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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어 오는 가을아침 햇살이 반갑다.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추워진다고 하는데, 여기는 아침도 무척 쌀쌀하다. 준비한 쟈켓을 입고 페달을 밟았다. 횡성은 한우가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소똥냄새가 진하게 넘실거린다.


차들이 아침부터 많이 달렸다. 왕복 4차선이다보니 달리는 속도 역시 무섭다. 어제 준비한 상세한 지도로 다음 예상 목적지를 보며 달리니 그리 힘겹지 않다. 페달을 밟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내심 '이렇게만 달린다면 오늘 대관령도 넘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금까지 하루하루 달려온 거리보다 오늘 가야할 목표거리가 좀더 길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첫번째 언덕길에서 쉽게 접어야 했다. 갑자기 나타난 언덕길 가도가도 끝이 없이 빙빙 돌아간다. 10% 언덕 앞에서는 아예 자전거를 끌고 갔다. 이 고개가 바로 '황재'다. 징하고 징한 언덕이었다. 초반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전거를 끌고 가다시피 했다. 진짜 언덕길을 만난 것이다. 언덕길을 자전거로 끌고 올라가며 드는 생각은 내일 넘게 될 '대관령'에 대한 걱정이었다. 대관령은 해발고도 832m. 도대체 지금 오르는 이 고개는 높이가 얼마나 될까.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타난 표지판이 가르키는 고도는 500m. 대관령에는 미치지 못하는 높이다. 그런데도 힘들다.




이제 내리막길... 어제 글에도 있지만 내리막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렵게 올라왔으니 내리막길은 그에 대한 보상이겠지만, 막상 질주하듯 내려가는 자전거를 내 스스로 감당하기가 힘들다.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자전거의 핸들은 조금만 꺾어도 확 돌아버린다. 아주 조심스럽게 커브길을 달려야 하며, 작은 자갈 같은 것이 바퀴에 걸려도 그 느낌이 핸들에 전달될만큼 민감해진다. 끊임없이 앞뒤 브레이크를 걸어주면서 내려왔지만 아마도 시속 30~50km사이는 되지 않을까. 속도계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그렇게 신나게 내려갔다. 이제 더 높은 고개는 없겠지. 그러나 그도 잠시 불과 한시간도 가지 않아 다시 시작되는 언덕길. 차량 통행도 한산하다. 뭐일까? 열심히 페달을 밟아보지만, 역시 역부족. 다시 자전거를 끌다 타다를 반복했다. 이 고갯길은 좀전의 '황재'보다 더 높다. 눈앞이 캄캄하다. 저 멀리 빙빙 돌아서 올라가는 차들을 보니 더 지치는 것 같다. 어차피 올라야 할 길이고 넘어야 할 산이라면 거북이처럼 끈질기게 엉겨붙어봐야지라고 마음먹고 올랐다. 정상에 올라보니 그곳은 '태기산'. 해발고도 980m 거의 1000m에 가깝다. 지도에는 태기산이 나와 있지 않았다. 생고생을 했다고도 생각했지만, 대관령보다 높은 곳에 올라왔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것도 아니라 절반은 끌고 올라왔지만 그래도 올라왔다는 것에 만족하며 내심 대관령을 다시 보게됐다.



정상에 올랐을 때는 12시가 넘었다. 준비한 김밥과 정상에서 파는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다. 1톤트럭에 주방을 차려놓고, 정상 옆에 콘테이너박스와 간이 식탁을 꾸려놓은 아주머니가 이것저것을 팔고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서 장사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15년 됐나? 아니지 16년이네요."

"와, 그럼 여기 자전거 타고 넘나드는 사람도 많이 보셨나요?"

"그럼요, 많이 봤죠. 요샌 좀 뜸한데, 여름엔 좀 있어요. 그 중에는 단골도 있죠, 호호호."

"내 라면맛도 좋고, 물맛도 참 좋네요."

"어디서 오셨어요?"

"횡성에서 왔어요. 서울에서 그저께 출발했죠."

"고생하네요."

