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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없는 지구의 차갑고 무자비한 회전.사정없는 어둠. 눈먼 개들처럼 달려가는 태양. 괴멸하는 시커먼 우주의 진공. 그리고 어딘가에는 쫓겨 다니며 숨어 있는 여우들처럼 몸을 떠는 두 짐승. 빌려온 시간과 빌려온 세계와 그것을 애달파하는 빌려온 눈. - 149쪽

남자의 손에 소년의 손이 잡혔다. 두툼한 외투와 헐어서 너덜너덜한 신발을 질질 끄는 사이로 바람은 발밑의 재를 쓸어 올리며 귀밑으로 달려들었다. 지구는 여전히 스스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멈춘 지 오래다. 밤과 낮은 그 농도만 다를 뿐 똑같은 무채색이 지배하고 있다. 다시 기침이 시작됐다. 쉽게 멈추지 못할 때가 많다. 남자는 지도를 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는 길이다.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안전한 곳.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그는 알지 못한다. 그의 뒤로는 수많은 길들이 닫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길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는 자신이 길 위에서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가 품고 있는 불, 바로 소년이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안다. 자신이 태어나서 줄곧 보아온 회색빛 지구. 아빠는 한때 지구가 푸른빛을 띤 아름다운 행성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아무리 상상해 보아도 푸른빛의 지구를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빠는 남쪽으로 가는 거라고 말하지만 남쪽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서는 이 여정이 끝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길은 우리를 남쪽으로 안내하지만 길 위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수시로 길을 버렸지만 다시 길 위에서 여정은 시작됐다.


세상의 문이 닫혔다. 남자와 소년은 닫힌 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문이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머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준비된 삶은 길 위에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 남자는 소년을 지키기 위해 살았고, 소년은 남자와 함께 있고 싶어서 살았다.


죽음 보다 못한 삶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로드>에서 그려진 세계에서 삶은 끝없는 추락만이 기다리고 있는 깊은 낭떠러지처럼 보인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모욕이며 고통의 삶. 잔인한 세상에 내 던져진 남자와 아이의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아버지와 자식의 숙명을 보았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내 모습이 보였다. 잔인한 세상에서 내 아이를 지키기에 내 몸은 너무 허약하고 내가 가진 것은 볼품없다. 어린 아이에게 남은 순수한 불, 그것은 세상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맥 매카시는 우리가 어린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통스러운 성찰을 강요하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잔인하고 무서운데, 그런 세상으로부터 자녀의 눈을 가리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그런 자녀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에도 우리가 가진 건 총알 없는 빈총 밖에 없다. 몸은 점점 지쳐가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진다. 당신이 가고 있는 그 길, 그 삶은 안전하지 않지만 버릴 수도 없다. 그 길의 저 끝에 있을 행복이 있을까? 아니 우리는 끝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지금을 위해 사는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작은 희망들이 올망졸망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자녀의 가슴에 있는 불을 끄지 않는 것, 그것은 스스로 자녀의 희망이 되는 것이고,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절대 저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알아. 미안하다. 내 온 마음은 너한테 있어. 늘 그랬어. 너는 가장 좋은 사람이야. 늘 그랬지. 내가 여기 없어도 나한테 얘기할 수는 있어. 너는 나한테 얘기할 수 있고 나도 너하고 이야기를 할 거야. 두고 봐.
제가 들을 수 있나요?
그래. 들을 수 있지. 네가 상상하는 말처럼 만들어야 돼. 그럼 내 말을 듣게 될 거야. 연습을 해야 돼. 포기하지 마. 알았지?
알았어요.
- 315쪽



먼 훗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아이들에게 “온 마음은 너한테 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살아갈 용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세상이 지옥 같다고 스스로 괴물이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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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에서 본 노을(4월14일)




'2010 프로젝트 : 3000km 달리자'를 시작한지 이제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는 자전거로 부지런히 출퇴근 한다면 3000km도 가능하리라 예상했지만, 이상 저온 현상으로 3월 중순에도 눈이 왔고, 연일 영하에 가까운 한파가 아침 기온을 장식하고 있어 자전거 출퇴근이 어려웠다. 4월이 되어도 날씨는 예년 날씨로 돌아오지 않았고, 게다가 거대한 황사 먼지가 며칠간 서울에 머물렀던 적도 있으며, 비도 여러번 내려서 자전거 출퇴근 횟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이러다 보니 2월 22일부터 본격적인 기록을 시작한 이래, 자전거 출퇴근 횟수는 총 15회에 불과, 달린 거리는 고작 389km, 3000km까지 남은 거리는 2611km나 된다. 하루 24km를 달린다고 했을 때, 108일을 자전거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12월은 자전거 출퇴근이 어렵다고 본다면, 앞으로 남은 날수의 절반을 자전거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에 눈비 오는 날, 약속 있는 날을 제외하면 사실상  3000km 달성은 이루기 어렵다고 보아야겠다.

