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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가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다. 꾹 눌러오는 통증이 숨을 쉬는 것도 힘들다. 나아가 배 전체적인 복통을 수반하니 이건 속수무책이다. 병원에 가야했다. 정초부터 병원이라니 씁쓸하다.

병원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소파에 널부러지 숨쉬기를 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짧은 시간이지만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치고 달려간다. 내가 어제 먹은 건 삼겹살, 오늘 아침에는 딸기만 먹고 출근했지. 딸기가 상한 걸까? 아니면 돼지고기의 문제였나? 술은 요며칠 동안 한두잔 마신 게 전부, 술 때문일리는 없고, 혹시 지병에 의한 무언가 알 수 없는 심각한 불치병??? 아냐아냐, 요새 너무 열심히 운동을 해서 무리가 간 건 아닐까? 무슨 소리, 운동 열심히 해서 무리가 가면 근육에 무리가 가지 배는 왜 아파? 그래,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요새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렇게 아픈 거지?

곧이어 호출이 오고 의사 앞에 앉았다. 증상을 이래저래 이야기해 주고 어제 먹은 거 오늘 먹은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술술 자백했다. 그러나 그건 별로 관심사가 아닌듯, 의사는 내 명치를 꾹꾹 눌러보면서 아프냐고 물어보았다. 눌러서 아프지는 않았다.

의사 말로는 '위장염'이란다. 위염도 아니고 장염도 아니고 위장염이라니, 이게 어느 나라 말인가 싶더라. 그러면서 3일치 약을 지어줄 테니 먹고 안 좋으면 다시 오란다. 병의 원인이나, 예방법, 관리요령 등에 대해서는 알아서 하란 말인가? 진료시간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주사 한대 놔주는데, 그건 그냥 간호사가 놔준다.

병이 나니 먹는 것도 신중하고, 씹는 일도 세면서 한다. 진작에 그랬어야 하는데 몸이 아파야 그런 걸 보면 얼마나 어리석나. 오늘은 다시 병원에 가봐야겠다. 정초부터 병원 출입이라니 다시 한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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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 8점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류은희.조현천 옮김/현암사



친애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 씨에게

 

얼마전에 당신의 소설 <소멸>을 보았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당신의 소설 <소멸>의 이야기 줄거리는 이러했다. 주인공 ‘나(프란츠 요셉 무라우)’는 여동생 결혼식을 다녀온 다음다음날(그러니까 이틀 후) 뜻밖에 가족(부모님과 형)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장례식에 참석한 후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모두 종교단체에 기부하고 생을 마감한다. 당신 소설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내 글만 보면 어떤 이는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런 오해도 살만하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장장 500쪽에 걸쳐 서술되고 있다. 그것도 단 두 문장으로 말이다. 1부 '전보'가 가족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사진을 보면서 가족에 대해 사유하는 장면이고, 2부 '유언'은 고향에 돌아가 장례식을 치루는 일련의 과정에서 떠오르는 사유들의 집합이다. 단 두 문단으로 서술되어 있는 이야기, 게다가 줄거리가 단순한 만큼 나머지는 당신의 온갖 사유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난생 처음 접해보는 새로운 문체와 서술에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당신 가족과 조국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온갖 비난과 모욕이 넘쳐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주인공 ‘나’의 냉소다. 곧 소설가 당신의 냉소이기도 하다. 이렇듯 지독한 냉소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세기의 전환기에 이르면 사유하는 것으로, 사유하는 것을 통해 존재해 온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며, 사유하는 인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충고는 단 한 가지, 이 세기가 끝나기 전에 자살하라는 것입니다. 〈p.495〉

 

세상에 자살을 조언하다니, 어떻게 태어난 삶인데 사유하는 인간은 자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는가. 이런 지독한 냉소의 배경에는 자위적인 오만이 담겨 있음을 보았다. 당신은 오만함을 통해 자신을 경멸했다. 그리고 이것을 무기로 세상을 경멸하고, 물질 중심으로 흐르는 세상에 저항했으며, 끝내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으면서 멋지게(?) 한방 날렸다. 그런 점에서 당신을 존경할 수 있을 법하다. 게다가 죽어서 남긴 실제 유언을 들으니 더욱 놀랍다.

