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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촌뜨기, 세상에 나오다 본문

구상나무 아래에서/하늘을 여는 아이

촌뜨기, 세상에 나오다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9.12.17 15:44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나 돌아보면 산통의 시간만큼 길고 긴 시간이 있을까. 그러나 이제 그 시간도 지나간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죽을 만큼의 고통마저 아름답게 만들어준 한 생명이 환하게 피어났다.


지난 주 금요일(11일) 밤, 아내는 다시 이대 목동 병원에 입원했다. 저녁 식사 이후에 다시 시작된 진통은 이전보다 구체적인 통증을 주었다고 한다. 3~5분 간격으로 진통을 느낀 것이다. 이대 목동 병원에 옮겨 당직 의사로부터 들은 소견으로는 이전과 비슷하며 진통의 강도가 약간 세진 정도라고 한다. 우선은 진통대기실에서 진행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내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옆에서 나도 잠들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아내는 작은 오빠와 올케 언니와 통화했다. 9시쯤 올케 언니와 오빠가 도착하고 난 잠시 사우나에 가서 좀 쉬었다 오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자리를 뜬 이후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가 다시 돌아온 12시에 본 아내의 얼굴은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힘들었지만,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난 자리를 뜨지 않고 옆에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뿐, 아내는 울었고, 나는 절망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 고통을 멈추고 수술을 시키고 싶었지만, 의사가 수술하겠냐는 물음에 아내는 참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참을성도 오래 가기 힘들었다. 오후 2시를 넘어가면서 아내는 정신을 잃기도 했고, 어떻게 좀 해달라며 울부짖었다. 정말로 무섭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을 산고에 비유할 수 있을까. 없다.


아내의 산고는 아이가 이미 내려온 상태에서 자궁문이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서 더 극심했다고 의사는 말했다. 아침 9시에도 20% 열렸던 자궁문은 오후 2시가 넘어가도 그 상태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후 3시 즈음, 온 분만실이 아내의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 의사들도 의아해하면서 다른 처방을 내릴 게 없다며 안타까운 눈길만 던졌다. 그러다가 어떤 의사가 와서 정신없는 아내에게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자세와 호흡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때부터 아내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었고 고통을 다리 힘으로 모으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제대로 호흡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자세와 호흡을 제대로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자궁문이 열렸고, 지난 6시간 동안 열리지 않던 자궁문이 빠르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시 10분, 아내는 급박하게 분만실로 이동되었고 분만실에 들어간 지 12분 만에 아이를 순산했다.


아이는 33주 5일 만에 세상 바람을 맞았다. 울음은 우렁찼다. 그동안 병원에서 들었던 들었던 아기들의 울음소리와도 달랐다. 분명하고 또렷하게 “응애, 응애”하고 울었다. 놀랍고 신기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몸무게가 작고(2.02kg),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바람에 바로 중환아실로 옮겨졌다. 이후 중환아실의 의사와의 상담에 따르면, 중환아실에서도 급박하게 아이를 받아서 아이의 상태나 산모 상태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것, 미숙아에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병환들, 아기 엄마아빠가 준비해야 할 몇가지 등을 상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그런 내용들을 적고 메모했다.


아내는 지난 월요일 퇴원했다. 아내의 출산 소식을 듣고 장모님이 월요일 올라오셨다. 고령의 장모님이 올라오셔서 고생하실 것을 생각하니 죄송하면서도 아내가 가장 믿고 의지할 분이 장모님임을 생각하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저께(15일)부터 아내에게서 본격적으로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내가 직접 병원에서 모유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아기는 성탄절 전후로 퇴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세 가족에게 펼쳐질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만 그 한편에는 두려움보다는 아이가 보여 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흘러 넘쳐 강물을 이루고 있다.





그 외 이야기들






10 Comments
  • 프로필사진 윤정 2009.12.20 10:32 축하해요 선배~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뜨기도 뜨기 엄마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어여쁜 딸의 아버지가 되신 거 정말 축하해요. 성탄절에는 집에서 건강해진 뜨기와 함께 즐겁게 보내실 수 있게 되기를.. 참, 택배 받을 주소 좀 알려주세요 ^^*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www.eowls.net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9.12.21 11:09 신고 윤정이도 얼마 전에 엄마가 되어 더 실감이 났던 것이겠지. 고맙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lolnlil.com BlogIcon 애정어린시선 2009.12.21 09:32 그래도 싸우나도 다녀오시고..럭셜한데요..
    전..15시간동안 분만대기실하고 분만실에서 나가질 않았었는데..-_-;;
    차마 자리를 못 비우겠더라구요..