그렇다고 목표를 까맣게 잊고 기록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계속 기록은 정리할 것이며, 올 한해 동안 정리된 데이터를 근거로 내년에는 보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마포대교에서 여의도 윤중로 입구(4월 14일)




여전히 자전거 출퇴근은 몸에 배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자전거 길이 즐거운 계절이다. 곳곳에 꽃들이 만발하고 봄바람이 휘청거리며 나를 흔들어 준다. 때로는 맞바람이 인생의 시련인 듯 마중 나오기도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언제나 뒷바람으로 탄탄대로를 수월하게 달릴 수 있게 해준다. 올해 내가 달리는 거리도 중요하지만, 자전거가 내 몸에 맞는 게 더 중요하다. 앞으로도 3000km를 향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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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부터 일어나 놀아달라고 떼쓴
민서를 벌주기 위해서
바지 속에 팔을 넣어봤습니다.
녀석은 가만히 있더군요.
벌써 자기의 잘못을 깊이 알고
반성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빠,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여러분이 보기에도 그렇지 않나요?

암튼 저렇게 만들어 놓고
전 자전거 타고 출근했습니다.
아마 민서 엄마가 제가 나가자마자
풀어주었을 겁니다.

윗집에서 쿵쿵대는 소리며,
옆의 계단으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는
다세대 집구조이다 보니,
민서는 작은 울림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는 듯합니다.

아이를 보면서 새삼 도시의 소음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37년을 살아오면서 이제 이 도시의
시끄러움에 많이 익숙해졌나봐요.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않았죠.
결국 엄마 아빠가 잘 때는 조용조용
놀때는 시끄럽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더군요.















민서는 지금 아내와 구례에 있습니다.
장모님 칠순 잔치를 앞두고
아내와 함께 미리 구례에 내려가 있죠.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공기 좋고 물 좋은 동네입니다.
최근에는 근처에 골프장 만드는 문제로
동네가 시끌시끌합니다만,
그래도 산수유,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동네죠.
거기서 아주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장모님 집이
인터넷도 안되고, 컴퓨터도 없어서
아내의 블로그도 멈춰버렸네요.
회사에서 하루에 한번씩 올라오던
아내 블로그의 민서 이야기가
저에게는 하루의 신성한 청량제였는데,
그게 없으니 무척이나 허전합니다.

4월 중순인데도 날씨가 춥네요.
그래도 지리산이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꽃샘추위를 잘 막아주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아내가 산후통이 좀 심한데,
(친정)엄마가 해시주는 밥을 먹으면서
많이 나아져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아플 때는 엄마가 해 주시는 밥만큼
좋은 게 없잖아요.















오늘 통화해 보니,
민서는 똥도 잘 싸고,
잠투정도 덜 하고
아주 잘 논다고 하네요.

역시 시골 공기는 아이에게 좋습니다.
누구는 아이 교육과 미래를 생각해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지만
맑고 밝게 키우려면 역시 시골에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저 생각만 이리저리 굴리며
역시 갈피를 못잡고 맙니다.

아내는 매일 민서 사진을 보내 줍니다.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주말에 예정에 없던
구례행을 결정했습니다.
아무래도 민서 한 번 안아보지 않으면,
팔에 가시가 박힐 것 같아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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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전 포스팅 "안녕, 저 민서에요"가 그만 다음 view의 포토·동영상 베스트에 뜨면서 육아 베스트에도 올라 하루만에 제 블로그에 1600명이상 방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거죠. 민사의 인사 한번으로 이렇게 블로그가 대박이 났으니 앞으로 민서가 말하고 걷고 학교 다니면 아마 수만명이 다녀가지 않겠냐는 말도 안되는 상상도 해봅니다. ㅎㅎ

그래도 민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이가, 어린이가 보호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겠죠. 저 먼저 우리 아이만 볼 게 아니라 다른 아이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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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편지를 썼다. 받는 이는 장모님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편지라는 걸 마지막으로 썼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번에 쓴 편지에는 장모님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민서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담아보았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장모님은 편지를 받고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편지를 다 보자마자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각별한 말씀을 전하셨다.