 

“내가 쓴 것은 모두 저작권법의 유효기간 동안 오스트리아 국경 내에서 공연되고 인쇄되거나 낭독되는 것을 금한다.”

 

작가가 자신이 쓴 창작품이 자신의 나라에서 출판, 공연, 인쇄 되는 것을 금하다니, 이것은 국가에 대한 증오일까, 역설적인 사랑일까? 아무튼 미친 짓이다. 그만큼 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굳은 의지이자 절박한 메시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의 권위와 폭력에 의해 셰어마이어와 같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아무 보상도 없이 여생을 살아가고, 나치와 협력해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데 협력하거나 개입했던 이들에게 공로훈장을 떠안기며 터무니없는 연금을 송금하는 국가는 오스트리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부끄럽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본다면 당신은 까무러칠 것이다. 아마도 환생이란 것이 있어 당신 같은 대작가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가급적 피해서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아니, 제발 한국에 태어나 당신의 그 글로 멋진 한방을 대한민국에 날려주기를 기대하고 싶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지도하는 이들은 물질에 사로잡혀 정신적 가치를 전혀 고려치 않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모든 잣대와 기준을 경제적 가치에 두고 경쟁만이 최고의 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심지어 꼬맹이 아이들마저 경쟁 체제로 내몰고 있다. 이 권력은 국가의 권력에 도전하고 권위에 상처를 주는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 인신을 구속하고 있다. 물론 그런 지도자를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부끄럽지만 물질에 현혹되어, 747이니 주가 3000이니 하는 말에 넘어간 사람이 내 이웃이고, 나 역시 그런 선택을 수수방관했음을 자백한다. 그러니 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을 욕하는 건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는 일이다. 이럴 때이니 냉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냉소 이전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도대체 이런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묻고 싶다.



소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토마스 베른하르트 (현암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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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옆을 향해서 살지만 잡초는 늘 위를 향해 살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잡초는 없는 것이다.
동물이든 새든 곤충이든, 혹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든,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어느 것이나 더 나아지려는 의욕과 에너지를 갖고 있다.
모든 것은 있는 힘을 다 쏟고 있다.
향상심이 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 이나가키 히데히로, <풀들의 전략> 중에서  



찬 바람을 가르며 안양천을 내달리다 이대 병원 근처에서 줄줄이 늘어선 거대한 굴뚝들을 보았다.
아마도 난방용으로 보이는데, 특히 겨울에 눈에 잘 띄는 것은 굴뚝에서 나오는 저 연기 때문이다.
안양천 변에는 어김없이 어른 키보다 높게 자란 억새들이 굴뚝마저 가릴만큼 무성하다.
이 추운 겨울에도 차가운 땅속에서 에너지를 끌어들여 스스로를 뜨겁게 하는 식물들이다.
불을 떼지 않으면 상온을 유지하기 어려운 인간에 비해 이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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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김유정 문학관에 다녀왔다.
안타깝게 일찍 요절한 김유정을 그리워했다.

