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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8표다. 마음에 드는 후보들 이름 외우는 데도 한참 걸릴 것 같다. 얼마 전에 집으로 온 선거 공보물을 전부 펼치니 작은 방에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래서 투표 당일에는 후보들 이름을 메모해 갈 생각이다. 내 소중한 한 표가 허투로 찍혀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부터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은 정책 선거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후보자들이 거짓 공약을 내세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공약을 유권자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민주 국가의 기본 의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와 함께 투표 장소에 대한 차별성을 배제하려는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비장애인과 달리 장애인들의 선거 편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종교시설에 설치된 투표소도 인근 공공기관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여기에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한몫했다.


2004년 11월 10일 국가인권위는 선거방송에서 수화 통역이 임의조항으로 되어 있는 것에 대해 “장애인은 국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기타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므로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청각장애선거인의 선거권 행사의 편의를 위해 각종 시설 및 선거권 행사에 관한 홍보 등에 대해 자막 또는 수화 통역을 제공하는 것이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안은 현장에서 즉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안은 헌법재판소까지 갔지만 아쉽게도 8:1로 기각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김종대 재판관은 청구인들이 문제 삼은 법률조항들이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방지의무 및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헌법에도 맞지 않는다며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준바 있다.


“점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자 선거공보 규격 제한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   - 2005/04/15


집으로 오는 선거 공보는 본격적으로 후보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때문에 시각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이 보는 선거 공보 책자보다 더 적은 내용을 수록할 수밖에 없다. 2005년 4월 15일, 국가인권위는 “점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자 선거 공보 규격 제한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라는 권고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점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 묵자(黙字: 일반적으로 쓰이는 문자)에 비해 글씨 크기를 조절할 수 없는 게 점자이다. 게다가 점자 하나가 각각 하나의 자음과 모음을 표시하는 등 그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묵자의 약 3배 분량이 필요하다. 또 점자는 종이가 얇을 경우 글씨가 지워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120g/㎡ 이상의 종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선거 규정은 120g/㎡ 이내의 종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서 점자책을 배려하지 못한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2008년 7월 30일에는 “투표소 선정시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시각장애인에게 투표보조용구 제공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발표했다.


중앙선관위가 18대 총선이 끝나고 발표한 선거백서에 따르면, 투표소의 1층 설치율은 1990년대 80%에서 훨씬 높아진 95.7%에 이르고 활동보조인(2541명), 투표보조용구 등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활동보조인은 1000명당 1명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게 장애인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지난 초대 교육감 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경우 문턱이 높거나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장애인이 비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투표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거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장애인을 위해 다른 투표자나 선거관계인의 호의적 도움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쉽게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부득이한 사유로 장애인의 접근이 곤란한 장소에 투표소를 설치하였다면 임시 경사로 등의 필요한 설비를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투표도우미가 직접 들어서 이동시키는 방법에 의한 인적 서비스는 앞서의 다른 모든 실현가능한 방법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시설 및 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시각장애인의 편의 제공 역시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기표행위를 한다는 것은 민주 선거의 기본원칙인 비밀선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된다. 따라서 시각장애인도 독자적으로 기표를 할 수 있도록 특수 투표용지 또는 투표 보조용구를 제공해야 하는 게 민주국가의 의무다.


투표소 관련해 특색 있는 권고도 있다. 지난 2008년 3월 19일에 발표한 ‘종교시설내 투표소 설치 금지’ 권고이다.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총 투표소 13,178개소 중 1,172(8.9%)개소가 각각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유권자가 가장 많은 서울의 경우 2,210개 투표소 중 종교시설 투표소가 511개소(23.1%)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는 특정 종교 시설에 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일부 유권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어 종교의 자유를 침해 받는 일이 일어난다. 또한 이로 인해 일부 유권자가 투표를 거부한다면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결과가 되어 더욱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국가인권위의 선거 관련 권고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소수자들일지라도 똑같이 가지고 있는 1표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차별적인 제도와 규정, 조항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여전히 자신이 주권자로서 가지고 있는 참정권을 법제도와 규정, 조항들로 인해 제대로 실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국가인권위는 앞으로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참정권을 아무 제한이나 장애 없이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유엔인권위원회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권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문자 의식 능력 결여, 언어상의 장애 등을 가진 유권자가 투표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투표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원조가 각각 독립적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민주 국가라면 당연히 한번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2010.05.30. 국가인권위 블로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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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백두대간 24구간 중 다섯번째 구간 초반부 : 신풍령-삼봉산-초점산-대덕산-덕산재 구간 종주
날짜 : 2010년 5월 15일