……………………

편지라는 것은 형식상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담아 보내는 공간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부터 답장이 오는 시간까지 그 시간이 길다. 자연히 소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사색의 여백은 넓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특징으로 편지는 독특한 문학 장르로 분류된다. 다양한 서간문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유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가 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로 선정된 이유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람시의 문학적인 감수성과 철학과 역사에 대한 견해, 인생에 대한 자기성찰 등이 때로는 명료하게,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인간적으로 나타나 있다.

많은 독재자들은 저항하는 사상가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 중에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죽거나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죽었다. 그람시의 경우도 10여년의 옥살이에서 얻은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부당한 권력일수록 사상가들의 생각을 가두는 방법으로 가장 손쉬운 감옥을 선택했고, 그람시 역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에 투항하지 않는 대신 감옥을 선택해 죽음을 맞이했다.

파시즘의 행태는 졸렬했다. 그람시의 생각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가두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팬과 종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가 쓴 모든 편지를 검열했다. 그러기에 그는 짧은 편지 안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야 했고, 그만큼 정제된 내용들이 편지에 담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좀더 많은 팬과 종이가 허락되었다고 하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을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서는 인간적인 고뇌도 담겨 있다. 어린 자식을 둔 아비의 심정이 절절히 담긴 편지에서는 그가 돌보지 못하는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늙은 어머니를 둔 자식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투항하지 않는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는 사상가로서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어머니를 설득하려 했다.

이탈리아 파시즘과 고독하게 맞섰던 사상가 그람시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는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절판'되었다. 아무래도 읽기가 수월하지 않은 여러 단점들이 이 책에는 있따. 편지글이라는 게 다분히 사적인 내용이다 보니 좀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고, 그람시가 쓴 역사철학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당시의 이탈리아에 대한 역사적 지식도 필요하다 보니 책을 읽어 나가는 게 그렇게 수월하지는 않다. 물론 다양한 각주들이 친절하게 붙어 있지만 각주와 편지를 번갈아 읽어내려가는 번거로움은 술술 읽어내려가는 독서의 즐거움을 방해한다. 마치 냉온탕을 번갈아 오가는 느낌인데, 이런 독서에 길들여지지 않은 독자라면 쉽지 않은 읽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각주를 버리고 읽어나가자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제 쉽게 접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람시라는 인물이 현대 사상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지금 세계에 맑스마저도 석기시대 이야기처럼 치부되고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겠다. 허나 적어도 파시스트에 맞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사상가의 인간적인 면과 문학적인 감수성이 담겨져 있는 책 한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 안타깝다.


……………………

길고 긴 소통의 시간과 사색의 여백이 큰 편지가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낯설고 오래된 통신수단이 되어 버린 편지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당분간 지인들에게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고 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세계문학전집 42)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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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덕유산 산행에서 본 운해

지난번 덕유산 산행에서 본 운해



여차저차 하다 보니 4월 3일(토)로 일정을 잡았다. 올 초에 다시 백두대간 길을 걷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가급적 한달에 한번씩 가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가정사며 회사일이 그렇게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내가 양보하고 맞추어야 할 일이 많다. 그만큼 나는 아주 작은 존재다. 하지만 나 하나쯤 빠진다고 일을 허투로 하거나 게을리 해서도 안된다. 그만큼 나는 중요한 존재라고 위안한다.

또, 백두대간 종주는 내 생의 목표이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남한내 백두대간 길을 천천히 밟아나갈 것이다. 생이 이어지고 남북이 연결된다면 백두산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서 걷는 길이다.

이번 구간은 큰 산이 품은 길도 아니고 멋드러진 풍경이 있는 곳도 아니다. 찾아오는 이들은 나처럼 대간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길은 천상 혼자서 가야 한다. 이번에야 말로 봄꽃들과 다정히 인사하며 휘파람 부르며 봄의 기운이 깃든 산속 길을 오롯하게 걷겠다. 구름을 벗하고 바람에 흔들리며 지나온 길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제법 긴 산행이 될 듯하다. 하루에 걸어야 할 길이 21km가 약간 넘는다. 도상에 제시된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예상 산행 시간은 약 11시간 10분이 걸릴 듯하다. 여기에 휴식 시간과 점심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새벽 동틀 때 쯤인 오전 5시 30분부터 산행을 시작해 해가 저물기 전인 오후 5시 전에 끝낼 생각이다.

