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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도 9일, 길면 10일의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떠난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발해 전라북도 무주로 나올 예정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백두대간 코스다. 보통 남한의 백두대간 코스가 총 650km(도상)라고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지도가 24구간으로 나와있고, 그중 4개 구간을 걷는 것이니 대충 계산해 보면, 650÷24×4=108.3333...이 나온다. 100km 산악행군인 셈이다.


내가 제대한 군대에서 100km 행군을 한 적이 있다. 물론 100km의 실제 도상거리는 약 80km였다. 그렇지만 이 구간을 24시간만에 행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 8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8시에 부대 귀환이라는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행군이었다.


이번 산행은 도상 100km인 만큼 실측은 아마도 120km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간이 길다. 예상은 8박9일. 산장이 없는 구간이 많고 노숙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텐트를 가져가는 이유다. 짐을 대충 풀어놓으니 만만치 않다. 막상 배낭에 넣어보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공간이 부족하다. 결국 짐을 더 줄여야 했다. 막판에는 텐트에서 플라이마저 제거했다. 텐트에서 잘 때 비오면 대책 없다. 이런 부담 때문에 동행을 구하고자 여러 후배들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국 혼자 간다. 처음부터 혼자서 간다는 전제하에 모든 준비를 진행했지만, 부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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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동행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게바라의 친구 알베르토는 8개월간의 남미 여행을 함께했다. 동행은 갈림길에서 같이 논의하고,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축제와 기쁨을 함께 경험하고, 배고픔과 질병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여행의 소소하고 자잘한 찌꺼기까지 남김없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사람도 없이 혼자서 간다.


그래, 혼자서 가라. 거기서 만나는 사람과 나무와 들꽃과 새들과 인사하자. 힘들면 나무에 기대어 쉬고, 지나가는 바람에 의지해 휘파람을 불자. 낯선 여행객들에게 안부를 묻고, 행선지가 같으면 함께 걷자. 천천히 걸으며 발밑에 피어난 들꽃들에게 인사하고 세상에 지쳐 돌아보지 않았던 나를 위로하자. 낯선 공간에서 내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그것은 더 큰 내가 존재하다는 깨달음의 시작이고 자기성찰의 변곡점이다. 온갖 땅부자들이 넘쳐흐르지만, 정작 땅한평도 가지지 못한 나는 여기 지리에서 덕유까지 이 공간을 내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땅보다 더 소중한 공간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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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두려운 곳이다. 그것도 혼자서 깊고 깊은 산 속을 헤매며 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졸아든다. 지리산이야 오가는 사람이 많고, 거기서 길을 잃은 없겠지만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으로 가는 길은 생소하기도 할뿐더러 길도 쉽게 앞을 틔어주지 않을 것이다. 또 혼자 가는 길에 짐은 왜 이리도 많은지, 이제까지 산행의 경험 중에 가장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게 됐다. 배낭은 산더미 같은 무게로 어깨와 허리 무릎과 발목을 짓누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무게는 더 무겁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무사히 종주를 마칠 수는 있을까. 나의 귀환은 가난할까, 풍요로울까. 다시 돌아온 자리는 지금 생각하는 그 자리와 다를까, 같을까. 예수는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집을 떠났고, 부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왔다. 주몽은 부여를 떠나서 고구려를 세웠고, 온조는 고구려를 나와 백제를 세웠다. 말썽꾸러기 골칫덩어리 손오공은 1만8천리 서역길을 가면서 고귀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났고, 더불어 불경도 얻었다. 그에게 불경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여행을 통해 만난 삼장법사의 가르침과 저팔계, 사오정과의 우정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진정한 여행은 떠남-역경-만남-헤어짐-성숙-깨달음-귀환의 과정에서 수많은 세속의 잡념들과 상념들을 정화시켜준다. 벌거벗은 체 내던져진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내 여행은 무엇을 얻을까. 나는 슬기로운 여행자가 될 수 있을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병든 조선을 구하지는 못할망정 나 하나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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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놀고 있는 백수지만 평일에 늦잠을 자거나 낮잠을 자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요근래 감기에 걸려 골골 거리는데다가 감기약도 만만치 않은 놈이라 깜빡 잠이 들었다. 혼곤한 일요일 낮잠을 즐기는데 동네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는 통에 깰 수밖에 없었다.