국어시간에 한참 졸았어도 김유정의 <봄봄>이란 작품은 웬만하면 안다. 김유정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봄봄>은 이야기 자체가 워낙 재미있고, 해학적인 면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봄봄>은  점순과 혼인하고 싶어 머슴살이를 하는 주인공 '나'와 혼인을 핑계로 '나'를 이용해 먹는 교활한 장인어른이 나온다. 혼인 문제로 티격태격하며 반발해 보지만 끝끝내 이용만 당하고 끝내 이용만 하는 교활한 장인 어른이 나온다. 혼인을 핑계로 주구장창 4년을 밤낮으로 일을 했지만, 장인은 성례시킬 생각을 안한다. 맨날 졸라보지만 키가 더 자라야 한다며 고개를 젓기 일쑤다. 그러다가 마침내 장인과 대판 싸움이 났고, 자기편을 들어주리라 기대했던 점순이마저 아버지 편을 들면서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나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떡해?"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친다.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게다.
길게 길러둔 새끼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씨! 얼른 성례를 시켜 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 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에 장인님이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계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져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장인 님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 놔라."
그래도 안되니까, "애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 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겨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귀를 뒤로 잡아댕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 놓고 장인 님은 지게 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
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그는 젊은 날에 요절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농촌 소설들이 가진 묘사와 해학 풍자는 당대를 넘어섰다.
농촌의 꾸밈없는 삶을 그려내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사랑과 미움에 담긴 자잘한 감정들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세세하게 전개된 농촌의 삶을 묘사하는 곳에는 은근히 당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재치도 숨어 있다.
이 작품에서도 많지 않은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딸을 이용해 노동을 착취하고
작인들에게 부당하게 압력을 넣거나 행세를 하는 장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김유정이 젊은 날에 요절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고 보니 작년이 김유정 탄생 100년이었던 해란다.
그래서 이곳 실레마을(김유정 문학관이 있는 곳)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렸었나 보다.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았다.
김유정의 작품을 읽고 싶다면 김유정 탄생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에서 만든 사이트
<봄봄스토리페스티벌>에 가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봄봄> 외에 <동백꽃> <만무방> <안해> <금따는 콩밭> 등등의
원본과 개정본 모두를 볼 수 있다.





문학관을 나와 김유정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빈논에 눈사람이 덩그러니 있다.
지금의 쓸쓸한 겨울농촌의 모습을 보면서 김유정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저런 눈사람을 만들며 헛헛한 웃음을 짓고 있진 않았을까?





김유정역이다. 원래는 '신남역'이었는데,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을 복원하고 가꾸면서
2004년 12월1일부터 역이름도 김유정역으로 바뀌었다. 플랫폼에도 나가 구경해 보고 싶었지만 평상시에
문은 잠궈놓고 있는지 열리지 않았다. 간이역 풍경을 즐기고 싶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김유정역
주소 강원 춘천시 신동면 증리 859
설명 당역의 소재지가 춘성군 신남면이었기에 지명을 따라서 신남역으로 하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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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덕수궁



소한이다. 대한이가 얼어 죽는다는 소한이라고 하는데, 오늘의 평균기온은 예년보다 높다고 한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고 하는데 춥지 않으니 그것도 걱정이다.
새해 들어 처음 맞는 절기 중의 하나인 소한이 제 이름값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겨울철 가장 추운 날은 소한부터 시작해 대한까지라고 하는데
이대로 가면 소한이가 대한이네 가서 얼어 죽을지도 모르겠다.

예전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입춘이 오기까지의 혹한기를 대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시기라고 한다.
'섣달 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라는 속담이 말해 주듯 혹독한 겨울나기의 시작이 바로 이때부터이다.
지금은 이맘 때쯤, 우리는 진행 중인 새해 계획을 점검하고, 작심삼일로 끝내야 할 무리한 계획을 수정하고
보다 힘있게 추진해야 할 계획들에 대해 자신을 더욱 독려할 때이다.