소사고개의 탑선 마트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봄가뭄이 오래되서 걱정이란다. 비가 오길 기다리는 산골 아낙의 마음을 헤아림은 어렵지 않다. 봄날의 산행은 바삭바삭 타들어가는 메마른 땅에서 풀풀 일어나는 먼지들을 보면 말이다. 민초의 가슴 한켠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갈증이 목줄을 타들어가는 5월. 배낭 가볍게 꾸리고 다시 백두대간길에 올랐다. 이번 산행은 백두대간 24구간중 다섯번째 구간(신풍령-우두령) 중 신풍령과 덕산재 구간이다. (6월2일날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을 유린한 세력을 심판합시다)

새벽 2시 반. 거창 시외버스터미널. 오가는 이들은 없고, 한가로이 택시들이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우리는 우선 이른 아침을 든든히 먹자며 해장국집을 찾아나섰다. 해장국에 소주 한잔, 든든히 속을 채운 후 택시를 잡고 신풍령으로 이동했다.(택시비 32,000원) 그때까지는 미쳐 몰랐다, 우리가 12시간 뒤에나 다시 밥을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긴 처음 딛는 길에 새롭지 않고 낯설지 않은 게 있을까. 모두가 지나고 나니 꿈같은 시간이었다.

택시 기사님도 신풍령의 백두대간 시작길을 잘 모르고 있었나 보다. 자칫 지나칠 뻔했던 입구를 간신히 찾아냈다. 짙게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찾아낸 신풍령 입구에서 다시 신발끈을 고쳐 메고 비탈길에 올랐다. 시간은 새벽 3시 50분. 여명이 트려면 적어도 2시간 정도는 있어야 할 듯했다. 계산해 보니 부지런히 오르면 삼봉산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간산행의 오묘함이 온몸을 저며왔다. 렌턴을 켜고 오르는 산길이지만, 양 옆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숲의 윤곽이 별빛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였고, 더불어 그 사이 오솔길도 밤의 고즈넉함을 잔뜩 끌어안고 있어 부드러웠다. 잔솔가지 위로 밤새 내려앉은 이슬들을 사뿐사뿐 밟아가는 산길이 기분을 좋게 한다. 우리 발걸음에 놀란 산짐승들이 어두운 숲 저편에서 사사삭 움직였다. 그래도 걷기에 이만큼 좋은 길은 없다 생각했다.

삼봉산에 도착한 시각은 5시 20분. 막 붉고 노란 기운이 저편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름이 잔뜩 끼어있던 하늘이라 멋진 일출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산에서 일출을 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누군가와 함께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출산의 경험처럼 신비롭다. 아직 꽃봉우리를 트지 못한 꽃나무 너머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자신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 봄이 가깝다. (6월 2일 투표를 통해 진짜 봄을 맞이해 봅시다)




























출발이 좋다. 봄의 기운에 솟아오르는 태양의 기운까지 얻었다. 이날 가기로 한 거리는 자그마치 21km(처음 목표는 부항령이었다). 그야 말로 산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고갯길만 3개가 있고, 이름 있는 산이 3개다. 목표는 멀리 잡았지만, 무리 하지는 않겠다는 계획이었다. 산행이 힘들어지면 중간의 덕산재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신풍령에서 삼봉산까지의 길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비록 어두운 밤길을 걸었지만, 고요한 숲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길은 적당히 말라 있었고, 길섶의 풀들은 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딱 거기까지만 자리를 잡은 채 잠들어 있었다. 해가 뜨고 주위가 밝아지면서 서서히 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치에는 자잘한 얼레지꽃들이, 길 옆에는 진달래꽃들이, 간간히 얕은 언덕이나 무덤가에는 할미꽃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진달래는 한창이라서 길바닥에도 꽃잎이 떨어져 있는가 하면 가지마다 환하게 피어나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첫번째 고비는 삼봉산에서부터 시작되는 내리막길. 내리막길은 바로 시작되지 않고, 몇개의 암릉구간을 지난 후부터 시작되어 소사고개까지  내리 이어진다. 삼봉산과 소사고개의 고도차 약 600m. 산을 하나 내려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숨이 차는 일이 없지만, 몸에서 받는 자잘한 충격들이 내리막길에 있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들이 하산이 어렵다고 하는 것일까.