"야 이 이명박 같은 새끼야~"

우리나라 최대권력자, 대표자라는 사람이 이제 동네 아이들에게도 심한 욕지거리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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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는 많은 의견들이 생성, 확장, 소멸의 과정을 거쳐 정제되기 마련이지만, 자칫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거나 잘못 확장될 경우 집단에 매우 안좋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특히 집단을 묶고 있는 것이 이성이냐 감성이냐는 그 결과에서 천지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집단 지성과 집단 감성은 다른 문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시작된 집단 지성의 발현은 100만 촛불집회로 모여들었고, 이후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몰입교육 등 전반적인 이 정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다음 아고라는 참신하고 기발한 집회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집단 지성의 메카로 불리어 왔다.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내세우며 ‘닭장차 투어’ ‘물대포샤워’ ‘명박산성’ 등을 만들어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이런 충격은 촛불집회의 의미를 더욱 고양시켜냈다.


다음아고라는 언론운동으로 진화했다. 확연하게 보도태도의 변화를 보여준 조중동에 대해 시민들의 분노가 아고라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조중동 절독운동이 전개됐다. 이 와중에 한겨레나 경향에 대한 언론소비자들의 집단 광고 운동은 아마도 최고의 언론소비자 운동이 아닐까 싶다. 올바른 사회여론을 생산해 내는 언론에 자신들의 의견을 광고로 게재하려는 사람들의 운동은 포지티브 언론운동의 한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조중동에 대한 네가티브 운동에서도 새로운 국면의 전환이 전개됐다. 조중동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중지 압박 운동이 그것이다. 올바른 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에 광고를 하는 기업들에 전화나 이메일, 게시판 글쓰기를 통해 항의하는 활동을 통해 광고 중지 압력을 넣는 것은 집단지성이 발견한 획기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이며,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운동은 좀더 확장되고 있다. 바로 올바른 기업에 대한 지원과 잘못된 기업에 대한 반대 운동이다. 소비자 권리찾기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운동은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아고라 등에 수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쇠고기 문제가 궁극적으로 소비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인만큼 기업에 대한 소비자 권리 찾기 운동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과정에서 삼양과 농심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와 논리는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 감성을 키웠다. ‘너트가 들어간 라면이라도 괜찮다’는 논리는 광우병 가능성을 우려하며 일어난 소비자 운동의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지성은 없고 감성만 남았다. 농심을 죽이기 위해 삼양을 띄우다 보니 일어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삼양이 좋은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지나친 신화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규영의 글은 그런 면에서 꽤 적절하고 강렬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자극적인 면도 있고, 또 그 이면에 대한 고민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지금의 아고라는 집단 지성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면이 많다. 오히려 집단 감성에 휘둘려 하나의 편향에만 열광하고 있다. 정당한 의견개진에 대해서 자신들의 생각과 좀 다르다고 ‘알바’로 몰아세우는 것은 지성이 아니다.


나는 다음 아고라가 집단 감성에서 벗어나 냉철한 집단 지성의 기능을 다시 되찾기 바란다. 그래야 주성영 같은 꼴통에게 ‘집단 마오이즘’ 같은 별 같지도 않은 말을 들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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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감기는 좀 참으면 나았다.
혹은 약국에서 대충 지어준 감기약만 먹어도 낫는 가벼운 질환에 불과했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접어드니 몸의 저항력이 예전 같지는 않나 보다. 지난 월요일 K선배와 밤늦도록 진하고 거칠게 술을 마신 후로 감기 기운이 오더니 급기야 몸살까지 찾아와 앓아눕게 만들었다.


어제는 간신히 일어나 병원을 찾아갔다. 젊은 의사 선생은 이런저런 문진을 하고 목과 코와 귀를 살피더니 목이 많이 부었다고 한다. 처방전을 받고, 나오는 길이 참 씁쓸하다. 하는 일도 없이 술 때문에 몸을 혹사시키는 짓을 했으니 부끄럽기도 하다. 나름대로 건강을 잘 챙긴다고 자부했으면서도, 한순간 흐트러졌던 그 틈으로 찾아온 감기에 이렇듯 맥을 못추고 말았다.


20대에는 따로 운동을 안 하다가, 30대가 되면서 자전거니 수영이니 하는 것들을 하기 시작했지만, 사소한 여름감기도 못 피해가고 말았다. 세상살이의 두려움도, 나이듦의 쓸쓸함도, 뼈저리게 느끼는 30대의 삶. 도대체 40대, 50대의 삶은 어찌 견뎌나갈 수 있을까. 부모님들이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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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쓰고 나니 어떤 표현이 맞나 궁금하다.
'물이 새다'가 맞는지 '물이 세다'가 맞는지...
맞춤법이라는 게 이렇게 작대기 하나 점 하나 차이로
의미가 달라지는 거라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아무튼 여기서는 '천장에 물이 새다'라고 썼다.
문맥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여지도 있으니 말이다.

