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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회적 자본 실태 종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회적 관계망 가입 비율은 동창회가 50.4%로 가장 높단다. 그 다음으로 종교단체 24.7%, 종친회 22%, 향우회 16.8%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과 동문회를 하면 반도 오지 않는다. 그나마 올해 초에 했던 행사에서 반의 반 정도가 참석했는데, 굉장히 많이 모였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 현실이다. 물론 동창회라고 하면 꼭 대학 동창회만 있는 게 아니다. 초,중,고등학교 등등 우리에게 거쳐온 동창회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학연 외에도 지연과 혈연 등을 엮어보면 참 복잡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빚어지는 비리와 이권개입, 부정 등은 그동안 숱하게 신문지면을 채워왔다. 우리 사회를 10년 후퇴시킨 위대한 영도자 MB도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이라는 학교/종교/지역의 관계망에서 사람을 뽑아 올리지 않았나. 꼴이 이러니, 학연/지연/혈연 이깟 연고주의 때려치워야 한다.

라고, 주장하기는 쉽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주장인가 되돌아보자. 문제는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가는가에 있지 관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사회적 관계망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북대의 강준만 교수는 ‘공공적 연고주의’를 이야기했다. 연고주의를 타파해야 할 대상이 아닌 극복하고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학연, 연고주의는 어떠해야 할까?

후배 K의 경우다. 그는 사진찍는 것을 좋아했다. 홀로 사진을 공부했고, 그리고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통과해 종합일간지의 사진기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고생해서 들어간 언론사에서 광운대 국문과라는 간판은 조롱의 대상이었나 보다. ‘어찌 광운대 국문과가 우리 언론사에 들어올 수 있나’라는 멸시와 조롱을 견뎌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술자리에서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고, 번번이 그를 업신여기던 선배와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내 후배가 이 정도다. 선배들은 그보다 더 심했다. 많은 선배들이 회사 입사면접에서 광운대에 국어국문학과 실제로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뻔히 졸업증명서를 보면서도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그만큼 우리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의 무관심은 여전히 많은 후배들을 곤욕스러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88학번부터 줄곧 이어온 이 굴욕의 역사는 여전히 끈질기게 우리(광운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생)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굴지의 대기업이나 언론사의 문을 두드렸던 동문들이나 입문에 성공한 동문들이 겪었던 고충과 어려움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 졸업의 노래가 있지만, 앞서 졸업한 선배는 가시밭길을 홀로 헤쳐 나가야 했고, 여전히 어려운 경제 사정과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여전히 홀로서기를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다. 후배들 역시 정보의 부족과 유력한 도움을 기대할 수 없어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졸업생들이 겪어야 할 고초는 여전하다. 그렇다면 졸업 선배들이 이들에게 취업 정보를 주거나 알선하고, 로비를 벌이는 것이 후배들을 아끼는 것일까?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 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십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
“십 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현진건의 단편 소설 ‘고향’에서는 일제 강점기 피폐해져 가는 조선 땅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 단편 소설을 최근 들어 다시 읽었는데, 우리과가 지금 그렇다. 많은 졸업 선배들이 대학 시절을 삶을 인생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그 고향이 지금 피폐해 있다. 자본주의의 경쟁과 신자유주의의 무차별적 경쟁으로 우리의 고향은 현진건이 ‘고향’이라는 작품에서 말한 것처럼 피폐해졌다. 거기에는 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가 아닌 경쟁만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취업 정보 제공이나 알선, 로비 등은 당장의 도움은 되겠지만 문제의 해결이 될 수는 없다. 국어국문학과의 학문적 공공성을 되찾고 학문공동체로서의 국어국문학과를 살리는 길이 정답이다.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동문회가 발족했다. 그러나 활동은 지지부진하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이다. 누군가 여유가 있어서 진듯하게 이 모임을 이끌어 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송년회에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찾아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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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편집자는 편집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 영업이나 마케팅도 알아야 하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도 필요해. 포드의 컨베이어벨트식 생산 체계가 무너졌어. 편집자도 마찬가지야.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편집만 잘한다고 안주하던 시대는 끝났어.


어제 실장님과 같이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다. 물론 나는 편집자가 편집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양한 능력과 역할이 요구되고 있고, 그러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문제는 여기 출판사가 그런 편집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 편집자를 키우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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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난생 처음으로 머리를 퍼머했다.

예전부터 한번은 꼭 해보고 싶었던 건데,

여자친구 집 근처의 미장원에 가서 과감하게 시도해 본 것이다.

분명 아주 덜 곱슬거리게 해달라고 했건만,

그러니까 살짝 웨이브 정도만 달라고 했는데,

여친이 그보다 더 강하게 해달라고 했나 보다.

해 놓고 얼마나 놀랐던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워낙 낯설어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일주일이면 자연스러워질 거라는 여친의 위로도 별로 소용없었다.


그리고 월요일...

회사 가기가 정말 싫었다. 아, 이건 또 얼마나 놀림감이 되려나...

