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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황사로 창밖이 노랗더니
오늘은 또 아이 주먹만한 눈송이들로
창밖이 하얗다.
3월 말에 봄비도 아니고 봄눈이다.
그런데 봄과 눈이 어울리는 조합일까.
실상 오늘 내리는 눈만 보아도
봄을 소리내어 비웃듯이 쏟아졌다.
대설주의보.
3월말의 대설주의보는
봄에 대한 불신을 나았다.
사람들은 봄을 의심했고,
3월을 의심했다.
눈에 보이는 눈이 눈에 보이지 않는
3월을 이긴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든 개념이다.
3월에 눈이 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지구 기후의 과학적 엄밀성은 
'3월'이나 '봄'이라는
인간이 만든 개념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쌓아온 3월,
봄의 개념을 다시 의심해 본다.
흔들릴 수 없는 긍정을 부정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3월의 눈은 사람들의 입에서
기후 변화를 이야기하며
지구의 고통을 이야기하도록 만들었다.
우리 말에 '오랜 의심이 봄눈 녹듯이
녹아 없어졌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오늘 내린 봄눈은
새로운 의심을 싹틔웠다.
과연 우리 지구는,
우리 자연은 괜찮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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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밤에 재우는 것도 쉽지 않고 새벽에도 종종 사이렌을 울리곤 한다. 민서를 재우는 데는 나도 한몫하고 있다. 잠투정을 할 때 내가 안아주면 그래도 잘 자는 편이다. 그러나 새벽에 울 때면 대책없다. 아내는 나는 출근해야 한다면서 자라고 하고 새벽에 민서를 안고 집안 산책을 해야 한다. 그렇게 달래다 보면, 민서가 기분이 좋을 때면 바로 잠들지만 무언가에 놀란 날은 한두시간은 내내 달래야 한다. 나도 잠을 설칠 때가 많지만, 대부분 그렇게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들어 버리곤 하고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된다. 그리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출근을 돕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도 민서 때문에 행복하다. 민서의 행동 하나 하나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아내의 손길에서 묻어나는 정겨움이 있다. 나의 추천으로 시작한 블로그에는 온통 민서 사진과 얘기뿐이다. 예전 직장 생활을 하며 능숙하게 다루었던 편집디자인 실력이 뛰어나다. 하나하나가 다 나에게는 작품이다.









아내의 블로그와 내 블로그를 합쳐서 민서 앨범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고민 중이다. 물론 시간이 문제다. 그리고 발동하는 귀차니즘...

이번 포스팅은 민서에 대한 뭇사람들의 관심이 큰만큼 내가 종종 포스팅을 게을리해서 민서 근황이 궁금한 분들은 옆의 링크에서 지리산 외계인을 클릭하길 바란다. 내 아내의 블로그이다. 참고로 시작한지 별로 안되서 글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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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예정일보다 50일 일찍 나오는 바람에 우리 아이는 처음부터 각별한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초음파 검사를 했을 때 의사는 뇌에 약간의 출혈이 있다고 했다. 보통 이런 출혈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진다고 했고, 지난 2월말에 다시 했던 초음파 검사에서는 다행히 이런 출혈 모습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의 뇌실이 정상아보다 크다고 한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하군이 본 민서의 뇌실과 다른 정상아의 뇌실이 차이가 나더란다. 보다 정밀한 검사를 위해서는 MRI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선은 한달 정도 더 지켜보자고 한다.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만 성장하다보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교정연령에 따른 아이 행동 사항을 꼼꼼이 살펴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는 실제로 하면 오늘로서 태어난지 93일이 지나고 있지만, 교정연령 나이, 즉 예정일을 기준으로 하자면 채 50여일이 된 영아이다. 지금에서야 눈을 좀 맞추는 정도이고 고개는 아직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으니 100일이 가까운 아이치고 많이 늦은 거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급하지 않으련다. 원래는 1월 25일 범띠해에 태어날 아이가 12월 12일에 소띠해에 태어났으니, 소의 우직한 기운을 타고 태어났지만 범의 기상으로 세상을 살아갈 아이다. 건강하게 살아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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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민서가 태어난 지 80여일이 지났다. 이제는 제법 눈을 맞춘다. 안고 어르고 있으면 한동안 빤히 나를 쳐다 본다. 그 심해의 어둠보다 깊은 먹빛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에 빠져들고 만다. 나는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고 다행히 민서가 먼저 눈을 돌려 다른 데 관심을 가져야 그나마 해방이다. 그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숨이 턱밑까지 차올 것이다.

