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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소리, 낚싯대를 던지는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들고, 강물을 따라 흘러들어 가는 것 같다….”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마지막 내레이션


누가 영화보자고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도 내돈 내고 소장하고 있는 DVD가 하나 있다. 바로 브래드피트가 나오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화포스터가 주는 풍경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빅플랫풋 강변에서 플라이낚시를 하고 있을 자신을 상상해 보지 않을까.

여행은 참 좋아하면서도 낚시 여행은 단 한번도 없었다. 친구 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좀처럼 같이 낚시하러 갈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럴만큼 마음 한편에 여유를 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사실 낚시를 썩 내키지 않은 여가라고 여기는 마음도 한몫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 친구 녀석이 평일날 시간이 되어 낚시나 가자고 했다. 이것도 경험이 아닐까. 낚시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볼 수 있듯, 낚시는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여가다. 자연 속에 있는 나를 느끼고,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속성을 터득해가는 과정이다. 오래전에는 낚시가 먹고 살기위한 행위였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시간일 것이다. 또 세상과는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낚시의 궁극적인 재미는 바로 자연과의 교감이며 나와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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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낚시꾼을 빗대 '강태공'이라고 한다. 무릇 기다림과 인내의 상징으로서 강태공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난했다. 그 가난 때문에 아내가 떠날 정도였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기다렸다. 미끼 없는 낚시대를 강물에 드리우고 세상을 낚았다. 

백수생활 3개월이면 그 생활에 안주하게 된단다. 곧 태만과 게으름이 생활 깊숙이 자리잡는다는 것일게다. 그말은 경험적 사실일 게다. 나이 80에 세상의 중심에 나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강태공의 그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평소에도 물왕리 낚시터를 자주 찾았다던 친구는 내가 쓸 낚시대도 가져왔을 뿐아니라 손수 설치해주기까지했다. 낚시에 대해서는 'ㄴ'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냥 지켜볼 뿐이다. 초심자를 데리고 나서는 낚시일테니 선배로서 이런저런 근심도 있기 마련이라 그런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찌가 살짝 움직이는 걸 '입질'이라고 해. 그건 아직 물지 않은거야. 붕어가 물면 찌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불쑥 올라오거든. 잉어는 반대로 찌를 쑥 물고 들어가. 그럴 때 잡아채야해."

"떡밥은 너무 꽉 뭉처도 안되고 너무 흐물흐물해서도 안돼. 역시 너무 무겁게 해서 찌가 안보일정도가 되서는 안되고, 반대로 너무 가볍게 해서 물고기가 모이지 못하게 해서도 안되겠지."


안되는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다. 낚시 하는 내내 이런저런 신경도 많이 써준다. 직접 준비해온 버너로 물을 데워 컵라면도 내주었다. 가끔 커피를 끓여 내오기도 했다. 이런 대접도 이만하면 상전대접이다.








 

물왕리 저수지는 붕어와 잉어가 많이 잡히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바닷물을 막아서 호조벌 곡창지대에 농수를 대기 위해 1946년에 만들어진 저수지다. 이승만 전대통령의 전용낚시터이기도 했던 이곳은 지금도 커다란 붕어들이 심심치않게 올라오는 곳이다.


낚시를 하다보면 물위로 폴짝 뛰어오르는 물고기들과 수면을 스치며 지나가는 새들을 자주 본다. 멀리 숲속에서는 두견새도 울고 있다. 수면에서 부서지는 햇살을 보다보면 그저 정신이 멍해진다. 자연속에 머물 수 있는 즐거움, 이것도 낚시의 하나다. 플라이 낚시를 즐겼던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폴 퀸네트는 그의 책 <인생의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할 때가 온다>에서 이렇게 밝혔다.



‘맑은 물에서 플라이 낚시를 한다는 것은 한동안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플라이 낚시에는 항구성이 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일을 하든 플라이낚시는 항상 거기 있다. 삶의 여정에서 이렇게 한결같은 것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이 낚시는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머리위에서 캐스팅하는 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꼭 플라이낚시만 그럴까. 모든 낚시가 자연이 만들어 준 고독 안에서 나와 신이 대면하는 자리가 아닐까.





 

물론 이런 낚시 예찬에도 불고하고 낚시터와 낚시꾼은 수질오염의 주범이다. 오죽하면 한강 상류에서는 낚시를 금하고 있을까. 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미끼(떡밥)와 납추다. 이날 내가 뿌린 떡밥의 양도 엄청났다. 이 떡밥들을 물고기들이 다 먹는게 아니기 때문에 썩게 되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찌 아래에 달게 되어 있는 납추(사진)도 문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민물낚시에 사용된 뒤 버려지는 납추는 연간 1억5910만개로 무게만해도 715.5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양의 납이 우리 강과 저수지에 버려지고 있다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이 좋아 등산을 하는 이들로 인해 산이 오염되듯이, 강이 좋아 낚시를 하는 이들로 인해 강이 오염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납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캐나다는 국립공원 등에서 납추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는 사례도 생각해볼만하다.  




이날 결국 나는 단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내 친구도 허탕을 쳤다. 올때마다 최소한 4~5마리를 잡았는데 오늘따라 물고기들이 도망다녔던 것일까. 옆에서는 팔뚝만한 붕어들이 척척 올라왔으니 우리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 친구는 꽤 실망한 듯하다. 일전에 왔을 때도 45cm 짜리 붕어를 낚아올렸다며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낚시의 손맛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럼 또 어떤가. 햇볕에 그을린 친구 얼굴의 까만 웃음이 반갑고, 빈어망에는 밝은 달빛이 가득한데 무엇이 부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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