그런데,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다.

다들 보기 좋다고 하니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어제, 그러니까 사고를 친 3일만에 우리 아버지는 나의 변화를 감지하신다.

아들에게 이리도 무심한 우리 아버지...

아무튼 아버지의 소감은 더 큰 위로가 됐다.


"잘 했구나. 그전에는 순하고 어리게만 보이더니,

머리를 그렇게 해놓으니까 뭐가 있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그다지 나쁘지 않은 반응들이다.

거기에는 위로도 있고 동정도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멋에 사는 거다.

그리고 그러려고 저지른 일이니 스스로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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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은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심사본 제출 마지막날이었습니다. 이날 금성출판사는 초등 미술 교과서와 고등 정보 교과서를 마지막으로 모든 교과서 심사본을 무사히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교과서 파동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편집자들은 교과서 심사본 제작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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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본 제출을 무사히 마친 후, 그날 오후 4시부터는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 검정 100% 합격 기원제’가 열렸습니다. 쉽게 말해 이번에 제출한 교과서들 잘되게 해달라는 고사를 지내는 것이죠. 교과서를 만들면서 모진 고생을 한데다가 회사 차원에서도 홍역을 치루는 와중에 만들어진 교과서들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도 높았습니다.

김인호 사장님은 짧은 인사말에서 “어느 해보다 금성출판사가 유명해졌던 한 해”였다며, “편향 때문이 아니라 내용 때문에 좋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동안 출판사 대표로서 겪었던 애로점을 간접적으로 내보이는 한편, 교과서 문제로 마음고생을 했을 임직원들을 격려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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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고하는 글(告天文)에는 직원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지만, 정말 그리 된다고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교과서만으로 적절한 수익성을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다보니 교과서 전문 출판사로의 길은 어두운 밤중에 접어든 첩첩산중처럼 깜깜하기만 하지요. 이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전가될 것인데, 여전히 편향 논란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교과서만을 고집하는 어른들의 무지가 답답할 뿐입니다. 한치 앞도 못보고 지금 당장의 이익만 고집하는 꼴이죠.

이번에 제출한 교과서 심사본의 심사 결과는 3월에나 나오겠지만, 그때까지 다시 지도서 작업에 몰두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제 내년을 준비하는 시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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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작업이 끝났습니다. 9월 22일부터 기록된 야근시간만 379시간. 근무시간 560시간까지 합친다면, 940시간, 그러니까 거의 1천 시간의 땀과 노력이 투여됐습니다. 물론 늦게 합류한 나의 야근시간은 다른 이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원고를 다시 쓰고 뜯어 고치며, 교정쇄만 7~8교까지 뽑아냈습니다. 팀에서 쓰고 버린 빨간펜만 모아도 한 타스는 나오지 않을까요.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그보다 몇 십 배 많은 종이들이 희생됩니다. 어느날은 프린터기가 하루종일 종이를 내뱉다가 지쳐 실신하기도 하지요.

그뿐일까요.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있고 삼시 세끼는 꼬박꼬박 채우면서 운동을 못하다 보니 몸무게는 4kg 가까이 불었습니다. 툭 튀어나온 허릿살을 빼기 위해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할지 알 수 없네요. 눈비만 오지 않는다면 다시 자전거 출퇴근을 해야겠습니다.

불어난 살들이야 어찌됐든 내 몸의 일부이겠지만, 소원했던 인연들을 복원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직원들끼리도 아쉬웠던 술자리를 다시 이어가야 할 일도 필요하고, 친구들과 선후배들과도 다시 술약속을 잡아야겠습니다.

우리 교과서를 디자인 하셨던 분이 그동안 고생했다며, 우리 팀 전원에게 작고 예쁜 수첩 하나씩을 선물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카드에는 예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네요. 그 일부만 옮겨 오면,