밤잠을 설치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요새 들어 밤잠이 좀 길어진 것 같다. 한동안은 12시에 젖을 먹고 내리 6시까지 잔 적도 있어서 우리 부부는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내 어제는 3시에 사이렌을 울리고 말았다. 100일 정도 지나면 밤낮을 가릴 수도 있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요새는 2~3일에 한 번꼴로 대변을 보고 있다. 애기똥은 항상 찰진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음이다. 똥을 보는 일도 때론 행복할 수 있음을 아기를 보면서 느낀다.


환하게 웃는




무엇보다 이제는 배냇짓이 아닌 정말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눈과 입을 움직여서 "나 웃어요"하고 말하는 것처럼 분명하다. 때로는 웃음소리도 내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웃음이 분명해진 만큼 울음도 선이 굵어졌다. 처음에는 왜 우는지 알 수 없더니 이제는 기저귀 때문에 우는지 배가 고파 우는지, 불편해서 우는지, 꿈을 잘못 꾸고 우는지 제법 맞추어 주고 있다.

민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송아지 인형 모빌이다. 칭얼댈 때 모빌을 살짝 흔들어주면 많은 관심을 가진다. 물론 오래가지 않는다. 그럴 때면 다시 안아준다. 그래도 칭얼대면 민서를 안고 일어나 돌아다녀야 한다. 우리는 "산책 가자"고 한다. 돌아다니다 보면 집안 이것저것에 눈길을 돌린다. 그리고 실컷 돌아다니면 스르르 잠이 든다.


민서가 재채기를 한다




집안을 좀 서늘하게 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너무 따뜻해도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들어서 좀 차갑게 키우지만, 민서는 잘 크고 있다. 무엇보다 모유 성분에 당장 필요한 면역성분이 많이 들어서인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가끔 재채기를 하지만 심해 보이진 않았다. 한번도 열이 없이 잘 크는 걸 봐서는 지금까지 민서도 하군(아내)도 아주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무사히 100일 1000일 10000일을 보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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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홍어다. 얼굴 생김새도 홍어처럼 네모지다. 수컷 홍어의 생식기가 두개라는 데 노름꾼에 건달인 아버지는 이웃 동네의 유부녀와 놀아나 야반도주를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속절없이 기다린다. 바다 깊은 곳에서 산다는 홍어를 어머니는 부엌에 매달아 놓았다. 홍어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마치 피트 하밀(Pete Hamill)의 소설 "노란 손수건"처럼 아버지에 대한 용서와 기다림을 홍어로 표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눈이 온 세상을 뒤덮었던 어느날, 이름도 없이 거지 같이 떠돌던 여자 아이가 들어온 그날에 홍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매질을 했다.  겨울 들판을 들짐승처럼 떠돌던 그 여자 아이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매질을 견뎌 냈다.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삼례란 이름을 붙이고 거두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삯바느질의 주문이나 배달을 하는 바깥 일을 맡겼다. 일을 싹싹하게 잘 하는 삼례와 어머니는 죽이 잘 맞는 듯했지만, 번번이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어머니를 속이는 삼례에게 여지없이 어머니의 매질은 이어졌다. 그렇지만 삼례는 듣는 시늉만 할 뿐 다시 시간이 지나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삼례는 사라졌다. 삼례가 떠난 이후의 삶은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제 그 기다림은 특정한 아버지로 귀결되지 않았다. 지루한 산골구석에서 누구라도 숨막힐 듯한 정적을 깨뜨릴 수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했다. 그러나 뒤이어 찾아온 이는 삼례의 전남편과 아버지의 정부와 그 아이, 외삼촌 등이다. 속절없는 기다림의 끝에 아버지는 나타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떠났다. 기나긴 기다림에서 어머니가 절절이 기다린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에 불을 붙인 것은 삼례였을 것이다. 전통과 가부장제에 갇혀 살고 있는 어머니는 마치 날고 싶지만 실에 묶여 날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

어머니는 기다림 속에서 참자유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실체가 드러났을 때 정작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새처럼 날아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자유롭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유를 찾아 멀리 멀리 떠난 것이다.