백두대간은 산길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니다. 중간중간 산에서 내려와 고갯길을 지나가기도 한다. 고랭지밭을 지나가는가 하면, 작은 과수원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초록의 향연 속에서 갑자기 만난 하얀 사과꽃들의 모습은 또다른 선경의 하나다. 소사고개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7시 30분. 여기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매점도 있다. 탑선슈퍼는 대간꾼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듯하다. 이른 아침이라지만 막걸리 한 사발이 어렵지 않다. 아주머니가 김치도 내 주신다. (막걸리 값이 2000원) (전 한나라당이 싫어요!!!)










중앙이 소사고개. 건너편이 삼봉산




이제 다시 막걸리와 안주로 간단히 속을 채웠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때 대충이라도 아침식사를 때웠어야 했다. 막걸리의 취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초점산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시작이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시작하던 산길이 이내 봉우리를 향해 급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막걸리 기운은 이내 사라지고 숨이 폐를 꽉 채우며 압박했다. 

산은 멀리 있어 보이나 다가가면 생각보다 더 가깝다. 위의 마지막 사진에서 멀리 있는 봉우리가 일출을 보았던 삼봉산이다. 그 너머의 신풍령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9시가 안되어 초점산 정상까지 왔으니 대단히 멀리 온 것이다. 도심에서는 시선을 멀리 두는 것도 어렵고, 또한 그만큼 많이 걷는 일도 드물다. 거리로 따지면 10km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뿌듯하다.

소사고개에서 초점산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오르고 나서도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마치 자신이 정상인양 고개를 내밀지만, 올라보면 진짜 봉우리는 그 뒤에 숨어서 웃고 있다. 막걸리 기운도 빠져나가고 호기도 몰려들어 오지만, 마땅히 물을 받아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봄가뭄처럼 목이 바싹 타들어가는 구간이었다. 미리 물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게 못내 안타까웠다.

백두대간 구간에서는 물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지도를 보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다면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함에도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목을 축일 식수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정작 라면 정도를 끓여먹기도 부족한 정도의 물만 가지고 산행을 했다. 가져간 영양갱과 육포, 오이 등으로 지친 몸을 달랬다.















대덕산까지는 평범한 능선길이다. 잡목과 억새가 많이 있어서 그런지 멀리서도 꽤 부드러운 등산로가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대덕산의 정상 부근 길 옆에는 작은 소나무 하나가 낮게 등산객을 반겨주었다. 앞에 달렸던 삼봉산이 거친 암봉을 이루고 있는 반면, 대덕산은 부드러운 능선길이 마치 동네 뒷산을 오르는 듯 친숙하다.

높이 1290m의 대덕산은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남도 거창군, 경상북도 김천시 등에 걸쳐 있다. 명종 때의 예언가 남사고는 무풍(무주군 무풍면을 말하는 듯, 대덕산이 위치한 곳)을 무릉도원 십승지라고 하였는데, 예로부터 국난이나 천재지변이 생길 때마다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대덕산 정상에서 한무리의 중년 남성분들을 만났다. 차림을 보면 대간종주 하시는 분들은 아니었다. 그저 가까운 산에 온 모임으로 보였는데, 마침 점심식사를 하시는 중이었나 보다. 푸짐하게 싸온 김밥을 한묶음 선물해 주셨다. 가뜩이나 허기져 있던 우리는 개눈 감추듯 해치웠다. 비록 김밥에는 묵은 김치와 단무지만이 들어있었지만, 그보다 맛있는 김밥을 어디서 먹어봤을까. 백두대간의 산세는 여기서 매우 부드럽게 머뭇거리다가 다시 힘차게 북으로 달린다.

