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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의 친구 헤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클레이에게는 보통 친구가 아니다. 약간의 밀당도 있었다. 어색하지만 키스도 했다. 풋풋한 사랑이라고 여길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런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7년에 나온 미국의 웹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는 클레이가 헤나의 자살 이유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드라마이다. 테이프에서 헤나가 자신의 죽음의 이유로 언급한 인물들은 헤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슬픔과 외로움으로 몰아 넣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사람 중에는 주인공 클레이도 포함되었다. 클레이는 헤나의 자살 이유를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주변 인물들에 대해 증오와 미움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이 왜 이 테이프에 언급되는지를 내내 두려워하며 진실을 향해 한발씩 다가간다. 클레이의 신경을 팽팽하게 당기는 그 긴장감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드라마 속 미국의 고등학교는 우리 고등학교와는 너무나 다르다. 수업 때마다 교실을 옮기고, 과목마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 달라진다. 교실 복도에 가득한 사물함과 거기서 벌어지는 남녀 학생들의 과도한 스킨십 등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부모가 없는 빈집에서 파티를 열어 술을 마시는 모습도 이질적이다. 미국의 고등학교라는 공간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공감하기 어려운 곳이다. 자극적인 화면도 많이 등장한다. 자살을 소재로 했지만 마약, 섹스, 폭력(강간 포함)은 이것이 정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이렇게 이질적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공간이나 환경, 소재가 주는 이질감보다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우정과 고독, 사랑과 미움, 믿음과 배신의 이야기가 통속성을 뛰어넘는 인과관계로 짜임새 있게 엮여 있다. 주요 갈등은 헤나를 둘러싼 인물들 사이의 사건과 그로 인해 퍼지는 오해와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헤나의 깊고 깊은 상처로 이어지고 마침내 헤나는 쓰러진다. 헤나가 이겨내려고 애쓰면서 발버둥치는 모습과, 그런 헤나를 생각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절망하는 클레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함께 감정이입이 된다. 

헤나 베이커. 그는 절망끝에 죽음을 선택하고 그 이유를 녹음으로 남겼다. 

헤나는 전학을 온 이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클레이를 알게 되었고 둘은 친해진다. 그런데 헤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헤나 주변의 인물들은 헤나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극심한 외로움과 존재에 대한 환멸을 느낀 끝에 자신이 자살하는 이유를 테이프로 남기고 자살한다. 드라마는 그 테이프를 클레이가 받고 그가 들으면서 시작한다.

청소년 시기는 민감하다. 성에 대한 관심도 사람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 둘의 경계가 때로는 모호해지고, 욕망에서 타오르는 충동이 쉽게 자아가 잠식된다. 아이들의 관심과 애정은 소문을 낳고 소문은 다시 재미가 되어 퍼진다. 악의적이지 않은 장난은,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이다. 말들이 무성한 세상이다. SNS는 손쉽게 글과 이미지를 생성하고 그것이 퍼져가면서 헛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돌고돌아 마침내 이야기의 주인공의 가슴을 정면으로 조준해 명중시킨다.

헤나가 느낀 가장 큰 절망감,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어떤 사람과도 닿아 있지 않은 떨어진 끈 같은 존재감에서 오는 절망이었다드라마에서 헤나의 죽음은 학교의 방관 혹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논란으로 소송까지 이어진다. 시즌2의 주요 내용은 헤나의 죽음을 놓고 학교와 부모가 벌이는 재판이 주요한 배경이 된다

 

클레이는 헤나가 나긴 테이프에서 헤나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찾아간다.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달고 있다. 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에서 가장 낮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첫 번째 자살 이유는 원인은 가정불화-가정문제가 제일 많다. 의외로 성적 문제는 세번째 이유. 우울증과 염세비관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오른쪽 자료가 2000년대 후반부터 2012년까지의 자살 청소년에 대한 분석이다. 벌써 10년전의 통계인만큼 지금과는 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 자살 소식은 이제는 흔한 뉴스가 되어 버렸다. 삶의 문제에 있어 죽음을 염두할만큼 우리 아이들은 진지하다. 그러나 돌파구가 없는 캄캄한 암흑의 결투장을 만들어 놓은 건 우리 사회이며 나와 같은 어른들이다. 

'학교 폭력'이라는 말의 법률적 정의는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라고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루머의 루머"시리즈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끊임없이 헤나를 괴롭히고 결국 그를 되돌아올 수 없는 절벽에서 밀어버렸다. 헤나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아이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누군가는 죄책감에 빠져들고 누구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행동에 대한 책임을 아이들은 저마다의 삶의 무게로 짊어지고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행동에는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심코 올리는 포스팅 하나도, 누군가의 글에 다는 댓글 하나도 결과는 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역시 마땅한 결과를 발생시킨다. 타인을 향한 폭력적인 관심도, 상처받고 있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도 언젠가는 우리가 짊어질 책임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때가서 나는 몰랐다고 해도,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소용없다. 세상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삶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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