홍어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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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백두대간 24구간 중 네번째 구간 후반부 : 백암봉-빼재 구간 종주
날짜 : 2010년 2월 27일





| 동행 : 두 사람 그리고 구름                                          

두 사람. 한 사람은 대학 동기이며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 또 다른 한 사람은 내 오랜 직장 상사. 한때 한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었다. 모두 출판편집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어서 종종 만나면 술 한잔 나눈다. 일복 터지는 직장 생활을 서로 위로하는 일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이 잘 맞는다. 이번에도 인연이 닿은 건지 셋이 함께 산행을 떠났다. 반은 내가 꼬신 것이고 반은 흥에 겨워 따라온 사람들. 그들에게 이번 산행은 즐거움과 힘겨움을 오가는 롤러코스트 같았을 것이다.

내 친구는 나와의 산행이 거의 20년 만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지리산을 다녀온 후로 처음인 셈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겨울산에 한번 같이 가자고 졸라댔다. 재작년엔가 겨울 산행 장비를 다 마련했다며 빨리 산행 날짜 잡으라고 닥달을 했다. 그래서 다늦은 이번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극적으로 산행에 합류한 것이다. 그는 산행을 통해 여유를 찾고 싶어 했다. 주말마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 살던 그에게 이번 산행이 작은 돌파구가 되었을까?

그리고 직장 상사 김차장님. 인연으로 따지면 벌써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셈이다. 한솥밥을 먹는다지만 직장 상사라는 어려움도 있다. 다만 드러내고 살면 불편한 것들은 바닥에 내려놓고 사는 것이 지혜다.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얼굴 못 보는 날도 있다. 딱히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닐지라도 못 보면 심심한 얼굴이다. 게다가 그의 자리는 모니터 세개로 완벽하게 쌓은 철옹성 같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참을성인지 무심한 건지 헷갈린다. 다행히 이번 산행을 통해 똘똘 뭉쳐져 있던 자신을 살짝 풀어 헤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 역시 여유라면 여유겠다.







오랜 세월을 가끔, 또는 자주 보았던 사람들이다. 비슷한 공간에서 종종 얼굴 마주하면 닮은 구석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닮은 것은 시간 뿐. 우리에게 과거는 멋들어진 추억이 되었고, 현재는 물샐틈없는 빡빡한 일상이며, 미래는 가늠하기 힘든 불안이 지배하고 있다. 업계 사람이 아니면 알아 들을 수 없는 농담들로 서로를 위안하기도 하지만, 공공의 비밀을 이용하여 급소를 가격할 수도 있다. 전쟁 같은 일상을 뒤로 하고 산에 왔다. 산에서는 그런 일상들이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발 아래 구름이 있고, 그 구름 밑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있듯이, 우리는 저 험한 세상사를 벗어나 구름 위에서 노니는 재미에 취해 하루를 흠뻑 적실 수 있는 여유를 즐긴다.

우리 셋 외에 부지런히 우리를 뒤쫓던 동행이 있다.





"너는 이만한 운해 풍경을 본 적이 있니? 산에 많이 다녀봤으니 본적 있겠구나."
"아니, 나도 이런 운해는 처음이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동안 폭포수처럼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던 구름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멀리 도도한 백두대간의 산맥들을 구름바다가 넘실거리며 조금씩 집어 삼켰고 멀리 있는 산들은 그속에 갇힌 외로운 섬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저 위에 뛰어내리면 푹신푹신해서 하나도 안다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우리는 구름 속에 갇혔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방향으로 빠졌을 때부터 이미 발목까지 쫓아왔더랬다. 처음에는 그저 멋진 풍광이었던 구름이 슬슬 빗방울을 뺨에 긋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점차 적지 않은 빗방울을 쏟아냈다. 빼재에 도착한 우리들은 대부분 흠뻑 젖어 있었고 엄습해 오는 정월대보름날의 밤공기에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 雲 좋은 날 -
함께 간 이의 표현이다. 비구름에도 갇혀 보았으면서 여전히 향적봉과 중봉에서 만난 구름의 바다를 잊을 수 없었나 보다.








|| 8개의 봉우리와 3개의 고갯길을 지나다                                          

이번 백두대간 길은 전체 24구간 중 제 4구간의 뒷부분으로 도상 거리는 13.1km에 불과하다. 비록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타고 손쉽게 향적봉에 올랐지만, 이후 구간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우리가 넘었던 봉우리만 8개이며 거쳐간 고갯길만 3개나 된다. 그만큼 오르내림의 부침이 심했던 구간이다.