대덕산에서 덕산재까지 다시 한참을 내려오는 내리막길이다. 백두대간 종주 책자에는 덕산재에 매점이 있다고 했으나 거기에서 만난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듯했고, 사람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물을 구하려고 집을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밖에 나와 있는 수도꼭지 비슷한 걸 발견할 수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산행 속도로 봐서는 최소한 2시간 반에서 3시간은 가야 오늘가기로 한 부항령까지 갈 수 있는데, 그러자니 다들 지치고 허기져서 더이상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이날의 산행은 덕산재에서 마무리했다. 산을 오르내림이 신체의 고생을 각오하는 거라지만, 몸을 상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생업이 있는 사람들인만큼 무리해서 산행을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뜻깊은 산행이었다. 봄날의 대간길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다녀온지 불과 3일이 지난 지금, 나에게 남은 기억은 고통보다는 기쁨에 더 가깝다. 산에서 만난 바람, 공기, 물, 그리고 새소리와 야생화들, 사과꽃과 그 사과꽃 같은 웃음을 가진 사람들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다음 산행을 가라 등떠민다.
(저는 이번에 모두 진보 후보에게 투표를 할 생각입니다. 사표는 없습니다. 길게 보고 먼 장래를 위해 진보후보에게 투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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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오랫동안 국세청 구내식당에서 일해 오셨다. 주로 밥과 국을 담당하셨다고 하니, 그 오랜 기간 동안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어보지 않은 국세청 직원은 없을 것이다. 한때 국세청 구내식당이 직영으로 운영되었을 때만 해도 근무조건이나 환경은 꽤 좋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위탁업체를 선정해 계약하고 있는 지금은 그저 그렇다는 게 어머니의 생각이다. 일이 고되고 힘들다 보니 사람이 자주 바뀌고, 하루 휴가를 내더라도 눈치 봐야 하며, 아파도 아픈 걸 이야기 힘들다. 그래도 어머니는 줄곧 국세청 구내식당에서 줄곧 밥 퍼주는 아줌마로 일하고 계시다. 근 20년 가까운 세월을 그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작은 월급이지만 아끼고 아끼셔서 가족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닦으셨고, 건축 현장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이제 은퇴하시고 집에만 머물러 있는 지금도 집안의 생계를 위해 새벽 일찍 일터로 나가신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은 고단하다. 젊은 날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임금 차별을 당하더니 결혼하고 아이를 임신하면서 회사에서 주는 눈치 때문에 일을 그만두거나, 보육의 어려움 때문에 회사를 떠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아이들이 커서 다시 일자리를 찾다 보면 저임금 일자리만 넘쳐난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4110원. 작년에 비해 2.7%만 인상됐다. 소비자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임금은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재계는 당초 오히려 최저임금을 5.8% 인하할 것을 주장하면서 “최저임금의 지나친 인상은 영세·중소 사업장의 고용률 하락과 폐업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과연 지금의 최저임금이 지나친 인상인지 의문이 들며, 최저임금의 인상이 고용률 하락과 폐업을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또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간의 격차도 문제다. 4인가족의 최저생계비는 117만원인데, 최저생계비 기준이 1999년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의 38.2%였으나, 2006년에는 31.1%까지 떨어졌다.또 근로자 가구의 중위 소득과 견줘도, 1999년에 44% 수준이었던 최저생계비가 2005년에는 36%로 낮아졌다. 빈곤저지선이라고 하는 최저 생계비가 이처럼 계속 후퇴하고 있는 것도 빈곤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과연 우리는 88만원의 최저임금으로, 4인가족의 최저생계비라는 117만원으로 한 달 동안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빈곤은 세습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부모들은 빈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방치되는 일이 잦아진다. 또 빈곤층이 살아야 하는 주거 환경 역시 열악해 온갖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길태가 범행을 저지른 곳도 재개발로 어수선한 치안의 사각지대였다. 가난은 온갖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고, 또 교육 여건과 질도 떨어뜨린다. 아이들은 쉽게 범죄의 대상이 되거나 가담하여 전과자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저임금 노동으로 내몰리면서 헤어나기 힘든 빈곤의 늪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폴리 토인비의 <거세된 희망>은 이처럼 악화되는 빈곤의 양극화와 빈곤의 악순환을 르포 작가의 체험으로 사실감 있게 보여 주었다.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넉넉한 중산층의 삶을 살면서 명성과 부를 가진 여성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는 뜻하지 않는 제안을 받는다. 바로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체험을 하는 것. 그녀는 가난한 빈곤층 동네인 클램퍼파크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사는 가난한 50대 여성 가장으로서 빌딩 청소원, 병원 환자 운반원, 빵공장 노동자, 급식업체 종업원, 텔레마케터, 보육교사, 간병인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대부분의 직업이 여성이 종사하며 최저임금을 받는 일들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희망이 되지 못하는 노동의 절망을 이야기했다.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을 실제 체험에서 우러나는 글로 표현했고, 이를 통해 사회 제도와 시스템을 고발했다. 그러면서도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하고 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노고와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