아주머니가 끓여준 라면에는 버섯과 호박, 감자와 파, 양파가 한껏 들어가 있어서 아주 맛있었다. 게다가 산정상에서 먹는 라면, 그리고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겪은 어려움들을 생각하니 라면도 김밥도 금새 먹어치웠다.

"아주머니 잘 먹고 갑니다. 많이 파세요."

"이제 내리막길이니 고생도 끝났네요. 조심해서 가세요."

"네."








급경사와 급커브. 역시 적응 안된다. 계속해서 브레이크를 잡아주면서도 쏜살같이 내려가는 그 속도감, 그것은 쾌감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아드레날린이 한꺼번에 분비되는 짜릿함이다. 이제는 봉평을 지나게 된다. 효석문화마당도 있는데, 시간을 보니 이미 많이 늦어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내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부면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또 하나의 고개를 만났다. 고개 이름은 모르겠지만 해발고도 700m... 언덕길을 오르는 요령이 생겼다. 여기에서는 거의 자전거에서 내려오지 않고 쉬다 달리다를 반복하며 끝까지 올랐다. 물론 체력은 훨씬 떨어지고 있었지만, 몸과 머리가 만들어낸 방법이다. 이렇게 700고개를 넘어가니 진부면이다. 조금만 가면 6번국도와 헤어져 456번 지방국도를 타게 된다.




456번 지방도로. 차가 없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5대 혹은 3대 중의 한대 꼴로 레미콘이나 덤프트럭 등 대형차다. 게다가 갓길도 없다. 지방도로라서 길폭이 좁아서 마치 귓가를 스치듯 트럭들이 내달린다. 겁이 덜컥 났다. 달리다가 뒤에서 트럭의 굉음이 들리면 옆에 공간(풀숲 또는 흙더미)으로 들어가 트럭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길 반복했는데, 왜 이렇게 트럭들이 많이 지나가는지. 그냥 자가용이나 작은 트럭들은 알아서 피해가는데, 나는 흰차선만을 밟고 가도 트럭이 오면 옆으로 빠져서 지나가길 기다렸다. 어떤차는 바로 귓볼을 스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시 오르막길이다. 오늘의 목적지 횡계까지는 10km. 자전거로 간다면 한시간 정도. 걸어간다면... 2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하지만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 안전을 위해서 자전거에서 내렸다. 갓길도 없는 오르막길을 오른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게다가 트럭들이 무섭게 내달린다. 지금 생각해도 현명한 판단이었다.



지방도로를 터벅터벅 걷다보니 트럭들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원도는 지금 한창 수해복구로 바빴다. 456번 지방도로 곳곳에 지반이 침해되어 길한쪽이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았다. 그 수많은 덤프트럭과 레미콘 트럭들이 강원도의 수해복구를 위해 동원된 것이었다. 이유를 알게되니 수긍이 갔다. 그렇다면 더더욱 안전하게 걸어서 가야하리. 그렇게 5km의 언덕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드디어 언덕길이 끝났다. 여전히 갓길은 없다. 트럭들은 바쁘다. 도로폭도 좁다. 시간은 벌써 5시를 넘어가고 해는 서산너머로 곧 질 것이다. 여전히 5km를 달려야 횡계다. 걸어간다면 1시간 이상. 해는 떨어져 어두워질텐데, 나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하나.


어쩔 수 없었다. 어두워지고 걷는다는 것은 더 위험하다. 그나마 해가 있을 때 달리자.

'길이 없고 트럭들이 달려들겠지만, 내가 내려가는 속도로 최대한 따돌려보자.'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을까.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기아는 앞바퀴 2단(최고3단), 뒷바퀴 8단(최고8단)으로 놓고 내달렸다. 브레이크는 간간히 잡았다. 정말 빠르게 질주했다. 그리고 점점 평지에 가까워오니 좁디 좁은 갓길이 있다. 뒤에서 차가 올경우 갓길로 빠져 나가고 다시 차도로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30분을 달리니 횡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일은 대관령을 넘는다. 황재(500m) - 태기산(980m) - 진부고개(700m)를 넘으니 자신이 생겼다. 대관령 832m를 넘으면 동해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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