봉우리 이름들은 다른 지방에서 보는 흔한 봉우리 이름과는 달랐다. 향적봉은 그렇다 쳐도 중봉, 귀봉, 못봉, 대봉, 빼봉 등의 외글자 이름 봉우리들은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그나마 백암봉이나 갈매봉은 두글자 봉우리 이름이라 그런지 생소한 느낌이 덜하다.





지나온 고갯길 이름은 월음재와 횡경재, 그리고 마지막 기착지인 빼재(신풍령)이다. 이렇게 여러 봉우리와 고갯길을 지나오다 보니 쉽게 다리에 무리가 가기 마련. 사람들은 하나둘씩 말을 잃어갔다. 일행은 향적봉에서 송계삼거리까지 풍광에 심취해 신나게 걸었다. 그러나 막판 빼봉을 전후로 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 해가 진 산속을 무언가에 쫓기듯 휘적휘적 걸어야 했다. 

백두대간을 탄다고 하니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들여 산을 오르려 하느냐고 묻곤 한다. 산을 타는 일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와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정신력을 극한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에서 젖먹던 힘을 끌어 내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체험이다. 나아가 나약하고 겁많은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짭쪼름한 땀방울이 볼을 타고 입안으로 들어오는 경험, 물론 권할 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산행의 묘미가 있다. 스스로 찾아가는 땀의 의미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정화, 나를 깨끗이 하는 힘이 산에 있다. 정화 능력. 숲은 단순히 공기만 맑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몸과 마음까지 정화한다.

산의 봉우리들은 멀게 있다고 느껴져도 가다 보면 가깝다. 저기까지 언제 갈까 싶다가도 가다 보면 의외로 가깝다. 현대인들의 거리 감각은 사뭇 다르다. 개봉동에서 자전거 출퇴근을 한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먼데서 오냐, 시간은 얼마나 걸리냐며 묻지만, 실제 거리 12.1km를 말하면 그렇게 가깝냐며 반문하고, 한시간 이내에 온다고 하면 내가 무척 속도를 내며 달리는 줄 안다. 도시민들의 거리는 이미 시간 거리로 판단되며 실제 거리 감각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산은 그런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운다. 자연의 소리, 바람의 방향, 동서남북의 방위, 가야할 길과 표지,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와 그에 소요되는 시간 등등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내 몸의 오감을 이용해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만큼 산도 나를 느낀다. 그냥 지나치던 바위 옆에서, 언제부턴가 앞발을 쫑끗 세우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다람쥐도 그제서야 눈에 띄며, 발치에 치이는 오종종한 들꽃들도 나를 반기고, 산새들도 경계심을 풀고 내 주위에서 휘파람을 불러댄다. 멀리 까마득한 계곡에서부터 쓸고 올라오는 바람에는 온갖 산의 흔적들을 안고 달려 온다. 그 순간은 나도 자연이 되는 것이다.
 








||| 길에서 만난 봄 그리고 떠나는 겨울의 흔적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따뜻했고,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날이었다. 길은 길고 길었던 지난 겨울의 흔적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따뜻한 양지녘의 길들은 지난 겨울의 눈들이 녹아 진창을 만들었고, 응달진 곳은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을 이루었다. 준비해 간 아이젠을 차는 것도 번거롭고 벗고 다닐려니 아슬아슬했다.

산행 초반에는 날이 참 좋았다. 혹시나 해서 두껍게 껴입었던 옷들을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구름은 저 밑에 깔려 있었고, 햇살은 완연한 봄기운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뒤에서 쫓아오던 구름들이 기어이 우리를 뒤덮더니 결국은 비를 쏟아내고 말았다. 그 와중에 우리는 잠깐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누구는 무릎이 아파 쩔쩔 매기도 했다.