    1212를 419로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하는게 더 멋드러진거 같은데요? ^^

    연차휴가..써버리세요..까짓거..그리고 경조사에 의한 휴가는 유급이 아니였나 싶은데..무급이였나요? 좀 의아하면서..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면..네..책상없어집니다..여자도 거의 마찬가지..-_-;;


    이름은..왠만하면..직접 지어주세요 ^^작명 사이트에 가서 보면..
    여러가지 따지고 아이의 팔자에 맞게 알아보고 한자도 찾아볼수 있는 사이트 있어요..^^
    아빠가 해줄수 있는 첫 선물인데요..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www.eowls.net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9.12.21 11:08 신고 ㅎㅎ 분만대기실 시간만 따지자면, 저도 18시간이네요. 물론 그 사이에 잠시 사우나를 다녀오긴 했지만... 친척분들은 잠 좀 자두라고 하지만, 차마 잠이 오지 않더군요. 샤워하고 물 속에서 잠시 몸을 노곤하게 풀어주고 부랴부랴 다시 달려왔죠. (이건 변명???)

    이름은 다른 곳에서도 참고하면서 생각하고 있어요. 어찌됐든 결정은 부모가 하는 것이고, 의미를 담는 것 역시 엄마아빠가 되겠죠.
  • 프로필사진 contkey 2009.12.21 22:07 와~ 축하드려요. 우리 아기는 세상에 나오기 싫어해서 일부러 끄집어냈는데 뜨기는 일찍 세상구경을 하고 싶었나 보네요. 그래도 엄마랑 아기 건강하다니 다행이예요. 조금만 지나면 집으로 와서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겠네요. 근데 처음 한달은 엄마가 좀 힘드니 아빠가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물론 잘 하시겠지만요 ^^)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www.eowls.net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9.12.22 09:18 신고 당연히 잘해 주어야죠. 그런데 남편들은 어떻게 잘 해줘야하는지 잘 모른답니다. 다행히 장모님이 옆에 계시는데, 오랜 경험과 지식에서 오는 보살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잘해도 어머니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더군요. 전 옆에서 거들 뿐인데, 너무 수고해주시는 장모님에게 두고두고 은혜를 갚아야할 듯합니다. (그런데 글쓰신 분은 우리 회사 분이신 듯한데...^^)
  • 프로필사진 혜정 2009.12.24 09:40 출산 가까워진 것 같아, 소식이 궁금해, 들렀는데.
    축하해요. 멋진 아빠, 엄마가 있어서, 뜨기가 행복하겠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www.eowls.net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9.12.24 09:56 신고 고맙다~ 뜨기도 염려해 준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어.^^
  • 프로필사진 김영이 2010.01.13 11:10 요즘은 통 블로그를 안하기에... 몰랐다가 노을이네 들러서 여기까지 와봤네.^^; 이렇게 힘겹게 아빠가 된 걸 모르고 있었구나.
    그래도 엄마 아빠의 힘과 인내는 참 대단한 것 같다. 잘 견뎌냈고.... 좋은 결실을 보았으니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민주 동생은 다음달 초가 예정일인데 이 달에도 빛을 볼 수 있을 듯해서 조금 긴장하고 있다.

    첫째 때 어땠는지 거의 잊고 있던 터라 또 처음인듯 조금 두렵고 긴장되긴 하네... ㅎ

    아이만 건강하게 나와 준다면 다 참을 수 있겠지...^^ 민서가 참 예쁘게 웃고 있는 걸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

    앞으로 하루하루가 행복이 더해질 날이 될거라는 민서의 메세지일꺼야.ㅎ

    내년 어느 날엔 우리 둘째랑 민서랑 함께 만날 날도 있겠지 생각해본다.ㅎ

    많이 고생했고.
    산후조리도 잘 하길 빌어본다.

    민서엄마에게도 안부 전해주렴....

    그럼, 또....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www.eowls.net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0.01.13 14:19 신고 맞다, 선배도 이제 둘째가 나올 때가 됐죠. 원래대로라면 민서는 이번달 말에 나오는 거였는데... 아무튼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조그마한 게 아직도 불안하기만 해서 말이죠. 아마 이런 마음은 어느 부모든 다 가지고 있겠지요.
    고마워요. 선배의 건강한 출산을 기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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