새해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절기가 소한인데, 춥지 않다.
아무래도 어느 때보다 더 혹독한 추위를 넘겨야 하는 우리네 어려운 사정에 대한 하늘의 따뜻한 동정이 아닐까?
겨울이 춥지 않다는 것은 도시 생활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다. 난방비도 적게 들어가고 활동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춥지 않다는 날씨 예보를 믿고 자전거를 끌고 출근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허벅지가 뻐근하다.
그래도 새벽공기를 가르는 기분이 좋다. 무척이나 건조한 날씨다보니 차량이 내뿜는 매연의 냄새가 어느 계절보다 진하다.
마포대교를 건널 때 도시의 빌딩 위로 낮게 떠 있는 태양이 반가웠다.
앞으로 자주 대면해야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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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 다 똥이 되고 만다고 하지만, 좋은 음식을 먹어 본다는 경험만큼 뿌듯한 기억이 있을까. 그러기에 여행에서는 그 지방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과정의 하나다. 그렇다면 여행에서 만나는 음식은 어떻게 느끼는 게 좋을까? 좋은 맛이라는 건 단순한 혀의 감각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의 색과 요리가 되는 소리, 그리고 요리에서 나는 냄새 등이 모두 어우러질 때 그 아름다움이 더한다. 물론 음식을 먹을 때의 분위기와 곁들여 먹는 음식, 그리고 음식을 함께 즐기는 사람이 누구인가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우리의 대표 음식인 김치와 고추장에서는 붉으죽죽하게 펄펄 살아 숨쉬는 기운의 색감이 느껴진다. 이 색감이 우리나라 전통의 요리 색감이다. 매콤하고 시큼하게 달려드는 맛이 혀에 착 감겨온다. 우리 맛의 기본이 여기서 시작된다. 춘천 닭갈비 역시 그런 음식 중의 하나다. 붉은색의 양념은 그 가게의 유일한 비법으로 절대 공개되지 않으며 다른 가게와는 다른 독특한 맛을 내는 요소다.


닭갈비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닭’과 ‘갈비’의 결합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육고기에 비해 저렴한 닭을 고급 요리인 ‘갈비’처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일 것이다. 닭갈비는 토막낸 닭을 포를 뜨듯이 도톰하게 펴서 양념에 재웠다가 갖은 야채와 함께 철판에 볶아 먹는 요리이다. 양념에 재워야 하는 만큼 이 양념의 맛이 그 식당의 성패 여부를 가른다.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를 안 먹어볼 수 없다. 택시 기사에게 닭갈비 맛있는 집을 추천해 줄 수 있냐고 물으니 ‘우미닭갈비’를 가보라고 한다. 어디든 다 비슷한데, 보통, 사람 많은 집이 맛있는 곳 아니겠냐고 하신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다.


닭갈비 먹으면서 소주 한 잔도 하셔야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고기 먹을 때는 꼭 소주가 필요해요. 허허. 아 그래도 이왕 춘천에 오셨으니 닭갈비에 소주 한 잔 드시고 밥 한공기 볶아서 뚝딱 해치우면 든든하죠.



춘천 닭갈비의 역사를 봐도 닭갈비는 서민들의 음식이다. 1960년대 말 선술집 막걸리 판에서 숯불에 굽는 술안주 대용으로 개발된 닭갈비는 값이 싸고 맛있다보니 춘천 군부대의 군인들이 외출을 나와 즐겨 먹었고, 자연스럽게 젊은이들 사이에서 값싸고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70년대에 닭갈비 한 대 값이 불과 100원에 불과해 ‘대학생 갈비’ ‘서민갈비’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옛날에는 도시락에 비벼 먹었다고 하는데, 이는 지금도 닭갈비를 먹고 나서 밥을 볶아 먹는 풍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11월 한국전화번호부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춘천 닭갈비’ 식당은 총 639개. 그중 춘천에 있는 ‘춘천 닭갈비’ 식당은 단 14곳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춘천에는 닭갈비 집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역시 자료에 따르면 227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춘천 닭갈비’는 지방향토음식을 넘어 전국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닭갈비의 인기는 올해(2008년) 축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8월 29일부터 9월 3일까지 춘천일대에서는 춘천 닭갈비․막국수 축제가 열렸다. 분리되어 열렸던 축제가 하나로 통합된 첫해의 성과는 대단했다. 통합 첫 회임에도 75만명이 방문하는 대성황을 이뤘고 311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83억원의 소득유발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

춘천시도 이에 발맞춰 2011년까지 닭갈비를 명품화하겠다고 나섰다. 국비 15억원 등 모두 30억원의 재원이 투자될 이번 명품화 작업은 역량 강화 컨설팅, 농가와 음식점의 교육·견학, 명품화 연구·마케팅, 지리적 표시제 도입, 업소 이미지 개선 지원, 인증패 부착, 청정사육 환경 및 유통지원 등으로 나눠 추진된다.