길이 눈길에 묻힐 수 있는 겨울이 특히 길을 잃기 쉽다. 앞서 가던 친구도 그만 눈이 뒤덮은 능선길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가던 길의 끝에 있어야 할 길이 사라지고, 아득한 잡목숲만 앞을 가리고 있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도중 마침 우리와 같은 길로 산행을 하던  이의 도움으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덕유산에서도 대간 길은 대간꾼이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길이라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혹여 우리가 눈밭에 내놓은 발자국 때문에 다른 이가 길을 잃을까 걱정이다.

길은 이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렸다면 좋은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공간 감각 기능에 의지해 길을 찾아야 한다. 만일 그 중 하나라도 없다면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본 받을 만한 스승, 지혜로운 친구, 자신감이 없다면 다시 길을 되짚어 나와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다시 시작한다.

이미 만들어진 길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이다. 내 뒤로 길이 점점 길어질수록 앞에 남은 길은 짧아진다. 한걸음 한걸음이 산행을, 인생을 완성한다.






간간히 나타나는 길표지들이 반가운 것은 초행 산길의 유일한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앞서간 사람들의 친절한 배려이며 쉽게 지워져 버리는 산길의 충실한 나침반이다. 한동안 길표지가 나오지 않으면 갑작스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혹여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 그러다가 작은 길표지라도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991년 지리산에 처음 갔을 때도 길표지들은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지금 지리산에서는 길표지가 대부분 사라졌다. 길표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길이 뚜렷하고 표지판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길표지들이 자연을 헤친다. 하지만 백두대간 길은 다르다. 곳곳에 빠지는 샛길이 있고, 때로는 잡목과 풀들로 길이 가려지기도 하며, 엉뚱한 표지로 인해 길을 잘못들 수 있도  있다.

길은 그래서 기대와 두려움 모두를 동반한다. 길이 인생에 빗대어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은 후회로 점철되며, 가야 할 길은 그래서 두려움으로 도사리고 있다. 그럴 때 나를 안내하며 지켜줄 동행과 표지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길임에 틀림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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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1월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전거 거리 도전 역시 구체적인 수치는 아니었지만, 1년간의 자전거 거리 목표를 세우겠다는 기본안은 머릿속에 구상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체중 감량에 대한 목표도 1월달부터 이미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내 몸무게는 75~76kg을 오르내렸다. 내 키를 생각하면 비만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체중임에는 확실하다. 체중은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움직임에 있어서도 어딘가 무겁고 불편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무엇보다 옆구리와 뱃살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더욱 나를 불편하게 하는 내몸의 한쪽이다. 방치할 경우 겉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이른바 다이어트를 시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체중감량이라는 것이 금연처럼 단칼에 끊어서 되는 거라면 차라리 쉬울 수 있지만, 이것은 꾸준히 해야 하고 목표 체중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상 번번이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이번에 세운 목표는 보다 장기적이며 현실적이고, 부담감이 없으면서도 꾸준히 체크해야 하는 기획을 세워보았다. 방법은 단순하다.

한달에 꼭 500g씩 몸무게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1년이면 약 6kg의 살을 뺄 수 있고, 내 목표 몸무게인 68kg에 1kg 더한 69kg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입에 달고 다니던 내 다이어트 목표는 언제나 70kg이하였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나는 내가 바라던 몸무게에 마침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중점은 몸무게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 바로 관리에 있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가고 달력과 구글 문서(2010 프로젝트를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는 온라인 문서)에 기록하고 있다. 그날그날의 몸무게 변동을 알아보고 전날의 먹거리와 운동량을 대략 짐작하면서 몸무게 관리의 노하우를 터득해 나가고 있다. 그밖에 자전거 출퇴근과 한달에 한번씩의 백두대간 산행을 더해 단순한 체중감량이 아닌 근육량을 늘리고 허리와 배에 낀 지방을 벗겨내는 데 충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매우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1월 말에 74.5kg을 찍었고, 2월 말에는 73.9kg을 달성했다. 물론 초기에 몸무게를 빼는 건 어렵지 않다. 일단 몸의 수분만 빼도 1kg 정도는 쉽게 빠지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근육량과 체지방을 조절하는 게 이번 체중감량의 진정한 의미이다. 여름까지는 순조롭게가지 않을까 싶다. 꾸준히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산행을 다니면 여름을 지날 즈음 71~72kg까지는 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가을부터가 쉽지 않다. 일이 많아지면서 자전거 출퇴근도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겨울에 접어들어 날이 추워지면 더더욱 운동량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준히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몸무게를 줄이는 데는 효과가 크다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한번 굳어진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매일매일 체중계에 올라가고 자전거 출퇴근을 정식화하며, 기타 다른 운동을 보완한다면 체중감량 프로젝트는 어렵지 않게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프로젝트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매일매일 기록하고 체크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내 몸에 맞는 습관을 길들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이런 목표들이 올해의 경험 속에서 더 구체화될 것이며 굳이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일 필요가 없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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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전 후배 Y를 만났다. 그 이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에 아들을 낳은 워킹맘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바로 아이를 갖게 되었지만, 아기를 어린이방에 맡기고 출근하는 일이 쉽지 않은가 보다.