동생이 작은 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들어가 보니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물이 바닥에서 올라올 리는 없고,
아마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바닥에 번진 것일 텐데,
짐작할만한 곳을 찾아봐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의자를 놓고 책상에 올라가니 그제서야 구석진 곳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게 보인다.
일부는 벽을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급하게 물을 받을 그릇을 받쳐놓았다.
물이 어떻게 새고 있는지 알수 없다.
윗집에서 어떤 공사를 벌였는지도 모른다.
우선은 작은 방의 세간들을 치웠다.
그리고 윗집에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저녁무렵, 윗집 주인이 찾아왔다.
상황의 심각성 때문인지, 심각하게 지켜보다가 곧 수리를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새어나온 물 때문에 더럽혀진 벽지는 어쩌나.

이웃사이에 이런 문제들은 잘못되면 심각하게 얼굴 붉어질 일로 번질 수도 있다.
윗집과 아랫집 사이에는 층간소음문제도 심각하다.
시도 때도 없이 쿵쿵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쫓아 올라가 따지는 것도 괜한 시비거리만 남기게 된다.
사실 우리집안 식구들의 발걸음도 킹콩 못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일은 너무 가깝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처럼 바로 옆에 혹은 아래에 혹은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때로는 나로 인해 빚어지는 어쩔 수 없는 부딪힘,
이런 것들이 이웃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장벽이 되고는 한다.
그래서 아파트나 도심 빌라의 삶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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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숲을 찾았다. 자동차로 찾아갔더니 대략 50여km가 넘는다. 숲을 사랑한다면서 나홀로 자동차족이 되어 적지 않은 양의 오염물질을 길에 쏟아낸 것이다. 숲을 가면서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숲에 가서 깨닫는다.






 

광릉숲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숲이다. 그래서 서울의 허파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울창한 산림이 뿜어내는 산소의 양이 엄청나다. 동서로 4km 남북으로 8km에 이르며, 경기 남양주, 포천, 의저부시 등 3개 시에 걸쳐 있다. 1468년 세종 때 '능림'으로 지정된 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비가 한참 왔다. 비가 왔는데도 가게 된 것은 이곳이 인터넷 예약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취소할 수도 있고 토요일까지 개방하니 남는 시간에 갈 수도 있었다. 굳이 취소하지 않은 이유는 비오는 수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비오는 수요일의 수목원이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나? 혼자 개폼 잡기 좋은 날이다.






 

개폼은 개폼이다. 한손에 우산 들고, 한손에 카메라 들고, 카메라 가방은 엇메고 다녔다. 비가 세차게 칠 때는 카메라에 물들어갈까봐 잠바떼기로 가려줘야 했다. 내가 비 맞는건 상관없지만 카메라가 비를 맞아서는 안된다. 그러니 그 개폼이 얼마나 우습겠나. 그것도 나이도 어리지 않은 아저씨가 혼자 그러고 있으니...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장마를 맞이한 광릉숲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도 애초부터 계획했던 거니 몰골이야 어떻든, 남의 시선이야 어떻든 그저 내 길 열심히 가면 그뿐이다. 다행히 비가 오고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도 매우 적다.


광릉수목원, 정확히 얘기하면 국립수목원은 예약을 해야 방문할 수 있다. 보통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고 있는데, 하루 5천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5천명 이하면 당일 전화예약도 가능하다고 한다. 입장료는 1000원(성인), 주차료는 3000(승용차, 경차 할인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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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분노하는 부분이지만, 몇년전부터 식목일은 이제 공휴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제 나무를 심는 일보다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물론 이제 '산에 사는 메아리' 아저씨는 돌아왔다. '벌거벗은 붉은산'은 없다. 하지만 도심의 숲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특별/광역시민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평균  6㎡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도시에 살고 있다면, 당신에게  6㎡의 숲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 다른 나라 도시들의 녹지수준은 어떨까. 런전 27㎡, 뉴욕 23㎡ 파리 13㎡다.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이 9㎡이니 우리는 거기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도심 숲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산림과학원은 우리나라 산림 1ha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6.82t에 이른다고 한다. 일반가구 4가구가 연간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 또 승용차 1년간 몰았을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기도 하다. 숲이 부족한 도시에 숲을 조성하는 것은 도시민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환경친화적 실천인 것이다. 그러자면 아파트를 짓는 것만큼의 숲을 조성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비는 징하게 왔다. 기어이 렌즈에도 물이 묻었다. 내 카메라(Canon 400D)는 주인 잘못 만나서 개고생한다. 재작년 지리산에서도 그렇고, 얼마전 설악산에서도 그랬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전천후 기후에 적응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여직까지 별 탈 없이 잘 버텨주니 고맙다.







 

사람들은 지금 아프다. 단순히 얘기하면 기침감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몸이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숲을 찾는다. 광릉숲은 일종의 자가치유 병동인 셈이다. 아픈 자들이여 숲으로 가자.






