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으면 취향이 변하는 게 맞나 봐. 난 원래 운동하는 거 질색했는데."
우리 팀 부동의 주전 풀백이 무심코 던진 이 말에 모두들 앞다투어 공감을 표했다. 이건 취향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유전자 변이 아니냐는 근본 없는 병리적 의심까지 제기됐다. 체육 시간이면 양호실 갈 궁리나 했었다는 사람들이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8월의 뙤약볕 아래로 스스로 기어 나와 이러저리 뛰어다니며 공을 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프롤로그 중에서


복잡한 대중교통 안에서 낑겨서 가다보면 이북리더기도 들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종종 소리로 듣는다. 주로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가 좋다. 이북리더기에 내재된 기계음(제법 사람 목소리가 나온다)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마침 좋은 오디오북이 나왔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인데,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셨던 책인데, 아직 초반인데 재밌다. 목소리 고운 여성 성우가 읽어주는데 듣기가 좋다.

체육 교과서 편찬일을 하다보면 여학생을 위한 내용을 배려해야 한다. 체육 교과만큼 여학생 장애인 등이 참여하기 어려운 교과는 없다. 내용만이 아니라 삽화나 사진 등 이미지에서도 이들을 고려하는 편집이 필요하다. 특이 여학생 체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매우 높다. 주요 신문사와 방송에서도 여학생 체육을 특별 기획으로 다루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 체육에서 여학생이 차지하는 위치는 약간 소외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식 있는 체육 교사들도 여학생을 체육에 참여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나마 여학생들이 표현활동(춤과 관련한 내용)이나 동작 도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와 관련한 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많은 여학생들이 체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쟁 활동(축구, 농구, 배드민턴, 탁구, 야구 등등)과 도전 활동(기록, 투기 스포츠 등)에서는 관심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나이키 광고를 보면 꾸미지 않고 도전하는 여자들의 스포츠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스포츠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이다. 그러면서 젠더 의식을 부각하고 차별적 성문화에 반기를 드는 듯한 이미지를 제품에 심어줌으로써 제품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문화적 우월감을 갖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만큼 여성의 스포츠 참여는 이제 이 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흐름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의식의 장벽과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도전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미투 운동과 함께 불붙은 여성 운동이 비분강개형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도 어느정도 필요하지만, 여성들의 우아하고 호쾌한 축구 모임을 살펴보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드디어 이번 구조조정의 피날레가 연출됐다. 상무님의 퇴출. 혹시나 했던 망상이 이렇게 실현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세계를 살고 있는지를 실감한다. 문득 지난번 회사 비전이 생각난다. "상상을 현실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오너의 의지가 옅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탕아. 회사가 가진 한계를 비판하며 나가셨던 분이 돌아온다. 과연 그분은 회사의 한계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견고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떤 돌파구를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내에서 적당히 힘 쓰고 퇴장할 생각이실까? 

어찌됐든 이제 나와 2000년대 초반을 함께 했던 사람은 이제 없다. 물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분들은 많이 있지만 그분들과 함께 일을 하지 않았기에 어떤 기억도 없고, 오직 함께 지지고 볶으며 일상을 함께 했던 마지막 사람이 이번에 떠나시는 것이다. 일전에 강 팀장이 그만두면서 상무님과 옛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떠나고 나와 자기만 남았다며 허탈해 하는 모습. 하지만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했던가.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내가 다시 여기서 그분들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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