“교과서 작업이 때로는 조금 피곤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주위의 좋은 분들과 함께 했던 작업이라 보람되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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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노동은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우리가 맺는 사회적 관계를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시간과 노력과 땀으로 빚어진 것은 하나의 교과서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인연과 사회적 관계의 자리매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은 축복이며, 노동 그 자체가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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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역사 연구 소모임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배운 진실은, 역사는 주관적 서술이라는 점이다. 사실로 치장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서술가의 관점과 철학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 생각과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나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배운 역사는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삶이 되었다. 나의 역사 공부는 내 대학생활에서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 것들을 결정하는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91년에는 강경대 열사의 죽음에 항거해 십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분신을 할 정도로 노태우 정권과 민족민주운동 세력이 치열하게 싸우던 시기였다. 종로 거리는 매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고, 대학 곳곳에서는 연일 집회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난 데모라면 딱 한번 나갔을 뿐이다. 지금 와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의 나는 소심하고, 무관심하고, 무정했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옆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당시 역사에 대해 몰이해하고 있었고, 가치관이나 관점이 분명하지 서 있지 못했다. 역사와 문학은 그런 나에게 내 행동의 분명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게 했으며, 인간의 선한 자유의지가 궁극적인 세상의 희망임을 일깨워 준 학문이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사 교과서 이야기다. 교과서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의 갈등을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 갈등의 양상은, 보수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진보쪽에서는 ‘검정 교과서의 수정 요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제가 되는 구체적인 조항을 보면, ‘8·15광복절과 연합군의 승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 부분, 미·소 군정과 관련해 서로 성격이 다른 사료를 비교한 부분,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에 전가한 부분과 정권의 실상을 판이하게 서술한 부분, 대한민국을 민족정신의 토대에서 출발하지 못한 국가로 기술한 부분, 그리고 북한 정권의 실상을 달리 서술한 부분’ 등이다. 이 부분에서는 역사가들 안에서도 매우 다른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온 내용이 사실을 벗어난 잘못된 서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익 인사들의 주장은 매우 익숙한 레퍼토리다. 1997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발족하면서 내 건 것이 일본을 폄하하는 내용들로 구성된 역사 교과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일본의 긍지와 자랑을 학생들에게 심겠다는 것인데, 실상 그 내용은 제국주의 일본의 역사를 정당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의 연장선에서 보고, 남북 분단의 외재적 요인에 눈감고, 친일파 청산의 좌절을 감추려는 우리나라 우익이나 일본 우익이나 다를 바가 없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역사 교과서도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논리다.

“국가의 정통성은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통해 나오는 것이지, 교과서를 통제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조작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국 정부는 ‘모래에 머리를 파묻은 타조’처럼 불편한 과거사에 대해 무작정 귀를 막으려 하고 있고, 이는 ‘국가적 자긍심’을 명분으로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우익들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과거의 일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역사의 희생자들과 그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 대립하는 관점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 남과 북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일”
- 브루스 커밍스, 한겨레신문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집단의 정체성이나 역사적 정통성은 그 집단 내에 속해 있는 사람이 집단에 대해 가지는 신뢰를 통해 나오는 것이지, 거짓이나 왜곡을 통해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과거의 일들을 재조명함으로써 또다시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스라엘의 초등 역사 교과서는 첫 부분에서 “우리의 조상은 애급의 노예였다.”라고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이 언급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긍심을 잃었다거나, 역사적 정통성을 훼손됐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결국 우리나라 우익들은 역사를 감추고 싶은 것이며 왜곡하고 싶다는 말이다.

물론 단순히 역사 서술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역사 ‘교과서’라는 다른 측면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교과서’가 가지는 특수한 지위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를 이용해 국민들의 생각과 사상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저급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검정 교과서의 본래적 취지인 다양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일련의 행위는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교과서가 과연 학생들의 수준이나 교육 현실에 적합한지는 따지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하워드 진은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역사 연구는 곧 무엇이 중요한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는 실제로 현재 우리의 관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내가 역사 연구 소모임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스스로 역사 연구 교재를 정하는 일이었다. 지금 그 교과서를 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어보자. 과연 그들에게 실제로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이 역사 교과서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나 권리가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 그들을 가슴 뛰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지, 과거와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을 이어주는 끈을 발견했는지, 지금의 내가 살아가면서 깨달아야 할 성찰의 과제들을 찾을 수 있었는지 말이다.




합리적인 권위는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것에 의존하는 사람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비합리적인 권위는 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것에 종속된 사람을 착취하는데 봉사한다.
-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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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6시 반. 아마 태어나서 처음이 아니었을까. 도심지 고층빌딩 지하에 있는 사우나. 그러나 그곳은 복잡하다. 수면실에서는 전날 자체 통금에 걸려 집에 못 들어간 불쌍한 영혼들이 코를 골며 잠들어 있고, 부지런히 아침을 시작하는 노인네들과 어디선가 밤샘 작업을 끝내고 들어와 초췌한 젊은이들이 목욕탕 한 구석을 지지고 있었다.

난 전날 밤부터 시작된 두통에 시달렸다. 도대체 왜 갑자기 머리가 아픈 것일까. 저녁을 잘못 먹었을까?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마지막 편집 작업에 신경이 곤두선 것일까? 원인도 대책도 없이 찾아든 목욕탕에 들어서면서 온갖 잡생각을 다 한다. 체중계에 올라서니 그새 72kg을 넘어서는 몸무게. 활동량이 부족하고 내내 앉아 있었으니 살이 찔 수밖에. 9월달보다 무려 4kg이 불었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자전거 출퇴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체중계의 숫자를 보니 다시 열의가 불타오른다.

머리는 빠개질 것 같이 아프고, 뒷목은 뻐근한데,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일들이 있어, 41℃의 온수에 몸을 담가도 시름과 걱정은 쉽게 녹아들지 않더라. 이놈의 두통만이라도 털어버렸으면 좋으련만, 아마 OK작업이 끝날 때까지 이 두통은 나를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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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비가 그치더니,
이제는 겨울비가 내린다.
모든 낙엽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생애 마지막 목욕을 하고 있다.
온몸 가득히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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