 

이미 숲 선진국에서는 숲을 치유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독일은 의사의 처방에 의해 숲을 의료 목적으로 이용하면 예방의학의 치료행위로 간주해 건강보험에서 보험처리를 해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숲의 건강생리학적 효과를 본격 연구중이며 나가노현과 기후현은 산림건강증진센터를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7년까지 54억5천만원을 들여 치유의 숲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은 자연휴양림을 비롯한 여러 숲에서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언젠가 휴양림 통나무 집에서 3박4일을 쉬는데 의료보험을 헤택을 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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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 산림욕의 의학적 효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물질이다.


피톤치드는 한마디로 항생물질이다. 즉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화학물질인 것이다.


피톤치드는 특정한 균을 선택적으로 죽이고 인간의 신체에는 부드럽게 흡수된다.


또 피톤치드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 준다. 실제로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지표호르몬인 혈중 코르티솔 농도를 70%까지 저하시키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장맛비를 맞아 흠뻑 적은 숲에서 피톤치드 향기와 함께 물큰한 비 냄새와 낙엽냄새가 섞여 있었다. 새들도 비를 피해 나무둥지로 들어갔는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하다.


그래도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 밑에 서면 기분이 좋다. 나무그늘이 살가운 보살핌의 손길을 뻗어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듯하다. 그것이 피톤치드이든, 또는 다른 그 무엇이든 나무는 인간을 사랑하고 있으며, 반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광릉수목원은 유감스럽게도 많은 곳이 비개방지역이다. 온실도 오늘만큼은 열지 않아 아쉬웠다. 그나마 비를 피하고 마음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던 터라 그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하지만 다행히 수생식물원의 그림 같은 풍경이 관람객을 맞아주고 있었다. 게다가 비도 얼추 가늘어져 우산을 들 필요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봉오리를 틔고 있는 연꽃들과 연못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나무가 비에 흠뻑젖어 한폭의 수채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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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한창 내릴 때 왔는데, 막상 떠나려하니 비가 그쳤다. 그루터기에 앉아서 혼자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지 못한 점,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나무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 한점을 즐겨보지 못한 점, 맑고 청명한 새들의 노래를 듣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온 숲을 두들기며 내리는 빗줄기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바닥까지 훑고 힘차게 흘러가는 숲속 계곡물도 보았다. 여기저기 맺혀 있는 빗방울들의 영롱한 빛들도 아름다웠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숲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한명이 일생동안 쓰는 목재는 55㎥에 이른다. 이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나무는 500그루나 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나무 한그루도 심어본 일이 없다. 그러면서 내딴에 아이디는 '구상나무'란다.


나무는 환경이다. 나무를 심는 일은 곧 자연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다. 내가 진 500그루의 나무의 빚은 살면서 열심히 갚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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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친구 홍의 결혼식.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과정에서 만난 친구인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은 작년에 알았던가.
아무튼 결혼생각이 별로 없던 친구가
좋은 사람을 만나 개과천선해 결혼에 골인했다.

나에게 결혼식 스냅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한시간 반 전에 집을 나왔건만,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촬영할 때나 도착할 수 있었다.
어차피 메인사진가가 있다고 하지만
다양한 스냅사진을 찍어 줄 사람도 필요하다는 게 대세다.
그런데 지각을 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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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까지 참석하고 싶었지만, 동문회 행사 때문에 나왔다.
결혼식 전과정에 같이 있어본건 처음인데,
정말 밥먹을 틈도 쉽게 나지 않는 신랑신부를 보니 안쓰러움도 크다.

신혼여행은 베트남 배낭여행.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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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광운대 국어국문학과(부) 동문회 창립 총회가 있었다. 그러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결국은 밤을 꼴딱 세고, 새벽에 나오고야 말았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밤새도록 이종격투기를 벌였다. 한편으로 실망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발 다가선 것이고,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라고 자평한다. 


첫 번째 글은 새벽까지 있었던 누군가에게 보낸 잡다한 메일이다. 후배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그이의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우리 학과 동문회의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게 나에게는 큰 행운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글은 총회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머릿속에서 이종격투기를 벌였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는 글이다. 무엇보다 준비했던 분들, 토요일 오후를 비우고 그 자리에 참석한 분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후배들과 새벽까지 이야기하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했나보다. 술도 안마시고도 말은 곧잘 나오더라. 술 안마시고 새벽까지 술자리 지키는 경험은 오랜만이지만 이날만큼은 정말 신기했다. 요즘 세태에 ‘동문회’는 참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하게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동문회는 세상에 흔하디 흔한 그런 동문회와는 다를 것이다. '학연'이라는 또아리를 틀고 안자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면서 끼리끼리 뭉쳐 다니며 패악질을 하는 것이 ‘동문회’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세대와 후세대가 소통할 수 있고, 세상의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마당으로 ‘동문회’가 제역할을 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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