꽤 긴 산행이며 여지껏 하루에 걸었던 거리들 중에서 가장 긴 거리다. 지난 산행에서도 버거웠던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무리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기에 만약을 대비해 덕산재에서 탈출할 생각도 하고 있다.

산길의 특징은 여러개의 재(고개)를 넘는다는 것이다. 산행도 빼재에서 시작해 부항령(고갯길이다)에서 끝난다. 중간에 된새미기재, 호미골재, 소사고개, 덕산재가 있다. 소사고개와 덕산재는 아예 차들이 지나는 도로이다. 그만큼 오르내림의 부침이 심할 듯한데, 그중 삼봉산에서 소사고개로 쭉 떨어졌다가 다시 초점산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가 가장 힘들 듯싶다.

4월 3일의 무주-김천 지역 날씨는 구름 조금에 아침 최저 기온 영상 2도, 낮 최고 기온 영상 15도로 일교차가 심할 것으로 보인다. 등산 당일 비소식은 없지만, 수요일과 목요일 비 예보가 있어서 길이 진창이 되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백두대간을 타다 보면, 가장 복잡한 게 교통편이다. 비용의 대부분도 교통비가 차지한다. 이번에도 역시 교통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우선 서울에서 빼재까지 가는 교통편은, 일단 거창까지 시외버스(남부시외버스터미널 막차 23:00분, 19,400원)를 이용한다. 그리고 다시 거기서 택시를 이용(네이버에서 계산한 메타요금으로는 19,900원/27.23km이나 부르는 요금은 따로 있는 듯, 3만원)해 이동할 생각이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도 복잡하다. 부항령에서 김천의 콜택시를 부른다. 이 경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택시비로 35,000원을 불렀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지도 검색을 통해 나온 택시요금은 약 28,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역시 웃돈을 부른 듯하다. 거기서 김천역에서 기차를 이용해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김천역에 도달하는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지만 김천역에서 서울가는 막차는 23:35(15,400원)까지 있다. 참고로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고속버스는 18:00가 막차인 듯하다.

이래저래 왔다갔다 교통비로 10만원을 채우는 셈이다. 이때 인원이 2~4명이 된다면 택시비를 나눌 수 있어 부담은 줄어 들 수 있다. 하지만 경험상 이마저도 뒷풀이 비용을 생각하면 같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함께 하는 산행을 통해 인간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다. 반면 혼자서 오랜 사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므로 이것 역시 비용으로 책정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2008년 7월 9박 10일 지리산-덕유산 종주 이후 2년 만의 나홀로 산행이라서 좀 떨린다. 이번에는 더 크게 외쳐야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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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희생을 강요한다. 아니, 희생 없이 결혼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그 희생의 대상이 상대방이라고 착각한다. 여기서 필요한 자각은 그 희생은 상대방을 위함이 아닌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함이다. 자신의 희생이 상대방으로 향한다는 가정은 결국 그 희생에 대해 유세를 떨거나 반대로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서로의 관계에 상처를 내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희생이라기 보다 위선에 가깝다. 그러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할 때부터 결혼은 이미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진정한 자기희생은 숭고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위선은 비극으로 내달린다.

결혼 생활은 서로에 대한 자리매김이다. 평생을 두고 진행되는 이 자리매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위기(혹은 기회)의 성격과 내용이 다른만큼 어느 하나의 정답을 만들 수는 없다. 항상 머리를 맞대고 그 위기(혹은 기회) 앞에서 서로의 역할과 임무를 배분해 관계를 재정립한다. 그럼 그 결과는 무엇일까?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 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이야기하는 바다. 잃어버린 반쪽을 만나는 것은 쉽지만 그 잃어버린 반쪽과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신은 자아라는 제물을 요구하며, 따라서 결혼 생활을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애는 할 수 없는 것, 둘을 하나가 되게 하는 바탕이 바로 결혼이다.

지난주 토요일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신부를 소개하는 후배의 술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후배는 자신의 배우자가 '착하다'고 했다. '착하다'는 말도 '결혼'이라는 말처럼 단어가 가진 사회적 해석이 오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서는 선의가 느껴졌다. 그동안 이어져 온 연애 생활을 청산하고 오랜 역사적 전통과 사회적 풍습이 주는 시련을 둘은 이겨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그 시련은 둘의 관계맺기를 통해 하나가 탄생하는 산고의 과정이다.

세상은 진정 하겠다고 결심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길이 열린다. 부디 먼훗날 행복이라는 옥동자를 생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 결혼식 못가서 이런 글 쓰는 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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