오늘날 가난을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말이 있다면 바로 '제외'라는 말이리라. 평범한 즐거움에는 하나같이 '출입금지' 표지판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소비사회는 '출입금지'를 명한다. 이보다 더한 차별정책이 또 있으랴. '제외'는 도시 풍경을 살벌하게 만들었다. 이걸 사라, 저걸 사라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번쩍번쩍 빛나는 상점은 총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돈이 모자라 가장 싼 음식을 고르는 일은 결코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없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움만 더해갔다. - 383쪽


2004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최저생계비 계측에서 ‘가족 단위 외식’은 빈곤층 삶의 질을 놓고 벌어진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당시 위원회는 4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 가운데 식비 항목에 가족 단위 외식 비용은 반영하지 않았다. 아니 제외됐다. 가난은 이처럼 기본적인 가족 구성원이 누려야 할 작은 권리들을 무참히 제외시켜 버린다. 분명 대한민국의 가구당 외식 횟수가 석달 평균 2.93회를 기록했지만, 가난한 이들의 회식은 여기서 제외되고 만다.


아내와 함께 시장을 볼 때마다 평범한 두부판에 널려 있는 값싼 두부와 친환경 두부라는 글자를 큼직하게 찍어놓은 메이커(?) 두부 사이에서 항상 갈등한다. 돈이 모자라 가장 싼 음식을 고르는 일은 결코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난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그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거세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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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하는 거지만, 아기가 우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배고프면 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게 생명의 본능. 아기는 이것을 우는 걸로 표현한다. 둘째, 밑이 불편하면 운다. 즉 기저귀가 젖어 있거나 똥을 싸놓았는데 갈아주지 않으면 운다. 불편하니까 깔아달라는 얘기다. 셋째, 신체적 변화가 오면 운다. 열이 있거나 속이 안 좋거나 하는 경우다. 몸이 자기가 원하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주사 같은 경우는 처음 맞을 때만 울 뿐, 잘만 달래주면서 놀아주면 금방 울음을 그친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대책 없다. 아기가 끊임없이 울어대는 경우는 그래서 병원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잠투정. 잠이 온다고 운다. 아이를 안 키워본 사람은 잘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궁금하면 지금 당장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잠투정'을 쳐 보라. 아기 잠투정 때문에 속상한 부모들의 사연들이 줄줄이 뜰 것이다. 아기는 잠이 오면 자야 한다는 사실에 익숙지 않다. 눈꺼풀은 무겁고 정신은 몽롱하고 하품은 나오는데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기의 편안한 잠을 위해서는 특별한 의식이 필요하다.





아기가 잠이 올 때는 여러 가지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눈을 부비거나, 하품을 하거나, 눈을 자주 깜박인다. 이때 잠자리 의식을 치루지 않는다면 아기는 칭얼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바로 아이를 재우는 의식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만일 아기가 더 놀고 싶은 욕심이 많거나 충분히 졸리지 않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엄마아빠가 자기를 억지로 재우는 의식을 하면 아기는 싫어하고 놀아달라고 발버둥치는 거다. 그럼 또 놀아주어야 하는데, 아기와 놀아주기는 쉽지 않다. 어른들이 빨리 지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다가 아기가 다시 졸음이 오면 또 하품을 하고 눈을 부빈다. 다시 잠자리 의식을 치른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길게는 한시간 이상 울고 보채는 아기와 싸워야 한다. 더군다나 졸린 아기이니 그냥 놔두지 못하고 안고 서성이며 다독여 줘야 잠이 올까 말까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은 우는 아기를 달래겠다고 한밤중에 동네를 한 바퀴 돈 적도 있다.

