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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이명박의 자서전이 국회 자원외교 특위가 열리는 시기에 발간됐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명박 이후 나라 재정이 어떻게 거덜 나고 국민의 생활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를 담은 ‘MB의 비용’이 출가됐다. 절묘하게도 둘은 책의 판형이나 두께가 비슷하고 표지의 바탕색이 모두 흰색에다 가운데에 이미지를 넣는 것까지 같다. 당연히 뒤에 나온 책이 앞에 나온 책을 타깃으로 삼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놓은 서점들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다. 우문(愚問)이지만 우리는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




MB의 비용

저자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유종일, 강병구, 고기영, 김신동 지음
출판사
알마 | 2015-02-0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16인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정교하게 추산한 MB정부가 허공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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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놓여 있는 "대통령의 시간"과 "MB의 비용"(출처 한겨레)


MB의 자서전이 나왔을 때 JTBC의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파이프는 파이프라 아니다’라는 앵커 브리핑을 통해 그것을 비판했다. 진솔한 회고록이 아닌 자화자찬, 자기변명만 들어있다는 지적이다. 손석희는 여기서 조지 오엘의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명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MB의 자서전에 있어야 하는 데 없는 것, 그것은 성찰(省察)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가톨릭에서는 ‘고해 성사 전에 자신이 지은 죄를 자세히 생각하는 일’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하였다. 즉, 자기 성찰이 없는 자서전은 사기꾼의 자기 자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유튜브 강연 “임진왜란, 과거를 징계하여 훗날을 대비하다(한명기 교수)”는 서해 류성룡의 “징비록”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징비록"은 참혹한 임진왜란이 있기 전부터 임진왜란의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상세히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징비(懲毖)’는 “시경(詩經)”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로, 쓰라린 반성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목처럼 이 책에는 참혹하고 부끄러움을 넘어 치욕스럽기까지 한 기록들이 낱낱이 담겨 있다. 물론 강연의 많은 부분이 영화 “명량”의 영향 때문인지[각주:1]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또 그 덕분에 더 재미있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세월호 사건을 통해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는 상황이다. 참혹한 사건 앞에서 벌써부터 조롱을 일삼는 모리배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고, 진상규명위는 후안무치한 정치가들에 의해 표류하고 있다.


사실 세월호는 4월 16일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전부터 쌍용차 사태로 인해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용산 사태에서는 여러 명의 목숨이 무리한 경찰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아마도 세월호는 세상의 애꿎은 목숨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없었던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비극적인 결과, 혹은 그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에게 “징비록”의 통렬한 반성의 기록은 더욱 의미있다.


강연 말미, 한명기 교수는 “징비록”이 우리나라에서가 아니라 일본에서 더 인기가 있었고, 일본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징비록”에서 밝힌 문제점에 대한 개혁 의지는 흐지부지 되던 시점이었다. 이는 우리 스스로 반성과 통찰이 없이는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세월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쩌면 여전히 가라앉을 위험에 처한 세월호 배 한쪽 구석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서 평형수를 채우고, 불안한 콘테이너 박스들의 결박을 더 단단히 해야 한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더욱 책임감 있게 운항할 수 있도록 비판하고 감시해야 한다.


강연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재차 강조하면서 마무리된다.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 속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우리만의 문화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있었다. 한국 사회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면서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지혜를 통해 이 엄혹한 세태를 슬기롭게 뚫고 가야할 것이다.




  1. 이 강연을 할 때, 영화 <명량>이 천만 관객을 넘어서고 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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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난 "친구가 보고 싶다"며 자살을 시도한 세월호 생존 학생의 소식을 접했다. 아무 일 없이 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지금 같은 땅,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고통을 그들이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 수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가슴 속 어디선가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일상의 평화가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그들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주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 이것이 나와 당신, 그리고 이 땅의 공동체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지 그 잔인함 또는 슬픔만을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언제나 그러했듯이 잔인하고 참혹한 현장에서도 자애와 희생, 용기와 친절이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역사 속 4.19, 5.18 중에 일어났던 참혹하고 잔인한 학살에서도, 공포와 두려움을 뚫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진실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4월 16일에 멈춰있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슬픔을 나누고 아픔에 연대하면서 치유와 극복을 위해 나아갔다. 그래서 2000년대 대한민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암울한 시대의 잔인한 사건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희망을 포기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필부의 정신 승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헌신과 봉사, 친절과 용기를 기억하자. 돌이킬 수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사소한 방식으로 실천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이 변화다. 변화의 중심에 세월호를 놓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현실의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도 마땅히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물음에 다시 답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승리다.


photo by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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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소설 ‘토지’에서 묘사한 추석 한가위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 – 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黙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우주만물 그 중에서도 가난한 영혼들에게는.

   가을의 대지에는 열매를 맺어놓고 쓰러진 잔해가 굴러있다. 여기저기 얼마든지 굴러 있다.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檢屍)하듯 맴돌던 찬바람은 어느 서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쳐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絃)을 건드려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저승에나 가서 잘사는가.”

   사람들은 익어가는 들판의 곡식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들판의 익어가는 곡식은 쓰라린 마음에 못을 박기도 한다. 가난하게 굶주리며 살다 간 사람들 때문에.

   “이만하믄 묵을 긴데…….”

   풍요하고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 한산 세모시 같은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산기슭에서 먼, 먼 지평선까지 텅 비어 버린 들판은 놀을 받고 허무하게 누워 있을 것이다. 마을 뒷산 잡목 숲과 오도마니 홀로 솟은 묏등이 누릿누릿 시들 것이다. 이러고 저러고 해서 세운 송덕비며 이끼가 낀 열녀비며 또는 장승 옆에 한 두 그루씩 서 있는 백일홍나무에는 물기 잃은 바람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의 긴 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부터 더욱 흐느끼는 듯 꽹과리 소리는 여전히 마을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밤을 지샐 모양이다. 하기는 마을 처녀들의 놀이는 이제부터, 달 뜨기를 기다려 강가 모래밭에서 호작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시작될 것이다.







고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묘사된 팔월 한가위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이만하믄 묵을 긴데’ 싶다가도 여기저기 빼앗기고 나면 한줌 겨울나기도 쉽지 않은 곡식들, 그것은 풍요 속의 빈곤을 드러내는 아이러니였죠. 지금 우리는 그렇게 풍족할까요?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는 도시의 음습한 그늘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200만명의 종이 줍는 노인들이고, ‘돌림병에 약 한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잠겨간 세월호 아이들이었습니다. 진실은 여전히 저 바다 깊이 잠겨 있고요. 그래서 이번 추석은 더더욱 쓰린 가슴에 못을 박게 되는군요. 그리고 이렇게 겨울이 성큼 다가오겠지요.


그래도 추석은 명절입니다. 곳곳에 흩어져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던 이웃과 친척들이 한 지붕 아래 모입니다. 조상네 밥 한끼 대접하고자 모여 지나간 시간들을 술 한잔으로 털어내며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날이죠. 우리 아이들도 노을 지는 시골길에서 만나는 바람 속에서 가을 들녘의 풍요와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지금의 작은 행복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더불어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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