우민닭갈비는 골목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4시 반 경에 들어갔는데도,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의 맛있는 냄새가 허기를 더욱 자극했다. 닭갈비는 서민음식이니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에서 먹기 보다는 이런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좋다.

시끌시끌한 분위기와 왁자지껄 떠들썩한 소리 속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의 냄새와 잔을 쨍하니 부딪는 소리들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먹어야 맛있다.

닭갈비가 어느 정도 익어간다 싶으면 먼저 떡을 먼저 먹으면서 허기진 속을 살살 달래준다. 닭갈비는 부드럽고 씹기 편한 만큼 양배추 등 야채와 같이 해서 먹으면 씹히는 맛이 있어서 좋다. 어느 정도 닭고기를 다 먹었다면 밥 한공기를 볶아 달라고 하자. 바닥이 살짝 눌어붙을 만큼 되면 그때부터 살살 긁어먹는다. 적당히 눌러 붙은 밥을 긁어 먹으면 고소하니 맛있다.

그럼 누구랑 먹는 게 좋을까? 소주 잔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친구가 좋다. 애인이 술친구도 해준다면 금상첨화다. 소주 한 병은 금세 동이 날 것이다.

그렇게 두어 시간 남짓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어느새 춘천 시내는 어둠이 깔려있다. 춘천의 명동거리를 거닐어 보면서 소화도 시키고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들을 담은 사진들도 보면서 키득키득 웃어보자. 배도 부르고 웃음도 나오니 이 아니 즐겁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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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분 토론을 본 후

유시민은 참 조근하게 이야기를 잘 풀어나갔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면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을 잘 풀어나갔다. 진중권은 네티즌들의 환호를 받을 만큼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내질렀다. 독설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신해철은 낮게 깔린 저음으로 매우 날이 선 원론적인 비판을 해냈다. 보통의 대중들은 그의 말을 잘 이해하기 힘들었겠지만, 관련 문제에 대해 관심 있는 이라면 그의 말이 꽤 인상적으로 들렸을 듯하다.

이 정도가 내가 평가하는 어제의 백분토론 논객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흥미를 끌었던 것은 MBC의 ‘이명박 정부 1년 평가’ 설문조사 결과였다. ‘잘했다’라는 평가는 6.5%에 그쳤고 ‘잘못했다’는 평가가 49.7%나 나타나 아주 혹독한 평가를 내렸으면서도, 내년 전망에 대해 ‘잘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40.8%에 이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과연 유시민의 말대로 ‘제발 잘 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라는 절박한 호소였을까? 민주당 의원이 그랬고, 나경원 의원이 그랬듯, 그건 아전인수식 해석일 뿐이다.

문제는 평가에 관한 설문에서 ‘보통이다’라고 응답한 43.2%의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던진 기대치였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런 기대치를 거는 대중들의 심리가 참으로 애석하다. 그것이 지금의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배경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신적 가치 보다 물질적 가치에 연연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는 신해철의 말에서도 잘 지적되었다.



"이번 토론회 주제가 이명박 정부라하니 주변에서 '큰일났다, 보복당한다'고 한다. 유모차 부대 엄마를 수사하고, 공무원을 물갈이하고, 방송을 장악하고, 교과서가 편향됐다며 왜곡하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 집단에도 이념을 들이댄다.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게 사회 각계 각층으로 확산되고 파급돼 경직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데 있다. 경제가 되살아난다고 해도 (이런 현상은) 쉽사리 되살아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모습은 전두환의 모습일 뿐이다."