민서는 순한 아이다. 누가 안아도 낯가림도 없이 잘 안긴다. 물론 안는 자세가 서툴거나 어색하면 칭얼대는 건 모든 아기와 다르지 않다. 허나 잘 안아주는 사람에게는 그냥 잘 안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민서가 순하다고 한다. 민서 재우는 걸 안 해본 사람들 말이다. 한번은 시골에서 아기를 재우는 데, 아기 잠투정을 처음 본 어머니는 아기 어디 아픈 게 아니냐며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신다. 그렇지만 아기는 아픈게 아니라 잠투정을 하는 거였다. 그날따라 2시간 가까이 잠투정을 했으니 집안 어른들이 다 놀라고 말았다.

잠투정은 딱히 방법이 없나 보다. 지금으로서는 적당하다 싶을 때 누워서 젖을 물리면서 재우다 보면 잠이 들면 다행이다. 젖을 빨지도 않고 떼를 쓸 때가 문제다. 아기 키우면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며 밤잠을 설치면서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을 실감하는 바다.





그래도 아이는 쑥쑥 큰다. 지금 민서는 한창 뒤집기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한쪽 다리를 직각으로 세우고 힘을 주어 허리를 튕겨서 엎어지기 직전까지 왔다. 가끔 민서 엄마가 아기를 엎어 놓으면 고개에 힘이 잔뜩 들어가 곧추 세운다. 아직 기어나가는 단계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뒤집으면 곧잘 기어갈 것 같다는 예상이다.

책을 읽어주어야겠는데, 마땅히 방법도 모르겠고 시간도 쉽지 않다.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나면, 아기 목욕 준비하고 목욕 끝나면 젖을 먹이면서 잠잘 준비를 한다. 잠잘 준비라는 게 보통 방안의 불을 모두 소등하는 거라서 책을 읽는 게 어렵다. 잠투정이 없으면 10시 정도에 잠이 들지만, 어느 날은 11시 전후에 모든 하루 일과가 끝난다. 나 스스로도 책 읽을 시간이 쉽게 나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 마트에서 유모차를 한대 샀다. 아직 내 차도 없지만, 아기차는 꼭 있어야하지 않나. 그리고 어제 드디어 유모차 외출을 해 보았다. 유모차를 끌고 다녀보니 장애인분들의 고충을 새삼 느낀다. 사람이 안전한 길, 유모차가 편안한 길, 휠체어가 자유로운 길은 어렵겠지만 놓쳐서는 안 될 사회적 약속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 앞의 목감천을 따라 안양천까지 약 30분 정도의 도보길, 그리고 샌드위치로 하는 점심식사와 이야기. 5월의 평화로움이 삶에 배어들었다. 잠든 아기와 환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세상의 모든 행복이 이곳에 내려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저 평화로운 잠과 아름다운 웃음에 빠져 그 험한 세상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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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글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
여러분은 문학을 '배우'셨습니까?


이미 공공재로 돈을 내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글을 교과서에 실린다고 반대한다는 건, "내 글은 돈 내고 볼 수 있으며, 어떠한 비평이나 교육, 보도, 연구의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일까? 이름 있는 작가가 생각할 깜량은 물론 아니다. 그의 글의 내용의 주는,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 순간 자신의 작품이 가진 상상력의 세계와 작가의 의도가 교과서의 편저자에 의해 왜곡되거나 곡해되는 것, 나아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생각해야 할 학생들의 생각을 시험이라는 잣대에 따라 일관되게 만드는 것 등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또, 지금의 문학 교육이 가지는 모순에 대한 불만과 지적도 엿보인다.

아동의 배울 권리는?

이야기에 앞서 국정 교과서가 아닌 검정 교과서 체제에서 문학 교육을 국가가 주도한다고 단정짓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검정 교과서의 현재 심사 기준은 문학의 세세한 해석까지 간섭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학생의 수준에 맞는 문학 지식이나 이해의 수준을 정하는 선에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가가 문학 교육을 주도하고 있다는 오해는 접었으면 한다. 또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작가의 권리를 지키는 과정에서 현 시대의 문학을 배울 권리가 있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권리 침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생각해 보자(아이들은 저작권법과 무관한 옛날 문학만 봐야 할까). 아동청소년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시행되는 최소한의 교육으로 문학은 배울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자.

