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덕동

e-문어세상-전복, 문어, 조가비, 홍합에 홀로 맞서는 닭 @구상나무 회사 사람들과 공덕동의 "e-문어세상"이란 곳에 갔다. 사람들 설명에 따르면 이곳이 나름 맛집으로 소문났다고 한다. 연말의 분위기인만큼 사람이 많다. 미리 예약도 했단다. 그럼에도 맨끝자리 바로 문앞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재미가 있었다. 회사 같은 띠 모임이었다. 내가 속한 BU에만도 3명의 편집자가 같은 띠이다. 유일하게 한 명 있는 여직원은 말 놓자고 우겨서 편하게 지낸다. 비슷한 파트를 맡고 있는 남직원은 뭔가 아직은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가 많다. 본사 기획팀 직원과 총무팀 직원이 또 같은 띠다. 술자리에 먼저 도착해 자리 앉으니 두부와 김치가 나온다. 두부는 적당히 지져 놓아서 먹기 좋다. 김치는 한지 얼마 안되었는지 상큼하고 아삭하다. 그.. 더보기
식권 받는 날 이런 식권도 일종의 유가증권이라고 할 수 있다. 돈으로 바꿔주는 곳은 없지만 특정한 곳에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직원 중에는 밥값으로 현금을 거둬, 식권으로 냄으로써 현금을 확보하는 영리한 분들도 있다) 오늘 그동안의 야근 정도에 따라 식권이 지급되었다. 내가 받은 아홉장의 식권. 나는 그동안 아홉번의 야근을 했다는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증권이라는 말만 나오면 자지러질 분들 많겠다. 1000포인트 밑으로 떨어진 증권을 보면서 누구는 휴지조각이 됐다느니, 쓰레기가 됐다느니 하는 말이 있는데, 그나마 이 식권은 공덕동의 몇몇 식당에서는 밥이라도 되어주니 주식보다 훨씬 좋다. 더보기
공덕동 여행 일요일 정오 즈음의 공덕동. 참, /한/산/하/다/. 보통 아침 출근시간이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거대한 물결을 이룬다. 오늘 회사로 가는 내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일이 귀찮고 힘들어서가 아니다. 2차세계대전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한 바가지의 물이 배급되었을 때 그것을 생존을 위해 마셨던 사람보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얼굴과 몸을 씻는 데 썼던 사람들이 더 오래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어느 심리학 박사의 이야기처럼 일상적으로 오고가는 지루하고 상투적인 출퇴근 길도 아주 짧은 여행으로 생각하는 여유가 나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더보기
큰 더기라는 말에서 온 이름, 공덕동 여의도에서 마포를 지나 공덕오거리를 지나면 공덕동이 시작된다. 진입로만 보자면 왕복 8차선과 10차선을 넘나드는 큰 대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길가로는 서울 어느 거리보다 가지런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현대도시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2002년에 있었던 공덕동의 래미안 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2,213대 1을 보여주기도 했다.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 본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일대의 거리는 서울 도시 근대화의 멋으로 불릴 만한 곳이다. 그러나 그 스카이라인 뒤로는 여전히 허름하고 무너질 것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 많다. 내가 일하는 출판사 뒤편으로도 그런 집들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공덕동(孔德洞)이라는.. 더보기
다시 시작하는 공덕동 이야기 보통 내가 일하는 곳을 물어 보면 나는 마포구 공덕동이라고 한다. 공덕동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오래전에 이곳에서 근무를 한 일이 있기 때문에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이라면 깜짝 놀라곤 한다. 그렇다, 나는 다시 컴백했다. 예전처럼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내년에도 교과서도 만들고 지도서도 만들고 교재도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일이 일을 만들고 그 일이 다시 일을 까는 그런 수렁에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심정이다. 그래 알만큼 알고 겪을 만큼 겪어봤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는 심정이다. 하여튼 다시 공덕동이다. 아무래도 이제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놀아보니 그렇다. 오래 놀면 마음 약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