경산수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 보면 왜 월출산을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구름다리를 넘어 다시 천황봉으로 가는 길은 끝도 없는 거친 오르막길이다. 지루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야 천황봉은 그 얼굴을 드러낸다.
영암에도 경포대가 있다. 영암 경포대는 가보지 않았지만 이곳도 멋진 계곡이라고 한다. 경포대 삼거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월출산은 오르내림이 심한 산이라 관절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운 산이다. 다만, 월출산의 절경을 보고자 한다면 구름다리까지만 올라가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는 있다.
경포대 삼거리를 지나면 곧 통천문이 나온다.(10:15) 통천문은 철계단 끝에 바위틈에 나 있는 작은 통로를 말한다. 통천문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천황봉이 있는 게 아니다. 다시 한참을 가서야 천황봉을 만날 수 있다(10:45).
월출산 종주코스(천황사-도갑사)에서 천황봉은 불과 1/3정도 왔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의 뒤로 저 멀리 우리가 가야할 구정봉이 보인다. 여러 번 월출산에 왔지만 구정봉에 올라보지 못했다. 매번 체력이 부족해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였다. 한참을 쉬고 다시 출발했다(10:55)
바람재 삼거리 도착 11:30분. 멀리 큰바위 얼굴이 보인다. 물론 내가 붙인 이름이다. 아마 저 바위도 여기서 부르는 정식이름이 있을 거다.
구정봉을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고 위험하기도 하다. 정작 정상에 있는 웅덩이에는 좋지않은 냄새까지 나서 오래 머물기에 마땅치가 않다. 그러나 사람 한명이 통과하기도 힘든 바위틈으로 들어가는 묘미는 독특하다. 힘들더라도 꼭 들려볼 만한 이유다.
구정봉을 내려와 억새밭에 도착했다.(12:55) 점심도 거른 채 계속되는 강행군에 김차장님은 약간 치진 듯했다. 그래도 산행안내서에 나온 시간을 충실히 지켜낸 것을 보면 아직 팔팔한 것이다. 억새밭은 내가 처음 왔을 때의 그 억새밭이 아니었다. 이제는 관목들도 많이 자랐고, 작은 나무들이 어느새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숲은 자신을 스스로 가꿔간다는 것을 나는 몇 년에 걸쳐 학습하고 있는 셈이다.
억새밭을 내려온 이후 사진이 없다. 내려오는 데 너무 정신이 팔린 게다. 땀을 많이 흘렸는데도 소변이 마려웠다. 뒤쳐진 김차장님과의 간격을 염두해 두기는 어려웠다. 도갑사 경계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일을 보고 나와 20분 정도 기다리니 김차장님이 도착했다. 하산 완료 14:20분. 예상했던 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한 셈이다. 식사도 걸러서 배가 몹시 고팠음에도 굳이 영암터미널 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혹여 서울 가는 차편이 매진될까봐 미리 끊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끊고, 터미널 근처 곱창집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김차장님은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보면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지치고 피곤하고 힘드셨을 게다. 토요일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은 한산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9시가 좀 넘었다. 무박2일의 월출산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 음식 : 56,200원
• 초코바 2개 + 영양갱 2개 + 스카치캔디 1봉지 = 3,600원
• 터미널 라면 2개 : 6,000원
• 육포, 캔맥주(2), 찹쌀떡(2), 물, 음료 : 14,100원
• 아침식사(백반) : 12,000원
• 늦은 점심(영암 국밥)과 소주 : 13,000원
• 국수와 햄버거(고속도로 휴게소) : 7,500원
※ 월출산 무박2일 여행팁
- 금요일 밤에 집을 나서 토요일 새벽 차를 타고 광주로 간다. 광주로 가는 심야고속은 새벽 2시까지 있다.
- 광주터미널에서 영암 가는 버스는 강진이나 해남 마량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고 가격은 6,000원(2009년 6월 기준)이다.
- 영암가는 첫차는 4시 40분부터 있다.
- 상경할 때에는 영암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게 좋다. 3시 5분, 4시 30분이 적당하다.
촌뜨기!
오늘도 엄마는 신도림에서 내려서 쉬어야 했다. 개봉에서 영등포까지 불과 네 정거장인데, 그것을 한 번에 가기 힘들구나. 어제는 조퇴까지 하고 같이 잘 놀아줬잖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사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야 한다. 하긴, 처음에는 다들 그렇다고 하던데, 자꾸 엄마 힘들게 하지 마라. 너도 힘들겠지만, 엄마도 꽤 노력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