문제는 대학지상주의에 있다. 전국적으로 단일하게 실시하는 대학 수능시험 때문에 문학 교육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필요한 여타 다른 과목(예를 들어 역사나 윤리, 사회)마저 정량화되고 획일화되는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조금씩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수학능력 시험이 대학의 당락에 미치는 결정적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대학 공부에 필요한 학습 능력을 시험한다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변화되고 있다. 수학 능력 시험에 대한 변별력이 약화되고 시험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대학 입시에서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가진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예전처럼 암기와 이해식 학습능력만으로 대학 가던 시대는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학생시절에 했던 다양한 활동이 대학 입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문학에서 하나의 관점이나 해석을 강요하던 흐름도 바꾸어 놓았다. 중학교 1학년 학교 현장에서는 올해부터 새로운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로 배우고 있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의 주요 시사점은 기존의 원론적 지식의 이해암기식 교육에서 '어떻게 학습할 것인가'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학습자들이 학습 과정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며,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학습 목표와 방법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활동에서도 토론과 토의 중심의 모둠활동을 강조하는 내용에서도 엿보인다. 소통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내 의견을 조리있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의 정답에 맞추어서 똑같은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해석하여 답을 구할 수 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지금의 검정 교과서는 이런 개정교육과정의 취지에 적합한 교과서들이 합격해 교육현장에 배포된 것들이다.

물론 교과서 하나가 교육이라는 거함을 움직일 수는 없다. 큰 배가 움직이는데는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요하고, 또 설령 협업이 잘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큰 이동 궤적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문학의 가치를 생각하자


"문학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해 주고 싶다. 문학은 충분히 (학교에서) 배울 '가치'가 있다. 작가의 말대로 문학은 예전에 주요 과목이 아니었다. 지금도 고교 2,3학년에서는 선택 과목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양적 질적 성장을 거치면서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의 하나로 문학 교육이 기본 교육의 하나로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교양이 되었다. 작가가 예를 들어 설명한 만화로 말하자면, 불과 10년 전에 '만화 비평가'라는 말은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는 '만화 비평가'에 '만화 전문 학과'까지 대학에 생겼다. 언젠가는 만화도 교과서에서 다루어야 할 주요한 문화 장르의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문화적 학문적 가치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울만한 '가치'가 확보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새로 나온 개정교육과정에 만화 컷이 들어가지 않은 교과서가 있다면 말해주기 바란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공교육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은 실생활과의 접목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과목의 선정뿐만 아니라 그 과목의 내용 또한 현실에서 학생들이 부딪히고 만나야 할 문제들을 어떻게 풀 것이며, 스스로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젊은 작가이며 현존하는 작가의 최근 작품을 수록한 것도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난 결과물이다. 수학은 지금까지 혼자 끙끙대며 풀어야 하는 문제였다면 지금의 개정교육과정에서는 함께 소통하며 문제를 푸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하물며 문학 교육은 소통의 가치를 배우며 인문학적 소양 기본이 되는 학문으로서 학생들이 배울 가치가 있는 학습의 하나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공교육은 최소한의 교육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최소의 기준에 맞추어서 이것만큼은 우리 세대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하는 공통의 과제를 선정한 것이다. 여기서 문학 교육을 빼야 할 이유를 나는 찾을 수 없다. 비록 그 방법과 내용이 마음에 안들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빼자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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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는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오후 7시에 다양한 신작 영화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 달에는 <식객2>를 상영했으며, 지난달에는 <전우치전>, 2월에는 <셜록 홈즈> 등을 상영했죠. 이 날이면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즐거운 국회 나들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번에 글 쓰면서 처음 알게 됐으니까요^^

최근 들어 공공청사의 변신이 새롭습니다. 휠체어나 유모차가 드나들기 쉽도록 입구를 개조하는 건 기본이 된지 오래죠. 공공청사가 배려할 것은 단순한 기능적 측면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많은 공공 청사들이 그 건립 취지에 맞게 여러 가지 행사를 청사 안팎에서 치루면서 국민에 보다 가까운 행정조직으로 새롭게 태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공연을 비롯해 주민의 눈높이에 맞춘 문화 강좌, 외국어 교육 등을 진행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죠. 불과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공공청사는 평범한 국민들이 접근하거나 출입하기 어렵고 꺼려지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찾기 힘든 자료를 찾을 때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 중의 하나가 국회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식은 기본적으로 공공청사가 주민들의 세금으로 지어진 것이며, 따라서 주민들의 편의와 편리, 행복 추구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기본 이념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죠.