이날의 만남은 후배의 고민 때문이다. 나와 만난 Y는 식당에 자리를 잡자마자 눈물부터 흘리며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기를 어린이방에 맡긴지 얼마 되지 않아 아기는 그만 요도 간염에 걸려 신장까지 바이러스에 간염 되어 열흘이나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단다. 그동안의 마음고생 몸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아기는 얼마 전에 퇴원해서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어린이집으로 보내야 하는 Y의 마음은 더할 수 없는 상처로 아파하고 있었다. 

"아이도 잘 키우고 직장일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없어요. 아이 키우는 것도 자신이 없고, 직장에서 일도 손에 안 잡혀요."
"그만두고 한 1~2년 쉬었다고 다시 일할까 생각도 해 보는데, 그럼 그 뒤에 다시 일자리가 나에게 주어질까 하는 걱정도 있고요."
"육아 휴직을 내려고 해도 나름 진보적인 출판사라는 우리 회사에서도 그런 선례가 극히 드물어서 말이에요. 또 일이 많아서 육아휴직 내는 게 괜히 눈치 보이고…"

내가 다니는 출판사는 교육관련 출판사이다 보니, 회사 신입사원 교육 때도 직원들에게 "아기 많이 낳는 게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다. 그러면서 육아휴직 등 보육과 관련된 제도나 복지는 전무하다. 실제 육아휴직을 건의했던 직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퇴사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지금의 정부와 하는 짓이 똑같다.

워킹맘 중에서 육아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은 극히 드물다. 또 그 이면에는 내부의 든든한 지원이 있거나 직장에서 무소불휘의 파워를 가지고 있을 경우가 아니면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슈퍼우먼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순간 떠났다 싶었던 산후 우울증이 다시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이상이 하나씩 깨지고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눈앞에 닥치면 문제는 쉽지 않다. 아기가 아프고 일은 산더미처럼 쌓이고, 산후 휴가 다녀와서 직장 관계도 적응하기 힘들어 질 때쯤에 겪는 워킹맘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가정의 안정감이나 직장 업무가 원활하게 될리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대부분 이럴 경우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일까. 앞의 후배 Y의 경우도 그렇고, 내가 다니는 직장의 경우도 그렇지만 선례도 없고 권장하지도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퇴직을 종용당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권력은 멀고 현실은 눈앞이다 보니, 대부분 퇴사를 하고 전업주부의 길로 내몰린다. 물론 전업주부도 의미 있으며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선택이 자발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일 아내는 육아휴직을 신청할 예정이다. 회사가 노동조합 연맹이라서 쉬운 게 아니라 연맹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육아 휴직이 가능해진 것이다. 만일 연맹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면 연맹 사업의 대부분을 꿰뚫고 있는 아내가 이처럼 편안하게 육아휴직을 낼 수 있었을까는 미지수다.

제발 이 글을 보고 있는 조직의 관리자들은 이런 워킹맘들의 고충을 알아주기 바란다. 당장은 그 한 사람이 없으면 일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 또 단기 임시직을 뽑는 것도 어렵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들이 흘리는 눈물과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이 다시 돌아와 회사와 업무에 있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 조직은 더욱 튼튼하고 안정적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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