 

경제는 언젠가 되살아나겠지만, 훼손된 민주주의 가치와 유린된 인권은 수십년을 거쳐도 회복되기 어렵다. 고로 내년뿐만 아니라 앞으로 적게는 10년, 멀리는 20년 동안 이 정권이 싸질러놓은 똥을 치우느라 고생해야 할 것이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대중의 인식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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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장에서 산타기






























스키장에서 산을 탄다면 우습게 들리려나? 어떤 이는 스키 때문에 겨울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스키를 못타는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사부작사부작 걸어다니면서 천천히 유람이나 하는 등산이 최고다. 폭폭 썩어가는 낙엽 냄새도 좋고, 등줄기로 또르르 굴러가는 땀방울의 느낌도 좋다면 비발디파크에 가서도 등산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원래는 팔봉산 등산을 하려 했는데, 입산 금지라 할 수 없이 비발디 파크의 오크동 뒷편으로 해서 두능산 산책길을 걷기로 했다. 그야말로 산책길 정도로 제일 킨 코스가 고작 3.5km에 불과해 천천히 걸어도 2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작은 산인데도 리조트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다양한 산책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거창하게 자연 휴양림을 붙였지만, 휴양림이라고 하기에는 숲이 좀 부실하다는 느낌이다. 앞에서 말한 3.5km의 A코스는 두능산 정상을 오르는 길이다. A코스는 두능산 정상을 오르는 만큼 정상에서 만나는 풍경이 좋다. 구름이라도 낮게 깔리는 날이면 그 풍경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날이 아주 맑았기에 그 풍경을 만날 수는 없었다. A코스와 달리 B와 C코스는 2.5km로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고 하며, D와 E코스는 각각 1.5km와 1km의 짧은 코스로 아침 산책이나 식사 후 산책 코스로 즐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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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유격장은 이제 그만


역시 맨 뒤에서 쫓아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이번에 함께 두능산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 대부분을 잘 모르는 사람었지만, 등산은 그런 어색함을 덜어주는 데는 그만이다. 초입에서는 마치 유격장 같은 시설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회사나 단체 단위의 단합대회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일일 군입소 체험이니, 해병대 체험이니 하며, 여러 형식의 군사훈련을 경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다. 함께 하는 모험과 도전에서 서로간의 우정과 사랑이 더 돈독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모험과 도전이 아니라면 그것은 의미없는 노동에 불과하다.

우리 중 아무도 그 구조물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저 나만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스키장이라서 그런지 두능산 정상까지 오르려는 사람들은 우리 외에는 볼 수 없었고, 푹신한 낙엽들이 고스란히 발끝에서 차이고 있었다. 


 



두어번 쉬면서 올라왔는데도 금새 두능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조망은 좋았다. 퇴색되어 가는 붉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겨울이지만, 마치 가을의 끝자락을 보는 느낌이다. 멀리 홍천강 굽이길도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의 산세는 역시 꽤 거칠다.






정상에 다다를 즈음 길은 약간 질퍽거렸다. 날씨는 그정도로 따뜻했던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는 이끼가 다복하게 자랐다. 옹기종기 모여 작은 이파리들을 부대끼며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끼들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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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가 없는 산


하산길에는 잘 만들어진 숲속 카페도 만날 수 있었다. 겨울이라 열지 않았다. 여름이였다면 여기저기 사람들이 시원한 얼음을 띄운 차 한잔을 마시면서 산등성이를 넘어온 바람을 만나고 있었으리라. 여름에는 햇볕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지만 겨울철에는 햇볕을 쫓아 야외로 나오고, 등산을 하는 것이다. 우리 신체는 겨울철 등산을 하면서 방에 웅크려 있으면서 쌓였던 노폐물을 땀으로 배출하고 햇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타민 D를 얻는다. 즉 겨울 등산을 하면서 몸을 청결히 할 수 있고, 뼈와 근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들도 집을 비웠다.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사람들이 만들어 준 집에서 살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리조트가 들어서고 여기저기 스키장과 골프장이 만들어지면서 새들은 이곳이 지겨워졌는지도 모른다. 새들이 찾지 않는 산, 새들이 떠난 산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발걸음 소리도 죽이면서 내려왔다. 새들이 떠난 이유는 멀리서 들려오는 스키장의 요란한 음악 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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