공공청사는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지어진 만큼 관리에 대한 규정이 엄격하다고 합니다. 나아가 국가중요시설로 규정되어 있는 건물들은 여전히 드나드는 데에 있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규정에 대해서 한번쯤 의문을 품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입니다. 과연 그 규정은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규정은 합리적이고 적절한가.

지난 4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 사무총장에게 국회청사 출입통제와 관련된 ‘국회청사관리 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출입금지 대상자 선정 기준과 절차 및 출입금지 기간을 명시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인권위 조사결과 ‘국회청사관리 규정’에는 “의장은 청사의 관리 및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청사출입의 제한 및 통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지만, 청사출입 통제 대상자의 선정 기준, 절차, 기간 등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럴 경우 통제 대상자는 해당 국회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최대 4년 동안 국회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오늘도 국회에서는 중요한 입법 활동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이 전개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다양한 토론회와 포럼, 발표회, 기자회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의가 집중되는 현장이 바로 국회인 셈이죠. 그런 국회에서 국민의 출입을 통제하고 제한한다고 할 때, 입법 기관 다운 과정과 절차 기준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공공청사로서의 국회는 민의와 가장 가까워야 하는 곳이며, 어떤 민의라도 들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권위 블로그 기고글 201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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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민서




4월 19일이 결혼 1주년입니다. 비록 아내와 딸은 멀리 전라남도 구례 산골짜기에 있지만, 저로서는 남다른 날을 남다른 방법으로 기념해 보렵니다. 불과 1년 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들떠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렀던 기억들이 이제는 아주 오래전 기억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자리에 사랑하는 아내와 그만큼 또 사랑하는 딸, 민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는 금방 멀어지는 법이죠. 이렇게 저에게 1년 만에 사랑하는 여인이 둘이나 생겼습니다. 세상이 맺어준 인연 아내와 하늘이 맺어준 인연 딸. 둘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새벽 5시에 출발해 다시 4시간여의 먼 길을 달려 아내와 민서에게 갔지요. 여전히 운전은 서툴고 낯설지만(2007년에 면허를 땄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9시 반쯤 장모님 댁에 도착해 보니 아내와 민서는 곤히 자고 있었지요. 주말 아침의 늦잠은 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은 거라 가만히 옆에 앉으려 했는데, 민서가 먼저 깨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네요. 그리고 아내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서 일어났지요.

민서는 일주일동안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울에서는 4~5일마다 변을 보았는데, 시골에 와서는 거의 매일 황금변을 내놓았습니다. 스스로 손을 모으고 물건을 잡는 시늉을 하고, 가만히 물건을 쳐다보거나 손을 쳐다보는 행동을 합니다. 안아주는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고, 엄마가 움직이는 대로 자기 시선을 돌립니다. 옹알이도 많이 늘어서 민서가 가장 기분 좋은 아침에는 아주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말에 넙죽넙죽 대꾸를 잘하는 엄마가 있어 다행이지요. 상상력 부족한 저는 대답할 말을 못 만들어 내고 그냥 "어~ 어~"라고만 하지 말입니다.

이날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자동차로 지리산 성삼재에 오르려 했으나 계속되는 이상저온으로 대신 쌍계사길 드라이브만 다녀왔습니다. 쌍계사 벚꽃 길은 아내가 예전부터 꼭 가보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터라 저 역시 기대감이 컸는데, 정말 쌍계사 벚꽃 길의 아름다움은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 길에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벚꽃이 많이 지고 난 뒤였지만, 남아 있는 꽃잎과 떨어지는 꽃잎 속에서 이전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쌍계사에서 아내와 민서




민서는 아직 자동차 여행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작아서 아기띠를 해도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 않았지요. 그리고 콧바람 신나게 쐬고 온 하루였습니다. 나중에 아장아장 걷게 되면, 산과 들로 더 신나게 다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간과 자연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 아내와 나는 다시 한 번 민서와 약속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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